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레레시아의 행동에 겁을 먹은 듯했다. 일단 그 쪽의 경계는 맡긴 채 살펴본 현장은 꽤나 무자비한지라,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게 아니라면 적어도 네가 아는 사람의 짓은 아닌 듯했다. 이제 어쩐다, 인기척의 정체를 확인해? 개발이 멈춘 구역을 찾아 움직여? 아니면...
"......"
저 목소리를 쫒아? 너는 쌍둥이와 제 쪽을 돌아보았다. 혼자 움직여도 괜찮을까?
"저는 저 쪽으로 가보겠습니다. 채널은 열어 놓을 테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전달하죠."
잡히지 않으려는 듯, 혹은 일부러 유인하는 듯한 움직임에 너는 재촉하는 대신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뒤따랐다. 골목을 돌고 돌아, 모서리를 지나치다가 결국 막다른 길에서 마주본 모습은 기억 그대로였다. 외려 그 모습 때문이었을까, 등줄기를 타고 오르는 듯한 감각에 너는 대답 대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셔, 당신입니까?"
한 줌의 의심이 담긴 물음, 때로 보고 듣는 것이 진실이 아닐 때가 있다. 감각이란 것은 분명 직접적이었음에도 또한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라. 결국 무얼 믿을지 고뇌할 수밖에 없었다.
>>348 선우는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 당신.. 당신이 에델바이스의 도넛 펀치입니까..?
당신은 짖습니다. 수치스러워도 일단 짖어봅니다.. 하울링도 합니다..
세상에...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집니다. 절로 숙연해지며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만큼의 침묵을 뒤로, 대략 대여섯명의 사람들이 당신을 둘러 쌉니다. 전부 종은 다르지만, 개 가면을 쓰고 있군요. 혹시 위험한 갱인가 싶던 찰나, 그 사이를 비집고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어 당신을 빠안히 쳐다봅니다!
"허억, 너어 되게.. 잘 짖는다아!! 나는 잘 짖는 애들이 좋아!"
동글동글한 강아지 가면을 쓴, 조그마한... 아이? 아이는 우다다 달려와 당신의 앞에 섭니다. 일곱 살? 여덟 살? 대체 왜 이런 아이가 골목에 있는 거죠? 아이는 꼭 신기한 것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당신 주변을 빙빙 맴돌며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익숙한데에. 누구더라아아.. 아!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멈춰서 박수를 짝 치는 아이의 가면 뒤로 말간 웃음소리가 새어 나옵니다. 다른 개 가면을 쓴 사람들이 경계심을 일순 누그러뜨립니다.
"에델바이스래." "에델바이스라고?"
제각기 떠들기도 잠시, 아이가 떠벌떠벌 뭔가 열심히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비숑의 크으은- 화면으로 봤어! 레이버의 사형식에서 싸웠던 거 맞지? 아냐, 너는 없었지만- 그 이후에 퍼진 신상 정보는 알아-! 그러니까아, 나- 완전- 부러웠어! 그 미친 여자의 머리를 박살냈어야 하는데. 살아있는 것이 죄악인 것 말이야. 그때 심장이 꿰뚫리든 대가리가 터지든 둘 중 하나는 됐어야 했는데 미친 여자가 하나 더 나타나서 운 좋게 살았지이.. 누구는 끝까지 이런 모습으로 처 남아야 하는데에.."
이건 도저히 아이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닌데요..? 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습니다.
"아이, 참, 이게 아니지이. 나아는 허스키야. 멍멍! 하고 짖는 그 허스키. 헬 하운드의 부리더야아. 부라더 말구우 부리더어. 아! 헬 하운드가 뭐냐며언.. 여기의 레지스탕스 단체야. 비숑은 나 같은 사회적 패배자도 받아주지롱. 멋지지이. 여기는 우리 동료.. 부우하드을.. 따아까리..??" "...아닙니다." "아니야아?" "비숑에게 이를 겁니다." "이잉, 봐아줘어. 아무튼! 너희가 찾으려고 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지로옹. 도와줄까?"
