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물음에 그렇다며 대답한다. 망설임 없는 대답은 그래야만 한다는 것 같이도 들렸는데. 이어진 말에 보여준 행동은 네 기억에는 없었다. 대답이 늦을 때 으레 보여줬던 것은 온데간데없어서.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그 정도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같은 말을 흘린다. 분명 목소리는 같은 듯하나 어조의 끝은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두 세번, 영상을 통해 보아야 간신히 구분할 수 있었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너를 안으려는 듯 다가오는 모습에 너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세요, 네. 조금 더."
양 팔을 벌려 다가오라는 듯 그렇게 행동하던 네 얼굴을 바이저가 순식간에 가렸고 손 끝을 따라 움직인 체인이 그건 네 앞에 선 존재를 휘감으려고 했다. 놓치지 않을 테다. 예의 느슨한 시선의 끝에 힘이 실리는가 싶더니 체인을 발로 내려찍었다. 서 있게 할 필요는 없겠지.
네 물음에 그렇다며 대답한다. 망설임 없는 대답은 그래야만 한다는 것 같이도 들렸는데. 이어진 말에 보여준 행동은 네 기억에는 없었다. 대답이 늦을 때 으레 보여줬던 것은 온데간데없어서.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그 정도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까. 같은 말을 흘린다. 분명 목소리는 같은 듯하나 어조의 끝은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두 세번, 영상을 통해 보아야 간신히 구분할 수 있었던 음성을 직접 들었기 때문이었을까. 너를 안으려는 듯 다가오는 모습에 너는 가만히 서 있었다. 아니... 가만히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가까이 오세요, 네. 조금 더."
양 팔을 벌려 다가오라는 듯 그렇게 행동하던 네 얼굴을 바이저가 순식간에 가렸고 손 끝을 따라 움직인 체인이 그건 네 앞에 선 존재를 휘감으려고 했다. 놓치지 않을 테다. 예의 느슨한 시선의 끝에 힘이 실리는가 싶더니 체인을 발로 내려찍었다. 서 있게 할 필요는 없겠지.
안식이라면 아까 그 명함에서 나온, 그리고 당신에게도 익숙한 이름일지도 모릅니다. 세븐스 사형을 기조로 한 투기 도박장 말입니다. 그리고 보스라면.. 당연히 그 도박장의…….
"그, 그리고.. 에델바이스로 세븐스 하나를.. 탈출시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덕분에 다리를 하나 잃긴 했지만.. 이 정도면 싼 값이죠."
남성이 후들거리며 눈을 뜹니다. 제는 힘을 주어 붙들렸을 때, 남성의 눈을 마주하며 잠시 동요합니다. 남성은 눈을 다시금 내리깝니다. 아마도 제를 탈출시킨 장본인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합니다. 잠시 놓아달라고. 그리고 놓아준다면..
남성의 앞에 설 텝니다. 그러자 남성이 깊게 절하며 제의 발등에 입을 맞춥니다.
"……미욱한 종이 안식의 황제를 뵙습니다. 신 티엔 션은 비록 다리 하나를 잃었으나 이리 목숨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기실이더냐." "예. 한치 틀림이 없사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 티엔." "증오하신다면 증오하시옵소서, 입이 열 개라도 신은 죄인이요 할 수 있는 말이 없사옵니다." "…."
제는 고개를 휙 돌려버립니다.
"너의 행동을 보겠다. 나의 종이라면 종으로 살거라." "어찌.." "주어진 대로 살지 않았더니, 붉은 머리카락을 한 대장인지 뭔지 하는 여자에게 여의 사상이 물들었으니 말이다. 이쪽은 적이 아니다."
한편 레레시아는 반짝이는 것을 손가락으로 집어 빼냅니다. 딸려오는 것은.. 비늘입니다. 제의 세븐스를 생각해보면 제의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상식적으로 제의 공격에 '제'가 당해서 비늘이 이 장소에 꽂혔다..는 말이 안 되는 일이지요.
무엇보다 이 비늘은 검은색입니다. 제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흰색으로 꽁꽁 감싸져 있었지요.
