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은 예상했던 대로 혜성이의 반응이 오자 작게 키득키득 웃었다. 하지만 제가 귀엽다거나 자신은 그렇게 말해도 괜찮다거나 하는 말이 이어지는 것은 정말 사귀기 초반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진일보에 가까웠기에 조금 신기하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도 귀엽다는 말은 가끔 해야지. 가끔 해야 뭔가 반응이 재미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아람은 빨간색이 무난해서 좋다는 말에 아람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혜성에게 씌워주려고 했을 것이었다. 혜성이 쓰든 쓰지 않든 "머리색이랑 반대라서 잘 어울리는 것 같아."라고 말할 것이었고.
아람은 혜성이 분홍색 모자를 추천하자 머리에 그 모자를 써 보았다. 거울을 보니 연분홍색 모자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람이 빨간색 빵모자를 자신에게 씌워주려고 하자 혜성은 피하지 않고 그 모자를 받아 자신의 머리에 썼다. 빵모자인만큼 사이즈는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근처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며 그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고 이어지는 아람의 말에 그는 괜히 기분이 좋아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꾹 이겨내면서 애써 평소의 톤으로 이야기했다.
"머리색? 확실히 대조되긴 하지만 그런 부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역시 이런 것에 되게 민감하고 많이 아는구나. 너."
꾸미는 것을 좋아하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까. 그렇다면 역시 이 모자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아람이 모자를 쓰는 것을 바라봤다. 분홍색 빵모자는 역시 아람의 느낌와 너무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봄의 일이 떠오르기도 했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웃으면서 잘 어울리냐는 그 말에 혜성은 멍하니 아람을 바라보다가 헛기침 소리를 냈다.
"어흠. 쿨럭. 쿨럭. 잘 어울려. ...뭔가 되게 예쁘네. 모자 쓰니까 말이야. 모자 벗어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아, 아무튼 잘 어울린다는거야! 잘! 진짜 예뻐!"
그것만큼은 확실했기에 그는 괜히 그 부분을 강조하면서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신이 쓴 모자를 벗고 그녀에게서 모자를 달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그렇다면 이 두 개로 사자. 아마 겨울동안에는 모자..많이 쓸테니까 가급적이면 난 이것으로 쓸게. 너랑 만날 땐."
이전에 쓴 모자를 버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아람과 만날 때는 지금 사는 이 모자로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괜히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그는 얼굴을 잠시 붉히더니 다시 헛기침 소리를 내며 이야기했다.
"사실 널 만나고 연기를 배우기로 마음먹지 않았다면, 아마 경영학과로 진학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어." 아람은 배시시 웃었다. 사진 찍히는 것도 혜성으로 인해 좋은 기억으로 잔뜩 남았다. 어머니에게 제 욕심을 말할 용기도 생겼었다. 뭔가 혜성을 만나고 난 이후로 좋은 일만 잔뜩이었던 것 같아.
아람은 여전히 칭찬에 서툴으면서도 많이 늘은 혜성의 모습에 쿡쿡 웃었다. 귀여워.
"고마워."
아람은 혜성이 모자를 달라는 것에 모자를 벗어 주며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사주려구? 나도 아마 자주 쓸 테지만 코디에 따라 안 쓸수도 있어? 안 쓰고 왔다고 섭섭해하지 않기야?"
물론 혜성이 섭섭해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아니 섭섭해 할지도? 어쨌든 미리 선전포고를 해두며 말했다. 그리고 봄의 데이트 약속을 먼저 잡는 혜성을 보며 사르르 웃었다.
배시시 웃는 아람을 바라보며 혜성 역시 소리없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귀엽다. 예쁘다. 볼 때마다 생각하지만 저 배시시 웃는 얼굴이 특히나 더 예쁘고 귀엽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끌어안아주고 싶은 충동이 살짝 들었으나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렇기에 그는 꾹 참기로 하며 괜히 다른 곳을 바라보며 손으로 제 얼굴을 부채질했다. 특별히 무슨 말을 하진 않으면서.
자신이 칭찬을 하자 아람이 쿡쿡 웃었고 혜성은 그 소리를 듣기 무섭게 괜히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뭔가 살짝 분한 탓이었다. 기분 좋아서 웃는다기보다는 조금 다른 의미로 웃는 것 같다고 느낀 탓이었다. 물론 기분이 좋아서 웃는 것도 있기야 있겠지만.
그러다 아람이 모자를 벗어주자 혜성은 그 모자를 챙겼다. 사줄 거냐는 그 말에 혜성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야 내가 사자고 한 거니까. 당연히 내가 사야지. 그리고 아무리 나라도 매번 쓰고 오라고 이야기를 하진 않을 거거든? 때로는 모자를 안 쓰고 올 수도 있는 거고, 모자도 원래 계속 쓰던 이나 계속 쓰는 거지. 안 쓰다가 계속 쓰라고 하면 안 쓰고 올 때도 많아. ...그러니까 그런 것으로 섭섭해하진 않아. 나 참.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아무리 그래도 그런 것으로 삐지진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계산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는 와중 사르르 웃는 아람의 모습과 말에 혜성은 저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그럼 나도 그때는 이 모자를 꼭 쓰고 가야겠네. 이전에 쓰던 모자가 아니라."
같이 쓴 모자이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고, 같이 쓰면 더더욱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모자를 계산한 후에, 분홍색 모자를 아람에게 씌워주려고 했다. 그리고 이어 자신의 모자도 쓰려고 했다.
"가볼까? 기왕 나온 김에 조금 더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싶긴 한데... 혹시 가고 싶은 곳 있어?"
/돈은 꼬박꼬박 주니까...괜찮은 거 맞는거지? 아람주..(흐릿) 아무튼 돈은 준다고 하니 다행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화이팅이야!!
아람은 혜성의 삐죽이는 표정을 보면서 아무래도 귀여워 한 것이 티가 났나 싶었다. 뭐어 티가 났더라도 어쩔 수 없는 걸.
"응. 고마워. 잘 쓸게."
아람은 히히 웃으면서 계산대로 향하는 혜성의 뒤를 따라갔다. 오늘 카페는 내가 계산해야지, 생각하면서. 아람은 혜성의 싱긋 웃는 표정에 기분이 좋아졌다. 혜성이 은근 웃음에 박하다니까. 웃고 싶을 때 참지 말고 웃으면 좋을텐데.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물론 말하면 더 신경써서 안 웃을 것 같으니 속으로만 생각했다.
