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핫. 놀리는 것은 아니고 뭔가 작은 토끼 같다는 소리 한번씩 듣지 않아?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아서 말이야. 기분 탓일수도 있지만."
놀리면 죽어버린다. 인사를 안 받아주면 죽어버린다. 약간 다른 이가 주는 관심을 원하거나 혹은 친분을 원하거나 혹은 인연을 원하거나. 대충 그런 느낌이 아닐까 치아키는 추측하면서 가볍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토끼는 외로우면 죽는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죽어버린다는 말의 페턴을 생각해봤을 때 살짝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거나, 자신을 무시하거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거나. 대충 이런 느낌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완전히 이 '죽어버린다'는 일종의 말버릇이나 특유의 표현법이라고 인식했다. 아니라면? 아니라면 어쩌겠는가. 아니면 아닌거지.
"꼭 나처럼 살아가는 느낌이 아니라도 괜찮지 않아? 후배 양은 후배 양 나름대로의 방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 그리고 말 많은 것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야. 정신없다는 말도 엄청 듣거든. 나중에 수학여행 끝나고 학생회 건의사항에 들어가면 또 무슨 말들이 있을런지. 상관없지만. 아무튼 결론은... 당장 노력의 성과를 보려기보다는 그냥 천천히 걷다보면 뭐라도 되지 않겠어? 그 어떤 일도 결국엔 처음 한 걸음을 딛고 그 한 걸음이 이어져야 성과가 나오는 법이니까. 단지 너는 그 걸음 폭과 속도가 조금 느릴 뿐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걷다보면 결국 목적지는 가까워지고 골인을 하는 법이잖아? 꼴찌로 달린다고 해도 결국 달리다보면 골인점과의 거리는 좁혀지니까. 사실 그것을 떠나서... 다른 골인점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 적어도 난 그래."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그는 언덕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바다와의 거리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그는 저 앞쪽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걸어서 오 분 정도 걸릴까. 그 정도의 거리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치아키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기의 언덕 보이지? 저 언덕만 넘어가면 바다야. 그러니까 여기서 아무리 느긋하게 걸어도 십 분. 아무튼 이름과 반? 이치노세 리오 양. 2학년 A반. 그럼 역으로 내가 물어볼까. 이 학생회장의 이름은 뭐게? 그리고 이건 가르쳐주지 않았지만...나는 몇 반이게? 하핫. 맞추면 상품으로 줄 것은 없지만... 음. 그래.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주머니 속에 있는 오렌지 맛 사탕 정도려나. 아. 이 더운 날에는 초콜릿 가지고 다니기도 참 애매해."
이름은 그렇다고 쳐도 반은 아무리 그래도 힘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언덕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점점 거리는 가까워졌을 것이고 완만한 언덕을 살짝 올라가면 또 다시 내리막길이 보이고 그 너머에서 찬란한 황금빛 해변과 바다가 눈에 보였을 것이다.
후루토는 당신의 말을 작게 중얼거리는 것으로 입 안에서 다시 되풀이시켰다. 인연이라거나 하늘이라거나, 한 쪽은 자신이 그걸 끊어내는 입장이고 다른 한쪽에게서는 그것이 두렵게 여겨진 모양인지 일찍이 세계의 이면으로 내쳐졌었다. 그러니 어느쪽이든 멀게만 느껴지는 말이었을텐데. 그것이 실로 그런가 그렇지 않은 가는 둘째치고서라도 살아있는 인간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되니 어쩐지 감회가 새롭다. 그런 그녀는 과연 이나바의 신관이었다. 후루토의 맹하고 가라앉은 눈이 그 소녀를 향해있었다.
"―인번국의 이름을 가진 필멸자여......"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후루토는 다시 한 번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사실 이름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나, 겨우 색이나 외모로만 당신을 구분하던 전에 비해서는 확실한 발전이었다.
"그럼... 제가 이곳을 걸을 수 있게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리고 뒤를 따라, 당신에게 건네진 것은 한 가지 요청이었다.
"실은, 꽤 오랜 시간 이 모래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만. 이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게 되어서... 곤혹을 치르고 있던 차였기 때문에......."
그렇다면 역시 결국 길을 잃고만 것이지 않은가... 사신은 펼친 제 손 끝을 서로 띄엄띄엄 마주치면서 그렇게 말했다. 이미 교내에서도 당신의 도움을 받아 겨우 도서관을 찾아갔었던 그녀다. 계단과 복도를 오가면 될 뿐인 그런 간단한 건물조차 헤매는데 겁도 없이 이런 인파 한 가운데에 떨어지다니, 겁도 없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당신에게 첨언하길.
"......도와주지 않으면 방금같은 사냥꾼들이 또 올지도 몰라요..."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건 또 다른 종류의 협박도 아니고... 후루토는 그렇게 말할 뿐으로, 멍하니 서서 당신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었다.