불현듯, 당신의 머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가능성을 하나 떠올리기 시작합니다. 만약 제 3자가.. 레인처럼 세븐스 복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티엔 션. 안식의 연구원이자 그곳 보스의 전담 비서. 라고 하는 사람. 자매의 금빛과 푸른 눈동자가 션의 모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샅싵이 살핀다. 먹잇감을 탐색하듯. 한차례 훑어본 뒤 제가 놓아달라 했을 때 서로 눈빛을 주고 받는다. 이후 라라시아가 팔을 풀어주고 제와 션은 마주했다. 그 모습을 자매는 한 걸음 뒤에서 지켜보았다.
대화가 끝나면 라라시아가 얼른 제에게 다가가 그녀의 백의 자락으로 폭 감싸안으려 했을 것이다.
"우리 황제님- 좋은 몸종을 뒀네? 뭐. 정말 좋은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다시 제에게 붙은 라라시아가 쎄한 시선을 션에게 보내며 말했다.
그 뒤에서 레레시아는 벽에 박힌 비늘을 찾았다. 비늘. 새카만 비늘. 제의 것? 아니다. 제는 하얗다. 새하얀데 이건 먹물마냥 검다. 그러나 이런 비늘을 가지는 세븐스가 그리 흔할까? 흔하지 않다면 그건...
비늘을 든 레레시아가 돌아서자 자수정빛 눈과 시선이 마주쳤다. 단서와 사람이 한 곳에 모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
"감동적인 재회는 끝난 듯 하니. 이제 네 목적을 들어야겠어. 왜 여기 나타났는지. 그리고 이건 왜 여기 있는지. 누구의 것인지. 네 머릿속에 든 것 전부. 아. 참고로 말해주자면 나 참을성이 그렇게 좋지 않아. 혓바닥과 목숨은 누구나 하나라는 걸 명심하고 말하는게 좋을 거야."
주변에 펼친 독액과 단검은 여전히 유지한 채로 션을 추궁한다. 제는 적이 아니라고 했지만. 믿음은 본디 쉬워선 아니 되는 법이다.
개 우는소리가 무언가 신호일까 싶어 울어본 것이었는데. 생각이 맞았던 걸까. 개 가면을 쓴 이들이 절 둘러싸자, 잠깐의 부끄러움은 가고 긴장에 잠긴 채 그들을 경계한다. 위험한 갱단이면 당장이라도 싸울 생각으로 주먹을 쥐다, 그들 사이로 나온 쪼끄마한 아이의 모습에 당혹스럽다는 얼굴이 된다. 제가 누구인지 아는 것에 의아한 듯 살짝 크게 뜬 눈을 깜빡인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건지. 주먹 쥐어 들었던 손을 내려 경계를 풀고서, 아이의 소개를 가만 듣는다. 슬럼의 레지스탕스 단체 헬 하운드. 허스키와 그 뒤의 이들 사이의 시트콤을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눈으로 보다가 이어하는 말에 놀란 얼굴이 된다. 당장이라도 도와달라 말하고 싶지만.
"... 도와준다면 고맙지만. 그 대가로 내가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래도 도와줄 건가요?"
>>372 백의 자락으로 폭 감싸안을 때, 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라라시아의 품에 폭 기댑니다. 계속 되는 보듬보듬은 도마뱀의 마음을 여는 듯싶습니다..
"믿어도 좋을 게지."
'그' 티엔 션이라면. 의문스러운 답을 뒤로 제는 눈을 감습니다. 벽에 박힌 비늘을 뒤로 시선을 마주한 레레시아는, 무언가 석연찮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 티엔 션이라는 사람이요, 죄책감에 가득한 눈이지만 결의도 다지고 있었으니까요. 아니면, 인간에 대한 깊은 혐오일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
잠깐의 침묵. 션은 제를 향해 시선을 돌리더니 후우, 하고 한숨을 쉽니다.
"제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연구소장님의 부탁이었고, 다른 하나는.. 보스의 전언 때문입니다."
추궁에 몸을 떨더니 더듬더듬 말을 뱉어내는 모습입니다.
"연구소장님의 부탁은.. 이곳에 있는 생체 안드로이드의 흔적을 지워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데이터로 만들어진 인공 세븐스의 흔적을요."
데이터로 만들어진 인공 세븐스. 제의 세븐스와, 재료가 된 세븐스의 능력이 섞여있다고 덤덤히 고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개체는 둘이라고 했습니다. 네. 아까 그 살갑던 두 목소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스께서는.. 여러분을 찾아 환대하라 하셨습니다."
션은 입을 꾹 다물다가 뗍니다.