"좋아. 그 땐 커플 사진도 찍자."
아람은 혜성이 모자를 씌워주는 것을 기다리며 작게 웃었다. 뭔가 이렇게 나눠 쓰니까 정말 커플 티가 확 나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벌써 나가려고? 아직 구경도 다 못했잖아!"
아람은 아쉽다며 혜성의 손을 잡으려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둘러보더니 한 쪽으로 혜성을 이끌었을 것이었다.
"이거 유행이 지나긴 한 건데 있네!"
한 때 유행이었던 토끼귀 모자였다. 아람은 잠시 모자를 벗고 토끼귀 모자를 썼다. 밑으로 내려온 발바닥 같은 부분을 꾹 누르면 축 쳐져있던 토끼귀가 위로 바짝 올라갔다가 손을 떼면 축 쳐졌다. 아람은 웃으면서 귀를 쫑긋쫑긋 했다가 이내 혜성에게도 써보라는 듯 내밀었다. 기대 어린 눈빛을 보내면서.
모자를 샀으니 나갈까 싶었지만 아람의 생각은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었다. 나가지 말고 구경을 좀 더 하자는 듯이 이야기를 하더니 제 손을 잡고 자신을 이끄는 것에 혜성은 얼떨결에 그녀에게 끌려갔다. 물론 힘을 주면 역으로 끌고 갈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이곳을 조금 더 구경한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었다.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는데 딱 그 말대로네. 남자는 쇼핑이 끝나면 바로 나가려고 하지만, 여자는 그때부터 시작이라고 말이야. 뭐, 네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자신은 모자를 다 샀으니 이제 용건이 끝났으니 퇴장하나, 아람은 오히려 구경을 하겠다면서 자신을 이끌고 있으니 딱 그 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혜성은 일단 근처를 두리번두리번 바라봤다. 그러다 아람이 어느 모자를 가리키자 혜성은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 저게 아직 있긴 있구나."
토끼귀 모자. 밑으로 내려온 부분을 누르면 토끼귀가 위로 바짝 올라가는 귀여움 덕분에 한때 엄청나게 유행했던 그 모자였다.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혜성은 괜히 반가움이 들어 가만히 그 모자를 바라봤다. 그 와중에 아람이 그 모자를 쓰고 귀를 쫑긋쫑긋 세우는 모습이 귀여워서 혜성은 괜히 얼굴을 붉히면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러는 와중 자신에게 모자를 내미는 모습이 그의 눈에 살짝 들어왔다. 그리고 기대가 어린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혜성은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냈다.
"뭐, 뭐, 뭐. 어떻게 해달라고? 나에게. 설마 그거 나보고 쓰라고? 내가 써봐야 하나도 안 귀엽거든?!"
하지만 저렇게 기대 어린 눈빛을 보이는데 어떻게 그가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는 빵모자를 벗은 후에 그 토끼 귀 모자를 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오는 부분을 꾹 잡아당기면서 박자를 맞춰 귀를 움직였다. 너무 빠르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어느 정도 몇 번 그렇게 쫑긋쫑긋 귀를 세우다가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모자를 벗었다.
"나 참. 돼, 됐지?"
/으앗... 아람주 어서 와라! 나도 갱신할게! 그리고 일 고생했어! 이제 푹 쉬어!! 8ㅁ8
아람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리고 혜성이 자신이 보여준 것을 이해하자 활짝 웃었다. 이렇게 구경하는 것도 충분히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혜성이 마지못해 모자를 써주자 아람은 크게 기뻐했다.
“ㅡ!”
귀여워! 아람은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양 손바닥을 뺨에 대고 혜성을 반짝반짝 바라보는 눈빛에 아마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을 것이었다. 혜성의 머리 위에서 귀가 쫑긋쫑긋 하는 게 왜 이렇게 귀여운지. 혜성이 모자를 벗자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더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아람은 이번에는 혜성을 끌고 이동해 이번에는 검정 중절모를 써 보았다. 손으로 총모양을 만들어 보이며 “마피아 같지 않아?” 하며 장난을 친다. 총을 혜성에게 겨누며 “빵!” 하고 쏘고는 장난스럽게 웃기까지 한다.
“빵모자 말고 다른 좋아하는 모자 있어?”
주변에는 다양한 모자들이 있으니 충분히 구경할 수 있을 만했다.
/밀린 집안일도 하구 맛있는 저녁도 먹고 왔다!! 곧 운동하러 끌려갈 것 같지만.........(살려줘)
아람의 눈빛을 혜성은 애써 회피하며 입을 꾹 다물었다. 얼굴이 붉어진 것도 모자라서 괜히 오른발을 땅에 콕콕 찌르는 등, 살짝 초조해하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물론 기분이 안 좋거나 짜증이 나거나 급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부끄러움이 상당수치 올라올 때 나타나는 버릇이자 습관이었다.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혜성은 헛기침만 여러 번 할 뿐이었다.
"...뭐, 뭘 그렇게 보고 그래? 말해두는데 귀여운 것은 너였거든?!"
괜히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다른 것을 보러 가자는 듯, 앞장서서 가려다가 이내 아람에게 또 손이 잡혀 끌려가기 시작했고 혜성은 순순히 아람에게 천천히 끌려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아람이 검정 중절모를 썼고 자신을 향해 총 모양을 만든 후에 빵 쏘자 혜성은 두 눈을 깜빡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심장 부분을 잡고 "으윽" 소리를 내다가 털썩 쓰러지는, 나름의 연기를 선보였다. 물론 조금 어색했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털썩 쓰러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혜성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3분도 지나지 않아 그는 벌떡 일어섰고,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다.
"...그, 그렇게 귀여운 마피아가 어딨냐. 마피아는... 뭔가 더 살벌하고 무서운 이들이라고. ...그러니까 마피아 같은 거 하지 마."
괜히 투덜투덜거리면서도 결국 귀엽다는 표현만큼은 확실하게 하면서 혜성은 이내 들려오는 물음에 가만히 생각했다. 빵모자 말고 다른 좋아하는 모자. 그다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답은 하지 못하고 그는 잠시 눈길을 돌려 여러 모자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커다란 밀짚모자를 집어들고 자신의 머리에 썼다.
