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식사를 하러 갈 생각이라는 건 확실히 이야기했다. 당신이 정말이냐 되묻는 게 무슨 의미일까 잠시 생각하던 너는, 자리를 뜨려다가 당신의 목소리에 눈을 마주보았다. 그리고 당신이 매정하게 가 버릴 거냐며 묻는 말을 듣고서야.
"......"
일단 묻기는 했지만, 당신이 대답해야 할 입장이고 네가 대답을 들어야 할 입장이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이어서... 사실상 답은 정해진 셈이었다. 방금 전까지... 같은 팀이 된 이상 관계를 되도록이면 원만하게 유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아주 잠시 침묵, 무슨 답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이어진, 쐐기를 박는 듯한 물음에 너는 입을 열었다.
"그럼, 같이 식사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는 게 꺼려지는 감이 있었던 건, 너는 정말 허기를 달래는 정도... 그러니까 아주 간단하게 식사를 떼울 생각이었기 때문이리라. 당신을 보는 얼굴에 그렇게까지 복잡한 감정이 실려 있지는 않았겠지만.
식사를 하러 갈 생각이라. 어울려주는 것도 즐겁겠구나 싶어 이스마엘은 눈을 휘었다. 평균을 간신히 웃돌아 기는 밑바닥과 함께해 주는 나.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헬무트도 좋게 봐줄 것이다. 누군가를 수단으로 써서는 안 된다고 하던가? 그렇다면 수단이 될 정도로 물러서는 안 됐지. 지극히도 오만한 생각을 눌러 담고 친절함과 능글맞음을 포장한다. 언제나, 어디에서든 준비된 안식의 사람이니 이 정도야 잘 하는 일이지 않은가.
눈을 마주할 적, 이스마엘은 여전히 생글생글 웃는 낯을 유지했다. 대답을 채근하지는 않았지만 당신에겐 이미 답이 정해진 셈이었으니, 이 침묵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생각하면 심히 즐겁다. 작은 침묵을 뒤로 어쩔 수 없는 제안이 들어오자, 능글맞던 미소가 변했다.
"뷔시카리오 씨라면 좋은 제안을 할 줄 알았습니다."
탁월하십니다. 눈은 조금 더 가늘게 휘고, 입매는 자그맣게 벌어져 긴 호선을 그어내니 자못 꼬리를 살랑이는 여우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치 당신에게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속삭이듯.
"거절할 이유는 없지요. 아무렴요."
당돌하기도 하지, 장난을 얹듯 느릿하게 끝을 늘리며 작게 웃음을 흘리자 주변에서 잠시 시선이 오갔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이야앗 갱신~ 하면서 에버노트랑 네이버 메모 정리하다가 꽤 흥미로운 글을 발견해서 주절주절 해보려구.. tmi 폭탄이다~!!! >:3
1. 에델바이스 이스마엘 초안은 제, 가란에 가까운 성향에다가 군사 장교집안 출신, 당연스럽게 가디언즈 수순을 밟는 엘리트 출신이었다고 얘기한 기억이 있는데 이것 말고도 다른 초안이 있었으니.. 바로 정신계 능력자였다는 점.. 상대방의 감정을 뒤흔들고 혼란시켜서 판단력을 저하시키고, 감화하는 능력인데..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군사재판에 넘겨지고, 수감되기 직전에 눈 마주치고 "날 풀어주십시오. 당신과 나는 가장 친한 친구잖습니까, 날 도와야지요. 나 대신에 당신이 희생해준다니 기쁩니다." 같은 대사가 노트에 남아있었다.. 대신 이 능력은 신체가 닿거나, 눈이 마주치거나, 부름에 2번 이상 답한다. 와 같은 조건이 있었음.. 복잡해서 폐기했어 응..ㅋㅎㅋㅋ
2. 에델이셔는 압박조끼 때문에 재머 너머에선 항상 어딘가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 비하인드가 있다.. 이것 때문에 인상이 더 매서워 보였다는 tmi도 있구 어차피 다 알게된 거 글라키전 이후로는 옷도 편하게 입고 자기 얼굴도 드러내고 다녔을 것 같아.. 그리고 대뜸 팔 쭈욱 벌리고 달려와서 쥬를 파묻듯 껴안게 되는데..(카페베네)
3. 슬럼 일상에서 창문이 다 깨져있었잖아, 이셔가 그걸로 쥬 위협도 했었고. 그거 사실 이셔가 깨부순거야. 독백 느림보라서() 독백 쓰다 만 걸 찾았는데..
"도망쳐라, 이스마엘." "아, 안 돼요. 어떻게 두고…… 어떻게…… 같이 가요." "이스마엘. 내가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차별 없는 낙원이다. 그 낙원은 아니지만 또 다른 낙원이 나의 눈 앞에 있다. 세상이 눈이 내린 듯 하얗구나. 아름답다. 너도 같이 온다면 좋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네가 가기엔 너는 너무나도 어리지. 널 잠시나마 데려가고 싶다 생각했다니……."
