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아의 성장은 빠릅니다, 또한 한번은 꺾일뻔한 마음도 가볍게 밀어주니 꺾이지 않고 나아갔죠. 용족은 기본적으로 지, 체가 맥스치를 찍은 종족이라 고립되기 쉽고 쉬이 거만해져요! 그렇지만 블랑은 전혀 다른 길을 택하였고, 그 과정이서 위와 같은 자세를 가진 인간들을 비롯해 레아같은 모습을 보면 존경할수 밖에 없다는게 블랑의 견해에요!!
2. 관조자로서 사적인 생각을 가지고 타 종족의 사상에 감화된다는게 그치들에겐 그게 문제가 되니까요!!
>>219 1) 레아를 좋게 봐 주는 게 인류 일반에 대한 호평의 연장선상 같기도 하군요. 용족은 일반적으로 타 종족과의 교류를 불필요하다 여기거나 행여 타 종족에게 감화될까 봐 오히려 금기시하는데, 블랑은 (특히 인류와) 적극 교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도로 이해하면 될까요?
2) 하기야 용족이 워낙 강력한 만큼 특정 종을 편애했다간 세계의 질서나 균형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타 종족에게 감화되는 걸 경계할 만도 하다고 생각됩니다
3) 블랑님 시트의 그 [스포일러] 가리키시는 겁니까? 전대 용 대빵이 발바리아 문제 때문에 블랑님한테 뭔 실험이라도 시도한 건가 하는 망상이 뻗치지 말입니다..
1. 사실 치들이라고 표현하긴 했는데 동족들의 입장도 맞아요. 동족들은 [용은 강한 힘을 가졌다. 그렇기에 우리가 함부로 개입한다면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 이고, 블랑은 [용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다른 종족들은 그 이상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또한 그들과 같은 생명체, 적극적인 개입은 안하는게 맞더라도, 우리가 그들을 오만하게 대해선 안되는 것이다]라고 표현 할 수 있겠네요!! 이건 2번의 답하고도 같습니다!!
3. 아 다행히 블랑 시트의 그거랑 별개의 거입니다!! 하지만 [검열 삭제]인건 변함 없지요.
"음..... 이건 우리 용들의 치부기도 한데 말이지...... 모르겠군, 어디가서 이야기 하지는 말게나..... 먼저 말해두지만, 발바리아 초대 황제는 우리 전대 드래곤로드일세, 아마 당시에는 유희중이었다고 들었지."
그렇게 고심 끝에 뭐 어찌 될지 모르겠다는 듯 그가 어깨를 으쓱이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어차피 이미 레아는 자신과 한배를 탄 사이가 아니던가, 게다가 연구자에게 호기심은 원동력이 될 수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던 블랑이기에, 오히려 그녀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여기서 미리 그 호기심을 미리 풀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아마 이 이야기의 진짜 시작은 거기서부터 비롯된게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때부터 그의 이야기가 구술되기 시작하였다. 로드의 직함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으로부터 해서 가벼운 유희 겸, 인간들에 대해 호기심이 깊었던 탓에 아기로 폴리모프하여 어느 귀족가의 양자로 받아들여진 시점부터, 전대 로드가 어떻게 인간들에게 영향을 받았는지, 또 어떻게 일을 해왔는지, 또 마지막으로 그가 제국 황제로서 남긴 핏줄이 어떻게 전래되어 갔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언어속에는 전부 개운치 않다는 기분이 잠재되어 있었다.
"이상이 전대 로드가 한 말일세. 당시 어린 나는 고룡들 틈바구니에 껴서 그 성토장에 겨우겨우 의견만을 들을 수 있었을 뿐,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를것일세. 허나 그래도 확실한건, 그의 모습에서 나는 나름대로 감명을 받았지. 비록 대죄를 저지를렀을지 언정, 결국 남을 희생시키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고, 길을 관철해가는 그 정신 만큼은, 어린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지. 그 결과는, 이미 봤겠고."
그렇게 말을 마치고는 그는 다시금 턱에 손을 올리고는 검지 손가락으로 입 어림께를 가볍게 두드리며 고민에 빠진 듯 싶었다. 하지만 한참을 고민하더라도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 고민의 끝에 과연 자신이 무엇을 볼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무엇보다 자신은 신이 아니었으니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모르겠구나. 그들의 결심이 어떤 파란을 불러올지는 나도 모르겠어....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지 않더냐. 하지만, 뜻과 정신이 아무리 숭고하더라도 그것은 변질되어지기 마련이다. 인간의 자의식, 혹은 해석의 방향, 또 이해관계 등이 뒤섞여서 그 뜻이 변질되기 마련이지. 어쩌면....."
─애시당초부터 로드가 잘못된 결정을 내린 시점부터 모든게 뒤틀렸을수도─라는 말을 목구멍 너머로 밀어넣으며 그가 씁쓸하게 미소를 지어보인다. 로드는 분명 선의로서, 최소한 자손들에게 가능성을 발현하지 못해 쇠하지 말라는 의미로 벌인 일이었겠으나, 그 한 순간의 결정을 하는 때에, 결국 이 세계의 인과율은 어떤경우보다도 엄격하다는 것을 망각한 것 일지도 몰랐다. 로드는 그 이후로 큰 벌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벌만으로, 과연 그의 비극은 끝날것인가?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며 레아의 화제에 집중하는 동안, 한 시선이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후회했다. 용족의 치부라면 용족이 아닌 한 들어서는 안 되는 정보라 판단되었기에, 어쭙잖은 호기심(참으로 어쭙잖았다. 흑룡이 무엇을 걱정하는지를 안들 모른들 일개 인간인 자신이 뭘 할 수 있다고?)으로 질문한 것이 더없이 후회스러웠다. 발바리아의 시조가 그냥 용도 아니고 무려 용족의 대표였다는 사실이나, 용족이 대표를 정하기도 하고 규칙을 어긴 이를 성토하거나 처벌하는 등 나름의 사회적 교류도 한다는 사실이 아무리 값진 정보여도, 모르는 편이 천 배 만 배 나았을 것이다. 인간식으로 비유하면 타국의 기밀을 캐낸 첩자나 다름없어진 셈이니까. 그러다 보니 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턱을 쓰다듬기도 하고 씁쓸한 듯 불안한 듯 미소를 띠기도 하면서 이야기하는 내내 피가 바짝 마르는 듯했다.
누가 들어 버리진 않았을까? 레아는 그가 말을 맺기 무섭게 일어서서는 연구소 건물을 한 바퀴 빙 둘러 살폈다. 충격이 컸는지 흑룡이 조치해 준 게 무색하게 머리가 어찔어찔하고 사지가 후들거렸다. 거짓말처럼 잊혔던 피로도 봇물 터지듯 몰려왔다. 그나마 근처에 사람이나 언어를 구사할 법한 지성체는 안 보이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누군가를 발견했다면 놀라다 못해 졸도하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휘청이는 몸을 가까스로 가누어 가며 흑룡에게로 돌아왔다. 짐에 눌린 어깨가 뻐근하게 저리고 숨도 가빠 왔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레아는 떨리는 손으로 출입증을 움키며 메시지가 전해지길 빌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목소리를 내기가 두려웠다.