>>349 이스마엘은 가늘게 미소를 짓습니다. 당신을 바라보는 눈매가 한결 누그러지고, 평온한 미소는 당신이 한때 슬럼에서 감정을 모조리 쏟아버린 뒤 그거면 됐어. 라고 속삭일 때와 비슷했습니다.
"응, 나 맞아요, 리오."
위화감. 진짜일까요? 그렇다면 왜 이스마엘이 여기에..? 설명을 듣고 싶다 했을 때, 이스마엘은 잠시 손을 올려 입가를 더듬으며 눈을 내리깝니다. 잔인하게도. 이스마엘이 그런 행동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고민할 때의 이스마엘은 입술을 자근자근 깨무는 나쁜 버릇이 있었지요.
"길을 잃었어요, 리오. 나는.. 더는 버틸 수 없었어.. 그러니까, 더는.. 내 이상향을 받아들일 수 없었어.. 그래서, 안식을 찾고자 했고.."
거짓말! 당신의 청각이 기민하게 반응합니다! 끝이 기묘하게 올라가는 저 어조를 당신은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젠 됐어. 당신이 있잖아.." 같은 말을 하더니, 당신에게 한 걸음씩 다가옵니다. 꼭 당신을- 안아보겠다는 듯이요.
네 물음에 그렇다며 대답한다. 망설임 없는 대답은 그래야만 한다는 것 같이도 들렸는데. 이어진 말에 보여준 행동은 네 기억에는 없었다. 대답이 늦을 때 으레 보여줬던 것은 온데간데없어서.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그 정도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같은 말을 흘린다. 분명 목소리는 같은 듯하나 어조의 끝은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두 세번, 영상을 통해 보아야 간신히 구분할 수 있었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너를 안으려는 듯 다가오는 모습에 너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세요, 네. 조금 더."
양 팔을 벌려 다가오라는 듯 그렇게 행동하던 네 얼굴을 바이저가 순식간에 가렸고 손 끝을 따라 움직인 체인이 그건 네 앞에 선 존재를 휘감으려고 했다. 놓치지 않을 테다. 예의 느슨한 시선의 끝에 힘이 실리는가 싶더니 체인을 발로 내려찍었다. 서 있게 할 필요는 없겠지.
네 물음에 그렇다며 대답한다. 망설임 없는 대답은 그래야만 한다는 것 같이도 들렸는데. 이어진 말에 보여준 행동은 네 기억에는 없었다. 대답이 늦을 때 으레 보여줬던 것은 온데간데없어서.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그 정도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같은 말을 흘린다. 분명 목소리는 같은 듯하나 어조의 끝은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두 세번, 영상을 통해 보아야 간신히 구분할 수 있었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너를 안으려는 듯 다가오는 모습에 너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세요, 네. 조금 더."
양 팔을 벌려 다가오라는 듯 그렇게 행동하던 네 얼굴을 바이저가 순식간에 가렸고 손 끝을 따라 움직인 체인이 그건 네 앞에 선 존재를 휘감으려고 했다. 놓치지 않을 테다. 예의 느슨한 시선의 끝에 힘이 실리는가 싶더니 체인을 발로 내려찍었다. 서 있게 할 필요는 없겠지.
안식이라면 아까 그 명함에서 나온, 그리고 당신에게도 익숙한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세븐스 사형을 기조로 한 투기 도박장 말입니다. 그리고 보스라면.. 당연히 그 도박장의…….
"그, 그리고.. 에델바이스로 세븐스 하나를.. 탈출시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다리를 하나 잃긴 했지만.. 이 정도면 싼 값이죠."
남성이 후들거리며 눈을 뜹니다. 제는 힘을 주어 붙들렸을 때, 남성의 눈을 마주하며 잠시 동요합니다. 남성은 눈을 다시금 내리깝니다. 아마도 제를 탈출시킨 장본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합니다. 잠시 놓아달라고. 그리고 놓아준다면..
남성의 앞에 설 텝니다. 그러자 남성이 깊게 절하며 제의 발등에 입을 맞춥니다.
"……미욱한 종이 안식의 황제를 뵙습니다. 신 티엔 션은 비록 다리 하나를 잃었으나 이리 목숨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기실이더냐." "예. 한치 틀림이 없사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 티엔." "증오하신다면 증오하시옵소서, 입이 열 개라도 신은 죄인이요 할 수 있는 말이 없사옵니다." "…."