헬무트는 그 와중에도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 하나뿐인, 가슴으로 품어 기른 아이를 저승길로 데려갈 생각이나 하다니. 끔찍한 혐오감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나는 끔찍한 사람이다. 아니, 처음부터 난 끔찍한 놈이었어. 세븐스를 사냥하던 내가 죄책감에 세븐스를 키우다니……. 그러니… 네 낙원을 찾아라, 이스마엘. 이 외곽과 나는 이제 너의 낙원이 아니다. 여기는 널 지키기 보단 사냥할 사람이 더 많을 거야. 그러니, 멀리, 저 멀리 가라. 떠나라." "아빠? 아, 아니죠? 아닐 거야. 아니죠?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주세요, 제발……."
헬무트는 이스마엘의 품에서 늘어졌다. 어깨에 고개를 기대곤 이스마엘을 안아주던 팔에서 힘이 풀렸다. 죽음의 무게가, 이젠 활동하지 않는 육신의 무게가 품에 엄습해왔다. 몸을 적시는 피가 뜨거웠지만 세상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이스마엘은 화면을 두드려도 뜨지 않는 태블릿처럼 자신의 머리가 고장이 났다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가디언즈 병사 두어 명이 이스마엘을 향해 소총을 겨눈다. 작게 벌어진 입을 뒤로 쉴새없이 눈물이 흘렀다.
추방된 장자에게 조국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음 겪는 감정이 온몸을 덮었고, 속절없이 몸이 떨렸다. 끔찍한 증오심이 시스템 오류 메시지처럼 머리를 가득 채웠다. 차라리 이곳에서 몸을 던져 불꽃처럼 타오르다 아버지의 길을 뒤따르고 싶었다. 이스마엘은 아버지의 품 속에서 눈을 들었다. 소총을 겨누던, 과거 헬무트와 함께했던 가디언즈가 움찔 떨었다. 명백한 헬무트의 눈빛이었다. 미친개라 불렸던 자의 눈. 아니, 그보다 더한, 마치…….
"난 살아."
맹수의 눈. 맹수는 포효하는 존재고, 그 자체로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야생의 존재여야만 했다. 사냥개도 본디 맹수의 야성을 가진 존재였다. 그리고 자신 또한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존재였다! 낙원을 찾아 그 너른 초원을 방랑하는 존재! 내가 몸을 불사르면 낙원은 사라지겠지. 저깟 사냥꾼에게 목이 꿰뚫려 죽는 삶을 바랄 것 같은가?
발코니를 장식하던 방탄유리가 덜덜 떨리더니, 산산조각이 났다. 이스마엘의 세븐스 때문이었다. 가디언즈는 소총을 격발했으나 보이지 않는 힘으로 펼쳐진 장막은 총탄을 튕겨냈고, 한때 이스마엘에게 조국의 위용을 선전하던 신소재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넷-스크린은 허망히 박살 났다. 그리고 외마디 비명이 울렸다. 가디언즈가 날선 유리조각에 베인 목을 부여잡을 적, 이스마엘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의, 헬무트의 시체는 허망하게 쓰러진다. 빈 껍질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이스마엘은 아버지가 쥐여주었던 상자를 품에 안은 채 그대로 깨진 창 너머를 향해 뛰어내렸다. 건물에서 추락할 듯 떨어지다 멈추곤 허공을 달릴 적, 거센 바람이 이스마엘의 등을 떠밀듯이 불어닥쳤다.
이스마엘은 뒤를 돌아보지 못했다. 뒤를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희뿌옇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자유, 자유! 그토록 바라던 자유!! 하지만 이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족쇄 달린 자유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달음박질은 멈추지 않았고, 눈물 또한 그치지 않았다. 가디언즈의 포위망에서 멀어질수록 얼굴은 처절하게 일그러졌다. 마침내 억눌렸던 감정이 포효한다. 비참함에 찢어질 듯 울부짖는 소리가 개발 중단 구역을 울리고, 이스마엘은 슬럼으로 뛰쳐들어갔다. 비로소 새장에서 자유로워졌으나 여전히 마음은 아버지의 품에 있었다.
그랬답니다.. 이거 거의 다 썼는데, 막상 못 풀게 돼서 되게 아쉽긴 했어. 그래도 이제 후련하다(?)
더 풀고싶은 것도 많지만 그럴수록 흑역?사를 마주?해야 하다보니까...... 궁금한거 있으면 막 물어봐도 좋긴?하지만? 그만큼 조공을 바쳐야 할 것이야~~ >;3
분명 그런 대답을 하라고 명시적인 강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때로 묵시의 힘은 무엇보다도 강한 법이다. 어쨌건 결국 네 쪽에서 당신에게 함께 식사하겠냐며 묻게 됐고, 당신은 기다렸다는 듯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주변에서 오가는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당신이 신경쓰지 않는데 네가 신경쓰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겠지, 그러니 지금은 무시하기로 했다.
"저는 간단하게 먹을 생각입니다."
너는 당신에게 그리 말했다. 분명 말 자체는 짧았으나 담긴 것은 그보다 좀 더 많아서, 당신의 마음에 들 만한 메뉴가 아닐 수 있으며 그러니 원하는 바를 말해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내뱉은 소리의 배 이상은 되는 이야기를 당신에게 전하고 있었다. 당신은 어떤 것이든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는가, 호오를 굳이 숨겨가며 식사를 할 정도의 가치가 네게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가 없었다. 네가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당신과 너 간의 관계에 그만큼의 노력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냐는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버거 세트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리고 지금 겉으로라도 식사 약속을 주도하는 쪽은 너다. 그랬기에 너는 네가 어떤 걸 먹을 생각인지 먼저 이야기했다. 당신이 너의 목적에 따를지, 아니면 다른 걸 밀어붙일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선택지를 고르게끔 만든 것은 그렇기 때문이었다. 지그시 감았던 눈을 뜨고 당신을 쳐다본다. 답을 기다리는 듯.