[....그런, 그런 사안을.. 어쩌자고 이종족한테 발설하십니까?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시게요?!]
천만다행으로 누가 듣지는 않은 것 같지만, 이런 얘기가 오갔던 사실이 알려진다면? 용족 입장에서 일개 미물에 불과한 나는 꼼짝없이 죽은 목숨일 테고, 용족이 규칙을 어긴 이를 처벌도 한다면 일족의 치부를 누설한 그인들 무사할까? 그런데도 이런 얘길 꺼낸 까닭이 뭐지? 그것도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된 인간한테!? 따져 묻고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알아선 안 되는 것을 알아 버린 이상 그의 동기는 더 이상 중요치 않을 것 같아서였다. (더구나 짐작 가는 바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인간을 비롯한 지성체가 누군가에게 속 얘기를 털어놓는다면 동기는 대개 둘 중 하나다. 상대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거나, 상대가 자신의 문제와 엮일 일이 전혀 없어서 대나무 숲에다 대고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여기거나. 인간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데다 이제 만난 지 이틀인 용이 내게 의지할 리는 만무하니 당연히 후자겠지. 차라리 대나무 숲에다 대고 말해 주었더라면 피차 좋았으련만!)
그래서 이제 어쩌나? 레아는 필사적으로 생각을 가다듬었다. 다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는지는 헷갈렸다. 인간 행세를 감쪽같이 하며 가문 및 이웃을 향한 공격에 맞서다 아예 한 나라를 세워 버린 뒤 후손들이 전쟁보다는 내치에 힘쓰길 바라며 그들에게 용족의 힘을 부여하고는 처벌을 감수했다는 용족의 전 대표가 기이하면서도, 용족 중 단 한 개체만 '놀이'에 나서도 뒤집어지고 마는 인류의 역사가 소름 끼치도록 허망해 지금까지 아등바등했던 게 다 헛짓거리처럼 느껴지고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흑룡이 용족의 전 대표나 인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발바리아를 경계하고 있으나 인류나 요람에 어떤 위험을 야기할지는 정확히 모른다-이게 레아가 앞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에 가깝겠다-는 판단이 서는 가운데, 용족 전 대표의 선례가 있는 만큼 다른 용족은 인간을 곱게 볼 가능성이 낮을 것 같아 두려워지는 등 머릿속이 아주 뒤죽박죽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명백했다. 지금 들은 건 모조리 잊어야 한다는 거. 애초에 그런 얘기가 나온 적도 없었던 것처럼.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아니, 전 아무 말 못 들었습니다!]
// 저도 짧습니다..(._.) 레아가 너무 멘붕한 거 같기도 하고 ㅇ>-< 금용 누님이 지켜보고 계시는 거도 쫄리고8ㅁ8;; 그 밖에 전대 로드에 대해 일전에 썰 풀어 주신 거 참고해서 살을 좀 붙여 봤습니다만... 어느 내용이든 생각하신 바와 안 맞으면 알려 주세요~ 수정하겠습니다!
>>230 그걸 모르는 입장이면 무서울 만할 듯합니다 동족끼리야 그러려니 해도 이종족은 꼴보기 싫어할 수 있을 거 같고요:( 그래서인지 제가 금용 누님이고 저 대화를 들었다면 솔직히 눈 뒤집혀서 뎀빌 거 같습니다 안 그래도 싫어하는 녀석이 동족+먼 친척의 치부를 (자기 입장에서 하찮은 존재인) 인간에게 떠드는 거라.. 그래서 대화를 아예 안 들었다면 모르겠는데 들었다는 언급이 나온 이상은 등장하는 게 더 나아 보이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의외로 계략형 캐면 당장 치가 떨리더라도 빅피챠를 노리고 물러날 수도 있으려나요..(._.)a )
참고로 의외지만 용들은 이미 인간세계에 발바리아 황가 한정이지만 자기 피가 어느정도 퍼져나간걸 알고 있습니다. 그 이상으로 퍼지지 않고 황가안에서만 쉬쉬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문제 삼지 않는 중이지.....
의외지만 등장 안시킬껍니다!! 사실 금룡아씨가 노리는건 블랑이나 레아가 아니라 요람의 서고들 그 자체거든요, 그중에서 딱하나의 구절만을 찾는걸 원하지만..... 그건 블랑이 직접 보고 해석하고나서 충격먹고, 요람 핵심부에 9중결계까지 쳐가며 지키고 있는 물건이라.....
>>232 아, 용들이야 당연히 알겠죠! 전임 대빵님이 징계도 먹었으니..^ㄷ^a 용들이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기보다, 동족의 치부가 그 일과 무관계한 이종족에게 알려지는 것에 용들이 민감할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했습니다~ 흑역사가 퍼지는 건 막고 싶어할 줄 알았거든요:) 레아가 기밀을 듣고 말았다며 패닉에 빠졌다고 서술한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_.)a
너무나도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에, 미친듯이 전해지는 혼돈치는 정신의 파도가 블랑의 뇌리를 강타한다. 그럴만도 했다. 치부라고는 하지만 어차피 딱히 용들도 신경쓰지 않을 문제에 한 두명 더 안다고 상관없는 진실이더라도, 그녀에게 있어서 이러한 현실 자체는 상당히 부담되는 이야기였을테니까, 그럼에도 알려준 것은 최소한 그래도 호기심으로 죽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에, 자신이 비호해줄수 있는 범위안에서 행동하길 바랬기에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두 눈을 감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혼란스러워 하는 레아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고 정신파장을 집중시켰다. 동시에 그의 심장박동소리가 울려퍼지는 듯한 감각이 퍼져나간다. 주변 마나도 그에 조금씩 공명해가고 이내 그 모든것이 안정되자 그는 천천히, 입으로는 낮은 음을 내기 시작했다. 언령, 의지를 담아낸 언령이 마치 주변을 장악해나가기라도 하듯 퍼져나갔다. 담겨진 의지는 [떠나거라.], 아주 단순한 단계의 언령이었으나 용 특유의 마나 감응력 덕분인지 주변으로 결계가 쳐진 것 마냥 둘러쌓여진다. 그런 와중에 혼란스러워 하는 레아의 머릿속으로 아주 자그마한 선율이 흘러들어왔다.
아주 짦은 선율이었지만, 무슨 힘이라도 있는 것일까, 전음만으로도 전해지는 그 따스한 기운은 단순히 블랑이 그녀를 지켜준다는 뜻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이상의 무언가, 마치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것과 같은 느낌의 그것이 전해지는 감각이었다. 아마 그녀가 진정하고 난다면 이제 숨을 쉬고 제 정신의 그것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겠지. 이 노래는, 자신도 눈치 채었을 때는, 그 안에 담긴 힘을 보고 경악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실이니까.
"정신이 드느냐."
넘어질것 같은 위태위태한 몸을 가볍게 껴안아주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준다. 레아가 가진 걱정이 기우라는 듯이 그는 비밀을 밝히고 나서도 평안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었고,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거대한 방파제가 되어주는 것 마냥 버팀목이 되어 그녀를 지탱해주고 있었다. 마치 세상 어느곳보다도 더욱 단단하고 튼튼한 모습이 여지껏 흔들리지 않아온 거목과도 같았다.
