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가 휘두른 철퇴는 턱을 스치고, 에르베르토는 목 부근이 그였는지 피가 한줄기 흐릅니다.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여전히 일상을 영위하듯 움직이던 에르베르토가 다시금 공격을 준비합니다.
"그래요, 그게 당신 같은 반동분자의 본성이죠. 나를 죽이고, 한때 같은 팀이었다 한들 죽여버리는 것을 보세요. 어찌 그런 마음으로 혁명을 하나요, 우스워라. 당신들의 혁명은 틀린 거예요, 어중이 떠중이만 모인 집단이라는 거죠.."
한편, 뭐든 도우라는 외침이 선우와 라라시아.. 즉 사방에서 들려오니, 결국 이상향을 받아들이느냐, 여전히 악독하게 살다 악독하게 죽느냐의 갈림길에 서던 가란이 후우, 하고 한숨을 쉽니다.
"에르베르토 엥엘."
그러고 보니, 신디가 전해준 정보를 기억하시나요? 쌍둥이가 지팡이를 이용해 정신적인 착란을 주었다고. 그리고 그 지팡이를, 가란이 쥐고 있습니다.
"그대로 멈춰."
에르베르토의 몸이 잠깐 굳어버립니다. 이 정도야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겠지만, 레레시아와 레이의 주사기가 몸에 꽂히자 순간 멈칫- 하더니만..
"지금, 뭐 하는..?"
동공이 수축합니다. 아마데우스가 철퇴로 스치게 한 부분을, 멀쩡한 팔로 슬쩍 더듬기가 무섭게 이내 몸을 후들거리며 떨기 시작합니다! 대처, 대처를 해야만, 이대로면-
쿵-!!
제가 알파의 목덜미를 물어챈 상태로 하강하더니, 그대로 억센 어금니를 통해 숨통을 끊어버립니다.
피가 튀고 대리석의 묵직한 파편이 튀어 오릅니다. 부서진 파편이 몸에 박히자 에르베르토가 고개를 쭉 빼들며 이를 악뭅니다. 놓치지 않고 신디가 달려들어 보검으로 난도질을 하자 옆으로 점차 밀려나더니, 레이먼드는 보검을 뽑아들고 에르베르토를 찌르는 것에 성공합니다. 겨우 두 사람을 밀쳐낸 에르베르토가 그렇게 밀리고 밀렸을 적.
"이런 *발."
쨍그랑-!
에르베르토는 수류탄의 충격과 함께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갑니다. 부서지듯 반짝이는 유리조각과 함께, 에르베르토의 몸이 가장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후욱 떨어집니다. 창문이 로비의 방향으로 나 있으니, 떨어지는 곳은 하나겠지요.
우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를 뒤로, 당신들은 옹기종기 모여 깨져버린 창문 너머를 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장을 바치듯 날개를 펼친 이상향의 팔에, 마치 피에타 상의 예수처럼 에르베르토가 늘어져 있습니다.
"어째서, 어째서……. 나는 틀리지 않았, 는데-"
그 수많은 부상을 입고도, 살아있는 채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피로 물들기 시작합니다. 입에서 피거품을 물고,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하는 고통에 몸을 뒤틀며 발작하던 에르베르토는 꿈의 약효가 어지러이 뒤섞이자 히익- 하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는-!! 틀리지 않았어, 내가, 내가 이끌어야 하는데-!! 내가!! 아, 아아, 수잔나.. 나의 수잔나. 나의 사랑, 당신의 꿈을 내가 이루었어야 하는데, 내가-!! 흐윽, 으큽- 크흐흐, 아아아악-!" "……."
비틀거리며 창가로 다가가던 이스마엘은, 아득한 위에서 에르베르토를 가만히 내려다 봅니다.