흐흐 갱신... 여유가 좀 생길까 싶으면 또 일이 생기고... 8ㅁ8 그래도 슬슬 궤도에 올라서 내일부터는 시간을 좀 체계적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일단 오늘은 답레만 올려두고 가볼게요! 이사한 건 좋은 일이지만 일어나야 할 시간이 1시간 가량 당겨져서... 하루가 엄청 길어지는 효과가 있긴 해도 피곤한 건 어쩔 수가 없네요 ㅠ0ㅠ 아무쪼록 좋은 밤 되시고 내일 보아요!
으그으윽 저녁 내내 바빴다..😵💫 쥬주도 혐생이로구나..(뽀다담) 기대만큼 잘 되길 바랄 뿐이야~ 궤도에 오르면 익숙해지는 건 찰나니까! >;3 답레는 느긋하게 줄게... 당장 주고 싶은데.. 지금 쓰면 글 개판일 느낌이라 문장배치만 해야겠다 싶어서... ㅋㅋ쿠ㅜㅜ 아니~~ 그런데.. 왜지? 쥬 말랑소시민 느낌이라 괴롭히고 싶잖아~~~ 나 이런 캐 괴롭히는거 좋아했네..... 새로운 성향을 깨달았다(아님)
아구, 많이 피곤하겠다..🥺 넘 무리하진 말자구~ 사람 목숨 하나 뿐이라서 내구도 빨리 닳으면 수리가 안 되니까...😏 부디 중간에 뒤척이거나 깨지 않고 푹 잠들길 바라구, 컨디션 관리 잘 하구! 주말까지 서로 힘내보자구~ 0.< 내일 봐~~ 올때 tmi! >;3(합법적 삥뜯기)
식사, 라. 차고도 넘치는 행위였지만 어째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평소 같으면 이렇게 웃고 있어도 속에서 당신 같은 것과 어울려야 한다며 짜증을 냈을 텐데, 지금은 그저 정말 제안을 하니 맹랑해서 흥미가 간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집행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는 또 오랜만이라 그런가? 아마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당신에게 호감이 있냐면 아니지만.
그런 것을 가지기엔, 당신을 명백한 팀원으로 만나는 것이 오늘이 처음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이스마엘은 수료하던 날 헬무트에게 당신을 좋지 않게 보고 있노라 당당히 말한 장본인이었다. 그런 존재가 당신을 쉬이 받아줄 리도 없을 테고, 당신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당장 이스마엘을 받아들이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습니까?"
그렇기에 당신이 이렇게 나오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당신은 간단하게, 라고 말했지만 그 안엔 당신이 제법 단호히 나온 면도 없잖아 있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원하는 것을 요구하라. 서로의 관계는 아직 이 정도 거리인 건가, 나쁘지 않다.
"음, 다행이군요."
이스마엘은 야살스럽게 웃음 지었다. 새하얗고 고른 치열이 희미하게 입술 사이로 드러났다. 이리도 유순한 이유라면 주변의 편견과 달리, 생각보다 이스마엘은 자비로운 편이었기 때문이다. 제멋대로의, 오만한, 세상 물정 모르는 잔혹한 사람이지만 의외로 먼저 발톱을 드러내지는 않는.
"딱히 싫어하는 메뉴는 아니라서 말입니다. 저도 충분하다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편견이라는 것은 쉬이 생기지 않는 법인지. 더 명확히 말씀드릴까요? 나긋하되 또박또박한 공용어 발음이 입술을 타고 흐른다.
"당신의 선택이 어쩜 하나하나 내 성미를 빗겨나가니, 제법 즐겁군요."
토끼 한 마리를 책사로 삼아 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인지. 대놓고 즐겁다 하는 오만함을 뒤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스친다. 성격 참 나쁘긴!
이스마엘은 울고 싶었다. 벌써 여덟 번째 실패다! 값진 초콜릿을 수도 없이 쏟아부었지만 어떻게 해도 몰드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어떤 것은 잘 떨어졌지만 막상 맛을 보니 입안에서 구르는 촉감이 영 좋지 않다. 초콜릿을 중탕하던 주변과 판 위는 난장판이고, 장갑은 초콜릿이 굳어 뻑뻑하다. 실패 없는 레시피라 쓰인 모든 방법을 총동원했고, 한 치의 오차 없이 따라 했는데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신이 이스마엘에게 혁명을 성공시킬 기량은 주었어도 요리에 대한 기량은 빼둔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요리에 대한 기량까지 모조리 혁명에 쏟아부은 건 아닐까?
"나 참, 정말이지!"
뜻대로 되지 않는 부엌 상태에 절로 손으로 얼굴을 덮어 가리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얼굴도 초콜릿 범벅이 되겠지! 아쉬운 대로 발끝을 초조하게 까딱이며 문제점이 뭔지 고민하기로 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무리 되짚어도 실수한 부분이 없었으니까! 초콜릿이란 녀석은 사람으로 치면 예민하다 못해 까칠하게 가시를 세운 존재임이 분명했다.
