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오해를 할 것 같다고는 생각했지만요, 이렇게까지 당황할 거라고는 생각 안 했습니다. 제게 화를 내면 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많이 당황하신 듯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살펴보는 모습에 무슨 말을 하지 못 하다가요, 저를 빤히 바라보니 힘겹게 입을 열었어요. 네잎 클로버를 꺾었다고 학생회실에 끌려가는게 아니라, 학생회장을 괴롭혔다고 끌려갈 것 같습니다. 손수건으로 열심히 손을 닦는 모습을 보니 확신이 들어요. 정말로 학생회장 선배님의 손이 더럽다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억울해하기에는 자업자득입니다... 학생회장 선배님한테 사과할 때는 어떻게 사과해야하는 건지 고민해요. 사탕과 함께 주는 사탕 같은 걸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진 않단 생각이 들어요.
“찌른 적 없습니다. 찔리는 부분이라도 있으세요?”
어떡하면 좋을까요............ 방금 분명 ‘으억!’ 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리고 선배님은 가슴에 손을 올리고 몸까지 떠셨습니다. 제가 한 말들이 크게 상처가 된 게 분명해요. 마음의 상처에도 반창고 같은 걸 붙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차라리 반창고를 한 박스라도 사다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까요. 학생회장 선배님이 저에게 잘못한 일이 뭐가 있겠어요. 오히려 저번에 하루노하나 마츠리에서 마주쳤을 때는 길도 찾아주셨고, 사탕도 주셨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때 감사 인사도 안 했어요! 키즈나히메님에게 벌을 받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모시는 신사 집안의 아이를 괴롭혔다고 혼내실 지도 몰라요. 자신을 모시는 신사를 블랙 기업이라고 했다고 혼내실 지도 모를 일입니다. 굳이 키즈나히메님이 혼내시지 않아도, 지금 당장 학생회장 선배님을 볼 수조차 없지만요............ 학생회장 선배님이 절 빤히 바라보면 볼수록 양심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에 고개를 바로 들 수가 없어요.
“......이놈한다고 한 건 선배님인데요.”
이상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선배님은 금방 다시 웃고 있었고, 네잎 클로버를 보고도 딱히 혼내시지 않습니다. 벌점도 주지 않는다고 해요. 학생회실에 끌려가는 게 아닌걸까요? 네잎 클로버를 꺾는 건 화단을 어지럽힌 게 아닌 걸까요? 심지어 선배님도 직접 네잎 클로버를 찾아보려는 것 같습니다. 집 뒷쪽에 클로버가 많다는 이야기는 조금 부럽다고 생각하다가요, 고개를 도리도리 젓습니다.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일단 다시 쭈그려 앉고, 수첩도 잘 정리합니다. 같이 네잎 클로버를 찾아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인사를 하고 가야하는 건지도 모르겠어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랬더니 선배님이 네잎 클로버를 찾는 걸 구경하게 됐습니다. 근데......... 학생회장 선배님, 네잎 클로버 잘 찾아요!
“학생회는 숨기기랑 찾기만 해요?”
QR 코드 이벤트도 그렇고요, 네잎 클로버도 그렇고요. 숨기기랑 찾기를 제일 잘 하는 사람이 학생회장이 되는 걸지도 모릅니다. 전 내내 하나 밖에 못 찾았었는데, 두개나 찾은게 신기해서 쳐다봅니다.
뭐지. 이 후배. 약간 청개구리 과인가? 라고 치아키는 순간 생각했다. 손이 더러운데 그녀의 손 이야기가 아니면 자신의 손이지 않은가. 이미 집에 갔을 자신과 같은 반 학생이자 자신의 친구의 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닐테니까.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아무래도 자신은 뭐가 되었건 약간 원망의 대상이 되었거나 미움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치아키는 판단했다. 그야 이미 QR코드 건으로 인해서 학생회장인 자신에게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오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설마 그런 대참사가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분명히 골고루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그야 나쁜 짓을 하면 이놈하는거지 그게 아닌데 이놈할리가 없잖아? 아니면 후배 양은 내가 지금의 후배 양의 행동을 보고 이놈! 했으면 좋겠어?"
키득키득 웃어보이면서 치아키는 일부러 '이놈'이라는 부분만 살짝 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마치 꾸중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장난이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이내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꽃을 꺾거나 그랬다면 조금 말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풀의 일종인 클로버를 꺾는 것 정도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풀을 아예 싹 밀어버린다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적어도 네잎클로버를 찾는데 풀이 다 뽑힐 일은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네잎클로버를 두 잎 찾아내고 살며시 꺾어서 제 손에 올렸다.