"..... 미안하구나, 이렇게 부담을 느낄 줄은 몰랐거늘..... 그래도 괜찮다. 이미 많은 용들은 이 문제는 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머나먼 문제가 된지 오래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불이익은 없을 것이고, 당사자였던 전대 로드는 이미 벌을 받았으니까, 그리고 모르겠구나. 이 세계는, 우리가 생각 한 것 이상으로 너무나도 합리적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를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말아줬으면 한단다, 동족들 보다는.... 발바리아가 너에게 해를 입힐지가 걱정이니까."
그렇게 말하는 블랑의 모습 위로 처음 만났을 때의 모습이 오버랩 되어진다. 거대한 흑룡의 모습, 그리고 지금의 인간의 모습, 그 모습은 그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인간이 아닌 마음을 가졌으나 그 무엇보다도 이 세계를 걱정하는 것은 마치 그 또한 이 세계 위를 살아가는 자그마한 생명중 하나라는 반증이 아닐까? 그는 잠시간 미소를 머금은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지 마라는 듯 레아와 시선을 맞추고는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채 입을 열었다.
"이 주변에는 지금 우리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걱정 마려무나. 네가 지금 여기서 추태를 보인다고 한들, 볼 존재는 나밖에 없으니." [알겠으면 썩 꺼지거라, 더러운 년.] [눈치 채고 있었어?] [그건 절대로 안되니까. 아니, 넌 알아도 그것의 진의(眞意)는..... 모를테니까.] [상관 없어.]
용에 대해 알고픈 마음이 언제 생겼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린 시절 들은 이야기에서 용은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괴물이기도 했고, 마을의 수호자이기도 했고, 영웅을 가로막는 강대한 적이기도 했고, 소원을 들어주는 신령이기도 했다.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용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런 용이 그저 상상 속 존재가 아니라 이 세계에 실재하는 생명체일 수 있다는 주장을 듣고부터는 알아보고 싶다고, 가능하면 만나 보고도 싶다고, 꿈에 부풀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두려웠다. 용이 실재한다면 인간 따위는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 버릴 수 있는 존재라는 거야 익히 알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본능으로 실감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 한편으로는 이제껏 꿈 타령 하며 설쳤던 게 한심하기도 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 꼴이면서 무슨 용을 연구해? 용족이 밝히길 원치 않는 부분까지 캐내려던 건 맹세코 아니라고 변명해 봤자다. 용족이 조사해도 된다고 허용할 부분과 그렇지 않을 부분이 뭔지 알긴 하나? 에르네스트 산을 타면서도 그런 고려 전혀 안 했으면서. 꿈도 무엇도 아니었다, 천지 분간 못 하고 망상에 취했던 것뿐. (설령 꿈이 맞다 한들 뭐 그리 다를까? 인류의 역사며 유산이래 봤자 용 하나의 놀이에 좌지우지되는 건데. 학문적 성취고 거인의 디딤돌이고가 무슨 의미라고?)
숨이 막혀 오는데 무언가 머리에 덮였다. 뒤이어 맥박을 연상시키는, 규칙적인 약동이 머리부터 사지 말단까지 울리는 듯하더니 서서히 숨통이 트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걸까? 주위를 가늠하려 했으나 흐린 시야에는 흑룡이 팔을 뻗은 것과 그가 입은 바다 빛 로브만 부옇게 보였다. 그런 가운데 그가 무언가(너무 낯설어서 언어로 추정해도 될지 헷갈리는)를 낮게 읊조리자 사방이 무(無)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고요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 흑룡이 부르는 듯한, 가락도 가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도 생전 처음 듣는 곡이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머릿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음악은 추위를 막아 주는 온기 같기도 하고 몸을 받쳐 주는 활기 같기도 했다. 그리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인데도 어쩐지 이 세계를 감싸고 보호하겠다는-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결의가 담긴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정신을 깡그리 불사를 것만 같던 두려움과 혼란과 흥분도 꺼져 가는 듯했다. 이 노래 자체가 마법인 걸까?
그렇게 차분해지자 몸이 무언가에 감싸인 채 받쳐진 게 느껴졌다. 눈앞엔 햇빛을 받은 바닷물처럼 윤이 나는 심청색 비단이 들어찼고, 귓가엔 부드러운 가운데 걱정 어린 목소리가 맴돌았다. 지금 이게..? 고개를 억지로 들고 보니, 흑룡이 잔잔한 미소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무슨?! 퍼뜩 몸을 빼려 했으나 힘이 전혀 안 들어갔다. 몸이 녹아 버린 듯 노곤했다. 눈마저 감길락 말락인 가운데 차근차근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용족이 그 치부라는 걸 감추는 데 혈안이지는 않고, 용족의 전 대표처럼 인류에게 관여하면 벌을 받으며, 용족의 전 대표 일은 오히려 발바리아에서 기밀이라는 다독임이 꿈결 같았다. 그래도 한 가지는 똑똑히 와닿았다. 그가 레아를 안심시키고자 정말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것. 용 입장에서 레아는 미물일 수밖에 없는 일개 인간인데도.
그 여파일까? 그의 본래 모습, 만물을 집어 삼키는 거대한 암흑 같던 용의 모습이 지금의 인간 같은 모습과 환상적으로 뒤섞여 들었다. 맑은 물에 떨어진 물감처럼 까만 용의 이미지가 새하얀 빛 속으로 퍼져 갈수록 어느 부분이 인간이고 어느 부분이 용인지 알 수 없어졌다. 그러다 (인간 모습인) 그 특유의 미소가 보이고, 노을처럼 맑고 등불처럼 은은한 눈망울에 시선을 이끌린 것을 마지막으로, 레아는 완전히 의식을 잃고 늘어졌다.
// 나름 열심히 궁리하고 구글링으로 찾은 노래 해석도 참고했는데 올리려니 분량이 짧네요:(.. 게다가 레아 리타이어ㅇ>-< >>236에서 공 들이신 게 역력하게 느껴져서 부응해 보고 싶었는데 말입니다(._.)a....... (도망)
그가 천천히 눈을 감은 여인의 모습을 보며 멋쩍게 웃고야 말았다. 실례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무게를 최대한 짊어진 셈이었다. 마법은 어디까지나 보조의 도구일 뿐, 모든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그녀가 그랬다. 완전히 한계에 달한 몸이 더 이상을 견디지 못해내고 무너진 것이었다. 하지만 용은 그것을 책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나아가려는 사람이니까. 그리고 살아가는 존재이니까. 그러니까 그녀에게 더 큰 것을 요구하고 싶지 않으니까. 부드러운 손길로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쓰다듬어준다. 잠깐 자리에 앉아 그녀가 짊어진 짐을 자신이 대신 들어주고, 품안에 안긴 그녀의 머리를 팔로 받친다음 잠깐 자세를 낮춰 은은한 미소로, 마치 아버지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주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래, 성장해가는 것이다. 너도, 나도.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늦더라도, 느리더라도..... 천천히 발걸음을 맞춰가며 나아가면 되는 일인 것이야. 네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지금처럼 도와줄테니까 말이다.
