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30분 기다렸는데 안 오셔서 그냥 갈게요. 늦는다고 말씀해주셨으면 좋았을텐데... 저도 원래 오늘 했어야 할 다른 할 일을 미루고 들른 거라서요. (주로 토요일에 놀고 일요일 낮~오후는 집안일하는 편) 이렇게 잠수타지 않으셨으면 요즘 일상 잘 안 돌아가고 또 망념을 낮추셔야 하는 처지이신 것도 이해하니까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는데요, 이렇게 되니 솔직히 조금 기분이 상합니다.
제 쪽에서 먼저 일상을 구했는데 사라지신 상황이었으면 뭔가 갑자기 일이라도 생겼겠거니 했을텐데요...
situplay>1596763073>248 저 이때, 새벽까지 게임하다 뻗은 동생 깨우고 밥 챙겨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 뒤엔 밤새 밀린 설거지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식구가 많은 건 아닌데 식구들이 야식을 많이 먹어요...) 그래서 '누군 일요일에 마냥 한가한 줄 아나...'싶어서 약간 기분이 상할 듯 말듯 했었어요. (그래서 situplay>1596763073>250 이런 반응을 했었던 거고요.) 그래도 저건 제 개인적인 사정이고 저때까진 기분이 크게 상한 건 아니니까 넘어가려고 생각했는데...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땐 그냥 놀러온 게 아니라 다른 상대적으로 덜 급한 할 일을 미루고 온 것이었는데 늦으면 늦는다 말도 없이 사람을 마냥 기다리게 하고 있으니 기분이 상했던 겁니다.
빈센트주의 시간이 소중한 걸 아시면 다른 분들의 현생도 좀 배려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흥입니다.
빈센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그리고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성질과 원소(불, 물, 바람, 얼음, 그 외 기타등등)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의 성질을 하나하나 적고 있었다. 예를 들어 불은 잡아먹고, 피어오르고, 데우고, 밝히고, 그 외 기타등등하고... 물은 적시고, 띄우며 또한 가라앉히고, 살리고, 생명의 기본이 되고... 같은 식이었다.
"..."
빈센트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적다가, 뇌에 과부하가 걸리는 듯한 기분을 다시 느끼며, 한숨을 쉬었다. 최근에 너무 혼자서 수련에만 매진하느라 다른 이들과는 말 한마디 안 섞었고, 그것 때문에 망념이 끔찍하게 넘쳐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단순히 자신이 아는 것들을 브레인스토밍 형태로 적어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빈센트는 대화와 교류조차 필수적인 이 직종이 참 손이 많이 간다고 생각하며, 특별반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대충 누군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하나도 몰랐다. 발걸음 패턴이 이상해서 뭔가 했었더니 왼손과 오른손으로 5개의 공을 저글링하고 있었고, 그 저글링을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태식이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으랴.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몸만 큰 아이 기질이 강한 빈센트오나느 다르게, 진중한 어른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하니까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보통 저 여기 있지 않던가요?"
그리고, 빈센트가 특별반 교실에 앉아있는 것이 마치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이라도 되는 것인양, 대체 왜 여기 있느냐고 묻는 걸 보면서 빈센트가 되물었다. 그간 빈센트가 그렇게 여기를 안 왔나? 확실히 요즘 좀 소홀하긴 했는데 그 정도였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빈센트는, 잠시 생각해보니 태식의 저글링도 이상해서 물었다.
"뭐, 그건 그렇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예 연관도 없는 두 마도를 동시에 발동하는 기예는 못 익혔지만, 그걸 익힌다면 더할 나위 없이 전투 측면에서 훌륭한 마도사가 될 수 있겠죠... 태식 씨도 그럼... 흠. 상상이 잘 안 가는군요."
빈센트는 순간, 양 팔의 근육이 초월적인 수준, 인간을 넘어 고릴라 같은 덩치 큰 인원을 가져와도 감히 빗댈 수 없는 수준에 이르러서, 근육이 빵빵하게 커진 태식이 한 손으로 대검을 붕붕 휘두르며 적들을 써는 것을 생각했다. 빈센트는 자기 옆에서 태식이 그렇게 싸우는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웃음이 났지만,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것만큼 공포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아무튼, 수련장이나 어디 이상한 곳에 있었다는 건 동의해야겠군요. 저도 돌이켜보니 요즘 교실에 왔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생각해보면 그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점 분석은 수업을 잘 듣다보면 나온다고 들었는데 빈센트는 여태까지 흔적도 못 봤으니. 누가 알랴, 계속 수업을 파다보면 멀티 캐스팅에 대해 가르쳐주거나, 최소한 멀티 캐스팅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이라도 가르쳐줄지. 그렇게 생각하니, 빈센트는 그것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빈센트는 하고 있던 일이 있었다.