"그렇다기보단 내가 잘 찾는 거 아닐까? 나 어릴 적엔 상당히 사고뭉치였거든. 말썽도 많이 부리고. 그래서 부모님 속도 많이 썩이고 그랬어. 지금이야 철들어서 그러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감각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 난."
키득키득 웃어보이면서 치아키는 이내 제 손에 있는 네잎클로버 두 개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를 향해 그 네잎클로버를 내밀었다.
"가질래? 난 가지고 있어봐야 쓸 곳도 없어서. 지금 네잎클로버가 필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후배 양 같거든. 키즈나히메님을 모시는 신사의 아들이라고 해서 내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알아? 내가 줬다고 키즈나히메님이 살짝 인연 관련으로 행운을 주실지."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이 모습을 만약 어딘가에서 보고 있다고 한다면 슬쩍 신의 힘을 사용할지도 모르는 이였으니까. 제 할머니가 어떻게 행동할진 모르겠지만 그것까지 자신이 다 알 수는 없고 안다고 해도 말할 수 없기에 그는 그저 그렇게만 이야기했다.
"정 다른 이유가 필요하다면 놀래킨 사과의 뜻. 사탕보다는 이게 더 낫잖아? 아닌가? 사탕이 더 낫나? 하핫."
점심시간이 이제 막 중반에 들어섰을 무렵 미카는 여전히 교내를 떠돌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목적이 명확했는데 제가 지나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중이다 방금 전까지 아무 생각 없이 복도를 거니는 와중 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이 사라졌다는 걸 알아버린 거다 미카는 곧바로 분실물 되찾기 작전에 나섰다 물론 수중에 돈이 많지야 않지만 그거라도 없으면 아무래도 곤란하니까
다시 2학년 복도에 들어선 미카는 복도를 어슬렁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쪼그려 앉아서 바닥을 유심히 살펴보기도 하고 누가 보면 수상하다고 생각할 거 같은 모습... 좀 부끄럽기야 하지만 체면보다는 지갑이 더 중요하지
아아 젠장. 오늘따라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잠이 솔솔 올 것만 같다. 이런 불상사를 우려해서 그간 잠은 부족하지 않게 넉넉하게 자 왔고, 워낙에 체력이 쌩쌩하니 평소에는 낮에 싸돌아다녀도 쉬이 지치지 않곤 하였지만 가끔은 이렇게 예외적인 날도 오는가 보다. 태생적으로 맞지 않는 짓을 오래 하고 있으려니 한 번쯤 이런 일 생기는 것도 이상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낮보다는 어둑하게 저문 한밤이, 화사한 한낮의 햇살과 양기 넘치는 장소보다는 침침하게 그늘진 음지가 걸맞는 신이었으니까. 제아무리 신의 반열에 든다 하여도 근본은 음귀로 비롯하였으니 오늘처럼 햇살이 좋은 날에는 절로 으슥한 데로 들어가 뻗어버리고 싶어지는 것이다. 비량은 그 본능에 충실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놈의 학교는 왜 이렇게 잘 지어 놓은 건지! 거, 환상 없는 현실의 K-고등학교처럼 나무도 없고 삭막한 감옥처럼 만들어 놓으면 안 되냐고. 어딜 가나 화사하고 볕 잘 들어서 성장기 학생들의 정서에 아주 좋을 것만 같다! 어떻게 된 학교가 시설이 너무 좋아서 우중충한 장소가 없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 뒤뜰에 우거진 나무 밑으로 가 풀밭에 아무렇게나 벌러덩 굴러 버렸다. 그나마 여기는 나무가 그늘져 아늑했다. 어라, 이러고 있으려니까 왠지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 있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생각이 잘 안 나는 걸 봐선 중요한 일은 아닌가 보지만. 그늘 아래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하고 좋다. 피곤하지만 아직은 눈 감지 않아 의식은 또렷했다. 고요한 순간의 정취를 느낄 찰나, 어느 곳으로부터 다가오는 인기척에 그는 슬쩍 고개만 들어 그 편을 내다 보았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쪽도 마냥 평범한 인기척은 아닌 듯하니 피로한 와중에도 궁금증은 생기기 마련이라.
