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서류를 소리 내서 읽어보려 했겠지만 그 목소리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드는 오한이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한을 일으키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시선을 돌리니 그 자리에는 붉은 머리의 여성이 있었다.
"어, 어?"
당신이 왜 여기... 아니 잠깐만... 수조 안에서 나온건가? 그럼 아까 느꼈던 시선은 잘못 느낀 게 아니었나? 갑자기 소름이 쫙 돋는 감각에 그녀는 얼른 살로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말했다.
"어, 얼른 주는 게 좋을 것 같지 말임다... 주인이 왔으니 돌려줘야 하지 않겠슴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몸이 저절로 떨리는 듯한 감각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살로메가 선뜻 준다면 모르겠지만,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살로메의 손에서 귀걸이를 빼내 손을 내밀고 있는 여성에게 건네주려고 할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조용히, 뒤쪽으로 살로메에게 USB를 건네려고 했다.
ㅤ이크, 이 사람 너무 단순한 사람이었어. 자신이 상상치 못할 답을 도출해낼까 싶어 공유했는데 돌아오는 것이 이런 해맑은 웃음이라니……. 살로메는 물어본 자신을 탓하며 티 내지 않고 "네……."하고 넘겼다. 그래도 같은 소속이니까.
ㅤ애인인 것 같긴 하다만, 어째서 그녀의 사진이 호스트와 연관된 공장에? 의뭉스러운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러다 오래 걸릴 문제에 시간을 끌릴 순 없어, 제루샤에게로 신경을 돌려 서류를 빼꼼 고개를 숙여 읽었다. 눈동자가 좌우로 움직이더니 이내 자신도 해석할 수 없다는 의미로 고개를 내젓는데, 그 순간. 발목부터 머리 끝까지 타고 오르는 전류, 심장 박동에 맞춰 퍼지는 오한. 살로메의 검붉은 눈이 공포로 물들고, 전신이 마비된 듯 굳었다. 자존심이 상한 듯 미간을 찌푸리고 정신을 차리란 식으로 입술을 콱 깨물고는 겨우겨우 고개를 돌렸다. ……언제부터 깨어있었던 거지?
ㅤ살로메는 천천히, 뻣뻣한 팔을 옷깃 안쪽으로 집어넣어 품 속에 있던 귀걸이를 쥐어 빼냈다. 저렇게 반응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중요한 정보 같은데 과연 넘겨줘도 될까? 감은 무조건 가져가야 한다 말했다. 그러나 이 섬뜩한 감각이…….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 꽉 쥔 채 대치한 상태, 잔뜩 긴장한 낯으로 묻는다.
ㅤ"……당신, 아말 드레이븐, 이라고…… 알아요?"
긴장한 손 안에 귀걸이는 제루샤의 손으로 옮겨갔고, 살로메는 그제야 꽉 쥔 손의 힘을 풀고 USB를 받아 소매 속으로 챙기려 했다.
피를 흘리는 남성이 여전히 공격을 해오자 짜증이 서린 얼굴로 품에서 칼을 꺼내서 휘두른다. 공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위협을 됐을지 모르겠다. 선글라스 -이제는 안 끼고 있지만- 남성에게 거리를 벌리고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며 입가에 묻은 피를 닦아냈지만, 손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얼굴이 더 더러워졌다. 솔직하면 당장이라도 기절할 거 같았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뒤틀리는 기분이다. 오늘만 총을 몇 번이나 맞은 건지. 능력이 없는 벙커의 특성상 이용할 수 없는 무기가 총 밖에 없다는 건 알겠지만.
"...."
평소라면 예의가 어떻고, 수준이 어떻고, 말을 늘어놓았을 수 있지만 그것도 힘이 있을 때나 이야기다. 아까부터 피가 계속 흐르고 있어 이러다간 빠져나기도 전에 실혈사로 죽을 거 같았다. 숨을 쉴 때마다 생경하게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쓰며 상처를 천으로 지긋하게 누르며 지혈을 했다. 이쪽도 저쪽도 상태는 거기서 거기인데. ....어떻게 죽일 방법 없나? 살벌한 생각을 하던 차에 스파크가 날아오자 입술을 깨물며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움직였다.
"아. 마음에 안 드네."
습관처럼 쓰던 경어를 내려놓고, 스파크를 피하며 주변 물체를 살핀다. 이러면, 결국 바닥을 뚫을 수 밖에 없나? 스파크를 피하며 벽에 거의 기댄 상태로 바닥에 손을 댄다. 바로 폭파 시킬 순 없으니 연달아 작은 폭발을 일으켜서 바닥을 뚫어보려고 시도했다.
이츠와의 공격은 발 딛었던 휴스턴을 차올라 회피했다. 공격을 빗맞춘 이츠와의 신경을 긁는 것도 잠시, 검은 스파크가 튀면 고개는 그 쪽을 향해 돌아갔을 테다. 곧이어 사방팔방으로 튀는 창 모양의 스파크. 전격은 눈에 흑점을 그렸고, 때문에 시야는 흰색으로 일부분 가려져 어느 정도는 감에 의존해 회피해야 하는 상황.
"전 중졸이지만, 대학에서 쉬고 싶은 날이 생기면 뭘 하는지는 알아요."
그대로 이츠와의 정강이를 차 그녀의 움직임을 지연시키려 하더니, 자신도 창을 회피하려 움직이려 했다. 까마귀는 소환을 해재했다만 도베르만은 남아 있는 상태여서, 차마 창을 못 피한 아발란치 일원이 있더라면 공격을 대신 맞아주거나 밀어서 궤도를 비껴나가게 했으려 할 것이였다.