"지금 보스께서는.. 황제의 탈출 이후로, 연구소장과 마찰을 빚는 횟수가 잦아지더니.. 결국 파벌이 나뉘게 되었습니다. 연구소장님과 보스는 공동 경영자기 때문이지요. 의도적으로 사형의 횟수는 줄이시더니, 그로 인해 연구소장의 연구도 늦춰지기 때문에.. 입지가 좋지 않은 상태지요.. 그래서.. 아무래도 보스께서는 여러분이.."
소녀는 움찔 떨더니 몸을 굳힙니다. 덜덜 떠는 모습이 가련합니다. 당신이 내려다볼 적, 소녀의 얼굴은.. 눈이 반쯤 죽어있습니다. 공포에 젖어있기도 하고.
"나, 나는 몰라."
소녀는 처음엔- 그렇게 말했습니다. 전투식량을 준다고 해도 이를 악물고 대답하지 않으려 들더니만, 권총과 새빨간 눈동자를 보더니.
아아, 새빨간 눈동자를 보더니-
"잘못했어요."
순식간에 굴복합니다. 손톱을 건드릴 적엔 다른 손으로 품에 안은 무언가를 더 꽈악 안으며 딱딱대는 잇새로 비참하게 중얼거렸습니다.
"자, 자,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 다 얘기할게요. 다 얘기할게요.."
소녀가 겨우겨우 입을 벌립니다.
"시, 시키는 대로 다 했어요. 야, 약도 시키는 대로 다 뿌렸고요.. 증상도. 전부.. 전부 적어 보냈어요..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도 재깍 말씀하신 곳에 편지를 두었어요. 여기에서도, 약이 유통된다고 소문도 퍼뜨렸어요. 헬 하운드도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그, 그리고 최근에 가장 시키신 일이요, 증거도 없앴어요..! 그, 그 핏자국이랑 전부 제가 다 닦았어요.."
이게 무슨 말이죠? 소녀는 엎어져 있어도 불안하게 품에 안고 있던 무언가를 어르고 달래는 듯싶었습니다. 울지 마, 울지 마.. 울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 그러니까.. 그러니까.. 잘못했어요.."
당신은 이 상황을 잘 압니다. 공포로 조련하는 방법. 그리고 천천히 상대의 정신을 무너뜨려 종 삼는 방법.
"안식으로 끌고가진 말아주세요, 잘못했어요.."
아마 이 소녀는 모종의 공포에 사로잡히는 일을 겪고 앞잡이가 된 듯싶습니다. 더 털어볼까요?
어째서냐는 말과 함께, 그러한 감정이 실린 듯한 눈빛을 너는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지... 다른 것 같다. 그저 왜? 어째서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이런 일을 당하는 거지? 싶은 표정 같기도 하고. 오랜 시간, 네가 계속해서 느껴 오던 감각이란 것은, 직감이란 것은 믿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던지라, 이번 역시 어쩔 수 없었다.
"이유를 모르겠나? 허술한 게 많군."
쓸데 없는 말은 그만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표정을 구기는 모습을 바이저 너머로 보던 너는 체인의 끝을 붙잡은 손에 힘을 주며 잡아당기니, 자연스레 체인은 휘감은 것을 조여가고 있었다.
"질문은 내가 한다."
그렇게 말하며 바이저가 사라져 네 눈을 드러내니, 검은 눈은 어떤 빛도 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새카매서, 강제로 땅에 엎드린 것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품에 기대오는 제를 보며 라라시아(와 화면 밖의 누군가)는 내적 비명을 질러야 했다. 이.. 이 용용이 녀석 귀엽잖아아아악!!! 그러나 라라시아는 침착하게 티 내지 않고 제를 감싸 다독인다. 제가 기대오며 한 말. 그 티엔 션이라면. 마치 저 사람이 제가 알던 사람과 같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예상을 시사하는 듯한 말에 조금 더 냉정해질 수 있었다.
마주한 션의 눈빛은 어딘가 꺼림칙하달까. 영 불편하다. 꿍꿍이가 있는 건지 결의가 있는 건지. 일단은 계속 경계하기로 하며 추궁을 하고. 레레시아의 추궁에 션은 더듬거리며 말을 시작했다. 여기 온 목적이 흔적을 지우는 것이라는 말에 레레시아는 방금 찾은 비늘을 들어본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군. 비늘을 한 손에 꾹 쥐고서 얘기를 마저 듣는다.