제는 고개를 휙 돌려버립니다.
"너의 행동을 보겠다. 나의 종이라면 종으로 살거라." "어찌.." "주어진 대로 살지 않았더니, 붉은 머리카락을 한 대장인지 뭔지 하는 여자에게 여의 사상이 물들었으니 말이다. 이쪽은 적이 아니다."
한편 레레시아는 반짝이는 것을 손가락으로 집어 빼냅니다. 딸려오는 것은.. 비늘입니다. 제의 세븐스를 생각해보면 제의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제의 공격에 '제'가 당해서 비늘이 이 장소에 꽂혔다..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무엇보다 이 비늘은 검은색입니다. 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흰색으로 꽁꽁 감싸져 있었지요.
불현듯, 당신의 머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가능성을 하나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만약 제 3자가.. 레인처럼 세븐스 복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티엔 션. 안식의 연구원이자 그곳 보스의 전담 비서. 라고 하는 사람. 자매의 금빛과 푸른 눈동자가 션의 모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싵이 살핀다. 먹잇감을 탐색하듯. 한차례 훑어본 뒤 제가 놓아달라 했을 때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다. 이후 라라시아가 팔을 풀어주고 제와 션은 마주했다. 그 모습을 자매는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았다.
대화가 끝나면 라라시아가 얼른 제에게 다가가 그녀의 백의 자락으로 폭 감싸안으려 했을 것이다.
"우리 황제님- 좋은 몸종을 뒀네? 뭐. 정말 좋은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다시 제에게 붙은 라라시아가 쎄한 시선을 션에게 보내며 말했다.
그 뒤에서 레레시아는 벽에 박힌 비늘을 찾았다. 비늘. 새카만 비늘. 제의 것? 아니다. 제는 하얗다. 새하얀데 이건 먹물마냥 검다. 그러나 이런 비늘을 가지는 세븐스가 그리 흔할까? 흔하지 않다면 그건...
비늘을 든 레레시아가 돌아서자 자수정빛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단서와 사람이 한 곳에 모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
"감동적인 재회는 끝난 듯 하니. 이제 네 목적을 들어야겠어. 왜 여기 나타났는지. 그리고 이건 왜 여기 있는지. 누구의 것인지. 네 머릿속에 든 것 전부. 아. 참고로 말해주자면 나 참을성이 그렇게 좋지 않아. 혓바닥과 목숨은 누구나 하나라는 걸 명심하고 말하는게 좋을 거야."
주변에 펼친 독액과 단검은 여전히 유지한 채로 션을 추궁한다. 제는 적이 아니라고 했지만. 믿음은 본디 쉬워선 아니 되는 법이다.
개 우는소리가 무언가 신호일까 싶어 울어본 것이었는데. 생각이 맞았던 걸까. 개 가면을 쓴 이들이 절 둘러싸자, 잠깐의 부끄러움은 가고 긴장에 잠긴 채 그들을 경계한다. 위험한 갱단이면 당장이라도 싸울 생각으로 주먹을 쥐다, 그들 사이로 나온 쪼끄마한 아이의 모습에 당혹스럽다는 얼굴이 된다. 제가 누구인지 아는 것에 의아한 듯 살짝 크게 뜬 눈을 깜빡인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주먹 쥐어 들었던 손을 내려 경계를 풀고서, 아이의 소개를 가만 듣는다. 슬럼의 레지스탕스 단체 헬 하운드. 허스키와 그 뒤의 이들 사이의 시트콤을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눈으로 보다가 이어하는 말에 놀란 얼굴이 된다. 당장이라도 도와달라 말하고 싶지만.
"... 도와준다면 고맙지만. 그 대가로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도와줄 건가요?"
>>372 백의 자락으로 폭 감싸안을 때, 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라라시아의 품에 폭 기댑니다. 계속 되는 보듬보듬은 도마뱀의 마음을 여는 듯싶습니다..
"믿어도 좋을 게지."