"헤, 헤베.. 아아, 헤베.. 거기 있는 거 다 보여요. 결국 너도 내 딸이에요, 알아요? 사랑하는 나의 딸.. 그래요, 당신도- 결국 내가 일궈낸 발자국인데.. 나를 그대로 물려받은- 히익- 힉- 네 본성을 너도 잘 알 텐데- 그 빌어먹을 혁명 속에서- 너를 잃겠지요, 스스로 변절자가 되어-!! 결국 안식 속에서 나도느니.. 그러니 헤베, 일찍이 포기해요, 차라리 받아들여서 내 뜻을 이어요. 그게, 우리같은 존재에겐 구원일 테니-" "…."
그리고 그 순간. 에르베르토의 이마 한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생깁니다.
"아……?"
마치 수잔나가 생중계 방송에서 저격을 당했듯, 입을 조그맣게 벌린 에르베르토의 뒤통수가 터져나가고, 그대로 꿈틀대며 고통을 이겨내려던 몸도 늘어집니다.
이 행위가 누구의 짓일지는.
정적이 일었습니다. 이룩해온 모든 것이 에르베르토의 꿈이었다는 듯. 죽음은 이리도 허망히 찾아옵니다.
동료들의 합공으로 에르베르토는 쓰러졌다. 수류탄의 충격에 튕겨져나간 그는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인(聖人)의 자세로 늘어져 있었다. 깨져버린 창문 너머로 그의 죽어가는 모습을 봇 아마데우스는, 그를 위해 기도해줄 이는 아마 없을테니 에르베르토는 틀림없이 지옥에 갈 것이라는 감상을 남겼다.
그는 질긴 목숨줄을 자랑이라도 하듯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도 계속해서 궤변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이 추하게 느껴졌지만 그 광기가 엿보이는 집념에서 불쾌함을 느낀 아마데우스는 차마 끝까지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녀가 고개를 돌린 사이, 에르베르토의 머리는 박살이 나있었고, 완전히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마데우스는 차라리 보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 끝났네요."
정적이 일자, 어색함에 눈치만 보던 아마데우스가 말을 꺼냈다.
"...아아- 엄청 배고프다... 다들 식사는 하셨나요? 전투에서 이긴 기념으로 회식은 어때요?"
전투 후엔 축제가 있어야죠! 아마데우스는 피가 묻어있는 코 밑을 슥 닦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녀는 이스마엘을 향해 말했다.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선우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첫째도 복수 둘째도 복수를 위해서였다. 로벨리아와 아스텔이 지적한 것처럼 자신의 복수에 이곳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이곳의 많은 대원들과 트러블을 겪었고 여러번의 임무를 실패로 이끌뻔 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달랐다. 저마다의 숭고한 의지와 목표를 가지고 전장에 서서 싸웠다. 그러니 에르베르토가 말한 어중이 떠중이는 선우만을 지칭한 것이여야만했다.
이내 가란이 지팡이를 이용해 에르베르토에게 정신적인 착란을 주어 몸을 굳게하고 레레시아와 레이가 주사기를 꽂아버렸다. 뒤이어 아마데우스가 철퇴로 후려친 다음 제가 돌진하여 공격한다. 뒤이어 신디가 보검으로 난도질을 하고 레이먼드가 찔러버린다.
마지막으로 선우의 수류탄이 폭발하여 그는 창문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내 말 맞지?"
그는 싱긋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네 수잔나는 영원히 보지 못할꺼야. 아니, 어쩌면 지옥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마지막으로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려는 순간 그의 뒤에서 총성소리가 울려퍼졌다. 에르베르토의 이마 한가운데에 작은 구멍이 생기며 그의 몸이 늘어졌다.
라라시아는 가란이 한숨을 쉴 적 옆에서 싱긋 웃었다. 마음 가는 대로 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긋지긋한 전투에 종막을 불러왔다.
끝의 끝에서 가란이 한 수를 더해준 덕분에 레레시아는 에르베르토에게 약을 꽂아넣을 수 있었다.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누구 것이 먼저랄 것도 없이 무수한 공격이 에르베르토에게 쏟아지고. 피가 튀고. 그 사이로 당황하고 놀란 에르베르토의 얼굴이 보이는데 그게 어찌 그리 즐겁던지. 약을 꽂고 뒤로 빠졌던 레레시아는 결국 창문을 뚫고 밖으로 떨어지는 에르베르토를 보며 푸핫! 웃어버렸다.
