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잇쨩에게 비밀투성이입니다. 이것도 비밀이고, 저것도 비밀이고, 그것도 비밀이에요. 무엇 하나 쉽게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잇쨩은 쉽게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해요. 상냥한 잇쨩의 소원을 이루어주고 싶은데 저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니까요. 같이 소원을 비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어요. 가만히 눈을 깜빡거립니다. 말을 하는 건 다시 주워담을 수 없으니까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 좋아요. 하지만 상대방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도 안 됩니다! 숨을 흡 삼켰다가, 잠깐 멈추고, 조용히 내쉽니다. 잇쨩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 크기를 조절해요.
“...같은 소원이 두개면 하나짜리 소원보다 들어줄 확률이 높을 지도 모르니까요.”
궁금하다고 말하는게 더 나았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잇쨩이니까, 조금 더 마음 그대로 이야기해도 괜찮을 거에요. 꼬집어도 좋다는 말은 흘러넘기려다 말고, 꼬집는 대신 찌르기로 합니다. 잇쨩은 저라면 괜찮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제가 정말 싫은 짓을 해버렸을 때도 그렇게 말할까봐 조금 앞선 걱정도 들어요. 손가락 끝이 잇쨩의 볼을 콕 찔렀다가 떨어집니다. 손톱에 찔리면 아플테니까 그 아래 동그란 손가락 끝으로 찌르도록 조심했어요.
“그러다 넘어지면 안 일으켜줍니다.”
길을 걸으면서 휴대폰을 하는 건 위험해요! 팔짱을 끼고 있으니까 제가 잘 붙들고 있으면 안 넘어질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잇쨩의 칭찬 세례에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같이 넘어져버릴 수도 있는 거고, 꼭 넘어지지 않더라도 어디에 발이 걸려 휴대폰만 놓쳐버린다거나 모르는 사람과 부딪힌다거나 할 지도 몰라요. 칭찬은 듣기 좋지만,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기쁘지만 부끄럽습니다...
“그 다음에는 잇쨩이 하고 싶은 거 해요.”
노점들을 돌아다녀도 좋고, 꽃놀이를 해도 좋아요. 무언가를 하는지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하는지도 많이 중요하니까요. 신님한테 인사를 드리는 건, 신님들을 많이 알고 있으니까 생각이 나서 그래요. 옆에 있지 않아도 목소리가 들린다고 하니까요, 그런 얼굴들이 생각이 나서 모르는 신님에게도 인사를 드려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인사를 하자마자 소원을 빌면 괘씸할 지도 모르지만요...
“잠깐만요.”
잠시 잇쨩과의 팔짱을 풀었습니다. 예쁜 벚꽃을 찾으려면 팔짱을 끼고 있는 채로는 불편해요. 잇쨩이 말한 나무 쪽으로 갑니다. 커다란 벚나무 아래에는 벚꽃잎도 많이 깔려 있어요. 길이 분홍색이고, 위로 고개를 들어올리면 하늘도 벚꽃나무로 가려져서 보이지 않습니다. 온통 분홍인 세상에 쭈그려 앉아 제일 예쁜 벚꽃을 찾아요. 조금 세심하게 살펴보면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뿌리 즈음에서 꽃송이를 주울 수 있습니다. 입바람으로 호 불어 먼지를 날립니다. 잇쨩에게 다시 돌아가서 보여줘요. 머리장식 옆에 꽂으면 됩니다!
학생회실에 자리를 잡고 앉은 치아키는 가만히 자신에게 온 서류를 확인했다. 여러모로 문제를 일으키는 성향이 있고 벌점이 쌓였기에 여기에서 봉사활동을 시키라는 그런 내용의 서류를 바라보며 치아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경험상 보통 이런 경우는 봉사활동을 시켜도 많은 것을 기대하기 어려운 탓이었다. 적당히 정리라도 시키고 보내는 것이 좋을까. 괜히 학생회 업무를 잘못 건들면 더 복잡해지니까. 그런 생각을 하나 딱히 상대에게 편견을 가질 생각 따윈 없었다. 애초에 학생회로 봉사활동을 오는 것도 학생회의 요청이 아니라 교사가 마음대로 보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정말 곤란하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치아키는 우선 서류를 덮어뒀다.
