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하나가 교정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눕는다. 학교에 더이상 볼 일이 없어진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그림자 밟아가며 집으로 향하는데 한 사람만 물끄러미 그 뒷모습만 바라보다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뜬다. 물고기 뻐끔거리는 어항을 뒤로하고 작게 꾸며져있는 정원 하나 거치면 학교 뒤편에 외진 자리가 하나 난다. 짐승의 냄새가 난다며 찾아오는 이 흔치 않은 곳인데 오늘은 다른날과 달리 손님이 하나 있다. 짧지 않은 붉은 머리, 고개를 푹 숙이자 얼굴을 다 가린다. 시선의 끝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이 주변에 볼만한 것이 우리 안에 토끼 뿐이기 때문이다.
"저기요ㅡ 여기 토끼는 학교 소유라 잡아먹으면 큰일나요."
예의 없이 인기척 없이 다가간 것은 놈의 짓궂은 장난일까. 혹여나 뒤 돌면 앳된 얼굴의 신이 목소리만큼이나 성큼 다가와 한걸음 차이 두고 서있다.
학교 뒷편의 토끼 사육장 미카는 종종 여기 들러 토끼들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수업이 끝난 방과후 시간에 학교에 남아 즐길 수 있는 몇 안되는 낙이었으니 오늘도 토끼장 앞에 쪼그리고 앉아 토끼들을 관찰한다 코를 킁킁대고 입 오물거리며 귀를 쫑긋이는 토끼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절로 편해진다 그렇게 넋놓고 있었으니 예고 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쭈뼛댄 건 어쩔 수 없다 딩황한 낯으로 몸을 홱 돌려보니 어떤 낯선 선배가 서있었다
>>874 아앗. 꼬리를 귀찮아한다니. 저라면 오히려 꼬리를 꼬옥 끌어안고 싶을 것 같은데! ...그 와중에 죽일 수 있나..라니.. 어. 상대가 신이라고 한다면 죽일수도 있긴 하지요? 신이니까요. 으앗... 시판초콜릿이라니. 하지만 준다는 것이 어디인가요! 그게 중요한거지!
"우왓ㅡ 그런 매서운 눈으로 보면 상처라고요. 토끼같은 이 선배님도 귀엽게 봐주면 안되나~"
하며 반달같은 눈웃음으로 기어코 철장 너머에서 얼굴을 비집고 들이민다. 문 열리는 소리 들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 너머에 들어간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신출귀몰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겠다. 도르륵 눈 굴려보면 저 옆에 우리 문 잠가놓는 자물쇠가 풀려있음을 알 수 있다. 사료 챙겨주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 토끼들이 하나 둘 자리 옮겨 놈을 뒤따른다. 상황이 이러니, 토끼우리에서 누가 더 많은 인기를 가지고 있는지 자명한 상황. 미카 근처를 배회하던 토끼들이 매정하게 등을 보일뿐이다.
"소년, 인기가 참 없으십니다."
사료통을 채우며 놈이 히죽 웃는다. 그러고는 보란 듯이 "많이 많이 먹고 쑥쑥 크세요."하며 토끼들 틈사이에 자리잡아버리는 게 아닌가. 구태여 '그래야 나중에 먹기 좋게 크지 않겠어요?'따위의 농담은 덧붙이지 않은게 불행 중 다행이다. 쪼그려 앉아 제 머리카락만큼이나 하얗고 복실복실한 털을 쓰다듬는다. 애초에 놈이 바라던 것은 토끼들의 반응이 아니니 토끼들은 누군가 저를 만지고 있다고 느끼지도 못할 것이다. 그 반응을 대산할 사람은 철장 밖에 있어서... 반투명한 철장이 지금만큼은 선명한 경계를 긋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경계를 뚫고 미카를 빤히 쳐다보는 시선만이 철장을 자유롭게 오가고 있었다.
