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나기는 웃고 있다. 분명 온갖 짜증과 분노로 속이 꽉 차올라있을 터였지만, 상냥한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묵묵히 감정을 삼키며 걷고 있는 것이다. —화내면 지는 거야. 참는 거야. 감정을 조절 못하는 사람은 어른스럽지 못한 사람. 그러면서 미간에 잡히는 주름은 끝내 감출 수 없다. 빠직! ······부원들 앞에서 지도자한테 꾸중들은 일을 끝내 잊지 못하고 계속 곱씹고 있는 걸까. 자존심은 상했지만 어쨌든 조언대로—억지로— 미야나기는 새 프로틴 제품을 구하러 가는 길이었다. 여전히 어떤 게 좋고 또 성분은 어떻게 계산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동네 편의점보다야 큰 마트에 다양한 종류가 있겠지. 수입품도 많을 테고. 발걸음은 기계적으로 길을 따라 나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갖은 생각들로 어지러이 흐트러진다. 잡상인이라든가, 종교인이라든가에게 붙잡히면 부푼 감정이 이내 틀림없이 팡! 하고 터져버릴 거다. 그러니, 하필 지금 그녀를 잡아버린 그 잡상인은 참 운이 없기도 하지. 당당하게 길을 막아오는 여자아이의 손에 들인 전단지를 보자 미야나기는 순간 날카롭게 반응했다.
“핸드폰 안 살 거고, 중고 가구 관심 없고요. 종교도 안 믿어요. 그러니까 좀 가세······!“
······어어? 어라? 인상을 확 찌푸린 미야나기의 한순간 얼굴이 부드러워지다가는 점점 물음표로 차올랐다. 한눈에 들어오는 은회색 머리칼에, 턱에 걸친 마스크 위로 들어온 예쁘장하고 귀여운 얼굴. 이 사람, 아는 사람이다. 심지어 같은 반이다! 클래스 메이트인 여자아이에게 심술 맞게 쏘아붙인 걸로도 모자라······ 메이드복 차림으로 마주친 것이다! 여간 혼란스럽기 짝이 없군.
“이치노세 양·····? 이치노세 양 맞는 거지? ”
그러니까 지금 눈앞의 이 메이드 소녀가 2학년 A반 이치노세 리오가 맞는 거야? 미야나기는 혼란스럽게 흔들리는 시선으로 이미 반쯤 건네진 전단을 받았다.
“어어······. 응, 그래. 이치노세 양, 여기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 거야?”
메론 소다, 오므라이스, 딸기 파르페, 그리고 짧은 메이드복을 입고 웃는 여자아이들. ······전단 보니 역시 메이드 카페가 맞네! 일단 어디로든 들어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한 미야나기가 리오의 등을 떠밀듯 재촉했다.
“으응, 뭐! 어차피 나 지금 시간 많으니까. 일단 들어가는 게 좋겠어, 카페 어디야?”
// 사에의 반응 리오가 절대 창피해서 그런 거 아니고 처음으로 메이드를 본 사람의 당황(..) 정도로 이해해줘!!!
>>808 (눈을 감는다.) 실시간으로 멀티 중이시니 선레는 지가 쓰도록 할게요 :D ! 상황은 뭐가 좋을까요⋯ 일단 제가 생각한 것은 리오의 인디밴드(리오인지는 모르는 상태) 공연을 보러 갔다가 길을 찾는 도중 마주친다⋯거나요? 학교에서도 마주치는 것도 좋구요 합동 체육 자율 수업 중 말을 건다던지도 좋을 것 같구 :3c
순간 딸꾹질이 나올 뻔 했다. 가끔 이런 경우도 있는 법이다. 사실 이 정도면 아슬아슬하게 수비 범위 안이다. 역으로 잔뜩 짜증내는 사람에게는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가면 되는 일이다. 수비 범위 밖으로 나가는 경우라면 한 눈에 봐도 엄청 불량해 보이는 녀석이라던가 술에 잔뜩 취한 사람들 같은 경우. 이 경우에는 정말 위험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몸을 조심할 필요가 있지만 이 정도라면 수비 범위 내에다가 오해에 의한 것이니 크게 상관 없을 터였다. 그래도 대뜸 이렇게 나와버리면 사람 대하기 어려워하는 약간의 커뮤증이 있는 사람은 한 차례 굳어버릴 수 밖에 없다.
" 응. 아, 맞아. 응. 미안. 나도, 모르게, 저기, 사에쨩이라고, "
이럴 때는 오히려 강하게 나가는게 좋을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어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테고 미야나기양 귀엽잖아. 귀엽달까 아름답잖아. 예쁘다기 보단 아름다운 느낌. 그러니까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리오는 종종 생각했었다. 같은 반일 뿐이지 살갑게 다가간다거나 하는건 잘 못하는 주제에 그런 마음은 먹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마주친 것도 리오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 리오. "
그렇게 자기 이름을 말한 리오는 눈이 살짝 팽팽 도는 느낌을 받았지만 역시 용기를 내기로 했다.