"이런 모자도 나쁘지 않겠지만... 역시 뭔가 나보다는 너에게 잘 어울릴 것 같네. 이 모자는."
이어 그는 모자를 벗은 후에 아람의 머리 위에 조심스럽게 씌워줬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으면서 역시 모델이 좋으니 뭐든 다 잘 어울린다고 중얼거리면서 그는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아이고...운동까지 하러 가는구나. 나는 나대로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왔다! 오리고기 맛있어!!
부끄러워하는 모습도 귀여워. 어쨌든 혜성은 아람을 따라 쫓아왔고 아람의 장난까지 받아주었다. 진짜로 쓰러지기까지 할줄은 몰랐기에 아람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이제 행동대장인 최혜성까지 쓰러뜨렸으니 이 조직을 무너뜨리는 건 순식간이겠군."하면서 손가락 총 끝을 후 불었다가 웃을 것이었다. 물론 쓰러진 혜성이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겠지만.
"마피아 같은 거 안 해~ 나도 안전한 게 좋아."
아람은 키득키득 웃었다. 혜성이 밀집모자를 가져와 머리에 쓰자 분위기가 갑자기 여름이 된 것 같았다. 혜성이 모자를 씌워주자 맑게 웃었다.
"여름 때 생각난다. 계곡 갔었던 거. 다음에 바다 갈 때 밀집모자 챙겨가야겠어."
반짝이는 바다 풍경과 휴양지에서 입을 법한 원피스, 그리고 밀집모자. 뭔가 엄청나게 좋을 것 같지.
아람이 연기를 하는 것에 맞춰 혜성은 좀 더 쓰러져있다가 아람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뒤늦은 부끄러움이 확 올라왔기에 혜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꾹 입을 닫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투덜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내고 그에 아람이 대답하자 혜성은 힐끗 눈동자를 돌려 아람을 바라봤다. 마피아 같은 것은 안한다는 말에 그는 괜히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참고로 행동대장 최혜성을 무너뜨린 것은 총알이 아니라 귀여움이야."
너도 좀 부끄러움을 느껴보라는 듯, 괜히 그렇게 말을 했지만 과연 아람에게 통할지는 혜성도 알 수 없었다. 그녀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뿌듯하게, 혹은 장난스럽게 웃을 것 같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소심한 복수였다.
한편 자신이 씌워준 밀짚모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맑게 웃으면서 아람이 하는 말에 혜성은 절로 머릿속으로 그 모습을 그렸다. 아마 청순한 느낌이 강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이 청순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필시 그때의 그녀는 더욱 맑고 청순한 느낌이 강할 거라고 생각하며 혜성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나는 카메라를 챙겨가야겠네. 이것저것 찍게."
이것저것이 정확히 뭔지는 말하지 않으면서 혜성은 밀짚모자를 다시 벗긴 후에 제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러다가 저 편에 있는 캐릭터가 그려진 모자를 바라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런 모자도 있구나. 요즘은 애니메이션이나 그런 것을 잘 보진 않아서 뭐가 유명한진 잘 모르겠지만... 너는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라던가 있어?"
예전에는 어떤 어려진 탐정 만화를 많이 봤지만 요즘은 그것도 아니라고 하며 그는 괜히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TV에서 하는 것이었다. 극장에서 하는 애니메이션은 아주 가끔 끌리면 보러 가긴 하니까.
/안녕! 아람주!! 오늘 하루는 잘 보내고 있을까? 일단 답레를 남기고 나는 가벼운 운동을 하고 와야겠어! 체력 관리 해야한다! 흐읍!! 아무튼 하루 화이팅이야! 혹은 하루 수고했어!
혜성의 입장에서는 아람이 부끄럽기를 바라겠지만 아람은 이런 공격에 끄떡 없었다. 뻔뻔하기 때문일지 자신이 예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일지. 혜성과 사귀기 전에는 예쁘다는 말을 퍽 좋아하진 않았지만 혜성을 만나고 닌 뒤로는 그런 말도 꽤 좋아졌다. 자신의 모습도 혜성이 좋아하는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당연하지.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ㅡ."
아람은 혜성이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꽤 귀여운 캐릭터들이 프린트 된 모자들이 잔뜩이었다.
"좋아하는 캐릭터? 유명한 건 몇 알지만 나도 잘은 몰라."
대중적으로 캐릭터 상품으로 쓰이는 캐릭터들을 몇 꼽아 이야기 할 뿐 딱히 관심있는 분야는 아닌 모양이었다.
아람은 혜성을 데리고 또 모자들을 구경하다가 이번에는 동물 얼굴 모양의 모자들이 잔뜩 나오는 곳에서 멈췄다. "이거 써 봐!" 하면서 내민 것은 귀엽지만 조금은 험상궂게 생긴 늑대 모자였을 것이었다. 쓰면 새빨간 입 안에 얼굴이 보이는. 혜성이 그것을 쓰면 아람은 그 사이에서 빨간 망토 모자를 찾아 썼을 것이었다.
/어제 열심히 일하고 친구랑 술한잔 하고 뻗었지~~~ 지금은 일하구 있다! 얼른 퇴근하고 싶어어어엉 혜성주 어제 운동했구나! 멋있어멋있어! 운동 중요하니까 꾸준히 해야햇! 오늘 하루도 힘내!
절대 그건 아니라는 듯이 혜성은 괜히 투덜거리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하지만 그대로 말을 끝낼 생각은 없었는지 작은 목소리로 "누구 아니면 어림도 없거든?" 그렇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 목소리가 아람에게 들렸을진 혜성도 알 길이 없었다. 딱히 반응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는 일부러 작게 혀를 차면서 다른 모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게. 날씨가 맑으면 좋지. 배경도 좋고, 찍는 것도 예쁘겠고."
아람의 말에 혜성은 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확실히 사진을 찍자면, 그리고 즐겁게 놀려면, 거기다가 그곳에 바다라면 날씨가 좋고 파란 하늘이 좋은 법이었다. 날씨가 덥지 않으면 더 좋겠지만, 그것까지 기대하긴 어려웠다. 애초에 날씨가 덥지 않으면 어떻게 여름이겠는가. 그것은 감안하고, 벌레가 많지만 않길 바라며 그는 괜히 눈을 감고 그 풍경을 그리다가 다시 눈을 떴다.
