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6 창공은 드넓기에 창공이라 부르니, 손바닥에 가려질 법한 창문 속 하늘이라도 사실 사람을 품고 세계를 담을 만큼 거대하니, 세상에 창공 아닌 하늘은 없고, 대지라 하여 다르지 않다. 오래지 않아 도달한 종 달린 누각은 어쩐지 창공과 대지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는 웃음이 나왔다. 내려다보아도 아름답고 올려다보아도 편해지는 것이다. 본디, 텐키란 하늘의 존재이나 대지를 딛는 자이기에. 그 둘 모두가 가까운 이곳이 썩 마음에 들었는지 미소가 참 부드럽다.
"응. 그렇네."
가벼운 목소리를 내고선 누각 기둥에 몸을 기댄다. 나긋하게 반개한 흰 눈에 어렴풋이 푸른 기운이 스며들어 마치 하늘이 옅보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그것을 눈치챘는 지 바람이 뺨을 스치고 간다. 아마 얼마 남지 않았을 겨울바람은 슬슬 여행길에 오를 모양인지 봄기운을 데리고 왔다. 예년보다 조금 늦다. 땅이 달라서 그런지 환상향이 그런 곳인지, 제가 아는 것보다 봄이 일찍 찾아오더니 올해는 제게 익숙한 계절감으로 오고가는구나 싶다. 허나 그게 마냥 달갑거나 납득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신비로운 곳에는 말썽부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지천에서 슬금슬금 몸을 움직이니. 어쩌면 머지 않아 일어날 큰 장난의 징조가 아닐련지.
허나 그것이 당장에 중요한 것은 아니라 우산은 그냥, 청년을 보며 웃을 뿐이다.
"앞으로는, 자주 찾을 것 같네. 고마워."
그건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창공과 대지 그 사이 어느 경계에 자리한 것 같은 풍경이 참 마음에 든다. 또한 이 우산은 먼 과거부터 이런 것을 좋아했던지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인간의 마을이라던가 축제라던가. 구름에 걸터앉던 산 위에 몸을 뉘이던 해서 바라보던 번성이 참 예뻤다. 달고 쓴맛이 나는 추억은 되돌아보기 꺼려지지 않는다.
"-올해는 봄이 조금 늦어."
연한 미소를 짓던 우산이 누각 바깥으로 다리를 쭉 빼 걸터앉고서 말하는 건, 그냥, 그럴 수도 있다는 예측. 일기예보란 본래 맞기만 하는 것은 아니어서 틀려도 상관은 없다. 허나 그가 하는 예보가 틀린 적은 없었기에.
"그저 그런 금년일 수도 있지만, 이 곳에는 장난꾸러기가 많잖아."
그냥, 부드럽게 말을 남긴다.
"옷이 얇아지는 건 좀 더 나중이 되겠네. 이곳에서 봄 풍경을 보고 싶은데 말이야."
기다리게 되겠구나. 기쁜 일이야. 그렇게 말하며 텐키는 즐겁게 콧노래를 부른다. 짓궂은 장난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오, 이것도 이 곳의 축제다 싶어 그럭저럭 즐기는 우산은 그래도 다치는 사람이 없게, 금년의 봄이 좀 게으른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338 생원 숲을 뒤로 하고 앉으면 눈높이와 조금이나마 더 가까워진 강이 보다 생생한 풍경으로서 펼쳐집니다. 둥실, 한 구석에 나무배가 묶여있지만 결코 평범한 배는 아닐 텝니다. 정상적이라면 이 강에 계속 떠 있을 수나 있을지 참으로 의문스러우니까요. 따라서 앉은 생원을 보며 의민이 히, 하고 풍선 바람 빠지듯 흐리게 웃습니다. "착한 아이네에." 하고 중얼거리듯 말한 것 같았던가요?
"원래 여기는 생生의 끝을 맞이한 죽은것들이 오는 게 보통이야.. 운명이라는 것은- 으응, 결코 벗어나기는 힘든 것이니까아..."
풍경을 바라보는 생원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의민이 타령하듯 말합니다. 강물의 흐름이 기이한 곡선을 그립니다.
"그치만 이따금은 그런 운명을 벗어나는 것들이 있어. 경이롭고.. 신기하지마안.. 분명히 있단 말이징, 그런 존재가."
