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에 기대오는 제를 보며 라라시아(와 화면 밖의 누군가)는 내적 비명을 질러야 했다. 이.. 이 용용이 녀석 귀엽잖아아아악!!! 그러나 라라시아는 침착하게 티 내지 않고 제를 감싸 다독인다. 제가 기대오며 한 말. 그 티엔 션이라면. 마치 저 사람이 제가 알던 사람과 같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시사하는 듯한 말에 조금 더 냉정해질 수 있었다.
마주한 션의 눈빛은 어딘가 꺼림칙하달까. 영 불편하다. 꿍꿍이가 있는 건지 결의가 있는 건지. 일단은 계속 경계하기로 하며 추궁을 하고. 레레시아의 추궁에 션은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여기 온 목적이 흔적을 지우는 것이라는 말에 레레시아는 방금 찾은 비늘을 들어본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비늘을 한 손에 꾹 쥐고서 얘기를 마저 듣는다.
인공 세븐스의 존재와 또다른 용건. 보스라는 사람의 전언. 그녀들을 환대하라는 말에 자매는 동시에 코웃음을 쳤다.
"환대하라. 말은 아주 번지르르하게 해. 어. 지가 힘 없으니까 우릴 갖다 써먹겠다는 거 아냐? 재수없긴." "그래도 저 보스라는 쪽이 연구소장보다 나을 거 같은데? 방식도 정중하고. 아 물론 그렇다고 봐줄 건 아니지만."
레레시아의 이 갈린 목소리와 라라시아의 쾌활한 목소리가 번갈아 울린다. 라라시아는 더 말을 얹지 않고 제를 감싸는 것에 신경을 돌렸고. 레레시아는 몇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됐고. 너네 보스가 우리한테 뭘 원하는지 알면 똑바로 말해. 그리고 안식과 연구소에 대해서도 입 좀 털어보고. 보스랑 연구소장이 누군지도. 아 그 빌어먹을 약에 대해서도. 연구원이면 아는 거 많을 거 아냐? 알아서 다 얘기해야지 일일히 물어보게 하고. 하... 너 좀 귀찮다?"
그냥 지금 치워버려? 레레시아의 목소리에 희미한 신경질이 섞인다 싶더니. 주변을 경계하던 독액 줄기 중 하나가 마치 뱀처럼 흐늘거리며 션의 주위를 맴돈다.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듯이.
애늙은이라기에는 아닌 것 같고. 수상한게 정말 많아. 어떻게 보면 레지스탕스가 아니라 어떤 컬트 단체라고 해도 믿겠어. 그런 생각으로 허스키를 보다, 들려오는 말에 앓는 소리를 낸다. 대체 뭘 바라는 건지. 부엉이 마냥 목을 꺾는 모습에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 처럼 숨을 내뱉는다. 개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컬트 단체가 맞을지도.
".... 줄 수 있다는게 뭘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좋아요. 응. 제안 들어보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것이 어떤 시험에 들게 되는 것이 아니길 바라며 신디는 고개를 끄덕인다.
경계를 너무 세워버려서, 진짜 아가씨를 마주쳐도 못 믿고 공격하는 거 아니야? 작게 키득거리며 웃는 목소리는 명백한 이스마엘의 것이라 신경을 긁어옵니다. 휘감은 몸을 조여와도 고통을 느낄 수 없는지, 참는 것인지. 키득거리며 웃던 가짜 이스마엘은 너스레를 떱니다.
"무서워라! 아.. 무서워요, 리오. 부디.. 제발..."
나를 죽일 것만 같잖아요? 새카만 눈을 마주하자 그것이 고개를 더 기묘한 각도로 꺾어 보입니다. 신기한 눈이네.. 같은 말을 중얼거리더니 점차 눈 색이 물들기 시작했지요. 이스마엘의 자랑스럽던 눈동자는 사라지고, 당신의 것과 똑 닮은 눈동자가 자리합니다. 심연이 당신을 똑같이 마주합니다.
>>391 이것이 귀여움의 황제입니다. 응애 나 스무살 세븐스. 천하의 티엔 션이라면? 글쎄요.
"그런, 셈이지요.. 당신들의 말이 맞습니다. 보스는.. 힘이 없으니."
션은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며, 똑바로 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제 보니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군요.
