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속삭이듯 묻던 이스마엘이, 헤베가- 아마데의 주먹에 휘청거리더니만 체인에 휘감기고 맙니다. 이내 쥬데카의 말과 함께 털썩, 하고 주저앉을 적의 모습은 제법 가관이었지요. 산발이 된 기다란 머리, 홉뜨여 허망한 눈동자, 그리고, 소름 끼치는 침묵.
"……아?"
이스마엘의 코를 기점으로 피가 한줄기 흐릅니다. 한줄기, 이내 두줄기로, 그치지 않고 턱을 타고 흐르는 것을 이스마엘도 눈치챈 듯싶습니다. 바닥을 향해 한 방울, 두 방울.. 그 모습을, 세븐스 부랑자가 모인 곳을 다녀온 신디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으흑, 흐흐, 으흐흐흐... 쿨럭.."
꿈의 전형적인 부작용 증세. 코피, 감정의 혼선, 각혈을 비롯한 이상.. 약을 먹기만 해도 그런 부작용이 나타나는데, 약물의 임상실험 대상자가 되다 못해 절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흐흑, 고작 꿈인 주제에, 말이, 말이 많아.. 아.. 흐흑.. 고작.. 아, 또 이러네.. 흐흑, 흐.."
아무래도 부작용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이스마엘은 작게 시시덕대기 시작했습니다. 키득거리는, 어딘가 텅 비어버린 작위적인 소리를 뒤로 말갛게 웃기 시작합니다. 마치 헬무트를 잃었던 그날처럼. 배덕감에 가득 차 몽롱하게, 그리고 오싹하게 미소를 짓는 모습. 코와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몸이 가늘게 떨립니다. 그리고 신디가 헤베, 라고 부르는 순간.
평소라면 에르베르토가 주변에 있었거나, 쌍둥이가 대처했겠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그래도 우리에겐 약이 있지 않았습니까. 이 약의 재료 또한 세븐스지만, 어쩌겠어요. 살리려면 써야겠죠. 신디는 이스마엘에게 성공적으로 주사를 놓았습니다. 이스마엘이 앞으로 툭 고꾸라지며 당신의 어깨에 늘어집니다. 웃음이 잦아집니다. 숨이 가쁜 듯 헐떡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윽, 윽, 몇 번이고 그렇게 숨 넘어가는 소리를 뱉습니다. 약이 잘못된 걸까 싶었을 때..
"도, 도너티, 아마, 데 씨도..?"
이스마엘의 입이 더듬거리며 단어를 뱉기 시작합니다. 눈이 점차 맑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반은 몽롱합니다.
"꾸, 꿈이, 아니었구나. 아, 리, 리오. 내가 무슨 짓을.. 히익.. 미, 미안, 합니다.. 사,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는데.. 어, 어떡해..."
입에서 피를 울컥 뱉어내다가도 히익- 하고 숨을 들이켭니다. 동공의 떨림이 점차 멎어가고, 무너질 것 같은 육체의 떨림도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아무래도 세븐스끼리 충돌하는 모양입니다.
"미, 미안합니다, 아무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다, 당신들에게- 이상향의 잔재를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았는, 히익- 미안합니다.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었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히익- 않았을 텐데.. 히익.. 힉- 죄송, 죄송합니다.. 제, 제발.. 용, 용서해주세요.."
속삭이던 목소리와 함께 몸이 축 늘어집니다. 약은 성공적으로 들어간 듯싶고.. 히익- 힉- 하고 숨만 겨우 몰아쉬는 것이 힘이 빠진 것 같습니다. 데려가지요. 예. 돌아갈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션이 가란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제의 대답에 라라시아는 그리 말하며 손을 조금 더 다정히 잡아주었을 것이다. 다행이라는 말처럼.
방을 나가기 전에 라라시아는 벽으로 날아간 가란을 살펴보았다. 죽지는 않은 것 같으니 손을 대어 치유를 걸어주고 제와 나누는 대화를 듣는다. 들처메자 한숨을 푹 쉬길래 싱긋 웃으면서 한 팔을 잡는 걸로 정리했겠지. 그리고 가란을 보며 그런 말을 했을 거고.
"에. 가란 군? 죄값은 죽음으로 치르는게 아니야. 살아서 치르는 거지."
한참 연상인 가란에게 거침없이 그런 호칭을 붙여 말을 하고 지속적으로 치유를 사용하며 일행의 뒤를 쫓았을 것이다.
