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715072> 자유 상황극 스레 4 :: 505

이름 없음

2022-12-31 16:48:08 - 2024-09-05 17:41:22

0 이름 없음 (kJ8MtbJ//I)

2022-12-31 (파란날) 16:48:08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344 이름 없음 (1lKBN4Ql7U)

2023-06-27 (FIRE!) 13:18:24

>>343
"그게 제 장점이잖아요! 언제 어디서나 미소를 잃지 않기."

히- 하고 길게 소리내며 이빨 드러낸 채 웃는다. 저승사자라는 직속에 걸맞게 마냥 해맑고 아이다운 웃음은 아니었지만, 어쨌건, 이름에 걸맞은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기는 하다. 아무래도 그녀는 소명 의식과 책임감에 뜻을 두지 않는 인물인 모양이지. (저승차사 또한 '인물'이라 칭할 수 있나? 이는 별개의 문제로 치고.)

당신의 한탄도 자책을 겸한 질책도 어깨 한 번 으쓱이는 것으로 가벼이 넘겨버린다. 아무렴 어때요, 자존감 높은 언사는 건강한 영혼의 척도이니 일등차사감이라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흐음."

질문의 이유 명쾌히 대답해주지 않음에 그녀가 콧소리를 흘린다. 가늘어진 눈매로 가늠을 해보니, 당신의 미응답이 까닭을 자신도 알지 못 하기 때문인지 숨기는 것인지 혹은 정말로 궁금할 뿐인지를 살핌이다. 자신이 당신을 실력 있고 훌륭한 저승차사라 평가하는 것과는 별개로 당신 말마따나 당신은 '재미없는 사람'이니. 공적으로 얽혀든다면 말 한 마디로 자신한테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는 계산이다.

"... 뭐, 별 이유가 있어서 도와주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큰 문제가 되지 않겠다는 계산 하에, 그녀는 당신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하기로 하였다. 그간의 정이 있는데 과연 나를 함부로 내칠 수 있을까? ... 하는, 신뢰에 기반한 결론이다.

"그냥... 기특하잖아요? 착하고, 배려심 깊고, 사주팔자도 살펴보니 멀쩡히 살아남는다면 분명 이 세상을 더 옳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렇게나 젊은데. 그래서 그냥...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이 없으니까......"

육교 난간에 팔꿈치 괴어 턱을 받친다. 부가 설명을 위하여 자유로운 남은 팔로 이리저리 손짓을 해보다가 이내 그만둔다. 축 늘어진다. 당신이라면 알 것이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흔히 볼 수 있지 않다는 것을.

"... 그것 뿐이에요. 죽을 날 되면 제가 알아서 데려갈게요."

누가 보아도 불만 가득한 태도로 그리 말한다.

345 이름 없음 (hRB0kRkR9g)

2023-06-27 (FIRE!) 16:02:32

>>344
"이미 80억명이나 있어. 이 세상에는."

후배의 동요에 사라졌던 평정이 조금은 되돌아온 것일까, 그녀는 옷깃을 만지작거리던 손을 조용히 주머니에 넣고서 아까보다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사수의 흔들림에 힘을 얻다니, 사수로서 실격인가 하는 잡상을 조용히 흘려보내면서.

"그 아이가 아니어도, 세상을 더 괜찮은 곳으로 만들 기회를 가진 사람들은 많아. 옛날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이 말은 그녀의 안에서 나오는 말은 아니었다. 하늘을 보며 읊는 그 목소리는 아마도, 다른 저승사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모사하는 것 치곤, 무미건조한 목소리는 아니다.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한 듯, 도전적인 의문을 애써 감춘 그 말은 그렇게 설득력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수명이 끝난 생명을 거두는 이유는 그게 옳거나, 더 나은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 아니야. 몇분만에 잊는구나. [살아있는 존재에게 깊이 관여하지 말 것]."

그 인용의 어색함을 스스로도 느낀 것일까, 그녀는 곧 주머니에 넣었던 손을 다시 꺼내어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 두었다. 손보다 살짝 큰 한 권의 노트를 잡은 채로. 당신의 눈에도 익숙할 그 노트는, 명부다.

"이 세상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것이고, 우리와는 상관없어. 그저 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저승사자인 거야. 알잖니."

이윽고 그녀는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서서히, 비스듬히 내려 당신을 마주보았다. 가장된 차가움 아래 불안에 떨리는 눈이 당신을 직시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그녀는 다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이내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만두고 말았다. 흘러나오던 문장이 중간에 끊어지고 말았지만, 뒤로 이어졌어야 할 말이 무엇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혹시, 내가-."

그 아이를 찾아간다면.

346 이름 없음 (teqgJTu61A)

2023-06-27 (FIRE!) 16:53:51

"아, 안녕, 아니, 어서, 어서오세요."

세상에 이렇게 거짓말같은 일이 또 있을까. 아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버린 문장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하교하자마자 앞치마를 뒤집어 썼다. 꽃집을 하는 부모님을 돕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자주 그래왔는데,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그러니 손님맞이는 두말할 것도 없고 일처리도 똑부러진 이 아이가 너무할 정도로 말을 더듬어버렸지. 남몰래 좋아하는 아이를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는 건 그런 일이었다. 아이는 속으로 오늘따라 엄마도 아빠도 무슨 볼 일이 있다고 어딜 나간거냐며 투정소리를 내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어 보였다. 말실수하면 안 돼, 긴장하지 말자. 좋아하는 걸 들키면 안 돼.

"무슨 일로 오셨어요?"

내가 바로 짝사랑 아티스트다! 흘러나온 목소리는 태연하고 빙긋 휘어진 눈매도 화사하니 아까 전 말 더듬은 이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기만 하다.

347 이름 없음 (nUgZ.gis82)

2023-06-27 (FIRE!) 17:46:14

>>345
낮게 웃음소리를 흘린다.

"그거, 사수가 생각한 말 아니죠?"

안 어울려요. 당신을 놀리듯 노랫말 비슷한 운율을 붙이며 말했다. 차라리 교과서를 읊는 새파란 꼬맹이가 더 깊이 감정을 담겠다며 ㅡ 아, 교과서가 탄생하기 전 시대 사람이셨나? ㅡ 고개를 설레설레 젓더니.

"말마따나 인구가 80억이 넘고 좋은 사람들 또한 그만큼 늘었다 해도, 세상을 망칠 인간이 그에 반해 줄어든 건 아니에요. 개중 인간 죽일 인간을 막을 수 있는 억제력이 눈 앞에 있는데도, 천명이 그러하다며 저승으로 데려가면. 그러면 억울하게 죽을 사람은 어쩌죠?"

그러고선 밝은 톤으로 덧붙인다. 하기야 죽는 사람이 끊임없이 있어야 우리 저승차사도 밥벌어먹고 살겠네요! 하냥 해맑은 농담이라기보다 해학적으로 비꼬는 탄식에 가깝다.

여자는 손가락 하나로 당신이 든 명부를 아래로 내린다. 이런 것에 눈길 두지 말라는 듯이.

"저는요.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이 곳에 들어왔어요. 모든 기억과 신념 잃고 윤회를 반복하며 마냥 구천에서 멍청이처럼 떠돌기 싫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여기를 고른 거예요. 그것밖에 내겐 선택지가 없었으니까."

맑은 둥글레차를 닮은 눈이다. 그것이 지금 당신을 향해 번들거린다. 아무것도 겪지 않았기에, 모든 걸 꿈꿀 수 있는 눈.

"그러니 나는 의무에 얽매이지 않아요."

미소 짓는 입꼬리와 함께 숨을 길게 내뱉는다. 연초를 입에 물었다면 흰 연기가 꼬리처럼 따라나왔을 터다.

"나를 시험하지 마세요, 사수. 말씀드렸잖아요? 죽을 날 되면 제가, 알아서, 데려갑니다."

그녀는 이리 말했다.
나는 이미 마음을 굳혔으니, 당신이 나를 돕고 싶거든, 나와 그 아이의 만남을 방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태도를 확실히 정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 그쵸?"

방실방실 웃는 낯이 참 평소와 다를 바 없다.

348 이름 없음 (fVWNcUH.1Q)

2023-06-27 (FIRE!) 18:12:52

>>346 "어? 너 우리 반 ㅇㅇ 아냐? 여기서 다 보네?"

모른 체 해줘야 했을까? 그러나 말은 이미 튀어나가 버린 뒤였다. 어찌나 놀랐는 지 말을 버벅거리기까지 하는 꽃집 점원이자 같은 반 친구를 보며, 진은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학교에서 뭐 청소년 유해업소같은 것만 아니면 아르바이트하는 걸 딱히 잡지는 않으니 아는 체 정도는 해도 상관없...겠지? 그래야 할텐데. 뭉게뭉게 떠오르는 기우를 애써 떨쳐낼 찰나, 무슨 일로 왔냐는 물음에, 놀라는 바람에 잠시 뒷전이 되었던 제 용건이 생각나, 그는 명랑한 투로 대답했다.

"아, 꽃다발 좀 사려구. 혹시... 히말라야 푸른 양귀비 있어?"

찾는 꽃을 밝히는 진의 목소리는 점차 자신없이 기어들어갔다. 생소한 종이라고 알고 있는데... 과연 있을까? 학교 앞 꽃집이라고 하면 보편적으로 유명한 꽃들이 많을 것 같단 말이지. 이것도 편견이긴 하지만. 그래도 같은 반 친구가 난처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진은 씩 웃어보이며 덧붙였다.

"없으면 다른 파란색 계열 꽃 예쁜 거 추천해주라! 기왕이면 꽃말도 좀 괜찮은 거 있을까? ...아, 최애 줄 건데, 파란색 꽃 좋아한댔거든."

...뭐, 걔가 최애 바이올린 주자는 맞으니까 상관 없겠지. 공연 응원 선물이라는 대외적인 목적에도 맞고. 꽃말이라고 해도 목적을 안 알려주면 추천하기 애매발 텐데, 제법 완벽한 핑계였어. 내가 자연스럽게 말했는지가 문제긴 하지만. 제 거짓말 아닌 거짓말이 어색했어도 적당히 넘어가주길 기도하며 그는 대답을 기다렸다.

