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건전한 놀이라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시구레는 이미 노름이라는 걸 확정지은 모양이었다. 틀린 것도 아니고. 쏘아붙이는 눈빛을 마주보는 건 붉은 빛의 점 하나 뿐인지라 무슨 생각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인정할 생각은 없는 것 같지만.
"그거야 이런 모습을 보면 흥미가 생기는 게 당연하지! 게다가 돈도 좀 가지고 있었고, 좀 뜯을 만한 놈이구나 생각했겠지!"
날 얕보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어깨를 으쓱이는 그. 절대 돈을 속수무책으로 잃고 기분이 나빠져서 패버린 건 아니라는 듯한 제스쳐였으나 누가 봐도 돈을 잃어서 때린 모양새다. 다만 쳐맞을 만한 이유 자체는 있었던 모양인지라. 바닥에 나자빠진 놈의 소매에서 카드가 한 벌 더 빠져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정작 그는 못 봤지만.
"처리라니, 혹시 저 놈들 말이냐?"
한숨을 쉬며 이마를 감싸쥐는 시구레의 모습에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듯 투구가 살짝 옆으로 기운다.
"전부 목을 따는 게 목적이라면 무슨 상관이냐, 이미 다 뒤진 것 같은데."
물론 그가 사람을 패는 게 얌전한 건 아니었기 떄문에 전혀 조용하지 않았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저 조용해야 할 이유를 모를 뿐이지. 전화기를 꺼내드는 모습에 팔짱을 끼곤 내려다보며 덧붙인다.
190을 넘는 거구가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있다 어딜 봐도 정상이 아닌데 ...조금 바보처럼 보이는 건 사실이지만, 물을 흐릴 것 같은 사람은 장에 들이지 않는게 상식이다 그깟 호구잡을 욕심 따위에 목숨을 걸었단 말인가? (어차피 시구레에게 전부 죽었을 테지만)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니, 이 사람이라면 그럼 그것대로 기분이 나빠져서 전부 아작을 내버렸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거면 사전에 말이라도 해주던가...'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시구레는 아주 잘 인지하고 있었다
"밥 먹으면서 소리내는 걸 맛있게 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죠. 대부분은 후자에요."
이정도 설명했으면 알아들었으려나 즉 과정 자체를 목적 정도로 중요시하는 사람도 있다는 말인데 살인청부라고, 목숨을 앗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의뢰주쪽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등한시 하게 되면 평판은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특히나 이런 일에 관해서 일수록... 평판은 생명이다 아무튼 시구레는 전화를 들어올렸다. 이미 단말기에서는 수화음이 흐르고 있었다. 이반이 그 전화의 수신자에 대해 궁금해하자 시구레는 대답했다
"'청소부'에요. 아저씨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제쪽에서 정리까지 맡아서 하는 수 밖에 없어요."
원래 이런 일은 의뢰주가 청소부를 보내는 게 맞지만, 계획이 틀어졌으니 어쩔 수 없이 흔적을 지워야한다 돈은 조금 들겠지만 의뢰주에게 실수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훨씬 수지맞는 장사다. 평판은 떨어지지 않는다... 조금 멍청한 사람이라면 서비스라고 둘러대면 좋아라 할지도 모른다. 뒷세계의 장점이자 단점은 머리 나쁜 사람들이 많다는 거였으니까 그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전화 건너편에서 수화기를 들었다. 시구레는 잠시 시끄러운 이반과 멀찍이 떨어져서 귀를 막고 통화를 나눴다. 길지 않았다. 짤막한 대화가 몇 번 오고가니 전화는 어느새 끊겼다
"출발했대요."
그렇다면 남은 일은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 뿐이다
"아저씨도 남으세요."
시구레는 근처의 당구대 위에 올라앉아 이 '예상 외의 불청객'이 허튼짓을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잘 준비를 마치고 침대로 들어가니 유토의 진단이 보여요! 은팔찌.. 안 아프게 채워주면 좋겠어요.. 유하게 말해달라 하면 죽는군요...ː̗̀(ꙨꙨ)ː̖́ 쓴 음식을 싫어한다니, 이 부분이 특히 귀엽고 사랑스러워요. 귀여운 유토의 진단을 봐서 행복하네요... 욕심이긴 하지만.. 아말도...͡° ͜ʖ ͡°
시구레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이반을 바라봤다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이 대화, 길게 끌면 끌 수록 이쪽도 바보가 될 미래가 확정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지금의 음식같은 이야기만 해도 그렇다 저 갑옷은 방호능력과 더불어 상식적인 사고를 방해하는 힘이라도 깃든 건지 영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다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 중 손에 꼽는 사람이다 그러나 조직원이라는게 그렇듯, 이미 얼굴 보지 않고 살기에는 글러버린 운명이었다
"남 · 으 · 세 · 요."
이반이 떠나려 하자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총을 든 팔을 들어 겨눈다 그리고 그녀는 손 안의 권총을 주저 않고 쏘...려나 지금 당장은 쏘지 않고 위협만 할 뿐이었지만, 말을 듣지 않는다면 총을 쏘는 것쯤은 하나의 수단으로 여길지도 모르는 그녀였다 다만 대신에, 시구레는 손목을 걷어 시계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격발을 대신했다. 이반에게 구멍을 내는 것보다는 훨씬 인도적인 처사였다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별로 안 걸려요. 한 10분...정도 일까요.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남의 일터를 난장판으로 만든 벌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저 돈은... 전 필요 없어요. 아저씨 가져요. 원한다면."