이번에도 탄은 기어코 빗나가버린다 연이은 전투로 사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구레는 총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앞에 서있는 머스티어를 강하게 밀쳐내며 바락바락 신경을 부렸다
"아저씨는 아저씨 몸이나 신경 써요! 그쪽도 위험한 주제에...!!"
리볼버에서 발사 된 대구경 탄을 두 번이나 피격당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이 사람은 알긴 아는 걸까? 머리가 굳은게 틀림없다. 그런게 아니면 자기를 감쌀 이유가 없는데 와중에, 까맣게 잊고있었던 중앙의 기계는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혼돈이 더욱 혼돈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었다
"젠장."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 유토! 섬멸은 관두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방금, 끝낼 수 있을때 끝내면 좋았겠지만 점점 환경은 안 좋아지고 있고 추가증원도 온 상황이 아닌가 시구레는 그렇게나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기회를 잡지 못한 자기 자신의 무력함을 탓했다
'어쩔 수 없어.'
어찌되었든 끝을 내야겠다 그렇게 생각한 시구레는 앞뒤 재지 않고. 먼저, 휴스턴을 향해 박차고 달렸다 그렇지만 혼자는 아니다 허공을 향해 도약하자 순간 잔상이 뒤따른다. 그녀 옆에 그녀. 그리고 또 그녀 하지만 그것은 전부 시구레 자기자신. 5초 이내 정도의 가까운 미래의 자신을 지금 한꺼번에 펼친 것이었다
이 이상 맞아주는 것도 바보같은 짓이지. 머스티어의 다리는 아직 멀쩡했기 때문에, 스파크의 공격을 피하는 건 엉망인 몸 상태로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수류탄을 던지는게 보였다. 그대로 둘까보냐. 공중을 날아다니는 수류탄에 총구를 겨누고 그대로 발사했다. 한발 한발 쏠 때마다 가해지는 부담에 상처부위에서 다시 피가 터져나왔다.
"누가 아발란치를 위해 죽는다고? 웃기는 소리를 다 하는구나."
그가 충성을 바친 대상은 아발란치가 아닌 유토였다. 그러니 죽어도 아발란치가 아닌 리더를 위해 죽어야지. 머스티어는 능력 탓에 더욱 날카로워진 송곳니를 보이며 씨익 웃었다.
휴스턴의 몸은 만신창이였고, 공격을 선택하면 저절로 회피는 거의 불가능해진다. 그럼에도 휴스턴은 시구레를 노리고 발포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휴스턴을 노리던 스파크는 아까의 남성이 주먹으로 쳐 떨궈주었다. 물론 맨주먹으로 친거니 타격이 없지야 않겠지만. 심지어 거기에 더해 시구레는 능력을 최대한 전개해 휴스턴을 노리고 다중 시간대의 공격을 펼쳤으나. 남성은 그것마저 말도 안되는 속도로, 심지어 주먹으로 총알을 쳐내 전부 막아 ㅡ 당연하지만 데미지가 없는게 아니다 ㅡ 냈다.
"세상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지."
샐비아는 바닥을 폭파시켜 보았으나 바닥은 멀쩡했다. 뭔가를 뚫어서 도망치기에는 무리로 보인다. 시간이라도 충분했다면 모를까, 샐비아의 몸상태도, 집중할 여유도 없었다. 심지어 저길 봐라, 노아의 수류탄이 날아오고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이츠와를 공격한 뒤의 세이메이의 도베르만이, 샐비아를 밀어내어 공격을 가까스로 피할 수 있게 도와줬다. 폭발의 범위는 분명 클 수 있었으나, 머스티어가 사격해 수류탄을 미리 터트려줬기 때문에 도베르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거 같다.
이츠와는 세이메이의 공격 때문인지, 아니면 공격을 해서인지. 창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피해를 입고 말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세이메이를 노린 샷건의 총구는 흔들리지 않았고. 스파크가 향하는 세이메이를 노리고 탄이 퍼져나간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건, 스파크에 맞을 위험인 아발란치 조직원들은 붉은 스파크가 튀며 딱 한번이지만 지켜주었단 것이다.
-끼익
그 순간이었다, 아발란치들의 뒤쪽에 하나, 벙커의 뒤쪽에 하나. 문이 생겨난다. 마치 탈출구마냥 타이밍 좋게 말이다. 하지만 벙커는 둘째치고, 아발란치에겐 유토의 두려움이 남아있을터였다. 허나 그런 걱정도 잠시 간신히 무전이 연결된다.
- 아 ..................
무전에서는 뜻밖에도, 유토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그것은 부하에게 보이지 않던 망설임이 담겨져 있는 침묵으로 이어졌다.
- .. 전원 후퇴해, 위험하니까.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 망설이는듯한 살로메였지만, 곧 제루샤에 의해 귀걸이는 여성에게로 넘어갔다. 여성은 그것을 받아들고는 소중히 품에 안았는데. 그 순간만은 공포가 느껴지는 위압감마저 사라진듯 보였다. 물론 이어진 질문에 의해 그 순간의 평화마저 깨졌지만 말이다.
"....... 그 사람이 왜?"
아말 드레이븐. 그 이름에 그녀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아도 심상치 않은 공포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곧 그녀는 작게 미소지으며 살로메에게 되물었다.
그 순간이었을까, 제루샤와 살로메의 뒤쪽에 문이 생겨난다. 바로 뒤는 아니지만 몸을 돌려서 뛴다면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여성의 존재이다. 여기서 뒤로 돌아서 뛰는 그 짧은 시간이 허용될까? 물론 아직까지 그녀가 둘에게 살의를 드러내거나 하진 않았지만. 본능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