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학교가 그렇듯 부장이라는 자리는 결코 유쾌하기만 한 건 아니다. 게다가 최고참도 아닌 어중간한 학년의, 더군다나 순혈조차 아닌 이방인에게는 더더욱 달갑지 않다! 권력은 권력대로 없는 데다 모든 책임까지 오로지 혼자 떠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의 미야나기가 부실에서 산더미같은 비품을 정리하다 말고, 급하게 연락을 받은 후 세탁소로 뛰어갔다가는, 이내 황폐해진 몰골로 집채만 한 가방을 든 채 3학년 복도로 올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연유였을 테다. 그래······ 이건 한 집단의 우두머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종에 가깝다. 그러나 선배가 까라면 까야 하는 법. 특히나 철저한 등급제 아래 돌아가는 서양 무용을 전공하니만큼 서러워도 어쩔 수 없는 거다. 물론 1학년 때는 더한 심부름도 자주했기에, 4층 복도의 구조 정도는 눈 감고도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낯익다. 미야나기는 자신의 반을 찾듯 익숙한 걸음으로 복도를 지났다. 곧, A반의 뒷문 앞에 멈춰서서는 열린 틈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안을 쳐다본다.
“센도 양, 센도 양.“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리 시끄럽지 않은 교실 안에서는 충분히 들릴 만한 크기였다. 새학기 들어 A반에 들른 건 처음이라 미야나기가 그녀의 자리를 알 턱은 없다. -반에 안 계시나······? 무리지어 삼삼오오 떠드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나참, 언니가 불러놓고 다른 데 가면 어떡해! 일단 반에 맡겨놓고 돌아갈까 고민하며 다시 한 번 교실을 살폈다. 이리저리 내부를 훑던 눈동자가 마침내 저 한편 앞자리에 도달하고는, 미야나기가 전보다 조금 큰 목소리로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센도 양······!”
아뿔싸. 이 언니, 심부름 시켜놓고 자고 있다. 엎드린 채 꼼짝도 안 하는 뒷모습을 보니 틀림없이 이어폰까지 꽂고 있는 거다! 서둘러 전화를 걸어봤지만 묵묵부답. 얼마나 피곤했으면 저럴까 싶지만······. 안까지 들어가서 깨우기엔 조심스러워 난처한 얼굴로 땀만 삐질거린다. 어떡하지, 외부인이 교실에 들어가는 건 좀 그렇고 사자후라도 질러야 돼? 진지하게 고민하던 미야나기는 이내 문 근처에 인기척이 느껴지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의도치 않게 길을 막고 있던 모양이다. 하지만 마침 곤란하던 차에, 아마 이 반 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때맞춰 나타난 건 되려 행운이다. 미야나기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츠리와 학교 수업은 별개로 돌아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츠리는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꽤나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 지금은 정규 수업이 끝나고 다들 부활동을 하는 시간이었고 케이는 귀가부였지만 잠시 학교에 남아있었다. 이런저런 연유로 인해 도서실에 잠시 책을 찾아봤던 차였다. 하지만 결국 원하는 책은 찾지 못하고 교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하지만 교실로 돌아오니 반 뒷문에서 낯설지 않은 뒷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이 복도에서는 보일 리 없는 사람인데 말이다. 왜냐하면 미야나기 사에라는 이름의 후배님은 2학년이기 때문이었다. 3학년 교실 근처에서 어슬렁거릴 일이 없다는 뜻이다.
케이 또한 교실 안으로 들어가야 했기에 뒷문에서 자연히 사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부르고 있었는데, 아마 자신과 동급생인 센도 씨를 부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센도 씨는 엎드린 채로 자고 있었고. 무용부라 종종 정규 수업 시간에 없는 모습이었는데 평소에도 그렇게 운동을 하는 사람이니 쉬는 때에는 꽤 잠을 많이 자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어쩌나, 도와줘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이내 사에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게다가 부탁까지 해온다.
“그럼요. 잠시만 기다려요.”