제가 곁에 있었다면 조금 나은 결과를 볼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제는 남들보다 배는 섬세한 편이니 무엇이 문제인지 확실하게 짚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는 떠났다. 아주 멀리. 그 사건 이후로 많이 순해지더니만, 혁명 이후 션과 가란을 대동하고 자취를 감춰버렸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제가 어디로 갔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개, 아니, 도마뱀 새끼는 괌으로 갔다! 가란 때문이다. U.P.G니 뭐니 남은 평화니 그런 경사에 자기 같은 마약 카르텔 출신이 개입하면 퍽이나 깨끗하겠다며, 신분세탁은 원래 몰디브 아니면 괌이라고 안식의 남은 지분을 이스마엘에게 떠넘기고 떠나버렸으니 제도 그곳에 있는 건 확실했다.
"그렇다고 괌까지 갈 수는 없고……."
이스마엘은 한숨을 쉬며 초콜릿이 잘 녹을 수 있도록 다시금 조심조심 칼로 썰었다. 이번이 마지막 초콜릿이고, 이번에도 실패하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엔 즐거웠던 초콜릿 써는 소리가 지금은 묵직하니 머리 아프기만 하다. 곱게 썬 초콜릿을 체에 한번 치고, 중탕을 시작하며 온도를 세밀하게 체크하는 과정을 반복하던 이스마엘은 온전하고 부드러운 초콜릿을 보며 이번엔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소중한 사람을 위한 첫 초콜릿인데, 실패작으로 처음을 장식하고 싶진 않았다. 아홉 번째의 템퍼링, 4시간이 넘어가는 작업시간. 피로는 둘째치고 성에 차지 않아 치미는 짜증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입술을 꾹 다물고 마지막으로 온도를 체크하던 이스마엘은 눈시울이 시큰거리기 시작하자 고개를 위로 올리며 한숨을 깊게 쉬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기름종이 위에 올렸을 때, 이스마엘은 한줄기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다. 홀린 듯 몰드에 초콜릿을 붓고, 필링을 넣는다.
…초콜릿은 부드럽게 실리콘 몰드에서 빠졌다. 윤기가 흘렀고, 모난 곳 없이 매끈했다. 겉은 합격이지만 맛이 중요했다. 이스마엘은 결심하듯 하나를 입에 넣었고,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겉면은 과하게 달지도, 시거나, 쓰지도 않다. 잇새로 부드럽게 초콜릿이 깨지고, 최대한 맛이 강하지 않은 것을 엄선한 보람이 있는지 필링은 은은했다. 성공했다. 눈물이 결국 그렁그렁 대다 툭 떨어졌다. 초콜릿이 뭐라고 이렇게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지. 눈물을 대충 훔치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이스마엘은 젓던 고개를 번쩍 들더니, 유산지 속에 초콜릿을 곱게 담고, 미리 준비해둔 상자에 고이 담았다.
가벼운 노크. 분명 이전에도 이렇게 노크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다 그 이후에도 자주 노크한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하루도 익숙해지지 않는 기분이다. 여전히 속은 간질간질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새하얗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도 한가득이다. 아냐, 정신 차리자! 이스마엘은 문이 열릴 적 야살스럽게 웃었다. 발그레한 뺨, 환히 웃는 고른 치열, 휘는 눈길…….
버거 세트, 식사 중에서는 가장 간단하다고도 볼 수 있는 메뉴다. 그렇기 때문에 격식을 차리는 식사자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음식인지라 당신이 거부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만, 당신은 이 관계를 그렇게 긴장을 주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간단하고 비교적 값싼 음식이기에, 접근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이 건물 바깥으로만 나가도 눈에 띌 만한 거리에 적어도 하나 이상의 가게가 있었을 터.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당신의 이어진 말을 듣게 된다.
"그건..."
글쎄, 무어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대답을 바란 말일까? 그럼 그냥 넘겨야 하나? 아무런 말 없이 지나가도 괜찮은가 싶었다. 아무리 고민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답이 떠오르지 않았으니 당연히 대답은 불가능했다.
"그럼 가실까요."
겨우 꺼낸 말은 그 정도, 지금은 대화보다는 다른 것에 집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10시에 잠들고 4시에 깬다니, 곧 깰 시간이겠구나..(뽀다담) 익숙해질 때까진 느긋한 기조로 돌릴 수 있으니까.. 너무 무리하지 말구, 건강이 제일 중요하니까. 알겠지? ;-; 20대인데.. 어째서...? 쥬주에게 쉴 권리와 편안히 잠들 수 있을 만큼의 여유시간을 달라 우우...;-; 부디 남은 1시간 동안이라도 개운하게 자고 일어날 수 있었음 좋겠구, 주말이 곧이니까 힘내자구~
적어도 지금은 격식을 차리며 서로 간의 예의를 따지는, 명백하게 공적인 관계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관계를 당신과 가진다 쳐도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무런 이득도 없을 텐데. 음, 신경 쓰이는 짐을 치워버리는 관계 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또 짜증 나는데. 묘하게 신경을 긁는 느낌이 드니. 뭐, 됐다. 긁는다고 해서 신경이라도 쓴 적이 있나. 지금은 답하지 못하는 저 모습을 즐기는 것으로 족하다.
