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저는 여우보다 개파인데. 앗! 그러고 보니 선배, 약간 여우상이신 것 같기도 하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 검지를 치켜세우더니, 이내 과장된 몸짓으로 케이의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는 체했다. 안경 벗은 맨 얼굴은 마냥 순한 인상은 아니니 여우상이라 결론지어도 부족함 없겠다. 그러다 말고 미야나기는 문득 케이의 시선을 따라 한 음료 매대로 눈길을 돌렸다. 알록달록한 컵들이 디피되어있는 걸 봐서는 틀림없이 생과일 주스 노점 되겠다. 게다가 이 가게, 컵에 평범한 빨대가 아니라 무려 모양 빨대를 꽂아준다! 바가지 엄청나겠지만 귀여워!
“생과일 주스! 그게 마음에 드세요?”
미야나기는 가게 앞으로 척척 걸어가 메뉴를 빤히 노려봤다. 애플페이 되겠지? 맞다, 학생증 내면 할인해준다 그랬는데 현금만 받으려나. 빨대 하트 말고 곰돌이 모양도 있으면 좋겠다. ······미야나기는 메뉴보다는 다른 데 정신이 팔린 것 같다. 하지만 음료를 고르는 것도 잊지 않고 착실히 결정하고서 의기양양하게 서있다.
제 얼굴을 요리조리 살피며 하는 말이 여우상이라는 것에 케이는 작게 웃었다. 여우가 맞으니 여우상인 것은 퍽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이내 제가 보고 있던 것에 같이 시선이 갔던 터인지 생과일 주스가 좋으냐며 눈치 빠르게 말을 걸어온다.
“음, 네. 여기서 살까요?”
가까이 가서 보니 신경을 쓴 것은 얼음만이 아닌 듯 컵의 모양새나 빨대라던가 이런 것들이 꽤나 앙증맞고 귀여운 느낌이었다. 동글한 얼음에 시선이 끌렸던 건, 본능적으로 여우구슬이 생각났기 때문일까. 메뉴를 빤히 쳐다보는 사에의 머리꼭지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메뉴를 결정한 것에 케이도 싱긋 웃으며 메뉴를 정했다.
“그럼 체리콕 하나하고 청포도 주스 하나 주세요.”
이내 케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꺼내며 값에 맞는 동전들을 주어 계산했다. 물론 바가지가 꽤 있었음에도 이정도 쯤은 몇백년 일을 했던 것에 비하면 아주 푼돈이었으니.
물론 주머니에 동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가져오는 것은 어느정도의 신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종업원이 주문을 받아 음료를 준비하는 동안 케이가 사에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여우 이야기 말고 할 만한 이야기로는...... 다음 공연은 언제인지 라거나, 학교 생활은 어떤지 라거나, 혹은 요즘 별 일은 없었는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요?”
>>230 음. 은근히 무른 부분이라. 그건 이제 앞으로 지켜보면 알 수 있겠지요!! 아닛...ㅋㅋㅋㅋㅋㅋ 자기 스타일에 맞추게 하는 거예요? 아니면 저 물음표는 떡밥인가! 가려진 무언가인가!! 그리고 고여있는 물을 좋아하는군요. 이건 여우의 특성이 분명하다! 여우다! 여우!!
수학여행이 한창인 때 미카는 드디어 바닷가로 나와보았다 헌데 반팔 티셔츠에 가디건, 청바지 차림인 걸 보면 딱히 물놀이를 즐기려고 나온 건 아닌 듯하다 그냥 리조트 안에만 틀어박혀있기 심심해서 온 거에 가까운... 불어오는 바람이 꽤 후덥지근하지만 물기가 서려있어서 심하게 덥지는 않았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아는 얼굴이 보인다 저 애도 수학여행을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어, 음, 안녕."
종종걸음으로 다가가서 어설프게 아는 척 해본다 남한테 먼저 말거는 건 영 어색한지라 그래도 하는 것 없이 가만히 있긴 싫었다
"...잘 놀고 있나보네."
수영복까지 제대로 차려입고 말이지 ...왜 보는 사람이 더 낯부끄러운지 모르겠지만 갈 곳 잃은 시선이 허공을 맴돈다
" 응. 수영장 있지. 그런데 나 집 밖에 잘 나가지.. 음, 나가기는 하는데. 혼자서 돌아다니는거 잘 못해서. 그런데 혼자 가는거 조금 무리거든. 그래서 워터파크도 혼자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만나게 된다면 인사해줘. 음- 그렇네. 먼저 인사해주라고 했으니까, 내 인사 안받아주거나 하면 나 죽어버릴지도- "
스스로가 생각해도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몇 번이나 죽어버리겠다고 말하는건 정말 최악이다. 리오는 정말 이런거 고쳐야한다고 생각을 한 번 더 다잡고 크흠, 하고 목을 가다듬었다. 홀로서기를 시작하려고 했으니 이왕 할 거 제대로 해야하니까. 그리곤 들려오는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땅만 보고 걷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 아이자와 선배, 말 많다. 말 잘하는거 부러워. 나는 그런거 안되거든. 노력은 하는데 잘 안돼. "
말을 많이 하려고 들면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아이자와처럼 적당한 자신의 프라이버시라던가 주변에 대한 설명같은 것들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할 뿐이다. 악의가 가득찬 말을 하며 또 죽어버리겠다던가 하는 이야기나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리오는 몇 걸음 앞서 나가서는 뒤를 돌아 치아키를 가만히 바라보고는 '부럽네' 하고 한 마디를 더하곤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 반짝반짝- 멀리있네. 더워서 죽어버릴지도.. 아직 한참이야? "
수영복이 조금 거슬리기 시작했지만 리오는 딱히 티를 내진 않았다. 바다에 도착해서 이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바다로 들어가볼 수 있을지 어떨지는 또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잠깐 말 없이 타박타박 걷던 리오는 뭔가 생각난듯 고개를 휙 돌려 치아키를 바라보곤 마스크를 살짝 내렸다.
" 여기서 긴급 퀴-즈. 내 이름은? 나는 몇 반? "
메이드카페의 아리스양 도와줘! 조금 뜬금없지만 그래도 리오 입장에서는 꽤나 과감한 어프로치였다. 잊어버렸다고 한다면 죽어버릴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