인공 세븐스의 존재와 또다른 용건. 보스라는 사람의 전언. 그녀들을 환대하라는 말에 자매는 동시에 코웃음을 쳤다.
"환대하라. 말은 아주 번지르르하게 해. 어. 지가 힘 없으니까 우릴 갖다 써먹겠다는 거 아냐? 재수없긴." "그래도 저 보스라는 쪽이 연구소장보다 나을 거 같은데? 방식도 정중하고. 아 물론 그렇다고 봐줄 건 아니지만."
레레시아의 이 갈린 목소리와 라라시아의 쾌활한 목소리가 번갈아 울린다. 라라시아는 더 말을 얹지 않고 제를 감싸는 것에 신경을 돌렸고. 레레시아는 몇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됐고. 너네 보스가 우리한테 뭘 원하는지 알면 똑바로 말해. 그리고 안식과 연구소에 대해서도 입 좀 털어보고. 보스랑 연구소장이 누군지도. 아 그 빌어먹을 약에 대해서도. 연구원이면 아는 거 많을 거 아냐? 알아서 다 얘기해야지 일일히 물어보게 하고. 하... 너 좀 귀찮다?"
그냥 지금 치워버려? 레레시아의 목소리에 희미한 신경질이 섞인다 싶더니. 주변을 경계하던 독액 줄기 중 하나가 마치 뱀처럼 흐늘거리며 션의 주위를 맴돈다. 금방이라도 물어버릴 듯이.
애늙은이라기에는 아닌 것 같고. 수상한게 정말 많아. 어떻게 보면 레지스탕스가 아니라 어떤 컬트 단체라고 해도 믿겠어. 그런 생각으로 허스키를 보다, 들려오는 말에 앓는 소리를 낸다. 대체 뭘 바라는 건지. 부엉이 마냥 목을 꺾는 모습에는 어이없다는 듯 한숨 처럼 숨을 내뱉는다. 개 가면을 쓰고 다니는 것도 그렇고. 컬트 단체가 맞을지도.
".... 줄 수 있다는게 뭘 말하는진 모르겠지만. 좋아요. 응. 제안 들어보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이것이 어떤 시험에 들게 되는 것이 아니길 바라며 신디는 고개를 끄덕인다.
경계를 너무 세워버려서, 진짜 아가씨를 마주쳐도 못 믿고 공격하는 거 아니야? 작게 키득거리며 웃는 목소리는 명백한 이스마엘의 것이라 신경을 긁어옵니다. 휘감은 몸을 조여와도 고통을 느낄 수 없는지, 참는 것인지. 키득거리며 웃던 가짜 이스마엘은 너스레를 떱니다.
"무서워라! 아.. 무서워요, 리오. 부디.. 제발..."
나를 죽일 것만 같잖아요? 새카만 눈을 마주하자 그것이 고개를 더 기묘한 각도로 꺾어 보입니다. 신기한 눈이네.. 같은 말을 중얼거리더니 점차 눈 색이 물들기 시작했지요. 이스마엘의 자랑스럽던 눈동자는 사라지고, 당신의 것과 똑 닮은 눈동자가 자리합니다. 심연이 당신을 똑같이 마주합니다.
>>391 이것이 귀여움의 황제입니다. 응애 나 스무살 세븐스. 천하의 티엔 션이라면? 글쎄요.
"그런, 셈이지요.. 당신들의 말이 맞습니다. 보스는.. 힘이 없으니."
션은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며, 똑바로 서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이제 보니 지팡이로 몸을 지탱하고 있었군요.
"아, 그게.. 아직 의족이 익숙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는 그런 션을 바라보며 코를 실룩입니다. 무슨 일이냐 묻는다면 "여가 도망칠 적 션은 총에 맞았으니까." 라는 말로 일축하겠지요. 죄책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스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대화를 듣다 보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느껴졌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런 일을 스스로 끝낼 수 없음을 아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 그리고.. 안식은.." "세븐스 사형장. 투기장 형식으로 사형을 집행해서 도박판을 벌이고, 전투 데이터를 가디언즈에 넘겨 훈련을 할 수 있게 하며, 남은 시체는 예술품으로 재가공해 경매에 붙이는 기관일세."
제가 마지못해 입을 벌립니다. 그리고 눈을 내리깝니다.
"여는 그곳의 사형인 출신이었네." "……폐하." "입을 다물어라, 션. 다디단 말은 듣고 싶지 아니하다. 묻는 질문에나 답하도록." "..예."
