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정원 안의 티 테이블이 어색한지 테이블 위, 이스마엘의 손가락으로 추정되는 것이 꼬물거립니다. 누군가 자리에 앉습니다.
"에르베르토가 널 찾던데, 뭐, 조금 늦어도 되겠지. 아가, 몸은 좀 어떠니?" "괜찮습니다." "그래, 나는 너희와 같은 레지스탕스가 진절머리 날만치 싫지만 넌 헬리의 딸이지. 대화를 하고 싶구나. 물어보고픈게 있니?" "가란, 당신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였길래 당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저버리는 겁니까?" "……." "……."
어색한 침묵이 이어집니다. 가란이라 불린 남성이 눈을 가늘게 뜹니다.
"너어, 뭔가 알고 있구나. 그렇지?" "음, 약간은 압니다." "그이가 나를 뭐라고 하디?" "친구. 그런데 믿지는 않았습니다." "왜?" "아버지와 저는 클라우드를 공유하니까요." "뭐?" "그러니까- 음- 다 봤다고요." "대체 왜?" "그게- 저는 사망신고가 됐으니 뭘 만들 수 없으니 말입니다."
앓는 소리가 납니다. 은발 머리의 남성이자 가란이라 불린 자는 "헬리는 죽어서도 날 괴롭혀."라며 앓더니 한숨을 푹 쉽니다.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게 얼추 맞을 테지." "음." "그렇지만!"
가란이 쿵! 하고 테이블을 내리칩니다.
"외사랑이었단다. 그이 마음엔 내가 없었어." "그게……. 이유가 됩니까?" "물론이지. 그이 마음엔 오로지 이상향 뿐이었거든. 허구한날 이상향 뿐이었어. 술을 그렇게 처맥였던 날에도 이상향 이상향 했다니까?" "..음, 이해합니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으니까요."
가란은 손을 들어 얼굴을 덮어 가립니다. 내가 딸뻘되는 애한테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싶었나 봅니다. 가란은 한숨을 또 쉬어버립니다.
"뭐, 그래서 나는.. 나는 그래서 네가 몸담았던 곳이, 나아가서 세븐스가 싫단다. 진절머리 나, 전부 멍청하고 어리석어. 그 사상 때문에 다 뺏겨놓고 스스로를 내던져놓고, 결국엔 해야만 하는 일이라며 내 주변에서 사라져버려. 나는.. 나는 그게 싫단다." "……." "모든 사람들이 혁명을 받아들이진 않는단다. 모두가 죽음을 의미있게 생각하지도 않고. 자칫하다 헬리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면..? 남겨진 사람들은..? 그래서 나는 혁명이니 뭐니 떠드는 것이 싫단다. 너희의 이기심으로 남겨진 사람들이 있잖니. 그렇지만 나도 이기적이지." "무슨 뜻입니까?" "내가 그 이상향에 결국 동조하고 있었구나 싶었던 사실을 상기하면, 결국 나 또한 세븐스를 마음 깊게 담고 그것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후계자에 올릴 생각을 했고, 결국 사라질 것이 자명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이 피에 물들었음을 깨달았을 때, 내가 그런 걸 괴로워할 자격이 없음을 알게 되잖니?" "가란." "그래서 나는 이상향을 이해하기 싫어. 그러니 날 용서하지 말거라. 내 이기심 때문이란다, 내가 비참해지잖니." "……." "……이런, 내가 말주변이 없어 곤란하게 만들었구나. 말벗이 필요하다면 션을 불러주마." "아니, 괜찮습니다. 오히려 그런 이야기를 들어서 기쁩니다." "정말이니?" "물론이죠. 차나 한잔 할까요?"
시점이 단숨에 변합니다. 금방이라도 멎을 것 같이, 목이 졸린 듯 거친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힉……. 히익-"
손으로 눈을 덮어 가렸던 것인지 빛이 새어 들어옵니다. 쓰러지는 것처럼 시야가 넓어집니다. 부스럭거리며 몸을 뒤트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 흐흐, 흐흐흐흐… 으흐흐.. 아, 아악.. 흐흐.." "삶이 많이 고달팠나 봐요. 지금껏 이런 반응은 처음인데."
이건 가란이라 불렸던 남성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히익- 이, 이게, 으흐흑, 무슨, 흐으-" "괜찮아요, 조금만 참으면 나쁜 기억은 모두 잊을 수 있을 거예요." "아- 히익- 힉-" "옳지. 조금 더.. 옳지."
됐다. 이스마엘이 흐느끼듯 웃고 탄성을 내지르며, 시야가 단숨에 밝아집니다. 한참 몸을 뒤틀다 거울을 마주 보는지 누군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히익- 힉-" "안녕."
그리고 레이먼드가 말한 '아버지를 참칭하는 사람'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빛에 가려져 머리카락과 눈만 보이지만, 흰 백발과 붉은 눈이 이스마엘과 비슷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