나뉘었던 부대원들과도 합류하여 도달한 최상층은 아래와는 또다른 악취미적인 공간이었다. 너무 대조적이라서 재차 위가 쓰려지는 인테리어다. 으. 표정으로 방 안을 둘러본 레레시아는 방 안에 서 있는 에르베르토를 보고 보검을 해방해 무장을 둘렀다. 어차피 다 무너뜨릴 거니까. 손속 따위 해주지 않을 거다.
"하겠냐. X라이야? 네 마천루는 오늘로 나락의 밑바닥에 가라앉을 거다."
촤르륵. 촤르르륵. 발 밑으로 흘러내린 독액이 다수의 사슬이 되어 언제든 공격할 태세를 갖추어간다.
라라시아는 전투조의 뒤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려고 한다. 최상층에 도착한 후에는 제만 품에 폭 안고 볼을 쓰다듬어준다. 가란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이것이 더 나쁜 길로 향하는 선택이 아니기를. 빌고 또 빌면서, 신디는 네게 주사를 놓았을까. 코피를 흘리는 네 모습을 신디는 떨리는 눈으로 본다. 그리고 네가 자신을 부르며, 제 어깨에 늘어지면, 너와 재회했던 그때와 다른 감정을 가지며 네가 넘어지지 않게 품에 안는다.
"....."
그대로 오랫동안 우두커니 선 채 널 안고 있던 신디는 고갤 돌리며 쥬데카와 아마데우스를 본다.
2층에 있던 사람 중 하나는 이스마엘을 안아 올리거나, 부축했을 겁니다. 축 늘어졌지만 숨은 쉬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숨은 이런 풍파에 쉬이 꺼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풍파를 막기 위해 합류할 시간입니다.
라라시아의 말에 가란은 천천히 고개를 돌립니다.
"……전직으로 돌아가기엔 내가 좀 늙어서 말이죠."
의뭉스러운 대답을 뒤로 침묵합니다. 제가 느릿하게 눈을 흘깁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이 합류합니다.
에르베르토는 느긋하게 손을 모았습니다. 폭탄을 던졌을 적, 폭탄이 허공에서 멈추더니 그대로 폭발합니다. 보이지 않는 힘이 꽉 붙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느릿하게 입을 뗐습니다.
"나는 늘 내 아내와 미래에 대해 얘기했지요. 세븐스는 진화된 인간이나, 언제 퇴화할지 모른다고. 한가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늘 위협이 되지만 쇠락할 존재라고.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진화를 일궈내고자 했습니다. 트랜스휴먼은 인공적으로 진화하는 인간. 자연의 섭리에 따른 진화가 아닌, 인간의 본성에 대항하는 진화를 추구했지요. 인간이 인공적으로 만들기에 퇴화할 걱정은 없고, 발전할 길만 남아있으며, 앞으로 나아갈 길만 남은 기술의 발전을 통해, 자연적으로 생겨난 찌꺼기는 치우고자 하며 sogno 프로젝트를 시작했지요."
내 딸이 세븐스로 태어나기 전까지는.
"수잔나는 안타깝게도 그날 이후로 망가지기 시작했어요. 정확히는 실성하고 제 딸을 슬럼에 유기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정신을 차리고 찾아보려 했지만 아이가 이미 사라졌을 때부터. 슬럼을 담당하는 가디언즈에게 얘기했지만 이미 아이가 죽어 처리했다 하더군요.."
우리의 행복은 그렇게 사라졌지요. 나는 그런 수잔나가 죄책감 속에서 죽어가는 걸 목격했습니다.
"나는 아이를 늘 그리워했어요. 그런데, 내 아이를 죽였다고 한 녀석이 알고 보니 내 딸을 키우고 반동분자로 만들었으니. 어찌 아비된 입장에서 분노하지 않겠나요."
여기까지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나마 느낄 수 있었겠지만.
"내 딸이면 필히 내 피를 이었을 테고, 우리 둘의 머리도 이었겠지요. 거기다 세븐스라면 내 전문 분야였지요. 그런 귀한 자원을 고작 반동분자 만드는 것에 쓰며 억압했다니.. 내가 장성한 내 딸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게요? 아, 내 아이구나! 역시 나의 피를 이었구나. 이 아이가 내 곁에 있더라면 우리의 꿈이 빨리 이루어졌겠고, 아이는 진정 꿈, Sogno 그 자체가 되었을 텐데."
이미 나는 안식을 통해 한차례의 꿈을 이루었으니. 에르베르토의 시선이 제를 향해 꽂힙니다. 그리고 의 품에 안긴 이스마엘도.