틀림없이 항상 존재해왔어.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든 말이양.. 하며 의민이 별로 대답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말해나가지만, 어떤 말을 던지느냐 마느냐는 생원의 자유가 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솔직히 지루할 틈이 없었다. 저 강은 몹시 기이해 끝없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한편으로는 몹시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생원이 자제력이 부족했거나 지적호기심에 지금보다 더 미쳐있는 상태였다면 과감히 강에 접근했을지 모를 그런 신비함이 강에는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생원에게 의민의 얘기가 들려온다. 운명이라, 운명. 자신은 지금 실험쥐 신세를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과연 이는 운명을 벗어났다고 표현할 법한 거창한 일일까?
"의문. 대상 의민, 운명 벗어나지 못함. 이곳에 메여있음? 혹은. 운명 벗어남. 땡땡이 중?"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이 강에 붙어있는 이 녀석은 운명에 붙잡힌 것일까 자기 일을 벗어나 땡땡이를 치는 것으로 운명을 벗어난 것일까. 사실 이 의문은 그런 것도 운명인가를 묻고 있다. 그런 것도 운명이라면 자신이 실험쥐였던 것도 운명인 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리스는 여나의 배웅함을 알고, 느끼고 그대로 거닐 뿐 이였습니다. 침묵 속의 고요함 함과 같이, 이쯤에 더 이상 없을 것이지만 그것을 알고자 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그렇게 되는 것이니까요 그 혹은 그녀, 무엇이든 그런 지칭은 별 상관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존재하고 존재했었다는 것만 알고 있다면 충분합니다. 비록 타인에게 내보일 수 없는 것일지라도 마치 둘에게 매어진 약속과도 같은 그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아리스는 제자리에 서서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 보았습니다. 바탕이 되는 그 푸름과 부드러운 백색이 보입니다. 오늘 날은, 한 때의 깊은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도 많아질 것 이겠죠
아리스는 적당히 않기에 그럴 듯 해 보이는 곳에 않아서는 잠시동안 이러한 고요를 사색하듯 즐기고는 있다가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다음 행선지를 정하기로 했습니다. 이대로 다시 자택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모처럼 이라고 생각되는 만큼, 향림당에 한번 방문하는 게 어떨지 떠올랐습니다. 안면이 있는 만큼 거기에서 매듭에 엮을 무언가를 찾아볼 수도 있겠죠
>>347 "남들보다 조금, 날씨에 예민해서 지레짐작 하는 것일지도 몰라. 아무렴. 그 편이 나은 걸."
약간의 웃음거리가 되는 편이 낫다. 작년과 약간 다를 뿐인 것이 낫다. 정답이 늘 옳은 것은 아니며, 사람들이 고심하는 내일의 날씨는 열 중 대여섯은 틀리기 마련이다. 장난꾸러기들이 부리는 짓궂은 일들은 이변이라 불린다. 다소 삿된 것 같은 어감 따라, 그것들은 다소의 희생을 만들어내기도 하기에 축제다 여기는 우산도 가능한 좀 드물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싶다.
"곡우까지 오지 않으면 그건 좀 심하겠지."
봄이 늦게 찾아오는 이변이라 하여 무난한 건 아니다. 봄꽃을 즐기지 못한다면 슬프다. 이 자리와 풍광이 마음에 든 그는 적어도 올해의 사계는 무사히 담고 싶었다. 지금 사진기가 없다는 사실이 다소 아쉬울 정도이다.
"나는 연약한데?"
사락거리는 옷자락으로 입가를 가린 그는 곧 살랑살랑 눈웃음을 지었다. 다른 곳은 다 겨울인데 유독 여기에만 부는 봄바람은, 봄이 달려와서가 아니라 우산에 맺혀있던 것이 봄이라 그런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 그는 마주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350 아리스 요괴의 수해의 한적한 곳으로 이동하다보면 찾을 수 있는 것이 향림당입니다. 아직 꽃 피지 않은 복숭아 나무가 촘촘히 심겼고, 자못 안락한 분위기의 작은 건물 속으로 들어가면 차를 홀짝이며 책을 읽던 적각이 아리스의 등장에 시선을 들어올리고서는 슬금 웃으며 반겼죠.
"이런, 모처럼의 독서 시간인데 방해하다니."
참고로 '모처럼'은 아닙니다. 저번에도, 그 저번에도 독서 삼매경이었으면서 어찌 저렇게 시침을 뚝 뗄까요.
"그래, 나이프라도 추가로 구하기 위해 들르셨소? 아쉽구려, 아리스 공을 위한 나이프는 당장 없거늘..."
쯧쯧, 능청스럽게 혀를 차며 적각이 다시 페이지 위를 내려다보며 슬쩍 책장을 넘겼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