──그 순간, 그가 다시 한번 공간을 접어 들었다.
그가 이 곳에 도착한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 리빙아머들이 그들을 향해 다가온다. 그는 천천히 레아가 가지고 있던 짐을 리빙아머에게 건네들었고, 뒤이어 레아를 받아들려는 리빙아머의 행동을 제지한다음 천천히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들며─소위 말하는 공주님 안기─ 레아의 방이 될 공간에 천천히 그녀가 뉘이고는 책상을 바라본다. 아직 필사가 다 되지 못한 책과 각종 연구자료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볍게 그것을 바라보던 그는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기척도 없이 방문을 나섰다. 이윽고 천천히 그가 요람의 메인테이블로 향한다. 메인테이블에서 가볍게 수인을 맺으니 천천히 다른 공간으로 나아감이 느껴진다. 요람이 지어지고 난 300년, 그녀의 습격이 있은 직후 자신은 최선을 다해 그 이유를 찾아냈고, 마침내 그는 딱 한장의 양피지─그는 양피지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이 종이는..... 용들의 그것보다도 오래됐을지 모르는고로─를 찾아내었고, 요람을 짓는 500년간 틈틈히 연구를 진행하였다. 이 모든 것은 극비로 이루어진 일이었기에 그 어떤 이들도 모를 일이었고, 이 세상 오직 단 한 존재, 블랑만이 그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요람의 가장 핵심부, 블랑이 가장 공을 들인 최심부의 9중 결계를 열고 나아가자 몇권의 서적과 더불어 단 한장의 양피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블랑으로서는 알고 싶지만 절대로 밝혀져서는 안될 무언가가 지금 이 자리에서 아직도 그 비밀을 간직한채 가만히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블랑은 고개를 내젓고는 천천히 결계를 다시 치며 중얼 거렸다.
"눈(目), 귀(耳), 코(費), 혀(舌), 몸(身), 의식(意), 무의식(末那識), 가능성의 심연(阿羅耶識)..... 그 너머의 있는 것은 과연 도대체 무엇인가."
세계, 시간, 가능성, 우주, 차원, 모든 시공이 교차하며, 이 세상을 구하리니, 노래하라, 저 머나먼 세상에 닿도록.
레아에게 들려주었던 글귀의 소리가 천천히 블랑의 머릿속에서 범람해온다. 하지만 그는 천천히 그것을 사념의 한구석으로 밀어넣어놓고 다시 테라스로 올라선다. 잠이 오지 않는다. 용은 성장하기 위해 잠을 잔다고 하였으나, 그러한 잠을 자는 종족에게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아하니, 오늘은 잠을 잘수 없을 것 같다며 그는 뜬눈으로 밤하늘을 응시할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리타이어가 꽤 찔렸는데..(._.)a 다행히 블랑님이 너그럽네요:) (인간의 수명상 블랑님이 봐주는 거만큼 천천히 나가다간 몇 발 못 가고 이승과 작별할 거 같다는 게 Epic Fail..? ㅇ>-< )
금용 누님이 노린다는 기록이 등장한 거 같네요 (설마 다음에 아마라식(阿摩羅識)이라는 게 나오는 건 아니겠지요:O? ) 누님이 저 기록을 못 가져서 안달인 이유가 뭘지 궁금해지는군요ㅎㅎ(아는 내용이면 어디든 베껴 적어 놔요 누님:d!!) 레아가 저 기록을 보게 될 일도 있을까요? (지금은 그닥 연이 없어 보이긴 합니다ㅋ )
한편 별 헤는 밤(....)을 보내면서 블랑님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도 궁금합니다:D 결계에 감춘 기록의 의미를 탐구했으려나요? 아니면 앞서 부른 노래의 의미를 곱씹었으려나요? (사실 전 해석 봐도 정확한 의미는 파악 못했다고 합니다^ㄷ^ㅋ)
결국 밤을 새버렸다, 라고 그는 가볍게 자조하면서 천천히 떠오르기 시작하는 아침을 보았다. 저 멀리서 가고일들이 날아와 신문을 조달하고 있었고, 시간에 맞춰 활동하도록 지시해둔 리빙아머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청소를 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그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것일까, 손가락을 튕기며 아침 준비를 하던 리빙아머 몇기를 멈춘 그는 그대로 식당으로 향하였다.
가볍게 청결(Clean) 마법을 몸에 두른 그는 익숙하리만치 여유로운 손길로 청색 앞치마와 검은색 두건을 두르고는 캐놀라인에서 사가지고 온 쌀, 농축된 장, 멸치로 만든 소스(멸치액젓), 다시마를 집어 넣고, 그 위에 물을 붓고는 그대로 후라이팬에 기름과 버터를 두르고는 마늘과 안심스테이크를 굽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 구워진 스테이크와 마늘을 건져낸 다음 소금과 후추로 가벼운 밑간을 두르고는, 아직 후라이팬에 남아있던 기름과 버터, 육즙에 아까 준비해둔 쌀을 붓고는 약불로 타지않게 천천히 저어낸다. 가볍게 냄새를 맡으니 달고 짠 내가 코를 자극하면서 맛있게 익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충분히 익었다고 생각하자 가벼운 향채소를 총총 썰어내어 그대로 밑간밥 위에 투하, 골고루 섞어내고는 그것을 자신의 그릇에 반, 레아의 그릇에 반을 집어 넣고는 아까 구워두었던 마늘과 함께 스테이크를 썰어 넣었다. 미디움으로 구워낸 고기의 겉면은 바삭하기 그지 없었지만 속안은 촉촉하니 부드러운 육즙이 살아있는 듯 했고 거기에 구운 마늘은 감칠맛을 더해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근 새한테서 얻어낸 실한 달걀을 노른자만 골라내 준비하는 것으로 아침 식사 준비를 끝내고는 리빙아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서빙을 준비시켜 둔다.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는 건 처음인가."
생각해보니 어제 레아는 제대로 뭘 먹지도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이 스테이크 덮밥은 좀 무거운 음식이 아닐까 싶었지만, 그만큼 열량이 부족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잘된 판단이라 생각하며 그는 천천히 레아가 나오길 기다리고는 그대로 서빙되어지는 홍차와 함께 신문을 반쯤 접어들고 천천히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중 중요하다고 느낀 정보는 그대로 가볍게 표기를 하기도 하고 그걸 따로 마법을 이용해 필사를 해두고 스크랩─본래라면 분명히 신문을 잘라야 겠지만, 최대한 신문을 온존시키기 위해 신문은 보존마법을 걸고 스크랩용 기사는 따로 필사를 하는 방향으로 준비중이었다.─을 하는 것으로 아침 일과의 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252 아이고, 고생하셨습니다!! 잠은 푹 주무셨나 모르겠군요..(._.) 늦게나마 답레 쓰는 중인데 잘 모르겠는 부분이 있어서 레스 남깁니다. 지금 테이블에 블랑님의 요리와 홍차가 함께 차려져 있는 건가요? (그나저나 밤을 꼴딱 새 놓고 손수 요리했네요..마법 기사한테 시켜도 레아가 모르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은데 8ㅁ8;; )
그렇습니다!! 추가로 덮밥외에도 가벼운 스프라던가 여러가지 음식도 같이 차려져 있고 홍차도 있지만 리빙아머들에게 시키면 알아서 음료도 가져다 줄껍니다!! 여담이지만 저거 조리시간 딱 20분 걸렸습니다!! 인터넷에 1분요리 레시피로 있거든욬ㅋㅋㅋㅋ 밤에 저거 보면서 적다가 위꼴테러당한건 안비밀.... 실제로 있는 레시피니 여유되시면 한번 드셔보세요!!
