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 제의 동공이 점차 좁아지더니만, 볼을 대자 몸을 순간 파드득 떱니다. 아무래도 이 오만한 도마뱀.. 아니.. 실지렁이.. 아니.. 샌드백.. 아니, 용은 사람의 온기가 익숙하지 않은 듯싶습니다. 꼬리를 잠깐 부풀렸으니. 그리고 라라시아의 이야기에 눈을 점차 좁혀갑니다.
"아니, 누가 뭐래도 여는 황제야."
음, 자존심 세우기를 보세요. 재수없다고요? 저도 알아요... 볼을 쓰다듬는 건 얌전히 받아들입니다만.. 어휴 얄미워!
뭐, 레레시아는 소문의 약인지, 아닌지 알아보려 합니다만.. 혀에 닿기가 무섭게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어, 이건.. 마약성 진통제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소문의 약은 아닌데다, 많이 정제되어 중독성은 적고 진통 효과만 있는 듯싶습니다. 당신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제를 향할 수밖에요.
"……여가 구해주었네. 도통 의무실로 가려 들지 않아서."
그걸 네가 어떻게 구했는데요? 제의 시선은 당신을 피하듯 활짝 벌린 암막커튼이 가린, 벽을 향하고 있습니다.
>>231 제는 당신을 노려봅니다. 그런 말을 하면 어째요! 같은 시선이었지만..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이라면.
"커피."
네.. 커피코패스죠. 그것도 상당한. 마지막 이름을 썼지요, 네. 쓰디쓴 사실입니다. 제는 똑똑하단 말에 조용히 입을 다뭅니다. 오만하기에는 상황이 여즉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던 듯싶습니다.
[사용자 헌트리스, 환영합니다.]
짧은 안내 멘트와 함께 클라우드에는 동영상 수천개가 주르륵 늘어서기 시작합니다.
페이시 클라우드는 사용자가 동의할 경우, 페이시 시스템이 사용자의 시야를 공유하여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나 하루의 일과를 저장할 수 있는 유용한 클라우드지요. 소위 아카이브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불필요하거나, 일상의 비밀스러운 부분, 혹은 외설적인 부분은 모두 검열되니 하루하루 평온하고 즐거운 순간만이 남겠지요!
각설하고, 이스마엘의 클라우드는 날짜가 아니라 재생이 많이 된 순서로 정렬이 되어 있습니다. 이스마엘의 깍듯한 성격상 이런 면은 또 의외라지만, 글쎄요.
그만큼 무언가 자주 찾아 기대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일단 손이 가는 영상을 재생하기가 무섭게, 거친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어, 그런 영상이에요? 아니에요.. 정신 차리세요.. 시점은 이스마엘이군요. 아마 페이스 재머를 기점으로 저장되는 영상은, '전적인 이스마엘의 시점'으로 비롯되나 봅니다.
동영상은. 노트북 화면으로 모두에게 공유됩니다.
《공유되는 동영상 결과》
바닥은 피로 물들고 있었고, 손엔 벽돌이 들려있습니다. 시점이 서서히 위로 올라가자 뒤집어 까진 눈과 함께 머리가 깨져 처참하게 생을 마감한 사람의 얼굴이 보이다가, 고개를 숙여버린 듯 황급히 사라집니다. 살인의 현장입니다만, 날짜는 훨씬 이전입니다.
고개를 들었을 때, 은발의 자색 눈을 가진 젊은 남성이 이스마엘을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시점이 바뀝니다.
"...얘, 만약 네 본성이 추악하다 생각이 들 때면, 그 사람들을 사랑하려 해보려무나. 저런, 기절했나? 피를 그만큼 흘렸으니 뭐……. 푹 쉬면 좋아질 거란다." "보스!!" "조용히 좀 뛰어오면 어디가 덧나니. 잘 치료해 주고 옷도 주도록 하렴. 아니면 너도 폐하 앞으로 끌고 가는 수가 있어. 션! 거기 구석에 짱박힌 거 다 알아. 안식에 연락해서 '개' 데려오라고 해. 냄새 기가 막히게 잘 맡는 애로!"