션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보스는 가란이라 불리는 남성으로, 세븐스 인신매매 및 약물 카르텔을 운영하다 안식의 오너가 되었다고. 레레시아는 영상 속에서 이스마엘에게 '헬무트를 짝사랑 했으며 그 사람의 이상향을 긍정한다' 말했던 은발 머리의 남성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구소장님은.."
그가 머뭇거립니다.
"에르베르토 엥엘이라.. 합니다.."
엥엘. 수술대에서, 개인실에서, 숱하게 들었던 그 성씨. 그리고 한때, 비극의 '수잔나 엥엘'로도 유명하던 그 이름.
"에르베르토 님은, 그러니까, 연구소장 님은 아내분이셨던 수잔나 엥엘의 뜻을 잇고자 했습니다. 아내분은 가디언즈의 무한한 발전과 병사들의 사기를 돋구기 위해서.. 세븐스의 인자를 이용한 무기를 만들려고 했고, 소장님은 약물을 통해 사기를 증진시키려 하셨으니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약물이 Sogno, 꿈입니다. 물론 살아있는 세븐스의 인자를 직접 뽑아내 갈아넣은 약물이라, 부작용은 많았지만.."
션은 독액을 보며 다급히 제를 쳐다봤지만.. 제는 그냥 고개를 폭 기대버려 모르쇠로 일관합니다. 아, 모르겠다.
소녀는 몸을 겨우 일으켜 자리에 앉습니다. 고분고분한 모습과 달리 여전히 한 팔엔 무언가를 안고 있습니다. 조리가 필요없는 크래커를 손에 쥐여줄 적, 소녀는 그것을 먹기 보다는 빤히 쳐다보다 품 속에 있는 무언가에게 가져다 댔..
"제, 제 동생이. 좋아해요."
품에 있는 건 아기입니다. 이미 부패가 시작되고 있는 아기요. 참으로 끔찍한 일이지 않습니까. 공포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각인시켰으니.
"..네."
아랑곳 않고 시체의 입가에 크래커를 밀어대지만 죽은 것이 뭔가를 먹을 리가요. 소녀는 배가 고프지 않으면 자기가 먹겠다는 듯 그 크래커를 입에 가져다 대려 했습니다.
"약은요.. 이름이 꿈이라고 했어요."
소녀는 더듬거리며 얘기를 꺼냅니다.
복용의 방법은 알약, 주사, 비강 흡입 등 모든 것이 가능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의사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을 뿐더러 고통과 감정을 배제한 것을 제외하면 평상시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었고, 아주 오래전의 기억까지 생생하게 떠올리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고.
>>393 컬트 단체일까요? 흐음, 그럴지도요. 아니면 무엇일까요. 극단? 광인? 혹은..
"간단해에."
허스키는 소맷단을 모아 입가로 가져다 대며 히히 웃습니다.
"친구야, '카스트로'를 처리해 줘.. 너희라면 할 수 있을 거야아. 카스트로가 누구냐며언.."
속닥속닥.
"안식에서 만든- 생체 안드로이드인데- 재료가 살아있는 사람이었거드은. 너희는 그 존재에게 안식을 줄 수 있을 거잖아아."
응? 가면 속의 눈동자가 휩니다. 그리고 눈을 굴리더니 드론 소리가 들리기 전에 후다닥 속삭였지요.
"절대 살려두지 마. 그게 내가 여기서 리더를 접선하게 해주는 조건이야아."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드론 한 대와 함께 누군가가 비척비척 걸어옵니다. 다른 대원들은 옆으로 정렬해 길을 터주고, 개 가면을 쓰고 커다란 후드를 입은 중성적인 누군가가 당신의 앞에 멈춰 섭니다.
"안녕, 에델바이스. 우리 집 오컬트 또라이들이랑 같이 대화 해주느라 고맙고 미안하네. 너희, 들어가 보고. 허스키 님은 남으시고." "네에-" "하여튼.. 소개는 들었겠지만 헬 하운드의 수장, 비숑이라고 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우리쪽 사람을 써서 유인했고.. 그래, 이 점은 사과하도록 할게. 도움이 필요한 거.. 맞지?"
음.. 어떻게 알았죠? 개 가면 너머로 푸른 눈이 당신을 물끄러미 쳐다 봅니다. 손가락을 튕겼고, 손 주변으로 조그마한 드론 몇 대가 둥둥 모여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