산 어귀를 따라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 리노의 들판, 아장아장 걸음을 떼고는 으쓱해졌는지 엉덩이를 들썩이는 조카들이 보였다. 뒤이어 학교 도서관이 나타났다. 팀 과제 약속을 나 몰라라 한 팀원을 향해 소똥이나 밟으라고 저주했을 때, 그때 놀란 얼굴이 됐다가 키득거렸던 친구가 함께였다. 그러다 이번엔 공동 연구실 안, 용의 예상 서식지 지도가 등불에 비쳐 나타났다. 어디로 가야 용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지 아무도 없는 연구실에서 한참 궁리했던 것 같다. 어디로 가려고 했더라? 무심결에 고개를 돌리자 어둑한 가운데 벽에 붙은 용의 상상도가 스스로 빛이라도 머금은 것처럼 선명해졌다. 이윽고 그 그림들이 하나 둘 물감처럼 섞여 들어 새까매지더니, 사람 같은 팔과 거대한 꼬리가 두드러지는 흑룡의 형상으로 돌변했다.
흠칫 눈을 뜨자 아직은 낯선 천장이 보였다. 푹신한 침대와 체온에 더 포근해진 이불도 묘하게 어색했다. 정신은 똑똑한 것 같은데 몸은 남의 것인 듯 기운이 안 들어간다. 머리도 텅 빈 것 같다. 뭐가 어떻게....?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자 햇빛 머금은 바다 빛-그러나 바다라기엔 너무 따뜻하고 굳건하던-에 감싸였던 감각이 의식 위로 떠올랐다. 맙소사!?!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썼다. 민망하고 당혹스럽고 면목없고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애도 아니고 무슨 꼴이야.. 학생이 되고부터는 아버지나 오빠들한테도 그런 식으로 실려 온 적이 없는데! (특히 셋째 오빠는 그 이전에도 레아가 매달리면 너도 컸으니 걸어다니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어디로든 사라지고만 싶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무엇에 튕기기라도 한 듯 벌떡 일어나 앉았다. 순간 어찔해 허물어지다시피 벽에 기댔다. 그대로 눈 감은 채 숨을 고르다 보니 차츰 다른 기억도 또렷해졌다. 다시 생각해도 감당하기 버거운 정보였다. 그때 제대로 확인한 게 맞다면 들은 이는 없었고, 지금 떠오르는 (그에게 들은) 말이 맞다면 용족이 그 치부라는 것에 더는 관심을 갖지 없다지만, 속에 돌이 얹힌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발바리아가 어떤 나라인가? 페레스 대륙의 1/3에 이르는 판도는 둘째 치고, 인류의 문화를 주도하다 못해 그 언어까지 대륙 공용어의 위상을 차지한 국가다. 그런 나라가 용족 상당수도 몇도 아니고, 고작 용 하나의 나들이(?)로 세워졌다. 그렇게 간단히 좌지우지되는 문명에, 그 문명 중에서도 일부인 학문에 매달리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 용이 벌을 받았다 한들 인간 사회를 뒤엎는 용이 영영 안 나오리라는 보장이 있나? 용족에 대해 조사해 봤자 인류는 용족에게 농락당하는 신세에 불과하다는 사실만 절감하는 건 아닌가?
레아는 무릎을 그러안고 웅크렸다. 모르는 게 나았을 영역에 들어와 버렸다는 막막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물러나려 해도 발 디딜 데를 모르겠다. 왕립 연구원까지 된 이상 용족 연구는 생업이기도 하니까. 다 때려치고 산 리노로 돌아가면 나아질까? 어쩌면 다른 길(귀족 자제의 가정 교사라든가?)이 찾아질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그러면, 여기서 1달간 일하기로 한 건 어쩌나? 어제 그 난리를 피워 놓고 또 그만둔다고 해? 그렇게 간단히 충동적으로 결정해도 되는 문제인가? 그보다 지금 내 판단력이, 진로 같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도 될 만큼 양호한가? 모르긴 해도 아마 아닐 거다. 무릇 판단력이란 잘 먹고 푹 쉬고 마음도 어느 정도 안정시킨 뒤에야 온전한 법이다.
게다가.. 레아는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10페이지 남짓 겨우 필사한 <카다로스 제국사>가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저거 아깝다. 값어치가 웬만한 보물 못지않을 것이라는 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어떤 내용일지가 궁금했다. 또 용족의 습성도, 언어도, 그렇게나 대단한 존재라면 주님과도 접점이 있는지나 인류에게 뭘 어쩌고자 하는지도, 가능하면 전부 알아내고 싶었다. 하다 못해 언어라도 배워서 인류를 헤집어 놓은 그 용에게 욕이라도 한 바가지 퍼부어야 분이 풀릴 것 같았다. (아직 살아 있을지 모르겠고, -거짓된 인연일지언정- 가족과 친지를 안전하게 해 주려던 마음은 인지상정이라 막상 마주하면 아무 소리 못 하거나, 그 이전에 용이라 공포에 질리고 말지도 모르지만.) 미물의 망발로 여겨질 뿐일지라도, 그래서 뭐? 내가 이 세계에서 별 볼 일 없는 존재인 거 몰랐던 것도 아니고. (내가 있든 없든 세계는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리라는 거 쯤은 철 들면서부터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의 생각이며 감정이며 욕구가 없는 게 되나? 어쨌든 지금은 살아 있으니까 지금에 충실할 테다! 그래서 일어섰다. 여전히 기운은 없고 머리도 지끈거렸지만 움직일 만은 했다. 방 한 구석에 놓인, 빵빵하게 찬 가방을 보고서는 피식 웃음도 나왔다. 옷이 있으니 마음이 한결 낫네.