'그' 티엔 션이라면. 의문스러운 답을 뒤로 제는 눈을 감습니다. 벽에 박힌 비늘을 뒤로 시선을 마주한 레레시아는, 무언가 석연찮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티엔 션이라는 사람이요, 죄책감에 가득한 눈이지만 결의도 다지고 있었으니까요. 아니면, 인간에 대한 깊은 혐오일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
잠깐의 침묵. 션은 제를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후우, 하고 한숨을 쉽니다.
"제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연구소장님의 부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스의 전언 때문입니다."
추궁에 몸을 떨더니 더듬더듬 말을 뱉어내는 모습입니다.
"연구소장님의 부탁은.. 이곳에 있는 생체 안드로이드의 흔적을 지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인공 세븐스의 흔적을요."
데이터로 만들어진 인공 세븐스. 제의 세븐스와, 재료가 된 세븐스의 능력이 섞여있다고 덤덤히 고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개체는 둘이라고 했습니다. 네. 아까 그 살갑던 두 목소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스께서는.. 여러분을 찾아 환대하라 하셨습니다."
션은 입을 꾹 다물다가 뗍니다.
"지금 보스께서는.. 황제의 탈출 이후로, 연구소장과 마찰을 빚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결국 파벌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연구소장님과 보스는 공동 경영자기 때문이지요. 의도적으로 사형의 횟수는 줄이시더니, 그로 인해 연구소장의 연구도 늦춰지기 때문에.. 입지가 좋지 않은 상태지요.. 그래서.. 아무래도 보스께서는 여러분이.."
소녀는 움찔 떨더니 몸을 굳힙니다. 덜덜 떠는 모습이 가련합니다. 당신이 내려다볼 적, 소녀의 얼굴은.. 눈이 반쯤 죽어있습니다. 공포에 젖어있기도 하고.
"나, 나는 몰라."
소녀는 처음엔- 그렇게 말했습니다. 전투식량을 준다고 해도 이를 악물고 대답하지 않으려 들더니만, 권총과 새빨간 눈동자를 보더니.
아아, 새빨간 눈동자를 보더니-
"잘못했어요."
순식간에 굴복합니다. 손톱을 건드릴 적엔 다른 손으로 품에 안은 무언가를 더 꽈악 안으며 딱딱대는 잇새로 비참하게 중얼거렸습니다.
"자, 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 다 얘기할게요. 다 얘기할게요.."
소녀가 겨우겨우 입을 벌립니다.
"시,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야, 약도 시키는 대로 다 뿌렸고요.. 증상도. 전부.. 전부 적어 보냈어요..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도 재깍 말씀하신 곳에 편지를 두었어요. 여기에서도, 약이 유통된다고 소문도 퍼뜨렸어요. 헬 하운드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 그리고 최근에 가장 시키신 일이요, 증거도 없앴어요..! 그, 그 핏자국이랑 전부 제가 다 닦았어요.."
이게 무슨 말이죠? 소녀는 엎어져 있어도 불안하게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를 어르고 달래는 듯싶었습니다. 울지 마, 울지 마.. 울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잘못했어요.."
당신은 이 상황을 잘 압니다. 공포로 조련하는 방법. 그리고 천천히 상대의 정신을 무너뜨려 종 삼는 방법.
"안식으로 끌고가진 말아주세요, 잘못했어요.."
아마 이 소녀는 모종의 공포에 사로잡히는 일을 겪고 앞잡이가 된 듯싶습니다. 더 털어볼까요?
어째서냐는 말과 함께, 그러한 감정이 실린 듯한 눈빛을 너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지... 다른 것 같다. 그저 왜? 어째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런 일을 당하는 거지? 싶은 표정 같기도 하고. 오랜 시간, 네가 계속해서 느껴 오던 감각이란 것은, 직감이란 것은 믿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던지라, 이번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르겠나? 허술한 게 많군."
쓸데 없는 말은 그만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표정을 구기는 모습을 바이저 너머로 보던 너는 체인의 끝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잡아당기니, 자연스레 체인은 휘감은 것을 조여가고 있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그렇게 말하며 바이저가 사라져 네 눈을 드러내니, 검은 눈은 어떤 빛도 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새카매서, 강제로 땅에 엎드린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