349 이름 없음 (fVWNcUH.1Q)

2023-06-27 (FIRE!) 18:13:19

>>348 애매발 -> 애매할

350 이름 없음 (hRB0kRkR9g)

2023-06-27 (FIRE!) 19:55:39

>>347
자신의 손에 닿은 차가운 손가락의 감촉 때문일까,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빠져 그녀는 명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반사적으로 난간에서 허리를 떨어뜨리고 몸을 아래로 숙이면, 어렵지 않게 육교 위로 떨어진 명부에 손이 닿지만, 어쩐지, 겨울바람에 뻣뻣해진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는 것만 같아 그녀는 멍하니 그 자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지만, 생각이 있기는 하구나."

순 멋대로 행동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언어가 되기 직전의 구체화된 생각이 입 속을 돌았지만, 그녀는 입을 열어 말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멋대로 동경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녀의 입가에 비틀린 미소를 만들었다. 어설픈 비유이지만, 선을 따라 걸어온 우등생이 자유롭게 사는 낙제생을 자꾸 훔쳐보듯이, 이 실없는 후배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고 그녀는 생각해왔다. 하지만, 더 그 속내를 엿볼수록 오히려 씁쓸함만 더해지는 것 같았다.

"때가 되지 않은 생명을 거둘 생각은 없어. 네가 시간에 맞춘다고 말했으니, 내가 끼어드는 건 월권이겠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부사수인 후배의 방만한 일처리를 교정하기 위해 개입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원래 그러기 위해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만 빼면, 그녀의 말은 분명 원론이었다. 그 원론을 지키는 것이, 그녀로서는 마지막 자존심이었을까.

"그런데, 하나만 물어봐도 되겠니? 여전히 네가 늘어놓는 변명들, 다 믿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추악한 생각일지는 몰라도, 그 아이의 선성을 믿어서 다가갔는 말을 오롯이 믿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 아이가 사람을 구할 사주를 타고난 게 아니었더라도, 너는 그 아이의 운명에 개입했으려나?"

351 이름 없음 (pQDwuiVJCU)

2023-06-27 (FIRE!) 20:08:26

>>348

"아, 응! 안녕, 진아."

같은 반 친구 이름은 보통 다 기억하겠지, 그치? 그러니까 이름 한 번 불렸다고 들뜨면 안 돼! 아이는 한 때는 제 이름이 투박하다고 생각했었다. 목씨 성에, 연꽃 연 자를 쓴 단 두 음절짜리 이름 소리가 입 안에서 구르는 느낌이 별로였다. 꽃집 아이에게 목련이란 이름을 지은 것도 장난스럽고, 그러니 이름 불린다고 이런 기분이 든 적은 없었다. 아이 귀에 그렇게 달가운 단어는 처음인 것만 같았다. 그탓에 네 이름도 한 번 입에 담으면서 웃어버리는 인사가 환히 반갑다. 이렇게 손까지 흔들면서 인사하지 않아.

"히말라야 푸른 양귀비?"

꽃 이름을 듣자마자 아이 표정이 난처해진다. 이름부터 보라, 히말라야가 붙었다. 히말라야를 원산지로 하는 꽃이 국내에서 나기 쉬울 리가 없다. 구매처가 완전히 없지는 않겠지만 구하기 까탈스러운 건 같아, 꽃다발을 구한다는 건 당장 오늘 내일 선물을 한다는 뜻일텐데 구할 시간이 촉박했다. 좋아하는 아이를 실망시키는 일은 어떤 방향으로도 싫어,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입술을 앙 다물었다. 네가 먼저 다른 꽃도 괜찮다 해주어서 참 다행이다.

"네! 안쪽에서 금방 찾아올게요."

아이는 바로 가게의 안쪽으로 향했다. 딱히 멀어지진 않아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는 훤히 보였다. 바로 앞에서 좀 멀어진답시고 말을 남기더니, 손에는 속속들이 꽃이 만개한다. 장미, 튤립, 수국, 카네이션, 한 송이로 모자르면 두 송이, 한 줄기도 쥐니 손에 그러모아진 꽃들은 푸른 다발이다. 다른 한 손에는 델피니움, 옥시, 용담까지. 그렇게 푸름을 두 손 가득 모아오고서 종알종알 설명을 늘어놓는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 사랑의 맹세,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영원한 행복, 꽃과 순서대로 맞추어 보여주더니 이제는 다른 손 차례다. 냉정, 날카로움, 당신이 힘들 때 나는 사랑을 느껴요. 왜 굳이 두 손으로 나누었나, 보기에는 예쁘지만 꽃말이 좋지 않은 꽃들이었지.

"마음에 드는 꽃이 있을까요? 꼭 예쁘게 만들어 드릴게요. 아니, 만들어줄게!"

왔다갔다 오가는 말투 속, 마음은 오가지 않아서 그러모은 꽃들을 널 보고 핀 듯이 잘 쥐고 있다.

352 이름 없음 (.JKZbKc43M)

2023-06-27 (FIRE!) 22:36:29

>>351 아아, 역시 있을리가. 난감하게 할 뻔 했네. 오늘은 급하니 다른 파란 꽃으로 하고, 히말라야 푸른 양귀비는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말이지. 그럼 오늘은 히말라야의 히 자도 꺼내지 않고 있다가 생일날 놀래켜버릴까? 아, 꼭 생화가 아니더라도 원데이 클래스같은 데서 다른 걸로 비슷하게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지도... 이런 저런 궁리에 잠겨있자니, 꽃을 가지러 안쪽으로 갔던 연이 양 손 가득 다양한 푸른색 꽃들을 들고 돌아와서는 하나씩 설명해주었다. 엄청 능숙하네, 하루이틀 일해본 게 아닌가봐. 학기중에 알바하려면 빡셀 텐데 대단하네. 감탄도 잠시, 진은 설명에 집중하려는데, 장미와 튤립의 꽃말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자, 진은 괜히 뜨끔하는 마음에 머리카락 속으로 홧홧해지려는 귀를 감추며, 간간히 맞장구를 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음, 그렇구나. 다 예뻐서 고르기 힘들긴 하다. 근데 카네이션이 파란색인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신기하네."

일단 꽃말이 좋지 않은 건 패스. 고백성 꽃말도... 곤란하고. 중요한 날에 고백 공격을 할 수는 없잖아. 그럼 수국 아니면 카네이션이네. 둘 다 들어가도 예쁠 것 같은데... 모처럼이니까 지르지, 뭐. 당분간 비자발적 다이어트를 하게 될 것을 예감했지만, 마음은 후련했다. 진은 고민하느라 진지해진 얼굴을 풀고 도로 서글서글해진 낯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수국하고 카네이션으로 줄래? 포장지는 하얀색이면 좋을 것 같아."

353 이름 없음 (.vqIJJ3kOo)

2023-06-28 (水) 20:29:20

>>350
떨어진 명부, 그걸 줍지 않고자 하는 당신. 명부를 떨어뜨리고자 의도한 건 아니었으나, 가죽 자켓을 입은 여성은 손을 뻗어 그를 대신 주워주는 대신 자켓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기를 택했다. 당신이 말을 잇기를 기다린다.

당신의 속이 어찌 흘러가는지는 모른다. 사람의 운명 알 수 있음이 사람의 속내까지 속속들이 알 수 있음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기다린다. 그 정도의 시간은 감내해줄 수 있는 사이었다. 우리는.

"... 너무해요, 사수. 제가 평소에 뇌를 빼놓고 다니는 작자처럼 보였다는 말이에요?"

뭐, 부정할 수는 없다. 제 행실이 가벼움을 알기에 투정은 가볍게 끝낸다.

"고마워요. 역시 우리 사수님은 '우등생'이시라니까."

당신의 대답이 자신한테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는지 당신은 알까? 나의 월권 행위를, 중대한 실책의 가능성을 눈감아 넘어주겠다는 것이 얼마나 나를 안심시키던지. 손바닥에 났던 땀을 자켓 주머니에 두고 나온다.
아이가 죽는 그 날에 휴가라도 내어 나의 일처리를 모른 척 하라 덧붙이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내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무사하겠지.

"......"

갈색 눈동자가 당신을 가만히 응시한다. 당신이 이런 질문을 한 까닭을 가늠하기 힘든 탓이다. 아니... 애초에,

"... 변명이 아니라 제가 진짜 진심으로 지금까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큰 결심하고 털어놓은 건데요?! 와, 진짜, 배신감! 지금까지 제가 한 말 안 믿고 계셨던 거죠! 그쵸!!"

충격받았다고 가짜로 우는 척을 한다. 나름대로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한 노력이요, 그녀의 천성대로 한 행동이기도 하다. 훌쩍훌쩍, 눈물 닦는 시늉이 어느정도 끝났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개입할 이유가 없었겠죠. 지금까지 그러했듯이?"

장난기를 채 다 없애지 않은 채로 진심을 내뱉었다.

354 이름 없음 (YGq71Lc2P2)

2023-06-28 (水) 22:38:19

>>353
길다기에도, 짧다기에도 적절치 않을 만큼 미묘한 시간이었다. 이윽고 당신의 사수는 다시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감정의 흔적이 잦아든 눈으로 당신을 응시했다. 익숙한 표정, 여느 때 줄곧 보아 온 냉정한 선배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 냉정한 얼굴에 드물게도, 어색하긴 해도 나름 공이 들어간 미소가 드러났다.

"고마워."

그 말, 내게 아직 기회가 있다고 받아들여도 되려나.

두 걸음 정도, 그녀의 모습이 뒤로 물러났다. 그만큼 표정도 밤의 어둠에 가려 흐릿해졌다. 직전의 미소도, 사의도 사그라들고, 이윽고 어둠에 기대어 만든 평정으로 그녀는 다시 선배이자, 사수로서 경고의 말을 남겼다.

"그래도, 적당히 해줘. 위에서 감사 나오면 곤란해지니까. 지금까지 커버해준 적도 없지만, 위에서 직접 확인하는 건 더더욱 내가 손 못대."