주인 잃은 돈이다.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돈은 중요하다. 저만한 금액이라면 당분간은 탄값 걱정하지 않고 지낼 수 있겠지만...
'왜인지, 그다지 미련이 남지 않네.'
게다가 뒷세계에서 돈은 하나의 상한 음식과도 같다 출처모를 돈을 아무렇게나 가져가면 그로 일어나는 뒷탈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책임이었다 괜한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럴 만큼의 욕심은 없다...
"전부터 보고 있었어! 첫눈에 반했어! 사귀어 줄래?" J: ……혼란스럽군. 일단 거두절미하고 대답부터 하자면 거절이오. 이유가 무엇이냐 물었소? 내 얼굴을 보시오. 그대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시오? 신원조차 특정할 수 없고, 하물며 눈을 마주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이오. 거기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뒷세계의 사람이지. 그쪽은 내 어딜 보고 반했는지는 몰라도, 사람을 경계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겠구려. 부디 나같은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사람에게 빠지지 마시오. 그쪽은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소.
"할 수 있는 최악의 욕은?" J: 심한 욕이라. 그래, 그대가 마지막으로 볼 존재가 누군지는 아시오? 나는 그대 얼굴을 볼 생각이 없는데, 동네 개라면 모를까.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신은 예의가 있다?" J: 없는 편이라 생각하오. 결국 겉치레의 예의일 뿐이지.
무광의 검은 권총을 들어올리자 철컥거리며 소리가 났다 이반은 손을 저으며 그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시구레에겐 이미 그가 불청객으로 낙인이 찍혔는지 매몰차게 말을 이어나갔다
"아저씨말고 다른 사람이 어디있는데요. 그리고 안 돼요.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아저씨야 밤새 그러고 다녀도 상관 없겠지만 저는 내일 학교도 가야 한다구요."
학교, 그렇지. 매주 5일 정도는 등교라는 과업이 뒤따르고 있었다 이것은 학생 신분의 귀찮은 점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종일 이런 짓을 하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지금이 훨씬 나은 처사였다 이중생활을 하는 것은 위험부담이 존재하나, 내게는 필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누가 시켜서 다니는 것이 아니다 졸업까지는 이제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때까지는 힘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는 시구레는 이반의 가벼운 제의에 잠깐 생각하더니
"...그럴까요."
하고 중얼거린다 차라리 그냥 그래버릴까 애초에 그렇게까지 큰 돈은 아닌 것 같으니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생긴다고 하더라도 돈을 챙긴 건 그쪽이니 저쪽에 꼬리를 물테다 사실 이런 생각은 조금, 타산주의적이기는 하지만. 알게 뭔가 시구레는 당구대에서 내려왔다
"몰라요."
그녀는 등을 보인채로 이반이 날뛰느라 테이블과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지폐다발들을 회수하며 대답한다 어질러진 돈을 그대로 그들에게 줄 수는 없을테니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쏘지마세요! 라는 듯 손을 드는 제스쳐를 취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다지 신경은 안 쓰는 듯 양 손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거 실례구만! 나도 잠은 잔다!"
잠은 잔다며 또 엉뚱한 방향에 역정을 낸 그는, 학교를 가야 한다는 말에 살짝 고갤 기울인다. 학교라. 뒤에선 이렇게 사람의 숨을 끊는 일을 하면서 앞에선 학생이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 붉은 안광만으로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예상치 못한 지출을 예상치 못한 수입으로 막는다, 이만큼 좋은 게 어딨겠냐, 그냥 써버리자고."
물론 그는 그 돈에 손을 델 생각이 없었다. 뒤가 구려지기 때문, 그런 이야기라기보단 그다지 신경 쓸 마음 자체가 없는 듯했다. 당장 돈을 잃은 탓에 열받아서 사람을 패 놓은 거라서, 딱 그만큼만 회수하면 족했으니까. 당구는 할 줄 아냐는 물음에 배우지 않았다며 모른다고 대답하는 시구레, 그녀가 지폐다발을 회수하는 것을 보며 마음은 정한 것 같구만 하고 중얼거린다.
"아까부터 하고 있거든요. 아니, 애초에 아저씨 자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요. 이 갑옷괴인."
자각이 없는 건가 이 아저씨 시구레는 툴툴거리면서 주워올린 지폐다발을 두부같은 모양으로 가지런하게 정리했다 정리하며 살펴봤던 일부 지폐에는, 혈흔이 약간 묻어있었다 그건 이것이 더러운 돈이라는 명확한 증표였지만. 뭐 상관없겠지
"그거 들어본 적 있어요. 8구인가 9구인가 하는 그거죠."
시구레는 아는 척하지만 단지 들어본 것 뿐,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원래는 청소부가 도착하는 10분동안 핸드폰이라도 보며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는데 마침 당구대도 있으니 단순히 그러는 것보다는 여기서는 배워가는게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새로운 사실을 배우는 것은, 실은 꽤 흥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