하나를 더 재생하기 전, 당신의 머리가 돌아갑니다. 페이시 시스템은 어지간하면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번 사건'도 있지 않을까요?
선우는 지금부터 탐색하는 레스와 동시에 다이스를 2개 굴려주세요. 하나는 성공, 실패 다이스로 범위는 1부터 2까지입니다. 1이 성공입니다.
다른 하나는 1부터 4입니다. 값은 공개하지 않으나, 정해진 지문이 출력될 예정입니다. 첫번째 다이스의 경우, 행동이 충족되면 다이스 값 유무를 제하고 성공 판정으로 넘어갑니다.
>>256 제의 따스한 시선을 무시한 채 아공간에 손을 집어넣어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괜찮은 커피 원두 하나를 꺼낸다. 포스트잇을 꺼내 포장지에 붙이고는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둔다.
[생일 축하해]
먹을 수 있을 지 없을 지는 모르겠지만..
페이시 클라우드는 사용자가 동의할 경우, 페이시 시스템이 사용자의 시야를 공유하여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이나 하루의 일과를 저장할 수 있는 유용한 클라우드. 따라서 이스마엘이 보고 듣고 느낀 것 중 불필요하거나, 일상의 비밀스러운 부분, 혹은 외설적인 부분을 제외한 부분을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다.
"검열 된 걸 못본다는 게 아쉽네"
그녀의 클라우드가 날짜순으로 되어있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재생이 많이 된 순으로 정렬이 되어있었다. 가장 많이 재생된 영상을 틀자 거친 숨소리가 나왔다. 그의 얼굴에 홍보가 드러났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상적인 영상이었다.
"그렇다면..."
이스마엘은 그 사건 이후 탈주하여 노트북을 두고 갔다. 즉, 최근 영상의 경우 재생된 숫자가 0일 것이다. 정렬된 영상 맨 뒤를 살펴보았다.
>>241>>243 레이먼드.. 안타깝게도.. 진짜 검은 건 글자고 흰 건 종이네요.. 다급하게 제를 쳐다보지만..
"很遗憾!"
으아악 모르는구나!
그런데, 당신은 한가지 석연찮은 점을 발견합니다. 정확히는 낡은 편지. 글씨체가 혼자만 다릅니다.
아마 낡은 편지를 제외한 나머지 편지지는 싹 이스마엘의 답장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독일어라면.. 당신이 아는, 한 명의 남자가 있지요. 지금은 명을 달리한 독일인 하나 말이에요.
저런, 레이먼드. 하필이면 당신이 상자를 뒤적거릴 줄은 저도 몰랐답니다…….
편지를 어떻게든 읽어보겠습니까? 아, 그런데 선우가 뭘 했지요? 우리의 시대는 어떤 시대죠?
*
신디, 도너티! 아, 세상에, 도너티. 태블릿을 켜기가 무섭게 당신은 클라우드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체 내장 클라우드에는 사진 여러 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영상도요. 사진을 하나하나 훑어봅니다. 땋은 머리를 뒤로 평범한 후드를 입은 이스마엘, 흔들렸지만 키가 큰 남성을 찍은 사진, 같이 찍은 사진과 조잡한 편집 어플로 써내려간 '우리 아빠' 라는 화살표..
아아, 이스마엘의 그립고도 그리운 과거였군요.
남성이 가디언즈 제복을 입은 것만 빼면요.
동영상 하나를 찾습니다. 다들 모여 봐요.
《공유되는 클라우드 결과》 영상을 틀기가 무섭게 예쁘장한 여자아이 하나가 보입니다. 대략 10대 중후반, 끝이 살짝 올라갔지만 꼭 맹수처럼 상대를 잡아먹을 것 같은 눈매와 옷으로 감쌌다 한들 낭창낭창하되 근육이 잘 잡힌 몸, 매력적인 커피 크림과도 같은 피부와 땋아내린 새하얀 머리카락..
"7월 25일. 새벽 한 시, 그러니까.. 우리 아빠는 아직 안 왔음. 안녕, 열 일곱살의 이스마엘이야. 오늘도 하루를 기록하려고 해."
