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모르그는 아늑하니, 아무리 어두운 그림자의 세계에 발을 들인 정상적인 장소가 아니라 해도 사람이 사는 곳으로 만들기 위한 흔적이 가득하다. 아지트에서 북적북적하게 모여 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 있을 장소가 필요하며, 여차하면 타인을 숨겨줄 장소도 필요함을 깨닫고 뒷세계에 암약한 5년간 하나하나 준비한 덕분이다. 덕분에 이곳은 양지와 다를 바가 없다. 누군가 살던 장소를 재량껏 바꿨는지 바깥에서 보면 마치 빈티지한 사탕가게와 같은 매력이 느껴지고, 안은 영안실과 화장터를 제외하면 포근하다. 지금 그가 앉은 자리가 유독 그렇다. 리넨으로 된 커튼 사이로 햇살이 따스하게 비쳐 내려 잔잔한 먼지가 춤추듯 떠도는 것이 이따금 보였고, 창문의 거미줄에는 미처 사라지지 않은 새벽 이슬이 아롱아롱 맺혔다. 불쾌한 약품이나 시체 냄새는 기술의 발전과 꾸준한 관리 덕분인지 따스한 홍차 냄새에 덮여 희미했다. 그리고 아늑한 소파는, 테이블을 기점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안경을 쓴 남성이 식은땀을 흘리며 부산스럽게 손을 모아 꼼지락댄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뒷세계로 흘러 들어온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람을 죽여 무법지대로 도망쳤거나, 그에 준하는 일을 감행했다 덤터기를 쓸 운명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했거나. 아마 후자일 테다. 그가 남성을 위해 준비한 홍차는 한입도 마시지 못해 식어가고 있었으니. 만약 남성이 끔찍한 살인을 저질러 이 뒷세계로 오길 각오했더라면 망설임 없이 홍차를 마실 사람인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 그는 이 남성이 누군지 안다. 남성은 피터 어거스트라는 이름을 가졌고, 나이는 63세이며, 장기 이식 전문의로, 심장에 대해서는 의학계의 거장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다.
“네가…… 여기 있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맥클라인, 네가 장의사 일을 한다니, 그것도, 루첼란에서…….”
그리고 그가 양지에서 살아갈 적의 인연이기도 하다. 빛이 가득한 양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지내던 시절의 그는 이 남성의 밑에서 꿈을 키웠다. 그렇지만 그는……. 남성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남성이 아는 맥클라인, 뒷세계의 J라는 인물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을 사람이었다. 아마 탄탄대로를 밟았더라면 큰 기둥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런 그가 어쩌다가 인생사가 뒤틀려 지금은 루첼란 뒷세계의 시체를 수습하는 일을 하는 걸까? 아마 5년 전의 일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겠지. 남성이 충격을 갈무리하고자 손수건을 꺼내 식은땀을 닦는 것과 달리 그는 평온하게 홍차를 마셨다.
“사람은 늘 예상치 못한 미래를 마주하니까요, 교수님. 그렇지만, 저는 여기에서 꿈을 이뤘습니다. 레지던트 과정 도중 그만 두었으니 면허는 없지만요.” “장의사와 법의관은 전혀 다른 분야지 않니, 맥클라인.” “이곳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다 보니, 제가 부검도 맡게 되더군요.” “……여기엔 어쩌다 오게 된 거니.” “글쎄요. 저는 제가 여기서 꿈을 이루기 보다……. 뉴스는 봤습니다. 뇌물을 받으셨다고요.”
양지에서 큰 장기 이식 스캔들이 터졌다. 15년 전, 선천적으로 심장에 이상을 가지고 있던 제약회사 사장의 딸에겐 장기 이식이 필요했다. 능력자로 인해 과학이 아닌 의학계에도 비약적인 도약을 딛는다 해도 장기 기증자는 부족한 실정에, 장기 이식이 필요한 상황에서 조건에 부합하는 심장을 찾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사고를 당한 여성이 들어왔다. 멀쩡히 살아있던 여성은 딸에게 필요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남성은 제약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환자를 뇌사 상태로 몰아갔다. 이후 반강제적인 동의를 받고 장기를 이식시켰고, 그 이후로도 다른 회사로부터 뇌물을 받아 비슷한 일을 반복해왔다. 그 사실이 다른 의사의 양심적인 폭로로 발각되자 남성은 루첼란으로 도망쳤다. 명백한 범죄 행위였다.