보고한 적도, 아직 한번도 없었지만.

이윽고 그녀는 몸을 돌렸다. 마천루의 빛에 간신히 드러나던 싸라기눈보다 창백한 얼굴도 머리칼에 가려졌다. 머리카락도, 코트도, 바지며 구두도, 이제는 정말 어둠의 일부인 것처럼 검은 뒷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당신에게 보여진 그 검은 뒷모습은 어둠 속의 묘한 요철이었다. 무언의 감정이 담긴.

"눈 온다."

아까부터 그것을 보고 있었던 것인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겨울밤의 적막이 희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하얀 겨울의 색과 어울리지 않는 검은 빛도 서서히 밤의 저편으로 멀어져가기 시작했다. 소리도 없이 그녀는 천천히 육교 끝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느 새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빛이 육교 바닥에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그 하얀 색 사이로 여전히, 당신의 발치에는 명부의 검은 표지가 아까와 같이 놓여 있었다.

355 이름 없음 (iKt2QCGf8U)

2023-06-29 (거의 끝나감) 09:43:28

>>354
// 흐름 상 다음 답글로 마무리지으면 될 것 같아. 다음 답으로 막레 해도 될까?? 너참치가 더 잇고싶으면 새로운 사건 준비해올 수도 있고!

356 이름 없음 (eb6P4frLPc)

2023-06-29 (거의 끝나감) 10:38:26

>>355
//ㅇㅇ!

357 이름 없음 (wIJ1Ufo.Rk)

2023-06-30 (불탄다..!) 15:01:55

아⎯특수진압반 녀석들은 도대체 뭐가 문제야. (볼펜으로 머리를 벅벅 긁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푹 찔러둔 채 걷는 자세가 불량하다. 불만의 대상으로 보이는 특수진압반, 그들이 누구인가 하면 세상에 초능력이란게 난 것부터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초능력이 세상에 나타났다. 초능력으로 좋은 일만 하면 참 좋을 일인데, 악용해서 범죄를 일으키는 놈들이 나타났다. 그럼 그 녀석들을 잡아넣겠다는 초능력자들도 나타날 것이다. 근데 일반 시민이라는 신분으로 날뛰게 두자니 이쪽도 저쪽도 골칫덩이라서, 나쁜 놈들이야 나쁜 놈들이고, 나쁜 놈들 잡는 놈들은 경찰이니까⎯특수진압반이라는 것이 생겼다. 한 마디로 초능력 쓰는 놈들만 잡는, 초능력 쓰는 경찰들이다. 좋은 일 하는 사람들한테 왜 불만이냐면야, 이 사람은 특수지원반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좀 얌전히 좀 합시다, 예? 초능력 쓰는 냥반들 화려한 거 알겠다만 뒷처리하다 죽겠다고요. (싸우는데는 하릴 도움 안되는 초능력이래도 치유는 치유. 쓸모는 넘쳤다.) 내가 병원을 차렸으면 지금 떼부자일걸, 쯧. (오늘도 현장에서 새빠지게 지원 나와 구르고 구른 탓에 피곤함에 찌든 모양이다. 그러다 당신과 눈이 마주쳤다. 매우 어색하게 눈길을 피하고 냉큼 바닥을 쳐다본다.) 아이쿠, 누가 길바닥에 쓰레기를! (어색하다.)

358 이름 없음 (xcQvDcpX4k)

2023-06-30 (불탄다..!) 23:26:23

>>356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어색해하는 상대를 향해 반쯤 갈라진 목소리로 머쓱하나마 넉살좋게 인사를 건넨 것은, 크고 둥글둥글한 체격을 가진 서글서글한 인상의 여성이었다. 한갈리로 묶어내렸던 것으로 보이는 검은 곱슬머리는 곧 풀어지기 일보직전이었고, 구겨지고 군데군데 올이 풀어진불편해보이는 제복 오른가슴팍에 달린 명찰에는 특수진압반 반장 도라희 라는 직함이 새겨져 있었다. 애석하게도 상대의 푸념을 듣고 말았으나, 화를 낼 의향은 없는지, 여성, 도라희는 살갑지만 예의바른 투로 말했다.) 저희 뒤처리 해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시지요? 다들 살살하고는 싶은데 적당히하다가 범죄자를 놓칠까봐 매번 신세지게 되네요. 저희도 부상자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할 테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밖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 특수진압반 사무실로 와주시고요.

359 이름 없음 (Y/8x4boSIc)

2023-07-01 (파란날) 00:06:19

아이고 앵커 잘못달았네 >>356 -> >>357

360 이름 없음 (V7SDzxJOgA)

2023-07-01 (파란날) 13:50:56

>>358
아, 예, 안녕하십니까. 특수지원반 선우 산입니다. (주울 것도 없는 길바닥을 보며 어색한 연기를 하는 건 그만두었다. 부러 딴청 피우러했던 게 오히려 더 머쓱함을 불러왔고, 뒷목을 쓸어내리며 멋쩍어하다가도 예를 갖춰 바른 인사를 한다. 짜증과 불만이 드러나던 목소리가 헛기침 한 번에 수그러들었다. 말투도 삭 바뀌었고. 상대의 차림을 보니 여태 궁시렁거렸던게 좀 낯부끄럽기도 하고. 누가 들을 줄 알았으면 안 그랬을 거다, 진짜로. 원래 보는 눈 듣는 귀 없을 때는 나랏님 욕도 하는 거 아닌가.) 아닙니다, 일선에서 제일 고생하시는 분들한테 못할 소리 했습니다. (입 발린 말이라거나 직위에 눌렸단들 할 말 없을 만큼, 본인도 제 태세 변환이 우스워서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 했다.) 도움……….…. (다시 길바닥을 빤 내려다보더니, 허리 숙여 보도블럭 사이 핀 꽃을 똑 꺾는다. 입바람으로 호 불어 먼지를 터는 듯 굴더니 곧장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핑 생기가 도는 것도 같고.) 도움은 제가 드려야할 거 같습니다만. (손을 내민 이는 멀뚱멀뚱 당신을 바라본다.)

361 이름 없음 (D/F6pYCkS2)

2023-07-01 (파란날) 18:19:41

>>360 아, 소개가 늦었네요. 특수진압반 반장 도라희라고 합니다. (그냥 지나갈 걸 그랬나? 피차 퇴근길일 텐데. 아니다, 꼴이 이래서 모른 체 했어도 애매하긴 마찬가지였겠지. 저와 마주치기 전과는 달리 수그러든 태도로 인사하는 산을 보며, 자기소개로 화답했다.) 아이고, 오죽 고생스러우시면 그러셨겠습니까, 요즘 부상자가 늘어난 것도 사실인데요. 괘념치 마십쇼. (퇴근하는 사람 오래 붙잡아두면 안 되지. 나도 얼른 샤워하고 옷 갈아입고 마눌님이랑 공주님한테 부비고 싶다구. 그런 상념과 함께 손사래를 치며 대답하던 라희는, 다음 순간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아니, 저 사람. 흙 먹... 아니 꽃을 먹는다? 길가에 핀 걸? 요즘은 길가에 난 채소도 중금속 나온다고 안 뜯는데, 저거 먹어도 돼...?! ...아, 아니다. 저 양반 능력이 해독같은 건가보지 뭐. 부럽다, 우리 공주님이 쑥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그 능력이 있으면 길가에 핀 쑥도 정화해서 갖다가 뭔가 맛있는 거 해서 바칠 수 있을 텐데. 뭐, 그냥 시장 들러서 쑥이나 쑥인절미를 사가도 되지만. 놀란 티가 역력했을 표정을 애써 수습하는데, 산이 뜻밖의 말을 건네며 손을 내밀어왔다. 도움? 내가? 여기서? ...아, 내 꼴이 상당히 부상자같겠구나. 퇴근했거나 퇴근중이실텐데도 성실하시네.) 아이고, 아닙니다. 몰골이 이래서 그렇지 치료는 확실히 받은 상태입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퇴근 길이신 것 같은데 제가 너무 오래 붙잡아뒀네요.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습니다.

362 이름 없음 (MpEgMW3xe2)

2023-07-15 (파란날) 03:19:20

칼은 쓸 줄 아나?(고급스러운 재질의 흰 천 보따리에서 팔뚝보다 살짝 긴 길이의 단검을 한 자루 꺼내 당신에게 던져 준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사제는 구마 중에 날붙이를 만져서는 안되니까. 가지고 있다가 위험하다 싶으면 쓰되, 휘두르지는 마. 축성된 물건이니까.
(불안한 미소와 함께 혀를 날름거리고는, 이번에는 낡은 헝겊 주머니를 꺼낸다.)미안한 소리지만 이 근방은 소금이 귀한 곳이란 말이지. 이것밖에 못 구했으니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어. 중심원만 소금을 쓰고 외곽과 내부는 편법으로 할 수밖에.(주머니를 살짝 기울여 소금을 조금씩 뿌려 원을 그리기 시작한다.) 성흔은 아니지만, 내 피에 기름부음 좀 해주면 의식용으로는 쓸 수 있겠지. 이럴 때는 성유보다 성수가 신통한 법이지만, 물로는 오망성을 못 그으니까. 수상진을 사용할 여건은 더더욱 아니고.
그래서 그 칼, 휘두르지 말라고 한 게 방금 전이기는 한데, (당신 쪽을 향해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는)살짝만 찔러 줄 수 있을까? 아주 얕게.