이스마엘이군요.
"그러니까.. 오늘은 그만 두고자 해. 응, 더는 두고볼 수 없는 것 같아서."
이스마엘이 잠시 고민하다 한숨을 쉽니다.
"나는 조국에게 충성을 바치고 싶어. 당연하게도 가디언즈가 되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지. 그 역한 반동분자니 뭐니 하는 것들이 우리 가족을 그만 건드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그렇지만, 이젠 조국이 아빠를 좀먹고 있다는 걸 깨달았잖아! 믿었던 조국에게 배신 당한 거라고. 사실은 모르겠어. 반동분자의 길을 걷겠냐면 그건 또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그 사람들처럼 무작정 평등함을 바란다!를 외치는 건 아니거든. 왜냐면 가디언즈가 되면- 평등해지잖아? 아무튼 힘내볼게."
>>257 으악! 제는 귀여움이 황제급이란 말과 함께 떨어지지 않는 라라시아에게 미지의 공포를 느낀 듯싶습니다. 꼬리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입니다.. 제의 꼬리가 호들호들 떨리더니, 이내 펑! 하고 솟아오릅니다.
뭐, 각설하고. 혀를 차는 레레시아를 바라보던 제가 움직이려고 바둥댄 것은, 걷지 않은 커튼을 걷어내려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라라시아 때문에 쉬이 움직일 수 없었고, 마침내 암막커튼에 가려진 벽면이 드러납니다.
어쩐지 암막커튼을 벽까지 칠 리가 없지. 커튼을 젖힌 순간, 코르크로 된 보드가 드러납니다.
압핀에 고정된 메모, 사진.. 대다수는 낯설지만 낯익은 존재도 있습니다. UPG와 연관된 정계 인사, 처음 보는 남성, 과거 생중계 도중 살해당한 수잔나 박사, 카시노프, 에일린... 수잔나는 붉은 펜으로 사진에 X자를 그어두었군요. 어. 잠깐.. 레이먼드의 사진이 있는 건 차치합시다..
당신은 메모 두어 개를 읽어봅니다.
[xxxx년 5월 7일, 수잔나 엥엘, 즉사] [레지스탕스 블루 로즈] [xxxx년 5월 9일, 소탕 완료. 2달 뒤 헬무트 케르스트너, 학살.]
[xxxx년 1월 19일, 헬무트 케르스트너, 과다출혈.] [레이버, 하워드 그레인저 / 밀고?(추정)] [xxxx년 7월 31일, 하워드 그레인저, 임무 중 레지스탕스의 충돌로 실종.] [xxxx년 일, 레이버 무력화 완료, 회수(에일린)] [살려서는 안 돼..]
[xxxx년 12월 3일, 헬무트 케르스트너, ] [카시노프, 에일린, 플래나……(이하 핵심인물이 모조리 적혀있다.)] [xxxx년 12월 3일, 에일린 무력화 완료. 카시노프의 회수, 플래나 레베우스의 도발... 이해하지 마.] [절대 살려서는 안 된다. 에일린 만큼은 안 된다. 에델바이스를 등지는 한이 있더라도.] [레이먼드 나이벨(레이먼드는 다행스럽게도 선을 직직 그어 지워져 있다.) 너는 살린다 이 개*끼야.]
[너무 많다.] [이해하지 마.] [남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아직 열매가 무르익지 않았다. 레지스탕스에 있을 이유가 더 늘었다. [무르익으면 구원할 수 있어.] [전부 끝내버리자. 끝을 내자.] [내가 혼자 해야만 해. 남의 손에 피를 묻히느니 내 손에 묻는 게 나아.]
……아. 이거.. 킬보드네요.
이스마엘의 비밀번호도, 클라우드 접근 권한도 알고 있는 존재가 과연 킬보드의 존재를 몰랐을까요? 당신은 제를 향해 고개를 돌려봅니다.
"이것 참.. 어찌 그런 눈으로 보는지...."