그렇게 옷을 갈아입고 머리도 제대로 묶은 뒤 방을 나왔다. 그러고서야 흑룡에게 뭐라고 할지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아이고, 두야. 갑갑해져 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뻗어 버려서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하나, 데려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사례해야 하나, 아니면 그 흉한 꼴은 잊어 달라고 사정해야 하나..? 머리칼을 쥐어뜯고픈 심정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 난감함은 금세 가셨다. (흑룡이 있으리라 추정되는) 식당에 채 이르기도 전에 짭쪼롬하면서도 달작지근한 향과 육류 특유의 기름진 고소한 향이 코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빈 속의 헛헛함이 강렬해지며 입에 군침이 돌았다. 일전의 토스트는 이상하리만치 니글거리는 느낌이었는데, 확실히 상태가 나아지긴 했나 보다. 그래도 배꼽시계는 안 울렸으면. 안 그래도 차마 얼굴을 못 들 상황인데, 뱃속까지 요동쳤다간 부끄러움에 사람이 죽을 수 있는지를 강제로 연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식당에 이르니, 테이블에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들, 특히 두툼한 스테이크에 뒤덮인 메인 음식(아마도 덮밥 같았다.)이 눈에 띄었다. 그도 일전과 마찬가지로 (문자 그대로 산 속의 굴인 여기에 신문이라니 보면서도 적응이 안 되지만)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인사라도 해야 할지 방해가 안 되게 조용히 앉아야 할지 망설이던 찰나, 뭔가 미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곱씹을수록 용을 두고 하기엔 너무나도 안 어울리는 발상이지만, 어쩐지 생기가 부족한 느낌이랄까? 그에게 전음을 보낼 때 빛의 바다를 잠시 스쳤던 파동이 떠올라 더 께름칙한지도 모르겠다. 결국 레아는 제가 저지른 일을 어쩔지는 정하지도 못한 채 말부터 건네고 말았다.
여담으로 전 보조밖에 몰라요 . .) 형이 요리유튜브를 자주 보다보니 그거가지고 이거저거 해먹을때 같이 곁다리로 놀뿐이지.... 그리고 여담으로 레스주랑 다르게 블랑이는 요리가 취미입니다(?) 이거저거 맛난거 있으면 해먹어보는게 취미에요(????) 다만 요리대접을 누군가에게 하는거 자체가 레아가 처음인겁니다!!
그렇게 이것저것 확인하면서 잠시간 신문에 집중하고 있던 순간, 레아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낸다. 확실히 잠이 보약이라고 하던가? 어제의 그 혼란스러운 모습보다는 한결 나아진 모습에 마음이 놓인 것인지, 그는 홍차에다가 각설탕 3개를 집어넣고는 천천히 휘저었다. 녹아내리는 각설탕의 단 내와 더불어 강해진 홍차의 향에 그가 찻잔을 들어올리고는 미소를 머금으며 가볍게 손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어제 아침과 똑같이 천천히 의자가 당겨져 자리에 앉으라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아아, 내가 잠을 자라고 했는데, 이번엔 내가 잠을 안자버렸군.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잠이 묘하게 오질 않아가지고 결국에는 날밤을 세면서 시인마냥 센치해지는 그런 날 말일세. 그게 어제였던 모양이야."
가벼운 너스레를 떨면서 천천히 신문을 접고는 조용히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러고보니 인간들 문화중에는 상석에 앉은 사람이 먼저 식기를 들지 않으면 식사가 늦어진다는 문화가 있었다고 했었나? 식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동등한 입장에서 밥을 먹자고 이렇게 원형 테이블로 마련한 건데, 최소한 여기서의 예의는 차리지 않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란 생각을 하면서 그는 스푼을 들어올려 가볍게 밥을 1/4 스푼 분량을 떠내 입안에 넣었다. 양념이 잘 베어든 밥이 일품이었다. 살짝 노른자를 째서 흘러 넘치게 한뒤 밥에 비비니 순식간에 밥알에 노른자가 코팅되어지고, 담백한 맛에 양념이 어우러져 묘한 밸런스를 잡아낸다. 이전에 캐놀라인에 몰래 놀러 갔을때 음식점에서 나온 덮밥을 먹은 기억이 난다. 맛은 이것보다 조금 덜한데다가 양까지 미묘해서 그 감각에 자신이 조금 더 많이 한 것 치고는 확실히 잘 되었다. 그렇게 스테이크까지 한 점, 밥과 같이 넣으니 이래서 인간들이 미식에 열광한다 생각하며 만족한 미소를 머금고는 레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서 먹게나. 일단 취미 생활을 겸해서 요리를 배우고 간간히 즐겨 해먹었네만, 남에게 해준건 그대가 처음이네. 인간들이 한 것에 비하면 조금 아쉬울지도 모르겠네만, 한번 내가 제대로 된 요리사인지 한번 검증을 좀 해주겠나?"
어제의 그 무례─블랑 입장에선 그게 무례인지도 모를 것이다.─가 무색하게 블랑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살짝 윙크를 던지며 식사를 권하였다. 물론 레아가 원한다면 지금도 리빙아머들이 바로 미음이나 부드러운 음식을 준비해올 것이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진짜 맛평가를 들어보고 싶다는 것일까, 그는 기대반, 호기심 반 섞인 눈동자로 레아를 바라보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물론 식사가 필요 없는 몸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이렇게 고급진 입맛(?)이 된 이상 그 또한 인간들과 같이 맛에 대해 연구를 하는게 맞을 테니까.
"잘 먹고, 잘 자야 하네. 최소한 이 곳에서 일할 때 만큼은 마음과 몸이 편해야지 효율이 나올테니까. 그래, 쫒길 필요 없는 것이야."
그렇게 가볍게 덧붙이고는 포크를 이용해 스테이크를 한점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확실히 손질 잘된 안심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육즙과 식감 모두 합격점이라고 생각하며 점심은 또 레아에게 뭘 먹여야 할지 메뉴를 고민하게 된 그였다.
기우였을까? 차에 각설탕을 넣는 모습이며 손끝을 튕겨 의자를 움직이는(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연관성이 없는 현상이지만 어제도 같은 일이 있었던 것이나 그가 온갖 소소한 일을 마법으로 다 해낸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마 그의 마법이리라.) 모습이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착각이었나 보다 하고 의자에 앉는데 가벼우면서도 (빛의 바다가 갑작스럽게 평온을 가장하는 인상을 주던 때에 비하면) 자연스러운 투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어 그는 보던 신문을 내려놓고 음식을 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놓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용도 인간처럼 매일 일정 시간 이상을 자야 하는지(레아가 살펴본 문헌에서는 용은 잘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용이 동면을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용이 매일 잔다는 기록은 없었다.)도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그때의 미묘한 파동이 마음에 걸렸다. 잠을 못 이룬 까닭이 혹시 그 동요와 관련 있지는 않을까?
"학교에서의 일 때문입니까?"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학교에서의 일이라고 해 버리면 자기가 엉망진창으로 굴었던 게 떠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건 자살행위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꺼내도 쪽팔릴 판에! 어디로든 숨고 싶은 기분으로 레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두 주먹을 무릎맡에 옥쥐었다.