363 이름 없음 (k8LvbicPWg)

2023-07-16 (내일 월요일) 22:01:41

>>362

그, 그런 규칙이 있는 거군요! 죄송해요. 아직 머릿속에 제대로 들어온 게 없어서… (이어지는 자책. 허둥지둥하더니 단검을 꽉 붙들고서 요만큼도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방의 불안한 미소를 발견한 뒤에서야 조금 움직인 듯 만 듯. 안절부절못하다가 소금으로 그려지는 원의 시작과 끝을 동그란 눈으로 좇는다.)아무리 선생님이 편법으로 하셔도 제가 공들여 한 것보다는 훨씬 그 효능이 좋겠죠. 암요, 그렇고말고. 애초에 저 같은 건 왜 태어나서 이런 일에 종사하고 있는 걸까요. 선생님도 따라오지 말 걸 그랬어. 죄송해요 선생님…………(중얼중얼중얼) 아! 네, 기름 부음. 네에. 알겠어요. 죄송해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서…… 윽. 아프실 것 같지만, 그래도 최대한 안 아프게 해볼게요. 죄송해요…… (연신 무언가에 사죄하더니 덜덜 떨리는 단검이 상대방의 손바닥 앞에 도래한다.)아주 얕게. 아주 얕게. 아주 얕게…… (단검이 지나간 자리에 선명한 핏방울들이 일직선으로 터져 나온다. 긴장. 불안. 염려. 등으로 단검은 꽤 깊이 들어갔을 수도 있겠다.)아, 아이고…

364 이름 없음 (2kzHBJdS3k)

2023-07-17 (모두 수고..) 03:10:42

>>363

흡.(칼에 찔린 순간 짤게 숨을 들이쉬고는, 찡그린 표정 그대로 피가 흐르기 시작하는 손바닥을 마룻바닥에 댄다.) 자책하는 것 치고는 솜씨가 좋은데. 날에 묻은 피는 닦지 말고 털어내게.(그대로 손을 움직여 소금의 원 안쪽에 피의 원과 문양을 그려낸다. 파상풍이 걱정되는지도 않는지.)
아, 그리고, 꼴에 꼰대짓 할 생각은 없지만 말해두겠는데, 마음 좀 편히 먹으라고. 그게 가장 중요하니까.(문양이 완성되자, 손을 떼고 보따리에서 작은 유리병을 꺼낸다.) 자기비하할 필요 없어. 불안한 건 알겠지만, 적어도 무지하거나 서툴러서 일을 망칠 거라는 걱정 따위는 전혀 할 필요 없는 일이니까. 결국에는 이런 요식들,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야. 정말 핵심이 되는 의례였으면 편법으로 했을 리 없잖아. 그런데 그거 아나? 구마 예식을 하다 보면 이런 과정의 8할은 약식으로 넘기는 게 일상이란 말이지.
(병 속의 기름을 피의 원진 위로 조금씩 흘려내며 마저 말한다.)요컨대, 중요한 순간에 가장 성패를 좌우하는 건 이런 준비절차보다도 나나 자네의 정신이라는 거야. 지금 하는 준비는 그저 부담을 보조하기 위한 준비일 뿐이고. 그러니까 절차를 다 망치는 한이 있어도 일단 걱정은 내려놓으라고. 영혼이 가장 준비되어 있어야 하니까.(그러고는 입술을 깨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내심 불안을 느끼는 것처럼.)
(이윽고, 기름을 다 따라낸 다음에서야 피 흐르는 손바닥을 지혈하기 시작하며 말한다.)거울을 하나 부탁했었는데, 마련해 왔나? 없으면 물동이를 대신 써야겠고. 용도는 알고 있지? (씨익 웃어 보이며)긴장도 풀 겸, 직접 해봐.

365 이름 없음 (AjH6eNqxd6)

2023-07-17 (모두 수고..) 22:16:14

>>364

(상대방이 내는 음성 하나하나에 심장은 쪼그라들었다 느슨해지기를 반복했다. 날에 묻은 피를 마주하는 게 두려웠지만 우여곡절 끝에 털어내는 것 성공!) ……선생님은 정말 잘 참으시는 것 같아요. 뭔가, 뭐랄까, 존경심이 막 샘솟고 그러네요…… (중얼중얼중얼중얼) 마, 마음을 편히! 넵! (등이 꼿꼿하게 펴지면서 탁하던 눈동자에 약간의 빛이 기어들어 간다. 꼼질대는 손가락.)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까 위로되고…… 심장도 가라앉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중요한 건 영혼. 중요한 건 영혼. (둥둥 떠다니는 기름을 보며 자신의 영혼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젠장! 부정적인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만약 이번이 망한다면 십중팔구 기름기만 가득한 제 영혼 탓입니다. 제 탓이오. 제 탓이오… 마음속으로 가슴 100번 두들겼을까, 지혈하는 선생의 모습에 서글퍼진다.)거울은 여기 가져왔어요. (까먹지 않고 잘 챙겨온 본인에게 1초 뿌듯. 폭설이 내린 새하얀 머릿속은 답이 없다.)아…………… (삐걱대는 움직임) 네에, 거울이, 거울은 이렇게 하던 거였나…… (거울을 피로 된 원진 안에 둔다. 이게 아니면 어떡하지? 이제 막 선생이나 빨빨 따라다니는 초짜가, 그것도 걸핏하면 공황에 빠지는 초짜가 제대로 뭘 알겠는가. 파리해진 얼굴이 추운 듯이 떨면서 애절한 눈빛으로 선생을 본다.)

366 이름 없음 (roNqt1V3ec)

2023-07-17 (모두 수고..) 23:54:27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마주친 것이 호랑이 영물일지어도 별 다를 바는 없을 테다.

당신 눈 앞의 남성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당신을 훑어보고 있다. 방금 식사한 것을 과시하듯 흰 소복은 핏기에 눅진해져 그의 상체에 흥건히 달라붙어 있었다. 검은 호랑이 귀 부드러운 머리 위로 솟아있으니, 야수같은 눈동자와 더불어 인간같은 인두겁에 이질감을 더해준다.

"아가야," 묵직한 저음이 달빛 받아 서늘히도 들린다. 그 뒤로 검은 호랑이 꼬리가 옅게 살랑거리는 것이, 가만 서 있는 그와 조용한 풍경 속 시선을 끈다. "이거 본적 있니."

그가 품 속에서 꺼내든 것은 몇 달 전 실종되었던 당신의 소중한 사람의 장신구, 혹은 애착하던 물건이였다.

367 이름 없음 (63bxlS.MAc)

2023-07-18 (FIRE!) 14:43:28

>>365

(조용히 지켜보다가, 슬며시 손을 뻗어 놓여진 거울의 방향만을 약간 돌린다.)좋아, 잘했어. 빼는 것 치고는 이론에도 모자람은 없군. 이대로만 하자고. 어께 좀 펴고.(계속 격려해주지만, 한편으로는 당신의 태도가 걸리는지 못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러면, 일단은...... 준비 끝이군. 우리 신도분께서는 이 진 위로, (천장을 올려다보며)2층에 계시니, 구마 예식을 행하면 '그것'만 여기(거울을 가리키며)로 내려오고, 그 다음에는 자네가 저거 들고 32교구에 전달하면 되는 거야. 어려운 일 아니지?
그렇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게. 내가 잘 참는 것 같다고 그랬나?(갑자기, 대뜸 지혈된 손바닥을 당신을 향해 바짝 들이밀어 보인다. 말라붙은 피로 빨갛게 물든 손바닥이다.) 명심해. 몇시간 뒤면 뼈져리게 느낄 테지만, 물리적인 상해나 위협은 아무 것도 아니야. 악마는 자네가 가장 약할 때, 자네의 귀, 머리, 마음 속에서 일을 시작하는 법이지. 예식의 다른 모든 부분은 내가 도와줄 수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어찌할 수 없어. 그런데도, 만약 정말로 자신이 없다고 한다면...(말을 삼킨다.)
...일단은, 햇빛이 충분히 들 때까지 시간이 남았어.(진작에 박살내 둔 서쪽의 창문과 벽을 가리킨다.) 밥이나 좀 들면서 마음을 다스려 보자고.(하얀 보따리에서 제병과 포도주를 꺼낸다.)

368 이름 없음 (lLXhKCPZPE)

2023-07-18 (FIRE!) 18:25:22

>>366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옛 선조들의 말씀이 틀린 것 하나 없다지만, 지금으로써는 어쩌할 도리 없이 그것조차 의심스럽다. 여성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눈 앞의 남성을 침묵과 함께 응시한다. 저고리 품 안에 숨기고 있는 단도만이 그녀를 지켜줄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진다.

달빛 아래 서 있는 그는 인간이라고도 호랑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모양새였다. 비린 핏내음에 어질거리는 정신을 붙잡고 옅게 살랑거리는 흑호의 꼬리를 애써 무시하려 하며, 그녀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삼켜낸다.

"......그거, 어디서 나셨는지요."

그가 보여주는 갓끈 역시 그녀에게 거센 감정의 동요를 불러일으켰지만, 그 기저에 의심 어린 분노 역시 조금씩 스며드는 것 치고는 스스로도 놀랄만큼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의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간접적인 대답은 되었을 것이다.

369 이름 없음 (C.8V2rWtlE)

2023-07-18 (FIRE!) 20:15:13

>>368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상반되게 꼬리의 움직임은 부드러웠다. 목표물을 꼬셔내어 덮치려는 양 노련한 움직임도 여성의 답변에 느려지다 이내 우뚝 멈춘다. 말뚝 박힌 것 마냥 서 있는 여성과 비슷하게도 그의 움직임은 고요하다.

"내 꼴을 보렴, 잡아먹은게 뻔하지 않니."

키득이려는 양 입꼬리는 씩 당겨져 있으나, 목소리는 장난기 한 방울 없이 삭막하다. "알면서 왜 그래." 갓끈에 병균이라도 드글한 것 마냥 엄지와 검지만으로 위태로이 붙들고 있다. 여성을 응시하던 초점은 곧 동공이 축소된다.

"설마, 걔가 살아있다고 하면 믿을 거니?"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는 인간 성대에서 나올법하지 않다. 조용한 밤 공기 깔아뭉개려는 듯 한 소리에 그의 귀는 납작 눕는다.