제는 당신과 눈이 마주쳤을 때, 기묘한 미소를 입가와 눈에 가득 그려냈습니다. 마치 뱀과 같은 미소로... 한가득... 선악과를 베어물라 종용하던 존재와 같이.
"여도 몰랐지.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 누군가에게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 더 큰 분란을 낳지 않기 위해 미래의 계획을 세우고.. 남의 손에 피 묻히지 않고 스스로의 손으로 구원하려는 것만으로도 장한 일이지.."
알고 있었군요.
"하지만 레지스탕스에 남아있겠노라 써있으니, 적어도 스스로의 복수심으로 탈주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증명 되었구나. 그렇지? 응?"
독일어. 독일어로 된 편지... 분명히 이건 내가 예상하는 바로는 '그 녀석'과의 편지겠지. 정말 질기고도 질긴 인연이군. 내 인생에 가장 큰 숙적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쏴버린 상대를 두번 생각하는 일이 굉장히 적다. 하지만, 이 양반은... 자꾸 내 인생에 끼어든단 말이지. 죽은 주제에.
"케르스트너..."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번역기가 과연 제 역할을 똑바로 해 줄지 모르겠군.
"과연, 이 둘 사이의 편지에 어떤 단서가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 봐야지."
노트북과 구식 패드에서 각각 영상이 흘러나왔다. 하나는 이스마엘이 누군가를 해치고 누군가에게 데려가지는 것. 하나는 아마도 헬무트인 남성에게 대들다 맞는 것. 구체적인 내용은 더 있었고 그것들을 레레시아와 라라시아 모두 보았다. 두 영상이 끝난 후 먼저 말문을 연 건 라라시아였다.
"저 하얀 머리 남자. 완전 내 취향인데?" "그 무슨. 지금 그런 말이 잘도 나온다?" "아-니 솔직하게 말한 건데 뭘. 참고로 왜 저쪽이냐면 딱 봐도 속이 아주-" "입 닥치고 네 일이나 봐."
칼 같은 말을 끝으로 자매의 신경전은 짧게 지나갔다.
바둥대는 제를 라라시아의 두 팔이 부드럽게 제압하고. 커튼에 가려져 있던 벽은 방 안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 벽을 빼곡히 채운 건 다수의 인물들과 관계도를 조사한 것. 그러니까 이런 거 뭐라고 하던가.
"우리 동생 부지런하기도 하지. 언제 이런 걸 만들었을까."
보드 곳곳을 살펴보고 손으로 쓸어본 레레시아는 불안정하게 중얼거리는 제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하며 무심하게 말했다.
"직접 남아있겠다고 써놓기도 했고. 그 애가 먼저 우리와 얘기하고 싶다고도 했었지. 그리고 이스마엘은 그 모든 걸 내팽개치고 떠날 애가 아니야. 걱정 마. 이유가 있어도 때려부수고 데려와 줄 테니까." "그래 그래. 우리는 이미 그 애를 우리 가족으로 생각하는 걸. 아. 제제 군도 어때? 기념비적인 우리 자매의 넷째가 되는 건?"
《현장 확인》 다시금 그 문제의 영상을 확인합니다. 중간에 재밍 장치로 인해 교란이라도 됐는지 드문드문 끊기기 시작하더니, 이내 화면이 보이지 않고 오디오만 출력되던 그 부분을.
- 새해 다짐으로 금연은 어떤가?
제가 옆에서 농담을 건네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길잡이를 하면서, 조금 거리가 벌어져 있으니 개인적인 대화를 하는 것 같군요.
- 미안한데, 그렇게 안 피우거든? - 그렇다기엔 세상 어떤 사람이 담배를 두 종류로 나눠 피우나? 골초만 할 수 있는 일이지. - 뭐래. *같을 때랑 덜 *같을 때 용도지. - 뭔 소리야? 덜 *같은 건 한꺼번에 2개비씩 손가락에 끼워 피는 녀석이. - 세상이 늘 새롭게 *같잖아. - 늘 새로운 *이라니 끔찍하군. 대체 몇 명이나 갈아치우는 거야? - 그런 의미 아니야, 이 대가리에 마귀가 들어 찬 미친 새*야.