"꼴 좋다. 그래. 결국 같은 인간에게 처벌 받은 심경이 참 궁금은 하다만."
묻기도 듣기도 귀찮다! 개운하게 소리를 친 레레시아에게 라라시아가 다가와 어깨를 짚어준다. 그 한 번으로 레레시아를 회복시켜주고. 라라시아는 제의옷을 펼쳐 들며 알파의 목덜미를 물어뜯은 제에게 다가갔다.
"고생했어. 제제 군. 이제 돌아가자. 다같이."
제가 돌아오면 얼른 옷을 걸쳐주고 감싸안아 무리했을 몸을 조금이라도 회복시켜주려 했을 것이다.
잠시 주저앉아있던 레레시아가 일어나 창가로 갔을 때는 이미 에르베르토의 발버둥이 끝난 후였다. 하필이면 저 조각상 위에 떨어지다니. 참 아이러니해. 머리가 터졌으니 이건 확인사살할 필요도 없겠다 생각하며 돌아선다. 이스마엘을 향해.
"...우리 서로 할 말이 참 많지. 안 그래?"
이스마엘의 눈을 빤히 보던 금빛 눈은 일순 엄하다가도 금새 풀어져 안심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피하지 않았다면 다가가 꼭 안아주고 다정히 말해주었겠지.
"데리러 왔어. 우리 예쁜 동생. 같이 돌아가자."
그리 말하며 장갑 끼지 않은 손으로 이스마엘의 얼굴을 어루만져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가란 군. 같이 가자니까? 설마 아직도 튕길 거야? 남자는 자존심이라지만 너무 튕겨도 매력 없다? 어? 갈 거지? 가는 거다?"
뒤에서는 라라시아가 가란에게 또다시 회유를 걸고 있었겠지만. 아무렴 어떨까. 이제 끝이었으니.
약물을 다행히 절반, 혹은 그보다 좀더 적은 양을 스스로에게 주사하고, 보검과 함께 녀석에게 찔러넣은 판단이 옳았다. 이 용량 전부를 나한테 쏟아넣었으면 이성을 유지할 수 없었을테니까.
그건 그렇고, 정말 위험한 물건이다. 신체가 걸어놓은 리미터를 풀어버리는 느낌. 뇌를 헤집어버리는 느낌... 여러모로, 한계를 깨버리는 약이 맞긴 맞았다.
그래서 그런가, 평소보다 반동이 심하다.
"커헉, 쿨럭! 쿨럭! 크흐... 젠장. 뭐가 보이지도 않는데."
피가 흥건한 입가를 겨우 비틀어 웃음 비슷한 것을 지어보려 하지만, 얼굴 근육조차도 말을 안 듣는 것 같다. 토혈한 입을 비롯해 여기저기 핏줄이 터진 점막에서 선혈을 흘리며 겨우겨우 앞으로 걷는다. 눈 앞에 뭐가 서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시야가 흐려져서 분간이 안되는데다, 땅이 지멋대로 울렁거려 내 얼굴을 때린다.
어째서긴, 당신이 틀려서인걸. 신디는 지친 얼굴로 창문 밖을 내려다본다. 당신의 죽음은 더 나은 이상향을 위한 제물이 될 것이다. 끝까지 혀를 놀리는 그를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보다, 이내 정적이 찾아오면 고개를 든다. 그대로 도기 널 향해 돌아서며 신디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끝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끔찍한 일이 끝나고 말았습니다. 이스마엘은 당신들을 한번씩 쳐다보며, 입을 꾹 다뭅니다. 아마데의 돌아가자는 말과, 신디의 따스한 눈길, 레레시아의 포옹과 다정한 목소리… 그래요, 이스마엘의 이상향은 에델바이스에 있는데, 대체 무엇을 고민하며 휘둘렸던 걸까요.