370 이름 없음 (QAZnnSKnxc)

2023-07-18 (FIRE!) 20:34:41

>>367

(낯을 점령하고 있던 먹구름은 잘했어— 한 마디에 쓸려내려간다. 눈꼬리가 기분 좋게 곡선을 그린다. 헤헤. 천치들이나 할 법한 웃음도 흘리면서 다시금 상체를 바로 세운다.)감사해요… 거울은 맡겨만 주세요! (상대방보다 한 박자 느리게 천장을 쳐다보고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감이 1시간 이어진 적은 드물다. 먹구름이 조금씩, 몰려온다. 갑자기 나타난 빨간 손바닥이 그것들의 행군을 저지한다. 보고만 있어도 자신의 손바닥이 쓰린 것만 같아서 시선을 아래로 박았다.) 유약하고 연한 부분만을 노리는 악마들은 참, 이기적이네요…… 저는 정신도 남들보다 물렁거리고 운동 같은, 신체적인 부분도 서투르지만…… (상대방을 정결하게 바라본다.)신도님과 선생님…께 든든한 부분이 되어드리고 싶…… (말을 하다 말고 손을 붕붕 내젓는다. 부끄럽기라도 한 걸까.)네, 네! 도중에 시장해지시면 안 되니까요. (뚝딱뚝딱 물과 휴지, 컵 따위를 꺼냈다. 보조자의 역할에서 흠잡을 만한 부분은 없었다. 뚝딱거리는 보조자는 대강의 차림을 마친 뒤에 짤막하게 기도했다. 눈을 무겁게 뜨고서는, 천장을 물끄러미 쳐다봤다.)늘 그랬듯이, 신도님이 좀 걱정되긴 하네요.

371 이름 없음 (IqZci6OGxg)

2023-07-18 (FIRE!) 21:17:15

>>369

잡아먹었다는 간단한 한 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되었다. 여성은 핏기가 싹 가시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충격에 휘청일 것 같은 두 다리를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붙들고 간신히 꼿꼿하게 서 있다. 실종된 것은 몇 달 전이었는데 이제서야 잡아먹었다니. 제가 반 시진이라도 더 빠르게 찾아내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의 손가락에 붙들려 위태로이 흔들거리는 갓끈마저 애처롭다. 그 이의 미소마저 피로 얼룩진 것 같다.

"믿는다고 하면 제게 돌려주시려는지요?"

여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놀라울 만치 조용하고 침착하다. 인간답지 않은 소리나 납작 누워 위협하는 흑호의 귀에도 변함 없이. 분명 공포심 역시 그 마음 속에는 있을테지만, 지금 그의 눈을 응시하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는 읽기 힘들었다. 또다시 물음에 대한 대답이 아닌 말을 꺼내는 것 조차 호랑이 영물이 아닌 그저 평범한 존재를 대하는 것과도 같은 태도다.

372 이름 없음 (63bxlS.MAc)

2023-07-18 (FIRE!) 21:19:03

>>370

(회의에 찬 눈으로 당신을 바라보다가도 이내 표정이 부드러워진다.)아주 좋은 말이군. 입은 대개 우리 몸에서 성령과 가장 먼 곳이라고 하지만, 자네 말에는 정말 필요한 언어가 있어. 지금 그 말을 잊지 마. 순수한 선의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니까.(몇십년이나 엑소시즘을 해왔음에도 부정적인 감정을 제어할 수 없었던 자신이고, 사람을 보는 감식안은 여전히 어두울 뿐이다. 그러나 이 허점투성이 부제의 입에서, 오래 전 떠난 누군가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들었다는 것에 희망을 느끼며, 당신에 대한 걱정을 조금은 접을 수 있었다.)
(제병을 건넨다.)당장은 괜찮겠지만,(역시 염려하는 눈빛으로 천장을 바라본다.) 오늘을 넘기기는 힘들지도.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지쳐 있더군. 계획대로라면 아슬아슬하게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겠지만, 자네가 말했듯이 유약하고 연한 부분만을 노리는 게 악마니까, 주께서 우리의 약함을 살피시길 바랄 뿐이야.
(컵의 4분의 1 가량 포도주를 따라 건넨다.)마시게. 그리고 이건 사족이지만, 나는 아직도 예식 자체보다는 신도분을 사전 처치해 두는 게 가장 곤혹스럽단 말이지. 사람 구하기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주의 어린 양을 물리적으로 붙잡아다가 어디 묶어놓는 짓을 매번 해야 하니 원...(고개를 절레 절레 저으며 포도주를 한 모금 마신다.)

373 이름 없음 (C.8V2rWtlE)

2023-07-18 (FIRE!) 21:53:47

>>371
"나도 걔 마음에 드는데, 어쩔까."

여성의 표면에 덧칠된 담담함에 그의 무표정은 녹아 웃음기로 대체되었다.

"돌려줄까?" 짓궂은 질문을 하면서 그 웃음기는 통 지워지질 않는다. 손에 위태로이 붙들린 갓끈은 작은 바람에도 떨어질듯 하다.

"걘 네가 무서운거 잊고도 나랑 실랑이할 정도로 소중히 한다는거 아니." 낮은 목소리 공기중에 울리는 것이 음산하다. 그의 초점이 여성의 얼굴에서 내려가는 것이 보인다. 시선은 곧 종점에 닿고, 그곳은 그녀가 단도를 숨긴 품 부근이였다. 육안으로 보일리 없으니 신사답지 못한 우연일 수도 있겠다만, 그의 입꼬리 피식 당겨지는 꼬락서니 보아하면 글쎄.

"왜 그리 아껴." 되묻는 목소리는 차분하다. 여성더러 얘기 해보라는 듯, 쫑긋 세워진 귀는 그 안의 숨겨진 흰 솜털을 내보였다.

374 이름 없음 (NKNa7QZFTw)

2023-07-18 (FIRE!) 22:30:09

>>373

"마음에 드는 것과 마음에 필수불가결한 것은 다르오니 부디 제게 돌려주시지요."

웃음기 어린 그의 목소리와는 달리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하다. 돌려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애써 눈을 돌리려는 그 담담함이 갓끈만큼이나 애처롭다.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성은 두려움을 구태여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초점이 얼굴에서 내려가 품 부근에 닿자 그녀는 슬쩍 손을 들어 넉넉한 소매로 품을 가린다. 어찌보면 남성의 시선에 수줍은 여인처럼 보이는 모습이오나 분명 단도를 숨기는 의도였다.

"......그 분은 저와 백년해로를 약속한 낭군님이셨습니다. 이리도 아끼는 이유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혼인식을 앞둔 며칠 전, 그녀의 낭군님은 홀연히 실종되어버렸다. 그렇게 낭군님을 찾아 헤메다 드디어 닿게 된 곳이 이곳이었으니. 미동 없이 그의 눈을 응시하던 그녀는 행복하리라 믿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 듯 처음으로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덧붙인다.

"그러니 부디 제 낭군님을 돌려주시지요."

375 이름 없음 (QAZnnSKnxc)

2023-07-18 (FIRE!) 22:47:31

>>372

(온화한 듯한 상대방의 말이 줄글로 마음에 새겨지는 느낌은 부드러운 깃털을 만지는 것과 유사했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은 꼭 정제된 기도문 같아.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조차도 모르는 공황 속에 놓여도 선생의 말 한 마디만 있다면 출구를 찾을 자신이 있다.) 신도님께도 선생님의 말씀과 제 말이 들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왜 굳이 상대방을 선생님이라 칭할까?) 악마의 말이 들리고 있을까요…… (제병과 포도주를 건네받았다. 자세를 고쳐 앉은 뒤, 마른 입에 살과 피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그의 악습은 가만히 있지 않고 머릿속에 부정적인 생각들을 떠올리게 했다.)주여…… (중얼중얼중얼) 아까 신도님을 조심스레 묶는다고 묶었지만, 생채기가 난 것 같아 마음이 쓰여요.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것은 알지만. (뚫려있는 서쪽을 바라봐서 해를 확인했다.)선생님, 선생님이 보시기에 오늘의 악마는 어떤가요? 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신도님의 얼굴만 봐도 이곳저곳이 가려운 것 같고, 괴로워서. (곧 구마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올 것이라는 사실에 괜스레 손이 떨렸다.)

376 이름 없음 (MlTD.EDqR6)

2023-07-19 (水) 00:02:32

>>375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기도문을 웅얼거린다.)싸우고 있을 거야. 우리를 대신해서. 말했듯이, 귀와 머리와 가슴에서 악마는 일을 시작하니까. 사람에게 들린 악령은 몸의 바깥으로 1할의 악의를 던지지만, 남은 9할은 유혹과 압박을 위해 쓴다고 하던가.(우울한 안색으로 주의 살을 받아들인다. 제병을 삼킨 뒤 이어 말한다.) 몸을 묶을 때 내 묵주를 두고 왔어. 임시방편이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테지.
무슨 악마인지는, 잘 모르겠군. 예로부터 뭇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서 여러 악마들을 규명하고, 구분하려 들어 왔다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악마들도 모두 주의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이고, 선의로서 주께서 임하시길 기다리는 우리는 악성보다는 선성을 보고 일해야 한다는 것 뿐. (그러나 말과는 다르게 조금씩 자신의 추측을 말하기 시작한다.)지금까지의 추이를 봐서는 아마도 몰록의 권속이 아닐까 싶군. 수준으로 보자면야, 대개 이 땅에 발 들이는 조잡한 악귀들과 크게 다를 바는 없는 듯 한데. 악마학은 미지의 영역이 많으니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겠지만, 우리 신도님의 증세만 봐서는 그래.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면, 음, 오늘만 세 번째, 아니, 네 번째로 말하는 건가?(조금 표정이 풀려 장난스레 눈을 찡긋거린다.) 정신이 꺾이지만 않으면 어떤 악마라도 자네에게 죄 주지 못하리라는 것. 교만하지 말고, 공포를 품지도 말고...(쓴웃음을 지으며 말끝을 흐린다. 아무래도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 같다.)
음, 그런데, 좀처럼 석양이 들지 않는군. 몇 시지? 햇빛이 충분히 들어야...(쿵, 갑자기 천장에서 들려온 굉음에 사색이 돼서 벌떡 일어난다. 떨리기 시작한 손에서 멎었던 피가 다시 방울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377 이름 없음 (G8mkTWe5r6)