아무튼 슬슬 올 시간이 된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잠시 문 쪽을 가만히 바라봤다. 만약 노크 소리건 그냥 문이 드르륵 열리건 치아키는 웃으면서 손을 가볍게 흔들었을 것이다. 당연히 들어오는 이에게.
"안녕. 안녕. 오늘 봉사활동을 온 와타누키 미카 군 맞을까?"
와타누키 미카. 일단 서류에 적혀있는 것은 그런 이름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와타누키라는 성을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참 신기한 우연도 다 있다고 생각하나 크게 관심을 가지진 않으며 치아키는 어깨를 으쓱했다.
화들짝 놀란 얼굴을 보며 케이는 작게 쿡쿡 웃었다. 무대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소녀였기에 더더욱 재미있기도 했다. 케이가 사에의 생각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사에가 생각하는 ‘건실’ ‘모범’ ‘순진’은 전혀 맞는데가 없는 신이었다. 이 케이라는 여우신은... 휴가를 나온 뱃속에 능구렁이를 키우는 직장인에 가깝단 말이다. 게다가 이미 부스 안을 대충 둘러봤을 때부터 이자카야 같은 분위기라는 것도 알았고. 꽤 술도 잘 먹는 편이다. 지금은 미성년자이기에 마시지는 않지만.
마지못한 얼굴로 뻣뻣하게 부스 안으로 들어가는 후배님의 모습을 보며 누가 그 무대 위의 발레 소녀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할까, 하며 케이는 속으로 웃음을 참았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전국 무용과 행사 관례구나. 학생들이 하는 곳인데 건전하지 않을 수 없죠.”라며 사에의 말을 순순히 받아준다.
이자카야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공연 포스터도 주의깊게 살펴보고 발레 의상과 슈즈도 유심히 본다. 왜냐하면 무대 위에서 본 것과 가까이 살펴보는 것은 확실히 다르니까. 무용수의 동작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무용수에게는 더없이 고맙고 아끼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어쨌든 그런 일들과 관련이 없는 케이에게는 여튼 신기한 것이기도 했다.
“논알콜 칵테일에 그것과 어울리는 가벼운 음식이면 간식 겸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후배님이 불편하다면 어쩔 수 없겠죠. 부원 분들도 지금 시간에는 준비하느라 분주한 것 같고, 왠지 못된 선배가 된 것 같은 느낌일지도요.”
마지막은 장난처럼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한다. 하지만 마치 술집에 후배를 꼬득여 들어온 나쁜 선배 같은 느낌이지 않은가. 물론 분위기만 술집이지 메뉴는 후배님의 말대로 건전하겠지만 말이다. 결정은 전적으로 사에에게 맡기는 모양새이다. 사에가 주점 밖으로 나간다면 따라 나와 축제 구경을 권할 것이었고, 테이블을 잡아 앉는다면 메뉴판에 있는 무알콜 칵테일 중에 무난한 무알콜 모히또와 카나페 정도를 이야기하지 않을까.
"응. 응. 반가워. 반가워. 내가 바로 학생회장인 아이자와 치아키라고 해. 잘 기억해줘! 와타누키 군."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들으면서 치아키는 가만히 미카를 바라봤다. 역시나 억지로 끌려왔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기사 실제로 억지로 끌려온 것이긴 하겠지만. 아무튼 이제 어쩌면 좋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며 그는 가만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탕을 바라봤다. 지금 여기서 계피 사탕을 주면 여러모로 분위기가 이상해지겠지. 화를 낼지도 모르고. 그런 것은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치아키는 오렌지맛 사탕과 포도맛 사탕을 꺼냈다.