"아, 그게.. 아직 의족이 익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는 그런 션을 바라보며 코를 실룩입니다. 무슨 일이냐 묻는다면 "여가 도망칠 적 션은 총에 맞았으니까." 라는 말로 일축하겠지요. 죄책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스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대화를 듣다 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졌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런 일을 스스로 끝낼 수 없음을 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그리고.. 안식은.." "세븐스 사형장. 투기장 형식으로 사형을 집행해서 도박판을 벌이고, 전투 데이터를 가디언즈에 넘겨 훈련을 할 수 있게 하며, 남은 시체는 예술품으로 재가공해 경매에 붙이는 기관일세."
제가 마지못해 입을 벌립니다. 그리고 눈을 내리깝니다.
"여는 그곳의 사형인 출신이었네." "……폐하." "입을 다물어라, 션. 다디단 말은 듣고 싶지 아니하다. 묻는 질문에나 답하도록." "..예."
션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보스는 가란이라 불리는 남성으로, 세븐스 인신매매 및 약물 카르텔을 운영하다 안식의 오너가 되었다고. 레레시아는 영상 속에서 이스마엘에게 '헬무트를 짝사랑 했으며 그 사람의 이상향을 긍정한다' 말했던 은발 머리의 남성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구소장님은.."
그가 머뭇거립니다.
"에르베르토 엥엘이라.. 합니다.."
엥엘. 수술대에서, 개인실에서, 숱하게 들었던 그 성씨. 그리고 한때, 비극의 '수잔나 엥엘'로도 유명하던 그 이름.
"에르베르토 님은, 그러니까, 연구소장 님은 아내분이셨던 수잔나 엥엘의 뜻을 잇고자 했습니다. 아내분은 가디언즈의 무한한 발전과 병사들의 사기를 돋구기 위해서.. 세븐스의 인자를 이용한 무기를 만들려고 했고, 소장님은 약물을 통해 사기를 증진시키려 하셨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약물이 Sogno, 꿈입니다. 물론 살아있는 세븐스의 인자를 직접 뽑아내 갈아넣은 약물이라, 부작용은 많았지만.."
션은 독액을 보며 다급히 제를 쳐다봤지만.. 제는 그냥 고개를 폭 기대버려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아, 모르겠다.
소녀는 몸을 겨우 일으켜 자리에 앉습니다. 고분고분한 모습과 달리 여전히 한 팔엔 무언가를 안고 있습니다. 조리가 필요없는 크래커를 손에 쥐여줄 적, 소녀는 그것을 먹기 보다는 빤히 쳐다보다 품 속에 있는 무언가에게 가져다 댔..
"제, 제 동생이. 좋아해요."
품에 있는 건 아기입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되고 있는 아기요. 참으로 끔찍한 일이지 않습니까. 공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각인시켰으니.
"..네."
아랑곳 않고 시체의 입가에 크래커를 밀어대지만 죽은 것이 뭔가를 먹을 리가요. 소녀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자기가 먹겠다는 듯 그 크래커를 입에 가져다 대려 했습니다.
"약은요.. 이름이 꿈이라고 했어요."
소녀는 더듬거리며 얘기를 꺼냅니다.
복용의 방법은 알약, 주사, 비강 흡입 등 모든 것이 가능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의사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뿐더러 고통과 감정을 배제한 것을 제외하면 평상시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고, 아주 오래전의 기억까지 생생하게 떠올리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고.
>>393 컬트 단체일까요? 흐음, 그럴지도요. 아니면 무엇일까요. 극단? 광인? 혹은..
"간단해에."
허스키는 소맷단을 모아 입가로 가져다 대며 히히 웃습니다.
"친구야, '카스트로'를 처리해 줘.. 너희라면 할 수 있을 거야아. 카스트로가 누구냐며언.."
속닥속닥.
"안식에서 만든- 생체 안드로이드인데- 재료가 살아있는 사람이었거드은. 너희는 그 존재에게 안식을 줄 수 있을 거잖아아."
응? 가면 속의 눈동자가 휩니다. 그리고 눈을 굴리더니 드론 소리가 들리기 전에 후다닥 속삭였지요.
"절대 살려두지 마. 그게 내가 여기서 리더를 접선하게 해주는 조건이야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론 한 대와 함께 누군가가 비척비척 걸어옵니다. 다른 대원들은 옆으로 정렬해 길을 터주고, 개 가면을 쓰고 커다란 후드를 입은 중성적인 누군가가 당신의 앞에 멈춰 섭니다.