캐릭터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았기에 혜성은 굳이 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허나 그러는 와중 자신에게 아람이 이걸 써보라고 모자를 내밀자 혜성은 그 모자가 뭔지 확인했다. 어딜 봐도 험상궂은 늑대 모자였다. 그리고 그 와중에 빨간 망토 모자를 찾아서 쓰는 아람의 모습을 바라보며 혜성은 자신이 쥐고 있는 모자와 아람이 쓴 모자를 번갈아 바라봤다.
"뭐야. 잡아먹어달라는거야? 너."
이거 아무리 봐도 늑대와 빨간 모자 이야기가 아닌가. 연기를 좀 해야하나? 그렇게 고민을 하던 혜성은 일단 모자를 썼다.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빨간 모자는 늑대가 잡아먹을테다!! 우와아앙!"
동화 속에서도 그런 내용이지 않던가.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긴 했지만, 아람처럼 연기에 익숙한 것도 아니고 무대 체질도 아니었기에 그의 연기는 꽤 어설펐고 이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이어 그는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하, 하지만 귀여우니 봐준다. 할머니 집에나 가. 훠이. 훠이."
/어제는 나름대로 알차게 보냈구나! 친구들과 술 한잔 하는것도 중요한 법이지! 난 주말에 친구들과 1박 2일로 놀러갈 예정이지만 말이야! ㅋㅋㅋㅋㅋ 그래서 주말은.. 아마 못 올 것 같네. 아람주도 주말은 푹 쉬길 바라! 아무튼 난 오늘 하루도 힘냈너! 아람주도 하루 화이팅이야!
장난기 어린 지르는 비명에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시선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눈동자를 빠르게 옆으로 굴렸다. 당연히 이곳을 보는 이들이 있었다. 물론 크게 관심을 가지기보단 아. 커플인가보다. 식으로 가볍게 넘기는 모양새였지만 그럼에도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었는지 그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나마 정면에서 보는, 이를테면 아람이 서 있는 곳이 아니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혜성에게는 다행이라면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러다가 할머니 댁까지 데려다달라면서 손을 잡는 그녀의 행동에 그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지만 그럼에도 손은 놓기 싫다는 듯이 손을 꼬옥 잡았다.
"늑대에게 데려다달라고 하다니. 진짜 큰일나고 싶은가보네."
오늘은 사냥꾼이 없을 수도 있는 거 알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역시나 동화내용을 떠올리면서 하는 말이었다. 동화에 따르면 늑대에게 잡아먹힌 할머니와 빨간 모자를 구해주는 것은 사냥꾼이었으니까. 책에 따라서는 나무꾼이기도 했지만.
"할머니 집은 모르겠고, 나중에 늑대 굴은 데려가줄게."
언제 집으로 한번 초대하겠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면서 혜성은 쓰고 있던 모자를 살며시 벗었고 원래 자리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비어있는 손으로 제 뺨을 긁적이면서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정말 연기하는 이들은 대단하긴 하구나. ...난 잠깐 쏠리는 지금 이 시선도 은근히 신경쓰이는데 말이야."
/앗...일요일 당직근무라니...8ㅁ8 안돼! 사장님!! 이게 무슨 짓이에요!! 그래도 월요일에는 쉬는거지? (주륵) 아무튼 오늘 하루 정말로 수고 많았다!! 답레를...너무 늦게봤어..(털썩)
"...뭐, 그렇긴 한데 전에도 말했지만 네가 부담스럽다면 데려가거나 할 생각은 없어. 그냥 사진만 보여줘도 되니까."
애인의 부모님을 만난다는 것은 절대로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물론 자신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뭔가 되게 부끄럽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겠는가. 자신의 부모님은 확실히 아람을 보고 싶어하지만 그 정도는 자신이 잘 커버할 수 있었기에 혜성은 무리할 것 없다는 듯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애초에 아람을 찍은 사진은 많았으니 그 사진 중 몇 장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하지 않겠는가. 사실 그것도 있었지만 부모님과, 특히 자신의 어머니와 아람이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지가 불안한 탓이 컸다.
한편 자신의 손을 흔들면서 아람이 자신에게도 익숙해져야할 거라고 말하자 혜성은 한숨을 약하게 내쉬었다. 너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받는 것은 영 익숙치 않고 내키지도 않았지만 결국 자신이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반대편 손으로 제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야 할 것 같긴 한데... 아. 몰라.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애초에 올해 초만 해도 여자애와 이렇게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으니까."
그때에 비해서 지금 자신이 변한 것처럼, 자신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변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가만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이번에는 자신이 아람을 천천히 끌었다. 그러다가 귀를 가릴 수 있는 검은색 모자를 발견하고 거기서 멈춰섰다. 그러다가 아람을 바라보며 그 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건 하나 살래? 나야 상관없긴 한데, 겨울에 이런 거 쓰면 꽤나 따뜻하거든. 특히 귀가 시리지 않아."
/비상...안된다. 비상은!! 절대로 안된다! (도리도리) 아람주의 월요일이..아무런 일도 없고 편히 쉴 수 있는 날이 될 수 있길 바라겠어!
"물론 알고 있어. 네 얼굴. 그러니까 널 데리고 오라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 참."
사람 속도 모르고 말이야. 그렇게 혜성은 작게 투덜투덜거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싫은 것은 아니었는지 진심으로 짜증내거나 싫어하는 모습은 그에게선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선택은 아람이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천천히 생각하고 괜찮으면 얘기해주고, 영 부담스러우면 얼마든지 거절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혜성은 답을 끝냈다.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아람이 가고 싶어해야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조건인 모양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더 좋지만 말이야. 일단 나는 그래."
사귀는 것을 미리 예상했다면 두근거림이나 설레는 마음이 지금보다는 덜하지 않았을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드라마틱했고, 극적이고 지금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혜성은 생각했다. 괜히 잡고 있는 손에 더욱 힘을 주면서 혜성은 놓지 않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그녀의 손으로 보냈다.
아람이 모자를 쓰자 혜성은 아람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귀가 적절하게 덮이는 모습도 그렇고, 모자의 재질도 그렇고 상당히 따뜻할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물론 자신은 그다지 필요는 없긴 했지만 역시 아람에게는 하나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잘 어울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뭔가 귀 부분이 살며시 내려와서 가려지는 것이 괜히 더 귀엽기도 하고. 그리고 엄청 따뜻할걸? 그 모자 쓰는 이들도 은근히 많다고 하잖아?"