"너무 깊게 받아들이지 마요, 그렇게 남 이야기를 깊게 들었다간 간도 쓸개도 다 뺏긴답니다."
요컨대 짓궂은 농담이었단 뜻이다. 당신이 대답하지 못하고 말 끝을 흐리는 모습이 재밌었는지 이스마엘은 생글생글 웃어 보이고는, 겨우 꺼낸 듯한 말에 느긋하게 점퍼 주머니에 손을 쑤셔 넣는다.
"좋아요, 어서 가지요."
마침 대화보다 행동이 필요하던 찰나였기에 이스마엘은 군말 없이 발을 움직였다. 무엇보다 여기에 계속 있으니 흘긋 쳐다보는 시선이 조금 더 짙어진 느낌이기도 하고. 당신의 옆을 느긋하게 걷던 이스마엘은 무언가 떠올랐는지 눈을 굴렸으나 딱히 먼저 얘기하진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어색한 관계에서 당신에게 곤란한 질문으로 몰아가지 않을 수 있는 눈치는 있다는 듯. ……아니지. 아직은 반응이 영 신통치 않을 것 같아서 입 다무는 것이겠지.
"어쩌다가 지원하게 된 겁니까?"
대신 다른 질문이 있었으니, 지극히 잘 짜인 교과서 같은 발언이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은 질문.
갱신...할게.. 쥬주 되게 바쁘구나 ;-;.. 오늘 하루도 정말 고생 많았구, 3월부터는 조금 수월해지길 바라.
나는 금-토 정신이 없었네.... 금요일은 내내 일하느라 정신이 없었구..ㅋㅋ 오늘은.. 조금 현생에 좋지 못한 일이 있어서 잠시 다녀왔는데 잘 마무리 하구 왔으니 걱정 마. 답레는 늘 말하지만 천천히, 느긋하게 줬음 좋겠어. 쥬주 바쁜건 예전부터? 본어장부터? 알았으니까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다구~ >;3c 오늘 하루 고생했으니 내일은 푹 쉴 수 있는 하루 되길 바라..
네가 고민하는 것을 알았는지 당신은 농담이었다며 너무 깊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런가, 농담인가... 농담인지 아닌지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보이려나 싶었지만 이미 한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는 법이고, 그렇게 주워담을 수 없는 것을 주워담으려고 애쓰는 모습은 그다지 보기에 좋지 않다.
"알겠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알았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당신은 네 제안에 선뜻 좋다고 대답했으니, 당연히 너는 그 대답에 응해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천천히, 정확히 말하자면 너는 그다지 천천히 걷는 건 아니었지만 당신이 너의 걸음에 맞추다 보니 퍽 느긋한 모양새다, 어쨌든 걷던 도중 당신에게서 들려온 질문에 너는 당신을 살짝 보다가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저주받은 자가 아니라 축복을 받은 사람이 될 만한 길 중 가장 바랄 만한 길이었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있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만큼 무겁다. 너의 삶뿐만 아니라, 네가 죽어 없어지더라도 너와 관계된 이들은 최소한이라도 보장받으며 살 테니, 사실 너에게는 조국의 원대한 목적과 같은 것은 어디까지나 부가적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알려주지도 않을 뿐더러, 알려준다고 해도 전부 알아챌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너는 그것보다는 네 삶, 네 주변의 삶에 좀 더 집중하고 싶을 뿐이었다. 거창한 이유라기엔 지극히 개인적이었기에 이야기를 꺼내도 좋을까 조금 고민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격식이나 상하관계, 혹은 그 이외의 공적인 요소가 없는 자리를 위해 걷던 도중 뱉었던 질문은 정석적이었으며, 동시에 지루하기 짝이 없기도 했다. 어쩌다가 지원했을까? 이스마엘은 그 점이 제법 궁금하던 차였다. 다른 사람이 물어봤더라면 누구나 같은 답을 내놓을 걸 알았기에 예의상으로만 질문했을 테지만, 적어도 이스마엘은 아예 다른 시선에서 살아왔던 사람이었으니까. 느긋한 발걸음과 함께 시선이 와닿았을 때, 이스마엘은 채근하지 않겠다는 듯 느릿하게 눈짓하듯 눈을 굴렸다.
"아하."
제법 흥미로운 답변이었는지 이스마엘은 영혼 없이 미적지근한 반응이 아니라 반쯤 진심이 담긴 감탄사를 뱉었다. 흥미롭기만 할까? 신기하기도 했다. 언젠가 헬무트가 이스마엘에게 했던 말이 있다. 너는 조국을 위해 사는 것이 당연하지만 누군가는 조국을 위해 살아야만 삶을 부지한다고. 국가에 반하는 행위를 하다 처형을 위해 끌려오던 뮤턴트 몇을 보면서 들었던 말이지만, 이렇게 새로운 시점에서, 다른 문장이되 비슷한 뜻이 내포된 말을 들으니 감회가 남다르다.
"그렇군요, 그렇지요. 그래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멋지다고 해야겠군요? 멋지군요, 네에."