"안녕, 에델바이스. 우리 집 오컬트 또라이들이랑 같이 대화 해주느라 고맙고 미안하네. 너희, 들어가 보고. 허스키 님은 남으시고." "네에-" "하여튼.. 소개는 들었겠지만 헬 하운드의 수장, 비숑이라고 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우리쪽 사람을 써서 유인했고.. 그래, 이 점은 사과하도록 할게. 도움이 필요한 거.. 맞지?"
음.. 어떻게 알았죠? 개 가면 너머로 푸른 눈이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 봅니다. 손가락을 튕겼고, 손 주변으로 조그마한 드론 몇 대가 둥둥 모여듭니다.
션이 자세를 다잡는 모습에 다시금 살펴보니 지팡이가 있다. 제를 탈출시킬 적 총에 맞아서 의족을 쓴다고 하는데. 그냥 부상이라면 모를까 의족은 어쩔 도리가 없다. 션을 보는 자매의 시선이 잠시 측은해진다. 아주 잠시간만.
"형태가 어떻든. 제제 군에게도 생각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네."
곧 시선이 바뀌고 라라시아는 그리 중얼거리며 제의 볼을 토닥였을 것이다.
그 뒤 안식과 연구소 등에 대해 설명을 듣는데. 중간에 제가 끼어들었다. 제가 안식의 사형인이었노라고. 그 말에 자매는 각자 어깨를 으쓱이기만 했다. 그렇구나. 정도로 가벼운 반응이었다. 말은 없지만 라라시아는 여전히 제를 감싸주고 레레시아는 손을 뻗어 아까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고만 했다.
안식과 가란. 연구소와 엥엘 부부. 이 인물들을 중점으로 퍼진 대략적인 구도를 듣고서 이해하는데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잠깐으로는 안 되서 이래저래 많이 넘겼지만. 중요한 건 다 파악했다.
"내용 참 많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아주 그냥 뒤에서 별천지 일들을 다 했구만. 사형장에 연구에, 무기 개발에 약 개발에. 세상은 넓고 미X놈은 많다더니. 딱 그 짝이다. 어." "우리도 그런 사람 밑에서 자랐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래?" "하... 그러게 말이다. 인간 참 잔인하고. 끔찍해." "그렇기에 사랑스럽고. 애절하지."
자매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과거엔 수많은 목숨을 꽃 꺾듯 꺾고. 훗날엔 자매를 인형으로 만들고 직접 던져버린 사람. 그 사람에게 애정받았고 증오가 심겨졌다. 인간을 향한 애증을 갖게 해준 사람. 어쩐지 가란이 어머니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우 씨. 골 아퍼."
생각이 많아져 이마를 두드린 레레시아는 한숨을 푹 내쉬고 션을 보았다. 어쨌거나 환대니 뭐니 했으니 어떡할지 정해야겠지.
"데이터가 많아졌다는 건 그만큼 뿌린대로 거뒀다는 의미겠지? 하. 귀찮고 짜증나네. 왜 나이 처먹을 대로 처먹은 인간들이 애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지. 잡으면 관절 갯수대로 분해를 시켜줄까. 아 몰라. 아무튼 아까 보스가 환대하라느니 어쩌니 했지? 우리가 뭘 하려는 건지 모르는 건 아닐 거고. 가면 조력은 해주겠다는 거야? 에르베르토인지 뭔지 때려잡고 다 깽판 치는 거?" "우리 동생도 데려와야지." "아 그건 당연하고. 야. 대답."
1. 안식은 세븐스를 누군가의 쾌락을 위해 극한으로 짜내 써먹는 미친 곳이고, 그곳을 경영하는 플랜과 재정을 담당하는 오너는 가란이며 에르베르토는 공동 오너로 세븐스를 짜먹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 그런 에르베르토는 아내와 함께 가디언즈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생방송 토크쇼에서 레지스탕스 단체의 저격으로 사망했습니다."
