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급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에 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긴, 그 더러운 가문에 더러운 기업이라면 있고도 남을 테다. 일반 직원이라면 일반인 비율이 높겠지만 꽤 직급 높은 이들이라면 회장과 손잡은 적을 몇 번 마주했으니 결코 일반인은 아니다.
"쫄…?! 안 쫄았, 아니 겁먹은 거 아니거든요? 드레이븐, 당신 위력과 내 위력이 천차만별이라는 점을 인지해 줄래요."
화들짝 놀랐다가 정정. 6개월이나 루첼란 뒷세계에 있었더니 말투가 어느새 옮겨붙은 것이 살짝 충격이었다. 분명 무심한 표정인데 놀리는 것이 느껴졌다. 드레이븐……. 속으로 그의 이름을 읊조리며 한쪽 눈썹을 움찔거리곤, 그의 뒤를 따라갔다. 상황은 순식간에 정리됐다. 이러니까 별거 아니라고 하는 거지……. 짓밟힌 두 조직원을 흘긋 바라보며 전혀 걱정스럽지 않은 낯짝으로 "저런…"하고 뇌까렸다.
"아는 사이에요?"
두 사람의 대화가 왠지 친근했다. 식료품 가게의 점장이라는 자는 일반인은 아니고, 아까 돈에 관해 무어라 다퉜던 것 같던데. …돈 뜯기는 포지션?
이 도시에서의 일이라면 몰라도, 해외의 일이다보니 정보를 얻는게 그렇게 쉽지 않다며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다고 그가 여기를 비울수도 없는 노릇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소리.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걸 해야하는건 너야. 내가 전부 죽여주길 바라는것도 아니잖아?"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말한뒤 점장에게 조금 더 다가가 뭐라 뭐라 말하고 있었다. 대충 들어보니 아는 사이는 확실한듯. 새로운 정보는 있냐느니, 이것저것 말하는거보면 이 사람도 정보를 모으는 수단 중 하나인걸까.
"이 바닥에선, 일반인이란 의미가 없으니까 말이야. 이런 가게 사람이라도 다 도움이 되는거고."
나는 이 바닥에서 그래도 꽤 오래 있었으니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여전히 점장에게 뭔가를 묻고 있었는데.. 마무리가 좀 덜 됐던걸까? 쓰러져 있던 아발란치 조직원중 하나가 움찔거리더니 뒤에서 기습하려는게 보였다. 대화를 하고 있어서인지 그는 눈치채지 못한듯했고, 뭔가 행동할 수 있는건 살로메 뿐으로 보인다.
살로메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에서 직접 와주면 좋으련만 해외에 있는 엉덩이 무거운 선셋은 물론이고 온다 해도 아발란치 중 누가 연루되어 있는지 모르니 안타까운 일이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내게 주어진 일은 내가 처리해요. 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드리죠."
고개를 홱 돌리고 퍽 새침하게 내뱉었다.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을 때 그는 이미 점장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용을 귀 기울여보니 정보상으로써 활동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하기야 이곳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면 양측에서 주워듣는 게 많을지도……. 이어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끄덕. 옆에서 그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 지켜보고 있던 와중 시야로 쓰러진 조직원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살로메는 힐긋 곁눈질로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로브 속에 있는 단검을 꺼내 목 끝에 겨누려 했다.
"*표범이 자기 반점을 바꿀 수 있겠니. 그렇게 당하고도 정신 못 차리고……."
성공한다면 목 끝에 닿아 피가 흐르는 대치 상태에서, 실패한다면 그에게 밀려난 채 뒤를 잡기 위한 자세를 취하며 중얼거릴 것이다.
*A leopard cannot change his spots. : 제 버릇 개 못 준다.
살로메의 말을 듣고있던 그였지만, 새침하게 내뱉는 살로메와 다르게 그는 그게 말이 되냐는듯 머리를 긁적였다. 혼자서 다 할 수 있었으면 걱정할게 없을테니. 물론 그런뜻이 아니겠지만 그는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냐?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결론적으로 그렇게 큰 정보는 없군."