다시 봤어요. 덧붙이는 말은 당신을 온전히 인정하되, 조롱하는 기미 또한 없다. 그렇다고 당신에 대해 좋게 보는 건 아니지만. 뭐, 그래도 바닥은 기어도 정신은 똑바로 박힌 사람이구나. 단순하고 어쭙잖은 쭉정이 보다 괜찮긴 하다. 그러고 보니 그때 헬무트가 또 뭐라고 했더라……. 생각을 정리하듯 이스마엘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던 손을 빼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옆머리를 귀에 꽂았다. 눈을 내리깔고 제 발치를 쳐다보며 걷던 이스마엘의 발걸음이 잠깐 멈칫하나 싶더니만 다시 템포를 맞춰 걷는다.
네 대답이 당신에게 얼마나 흥미를 끌어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돌아온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통해 만들어지는 문장은 으레 나올 법한 조롱도, 비아냥도 없었으니, 적어도 최악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약간이지만 너는 속마음을 내비쳤다. 당신이 빈말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지금 네가 느끼는 대로라면 아마, 진심이겠지. 그렇기에 너 역시 자연스레 그리 이야기했을 터다. 아주 잠시 멈칫하는 듯한 당신의 발걸음에 시선을 옮기다가도, 금방 다시 움직이니 너도 마찬가지로 시선을 되돌리며 걸었다.
"케르스트너 씨는, 어떻습니까?"
그리고 가만히 있는다면 이어질 만한 침묵을 미리 몰아내려는 듯, 너는 질문을 되돌렸다. 이는 이 질문이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때에 따라서는 그 사람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는 질문이기도 했으니 더욱 그러했다. 자고로 무언가를 묻는 자는 그에 답할 준비도 해야하지 않겠는가.
이스마엘은 제멋대로라는 평가를 받고, 안식 내부에서도 유달리 예민하고 눈이 높은 편이란 소리를 듣긴 했지만 누군가 내세운 포부가 괜찮다 해도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란 이유로 깎아내릴 만큼 성품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적어도 이런 곳에서는 사회성이나 인간미를 보여줬고, 마침 당신이 내세운 이유는 이스마엘의 흥미를 끌어내며 감탄을 뱉게 하긴 충분했다. 그나마 이 부분만큼은 가란의 손이 아니라 헬무트의 손에도 자랐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물론이지요."
다행이라, 자랑스러워해도 될 것 같은데. 이스마엘은 고작 며칠 전에도 봤던 사형수를 떠올렸다. 뮤턴트의 자유니 뭐니 설치다 결국 잡혀 죽음만을 앞뒀음에도 여전히 국가가 잘못되었다며 어리석은 말만 뱉던 것들. 그런 버러지들이 보고 배워야 할 텐데. 그 이후에 떠올린 생각이 알게 모르게 이스마엘의 속내를 쿡 찔렀다. 너도 그렇게 될 수 있으니 주의해라. 라고 했지. 헬무트가 했던 말을 떠올리다 보니 발걸음이 잠깐 멈추고 말았으나, 지장이 갈 정도는 아니었다. 다시 걷던 도중 이스마엘은 한 박자 늦게 당신을 쳐다봤다.
"글쎄요. 어쩌다 지원한 것 같나요?"
여전히 이스마엘은 케르스트너라는 성씨에 한 박자 늦었다. 아무래도 성씨로 불리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사람들은 모두 이스마엘을 헤베라 불렀고, 안식의 사람들은 애칭으로 불렀으며, 헬무트는 이름으로 불렀으니. 아버지의 온전한 것이라 생각했던 것을 자신이 듣다 보니 그렇게 빠르게 반응하긴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스마엘은 당신에게 짐짓 가볍게 질문하듯 하다, 작게 웃었다.
"영광스러운 조국에게 은혜를 입은 이상, 안식에 소속된 사람들은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고 어떤 명령에도 충성하는 법이지요. 나는 그 큰 은혜를 갚기 위해 부름을 받고, 대표로 밖으로 나선 거예요."
당연하다는 듯 입을 벌린 이스마엘은 다시금 손을 주머니에 꽂았다. 안식의 집행인들은 전부 안드로이드처럼 국가에게 충성하는 칩이 심겨져 있다는 도시 괴담이 있더니만, 막상 발언에서 느껴지는 진심과 충성심을 보면 그 괴담이 틀린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물론 아버지께서도 자질이 있으니 안식 밖에서도 활동하라 제안한 것도 있지만…… 그건 내가 나선 직접적인 이유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그 이유로만 보고 있지만 뭐 어떤지. 이스마엘은 시선을 마주했던 고개를 돌렸다. "충분한 답이 되었을까요?" 라며.
물론이라며 한 번 확언까지 했다. 어쨌건 당신은 네가 이 자리에 온 이유를 좋게 판단하는 듯해, 너도 모르게 조금은 안심했다. 앞으로 팀이 해체될 때까지, 누군가 죽어 교체될 때까지는 같이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인상이 나쁘지 않게 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와중 어쩌다가 지원한 것 같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당신이 작게 웃으며 말을 이어나가자 귀를 기울인다. 조국에 은혜를 입었으니 당연히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국가의 부름을 받았으니 마땅히 응해야 하니까. 누군가가 듣는다면 애국자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을 터다. 은혜라... 그러니까 보은을 목적으로 했다는 이야기였다. 겉치레라도 비슷한 느낌의 이유를 대는 사람은 많겠지, 아마 대부분이 그럴 터다, 설령 부와 명예가 목적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리고 그건 그다지 비난받을 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다른 이들이 숭고해 보이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진정 숭고한 일인지는 알 수 없는데다가, 무엇보다도 너 스스로가 그런 고귀한(혹은 고귀하게 비춰지는) 이유를 지닌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으니 적어도 너에게는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할 자격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그렇군요."