화면 속의 제가 웃음을 터뜨립니다.
- 으하학, 성격 하고는! 제 양부를 똑 닮아 변명까지 똑같구만! 그래서, 네 주변 사람들이 이러는 거 알고는 있나? - 아니, 모르지. 평생 몰랐으면 좋겠으니 꼰지르기만 해봐. - 암, 암. 입 다물어야지. 뭐, 그래서.. 늘 *같으니 금연은 못하시겠다? - 그게 왜 또 금연으로 넘어가? - 글쎄? 가르친 사람의 마지막 양심? - 뭐래. - 왜, 쫄리나? - 쫄려? 그래, 어디 그 도전 받아볼까? - 그 알량한 포부가 언제까지 가나 보자고.
킥킥대는 웃음소리가 퍼집니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이런저런 사적인 대화를 나누다가도 제가 이스마엘의 웃는 얼굴을 빤히 바라봅니다. 헌트리스.
- 《행복해?》 - 왜, 진지한 얘기 할 시간인가 봐? - 뭐, 그런 편이지. - 맘껏 하시든지. 신경 안 쓰니까. - ……갑자기 주제 바꿔서 미안한데, 슬럼이잖나. 자네 고향. 그래서- 음. 좀 힘든 건 아닌가 싶어서. 자네 발걸음이 느려졌길래. - 《아니.》 - 정말? - 응. 그냥, 잠깐 주변 경계하느라 그런 거지. 난 이젠 괜찮아. 지금껏 생각했는데, 그래, 자유로워진 느낌이야. 내 사상, 내 삶, 내 모든 것이..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 내 것이었던 게 어디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에델바이스에 소속된 게 좋아. - 하하, 결국 알을 깨고 나왔군 그래? - 응. 그런 셈이지. - 네가 말한 '새로운 목표'는 온전히 네 것이니 이번엔 뺏기지 않게 주의하라고.
- 뺏기지 않게 조심할 것은 폐하랍니다. - 어? - 미안해요, 손 좀 댈게요.
순간, 이스마엘의 시점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마치 무언가에 붙잡히더니, 그대로 강하게 처박힌 것처럼- 뒤에서 비명소리가 울립니다.
- 이, 이스마엘 씨! - 《헌트리스!!!!!》 - 생체 데이터 확인.. 아가씨네요. 잘 됐다. 기뻐하실 텐데. 사람이 이렇게나 많으니 카두케우스도 써볼 수 있겠어요. - 《젠장!! 전투 준비해!!》
제의 외침을 뒤로, 이스마엘은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는지 영상이 종료됩니다. 그제야 무서울 정도로 뇌가 돌아갑니다. 영상에 나온 이스마엘의 억양. 아! 어째서 이걸 이제야 눈치챘을까요.
끝이 기묘하게 올라가는 어조. 이건 남부 공용어가 아닙니다. 영상 속의- 드러나지 않던 제 3자의 어조였지요.
요컨대, 우리가 본 영상 속의 이스마엘은.. 페이시 속의 습격자요, 가짜라는 뜻입니다.
《탐색 결과》
시점은 이스마엘이 현재 머무는 곳으로 추정됩니다. 날짜는.. 오늘입니다. 세븐스 하나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나를 떠나는 꿈을 꿨어." "으, 으으."
혀가 잘린 듯싶군요.
"응. 당신이." "흐윽.." "응? 글쎄, 나도 모르겠어, 왜 떠났을까. 당신은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아으.." "알아. 무의미한 거. 대부님과 똑같지. 아니야, 잠깐, 당신이 아니야.. 누구였지. 당신이 누구였지?"
시야를 내린 순간, 피가 후두둑 바닥에 쏟아집니다.
"……아? 아하, 흐흐, 으흐흐흐.. 히익- 히이익- 힉-" "이런 젠장. 헤베!!"
누군가 들어오기가 무섭게 갑자기 시점이 암전됩니다. 물에 잠기는 소리.
"맙소사, 아가! 또 악몽을 꾸었군요."