"들어오시렵니까, 소년? 원하시면 못해드릴 것도 없는데ㅡ"
놈이 가볍게 운을 뗀다. 미카의 반응에 따라 화해의 손길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불화이 시작일 수도 있겠다.
아이자와 치아키의 오늘 풀 해시는 신이라는_존재가_있다면_어떤_소원을_빌고싶냐는_말에_자캐의_대답은 A.치아키:....... A.치아키:....... A.치아키:아니. 난 안 빌래. 빌었다가 무슨 일이 생길까봐 그게 무서워. (시선회피)
자녀가_생긴다면_자캐가_자녀에게_가르칠_것은 A.신에 대해서. 그리고 신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너는 키즈나히메의 핏줄을 이은 이라는 것에 대해서. 그 외에는 기본적인 예의라던가 예절이라던가 그런 것을 가르칠 것 같네요. 추가적으로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야 하는 마인드도 포함해서!
자캐를_캐붕_시켜보자 A.치아키:...뭐야? A.치아키:...학생회 일 때문에 바쁜데. 그래도 5분 정도면 시간을 내줄게. 말해봐. A.치아키:5분이나 시간을 쓰는 거니까 유익한 말이길 바랄게.
>>888 ㅋㅋㅋㅋㅋ 아닛. 흑막인 거 들킨 것 치고는 너무 해맑잖아요! 하지만 저런 캐릭터가 엄청 무서운 법이에요! 와. 비둘기를 잡아서..도망쳐! 비둘기야!! 오구치는 정육점으로 가서 생고기를 먹도록 해요! 뱀파이어면! (어?) 아무튼 요리를 좀 하는군요. 와! 일등 신님이다!! 요리 잘하면 그게 최고인거죠! 역시!
>>891 ㅋㅋㅋㅋㅋ 바로 그거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치아키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긴 하지만 딱히 인연이나 사랑이나 그런 쪽의 소원을 특히나 빌지 않아요.
이 사람, 농담이 아니라 본인이 천육백 살이라는 걸 심각하게 피력하고 있다. 진심으로 술김에 자기가 천육백 살이라고 믿고 있는 거야······. 이게 주정이라면 참신한 주정이었다. 만취한 자를 말로 이기려 드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나 메소드로 나이든 노인을 제법 그럴싸하게 흉내내다 말고, 이번에는 꼬마애나 할 법한 유치뽕짝 허세를 부리고 있으니 이거 참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고민된다! 결국 그녀는 열심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대며 건성으로 ‘네, 네’ 하고 맞장구나 치기로 했다.
“증거가 있어서 정말 부럽다. 나도 그 증거라는 거 제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
아니나다를까 숙취해소제의 효과는 거의 미미했던 모양이다. 걱정한 대로, 주소는커녕 웬 낯선 발음의 의미 모를 단어를 자랑스레 읊는 모습을 보자니 없던 할 말마저 무력하게 사라진다. 나 이 사람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을까 엄마 보고 싶다······. 그나마 가는 길은 알고 있다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원. 그리고 전술했듯 술 취한 사람을 앞에 두고 방심하는 건 금물이다. 왜나하면, —이렇게 잠시 한눈판 사이에 대뜸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팝콘처럼 튀어나가는 린을 보며 미야나기도 덩달아 죽어라 뛰었다.
“자, 잠깐만! 좀 천천히 가! 그러다 또 넘어져.”
뒷꽁무니를 잡으려 달린 덕에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아무리 체력이 좋다지만 이런 상황은 너무 가혹하다. 차라리 작품을 세 번 하고 말지. 아니, 에샤페를 오백 번 하고 말지······. 이만한 취객을 하루에 몇 번도 더 상대할 경찰들이 괜스레 존경스러워 그녀는 측은해진다.
“근데 넌 일본 사람이 아닌가 봐. 아니면 혼혈?“
오디오가 비어 또 돌발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미야나기가 잽싸게 말을 걸어 관심을 돌리려 시도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뭐라도 떠들 주제가 끊임없이 생각나면 좋을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