대답은 짧았다. 생각이 짧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해온 일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거니와 무어라 평가한다고 했을 때 '대단합니다. 멋집니다.' 등의 지루한 말밖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정말, 진심으로 말하자면, 입에 발린 말을 할 수 없었던 건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도 모를 정도의 사람은 아니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일수록 아부를 끔찍하게 여긴다. 게다가 당신은 이러한 말을 수도 없이 들어온 건 아닐까 싶어, 더욱 그러했다.
대신 너는 다른 말을 좀 해보기로 했다.
"그럼, 조국에게 입은 은혜가 없었더라면 이 자리에 없었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실로 파격적인 말이었음을 너도 알았다.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중함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는 말임도 알았다. 어차피 지금의 당신은 은혜를 입은 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럼 이는 가정일 뿐 전혀 쓸모가 없는 일종의 빈 껍데기 같은 화두일 뿐이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는 지극히 불쾌한 말일 수도 있었다. 너는 지금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영광스러운 조국. 언제까지고 빛이 꺼지지 않을 삶, 숨과도 같은 곳. 영원한 낙원……. 이스마엘이 조국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단어는 아주 많았다. 이따금 부정적인 단어도 떠오르곤 했지만, 모범적이고, 성실하다 못해 치열한 삶에서 부정적인 단어를 가져봤자 긍정적인 단어를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스마엘은 이 삶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쥐게 됐다. 아니, 그건 기회가 아니다. 다른 속물들처럼 이스마엘은 영광스러운 순간을 수단으로 이용할 생각은 결단코 하지 않았으니까. 이건 은혜다! 이스마엘은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만 했다. 설령 목숨을 바치는 일이라고 해도.
"네에."
짧은 맞대답을 뒤로 이스마엘은 잠시 정면을 쳐다보며 걸었다. 아직 당신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나쁘게 볼 사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밑바닥을 기고 있지만 설탕 발린 말을 늘어놓지도 않고, 바깥의 이상한 테러리스트와 달리 제정신이 박혀있기도 했고. 당신에 대한 호감도가 아버지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아직은 좀 먼 것 같기도 한 중간에 위치했을 때, 이스마엘은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이스마엘이 생각하기엔 당신에겐 남들에겐 없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예뻐해 줄까 생각하면 그러기가 무섭게 다시 못된 짓만 골라버리니! 도통 예뻐할 수가 없다. 이스마엘은 조국을 가볍게 생각하지 못했고, 당신의 질문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던 모양이다. 더군다나 이스마엘은…….
"……유감이에요, 이 자리가 죽은 자를 위해 마련된단 소리는 못 들었거든요."
은혜를 입지 않았더라면 죽었을 테니까. 이스마엘이 뱉은 말에는 깊은 가시가 담겨있었다. 안식의 두 기둥이라는 이름의 이면. 아무리 위에 섰다 한들 개입하는 손이 없더라면 저기 밑바닥의 삶과 다르지 않았을 존재. 조국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안식은 없었을 것이고, 안식이 없었더라면 이스마엘은 이미 죽었을 테다. 이스마엘은 나긋나긋, 한 글자씩 떼듯 발음했다.
"뷔시카리오 씨, 그쪽이..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질문했다는 걸 일생의 큰 행운이라 여겼으면 해요."
걷는 걸음의 속도는 일정했고, 서글서글 웃는 낯은 여전히 어떻게든 헬무트가 끌어모은 사회성 덕분에 무너지지 않았지만 어딘가 싸늘하다. 네온사인처럼 스스로 빛이 나는 듯, 휘어있는 눈동자를 마주하면 당신은 익숙한 느낌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수료식 때 느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던 살의.
"원래 '우리'끼리는.. 이런 얘기가 나오면 팔다리를 하나씩 분지르곤 했거든요……."
먼 나라 이야기와도 같았으나 눈이 농담이 아니었음을 얘기해 준다. 안식은 국가를 위해 잘 조련된 맹수였으니까. 규칙이 있고, 최소한의 윤리가 있는 군인과는 달리 태생부터 야성으로 기인되게끔, 비윤리적이다 못해 짐승의 길에 발을 들여놓아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 마지막 남은 양심으로는 할 수 없는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고 그 삶에 대단히 만족하는 맹수.
"농담이에요."
그런 맹수가 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무리에 섞이더니 당신 앞에서 인간성이 있음을 감사히 여기라 하는 것은 모순일까, 아니면 기만일까, 그것도 아니면 인간이 되고자 하는 발악일까. 적어도 지금은 기만이겠다.
아무래도 당신은 후자 쪽의 사람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게 잘못이라거나, 당신이 특이한 사람이라거나 하는 증거는 될 수 없으니 결국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반응이 돌아올거라는 생각을 아예 못 한 상태였던 것도 아니고, 다소 각오를 한 뒤에야 꺼낸 말이었기 때문에 너는 당신의 말에 크게 동요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어쨌건 당신의 말은 꽤 살벌한 것이어서, 여기서 네 숨을 끊을 수도 있었다는 의미가 분명한 말이 네 귓가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다행이군요."
