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사야카와의 만남을 떠올리면서 치아키는 한 번 반장들에게 제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각 반의 반장들에게 방과 후에 바로 집으로 가지 말고 학생회실 회의실에 모이라고 전달했다. 물론 정 바쁜 이가 있다면 어쩔 수 없지만 바쁘지 않다면 다 참여하라고 강조를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방과 후, 반의 반장들이 모이자 치아키는 새학기 시즌이니 아마 여러모로 바쁜 일이 많겠지만 그래도 반 아이들 중에서 적응을 잘 못하고 있거나 밥을 먹지 않는다거나, 혹은 따돌림을 받는다거나 그런 케이스가 없는지 한 번 제대로 확인을 해보라고 강조하듯 이야기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케이스가 있다면 반장이 직접 책임지고 챙기는 방향으로 부탁한다는 말 또한 잊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자신이 다 하고 싶긴 했으나 자신의 몸은 하나이며 현실적으로 모든 반을 자신이 다 관리할 순 없었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반장에게 이렇게 공지를 하고 관리를 해달라고 말하는 것 뿐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귀찮아하는 이가 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받아들이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귀찮아한다고 해서 철회할 생각은 당연히 그에겐 없었다. 이 부분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전달식이 끝나자 모여있는 반장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이어 치아키는 가만히 둘러보다가 하야토 쪽을 바라보면서 가볍게 질문했다.
난데없이 나타나 말을 붙임에도 주저함이 없어보이는 소녀 이런 불청객을 많이 보아온 걸까 혹은 신을 모시는 이라 무언가 다르기라도 한 건지 소녀는 미카의 말에 길을 알려주기는 커녕 방석을 냅다 밀어준다 길을 물으러 왔는데 뜬금없이 앉으라니 그 의도를 쉬이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미카는 앉으라는 말을 순순히 따른다 조심스레 방석에 앉고 그 상태서 두 다리를 뻗었다가, 아무래도 실례라고 생각했는지 다시금 자세를 고쳐 무릎꿇는다 미카는 신을 믿지 않지만 신사라는 곳은 어쩐지 몸가짐을 조심히 해야할 것 같은 느낌이라
걸터앉았다가 정좌로 고쳐앉는 미카를 보고, 영문모를 소녀는 또 영문모를 소리를 한다. 그대라니, 말 그대로 사극에서나 들어본 2인칭이다. 미카가 조심스레 꺼낸 말에도 소녀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없다. 숨 좀 돌리고 가거라."
무엇 하나 시원하게 답이 나오는 것이 없다. 그때, 그 뒤를 따라, 한 마디가 더 따라붙는다.
"굳이 돌아갈 길을 재촉할 까닭도 없지 않느냐? 그대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을."
말인즉슨 맞는 말이다. 애초에 미카가 떠돌고 있는 이유도 가야 할 곳에 가기 싫어서였던 게 아닌가. 봄의 해는 짧지만, 아직 산 위에 채 다 떨어지지 않은 햇살이 기울어져 따사롭다. 미소지어 보인 소녀는 손을 뻗는다. 손을 뻗는 곳에는 조그만 소반이 있었는데, 아직 김이 다 가시지 않은 찻주전자와 빈 찻잔, 그리고 쟁반에 담긴 작은 모나카가 몇 개인가 있었다.
오토바이의 수리는 다 끝났지만 자전거를 타고 등교한다. 아무래도 반장이 됐으니..오토바이를 타는 건 너무 튀니깐 말이야. 나의 애마야..주말에 더 예뻐해줄게.. 평일은 자전거로 참자. 그래도 자전거를 타서 좋은 점이라면 교문을 누군가의 눈치를 안 보고 통과할 수 있다. 이거 하나는 좋네.
오늘도 일과의 시작이다. 반장으로서 반이 돌아가는 하루의 계획을 다 파악해둔다. 선생님마다 수업의 스타일이 다르기에 쉬는 시간에 그에 맞게 수업준비를 해두고, 우리반의 진도는 어디까지 나갔는지 체크한다. 선생님도 사람이니깐 잊을 때가 있으니깐 말이야. 쉬는 시간마다 환기를 해주고, 먼지가 쌓인 곳이 보이면 바로 빗자루로 쓸어담는다. 그래야 청소시간이 더 줄어드니깐. 선생님이 바빠서 우리에게 전파할 내용이 늦어질 수 있으니깐 등교 직후와 점심 그리고 하교 전에 담임선생님에게 먼저 가서 전파사항을 받는다. 그 다음에 반의 상황을 유심히 관찰한다. 나는 철저히 다른 곳에서 온 이방인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니 초반부터 이곳의 분위기를 읽어서 취약한 점을 파악하고 고쳐야 된다. 그 외의 많이 일들이 있지만..일단 한다. 그리고 기가 다 빠진다.
