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완벽했을 터였다. 장소, 종이, 볼펜, 사람. 장소, 종이, 볼펜, 사람. 장소, 종이, 볼펜, 사람. 하늘은 푸르스름하니 어둑했고, 숲속은 더했다. 잎사귀와 바람이 마구 부딪히며 음향 효과마저 있었다. 준비가 덜 된 사람, 신문 군 또한 제 장단에 맞추어 완벽하게 주문을 외워주었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암흑 속에 잠긴 정좌, 붉은 볼펜은 선명히 X를 향해있었다.
X를ㅤ⋯⋯.
"⋯⋯."
무쿠루마가 새하얗게 표백된 세탁물처럼 변했다. 영혼이 빠져나간 것 같기도 했다. 얼마나 정성 들여(4시간가량) 준비한 콜라(호러)인데─!! 이익, 하고 이를 잘근 씹으며 볼펜을 쥔 손을 종이 위로 퉁, 퉁 두들겼다. 세게 내리치고 싶었지만 신문 군도 볼펜을 잡고 있었다. 잠시 그렇게 화풀이를 한 무쿠루마는 여전히 시무룩한 표정으로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했다. 필기통 안에 볼펜을 넣고, 종이를 블레이저 재킷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넣고 그렇게.
그리고 조용히 정좌에서 일어나 신문 군을 돌아봤다.
"가, 훌쩍, 가자, 신문 군."
파들파들 웃는 눈꼬리에 반짝이는⋯⋯ 눈물 같은 액체가 맺혀있다. 이건 절대 눈물이 아니야, 절대⋯⋯.
그의 말에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킁, 하고 빨개진 코를 찡그렸다. 오면서 길을 외웠기에 딱히 지도는 필요 없었지만 얌전히 지도를 들었다. 일주일 동안 참았으며 네 시간 동안 고심하여 고대하던 호러 타임이었는데 그것이 매우 허망하게 엎질러졌다. 갈기 찢긴 마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허탈했다. 그래서 무쿠루마의 호러에 대한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갔고, 그렇기에 발언했다.
"응⋯⋯ 내가 신문 군 구해줬어. 그러니까 나중에 전율미궁 가자⋯⋯."
전율미궁이란 일본의 유명 놀이동산 '후지큐 하이랜드'에 있는 자급종합병원이라는 가상의 병원을 모티브로 한 유령의 집으로 저연령, 심장질환자, 임산부, 겁 많고 심약한 사람은 입장 자체가 제한되는, 최소 소요 시간 약 50분, 보행 거리 약 900미터라는 엄청난 곳이었다. 훌쩍임은 점차 잦아들어갔지만, 무쿠루마는 그런 곳에 가자는 말을 여전히 발간 눈가로 뻔뻔하게도 지껄였다.
뭐엇—! 마이메로는 이미 쿄스케가 채갔으니 다들 쿠로미 폼폼푸린 시나모롤 케로케로피 헬로키티 기타 등등을 어서 채가도록 해—!!! 나는 음미할게 🥰
>>267 한국에 반송(??)하기에는 공항까지 가야하니까... 그래도 담요 갖다줄거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68 하야토가 알바하는 모습도 궁금하지만 직접 디자인한 옷??? 놓칠 수 없는 기회..... 미래의 빼숑리더님의 마스터피스를 영접해보자 😊 그럼 하네가 우연히 게시물을 봤다가 실수로 하트 누른 건 어떨까—! 심지어 하네가 피팅모델로 활동하던 계정이었고... 실수였다고 말하기 전에 이렇게 저렇게 꼬여서 결국 하게 되었다거나.......? 🧐
솔직히 말해서 너무 가기 싫다. 인생을 살면서 가고싶지 않은 곳 TOP 3 안에 드는 곳이다. 애초에 호러 어트랙션이라니 뭐야! 전혀 리얼도 아니면서 무섭게 만든 그런거잖아! 나는 진실을 탐구하기 위해, 그리고 허구의 허술함을 깨부수기 위해 하고 있는 오컬티스트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나에게 그런...!
...근데 어쩌겠어. 이만큼 상심했으면 가기는 가야지. 별 수 있나. 사실, 무쿠루마도 지금 허탈하기는 매한가지, 아니 나보다 더 심했을 수도 있다. 진심으로 기대해서 준비한 것인데,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히 바라지 않았을테니까.
간간이 들리던 훌쩍거림은 이제 더 이상 없다시피 했지만 무쿠루마는 시무룩한 척 여전히 땅을 보고 걸어갔다. 그래야 신문 군이 좀 더 승낙할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니. 계획은 맞아들어갔고, 신문 군은 미끼를 물었다. 아─ 전율 미궁이라니.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공포스럽단 말인가! 환희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연기는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슬 올라가는 입꼬리로 인해 깨지고 말았다. 결국 "흐"하는 소리를 흘려버렸다. 얼굴은 연신 실실대는 낯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약간의 죄책감은 들었는지, 최대한 웃음을 억누르려 하며 그에게 무언가를 건네었다.
"알았어, 신문 군. 약속한 거다?"
건넨 것은 폭신한 만쥬앙금이 들어있는 병아리 모양의 히요코 만쥬. 놀린 것에 대한 미안함과 어울려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담아, 그가 이걸 먹으며 마음도 폭신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부터.
/ 막레로 하거나 막레 주시면 될 것 같아요 :D 이런 어리광쟁이랑 놀아줘서 너무 고마워 8 8 천사 쿄-스케!
