휴가라는 것은 좋다. 왜냐하면 원래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들을 많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신계에서 인세로 내려와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사는 것은 여러 제약점이 있기 때문에 이런 저런 불편한 점이 많았는데, 그것은 바로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술을 마시는 행위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술을 마시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여우신이란 본래 속임수와 누군가를 홀리는 일에 전문적인 신이었기 때문에 외견을 조금만 바꾸는 것과 신력으로 조금만 속임수를 주어도 꽤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케이를 아는 이에게 들켜도 형이라고 하거나 혹은 다른 이들에게는 인상이 흐릿하게 남도록 인상을 조절할 수도 있고.
이 리조트에는 최상단층에 바가 하나 있었는데, 리조트가 바다 근처에 있는 만큼 밤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풍광을 자랑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술 한 잔 하지 못하는 것은 아쉬울 것 같아 간단하게 한 잔만 마시려고 올라오게 되었다.
“잭콕으로 한 잔.”
살짝 단추를 한두개 푼 흰 와이셔츠에 검은색 정장바지와 벨트. 값비싸 보이는 시계와 왁스로 신경써 넘긴 머리는 역시........ 아무래도 휴가를 나온 직장인으로 보였을 것이었다.
그러다 자신을 힐금 보는 옆 사람을 보니, 신이었다.
“안녕하세요.”
옆자리에 앉은 것도 인연인데, 게다가 신이라고 하니 더 친근감이 들어 인사를 한다.
“혼자 오셨어요?”
누가 들으면 유혹하는 듯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케이의 어투는 꽤나 담백해서 전혀 그런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장난은 아니긴 함.." 장난 생각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누울 거임... 이라는 말은 대충 들어도 100% 진심입니다. 진심이에요.
"못 믿으면 비밀만 지켜주면 오케이임." "믿기 힘든 말인 건 나는 알고 있음." "....조금 신빙성은 떨어지지만." 그나마 본인 말이 신뢰도가 높기 힘든 말이라는 건 아나봅니다. 다행이야. 굳이 뭐 증거니 뭐니 그런 건 귀찮으니 할 생각 없다는 생각인가 봅니다. 증거를 달라고 했다면야 일어나서 미카와 함께 바다속 걷기를 시전했을지도 모르지만(?)
"호기심이 들도록 하는 건 나였지 않음?" "뭔가 비밀 있는 것처럼 굴고 있다는 건 자각하고 있음." 어째서 미안하다고 하는 것? 이라는 듯 미카가 다시 고개를 돌릴 때까지 빤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밤바다는 밤바다지." 그다지 뭐... 심드렁한 듯하지만. 나름 운치가 있긴 하니. 창 밖을 물끄러미 봅니다. 하긴. 밤바다가 완전히 새카만 색이 아니니만큼..
"아" 처음이라는 것이었구나. 단골인줄 알았네. 라는 표정은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본인은 잘 숨길 거라 생각한 것 같긴 하지만. 그나마 여우라는 것에 놀라는 거일수도 있을까? 그 와중에 사야카는 버진 피냐 콜라다를 한 잔 더 시킵니다. 두 잔 정도는 안전권이라는 거였을까?
"여우였음? 그렇군." 고개를 끄덕입니다. 여우라서 좀 능숙한가보지. 라는 생각도 덤이다. 미묘하게 사야카가 타인의 인식을 흐리면 사람들이 좀.. 두려워하는 느낌이 있다는 기분을 느꼈어서 자연스러움에 오. 한 걸지도 모릅니다.
"두개 시켜서 나눠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나는 요즘은 그다지 많이 먹지 않아서." 샤퀴테리 플래터와 치즈 플래터를 봅니다. 아니면 뭐.. 하나 내에서 섞는 거 되냐고 물어도 좋고? 라면서 바텐더에게 물어보려 합니다. 가능하려나? 같이 먹는 걸 승낙한 거라 그런가..
"낮이나 밤이나 빛이 못 닿는 곳은 똑같이 차가우니까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지도." 저 깊고 깊은 심해라던가. 라는 말을 덧붙이며 쉐이커와 믹서기에 갈려지는 것들을 보는군요. 시킨 것 둘 다 한 용량하는 것들인 만큼 느긋하게 마셔도 좋은 것들입니다.
"그러게. 뭐라고 부르도록 하는 게 좋으려나." "카미는 좀 그런데.. 그나마 미코토가 낫나?" 히메는 솔직히 애매해서 카미나 미코토중에 알아서 부르라는 듯 고개를 까닥입니다.