수잔나 엥엘, 즉사. 이스마엘의 킬 보드에서 볼 수 있던 내용임을 레레시아는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3. 아내가 죽어도 이 기술을 이어가고자 했고,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세븐스 인자로 된 무기와 약물, sogno다. 4. 이 약물이 최근 완벽하게 개량되었고 보급만이 남았다. 5. 문제는 현재 안식의 공동 경영자인 두 사람이 대립각을 세웠고, 그 이유는 제의 탈출을 기점으로, 정확히는 헬무트의 죽음을 이후로 가란의 사상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이는 이스마엘의 페이시 클라우드에서 확언까지 들었다. 6. 가란의 목적은 이 약물을 막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건 추정입니다.
많고, 복잡하고, 짜증이 치미는 일입니다. 내 뒷골! 혈압약은 어딨지? 여기 있습니다.. 제는 머뭇대다 쓰다듬던 손에 머리를 살짝 비빕니다. 그리고 또 혈압이 오릅니다.. 션의 발언 때문에요.
"……그 애가, 에르베르토 님의…."
아니라고 해주면 안 돼요?
"친딸, 이라서요."
이셔주 나와 봐요. 나 이런 막장 서사 싫어해! 죄송합니다 전 좋아해요...
"그, 그게.. 조력을 해주실 것 같습니다."
독액에 겁을 먹었는지 잠시 자세가 비틀댑니다. 그런 모습을 보던 제가 라라시아의 품에 더 폭 안기려 들더니, 꼬리의 끝을 탁탁 땅에 내리쳤지요. 그것도 잠시.
근처의 골목에서 용 한 마리가 승천하자, 션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이를 악물었습니다.
"카스트로가 이미 이 근처에 있었군요."
다른 대원들이 모이는 사이, 션은 눈을 감았습니다. 심호흡. 진정. 성격 더러운 거 티 내지 말자.. 하지만 저새끼들이 먼저! 후우..
"그, 그러니까.. 서두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가 제일 중요한 것을 빼먹었군요?
"……조만간에 데뷔가 예정되어 있기에. 그러니까, 이스마엘 씨가 손에 피를 묻히면.. 돌이킬 수 없습니다." "잠깐, 뭐?" "집행인으로 추대하겠다고요." "누구 발상이지?" "뒤진 아내 못 잊는 늙은이요."
자칭 슬럼의 레지스탕스들인지, 개가면을 쓰는 컬트 단체인지, 아니면 극단의 배우거나, 광인들의 모임인지. 아니면 제가 속삭이러 온 뱀인 것인지. 허스키의 말을 듣고서 신디는 약간 피곤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마치 무언가 고민하거나 생각하는 듯. 허스키를 내려다보다가는 확신하지 못하는 투로 대꾸한다.
"... 노력은 해보죠."
속삭이듯 말하는 것이 영 가증스럽게 느껴질까. 빌어먹을 개머리 꼬마 같으니라고. 목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욕을 속으로 하고서 들려오는 벌 나는 소리에 고개를 든다. 드론과 함께 선 비숑을 관찰하듯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인다. 퉁명스럽게 답한다.
>>425 >>426 치료라는 말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살아있다고 믿었으니 울부짖는 것이 더 절망적으로 들릴 텐데도. 세븐스를 제압했지만, 이미 약에 찌들대로 찌들었는지 히익- 힉- 하는 기묘한 숨소리를 뒤로 손목에 채워진 수갑과 함께 나동그라집니다. 이쪽 상황은 일단락 되었지만.
소녀는요? 비참하고 *같은 현실에 꺽꺽대며 울고, 안아줄 때도 고통스럽게 악을 지릅니다. 레이먼드가 달랠 적에는 울다가도 몸을 퍼덕거리며 어떻게든 자세를 유지하고자 하니.
이 얼마나 끔찍합니까. 노예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대체.. 어떻게 만든 걸까요?
"죄송해요, 울지, 울지 않을, 으윽, 울지 않을게요. 잘못했, 잘못했어요!!! 잘, 잘 해왔어요, 잘 해왔어요……."
벌벌 떨기 시작합니다. 머리에 손을 얹고 쓸어주는 것을 자주 해줬는지, 아예 몸이 뻣뻣히 굳어버립니다. 눈물이 줄줄 흐르다가도 다시금 망가진 정신 속으로 들어오는 회유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미 텅 비어버린 상태라 그 말입니다.
"저, 저, 정말요. 할게요. 할게요.. 안내할게요. 안내-" "안 돼요."