하야토의 반장 스타일은 철저한 실무자 스타일이었다. 자신의 공부가 먼저라 쉬는 시간에 공부만 하는 공부벌레 반장도 아니었다.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려서 노는 인싸형 반장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허수아비 반장도 아니었다. 하야토는 철저하게 반의 시스템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톱니바퀴 역할을 자처하는 반장이었다. 그런 톱니바퀴에게 방과후에 학생회실로 모이라는 소식이 왔다.
하야토는 학생회실에 갔다. 저 치아키 선배라는 분이 우리의 학생회장. 치아키 선배가 우리를 불러모은 이유는 반에서 적응도가 떨어지는 학우, 끼니를 거르는 학우 혹은 괴롭힘을 당하는 학우를 파악해서 챙겨주라는 것. 이 내용에서 저 치아키 선배라는 분은 단순히 스펙을 따기 위해 회장을 한 것이 아닌, 학생들을 위해 된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공지가 끝나고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나간다. 본인 역시 곧 나갈 채비를 하려고 했지만 선배가 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없어요. 하지만 아직 파악이 다 안 됐습니다. 학기 초반이니 더 유심히 관찰해보고 조치한 다음에 보고 드릴게요."
짧은 내용의 대답이다. 하지만 결과, 진행상태, 추후계획을 모두 명확하게 요약해서 대답했다. "하지만 아직 파악이 다 안 됐습니다."라는 대답은 하야토가 공지를 받기도 전에 이미 반에서 그런 아이가 있는지 관찰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를 담기도 했다. 하야토는 반장이지만 사실 하야토도 이 학교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반의 상태를 초반에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자신의 안 좋은 상황을 끝까지 숨기려는 학생도 있기에 더 유심한 관찰이 필요했다.
"파악이 다 안 됐다라. 그래? 그럴 수 있지. 맞아. 그렇고 말고. 하지만 나에게 굳이 보고 할 필요는 없는데. 딱히 그런 학생들을 파악해서 나에게 알리라는 것이 아니라 반장으로서 어느 정도 신경 쓰고 챙기라는 거니 말이야."
조용히 말을 듣고 있던 치아키였지만 딱 한 포인트. '보고 드릴게요'라는 말에는 그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애초에 그 사안은 자신에게 보고를 할 사안이 아니었다. 보고를 해서 알려준다면? 자신이 그 학생들을 찾아가서 하나하나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반장을 부른 것이었고 부탁을 한 것이었다. 어쨌건 반을 이끄는 것은 반장이고 대표인 것도 반장이었다. 자리에 앉으면 어느 정도의 일을 해야하고 그에 따라 권리와 힘이 부여된다는 것이 바로 치아키의 생각이었고 동시에 신인 가족들에게 배운 가치관이기도 했다.
아무튼 보고는 하지 말라는 듯 그는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이어 그는 자신이 앉아있는 책상의 서랍을 연 후에 사탕을 하나 끄집어냈다. 포도맛 사탕이었다. 그것을 입에 쏙 집어넣으면서 천천히 녹이니 포도향과 포도맛이 입 안에 사르륵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이어 치아키는 하야토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으면서 딸기맛 사탕 하나와 계피맛 사탕 하나를 꺼냈다.
"빨간 사탕이 있고 더 빨간 사탕이 하나 있어. 어떤 사탕을 먹을래? 후배 군은?"
계피맛을 고른다고 하더라도 크게 매운 느낌은 아니었다. 또한 거절한다고 해도 딱히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치아키는 하야토의 교복의 명찰을 가만히 바라봤다. 하야토라고 읽으면 되는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치아키는 그를 더욱 빤히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무튼 관찰도 좋지만 같이 생활하다보면 눈에 보이는 것도 있는 법이거든. 그런 것을 파악해도 크게 문제는 없을 거야. 아니면 다른 애들 도움을 받아가면서 같이 살피는 것도 좋을테고. 물론 이 부분은 인원을 잘 선정해야겠지만 말이야. 가끔 있거든. 얌전한 척 하는데 질 나쁜 양아치라던가 말이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 중 하나지. 그런 부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