아무튼 점장과의 대화가 끝나갈때쯤, 기습을 시도하는 조직원의 움직임을 살로메가 막는것에 성공한다. 피부 겉부분이 찔린 정도에 그치긴 했으나, 이 상황에서 뭘 시도할 수 없으므로.. 라고 생각했다면 조금 물렀을지도 모르겠다. 상대는 능력자, 몸 하나 움직이지 않고 사용하는 능력도 당연히 있을 수 있었고. 실제로 조직원은 항복하는척 하는가 싶더니 목에서부터 뼈같은게 튀어나와 살로메를 노리려 했다.
"자기가 능동적으로 움직인건 좋긴한데. 이럴땐 역시 볼거없이 죽이는게 좋으려나."
다만 거기에 살로메가 대응할 필요는 없었다. 그 전에 총성과 함께 조직원의 머리가 날아갔으니 말이다. 물론 지근거리에 있던 살로메에게 피가 튀는건 어쩔 수 없었겠다만. 그것까지 배려해줄 그가 아니었다.
"아, 꼭 죽이는게 정답이란건 아니야. 정보를 얻어야할 때도 있고 이것저것 상황마다 다르니까. 자기가 알아서 해야지."
머리를 긁적이며 하는 말에 눈매가 사나워졌다. 자칫 째려보는 듯한 인상. 별 위협적은 느낌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연속으로 바보 취급하는 듯한 그의 표정에는 크리티컬!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쿠궁! 하는 표정을 지었다.
호기로운 멘트와 함께 막은 것은 성공했을 때였다. 더 움직이면 칼날이 파고들테니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가만히 있겠지- 라고 살로메는 생각했다. 죽이는게 나으려나, 로 끝난 그의 말에 눈만 끔뻑이고 있는데 곧ㅂ로 탕! 귓가를 먹먹하게 울리는 총성과 달궈진 핏방울이 뺨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쯧, 한 번 혀를 찬 살로메는 피로 더럽혀진 게 불쾌한 듯 미간을 찌푸리며 손등으로 뺨을 닦아내고 옷을 툭툭 털어냈다. 뒤늦게 상황을 살피니 뼈와 관련된 이능력자로 그것으로 자신을 공격하려 했었던 것 같다.
이곳에 오는 동안 투닥대서 그럴까, 목숨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를 해야 하는데 자존심이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 입이 썩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살로메, 조그만 냄비는 쉬 뜨거워지는 법이고, 자신은 조그만 냄비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살로메는 얼굴을 부드럽게 풀려 애쓰며 말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에 감사해요, 언젠가 반드시 보답할게요, 드레이븐. 깊은 충고도 말이죠."
미운 일곱 살처럼, 청개구리처럼 굴곤 하나 머릿속에는 이미 그의 충고를 새겨놓고 있었다. 어쨌든 저가 속한 소속의 리더임은 분명하니 말이다. 옷을 터는 것을 마친 살로메는 그에게 다가갔다.
"무슨 얘길 하고 있던 건가요? 끝났나요? 나 얼른 씻고 싶어요, 불결해서 참을 수가 없어."
그렇게 말하는 살로메는 옷깃을 검지와 엄지로 슬쩍 잡아 떨어트리며 만지면 안될 걸 만진 듯한 얼굴을 했다.
살로메의 반응이 어떻던간에 말은 놀리는듯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은 딱히 좋아보이지도 나빠보이지도 않는다. 표정만 봐서는 정말 놀리려고 한걸까? 싶기도 할 정도.
"별로, 보답은 필요없는데."
구할 수 있고, 거기에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는데 굳이 구하지 않을 필요는 없지않냐며 그는 가볍게 말했고. 따지고보면 자신이 알고 있음에도 대처하지 않은게 이유 아니냐며 적당히 넘겼다.