"..그, 뭔가.... 일이 있으셨던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나중에 ..설명해 준다고도 하셨고...." 말하면서도 궁색했다. 이런 식으로 화제를 돌려 봤자 소용없을 것 같다. 그런다고 내가 저지른 일이 없던 게 되지는 않으니까. 얼굴이 열기로 팽팽해진 게 느껴졌다. 눈을 질끈 감고 잘 안 떨어지는 입을 억지로 움직였다. "학교에서는, ....저, 죄송합니다. 구경..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정말 숨고 싶다. (생각해 보면 여기 온 뒤로 돌이키기 민망한 실수만 연발인 것 같다. 이제 겨우 사흘째인데!) 그렇게 바짝 타드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흑룡은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예사로운-그러면서도 어딘지 즐거운 듯한- 투로 식사를 권할 뿐이었다. 게다가 직접 만든 요리라니 놀랄 노 자다. 여기 와서 본 음식(그가 개발한 마법 기사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이 모두 인간식 음식이긴 했지만, 그런 요리를 용이 직접 했다고? 얼떨떨했다. 용이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받다니 이 무슨 신비 체험이야..? (생각해 보면 학교와 집, 혹은 학교와 기숙사만 오갔다 보니 가족이 아닌 이가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준 것도 처음이다. 그런 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도 딱히 없지만, 사람이 아니라 용일 줄은 더 몰랐다.) 다만 요리 검증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동기들은 맛없다고 투덜거리는 교내 식당의 식사도 레아는 (생선이 나왔을 때 빼곤) 곧잘 먹었으니까. 딱 한 번, 속에 쌀밥만 넣은 샌드위치만은 먹으면서도 황당했지만. 생각하니 목이 타 차부터 들었다. 향긋하고 뜨끈한 액체가 목구멍을 따라 들어가는 감각이 또렷이 느껴지며 속이 훈훈해지는 기분이었다.
"..제 소감으로 검증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그가 한 대로 노른자를 밥에 비비고 고기를 얹어 먹자마자 감탄이 나왔다. 미각이 예리하기보다 둔감한 편이고 그다지 다양한 요리를 먹어 보지 못했는데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확실히 왔다. 씹을수록 맛이 풍부해지는 게 무척이나 고급스러운 느낌이랄까? 그래서 아무지게 꼭꼭 씹어 삼키고는 조악하게나마 소감을 말했다.
"맛있습니다, 굉장히요."
한 입만 먹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맛이라 생각하며 마저 드는데, 심신이 편하도록 잘 먹고 잘 자라는 당부가 들려왔다. 하나하나 살뜰히 마음 써 주는 게 새삼 고마우면서도, 어제 밤을 샌 이에게 듣기엔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앞섰다. 더구나 용의 체격을 생각하면 지금 그의 식사량은 역시 너무 적다. 괜찮을까?
"블랑님이야말로 너무 적게 드시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만 드셔도 지장이 없으신 겁니까?" 말하다 보니 용의 수면 시간은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도 다시금 궁금해져 덧붙였다. "잠도.. 얼마나 주무셔야 하는 건지요?"
>>257-258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확실히 꼭꼭 씹어 먹으면 몸보신은 될 것 같습니다 :) 음식 섭취를 안 해도 되는데도 요리가 취미라니 신기하군요:O 진정한 미식가! 설거지옥은 마법으로 처리하거나 마법 기사에게 맡기려나요(._.)? (부럽다!!) 어쩌면 인간의 요리까지도 연구 분야에 포함시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ㅎㅎ
근데 아침 먹으면서 점심 메뉴 고민이라니 어째 익숙한 모습이군요ㅋㅋㅋㅋ (너무 익숙해서 흠칫할 정도 :|!!) 즈이 애 챙겨 주자고 궁리하는 거라 고맙기도 하고요:D! 블랑님의 마음 씀씀이에 걸맞은 답레가 되었길 바랍니다 :)
오래사니까 지루해서 뭐라도 하려는거 아닐까요! 사실 용들이 죄다 무기력한건 전부 그때문이긴 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벽에 가까운데 거기에 오래 살아! 뭘해도 재미없어!1 그러니까 잠이나 잘래!! 그렇게 모두가 히키코모리가 되어가다가 결국 전부 별의별 취향이 생기는거죠!! 그래서 블랑도 명칭은 고심중입니다. 무슨 이름을 붙여야 잘 붙였다고 소문이 날까? 라는 느낌으로요!! 그래서 지금 몇기 빼고 죄다 용인의 형태로 디자인을 바꾼다음 드래곤메이드(네, 유희왕 드래곤메이드)라고 이름을 붙여야 하나 같은 개그성 생각도 하는 중입니다
"음, 일단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기 이전에, 용의 생태중 일부를 먼저 말해주겠네. 용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더이상 섭식으로 에너지를 채우지 않는다네, 왜냐면...."
그와 동시에 그가 천천히 손을 내민다. 무언가 형상이 점점 잡혀가더니 이내 그의 손 위로 보석의 형상을 갖춰갔다. 그 빛은 어떤 보석보다도 은은하지만 확연한 빛을 내고 있었으며, 그 빛 속에서는 강한 힘이 농축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 누군가가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지금쯤이라면 레아도 눈치를 채지 않았을까? 지금 이 보석이 내고 있는 힘의 파장이 다름아닌 그와 전음을 나눌때의 그 정신 파형하고도 많이 유사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 심장일세."
별 다른 큰 감흥 없이 자신의 치명적인 부분을 겉으로 내밀어보인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은 이었지만 가족 만큼이나 믿고 있다는 뜻인 걸까? 블랑은 그렇게 말하고서는 천천히 자신의 심장을 다시 자신의 안으로 밀어 넣은다음 헛기침을 하고는 레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깐 동안이지만 자신의 몸 바깥으로 심장을 꺼낸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힘을 소모하는 일이었으니까, 인간으로서도 자신의 심장을 직접 꺼내어 보여준다는 기행은 절대로 불가능하리라.
"뭐 잠깐 동안 정도는 바깥으로 보여줄수 있지, 중요한 것은 그 점이 아니지만 말이야. 용의 심장은 거대한 마정석을 극한의 고밀도로 압축시켜 놓은것이라고 보면 된다네. 인간들 말로는 거대한 화로로 돌리는 물레방아 중, 절대로 꺼지지 않는 화로라 봐도 무방할 것이야. 그렇기에 섭식을 함으로서 얻는 에너지가 그다지 필요가 없지. 그래서 용들은 그만큼 수면기를 가지게 된다네. 왜냐하면 그만큼 심장이 성장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용들이 자신들만의 레어에 자리 잡고, 짧게는 몇십년, 길게는 몇백년을 잠들어 있는다고 생각하면 되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그것을 하루단위로 환산하여서 최대한 쪼개서 잠을 자는 것으로 심장의 크기를 조금씩 키워나가는 방향을 가닥 잡았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물론, 그마저도 어떻게 이론상 있던걸 그냥 억지로 끼워맞춰 성공시킨거지만 말이지, 라는 가벼운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를 흘러가듯 하고는 천천히 덮밥을 한입 입안에 넣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혼자 있을때는 아무리 맛있는걸 먹더라도 금새 물리고야 말았는데, 어느순간 가족에게 밥을 해준다는 생각으로 요리를 하니 본인도 만족하게 되는 기분이었다. 거기다가 맛있다고 한다, 물론 어떠한 미사여구도 붙지 아니하였지만 그속에서 느껴지는 진심이란 미사여구는 그 어느때보다도 그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있었다. 이번 점심도 한번 직접 해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메뉴를 고르던 와중, 직전에 하던 이야기 주제가 떠오른 것인지 그가 수저를 놓고 깍지를 낀 채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레아를 바라보았다.
"레아, 혹시 그대의 학교에 이런 학생이 재직중인지 알고 있는가?"