올해 겨울은 특히나 춥다고도 하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 와중에 추운 것이 너무 싫다고 투덜거리는 아람을 바라보며 혜성은 작게 웃음을 터트리다가 빠르게 표정을 관리했다.
"추우면 얼마든지 얘기해. ...뭐, 내 품에서 따뜻하게 데워주지 못할 것도 없긴 하니까..."
자유로운 손으로 자신의 품을 톡톡 손으로 가리키던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빠르게 얼굴을 옆으로 홱 돌렸다. 그러면서 작게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누구 씨의 전용석이래. 여기. 누구 씨인지는... 비밀이지만."
/군밤 아저씨가 쓰고 다니는 디자인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 은근히 작년 겨울에 그런 모자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더라구! 실제로 나도 쓴 적이 있는데 귀가 굉장히 따뜻해서 좋았어! 물론 그렇다고 추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흑흑... 그럼 나도 같이 기도해줄게! 정말로 별일 없을거야!
물론 자신을 칭해서 한 말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혜성은 굳이 그렇게 이야기했다. 대충 어떤 의미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내심 자신의 비중이 조금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으나 그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진 못하고 대충 그렇게 얼버무리며 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당당하게 내 덕이 컸지? 라고 말하기엔 그는 그다지 뻔뻔하지 못했다.
자신이 추천했던 모자를 사야겠다고 하는 말에 혜성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던 와중 그녀가 반격하듯이 비밀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는 말을 하자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중얼거리듯 이야기했다.
"그야 누구 씨는 당연히 알겠지."
그 누구 씨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는 것과 마찬가지인 말. 그 말을 조용히 남기며 혜성은 아람이 모자를 계산하는 것을 기다렸다. 그러다 그녀가 모자 계산을 끝내자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아람을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좀 더 볼 거야? 여기?"
좀 더 보고 싶다면 봐도 상관없지만, 볼 것이 없으면 이만 나가자는 의미를 담아 혜성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가만히 아람을 바라보며 답을 기다렸다. 어느 쪽이더라도 혜성은 군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을 것이다.
/.....흑흑...나 어릴 땐 이 정도로 춥진 않았던 것 같은데! 물론 그때도 춥긴 했지만 말이야. 그리고..지역마다 다를 수도 있으니까! 내가 사는 곳은 더울 땐 엄청 덥고 추울 땐 엄청 추운 곳이라서...ㅋㅋㅋㅋ큐ㅠㅠㅠㅠ 그래서 그런 모습이 있었던 것일지도 몰라!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듯이 혜성은 괜히 툴툴거리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일단 저렇게 말하니까 자신이 영향을 끼친 것도 있다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터져나올 것 같아 혜성은 입꼬리에 힘을 꽉 줬다. 옆에서 보면 대체 왜 저렇게 애쓰나 싶을 정도로의 그의 입꼬리는 보기 좋게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한편, 아람이 다른 사람들도 다 알지 않겠냐는 말에 혜성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얼굴을 붉히면서 옆으로 시선을 회피했다. 역시 이런 말은 하는 것이 아니었나. 뭔가 신이 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혜성은 아람을 힐끗 바라보다 홱 눈을 다시 옆으로 돌렸다. 귀엽긴 한데 조금은 얄미웠고, 그러면서도 사랑스러웠다. 참 복합적인 심정만 계속 들어 그는 괜히 뚱한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이내 도리도리 저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귀엽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기로 하며.
이어 아람이 계산을 마치자 혜성은 자신의 몫인 빨간색 빵모자를 챙겼다. 이것을 쓸까, 말까 고민했지만 지금은 쓰지 않으며 혜성은 그저 그 모자를 떨어뜨리지 않게 잘 챙겨들 뿐이었다. 그러다 아람의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였다.
"...굳이 공부하러 가야 해? 오늘?"
물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기말고사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데이트를 하는데 굳이 공부를 해야하냐는 의미를 담아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혜성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긴 한데... 혹시 알아? 데이트...조금 더 해주면, 남자친구 성적이 확 오를지. ...뭐, 검토한 적은 없으니까 근거나 데이터는 없지만."
공부보단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정말로 간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허나 그러면서도 눈동자는 데굴 굴려 아람을 가만히 주시했다.
/아앗..부럽다. 평범한 곳이 어디야!! 그런 곳이 얼마나 좋은데! 여긴..여름만 되면 죽겠다..흑흑... 올 여름도..(주륵) 그리고 아람주도 마찬가지로 하루 수고했어!!
자신의 물음에 무슨 소리냐는 듯이 아람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혜성은 속으로 '아. 안되나.' 라고 중얼거렸다. 하기사 시험이 코앞인데 공부를 어떻게 안한단 말인가. 어쨌건 학생에게 있어서 성적은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성적이 나쁘면 좋은 대학을 갈 수도 없고, 여러모로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곧 아람이 웃음을 터트리며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와 오뎅을 먹고 가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자 혜성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뎅국물? 확실히 겨울에는 오뎅국물이 최고긴 하지. 좋아. 뭐, 네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언제나처럼 적당히 구실을 만들면서 혜성은 괜히 미소를 지었다. 아람과 데이트를 좀 더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그리도 기분이 좋은 것일까. 이어 맞잡은 손을 아람이 흔들자 혜성 역시 그에 맞춰서 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공부는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그는 괜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입시가 빨리 다 끝났으면 좋겠어. 아직 시작도 안했는데 왜 1년 뒤가 이렇게 아득하게 느껴지는걸까. 진짜 고3 겨울방학이 오긴 오는 것일지도 궁금해지네."
하지만 아람과 함께라면 그 길고 긴 순간도 어느 순간 훅 지나가게 될까. 일단 발걸음을 천천히 움직이며 혜성은 아람을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한번만 말할 거니까 제대로 들어. 재방송 안할 거니까. 그러니까 말이지. 음."
이어 혜성은 뭔가를 말하려는 것처럼 괜히 뜸을 들이기 시작했다. 허나, 그렇게 오래 시간을 끌 생각은 없다는 듯이 그는 이어 아람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쭉 옆에 있어준다면 힘낼 수 있을 것 같아. 고3생활도. ...아니. 뭐, 그렇다고 공부 시간 줄이고 만나자는 것은 아니고... 대, 대충 무슨 의미인진 알지?! 그럼 그 뜻으로 알아들어. 알았지?"