"특별히 뭘 하거나 할 것은 없어. 애초에 학생회에서 봉사활동 인원을 보내라는 것도 아닌데 선생님들은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고 괜히 나에게 보낸단 말이야. 이거 참 너무한 것 같지 않아? 시킬 일도 따로 없는데 말이야. 아하하.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보낼 순 없고... 뭐라도 시켜서 적어도 뭘 했다는 느낌이라도 남겨야 하는데."
뭐가 좋을까. 가만히 생각을 하며 치아키는 가만히 주변을 바라봤다. 그러다가 그는 자신의 책상 한 편에 놓여있는 종이 서류를 바라봤다. 이어 그는 그것들을 집어든 후에 학생회 임원들이 앉는, 그리고 이제 그가 앉아야 할 앞의 테이블에 내려놓으면서 이야기했다.
"동아리 부원모집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하는 신청서거든. 이거. 하나한 확인하고 현 멤버가 3명 이하인 것들만 따로 빼는 식으로 분류해줄래? 아마 어렵진 않을거야. 그냥 인원 수만 보고 3명 이하만 따로 빼면 되는 거니 말이야. 아. 맞아. 맞아. 사탕 하나 먹을래? 포도 맛하고 오렌지 맛이 있는데 뭐 좋아하니?"
학생회도 이런 일이 꽤 곤란하다는 걸까 이쪽도 곤란하니 피차 같은 처지일지도...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다가도 미카는 회장이 가져오는 서류 더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학생회 봉사활동이라고 해서 솔직히 긴장했는데 제게 주어진 건 그다지 힘든 업무가 아니었다 단순히 수를 세고 분류하는 거라
"알겠어요."
건성으로 대답하고 자리에 앉는다 서류가 그다지 두껍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보다 사탕... 솔직히 과일맛은 별로지만 주겠다는 사람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고
" 응. 그럼 하네의 소원 같은걸로 두 개 할까? 나는 어떻게, 뭐든 괜찮으니까- 에, 그래두 넘어지면 일으켜세워 줄거잖아~ 하다못해 바라는 봐 줄거지? "
음, 지금 진짜 넘어져버릴까. 적당히 발 걸린척 넘어져서 무릎이라던가 손에 상처내면 더 깊이 바라봐줄지도. 리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잠시동안 무표정이 되곤 가만히 바닥을 쳐다보았다. 리오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스스로를 상처입히고 상처입혀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고 좋아하는 만큼 좋아해주지 않는다면 가해자로 만들어버린다. 지독하다. 새카만 악의가 속을 가득 메워서 벼랑 끝에 내모는 느낌. 그래도 좋은 점은, 좋아하는 친구와 있는다면 항상 자기가 하는 인삿말처럼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리오는 자기 소원은 안 빌어도 되니까 그럼 하네의 것으로 같은 걸 두 개 빌자고 이야기했다. 이 또한 항상 그런 식이었다. 줄 수 있는 것, 줄 수 없는 것 전부 내어주려고 했다. 좋아하고 소중한 친구라면 돈은 물론이고 몸과 마음도 기꺼이 내어줄 사람이었다.
" 하레하네가 하고싶은게 내가 하고싶은 거지- 응. 그럼 꽃놀이 갔다가, 맛있는 거 먹구 집에 갈까? 같이 자기로 했으니까- 그 정도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시간 딱 맞을거야. "
그리곤 또 헤실헤실 웃어보일 뿐이었다. 하루의 계획으로서는 완벽하다. 꽃놀이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소원을 빈다. 소원으로는 뭐가 좋을까. 하네가 소원을 이야기해준다면 같은 것으로 두 개를 빌 생각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소원을 빌어야겠지. 리오는 자신의 소원이라고 해봤자 시시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멘헤라인 것을 자각하고 있었기에 '멘헤라 고치게 해주세요' 라거나 '의존증 고치게 해주세요' 같은 것들 아니면 '평생 친구들과 함께하게 해주세요' 같은 조금은 이기적인 소원들. 그리고 사진도 잔뜩 찍고, 축제의 노점들을 즐긴 다음 집으로 가서 이야기 하면서 잠들고 아침을 함께 맞이한다. 완벽한 계획이다.