"물어보니 가능하다니 다행이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무알콜 모히토의 얼음과 그에 붙은 민트 잎을 입에 넣어 녹이듯 우물거립니다. 청량감이 흐리게 숨에 묻어나오는군요. 불을 붙이는 칵테일은 다른 손님이 시키게 두고 가볍게 바에서 만난 인연은 바에서만 놔두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려나.
"다 마실 때까지는 어울리는 걸로?" *그리고 학교에서 만나면 미묘한 감상이 들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아서." 혼란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평범하게 누워있습니다. 이런 것만 보면 평범한 인간 같다가도 한순간 이상해지면 정말 이상해지는 존재인 사야카.
"종교학적 설명을 하자면 하루종일 할 수 있지만 그건 귀찮고" 물론 그게 미카가 원하는 답이 아닐 확률도 높았지만.
"어떤 존재냐 라는 것에 중점을 두자면. 가벼운 비유와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건" "수명의 제약이 적은 편에 속하며 인간형태를 취하는 게 가능한 자영업자...에 가깝다고 생각함. 높으신 분들은 좀 큰 기업 느낌이려나." 신사가 클수록 자금의 융통에 조금 여유가 있다는 점에서는 아무래도 그렇다고 생각함. 이라고 말하는군요.
“하긴 빛이 닿지 않는 곳은 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죠. 그런 면에 있어서는 좋은 면이 있지만 가끔은 심해에서 나와 반짝이는 물결을 보면 이전의 심해가 조금 지겨웠을지도,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신계는 마치 심해와 같은 느낌이었다. 물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많은 것들이 변화하기도 하지만 어느정도 일정한 일들이 반복되고 돌고 또 도는. 하지만 인세에 내려오니 이처럼 화려하고 반짝이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이 잔뜩이다. 그 옛날 내려왔을 때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정말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카미보다는 미코토가 좀더 평범하고 이름 같은 느낌이네요.”
작게 웃음을 지어 말했다. 잠깐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하룻밤 말상대 같은 느낌이었다.
“좋죠. 음. 초면에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까요. 음.... 최근에 겪은 가장 인상깊은 일이라던가, 원래 있었던 곳에 비해 이곳에서 느꼈던 점을 이야기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아니면 이곳에서 신기했던 점이라던가.”
그리곤 또 잠시간을 말없이 걸었다. 저 앞에 바다가 보이고 바다냄새가 점점 더 진하게 코 끝에 걸리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생기넘치는 목소리가 귀에 조금씩 들려오고 있다. 그 냄새가 진해지고 소리가 커지는 만큼 조금씩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열기가 자신마저 덥게 만드는가 싶어 리오는 쓰고 있던 마스크도 슥 내려 턱에 걸쳤다.
피어싱이 마음에 안든다거나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거나 마스크가 답답해보인다거나 그도 아니라면 뭘까. 표정관리를 못 했다거나 아니면 옷차림이 이상하다던가 옷 안에 입은 수영복이 비쳐보여서 이상했다던가 하는 것일까. 당황한 티를 잔뜩 내보이고 말았다. 리오가 생각하기에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일 중 하나는 상대가 누구이던 간에 미움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런 건덕지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하는 것이었다. 다만 그 노력이 걸어가는 방향이 잘못된 길이었지만.
" 아. 다른 이야기구나. 후.. 다행이야. 치아키 오빠가 어떤 사람이던간에 말야, 나는 상관 없-어. 나도 좋은 사람은 아니거든. 3학년이니까 내 이야기는 모르겠지만. 음- 듣고싶다면 나중에라도 이야기해줄게. "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다. 듣고싶어-! 하고 이야기한다면 말하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고 말해줄 수도 있다만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의존증이 있어서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던가,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주제에 사람이 다가오면 밀어내는 이상한 성격에 기꺼이 제 몸에 상처를 입혀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리고 집착이 심한 멘헤라가 눈 앞에 있는 사람이야- 하고 말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없을테니까.
" 응. 그럼 라인 받아둘까- 꼭 답장 해줘야해. 나, 귀찮게 안하려고 노력할테니까 꼭 답장해줘야해. 꼭이야. 늦더라도 꼭- 꼭 해주기야. 그렇다고 너무 오래 걸리면 안돼고. 그러면 나 슬퍼져서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
그냥 슬퍼진다고만 말할 수 있었을텐데. 리오는 핸드폰을 꺼내 라인의 등록을 마치곤 '이제 조금 더 친구야' 하고 말하며 살짝이나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리고 몇 걸음을 더 걷다보면 드디어 반짝반짝- 에 도착이다. 바다다. 발 밑에 모래가 밟혔다. 리오는 막상 여기까지 와서 온갖 사람들이 즐겁게 놀고있는 것, 즉 인싸력이 충만한 것을 보자 속이 울렁거리려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음. 바다네' 하고 덤덤한 척 한 마디를 하고 끝냈다.