/ㅋㅋㅋㅋㅋㅋ.... 괜찮아. 이제 익숙해졌어. 정말 어느 순간부터 여기가 확 더워져서 날씨가 대체 왜 이러나 싶을 정도라니까. 추위도 마찬가지고..올해도 역대급 추위라는데..과연 어떻게 될런지. 일단 두고봐야 알겠지만!
솔직히 이런 말을 하는 것에 익숙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쉽게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혜성은 어떻게든 표현하려고 했다. 아람이 자신에게 솔직하게 표현하는만큼, 자신도 솔직하게 포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성격이 성격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생각보다 자신이 부끄러움이 많은 것 뿐인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 그렇기에 방금 한 말도 그로서는 꽤나 용기를 쥐어짜내서 한 말이었다. 애써 부끄러움에 눈을 돌리고, 애써 덤덤한 척하고.
이내 아람의 배시시 웃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손을 꼬옥 잡으며 오래오래 같이 있자는 말에 혜성은 고개를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물론 그 오래오래가 얼마나 갈지는 알 수 없었다. 물론 오래가면 좋기야 하겠지만, 매사 항상 그렇게 좋게 이어지는 일은 없다고 하지 않는가. 당장 고등학교때 사귄 커플이 결혼까지 가는 일은 잘 없다는 말도 있고. 하지만 혜성은 그런 사실들을 지금은 다 부정하고 싶었다. 자신과 아람이라면... 어쩌면 정말로 오래오래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넌지시 그녀에게 물었다.
"...네가 말하는 오래오래는 언제까지야?"
물론 답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으나, 그럼에도 혹시 답해주지 않을까 나름대로 기대를 하며 혜성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다 가게 밖으로 완전히 나오자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혜성은 가만히 모자를 바라보다가 손으로 가리켰다.
"춥지 않아? 어서 모자라도 써. 그 귀 막아주는 모자 말이야."
빵모자도 나름 따뜻하긴 했으나 귀를 가릴 수는 없었기에 따뜻함으로 비교를 하자면 당연히 귀를 막아주는 그 모자가 최고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혜성은 다시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춥기도 하고, 아람이 추위를 타기도 하니 빠르게 이동해서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일단 포장마차에 빨리 가자. 너무 추우면 이야기하고. ....그.. 뭐냐. 전용석 지금 비어있으니 말이야."
/.....8ㅁ8 나도 추운 거 별로 안 좋아해! 물론 그렇다고 추위 막 타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언제부턴가 추운 것이 아니라 아파졌어. 겨울이..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지. 이게 지구 온난화의 위력인가! (맞음) ㅋㅋㅋㅋㅋ 맞아. 이제 슬슬 단풍이 물들 시기지. 정작 내가 사는 곳은 아직 단풍이 물들지 않았어. 그래도 10월달이 되면 물들테니까 그 시기만 기다리는 중이야!
아람은 혜성이 말하는 뜻이 이런 것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것도 답변이 되지 않았을까? 동화에 나오는 오래오래는 결혼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을 입밖에 내기에는 자신이나 혜성이나 너무 어렸고 철없는 약속이 될 것 같아 싫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응. 그래야겠어.”
하고 아람은 모자를 썼다. “따뜻하다.” 한층 나아졌다는 듯 표정이 방금보다는 좋아졌다. 물론 추운 것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아람은 혜성을 따라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응, 너무 추우면 꼭 이야기할게.”
아람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물론 꼭 껴안고 걸으면 좋겠지만 일단 빨리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기에 꾹 참았다. 이런 말도 곧잘 하고 혜성을 처음 사귀었을 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 아닐까 생각해버린다. 물론 예전에도 귀엽고 지금도 귀엽지만!
/좋은 아침!!!! 오늘도 하루 힘내기야~~ 나는 어제 야간근무여서 오늘은 푹 쉴 예정~!!! 지구 온난화.....(흐릿) 길가에 단풍은 아직 멀었다 싶은데 은근 산은 단풍이 빨리 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더라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의 오래오래. 그야말로 끝없이 계속 쭉 이어지는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생각보다 아람은 길게 보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가. 그 답을 내기에는 아직 자신은 많이 어렸다. 당장 1년 뒤, 10년 뒤의 미래도 모르는데 그 이후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혜성은 굳이 그 이상 무슨 말을 더 하진 않았다. 지금은 그냥 이대로, 이 상태를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저 입꼬리만 살짝 올릴 뿐이었다.
아람이 모자를 쓰고 따뜻해하자 혜성은 괜히 기분 좋게 웃으면서 다행이라고 이야기했다. 기껏 모자를 샀는데 아무런 쓸모도 없다면 그야말로 돈 낭비가 아니겠는가. 적어도 아람의 귀는 따뜻할 거라고 믿으며 그는 다시 앞을 바라봤다. 추우면 꼭 이야기하겠다는 말에 그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조금 더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람이 추워할 것이 뻔하니, 조금 더 빠르게 가기 위함이었다.
그러다가 저 편에 보이는 포장마차의 모습에 그는 그 방향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맞지? 빨리 들어가자. 누구누구 씨 감기 걸릴라."
예전처럼. 장난스럽게 피식 웃으면서 그는 그녀를 포장마차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다. 아마 안은 나름 한적하지 않았을까. 아직 사람이 몰릴만한 시간은 아니었으니까.
/좋아. 나는 이제 하루가 끝났다! 요즘 어려운 업무를 맡게 되어서 굉장히 머리가 아프지만...어떻게든 되겠지! 후후..(주룩) 그것도 아마 지역마다 다를거야. 여기는 산이 많지만... 딱히 단풍이 아직 보이거나 하진 않거든. 이러다가 어느 순간 확 물들겠지만 말이야! 아무튼 오늘은 푹 쉬는구나!! 다행이다! 아람주!
저녁은 맛있게 먹었지! 아람주는 여러모로 많이 바쁘게 보내는 것 같아서 늘 걱정이야. 몸 관리 잘하고.. 이제 날씨 추워질테니까 따뜻하게 입고 감기도 걸리지 않게 조심하는거야! 아무튼 답레는 정말로 천천히 느긋하게 써도 괜찮아! 사실 일단 가장 중요한 모자 사기는 끝났으니까 저것을 막레로 받아도 괜찮고! 그건 그렇고 출근이라니..아이고..오늘도 화이팅이야!