"……네, 돌아가요."
아직은 약에 제대로 벗어나지 못해 튀어 나오는 나긋한 발음을 뒤로, 이스마엘은 레이먼드의 몸을 가눌 수 있게끔 염력을 써 그를 부축하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선우를 향해, 라라시아의 도움을 받고 옷을 주섬주섬 걸쳐입던 제가 입을 벌립니다.
"돌아가자꾸나. 네가 아니었더라면 에르베르토가 저런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지 못했겠지."
기특하기도 하지. 그런 말을 뒤로, 가란이 라라시아에게 끌려가듯 하려다 조용히 팔을 내뺍니다. 여기 남아서 정리할 사람은 필요할 테니, 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겠지 않겠느냔 말과 함께요.
특수부대의 미션은 오늘도 성공입니다.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고, 마무리의 매듭이 지어졌습니다.
가장 먼저, 슬럼에서 벌어졌던 약물 유통 사건은 안식의 연구소장 에르베르토 엥엘의 단독적인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는 안식에서 아내와 똑같은 방식으로, 이마의 위치마저 동일하게 저격 당해 죽음을 맞이했고, 발견된 그의 시체는 가디언즈에 의해 수습되었으나, 애석하게도 수잔나의 곁에 묻히지 못했습니다.
연구소장의 사망을 비롯하여 영원한 밤의 안식은 에델바이스로 인해 사형인 카스트로를 잃는 등 큰 손실을 빚었고, 이에 사업에서 물러나노라 대외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에델바이스가 한 건 해냈구나! 레지스탕스는 환호했으나, 대중은 하나의 유흥 시설을 잃었노라 탄식했습니다.
가란은 그렇게 경영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려온 직후, 그의 수행비서와 함께 홀연히 자취를 감추자 사람들은 그가 다시 뒷세계에 암약했다, 망명을 했다, 자살을 했노라, 입막음 용으로 살해를 당했노라.. 제각기 입방아를 찧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습니다.
카스트로 쌍둥이에게 안식을 주었지만, 안식을 확인할 비숑.. 아니, 한때 헬무트를 밀고한 전 가디언즈 정보 부대원 '하워드 그레인저'와 그를 따르던 허스키라는 세븐스는 슬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단지 [나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야.] 라는 쪽지 한 장만 남아있을 뿐.
그의 머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이스마엘은 당신 덕분에 성공적으로 구출되었습니다. 명백한 증거를 손에 쥐었으니 탈주 혐의도 벗었지요. 현재 임상실험의 부작용으로 몸이 그렇게 성하지는 못하지만, 차차 회복하고 있습니다. 가끔 세뇌 되었을 적 보여주던 말투나 나긋나긋하던 행동이 일상에 섞이긴 했지만, 이건 큰 문제가 될..까요?
의무실의 스미스가 머리가 이렇게나 길어버린 이유를 묻자 에르베르토가 아예 실험관 속에서 배양액에 몸을 담가버리고 sogno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는 진술이 이어졌습니다만……. 그 끔찍한 과거와 달리 자를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제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싸가지도요! 이젠 많은 것을 배워 감정 표현도 서투르지만 똑바로 표현하고, 오만하긴 하지만 그 모습이 과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이번 일을 통해 한층 성장한 듯싶습니다. 최근 라라시아의 곁에 있는 날이 잦아졌습니다.
그리고, 인내는 도마뱀의 마음을 열게 합니다. 마침내 제는 라라시아에게 자신의 꼬리를 만질 기회를 주었습니다. 션과 가란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들도 못 해본 것이라며 탄식했지만 제는 불만스럽게 둘을 노려봅니다. 차례가 돌아오려면 아직 한참 먼 듯싶습니다.
에델바이스에, 가족이 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스마엘이 병상에서 일어나 개인실에 돌아갈 수 있게 된 날, 이스마엘은 늦은 생일 축하와 함께 마련된 커피 원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힘없이 웃더니 손을 휘적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