"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아. "
여기까지 나왔을 때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알고있잖아. 리오는 입술을 꾹 닫았다. 여기까지 나온 것은 바다를 보고싶다는 생각과 함께 저 생기넘치는 곳에 배경으로 섞여들어도 좋으니 친한 친구들 없이 혼자 섞여들어가보는 것이었다. 할 수 있다. 해야한다. 홀로서기를 해보겠다고 했으니까. 하레하네, 사에, 치리쨩. 지켜봐줘.
" 나..나도.. 바,다에, 들어갈,래..! "
신발을 벗었다. 양말을 벗어서 가지런히 신발 안에 정리했다. 침을 꿀꺽 삼킨 리오는 다시금 '할 수 있어' 하고 중얼거리면서 탈의를 시작했다. 안에 입고온 수영복이 처음으로 햇빛을 받았다. 검은색 마스크 뒤로 숨겨진 얼굴이 빨개지는 기분이다. 리오는 '바,다다. 와,아.' 하고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바다로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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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레느낌으로 받아도 되고, 더 이어도 되고! 일부러 조금 여운있게 남겨두고 싶었어~~~ 엄청 느렸는데 돌려줘서 고마워 캡푸틴... 치아키 상냥해서 좋았다구~~~~
또 다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말. 방금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도 그렇고 조금 더 무게가 있는 말일지도 모르겠다고 치아키는 생각을 바꿨다. 물론 그렇다고 딱히 멀리하고 싶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조금 궁금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보통 이런 것은 굉장히 무게감이 있는 내용일테니 지금은 패스하기로 그는 마음 먹었다. 놀러온 곳에서 즐거운 기억이나 추억을 쌓아도 모자랄 판국에 무게감이 있는 이야기를 굳이 지금 해서 뭘하겠는가. 그리고 그런 무게감이 있는 이야기를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들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언젠가 자연히 알게 되거나 묻게 되거나 말해주거나 그런 날이 오겠지. 그렇기에 그는 그 내용은 살며시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하며 태연하게 자신의 라인 아이디를 알려줬다. 연락하고 싶을 때 연락하라고 이야기를 하며.
행동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그 말을 들으며 치아키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이내 살며시 고개를 돌려 리오를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면서 한 마디를 굳이 남겼다.
"그렇게 각오를 하는 이가 세상엔 생각보다 상당히 적어. 그러니까 그렇게 마음을 먹는 것 자체에서 이미 발전하는거야."
굳이 더 말을 하진 않으면서, 그 말의 의미를 굳이 캐묻진 않으면서, 오로지 순수하게 그 말에 대한 자신의 생각만 이야기를 하며 그는 물 속에 제 발을 담궜다. 시원한 에메랄드 빛 파도가 제 발을 물들였고 발목에 허벅지까지 철썩였다. 엄청 시원하네. 이대로 저 파도 속에 몸을 담그고 싶었으나 갈아입을 옷이 없었다. 아. 수영복 가지고 올걸 그랬나. 오늘은 가볍게 산책이나 발목만 담그고 다음에 제대로 수영하려고 생각했었는데 뭔가 아쉽네.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목에 감은 수건으로 다시 한 번 땀을 닦았다. 그러다 바다에 들어가겠다고 이야기하는 리오의 말에 치아키는 고개를 살며시 옆으로 돌렸다. 수영복을 압에 입고 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입을 열었다.
"본격적이네? 좋아. 그러면 기왕 수영복 차림이니까 조금은 그에 걸맞게 어울려볼까나."
이어 치아키는 두 손으로 물을 뜬 후에 리오에게 아주 가볍게 뿌리려고 했다. 피하려고 하면 피할 수 있을테고 맞으려면 맞을 수 있는 그런 느낌으로. 싫어한다면 사과를 했을테고 반격으로 물을 뿌린다면 피하려고 하다가 아마 풍덩하는 느낌으로 바다 속에서 무릎을 꿇어서 바지의 아랫 부분이 확실하게 젖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건 아마 잠시 동안은, 그리고 조금은 더 길게 그녀와 어울리지 않았을까.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인연을 기억하려고 하면서.
/그렇다면 이렇게 막레를 줄게요! 이후의 치아키는 이랬다..라는 느낌으로! 이후에 만약 반격을 해서 치아키가 물에 빠졌다고 한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라고 하면서 돗자리를 빌려서 깔아놓은 후에 그 위에 핸드폰과 지갑을 따로 빼놓고 아마 수영을 즐기지 않았을까하고... 이후는 돌아가는 치아키가 알아서 했겠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