청포도 주스 한 잔에, 체리콕 하나. 미야나기는 재빨리 머릿속으로 지불할 값을 계산하며 작은 버킷백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미처 지갑을 꺼내는 사이에 순식간에 일이 벌어져버렸다! “어? 아니에요! 제가-” 그녀가 말릴 틈도 없이 케이는 결제를 마쳤다.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는 절차를 밟을 그녀보다 비교적 간단한 제스처로 동전을 꺼냈으니 속도에서 밀린 것이다······. 애플페이 되면 더 빨리 낼 수 있었는데! 미야나기는 멋쪅은 얼굴로 얼른 고개 숙여 인사했다.
“선배한테는 매번 신세만 지게 되네요. 안 사주셔도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주문과 동시에 곧장 과일 가는 소리로 가게는 온통 소란스럽다. 기다리는 동안 스몰 토크를 하며 보낼 심산인지 문득 걸어오는 말에 그녀는 곰곰히 생각하는 투로 대답을 술술 나열했다.
“공연이라고 하면······ 무용 콩쿠르는 여름이 피크니까 사실 지금도 이렇게 놀고 있으면 안 되겠죠? 일단 이번 달은 도쿄에서 한 번. 예무제는 웬만하면 전부 가을에 올려요. 우리 학교는 9월에 해요!”
즐겁게 말하던 표정이 순간 복잡해져 약간 어두워 보였다. 괜히 품에 들고 있던 엄한 모자나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다 말고, 그녀는 은근슬쩍 화제를 케이에게 돌리려 시도했다.
“별일······ 아. 선배는 요즘 별다른 일 없으셨고요? 그러고 보니 선배는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듣고 싶어요!”
별 것 아니라는 듯 말을 받았다. 실제로 그 때는 부스에서 이야기하다가 헤어지긴 했지만, 그 이후로 혼자 축제 구경도 하고 꽃도 하나 사서 신에게 올리며 인사 및 소원도 빌었으니 거기까지 편하게 간 셈이었다. 그런 걸로 치면 케이에게는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었고 더 잘된 셈이기도 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공연 일정을 머릿속으로 기억해두었다. 열심히 하네. 하는 생각을 하며 “기대할게요.”하는 말을 건넨다.
별일은 있었으나 말할 만한 일은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서로 속 이야기를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 공연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이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는 건 좀 정없나?
이번에도 들려오는 엉뚱한 소리에 저도 모르게 소심한 반박을 한다 생명체 뭐시기의 얘기는 또 묘하게 과학적이라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을지도
"익숙한...거였구나."
무미건조한 대꾸다 바다는 좋아하는데 물놀이는 귀찮다라 뭔가 요상한 거 같지만... 그러면서 미카는 받아든 캔음료의 한기를 느끼려는 듯 손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뚜껑을 따서 조금씩 들이킨다 그리고 아예 편하게 벤치에 기대버리기 바다의 풍경도 넋놓고 보게된다 공기가 약간 후덥지근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사람 좋아하는 고양이 같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스쳐지나갔다. 토끼라는 말도 이해는 된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동물이니까 그 점이 닮았을지도 모르지. 리오의 경우에는 거기에 지독한 악의가 껴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었다. 그저 외로움을 많이 타서 '외롭네-'하고 말한다거나 누구랑 같이 있는 것이 좋은 정도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 외로우니까 남들이 자신을 봐줬으면 하는 마음에 스스로를 상처입히고 자기파괴적인 행위를 일삼고 종국에는 상대방을 가해자로 만들어버린다는 점들이었다. 고치고 있지만, 여전한 문제점들.
" 으, 아이자와 선배, 말 많아. 내가 힘들어하는 타입... 하지만 싫지않아. 나도 그런 점은 배우고 싶고.. 그런데 나, 1등으로 달리는 것 보단 꼴찌로 뛰어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응. 1등으로 달려가면 아무도 보이지 않잖아. 차라리 뒤에서 모두를 보고싶어. "
이야기의 요점은 그게 아니었다만. 리오는 머리를 긁적였다. 날이 조금 더웠고 옷 안에 같이 입은 수영복이 조금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가도 어느샌가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이런 사람들은 신기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웃으며 대할 수 있고 인생조언까지 해주는 데다가 금세 친한 아우라를 잔뜩 풍기는 사람들. 가장 대하기 어려운 타입임과 동시에 가장 닮고 싶은 부류의 사람들.
" 정답. 아이자와 치아키. 3학년 B반. "
'너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너를 알아'라는 조금은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아우라를 풍기며 리오는 파치파치- 라는 효과음과 함께 작게 박수를 쳤다가 손가락을 척 하고 뻗어 치아키를 가리키곤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리고 의도치 않게 차갑게 바라보는 눈빛으로 인적사항을 읊었다. 학생회장이니까 지나가면서 많이 봤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