누군가 쨍한 시야에서 이스마엘을 향해 다가옵니다. 누구지요? 젠장, 시야가 흐려 보이지 않습니다.
"아버지..?"
아니오, 아닙니다. 레이먼드는 헬무트의 목소리를 압니다! 저건 헬무트가 아닙니다!
"……저런, 식은땀이 범벅이에요.. 반동분자의 꿈을 꾸었나요?" "네, 아버지를 잃는 꿈이었어요……."
가련히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성이 이스마엘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듯 가까워집니다.
"아, 헤베. 내 사랑스러운 딸.. 그런 무의미한 것에 손속을 두지 말아요." "그렇지만, 아버지마저 잃어버리면.." "괜찮아요, 괜찮아.. 나는 괜찮아요. 그런 어리석은 것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현재에 집중하세요. 우리의 조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충성하는 자의 편이에요. 헬리도 그렇게 말했잖아요?" "맞아요.. 그.. 그 뜻을 이어야지요.." "잘 생각했어요, 헤베. 조금 잠드는 것이 좋겠어요.. 카스트로!!"
시야가 다시금 암전됩니다.
- sogno 더 투여해요. - 그랬다간 정신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요..? - 괴로워 하느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좋을 때도 있지요.
시야가 어지러이 바뀝니다.
"아가씨, 아가씨. 작은 아가씨." "어째서 토라지셨을까요." "……대부님은 어디로 가셨나요?" "보스요? 글쎄요.. 곧 춘절이라 고향에 가는 걸지도 몰라요." "우리는 잘 모른답니다." "하지만 아가씨, 토라지지 말아요." "저희가 있잖아요? 그런 손속 없는 것에 신경을 쓰면 걱정은 늘어갈 거예요." "아가씨, 아가씨. 작은 아가씨. 새 장난감을 드릴까요?" "이번엔 살아있답니다.." "비밀로 하려고 했지만, 녹색 머리에, 검은 눈이에요."
신이시여.
"정말요..?" "네에, 손목도, 발목도. 모두 정상이에요." "아가씨께 사랑한다 속삭일 목소리도 가지고 있지요." "……으흐흑."
동료들이 방 안을 뒤지는 걸 가만히 보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지만. 네가 나서지 않아도 다들 찾아야 할 것들을 찾아내는 듯싶었다. 저기 지금 네 앞에 보여지는 영상만 보더라도 그렇잖은가. 어쩌면 네가 해야 하는 건 가만히 있는 것일지도. 솔직히 눈 앞에서 흘러가는 영상들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를 알 수가 없었다. 할 말도 떠오르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 그런 상황. 그저 떨리는 손으로 다른 영상을 재생하려는 듯한 제의 모습을 보다가 그의 손목을 덥썩 붙잡으려고 한 게 전부였다.
"내가 하죠."
가능하다면 너는, 제가 확인하려고 했던 영상을 직접 재생해 보려고 했을 터다, 재생하기 전에 이게 맞냐며 되묻기까지 하면서.
>>271 너여… 너를 문다..! 우리의 제와와는 변온동물 소리에 동공을 좁히고 으르릉! 하고 목에서부터 짐승이 긁어내듯 울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오래 가지 못했지요. 당신의 케르스트너 소리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를 켭니다. 우리의 파파고는 근미래 세계관에서도 여전히 일부 왈도체를 쓸까요? 아니오.. 그랬더라면 공용어는 망했을 겁니다.
《번역 결과 - 헬무트》 [사랑하는 나의 딸에게. 이스마엘, 내 딸. 이렇게 편지를 적는다. 말주변 없는 아비라 두서 없으니 부디 양해해다오. 그래, 드디어 네가 성인이 되는구나. 네가 상자에 있을 적엔 그리도 작았는데, 영원히 작을 것만 같던 아이가 벌써 이리 자랐단 것에 마음이 뒤숭숭하다.