그 이후 상황을 정리하고, 점장에게 대충 치울 사람을 부르겠다고 말해준뒤 그는 살로메를 바라봤다. 피를 뒤집어쓴 모습이 썩 유쾌해보이진 않았지만, 어차피 이 바닥에서 구르다보면 더 한 일도 있을테니 신경쓰지 않을 모양이다. 그는 무슨 얘길 하고 있었냐는 말에 일단은 겸사 겸사 정보수집이라고 덧붙였다.
"쓸모있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말이야. 그렇게 쉽게 꼬리 잡힐리도 없겠지만."
알아내기 쉬웠으면 애초에 고생 할 일도 없었겠지. 그는 살로메도 그 정도는 알거라고 생각하며 말을 줄였다. 그리고는 알았으니 돌아가자는 제스쳐를 취하며 식료품점을 나섰다.
특별할 게 뭐 있냐며 어깨를 으쓱인다. 결국 돈이다, 돈이 있어야 뭐라도 하지. 물론 쪼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보수가 쏠쏠한 일이라는 게 매일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가끔 이렇게 다니다 보면 그럭저럭 흥미로운 일들도 생기기 때문에 하고 있을 뿐. 일 자체가 좋은 건 아니었기에. "헤, 의뢰주한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을 생판 남에게 듣는구만." 고맙다는 말에 별 소리를 다 한다는 듯 코웃음친다. 그 뒤에 어떤 식으로 나올지 한번 떠 봤으나 발문 자체가 애매모호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애초부터 애매모호하게 받아들여 넘길 생각인지 돌아오는 답은 시원찮다.
"아니, 무슨 차야. 그런 생각 안 해 봤어? 시체를 치우는 사람이 시체가 되면, 그 시체는 누가 치우지?"
응? 장의사 양반. 염습은 누가 해 주고, 누가 관을 짜 넣어주지? 관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다가 안경을 살짝 벗어, 살짝 올라앉은 먼지를 불어 날리곤 초점이 흐려져 찡그린 눈으로 그를 쳐다본다.
"요즘 다 식은 피랑 찌꺼기만 봐서 말이야. 자극이 필요한 때 같은데. 당신은 아니지? 상관은 없는데 예의상 물어보는 게 좋을 거 같아서."
그는 남성을 흘긋 쳐다본다. 하긴, 여기에서 누가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할까? 그러지 않는 사람이 태반일 터다. 보수, 혹은 취미, 협박... 그깟 시체 하나에 사명감을 가지고 임하는 그가 이상한 사람이겠지. 코웃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그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만나는 사이라 서로 간의 일에 터치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마도 그게 잘못된 모양이다. 애초에 이 팍팍한 뒷세계에서 잠깐 정신 놓고 해이해지는 게 잘못된 일이지.
“조용할 날을 바란 내가 죄인이지.”
내 이럴줄 알았지. 가면 속에서 시선을 돌렸다. 한숨도 나오지 못했다. 염습도, 관도 지금은 자신의 몫인데 누가 잇겠는지. 현실적인 면에서 봐도, 삶의 끝자락에서 봐도 참. 찡그린 눈으로 쳐다봤을 때, 그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하더니 손가락을 들어 남성의 얼굴 쪽을 가리켰다.
“점심이나 먹자고 하듯* 쉽게 할 말이 아닌 것 같소만.”
그는 관 주변에 쪼그려 앉던 무릎 위에 한 손을 올려 일어날 준비를 하려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멈췄다.
“…자극이 필요하다 했지, 혹시…… 이런 걸 바라시오?”
그는 검지를 보였던 손을 빙글 돌리고 중지를 펼쳐올렸다.
“이것도 아니라면 내 시체 치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그쪽이 치울 것이 아니면 허튼 생각 마시오.”
* Have (a) lunch. Avalanche와 발음이 비슷하다는 걸 이용한 말장난이자, 해당 종류의 말장난의 경우 조롱의 의미로 쓰일 때가 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