" 리오라고 불러줘도 좋아. 나,나,나도 사에,라고,부르고,싶어서 "
말해버렸다. 리오는 침을 꿀꺽 삼켰다. 같은 반의 클래스메이트이기도 하니까 이 정도는 해도 되는 수비범위 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다시 전단지를 꼭 쥐고 건네주었다. 지금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용기를 낼 수 있다. 여기서는 이치노세 리오가 아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니까. 할 수 있다. 같은 반의 친구라도 할 수 있다. 그 왜, 다른 친구들도 몇 번 왔었으니까 같은 느낌으로.
" 응- 여기서 이쪽으로 쭉- 그 다음에 이렇게 쭉- 그 다음에 한 번 꺾어서 쭉- 하면 도착이야. "
되려 등을 떠밀리는 기분에 안심했다. 잘못하면 서로 어색해서 어버버버 하다가 헤어지는 최악의 전개가 나올 수도 있었는데. 리오는 가능한한 싼 값에 서비스는 최대한으로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메이드카페로 가는 동안에는 간단한 시스템이나 대표메뉴 같은 것들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전부였고 일상적인 대화는 많이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도착한 이후에 문 앞에 서서 리오는 습- 하고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이 문을 지나고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다른 세계로 가버리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는 그 세계의 법칙을 따라야지. 리오는 들어와- 하고 말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곤 바로 역할에 몰입했다. 햇수로만 2년차다. 바 테이블에 놓인 핸드벨을 잡아들고 딸랑딸랑-
" 미야나기 주인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 ! ! "
그리고 둘, 셋. 가게 안의 모든 사람들이 벨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고나서 미소를 짓는 지금
>>822 되게 딱 꽂히는 구절도 있었지~ 『뾰족해진 악의는 뒤죽박죽 뒤엉켜 안쪽으로 파고드는 식으로 자라왔을 터이다.』내가 제대로 파악했을진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이게 참 좋았다... >>827 부끄러우니까 나도 같이 소리지를래 끼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쾌청하고 청명한 하늘을 배경 삼아 참새가 지저귀고, 그보다 더욱 웅장한 알람 소리가 온갖 인형과 앙증맞은 피규어들로 꾸며진 파스텔 색감의 방 내부를 쩌렁하게 울렸다. 분홍색 머리칼이 이리저리 뒤엉킨 채 단꿈에 담뿍 젖어있던 무쿠루마는 화들짝 놀라 온온몸을 움찔이며 양팔을 허우적대다가 비몽사몽 한 낯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불은 어느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고 머리는 잔뜩 구불거린 채 뺨이나 입가에 달라붙어있었다. 습관적으로 베개 부근을 더듬더니 핸드폰을 켜 알람을 껐다. 화면에는 알람 시각과 함께 체리 블라썸 펀치 공연 날🍒! 늦지 말기!라 적혀 있었다. 그 문구를 확인한 무쿠루마는 찬물을 뒤집어쓴 듯 정신이 들었다. ⋯⋯지금 몇 시지? 다급히 확인하자 적어도 30분 안에는 출발해야 했다. 아아─!! 나는 한 시간 넘게 준비한단 말이야! 잠긴 목소리로 비명을 지른 무쿠루마는 인생에서 다신 없을 속도로 샤워 후 옷을 갈아입고 머리까지 양 갈래로 야무지게 묶었다.
택시까지 붙잡고, 두 갈래로 갈라진 분홍빛 머리칼을 휘날리며 도착하고 손목 시계로 시각을 확인하니 다행히도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안도한 무쿠루마는 한숨을 내쉬며 공연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정확히는 옮기려 했다.
"어, 어라?"
당황스러운 낯으로 핸드폰 지도 어플을 바라봤다. 공연장 건물 안으로는 들어왔는데 어플이 안내해준 거리는 그게 끝이었다. 분명 수많은 건물 중 하나도 겨우 찾아 들어왔고, 층수도 맞는데 이상하게도 이리저리 꼬아진 미로 같은 구조에 찾을 수가 없었다. 끝내는 절박함과 당황이 섞인 얼굴로 핸드폰을 짤짤 흔들며 외치기 시작했다.
"이 바보 어플! 지도면 실내까지 안내해 줘야지!"
바보, 바보, 바보, 늦으면 다 네 탓이야─! 숫제 울음을 터트리기라도 할 것처럼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외치자 지나가던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서글프게도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지 읺았다. 미친 아이처럼 보이기라도 한 걸까⋯⋯.
분명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벌써 20분이나 흘러갔다. 이러다간, 이러다간⋯ 티켓 값만 내고 정작 공연은 못 보는 참사가 생긴다. 무쿠루마는 결국 소란의 틈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