"봐요, 내가 만들어낸 실험체가 아직까지 살아있잖아요? 황제 노릇을 하며 7년 동안 세븐스를 학살해놓고도 아직까지 살아있으니.. 거기다 내 딸을 데려온 직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꿈을 완성했어요.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내 손으로 새로운 시대를 일궈낸 발자국이 있는 거예요!"
안 그래요? 에르베르토는 붉은 눈을 휘며 사랑스레 웃습니다. 그리고 주사 하나를 꺼내들어, 자신의 혀에 쿡 바늘을 찌릅니다. 강대한, 보이지 않는 힘이 주변에 도사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내 딸로 하여금 진화에 성공했어요……. 천벌을 받니 뭐니 하지만, 모두 개소리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지 마시옵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지 않음을 받드시옵소서. 신의 전지전능함은, 우리가 역사를 밟아오며 일으킨 것이지 신의 기적이 아니잖아요? 그것은 그 자리에서 지켜만 보았을 뿐이지요. 그러니.. 다만 악에서 우리를 구하지도 마시옵고.
"신은 늘 그랬듯이 그 자리에 영영, 그대로 머무르며, 내 영광됨을 지켜볼 테니까요."
나는- 내가 새로운 시대를 이룩할 수 있는 자원을 다시 돌려 받아야만 할 것 같군요. 섬멸전: 《신의 자리를 참칭하는 자 - 에르베르토》가 시작됩니다. 지금부터 3턴 동안, 여러분은 누적 500의 데미지를 달성해야 합니다. 범위는 1부터 70까지이며, 최종 데미지 +n값 효과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스페셜 스킬을 사용할 시 2배의 효과가 들어갑니다. 단 한 번, '제' 찬스가 주어집니다. 과반수의 찬성시 찬스를 쓸 수 있습니다.
퇴화? 퇴화란 뭘까? 눈이 보이는 종족이 눈이 보이지 않게 되고 귀가 들리던 종족이 귀가 들리지 않게 되는, 뭐 그런 것이겠지. 그런데 그것이 과연 퇴화, 즉, 일어나서는 안되는 부정적인 것이 맞는 걸까? 아니다. 눈이 퇴화하는 종족은 눈이 필요 없는 환경일 것이다. 귀가 퇴화한 종족은 귀가 필요 없는 환경일 것이다. 생존에 필요없는, 방해되는 능력을 없애버려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퇴화이며, 퇴화는 곧 진화다.
그렇기에 트랜스 휴먼은 진화가 아니다. 트랜스 휴먼의 자손은 그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지 못한다. 트랜스 휴먼의 인간적인 DNA를 그대로 타고 난다. 그가 아무리 멀리 볼 수 있는 인공적인 눈을 가져도, 무엇이든 소화시킬 수 있는 인공 위장을 가져도, 사람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도 그들의 후손은 결국 평범한 눈, 위장, 귀를 가진 존재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트랜스 휴먼은 진화에 방해되는 존재다. 진화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투쟁과 생존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유전자가 다수가 되고 살아남지 못한 자의 유전자는 도태된다. 그것이야말로 진화다. 그러나 트랜스 휴먼은 사라져야할 유전자를 존치시키는 행동이다. 사라져야할 유전자가 몸을 개조시킴으로서 살아남게 만든다. 후손을 만들 수 있게 만든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어도 유전자를 바꿀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의 진정한 진화를 위해서라면 트랜스 휴먼이야말로 사라져야할 존재일 뿐이다.
"유감이네, 네놈의 꿈은 악몽이 될 테니까"
선우는 차라리 에르베르토의 딸을 쏴버리는 게 그가 더 고통스러워하지 않을까 잠시나마 고민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자신의 복수를 위해 이스마엘과 제는 꼭 필요한 존재였으니까
"또 틀렸어. 진화는 네놈의 후손만 가능한거야. 넌 절대로 진화할 수 없는 존재야.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 천벌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이것저것 어려운 말, 용어들은 잘 모르겠고 하여튼 저 개자식을 내 손으로 처죽일 수 있게 해주옵소서. 이 모든 영광을 당신께 드리겠나니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어쩌면 좋냐? 널 죽이라고 신이 우리를 보냈는 걸?"
적이 승리에 도취했을 때, 오만함에 빠져있을 때, 한번에 나락으로 보내버리면 그처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 신이 있다면 정말로 무엇이 고통인지, 무엇이 진정한 처벌인지를 잘 아는 존재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