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이렇게까지 해도 안 나오겠다 작정을 했구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제대로 해 봐야겠다. 자판기 문을 따? 아니, 할 수는 있는데 원래대로 돌릴 자신이 없으니 그건 안 되겠고. 그렇다면 역시 남은 건 이 수밖에 없다. 두드리는 정도로 해결이 안 된다면 들어서 거꾸로 짤짤 흔들어 빼낼 요량이었다. 철판을 붙든 손에 힘이 들었다. 굳게 말아쥔 손 위로 핏줄이 선다. 자판기를 밀던 자세에서 그대로 팔이 위로 들려 올라가자, 그것을 따라 육중한 고철 덩어리의 밑면이 기우뚱 기울었다. 아래를 고정하던 발 중 하나가 막 땅 위로 떠오르려던 순간,
"으응? 어, 어어. 응. 그렇지."
뒤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에 맥빠지게도 그는 손을 놓아 버렸다. 한쪽으로 기울어있던 기계가 바닥을 찍으며 쿵,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저 되바라진 것…… 눈치도 없이 시끄럽군. 저지레는 제 업보건만 그는 괜한 자판기나 매섭게 쏘아보았다. 못 봤겠지? 음, 아래쪽을 보지 않았다면 손으로 들어올렸다는 것까진 모를 거다. 자판기 흔드는 정도야 힘이 세다면 인간도 할 수 있는 일일 거니까 괜찮을 테고. 짧은 판단을 마치자 애먼 물건 탓하던 표정도 싹 지워진다. 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싱긋 웃는 얼굴이 되어서는 사고 치던 손을 숨겼다. 슬쩍 뒷짐을 졌다 이 말이다.
"고장난 것 같아서 민간요법 좀 쓰는 중이었지!"
그건 그렇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 반말하는 태도가 참 자연스럽다. 일본 문화를 몰라서라기엔 비량도 유교국가 출신이니 그것은 아닐 테고. 순전히 그가 예의가 없는 것뿐이다. 표정은 그린 듯이 매끄럽고 시원한 미소였다. 방금 전까지 있었던 난리는 없었던 일이었다는 것처럼.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이야? 자판기… 고장난 거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말꼬리를 길게 늘리며 딴소리를 했다. 문제의 물건을 슬쩍 살피던 시선이 말을 하면서 그제야 상대방에게로 제대로 돌아간다. 때늦게 깨달음이 머리에 팟 스쳐갔다.
"녹색이면 2학년이지? 아, 2학년이죠? 미안. 내가 존댓말을 잘 못해."
왜말로 남한테 높임말 해본 적이 있어야지.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싱글거리는 낯이다. 미안한 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만, 그래도 또릿또릿하게 뜬 눈이 이상하게도 얄밉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098 긴팔, 반팔 중 선호하는 것 > 긴팔! 무조건 긴팔. 더위를 많이 타는 편도 아닐뿐더러, 피부가 감싸여져 있는 게 안정감이 들어 좋아합니다. 뭣보다 만에 하나 넘어졌을 때 덜 다치기도 하고요!🙋🏻
091 물건정리는 어떤 식으로 하는 편? > 정리에 있어서는 제법 철저합니다! 각까지 재 가면서 정리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뭐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요. 누군가 서랍장이나 사물함을 열어 보면 헉 깔끔🙊! 같은 반응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297 기쁨을 숨기는 방법 > 꺄악~!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것을 애써 참으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기쁘다! 그러나 차마 티를 내기에는 그것이 또 쑥스러워서, 두 손바닥 안에 얼굴을 묻고 표정을 감추려 애쓰는 것이었다. 드러난 귓바퀴가 벌게진 것도 모른 채.
>>462 뭐.. 뭐어라고 이게 공식이라고.....??!!?! 해냈다 해냈어 사치주가 해냈어~~~ 세상에마상에,,,. 셔츠에 니트스웨터 레이어드? 이건.. 아주 올바르게 된 청년.. 아니 신님이시군요....^^b.. 습. 하... 아주 맛도리다.
사치의 평상복.. 멋 부리는 데 재능이 없어 베레모를 갖고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대충 들어맞을지도요! 그래도 한 번 씌워보고 싶긴 하네요 베레모...(메모) 제 안에서의 사치 사복은 수수한 원피스에 더플코트 정도...?🤔🤔 대강 사진같은👆🏻 느낌 아닐지... 이건 너무 패셔니스타스러운 느낌이긴 하지만요. 그러니까 이제 여기서 좀 더 수수한.. 고런 느낌으로....
당신 앞의 소녀는 아마도, 겉보기로나마 16살인 소년이 자판기를 번쩍 들려 하는, 비-현실에 가까운 광경을 보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혹은 봤더라도 별생각 없이 넘긴 것이 분명하고. 왜냐하면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조잘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와, 그나저나 힘 엄청 센가 봐요! 쟨 음료수도 들어서 그런지 무겁던데. 그 정도면 막, 진짜, 자판기 채로도 들 수 있는 거 아녜요?"
자신이 말을 하고도 웃긴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렇다고 직접 막 들어보거나 해서 아는 건 아니구, 나도 쟤한테 골탕먹은 적 있어서 언제 한 번은 발로 찼었거든요. 그랬더니 뭐 흔들리지도 않고 내 발만 무쟈게 아픈 거 있죠? 와, 그게 어찌나 열받던지..."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한 안즈는 정말 끝도 없이 조잘거렸다. 당신이 딴소리하며 말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더 말을 늘어놓았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흐음, 역시 내 예상이 맞았구나-..."
조그맣게 중얼거린 안즈는 당신의 말에 답하기 위해 눈을 데굴 굴리며, 조금 전의 과거를 떠올렸다. 그니까...
"별 건 아니고 평화로운 점심시간에 어디서 엄-청 (여기서 그 크기를 표현하듯 두 팔을 넓게 벌렸다.) 큰 소리가 들리길래 와봤죠! 그런 소리가 나면 무슨 일인지 궁금하잖아요? 자판기 고장 난 거야... 한두 번 일도 아니니까 또 그런 거 아냐? ...하고 생각한 거고요."
말을 마친 후 답이 되었냐 묻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신을 바라보았다. 아니면, 더 궁금한 게 있냐 묻듯이.
"아, 맞긴 한데..."
안즈는 괜히 말끝을 어물거리며 볼을 긁적였다. 먼저 후배님이라 호칭하긴 했지만 그건 그냥 달리 부를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일 뿐이었다. 딱히 선배니 후배니, 아니면 나이 차이니 그런 것에 연연하려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안즈는 별로 고민하지도 않고 말했다.
"그러면 그냥 반말해. 대신 나도 그럴 테니까... 그래도 괜찮지, 요?"
아직 허락받기 전이라는 걸 가까스로 떠올렸는지 뒤늦게서야 존댓말 어미가 따라붙었다. 이미 말을 놓아버리고 나서 그래봤자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