다소 건조한 대답이긴 했지만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너는 나름대로 운이 따랐거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식에 대해서는 아예 모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그 곳에서 일하는 처형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면 분명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으니까. 그러니 너는 먼저, 지금 당신의 마음이 바뀌기 전이라는 상황이었음에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동시에 네가 당신이 말하는 '우리'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농담하는 걸 좋아하십니까?"
그런 질문은 뭐, 그런 생각의 연장선이 아니었을까. 잠시 네 쪽으로 향했던 시선을 받는 대신, 앞을 보며 걸으니 이제 곧 도착할 것 같다.
//답레! 타지로 출근.... 8ㅁ8 혹시 타지에서 묵기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고생이 많아요 이셔주ㅠㅠ 몸조심하구! 날씨가 오락가락하니까 트기 감기 걸리지 않게 신경쓰도록 해요!
이스마엘은 안식 내부에서도 손꼽히는 너그러운 사람에 속했다. 처음부터 공격을 감행하는 제나 여타 집행인과는 달리 사람의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주고, 어떤 반론이라도 사람 좋은 모습으로 사근사근 일관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비록 처형의 순간을 두고 너그럽다 성품을 규정짓기에는 모순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찌 됐든 이스마엘이 사형수도 아닌 시민에 해당되는 당신의 얘기에 살기를 비춘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다행은 한 번으로 족하지요."
이다음에도 똑같이 넘어갈 거라 생각 말아라. 그런 의미를 담아 나긋나긋 입술을 벙긋였다. 이것만큼은 농담이 아닌 진심이었다. 안식에서 그 누구도 행하려 들지 않은 일을 당신이 계속 하나씩 해냈으니. ..처음부터 민감한 주제라고 말을 돌릴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이스마엘은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조국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이스마엘도 없었노라, 혹은 그랬을지도 모른다며 타인이 멋대로 유추하는 건 질색이었다.
"좋아하는- 편이죠."
뭐, 그래봤자 마침 경고할 것도 필요했고, 이건 과한 것이 아닐 테니까. 이스마엘은 가볍게 마음을 가라앉히며 살의를 애써 누르곤, 숨을 한번 골랐다. 한숨처럼 작게 숨을 내쉰 뒤 당신을 바라보는 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쾌활한 호선을 긋고 있었다.
"그쪽도 농담을 좋아하나요?"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속으로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니 간판이 보인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상표의 이름을 눈으로 읽던 이스마엘은 창 너머로 자리가 있는지 가늠하듯 시선을 내렸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셋 중 제일 중요한 가치는?" 쥬데카: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제일이라 하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선 둘 모두 결국 사랑의 한 형태일지도 모르니까요."
"마음에 드는 음식점을 발견하면?" 쥬데카: "꽤 자주 갈 것 같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조금 고지식해서요. 마음에 드는 음식점이 생기면 질릴 때까지 가는 편입니다. 음, 질린 적은 아직 없지만서도."
"이번은 네가 졌어. 더 노력하도록 해." 쥬데카: "상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번에도 또 부탁드립니다.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당신도 궁금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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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신고 겸 진단...!!(파스슥 흐흐... 좀 바빠져셔 간만에 왔네요, 진단이 어째 성격 드러내는 느낌으로 많이 안 나와서 조금 아쉽지만... 혐생 잘 버티고 계실까요...! 벌써 3월의 2주차입니다... 어느새 목요일... 내일은 불...금! 이지만 주말을 위해선 일찌감치 자야하는 나... 아무튼 생존신고 하고 갑니다! 나중에 뵈어용!
사랑의 형태라니.. 이렇게 말랑해도 되나..? 맞는말인데 쥬가 하는 말이라 말랑말랑하고 귀여운걸..? 귀여운..걸...흑흑 질릴 때까지 간다는 거 너무 귀엽잖아!!! 새로운 거 도전 잘 안할 것 같은 느낌이라 귀엽!!!다고!!! 그리고 쉽게 질린다 생각하는 이셔랑 사뭇 다른 느낌이라 대칭점 조아...🥹🥹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당신도 궁금하시겠죠.<<
궁금하고말고당연하지말랑콩떡앙냥먕냠냠냠... 여기서도.. 서로 안 봐주고 싸우기 달성해보고 싶다..(심해 취향) 나중에 보자구~~~~~~~
"내가 졌어. 너에게 이길 수 없었어. 그게 다야. 할 말은?" 이스마엘: "주어진 대로 살았더라면 네 명은 보다 길었을 텐데 그 경고를 무시하고 설치고 다녔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나요?" (적) "그 말을 이제야 듣는 걸 보니 늦게나마 철이 들긴 했구나." (제) "네에, 더 노력하도록 해요. 내가- 앞으로도- 당신에게 친히 시간을 내줄 테니까요. ……적어도 질리기 전까지는요." < 이거 쥬 진단이링 이어지는 거냐면 맞음
"사람들이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싶은 것은?" 이스마엘: "내가 아무리 남이 싫다고 해도- 초면부터- 이유 없이 잡아먹지는 않아요. 이유가 있는 거라고요." "내 기준이지만?"
"어쩔 수 없는 술버릇은?" 이스마엘: "……." "노코멘트 할게요." (이스마엘은 답지않게 시선을 슬슬 피했다.) 광공이셔 왔는가.. 에서 조금 더 취하면 에델이셔 왔는가..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