고운 새가 지저귀는 듯한 목소리를 뒤로, 소녀의 목이 뒤틀립니다.
우드득.
입이 있어야 할 곳에 이마가 있고, 이마가 있어야 할 곳에 입술이 있는 기괴한 상황을 뒤로 소녀가 늘어집니다.
"미안해요."
목소리가 들린 곳에서는, 단정하고 검은 원피스, 마치 장례식 복장과도 같은 옷차림을 한 사람이 서있습니다. 새하얀 머리카락은 넘실대고, 귀는 소의 것이며, 머리에는 뿔이 돋고, 꼬리는 원피스 밑자락에서 살랑대는 것이. 그 부분만 제를 똑 닮은 모양새였지요.
"생명은 모두 귀하지만, 배신자에겐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 목을 뒤틀어버린 능력이. 염력이었지요?
"반갑습니다, 레지스탕스 여러분."
공손히 인사를 한 그것은, 새빨간 눈동자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카스트로 오메가. 안식의 임시 집행인이자 배신자를 처리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응당 행했어야 하는 섭리였으니 너무 괘념치는 마세요."
당신들이 공격하려던 찰나- 뒤에서, 무언가 날아오릅니다. 검은 용..!! 그리고 앞을 돌아보는 순간..
"어라.. 벌써 일을 끝마친 걸까요. 우리 누나가 그럴 리가 없는데.."
역시 직무 유기겠죠.. 라며 저.. 저.. 원피스를 입고 누나라 발언하는 못된 녀석의 몸이 뒤틀리더니.. 마찬가지로 검은 용이 되어 당신들을 내려다 봅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나는 응당 해야 할 일을 끝마쳤으니. 그러니.. 안식에서 기다릴게요. 그때는 우리, 사형 당하도록 해요. 아, 화내면.. 기쁠 것 같아요. 그깟 것 죽었다고 화를 낸다니.. 미욱한 것의 발버둥은 늘 즐겁잖아요."
에르베르토의 아내. 수잔나 엥엘의 사망 정보는 킬보드에서 봤었다. 자세한 내막을 알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 야랄을 하고 총 한 발에 죽었으면 호상이지. 호상. 아픈 것도 모르고 훅 갔을 거 아냐? 하. 그렇게 쉽게 죽이면 안 됐는데."
아깝다. 레레시아의 목소리가 무심하고 무신경하게 말을 내뱉었다. 지은 죄의 무게가 얼마인데 그걸 그렇게 쉽게 보내줘 버리냐고.
아무튼 이어지는 얘기로 추정해본 바. 가란 역시 그 무게를 내려놓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하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뭐 만나서 들으면 되나. 손에 머리를 부비는 제를 평온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레레시아가 돌연 미간을 구기며 혀를 찼다. 션의 말 때문이다.
"하여튼 이 인간이고 저 인간이고 지 X끼 못 굴려서 안달인 인간들만 사나."
애꿎은 션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며 제를 쓰다듬는 손길은 다정한 이 모순이란! 션이 고개를 들자 자매도 고개를 들어 날아가는 용을 보았다. 검은 용. 검은 비늘. 저것들이 그 애에게 붙어 혓바닥을 놀렸다 이거지. 결단코 그 입과 성대 만은 흔적도 남겨놓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 다짐은 이스마엘을 집행인으로 올릴 예정이란 말에 더욱 굳건해진다.
"그런 건 먼저 얘기해야지. 눈치 X나 없네. 확 그냥."
레레시아의 추임새를 따라 독액이 뱀마냥 빠르게 움직이며 션을 위협한다. 쯧! 다시 혀를 찬 레레시아가 무전을 열어 모두에게 전파한다.
"아아. 특수부대. 여기 친절하게도 안내와 조력을 해주실 분을 찾았다. 후딱 모여서 X 같은 안식인지 뭔지 깽판 치고 빼앗긴 거 되찾아오자고."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말들이 통신으로 모두에게 전해지던 중. 라라시아는 제를 한껏 감싸안으며 말했다.
"제제 군. 이제 와서 돌아가래도 안 갈 거지? 그럼 하나만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나한테서 떨어지지 마. 그리고 함께 갈 사람들을 믿어. 꼭 지키고 데리고 돌아갈게. 너도 이스마엘도 같은 에델바이스고. 음. 어쩌면 곧 가족이 될 지도 모르는 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