케이는 안경 너머로 눈을 접으며 웃었다. 얇은 테의 검은 안경에는 얇은 금줄에 검은 오닉스 원석이 작게 포인트가 들어간 안경줄이 자연스럽게 흔들리며 반짝였다. 걸음을 옮겨 교실 안으로 들어간 케이는 센도를 작게 흔들어 깨웠다. 원래 자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는듯 놀라 깬 센도는 다급하게 사에를 보더니 이내 케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센도에게 걸려온 전화에 안절부절하면서 케이와 이내 짧게 이야기를 마친 후 전화를 받는 것이 아마 사에의 눈에 보였을 것이었다.
케이는 느긋하게 사에의 앞으로 돌아와 손을 내밀었다.
“짐, 들어줄게요. 센도 씨가 그 옷을 마츠리 부스에 전해줘야 한다는데 지금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다른 일도 있다고 하네요. 그래서 내가 도와주기로 방금 얘기했거든요.”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같은 반에서 매일 만나고있고 등하교도 같이하고 있는 소꿉친구에게 연락을 보낸건 그런 연유에서였다. 매일같이 만나고 있지만 하루 정도는 특별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메세지를 보낼 때에도 두근두근 했지만 흔쾌히 같이 가주겠다는 답을 받았을 때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소리를 질렀다. 물론 하네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리오는 혹시라도 '싫어' 라던가 '바쁘니까 나중에' 라는 답을 받을까봐 걱정했었다. 항상 그렇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도 이렇게 나름 큰 이벤트가 겹치면 안 좋은 생각을 하게된다. 안 좋은 생각은 대게 멈추는 법이 없이 자라고 또 자라나서 꿈틀거리며 가시가 잔뜩 돋친 덩쿨을 만들어 몸 속을 파고든다. 그 악의는 숙주를 몰아세우고 그 악의의 종착역은 대부분 자기파괴적인 행위로 끝나곤 했다.
" 슬슬 가야지. "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빠르게 그리 해주겠다는 답을 받은 리오는 약속 시간까지 몇 시간이나 남았음에도 옷장을 서성이고 이 옷 저 옷을 대보며 어떤 것이 좋을지를 고민했다. 사복이 좋을지 유카타가 좋을지부터 시작해서 어떤 향수를 뿌리는 것이 좋을지, 메이크업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까지 하나하나를 고민하고 또 고민해 최고의 모습으로 가고싶었다. 혼자 살고 있었기에 옷장에 전통의상 같은게 많을리는 만무하다. 딱 두 벌 있는 유카타중 더 좋은 것을 골라서 몸에 걸쳤다. 인터넷을 보고 혼자 공부한 방법으로 매무새를 다듬고 가장 좋아하는 향수로 골라서 뿌렸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준비를 마친 리오는 마지막까지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정리했다. 두 벌 있는 유카타중에 비싼 것으로 골랐다. 검은색 베이스에 빨간 꽃이 그려져있는 제법 자신과 어울리는 것에 마스크는 따로 하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데다가 자신의 소꿉친구에게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귀에 걸린 피어싱을 뺄까 할까를 한 참을 고민하다가 빼는 걸로 결정했고 어쩌다보니 제법 수수한 모양새가 되었다.
오늘은 좋은 모습으로 나가야하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신경을 썼다. 손목에 붕대를 감지 않아도 됐고 잠도 제대로 잔 데다가 차가운 인상이 되지도 않았다. 리오는 집 문을 나서 타박타박 하고 걸으며 하네의 집 대문앞에 섰다. 그리곤 메세지로 먼저 '도착했어' 하고 메세지를 보내고 초인종을 눌렀다.
옆에서 '실패'라고 말하는 목소리에 괜히 핀잔을 준다 미카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 상대의 시도를 지켜본다 못 뽑으면 2인분 도시락을 싸겠다는 공약(?)과 함께 화려하게 성공한 키리나즈메 씨 도시락 싸는 게 어지간히도 귀찮았던 모양... 아니면 그만큼 뽑고 싶었거나 의외로 인형을 좋아한다거나 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