2023-07-20 (거의 끝나감) 22:51:57

>>376

선생님과 전 구마를 무사히 끝낼 수 있을 거예요. 신도님도, 고통을 털고 웃으시면서 집으로…… (보기 힘든 긍정적인 말의 연속. 끝맺음을 못 하기는 했지만 마음이 한 층 더 단단해지는 데에는 충분히 기여했다.)예전에는 왜 주께서 악도 빚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아직도 가끔 주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위에서 고전 중이신 신도님이 고성을 지르고 우시는 모습을 몇 번 봤어요. 그때마다 제 정신은…… 제 정신은 아직 미성숙한 거겠죠. (악령에 씐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주 잘 안다.)…몰록의 권속. (너무 빛바랜 시간.)32교구에 전달되면 확실히 알 수 있겠죠. 나중에는, 악마학을 좀 공부해보고 싶어지네요. (눈을 찡긋거리는 상대방을 보고 편안한 미소를 띤다. 이 역시 보기 힘들다.) 공포도 조금이나마 극복할 수 있을 것 같고, 지식도 쌓고, 선생님한테 도움도 되고… (굉음과 동시에 눈빛이 흐려지기 시작한다. 천장을 쳐다보는 것 대신 한 일은, 흐르기 시작한 피를 마주하는 것.)…안 좋아요. 선생님, 이거 안 좋은 상황이에요! (물로써 자신의 손바닥에 십자가를 그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거울이 있는 쪽을 보았다.)아…… 선생님. (주를 부르는 것 대신 선생을 부른다. 그려둔 진이 묘하게 뒤틀려 있고 거울은 금이 가 있다. 어디선가 비명까지 들려온다.)

378 이름 없음 (rEfw47ueEw)

2023-07-21 (불탄다..!) 01:57:01

>>377

(소리와 함께 막간의 안식도 깨진다. 왜 주는 악을 만드셨는지, 악마학을 배우고 싶은 이유는 무언지, 그런 마음을 추스리게 해 준 대화들이 대답할 새도 없이 모두 세상 바깥으로 끌려나가고, 아까와 같은 공간에 이제는 싸늘한 공포만이 있다.)
대체 무슨...(멀쩡한 쪽 손에 힘이 풀린 듯, 보따리를 놓쳐 떨어뜨리고 만다. 보따리에서 흘러나온 작은 회중시계는 침이 멋대로 돌아가고 있다.)
(어질거림을 느끼는지, 피 흘리던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그러자, 갑자기 시야에 어둠이 덮히는 것만 같다. 손바닥에서는 붉은 피 대신 구더기가 기어나오는 것처럼 보인다.)염병. 분명 제대로 고정시켜 뒀어. 진 안에서 밖으로 힘을 뻗을 수 있을 리가 없어. 그런데 대체, 대체 무슨...(패닉이 온 듯 중얼거리다가,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다. 창백해진 표정으로 '선생님'이라는 말을 되뇌이다가, 문득 이마에서 손을 떼어낸다. 벌레가 들끓던 상처의 모습은 환상이었을까, 다시 보니 그저 피가 흐르고 있을 뿐다.)
미, 미안하군. 이럴 때가 아닌데. 말마따나...(약간 더듬거리며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다가도, 겨우 정신을 차렸는지 쓸데없는 말을 끊어 버린다.) 일단은, 조치를...(말의 뒷부분이 흐릿하다. 당신에게 닿았어야 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령이 닿지 않는다.)

379 이름 없음 (9ctxc5Qlkc)

2023-07-21 (불탄다..!) 16:19:29

>>378

(기능을 상실한 회중시계를 보고 있자니 시야가 이지러지는 것 같았다. 참으로 독한 악마구나! 뭐가 잘못된 것인지 제대로 원인을 파악하고 싶었지만 지금처럼 정신이 좀먹히는 상황에서 정신을 붙들어 매는 것은 잘하지 못했다. 잘하지 못해도, 일단 해야 할 일을 하기로 했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상대방의 창백한 얼굴에 입은 저절로 다물어졌다. 이마에 묻은 피. 우선 선생님의 손바닥 출혈을.) ……(부제는 상대방의 손바닥에도 물로 십자가를 한 번 긋더니 자신의 품에 있던 목재 십자가를 꺼내 쥐여 주었다. 짧은 기도를 마치고 상대방을 본다.) ……엄청 무섭네요. (가만히 있으면서 상대방의 잘려나간 지시를 기다리기엔 무리가 있었다. 부제는 가져온 성수를 천장에 뿌렸다. 빈 통이 떨어지는 소리가 여전한 굉음 사이를 파고들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목도와 산사나무를 한 손에 쥐고 고민하기를 수 초. 천장에서 검은색 진흙 같은 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떡하죠. 선생님…… 당혹스러움에 잠겨있기도 잠시 선생의 머리 위로 꽤 큰 진흙 덩어리가 떨어지는 것이 보이자 팔을 크게 휘둘러서 쳐낸다.) 신도님을 데리고 나와서…… 도, 도망가야 할까요…… (한 뼘 가깝게 상대방을 본다.)

380 이름 없음 (P87rA5CCm.)

2023-07-23 (내일 월요일) 01:02:47

>>379

...!(당신이 조치를 취한 순간 숨을 헐떡인다.) 고마, 고마워. 추태를 보였군. 구마 사제로서 후배를 보호는 못할 망정...(자책하며 떨어진 회중시계에 손을 뻗다가, 돌아가는 침을 다시 보고는 흠칫한다.) 도망은, 의미 없겠지. 아니, 도망가면 안돼. 영문 모를 일이지만, 이미 악마가 세상에 물리적인 영향력을 보였어. 신도님께선 아마도 이미...(말을 삼킨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지금 우리가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감당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는 거야.
(손 안의 십자가와 무사히 아문 상처를 망연히 보다가, 짧게 기도하고는 십자가를 당신에게 돌려준다.)이제 괜찮아. 1층은 아직 안전지대니까. 2층은 진작에 암실로 조성해 뒀다. 위험한 방식이지만, 2층을 악마에게 양보한 대가로 지금같은 사고 하에서도 당장은 놈의 영향력을 제한시킬 수 있어. (거칠게 발을 써서 중심원의 소금으로 찌그러진 진을 덮는다. 그러자 진흙도 떨어지지 않는다.)이 진은 층과 층을 잇는 통로였는데, 악마가 역이용했군. 여길 통해 우리에게 간섭했어.
(한숨을 쉬며 보따리를 털어내서, 마지막으로 촛대를 꺼낸다.) 지금은 일단 내 판단에 따라 주겠나? 십자가는 품에 넣고 성경을. 수신호를 정하지. 서로의 목소리는 곡해될 수 있으니까. (무슨 수를 썼는지 초에 쉽게 불을 붙인다. 촛불 앞에 손을 비춰 보인다.)손동작으로 숫자를 알려주면, 그 페이지를 읽으면 돼. 이대로 2층으로...(다시 미련이 남은 눈으로 회중시계를 내려다보다, 못내 걸음을 뗀다.) 간다. 마음의 준비를 해둬.

381 이름 없음 (k3Hg30JtKU)

2023-07-26 (水) 22:24:18

>>380

(삼켜지는 말을 듣고 있자니 시야가 흐려졌다. 가엾은 영혼은 악마의 손아귀에서 고통에 어디까지 발버둥쳤을까. 이런 부류의 슬픔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닌 모양이다. 검은 소매에 눈물 자국이 남았다. 삿된 것들을 구축한다는 꿈 아래 사제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어린애. 악마가 자신을 그렇게 볼까 덜컥 겁이 났지만 진흙이 멈추었기에, 그가 밝힌 촛불이 눈 안으로 들어왔기에, 눈물과 두려움은 말라갔다.)……네, 네! (성경을 급하게 꺼냈다. 상대방을 따라 층계를 밟으려던 순간, 왠지 모르게 회중시계가 눈에 밟혔다. 그의 미련을 엿보았기 때문일까? 결국 흰 천을 회중시계 위로 덮어두고 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 걸음이 멈춘 곳은 말 그대로 암흑이었다. 생각보다 더한 농도에 눈을 껌뻑.)선생님…… 제 앞에 계시죠? (팔 휘적이다가 촛불 발견하고 안심하는 표정. 성경을 만지작거린다. 곧 시작해야 한다.)신호…… 주시면, 읽겠습니다.

382 이름 없음 (u87FrjIGyE)

2023-07-27 (거의 끝나감) 16:53:45

>>381

(당신의 발걸음 앞으로 삐걱이는 널빤지의 비명과 함께 조용히 걸어나간다. 계단까지, 그리고 층계를 오르기 시작한다. 점점 어둠이 짙어질수록, 흐리멍텅해지는 정신머리를 애써 부여잡으려 하지만, 녹록지 않다. 그래서 조금 늦게 대답이 나온다.)그래. 앞에 있으니 잘 따라오라고. 읽을 때는 빛이 필요할 테니 더 가까이 붙는 게 좋아. 아마도 자네라면, 필요한 구절은 외우고 있을 듯 하지만서도.
(이후로 약간, 뜸을 들이다가 다시 입을 열어 묻는다.)이런 상황에 할 이야기는 아지만, 하나만 물어도 될까? 그, 요즘은 유달리 기억력이 나빠져서 말이야. 간혹은 구면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고, 낮선 사람에게 익숙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어. 특히나 보통은 안 듣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그런 병리가 더 도드라진단 말이지. 흠.(마지막 몇 마디는 살짝 잠긴 목소리가 되더니, 헛기침다.) 별 뜻 없는 질문이지만, 혹시 나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나? 싫은 건 아니지만, 부제...한테, 그런 호칭으로 불리는 건 좀 낮설다고 해야 할지, 참...(당신에게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쩐지 해묵은 옛 기억을 되짚는 듯 목소리는 회한에 차 있다. 어쩌면 여기에 없는 누군가를 회상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383 이름 없음 (JPwMrYKXwc)

2023-07-27 (거의 끝나감) 22:52:18

>>382

(어두운 곳에서 광원 하나에 의지해 움직이고 있으니 겁이 하나둘씩 축적되기 시작했다. 몸을 가까이 움직이니 열이 좀 더 짙게 느껴졌다. 성경책을 훑으며 약식으로 조용히 웅얼거렸다. 걸림돌이 되기도 싫었고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거룩한 대천사들과 천사들이여, 저희를 보호해 주소서…… (상대방이 질문을 던질 때까지 성경을 입에 올렸다. 이내 책을 덮고서는.) 아, 그, 제가 말씀을 안 드렸나보네요. 별 건 아니고…… 신부님, 이라고 부르면 기분이 조금 이상해서. (달싹이는 입술. 여전히 얘기하기 힘들다.) 너무 제 편의대로 했죠, 나중에 천, 천천히 바꿔볼게요. (그렇게 말하면서 물끄러미 상대방을 쳐다본다. 눈치가 엄청나게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의 얼굴에서 붕 뜬 느낌 정도는 읽어낼 수 있었다.) 무슨 생각 하세요? (고개를 살짝 기울인 뒤 이어지는 말.) 아, 회중시계? 제가 천을 덮어두고 오긴 했어요. 일반적인 천은 아니니까…… 다 끝난 뒤에 들고 가도 될 것 같아요. (갑작스레 떨어지는 자신감!) 아마, 아마도…… (성경책을 옆구리에 끼고 전방 주시한다.)