(중략. 자라가던 네가 이리도 사랑스럽고 어엿한 여인이 되었으나 남자나 여자를 들이는 건 아직도 반대라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네가 가디언즈가 되고 싶지 않노라 이야기 했을 적이 기억나니? 나는 그 당시 화가 난 게 아니었단다. 너는 너는 누구보다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이 컸고, 세븐스에 대한 반발심이 큰 아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국가의 표본이라 해도 좋을 정도였지 않니. 그런데 네가 그 길을 스스로 버리겠다 했을 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뺨은 아물었지만 마음은 아니라는 걸 잘 안다. 네가 내 친딸이 아니라는 건 너도 어렴풋이 눈치챘을 거라 생각했지만, 나는 너를 단 한순간도 데려왔기에 키우는 존재로 생각한 적이 없다. 네가 내 친딸이 아니기 때문에 뺨을 쳤던 것도 아니다. 너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가족이다. 그 사실을 기억해주렴. 네게 미숙한 감정을 표출하고 말았던 점은, 지금 다시 사과하고 싶구나.
(중략. 이스마엘이 내가 친딸이 아니라서 이렇게 개패듯이 패? 당신처럼 날 소모품으로 보는 건 아니고? 라고 외쳤던 사실에 많은 충격을 받았는지 그 부분만 꾹꾹 눌려 쓰여있다..)
내 고해를 듣고 네가 나의 길을 선택해주던 날, 나는 네게서 가능성을 본 듯싶다. 내 인생에 대한 속죄가 아닌, 널 위한 이상향을 만들고자 하는 가능성 말이다.
(중략)
이스마엘, 영원한 것은 없다. 너는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할 것이다. 어쩌면 이 편지를 열었을 때, 너는 나를 떠나 독립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네가 만일 어느 곳에 들어가든지 명심하거라. 임무 중에는 조금의 감정이라도 가져서는 안 된다. 그 감정이 대단한 행운으로 다가왔다고 해도, 세상은 행운만 있는 법이 아니니까. 무언가 일이 벌어지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든, 무엇을 했든, 무슨 사연이 있어 보이든 그 인간이 저지른 결과를 바라봐야지 사람을 사람으로 보면 안 된다.
……한편으로는 나는 네가 이렇게 감정과 이성을 분리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네가 나처럼 무뎌지는 날이 올까 두렵다. 네가 그렇게 된다면 더는 내가 너를 지킬 수 없는 순간이 도래한 뒤일 테니.
끔찍한 말만 하여 미안하다. 그렇지만 이스마엘, 너도 알지 않니. 우리는 세븐스라는걸. 조만간 내가 접선하는 레지스탕스에 너를 추천할 생각이다.]
《번역 결과 - 이스마엘》 [구텐탁, 그곳엔 이제 전파가 닿습니까? 녹슨 안드로이드는 이제 구동을 시작했을까요?
이곳의 생활은 안온합니다. 평온함이 과분하고 언젠가는 깨질까 두렵지만, 응당 주어진 것이기에 현재를 즐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짐이 무색하게도 고뇌는 여전히 이어집니다. 제가 이 고뇌를 이겨낼 수 있을지 감히 의문이 듭니다. 이겨내지 못한다 해도, 다른 방식으로나마 선택하였노라 생각하기로 해도 두렵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저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영원한 것이 없다면 이상향도 영원하지 못하다는 걸까요. 절 위한 이상향은 무엇입니까?
어느 순간부터인지 저는 이상향, 이 세글자가 두렵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이 뒤틀릴까 두렵습니다. 그렇게 이상향이 더러워질까 공포가 나를 좀먹습니다. 이미 뒤틀린 아버지의 시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거기에 계셨습니까.
저는 아버지를 봤을 때,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위해 한번 이상향을 버렸는데, 두 번이라고 버리지 못할까요? 그것이 두렵습니다.
바람이 떠돌이의 발에 닿지 않습니다.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이정표를 찾았지만.. 두렵습니다. 이 사람에게 이상향이 무거운 것이라면. 혹은 우리의 이상향이 잘못된 것이라면..
그래서 혼자 짊어지고자 합니다. 변절자의 길을 걸은 주제에 망설이며 더 변절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것이 어리석음을 깨닫기 전에. 저지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