웅 그래서 그런지 목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아픈게 최근 감기기운이 있더라구 ㅋㅋㅋㅋ큐ㅠㅠㅠ 그래도 죽을 정도는 아니니 괜찮아() 하지만 둘이 더 노는 모습 보고 싶기 때문에 답레는 천천히 이어오는 걸로 할게! 오늘 이을수도 있기 그렇다~~! 점점 작중 배경하고 현실 배경하고 맞아가는 건가 그래서 점점 추워지는 건가...! 혜성주도 오늘 하루 화이팅해!!
포장마차 안은 생각보다 훈기가 감돌고 따스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포장마차마저도 춥다면 어떻게 사람이 오겠는가. 이 훈기가 따스하고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살며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람이 떡볶이 1인분을 부탁하자 혜성은 자연히 아람이 그러는 것처럼 오뎅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따스한 국물이 있고 이런저런 다양한 종류의 오뎅이 있는 것을 확인하며 그는 뭘 먹을지 잠시 고민했다.
아람의 물음이 들려오는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녀의 물음에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꼬불꼬불한 오뎅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손으로 가리켰다.
"나도 이거 좋아해. 아니. 뭐, 네가 골라서 나도 이거 좋다고 하는 것은 아니고... 그냥 우리 취향이 비슷하네."
괜히 기분이 좋았는지 그는 피식 웃으며 마찬가지로 오뎅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간장에 살며시 담근 후에 다시 꺼내면서 입에 집어넣었다. 적당히 잘 익기도 하고, 꼬불거리는 탄력의 맛이 또 굉장히 좋아 그는 괜히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어 그는 근처에 있는 종이컵 두 개를 챙긴 후, 어묵 국물을 받을 수 있는 꼭지를 열어 한가득 어묵 국물을 받았다. 그리고 아람에게 그걸 내밀었다.
"먹어봐. 따스해서 맛있을 것 같은데."
감기 걸리면 공부도 못 해.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그는 피식 웃었다. 역시 공부하는 것보단 그녀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에게 있어선 행복인 모양이었다.
떡볶이가 이내 접시에 담겨 놓여졌고 그는 그 떡볶이를 손으로 가리키며 먹자고 이어 이야기했다.
/감기 기운이라니! 감기 기운이라니! 8ㅁ8 코로나는 아니지? 아직 코로나 걸리는 사람은 걸린다던데! 아이고.. 그래도 심하진 않은 것 같아서 다행이야. 음. 그렇다면 나도 계속 잇도록 하겠어! 나도 혜성이와 아람이가 꽁냥거리는 것은 너무 보기 좋으니 말이야. 역시 둘이 결혼해라. 행복하게 살아라. 2세 낳을진 모르겠지만, 아람이가 낳고 싶다면 낳아라!
확실히...ㅋㅋㅋㅋㅋ 배경이 겨울이고 지금 현실도 겨울이 다가오고 있으니 말이야. 어쩌다보니 싱크로가 되어가는 것 같네!
아람은 혜성이 같은 오뎅을 고르자 작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별것 아닌데도 그냥 같은 것을 고른 것이 좋게 느껴지는 탓이었다. 만약 달랐더라도 이런 점이 달라서 재밌다고 생각했을 테니 중요한 건 선택이 아니라 상대방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아람도 뜨거운 오뎅을 호호 불었다가 간장에 찍어서 먹었다. 왠지 배가 고팠던 것인지 금방 하나를 다 먹었다. 그러는 사이에 혜성이 오뎅국물을 가져왔고 아람은 입 안에 볼이 볼록하게 든 오뎅을 천천히 씹어 삼키며 그 컵을 받았다. 마지막까지 꿀꺽 삼키고는 호로록 국물을 마셨다.
"맛있다. 추워서 그런가. 아니면 오랜만이라 그런가. 역시 딱 먹고 싶을 때 먹는게 제일 맛있더라."
아림은 오뎅국물을 한 번 더 후후 불어 호로록 마시고는 말했다.
"맞아. 감기 진짜 조심해야해. 아프면 답도 없어~"
아람은 작게 웃었다. 특히 아람은 늘 감기를 조심했는데 집에 거의 혼자 살다 시피하다보니 더더욱 그랬다. 어머니께 어리광 부릴 성격도 아니었으니까.
아람은 떡볶이도 하나 먹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와, 맛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혜성에게도 얼른 먹어보라며 재촉했고.
/심하지 않으니 괜찮아! 코로나는 검사 안해봐서 모르겠는데 열이 나는 건 아니니까 이니치않을까?? 혜성아람 오래오래 가즈아ㅏㅏ 혜성아람2세?! 뭔가 아직까진 막 상상이 안간다 ㅋㅋㅋ 둘이 너무 애기같아서 그런가! 아직 겨울이 한참 멀었지만 한참.... 멀길 바랄 뿐인가.... 요짐 날씨가 넘 이상하다보니 말 꺼내기가 무섭군 ㅋㅋㅋ
아람이 국물을 받는 것을 확인하며 혜성은 그제야 자신의 국물을 챙겼다. 따끈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이 상당히 따스했고 괜히 입김을 후- 후- 불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열기를 식힌 후, 그는 천천히 국물을 마셨다. 따뜻하면서도 구수한 맛. 오뎅 국물 특유의 그 진함이 제대로 느껴졌고 그는 반 정도 마신 후에 일단 컵을 내려놓았다. 한번에 다 마실 생각은 없다는 듯이.
"둘 다일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공부하기 전에 이렇게 시간 보내면 좋잖아. 따스하게 어묵 국물도 먹고 말이야. ...뭐, 김에 배도 채우고."
괜히 작게 툴툴거리는 목소리를 내며 혜성은 입가를 근처에 있는 티슈를 이용해 닦았다. 그리고 아람에게 새 티슈를 내밀었다. 입을 닦을거면 쓰라는 듯이.
"걸리면 전화해. ...뭐, 집에는 못 들어가더라도 죽 정도는 내가 가져다줄테니까. 남자친구가 그 정도는 해야지."