>>281 캡틴이 일상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 나는 캡틴의 생각을 조종할 수 있게 되었다. >>283 리오주 어솨요 ( '▽' ) ! >>286 (햄스터모자달린케이프코트+병아리쿠션+곰돌이실내화+사막여우머리띠까지 얹어서 대반격!) (젠장 끝나지 않아) >>290 너무 즐거웠답니다 :D 수고하셨습니다 ( '▽' ) ! (쿄스케 고멘⋯!)
하야토는 방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패션으로 방향을 잡고 공부하고 있지만 비공식적으로 작은 대외활동을 하면 자신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몇 분의 고민 끝에 특단의 방법을 떠올렸다.
"인X타그램이 있었지.."
하야토의 인X타그램. 사진은 자신의 거울샷과 셀카, 예쁜 음식, 풍경 등의 사진을 올린 계정. 장르가 다양하고 색채도 다 다르지만 이상하게 피드가 잘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팔로워와 팔로잉이 똑같이 100명 내외인 "실친이랑만 SNS 해요"라고 티내는 계정.
"후...."
하야토는 처음으로 공개계정으로 오픈했다. 그리고 게시물 하나를 올렸다. 자신이 디자인한 베이지색 크롭 트렌치 코트의 모델을 구한다고...라지핏 스타일의 트렌치 코트였다. 모델에 대한 페이를 지불해줄 테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DM을 달라고 하는 게시물이었다. 이와 더불에 게시물에 처음 달아보는 해시태그. 패션과 관련된 해시태그들이다.
"연락이 오려나..."
그런데..평소에 20~30개씩 받던 좋아요가..순식간에 100개를 넘었다..,?! 심지어 다른 게시물..셀카나 거울샷에도 좋아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어..!
" 주인님의 모에레벨이라. 그건 어렵네요. 오늘 처음 오셨으니까 아직 레벨 낮지 않을까요? 음- 레벨 올라가면 모두가 좋아해줄지도 몰라요. 아리스도 좋아할거구요 "
리오는 그렇게 말하며 가슴에 달려있는 자신의 명찰을 톡톡 쳤다. 고정 고객이 생기면 가게 입장에서나 개인의 입장에서나 좋은 일이다. 자주 찾아와 준다면 가게의 매출이 오를 것이고 덤으로 리오 자신의 입지도 오를 것이다. 더군다나 괜찮은 손님이 고정 고객이 되어준다면 또 밖에서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가끔씩 팁을 챙겨주는 사람도 있으니까. 다만 여기서 메이드와 손님 이상의 관계를 원하는 사람이 나온다면 거기서부터가 곤란해지는 것이니 그렇게 되지 않게 잘 쳐내는 것도 실력이다. 아무튼 리오는 자신의 이름이나 생김새를 잘 기억해달라는 듯 명찰을 톡톡 쳤다.
" 와아 - 잘 하셨어요 주인님. 이제 모에레벨☆이 올라서 잔뜩 맛있어졌을거에요. "
이런 가게에서 일하면서 알지 못할 귀여운 말은 잔뜩 할 수 있게된 주제에 아직까지도 다른 아이들처럼 인위적으로 지어내는 귀여운 표정은 제대로 짓지 못한다. 나름대로 노력하고는 있지만 능숙하게 지어지지는 않아서 살짝 뚝딱거리는 이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다행인 점은 겉모습에서 오는 차가운 모습과 이런 모습에서 찾아오는 갭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리오는 짝짝- 하고 박수를 치면서 맛있어졌을 것이라고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 이어서 아리스 특제 오므라이스인데요- 음. 이건 그렇네요. 여러모로 달라질 수도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 "
오므라이스 이름부터가 '얼음공주의 악의와 정성이 담긴 수제 철판 오므라이스'다. 리오는 그럼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이곤 '이 쪽 주인님께 소프트 드링크 한 잔 부탁해요-' 하고 말하며 주방으로 들어섰다. 다른건 몰라도 오므라이스만큼은 자신있다. 요리할 때는 펄럭거리는 것이 영 불편했기에 소매를 걷어올렸다. 한 쪽 손목에 감아둔 붕대가 드러나자 직장 동료는 '아리스 손목 또야?' 라고 말했고 리오는 별 말 없이 쳐다볼 뿐이었다. 곧이어 완성된 오므라이스를 정성스레 들고 나온 리오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죽어(死ね)' 라고 케찹으로 정성스레 써놓은 오므라이스. 그야말로 악의가 잔뜩 담겼지만 정성도 잔뜩 담긴 오므라이스다.
" 그러고보니 주인님의 이름도 아직 물어보지 않았네. 제 이름은 아리스입니다. 주인님의 이름은 뭐에요? "
사실 가게에 들어오기 전에 물어봤어야 한다. 그래야 ○○주인님이 돌아오셨습니다 - ! ! 라고 크게 말할 수 있고 그래야 ○○주인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 !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인데 이건 기초적인 실책이다. 리오는 바 테이블의 앞에 서서 악의와 정성이 잔뜩 들어갔으니 단맛과 쓴맛을 오갈지도 모른다고 말하곤 다시 손으로 하트를 만들었다.
" 먹기 전에 모에레벨☆ 올려주세요! 이번에는 아리스랑 함께하자구요. 자- 이키마스요- 오이시쿠 나레- 모에모에큥!☆ "
나름대로 짜여진 안무가 있다. 왼쪽으로 하트 한 번, 오른쪽으로 하트 한 번, 앞으로 내밀면서 미소와 함께 하트 한 번. 미소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리오는 '실례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검은색 마스크를 벗어 앞치마에 넣어두곤 맨 얼굴을 드러냈다. 조금 뚝딱거리는 미소와 함께 예의 그 모에레벨☆을 올리기 위한 주문을 외친 후에는 다시 손을 앞으로 모았다가 손목에 감아둔 붕대를 의식하곤 '아차' 하고 급하게 소매를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