잠깐 숨을 고른 그는 천천히 자신이 떠올린 모습을 구두로 묘사해내기 시작했다. 허리까지 오는 금색 장발에 끝부분을 살짝 컬을 주고, 어느나라 공녀 못지 않은 기품과 몸매와 더불어 아름다운 미모, 하지만 왠지 모르게 차갑고 냉혹함 마저 느껴지는 비취색 눈동자까지. 게다가 그녀의 성격상 아마 자신을 모범생처럼 위장했을지도 모른다는 설명과 더불어 그녀와 만난적이 있냐는 질문까지 덧붙이는 블랑이었다. 적황색의 눈동자가 레아를 직시한다. 그안에 담긴 감정은 다름아닌 [걱정]이었고.
>>263 Aㅏ.. 그래서 전임 대빵님이 인간네 영역을 뒤집어 버리는 초유의 사태까지 터졌나 봅니다:( 뭔가 여러모로 초월적인 게 영생은 안 된다는 거 빼면 그리스 신들 같기도 합니다ㅎㅎ (그리스 신들은 지들끼리 지지고 볶느라 바빠 보인다는 차이는 있습니다만..^ㄷ^a )
유희왕은 못 봐서 지금 처음 들었습니다만.. 남캐형 마법 기사도 있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일괄 메이드면 좀..(._.)a 미묘해질 것도 같습니다ㅋ
원한을 뭐 얼마나 많이 사신 겁니까, 블랑님은?
엇? 그냥 썰풀이여도 됩니다:O 읽는 저야 디테일하면 더 재밌겠습니다만 줄글 길게 쓰기 기 빨리지 않으신지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은 나이를 먹으면 영양분 섭취가 필요 없어진다? 상상도 못한 사실이었으나 그의 커다란 본체가 떠오르자 다행 같기도 했다. 그 거대한 몸을 영양분 섭취로 지탱해야 했다면, 에르네스트 산은 물론이고 용의 서식지 인근에 사는 동물들은 진즉에 멸종하고 말았을 테니까.
그런데 그가 손을 내미는가 싶더니 그 위에 뭔가 나타났다. 서서히 형체를 갖춰가는 그것은 얼핏 커다란 보석 같았으나 보석과는 달라 보였다. 그것은 레아가 이제껏 본 그 무엇보다도 투명해 새까만 색이 아니었다면 공기와 구별하기 힘들 것 같았고, 표면은 각이라곤 없이 매끈한 듯하면서도 미세한 한 면 한 면이 이채롭게 반짝였다. 그런 가운데 보석(?)에서 뿜어져 나와서는 그 주위를 물결처럼 구름처럼 에워싼, 신비스러운 적황색 빛은, 처음에 출입증으로 그에게 말을 건네느라 끙끙대던 때 접했던 그 빛의 바다를 연상시켰다. 어디로 보나 평생 하기 힘들 게 자명한 구경거리이긴 한데 얘기 중에 왜..?
그런 의문을 품을 찰나, 이어지는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기가 막힌 나머지 순간 숨도 안 쉬어졌다. 그의 손에서 심장이란 게 사라지고서야 이게 무슨 상황인가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심장이라니, 공격이라도 당했다간 죽기 딱 좋은 장기잖아. 그런 걸 보란듯이 내보여? (생명체가 자기 장기를 몸 밖으로 꺼내는 게 가능하다는 거부터가 기괴하다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닌 거 같다..) 정령한테 속았을(?) 때 내가 제일 무방비한데 누굴 걱정하냐고 투덜거렸는데, 그거 취소다. 이 용, 진짜 끔찍하게 무방비하다!
"그런 걸 아무한테나 보이면 어쩝니까!? 제가 해코지라도 했으면 블랑님은 죽었습니다!"
거의 사자후를 토했다가 아차 싶어 얼굴을 가렸다. 답답한지 걱정되는지 화가 나는지 헷갈렸다. 대체 뭘 믿고 저런담? 자신을 향한 황당하리만치 무조건적인 신뢰며 뭘 해도 마냥 받아줄 것만 같은 허용적인 태도가 어디에서 비롯된 건지 도무지 감도 안 왔다. 이 혼란스러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흑룡은 태평하게 용에게 식사 대신 수면기가 필요한 원리나 늘어놓았다. 분명 엄청난 정보였지만(어떤 방식으로든 수면 시간의 총량을 맞추어야 성장한다는 것이나, 길게는 수백 년을 자는 용도 있다는 것이 특히 그랬다. 어쩌면 드래곤 슬레이어를 자칭하는 인간 중에 잠든 용을 공격했던 이도 있지 않을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게 현실인가 싶어 마른 세수부터 하게 되었다. 음식을 만들어 주고도 맛있다는 한마디만으로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더 갑갑해 한숨만 푹푹 나왔다.
"그리 좋으십니까? 대접은 제가 받았는데요.." 볼멘소리가 절로 나왔다. 무슨 아낌없이 주는 나무도 아니고. 천 년 넘게 살았으면서도 이렇게 퍼 주는 성격이면, 꿍꿍이 있는 지성체한테 걸려서 고생을 해도 수십 번은 했겠다. "인간한테든 용한테든 다른 종족한테든 이용당하다 낭패 보신 적 없으십니까?"
그런 적이 없어서 마냥 베푸는 건지, 그런 적이 있는데도 천성이 저런 건지 모르겠다고 혀를 내두르던 중 한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혹시 이 용, 인간처럼 타자와 교류하고 친밀감을 쌓고픈 욕구가 있는 걸까? 여태 봐 왔던 기록에 공통적으로 용이 군집 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쓰여 있어서 용은 당연히 독자적으로 사는 생명체이겠거니 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건가? 하기야 그의 말대로면 용도 대표며 규칙을 정해 가며 동족과 일종의 사회적 교류를 하기는 하는 모양이니, 인간 수준으로 사회적 욕구가 강한 용도 있을 법은 하다. 그런 성향인데 가족을 만들 기회는 없었다면(외형 때문에 결혼은 무리였다고 했으니까) 타자와의 교류에 혹하는 건 당연한 결과일지도.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쉽게 신뢰하고 정을 주다간 다치기도 쉬울 것 같은데. 난감한 분이네.
어쩐지 목이 말라 와 다시금 차를 넘기는데, 흑룡이 돌연 심각한 표정을 띠더니 어떤 용학 생도에 대해 물어 왔다. 듣자니 올해 연구원들 사이에서도 화제에 올랐던 그 생도다. 어울려 보고 싶은데 어쩐지 말을 못 걸겠다던 연구원만 몇 명이더라..? 들을 땐 실소가 나왔으나, 언젠가 먼 발치로 스쳤는데도 절로 눈길이 갔던 이후로 왜 생도들뿐만 아니라 연구원들까지 난리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흑룡이 그 생도는 어떻게 알까? 그런 의문이 스치자마자 (흑룡이 인간으로 변한 모습을 막 보고서) 눈에 띄게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는 용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세상에, 바로 앞에 용이 있었던 거야? 연구원들 이제껏 헛짓 했네.. 속으로 농담 반 자조 반인 한탄을 하던 중 그의 시선에 흠칫했다. 따뜻한 색채의 눈동자가 바람에 일렁이는 촛불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덩달아 긴장이 되어 마시던 차를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