봄에 감기에 걸렸던 그녀를 떠올리며 그는 괜히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이어 아람이 떡볶이를 먹고 맛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자신에게 권하자 그는 그제야 떡볶이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쫀득한 떡, 그리고 적절하게 매운 맛과 단 맛이 섞여있는 양념. 포장마차에서 파는 떡볶이치고는 상당히 맛이 좋아 그의 눈 역시 동그랗게 변했다.
"뭐야. 이거. 굉장히 맛있네? 아람아. 앞으로 배고플 땐 여기 와서 먹을까? 근처에서 공부할 때라던가 말이야. ...아니. 뭐, 꼭 그러자는 것은 아니고 내키면이야. 내키면. 나는 딱히 꼭 안 와도 상관은 없으니까."
말을 마친 그는 괜히 무안했는지, 또 떡을 하나 집어서 양념을 듬뿍 바른 후에 입에 넣었다. 역시나 맛이 상당히 좋았기에 그는 절로 고개를 천천히 위아래로 끄덕였다.
"나름 떡볶이는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만큼 맛있는 곳도 드물거든. 뭐지. 이거 비법이 뭐지."
안 그래도 그는 떡볶이를 좋아했고 가끔 만들어서 먹기도 했다. 그런만큼 상당히 흥미가 가고 호기심이 들었는지, 그는 접시에 구멍일 날 정도로 정마롤 빤히 떡볶이를 바라봤다.
/ㅋㅋㅋㅋㅋㅋㅋ 시트에도 있지만 혜성이는 떡볶이 매니아지! 결국 스위치가 눌려버렸고! 아무튼 심하지 않다고 하니 다행이야! 그래도 한 번 간이 검사라도 해보는 것을 추천할게! 우리 어머니도 걸렸을 때 딱히 열은 안 났었거든. ㅋㅋㅋㅋㅋ 아직 애기지. 둘 다. 고등학교 2학년인걸! 결혼이나 2세나 아직 한참 뒤의 일이라고 생각해! 맞아. 요즘 갑자기 추워지고 있지. 올해 여름이 상당히 더웠으니 그 반동으로 엄청 추워지는 것일지도 몰라. (죽은 눈)
공부하러 가야한다는 그 말에 혜성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작게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아람이 어느 정도 양보를 해줬으니 자신도 어느 정도 양보를 해야만 했다. 이렇게 보니 정말로 공부를 잘할만 하다고 생각하며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다 들려오는 든든하다는 말. 혜성은 그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살며시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지금 얼굴을 보이기엔 너무 부끄러운 탓이었다. 물론 아람의 눈에는 다 보였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나름대로 최대한 하고자 하는 작은 저항이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면서 그는 다시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떡볶이를 먹으러 와서 계속 시선을 돌릴 수도 없을테니까.
"약속이야! 약속한거다! 알았지?! 아.. 어흠. 쿨럭. 쿨럭."
자주 오자고 하는 그 말에 혜성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신이 난 목소리로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순간 움찔했다. 그리고 살며시 고개를 옆으로 돌린 후에 오른손으로 입을 막으면서 헛기침을 했다. 자신도 모르게 너무 흥분했다고 생각한 탓이었을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 그래도 그는 떡볶이를 좋아하는데 맛도 좋고, 이곳에 여자친구와 자주 온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안 좋을래야 안 좋을 수 없는 탓이었다.
한편 비법을 알기 위해 떡볶이를 조금 더 먹는 것이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려는 찰나, 아람이 비법을 묻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혜성이는 깜짝 놀라 아람과 아주머니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다가 매실 액기스라는 단어가 나오자 그는 절로 오. 소리를 냈다. 물론 액기스라고 해서 다 같은 액기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다가 아람이 자신의 귓가에 소근소근 이야기를 하자 혜성은 아람 쪽으로 눈빛을 살짝 돌렸다. 이어 혜성은 아람의 귓가에 속삭였다.
"만들어볼테니까... 뭐, 맛보기 요원이라도 좋다면 찾아오던지."
결국엔 그녀에게 먹여주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혜성은 언제나처럼 말을 살며시 돌렸다. 하지만 그 진의는 절대로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아람도 떡볶이를 좋아하는 것 같으니. 물론 자신만큼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것 같으니 한번 대접해주고 싶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마음을 담아 반드시 이와 비슷한 떡볶이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이번엔 양념만 살짝 입에 담았다. 적절한 매운 맛, 적절한 단 맛.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차후에도 이 떡볶이를 자주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아람아. 넌 어느 대학에 갈 거야?"
/아람이야말로 귀여움의 대명사다! 귀여운 소악마 아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 ㅋㅋㅋㅋㅋㅋㅋ 오케이! 꼭 심해진다 싶으면 하는 거야! 요즘은 코로나 아닌 줄 알았는데 걸렸다는 이들도 많으니까! 물론 아람주는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맞아. 겨울 추위. 정말로 싫어. 하지만 더위보다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중간만 갔으면 좋겠는데 올해도 극단적이 될 삘이라서 두려워.
아람은 같이 오자는 말에 혜성이 좋아하다가 이내 표정관리를 하는 것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응응. 약속이야." 물론 혜성은 민망해하는 것 같지만 그런 모습도 너무 귀여운 것을 보면 정말 혜성을 많이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람은 나름 비법을 알아낸 것에 뿌듯했는데 혜성이 귀에 소근소근 이야기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꼭이야? 약속하는거야?"
아람은 진짜 좋다는 듯이 혜성을 바라봤다. 왠지 기대되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지난번에 혜성이 도시락도 싸오고 하지 않았던가. 아람은 자신이 잘 하지 못하는 것을 해내는 혜성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요리라던가 사진 촬영이라던가. 아람은 떡볶이를 한 입 더 먹다가 혜성의 물음에 답했다.
"대학? 일단...... 수도권 대학 쪽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연극영화과는 실기를 보니까 사실 잘 모르겠어. 성적으로만 가면 좀 확실할텐데 연기를 배운지는 그리 얼마 안되기도 했고."
대신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좋은 학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혜택이기는 했다. 물론 공부도 중요하니 이제까지 공부해 온것이 헛일은 아니니 다행이기도하고.
"너는?"
아람은 혜성도 어떤 생각이 있어서 물은 것인가 싶어서 혜성에게 되물었다. 물으면서도 같은 대학에 가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했고. 이무래도 대학이라는 게 지역이 떨어질수도 있다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