점심시간이 끝난 5교시, 더군다나 수학 수업. 정말 졸기 딱 좋은 조건이라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창문가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 아래 있다 보면 몸도 마음도 노곤해진다. 거기에 단조로운 목소리로 이어지는, 재미라곤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수식 설명이 더해지면 수면실이 따로 없다. 안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수업을 따라가려 노력하긴 하는지 눈을 감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쓰고는 있다. 하지만 고개가 자꾸만 떨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잘 안되는 모양이다. 필기하려 잡았던 펜은 이제 의미불명인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그때다. 수업 듣기 싫은 학생들의 염원이 닿기라도 했는지 종소리가 학교를 뒤덮는다. 마치 낮잠-좀비 병에서 깨어나는 백신이라는 맞은 양, 학생들은 하나둘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안즈도 마찬가지다. 비몽사몽인 얼굴로 칠판을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흔든다. 그제야 정신이 났는지 눈동자가 또렷해진다. 시선은 자연스레 안즈의 책상 위로, 그러니까 교과서로 옮겨갔다.
"으악, 뭐야!! 또 졸면서 필기했잖아...!"
그래, 낙서인지 뭔지 모를 것으로 뒤덮인 교과서 말이다. 안즈는 머리를 붙잡고 그 의미불명의 글자들을 해독하고자 노려보았으나, 결국 포기하고 책을 덮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어떡하겠어! 가벼운 자기합리화가 따라붙는다. 안즈는 허리를 폭 숙여 책상에 볼을 댔다. 눈동자는 제 옆에 앉은 사람을 향한 채다.
"어휴, 진짜 지루했다, 지루했어..."
그렇지 않아? 무언의 질문이 들려오는 것 같다. 안즈는 상대의 동의를 구하듯 눈을 깜박거린다.
점심시간이다! 학교에 있는 시간 중, 음, 아니다. 정정한다. 학교의 정규 일과 중에서는 제일 즐거운 시간이다! 점심 도시락을 다 해치운 안즈는 즐겁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딱히 목적지는 정하지 않았다. 부실에 가서 춤 연습을 해도 좋고, 오랜만에 도서관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운동장을 산책해도 좋을 것 같고? 할 만한 일은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데도 아직 못 골랐다는 이야기는, 썩 마음에 들어차는 선택지가 없다는 말도 되겠지. 그런 이유로 안즈는 교내를 떠돌고 있다.
"저기, 혹시 뭐라도 잃어버린 거야?"
그러니 무언가를 찾듯 복도를 떠도는 당신에게 말을 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할 일 없는 사람에게 당신은 꽤 흥미롭게 보였으니까.
위협은 보통 모두가 무방비할 때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켜보는 내내, 제대로 잠을 자 본 적이 없었을까. 뜬 눈으로 보내던 시간이 오래되며 버릇처럼 굳어 버렸으니 미유키는 인간의 몸으로 있는 지금에도 밤에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시간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 누워 보낼 뿐 잠은 거의 자지 못했으며, 잠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깊은 잠은 되지 못했기에, 낮마다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피로감에 짓눌리고는 했다. 그래서 잠깐 눈을 감으면 그대로 졸아버릴 듯, 달콤한 잠이 유혹할 때마다 미유키는 그 나무 그늘을 찾았다. 햇빛 아래는 따뜻했으나, 쟁글거리는 백색의 빛 무더기 아래에서는 눈을 감아도 빛이 보였기에 잠을 이루기 힘들다는 것과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조용한 곳에 숨어 잠을 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뒤뜰의 나무 아래는 제 고향이었던 우거진 숲의 키 큰 나무를 떠올리게도 하니, 잠을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완벽한 장소였을까.
"햇빛이, 너무 쨍해서요."
그렇지만 오늘은 다르다. 자신이 누우려던 그 자리에는 먼저 온 다른 이가 누워있다. 그에 미유키는 그를 살피듯 물끄레 바라본다. 몸을 쭉 뻗고 누운 그의 키는 커 보이니. 저와 비슷하거나, 저보다 커 보였을까. 그 점 말고도,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미유키는 자신과 같은 신이라는 것을 느낀다. 그러며 물음에 답하니 졸린듯한 목소리다.
"그리고 원래, 내 자리기도 하고요."
이어 미유키는 짧게 하품을 내쉬며 말하고서, 졸음에 멍한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비킬 건지, 말건지 지켜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