384 이름 없음 (lyIZoq.mDc)

2023-07-28 (불탄다..!) 21:08:46

>>383

(당신이 여러 구절을 암송해 준 덕분인지 조금은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한다.)괜찮아. 바꾸지 않아도. 그냥 그 호칭은 조금... 익숙해서 말이다. 향수를 느끼게 하거든. 나도 내 은사를 그렇게 불렀으니까.
(어느 새 계단을 다 올라선다. 2층에 들어선 순간부터는, 정말 촛불과 근처의 손 외에는 무엇 하나 당신 쪽으로 드러나지 않는다.)하나, 말해둬야 할 게 있다. 미안하지만, 아까부터 하나, 자네를 속이고 있었어. 이론에 박식한 자네라면 이미 눈치채고 있는지도 모르겠군. 지금부터 할 예식에 있어서, 내가 자네에게 맡긴 역할은 사실 보조가 아니야. 사제의 역할이지.(흔들리는 촛불 앞에 손가락을 가져가, 약속했던 수신호를 취한다.) 미안하군. 역시 나는 구마사제로서 실격인 모양이야. 이럴 때 책임질 수 없어서야, 원.(침착하게 가라앉은 목소리, 이상할 정도로 식어 있는 목소리다. 정말 당신의 '선생님'에게서 나오는 목소리일까, 어둠 너머로는 무엇도 볼 수 없다.) 그러니, 줬던 칼은 일단 내려놓지. 구마 사제는 예식 중에 날붙이를 잡아선 안되니까.

385 이름 없음 (4XqkFrK.UQ)

2023-08-04 (불탄다..!) 22:47:51

이거 봐봐! 이거 저번에 너가 말했던 거 맞지? (갱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한 슬럼가 골목, 한 소년이 해맑게 웃으며 손에 들린 피묻은 휴대폰을 흔들어보인다. 통신력의 장악은 곧 권력. 휴대전화는 힘의 상징 그 자체다. 그러다 슥 주변을 둘러보고, 품 속에 숨긴 채로 당신과 자신만 볼 수 있게 슬쩍 꺼내놓는다. 비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신중하다.) 이것만 있으면 너 여기서 벗어날 수 있다며. 잘됐다!

386 인터넷에 있는 카톨릭구마의식기도문 참고! (V4lpQUd/Ww)

2023-08-10 (거의 끝나감) 01:11:44

>>384

(성경을 보물단지처럼 꾹 붙들고 시선은 이리저리 황망하게 움직인다. 침잠하는 ‘선생님’의 목소리는 덜떨어진 사제에게도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지만… 어둠이 너무 짙었고, 두려움이 너무 촘촘했다.) …… …… ……주님, 마귀의 뒤쫓음에서 저희를 보호하소서. (떨리는 목소리가 갈무리된다.) ——사탄과 악신들을 하느님의 힘으로 지옥에 떨어뜨리소서. 아멘. (성경책을 쥔 손이 불안하게 떨린다. 촛불이 있을 곳을 쳐다보며,) 선생님…… 괜찮나요?

387 이름 없음 (2NXgvjl7gQ)

2023-08-14 (모두 수고..) 07:43:07

제가 눈을 뜬 곳은 어느 이름 모를 숲이었습니다.

여긴 어디일까요? 그리고 저는 누구일까요? 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햇빛은 따듯하고, 울창한 숲이 기분좋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어쩐지 주변의 흙은 좀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마음에 드는 숲이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곧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들려 생각을 그만두었습니다. 정체 모를 불안감과, 떠올려야 해~ 라고 속삭이는 것 같은 목소리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지만... 뭐, 생각해도 알 수 없는 것을 붙잡고 있는것 보다, 주린 배를 채우는것이 먼저였습니다.

숲의 풀과 흙을 기분 좋게 밟으며 걷다 보니, 덤불에 무성하게 열린 빨간 열매를 발견했습니다. 입에 넣어보니 새콤하면서도 달콤한게, 엄청나게 맛있었습니다! 앞으로 평생 이것만 먹고 살아도 좋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어느정도 배를 채우고 나니 이번엔 목이 말랐습니다. 희미하게 물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니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손을 물에 담가보니, 얼어버릴것처럼 차가웠습니다. 분명 따듯한 날씨인데, 어떻게 된 일일까요? 으~음... 잘 모르겠습니다. 이리저리 고민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니, 조금 나중으로 미루어봅니다.
차가움을 견디면서 손을 물에 담가, 떠 마시자 이번엔 갈증이 사라졌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심심함이 몰려왔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복잡한 여자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바로 저입니다! 심심함을 채우기 위해서 무작정 걸어봅니다.

미지에 맞서 모험을 나서는듯한 전율이 느껴집니다. 어쩌면 저는 굉장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길에서 아주 좋아보이는 나뭇가지도 주웠고, 발로 흙을 밟을때마다 들려오는 소리와 향긋한 풀내음이 코를 간질이는게 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제 모험의 꽃인 보물만 발견하면 되는데... 아, 마침 저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오두막인걸까요? 조금은 겁이 났지만, 그래도 이 두려움을 이겨내지 않고서는 보물을 발견할 수 없을겁니다. 저는 도망치는 여자가 아닙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오두막 안으로 돌격합니다!

...역시 돌격이라기엔 조금 무리가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봅니다. 누군가 사는 곳일까요? 가구들도 깨끗해 보입니다. 창가 쪽을 바라보자 예쁜 꽃이 있었습니다! 저것이 분명히 제 모험의 대미를 장식할 보물이 분명합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폴짝거려 보지만... 닿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보물을 차지하기 위한 고난과 역경일까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몇번이고 점프를 반복합니다. 반드시 저걸 갖고야 말것....

끼야아아아악, 하고 비명을 질러버렸습니다. 누군가가 제 목덜미를 붙잡고 절 번쩍 들어올렸습니다! 아아, 저는 이렇게 죽고야 마는걸까요? 용기를 내어 뒤를 돌아보자, 무시무시한 수염 괴인이 있었습니다. 아마 거인족인게 분명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클 리가 없습니다. 저는 그만 울면서 오줌까지 지려버렸고(이것은 여러분과 저만의 비밀입니다...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간곡하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맛이 없을거라고, 놓아주면 엄청 맛있는 열매가 있는 위치를 알려주겠다고, 멋대로 집에 와서 죄송하다고 저의 필살 사죄의 포즈 3연타를 공중에서 시전해보았습니다. 그렇게 덜덜 떨고있는데... 어라, 이 괴인 조금 곤란해 보이는 표정입니다. 아마 오줌을 지린 제가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모양이라, 식욕이 싹 가신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이야 말로 저의 협상의 기술이 빛날때입니다.

놓아주지 않으면 싸버리겠다. 라고 당당하게 외쳐봅니다. 무엇을 쌀건지는 여러분께도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소녀의 마음이 망가져버리는것조차 각오한, 필살의 표정으로 괴인을 노려보자... 괴인은 저를 어디론가 끌고갑니다. 자유? 자유의 몸이 되는걸까요? 라고 생각하는 차에, 풍덩, 하고 목욕탕에 던져집니다.

아아, 깨끗하게 하고 잡아먹힐 운명인가 보군요. 틈을 봐서 탈출해야 겠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차에, 또다시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저와 비슷한 소녀가 등장합니다! 이 아이도 잡힌걸까요? 이것저것 물어봐야 겠습니다.

...아무래도 여기는 평범한 가정집인 모양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소녀가 괴인 수염거인의 딸이라는것은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전혀 닮지 않았는걸요! 키도 저와 비슷하고, 예쁘게 생긴 아이입니다. 분명히 어디선가 납치해온게 틀림없습니다. 아무래도 이 괴인 수염거인, 예의주시해야 할 대상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뭐, 맛있는 밥도 주었고(그렇게 맛있는건 처음 먹어봤습니다.) 따듯한 잠자리까지 주니,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살짝 들것만 같습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요? 으음...

고민하고 있으니 그 아이가 다가옵니다. 무서우니까 함께 자자고 하는군요. 저는 조금도 밤이 무섭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 소녀는 아직 어린애인게 틀림없습니다. 흐음, 그런데 이 아이는 제게 꽤 우호적이군요. 잘만 하면 저의 부하로 삼아줄 수 있겠습니다.


어젯밤엔 꽤나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꽤 많이 친해졌습니다. 우리는 낮동안엔 즐겁게 달리기를 하거나, 숨바꼭질도 하고, 같이 모험도 떠났으며, 나무열매도 주워먹었고, 즐거운 인형놀이도 했습니다. 정말, 정말로 즐거운 순간이었습니다. 잘하면 저의 친구로 삼아줘도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것같기도 하고 아닌것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직접 말하는건 역시, 제법 부끄러운 일이니까요...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만, 제게 용기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풀이 죽는것도 같지만, 풀이 죽어있다고 해서 달라지는건 없으니 오늘도 열심히, 전력으로 놀아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생각한게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집에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들은 굉장히 화가 나있었고, 저를 보자마자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칼로 저를 베었고, 큰 망치로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뜨거운 불로 저를 태웠고, 차가운 얼음으로 절 찔렀습니다. 어째서?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새빨간 나무열매의 색깔과 똑같은, 새빨간 피가 흐릅니다. 손을 넣으면 얼어버릴것처럼 시린 강물처럼, 제 몸에서 흘러내립니다. 그녀들이 제 몸에 쇳덩어리를 채워, 더이상 움직일수가 없게 되었을때.