" 아, 예쁘다. "
건네주는 꽃송이를 받은 리오는 핸드폰을 거울삼아 머리에 꽂았다. 평생 간직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오늘 축제에서 만큼은 계속 간직할게 하고 말한 리오는 핸드폰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계속 미소를 띄웠다. 그리곤 '잠깐만-' 하고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손이 닿지 않는 가지에서는 꺾을 수 없겠다 싶어 바닥을 잘 살펴 깨끗한 곳에 외롭게 떨어진 벚꽃을 찾아 하네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내가 해줄래' 하고 말하며 머리장식 옆에 꽂아주었다.
" 응. 사진 찍자 사진! "
리오는 길가는 자기 나이 또래의 사람을 붙잡고는 사진을 부탁했다. 예쁘게, 귀엽게 찍어달라고 이야기하고 같이 있는 모습을 꼭 담아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자리로 돌아와선 하네의 팔짱을 끼고 아까보다 조금 더 깊이, 그리고 노골적으로 몸을 가까이 붙이곤 미소를 지었다.
포도 맛을 선택하겠다는 말에 치아키는 자리에 살며시 포도맛 알사탕 하나를 내려놓았다. 물론 마음 같아선 계피맛을 주고 싶었기에 그 아쉬움을 애써 꾸욱 눌러버리면서 치아키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살며시 미카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일단 적당히 일을 시키고 했다는 그 사실관계가 매우 중요했으니 이 정도면 되겠거니 생각을 하면서.
"그러고 보니 와타누키 군은 어쩌다가 이런 곳으로 봉사활동을 온 거야? 여러모로 학교 생활이 잘 맞지 않거나 곤란한 점이라도 있는 거야?"
물론 이런 물음을 던진다고 해서 상대가 답을 해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하지만 역시 학생회장으로서 알고 싶은 것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답을 하지 않겠다면 답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강제로 말하라고 할 순 없었으니까. 이어 치아키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을 연 후에 티백을 밖으로 끄집어냈고 얼그레이 차를 끓일 준비를 했다.
"아. 맞아. 맞아. 혹시 얼그레이 차 좋아하니? 내가 홍차류를 상당히 좋아하거든. 그래서 지금 이걸 먹으려고 하는데... 혹시나 좋아하면 끓여줄까 싶어서 말이야. 학생회장이 끓여주는 홍차는 지금 아니면 먹기 힘들거든. 아. 물론 차가 입에 안 맞으면 어쩔 수 없어."
편하게 있어. 편하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휴대용 포트기에 물을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남궁 린 : 199 캐릭터는 어떤 타입에게 약해지나요? 긍정적이고 반짝반짝 빛나서 주변까지 치유해줄 것 같은 햇살캐... 선하고 고결한 성품을 지닌 사람... 성인이나 군자와 같이 뜻있고 굳건한 위인... 같은 유형에 약해. 마음이 약해져서 험하게 못 대하기보다는 상성적으로 안 맞다고 해야 하나🤔 왜, 음陰한 존재는 보통 이런 사람들한테 퇴치당하기 마련이잖아? 물론 이 아저씨는 이로운 면모도 함께 지닌 신이니까 퇴치당하거나 절대적인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좀 대하기 어렵다고 해야 하나 찝찝하다고 해야 하나...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간혹 말문이 막힌다거나 으엑 이 녀석 착해...!하고 내적 비명 지르는 경우는 있어.
284 칭찬받거나 인정 받는 부분은? 어... 활동력? 에너지? 우당탕력? 뻔뻔함? 쾌남? 얼굴?
352 거짓말/연기는 잘 하나요? 보통 이상 수준급 이하!이긴 한데 뻔뻔하게 밀고 나가는 걸 더 좋아해서 보통은 거짓말이나 연기 티 내면서 능청스럽게 구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