"어쨌든, 말씀하신 대로 자주...까지는 아니더라도 열심히 하려고 교실에서 칠판에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루는 마도는 불, 물, 얼음, 바람 등을 다루는 건데... 제가 다루는 그것들의 성질을 생각해보는 것이죠."
빈센트는 자신이 적은 것을 보여준다. 원소별로 그것의 성질들이 나와 있었다. 예를 들어 번개면 일순간에 사라진다던지, 도체를 따라 전달된다던지, 물은 섞인다던지 뭔지... 빈센트는 그러다가, 태식에게 조심스레 의견을 묻는다.
"혹시 바람의 근원적인 성질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뭐가 있을지 생각나는거 혹시 있으실까요?"
"제가 그런 걸 배웠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같은 불이라도, 불의 피어오르는 성질과 잡아먹는 성질을 조합하면, 잡아먹으면서 마구 피어오르는 더욱 심오한 불의 세계를 알 수 있다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겁니다. 그렇다면, 같은 불도 그 성질을 나눠 중첩할 수 있다면, 다른 원소나 자연 현상도 결합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요."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한 손에는 정전기를 딱딱 튕기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작은 촛불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두개를 결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지금 빈센트의 망념은 한계 상태였으니. 빈센트는 웃으면서 말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번개의 일순 나타났다 사라지는 특성과, 불의 위력을 조합하려는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사실 실패했다기보단 시도도 못 했죠. 망념이... 망념이... 으윽!"
빈센트는 그렇게 말하고, 바람을 자연 현상이 아닌 인간관계로 접근하는 농담을 보고 껄껄 웃는다.
"그거 괜찮군요. 자유롭다라... 불륜도 개인 자유 존중이 극단화되면... 아니, 내가 왜 이거에 진지해진담. 하여튼 자유, 잘 받아적겠습니다."
"뭐... 현실이 아닌 글로 된 이야기라면 아름다울 수도 있겠죠. 아름다울 '수도'..."
빈센트는 살면서 들은 온갖 불륜들의 끔찍한 결말이나 우스운 전개를 생각한다. 간단하게는 가정이 해체되는 것으로 시작해서, 끝에는 치정 살인으로 끝나거나 불륜 상대와 양가정 모두가 서로와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옛날 영화에서 3명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대치하는 것 같은 꼴이 되기도 했지. 그런 걸 생각하면, 아름답지는 않을 것 같지만...
"유동성."
빈센트는 그러다가, 태식이 슬쩍 흘리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것을 적는다. 한 곳에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이걸 적용할 수 있다면, 뭔가 엄청난 게 나올 것 같았다. 유동성은 곧 예측의 어려움을 의미했고, 예측의 어려움은... 적에게는 부정적 변수요, 나에게는 긍정적 변수...가 아닐까?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아무래도 마도사는 제가 아니라 태식 씨가 되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적는다. 부드러움과 날카로움, 이것 역시 유동성이라는 범주 안의 소분류로 묶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적어두었다. 한여름 나무그늘 밑에서 솔솔 불어오는 바람의 부드러움과 시원함, 그리고 겨울의 혹한과 결합하여, 이대로 가면 신체말단이 다 뜯겨나가는 것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의 바람... 잠깐, 결합? 겨울의 혹한과 빠른 바람의 결합?
"...또 감사드립니다. 한 가지가 더 생각났어요."
생각해보자. 단순히 추운 것에서 국한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영하 10도라도, 바람이 안 부는 날은 그럭저럭 바깥 활동을 짧게나마 할 만하다. 하지만 영하 10도에 바람이 세게 불면, 그 때는 고작 영하 10도밖에 안 되는데도 세상이 영원한 겨울에 잡아먹혀 끝장날 것만 같다는 착각에 빠진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톡톡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