저는 보았습니다. 그 아이의 아빠가 절 혐오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을.
그리고, 그 아이가 너무나도 서럽게 울고있는 모습을.


절 공격한 사람들은 저를 차가운 방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잔뜩 소리를 지르며 이것저것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이 뭐냐고 묻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맞았습니다.

왜 사람들을 죽였냐고 묻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손가락이 사라졌습니다.

핑크와 살몬을 어떻게 한거냐고 묻자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팔이 사라졌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기억을 잃어버렸냐는 말에 아마 그런것 같다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저질렀다는 악행을 줄줄이 읊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이고, 납치하고 고문하고...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그건 내가 아니야. 난 숲에서 눈을 떴을 뿐인데 먼저 공격한건 너희잖아.
얼마나 아팠는데. 왜 너희 말은 진실로 취급하면서 내 말은 거짓말로 치부하는거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 아무것도...





10년이 흘렀습니다.
이젠 차라리 아프지 않은게 더 어색할 정도가 되었고, 그들은 내 기억을 해석하기 위해 총력을 다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당연합니다. 그것은 내가 아니니까.

10년, 10년이나 걸렸어. 내가 그동안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내왔는지 알기나 해?
처음엔 내가 저지른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사과했잖아. 이미 충분하고도 남아서 넘칠만큼 속죄했잖아.
살려달라고 빌었어. 울면서 애원했어. 그러다 포기하기도 했고, 너희들이 원하는건 전부 받아줬어.

하지만 이젠 전부, 그 아무것도 상관없어.
설령 내가 저지른 악행이라고 하더라도 너희들이 내게 저지른 악행이 없어지는건 아니잖아.


나는 모았던 힘을 터트렸습니다.
눈 앞에 보이는 모든것을 불태웠고, 그녀들은 전부 내 이름이라고 여기는 이름을 증오스럽게 부르며 죽어갔습니다.

증오스러운 시설도, 증오스러운 사람들도 전부 불타서 고통스럽게 죽어버려.



찰칵.



하고, 증오의 연쇄는 최악의 형태로 맺어졌습니다.
그 아이.

그 아이가, 10년만에 만난 그 아이가.
내 앞에, 그들과 똑같은 복장을 입고.

눈물을 흘리며, 무기를 내게 겨눈 채로 서있었습니다.


제발 그만해주세요.
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울지 마세요.

저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모르겠어서.

" 사라져, 내 앞에서. 지금 당장. "

가장 최악인 말을 전하고는.

당신과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눈물 흘렸습니다.

388 이름 없음 (i.eYBHgygs)

2023-09-25 (모두 수고..) 17:56:06

"부럽다, 요 돼지고양이. 넌 짝사랑도 대입도 얼마나 힘들지 모르지?"

볼품없는 나는 내 마음도 볼품없다고 종종 생각했다. 사랑은 엄청 대단하고 특별하고 아름답다는데 내 사랑은 그렇지 않다. 짝사랑이라 그런가? 아닌데, 서브병이니 뭐니 하면서 짝사랑하는 서브남주 좋아하는 애들이 내 주변에 천지삐까린데. 그러니 내 문제다. 나는 여자주인공도, 서브여주도 아닌 엑스트라라서. 드라마였으면 뒷통수나 나왔을까 말까, 웹툰이었다면 눈코입도 없었을 거고, 소설이었다면 이름도 없었겠지. 그러다 현실을 보는 거다. 이런데에 마음 쏟고 고민할 시간이 어딨느냐고, 대학 안 갈건가. 공부나 해야지, 공부나. 나는 별 생각없이 요 근래 우리 학교에 잘만 놀러오는 고양이나 귀여워해주며 실실 웃었다. 그리고 인기척을 느꼈다. 고양이에게 신세 한탄, 손장난치면서 웃는 꼴. 꽤나 한심해보일 것 같아서 입을 합 다물었다. 아는 얼굴만 아니어라, 아니지, 아니다. 아는 얼굴이어라. 아니, 어느 쪽이 나은거야? 쪽팔려서 자퇴만 안 하게 해주세요, 하나님부처님알라신시바신마라탕탕후루떡볶이눈꽃빙수시여.

"야, 돼지고양이. 너 나 두고 바람 피우니?"

이러면 짝사랑 얘기는 얼추 고양이 이야기 같지 않나. 고양이를 너무 좋아하는 것처럼 보일거야. 슬쩍 인기척이 느껴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맥커터만 아니면 상대가 누구여도 괜찮아~

389 이름 없음 (YgUTxf5R1s)

2023-09-25 (모두 수고..) 18:40:11

얘 미쳤나? 씁... 동질감 드네.

사람을 꼬나보는 것은 예의가 아닌데, 그럼에도 지 혼자 고양이랑 쑥덕대면서 시시덕 거리는 걸 그냥 무시하라니. 자고로 대한민국 고쓰리는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즐겁더랜다. 그러고보니 저 뒤통수 낯익은데, 쟤 나랑 같은 반이던가? 아닌가? 그럼 작년에 같은반?

당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여도 소녀의 인기척을 느낄수 있었을테다. 그녀는 당신이 고개를 돌리면 힐긋 내려보는 것 외엔 달리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이, 그녀의 얼굴에 늘어진 그림자와 조합해보면 꽤 험악해 보인다. 속내 알 수 없는 무표정인지라 더더욱. 조용히 입을 앙 다물고 있으니 새초롬한 미인 어디가고 깡패만 한 명 있는듯한 분위기다.

"어,"

당신의 독백에 멋대로 난입해 답을 달더니, 옆에 풀썩 주저앉고선 그 뚱뚱한 고양이를 한 손 가득 쓰담는다.

"난 이 누나가 더 조아~"

아까의 목소리에서 한 톤 더 올려 고양이의 속마음 독심술(아님)도 해준다. 그러는 표정 아까와 다를 것 없이 무뚝뚝한게 이질적이다... 고3은 다 이런거야.

390 이름 없음 (YgUTxf5R1s)

2023-09-25 (모두 수고..) 18:41:03

>>389 앵커 까먹었네 >>388이야 여러모로 허접하네 나 ><

391 등골브레이커는 영업중 (2mZsMQNbII)

2023-10-10 (FIRE!) 19:59:43

situplay>1596845082>58
(Choi Choco라는 상호의, 2인 테이블이 2개나 있을까 싶은 자그마한 카페. 그래도 딴에는 무인주문기도 있고 칠판형 입간판도 있다. 입간판에는 커피콩 캐릭터가 초콜릿 모양의 건물 문을 열고 내다보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리고 주방 위생 모자로 머리카락을 꽁꽁 감춘, 20대로 추정되는 여성이 큐브형으로 자른 초코 케이크를 잔뜩 담은 접시를 든 채, 행인들을 부르고 있다. 나름 유니폼인지 여성의 까만 앞치마에는 입간판과 똑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개업했어요 초코 케이크 좀 드시고 가세요 시트는 커피 맛이에요~ (공짜 케이크임에도 그냥 지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먹어본 사람들은 맛있다고 대답해준다. 이걸로 영업이 되길 바라며 눈이 마주치는 족족 말을 붙여본다. 성인뿐만 아니라 어린이에게도.) 안녕~ 케이크 한번 먹어볼래? (아이가 케이크를 사러 와주지는 않을듯하지만 혹시 알아? 맛있으면 부모님께 오자고 졸라줄지? 그러다 여성은 제 실수를 알아채고 멈칫했다. 어린이에게 커피가 들어간 케이크는 곤란하지.) 아차차!! 잠시만~ (매장안으로 들어갔다 나온 여성은 납작빨대에 가나슈를 살짝 묻혀서 아이에게 내민다.) 어린이는 초코만~

392 이름 없음 (4AG08GPlKM)

2023-10-11 (水) 01:47:36

아, 제기랄. 손에 피 묻히는 거 싫어하시는 분이 이런 누추한 곳까지 어떻게 행차하셨대. (의자에 손목과 발목이 결박된 채,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는 얼굴을 돌려 바닥에 피 섞인 침을 뱉는다. 항상 깔끔하게 넘겨올렸던 앞머리가 피로 엉겨붙은 채 눈을 가린 사이에서도, 당신을 향해 지어보이는 느슨한 눈웃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얼굴 보러 온 거면 물이나 주고 가. 왜 널 죽이려했는지 듣고싶은거면 가까이 오고.

393 성규주 ◆qVMykkcvJk (LEUAUTcQp.)

2023-10-11 (水) 19:38:03

>>391 세상에 얘기 꺼내자마자 선레부터 써줄 줄이야! 선레 고마워 ㅋㅋㅋ
아 그리고 출신 스레 정주행은 안 해도 괜찮아! 왜냐면 당시에 이벤트 참여랑 일상 각각 한번씩 하고 시트를 내렸었거든. 그래서 데이터가 얼마 없을거야 ㅋㅋㅋ
답레는 오늘 안으로 가져올게!

394 성규주 ◆qVMykkcvJk (LEUAUTcQp.)

2023-10-11 (水) 19:44:23

>>391 >>393 아 참 맞아 물어볼게 두가지 있는데,

1. 성규가 케이크를 이미 시식중이었던 상황으로 이어도 될까? 애기 NPC를 보니까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걸 할려면 성규가 이미 케이크를 먹고 있어야겠더라구:3
2. 1에 이어서, 애기 NPC도 내가 임의로 움직여도 괜찮을까? 곤란하면 편히 말해줘! 다른 방향으로 이어볼게X)

Powered by lightuna v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