“5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교수님께서는 아직 살아있음에도 연명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설득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그 이후에 동생의 장기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고 했던 것도,” “맥클라인, 나는…….”
그는 힘없이 미소를 짓고 잔을 내려두더니, 손을 모았다. 야윈 얼굴과 드리운 다크서클을 보니 동정심이 피어올랐다. 그간 세상의 풍파를 많이 겪었는지 사명감으로 빛나던 눈은 생기를 잃어버렸고, 항상 차분한 미소를 짓던 입매는 많은 감정을 잃었다.
“……압니다, 교수님. 전부 알아요. 제 동생이 만약 여타 장기 이식 스캔들에 휘말린 사람처럼 피해자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제 동생은 얼굴의 반을 잃고 팔 하나와 다리 양쪽을 모조리 잃었으니, 아마 연명치료를 계속한다고 해도, 살아가는 것이 더 고통이었을 테니까요. 그건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적어도 교수님의 뜻을 존중했고, 제 동생의 죽음을 숭고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주변에서 가족도 지키지 못하고, 동생을 포기한 괴물이라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저는 그 사실 하나로 버틸 수 있었습니다…….” “맥클라인.”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 가렸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 너머로 쏟아졌다. 화창한 햇살에 드문드문 난 새치가 아스라한 빛을 발했다. 남성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한때,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의 동생은 더러운 권모술수 속에서 놀아나지 않고 숭고하게, 정말로 다른 누군가의 삶을 위해 눈을 감았다고 얘기해도 그가 믿어주기나 할까?
“하지만 교수님.”
그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한때 격렬한 슬픔으로 인해 무너지고, 감정도 모조리 불타 없어진 사람의 눈은 루첼란 그림자 내부에서도 보기 힘든 덤덤함을 담고 있었다.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뇌사자로 판명이 났어도 한 시간 전에는 분명 숨을 쉬던 제 동생이 텅 빈 수술실처럼 껍질만 남았을 때, 저는 제 동생을 직접 꿰맬 사람을 찾아다니기 위해 불 꺼진 병원을 돌아다니다 결국 직접 손을 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외로운 마지막을 배웅해 줄 사람이 저밖에 없다는 것과, 그 사실이 제법 참담하다는 것을……. 그리고 교수님 또한 배웅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도.” “잠깐, 맥클라인, 오해가 있네. 자네의 동생은 스캔들이 아니라─” “교수님은 제게 있어 최고의 스승이셨습니다.”
일곱 발의 총성이 울렸다.
살랑이는 리넨 커튼 너머로 빛무리가 쏟아지고 새하얀 먼지가 둥실거리며 춤을 춘다. 아늑한 정적 속에서 그는 다시금 잔을 들어 식어버린 홍차를 마셨다.
그보다는 언제부터 리더가 그런 걸 신경쓰는 사람이었나 싶다 시간이야 내라면 내라는대로, 하라면 하라는대로 하는 것이 아발란치의 유일한 법이자 룰이었으니 그러니, 시구레가 시간이 없을리는 없다 그 탓인지 오히려 이렇게 접근해 오는 쪽이 훨씬 시구레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말하는 걸 보면 평소의 리더인 것 같지만... 시구레는 잠시 그런 유토를 수상쩍다는 눈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
"...목욕탕을 박살내지 않는다고 약속하면요. 그리고 무의미한 살상도 금지예요."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이거나 거절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에 조건을 두 가지 붙인다 맞닥뜨린 상대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제약이 될테니, 빙 에둘러서 거절하는 것과 거의 다름은 없는 것 같지만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