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6715072> 자유 상황극 스레 4 :: 505

이름 없음

2022-12-31 16:48:08 - 2024-09-05 17:41:22

0 이름 없음 (kJ8MtbJ//I)

2022-12-31 (파란날) 16:48:08

이 상황극은 5분만에 개그로 끝날수도 있고, 또다른 장편이야기가 될수도 있습니다.(물론 그때는 다른 스레를 만들어주세요.)

아니면 다른 스레의 자캐가 쉬어가는 공간이 될수도 있습니다. 크로스 오버도 상관없습니다.

자유 상황극 스레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1 이름 없음 (kJ8MtbJ//I)

2022-12-31 (파란날) 17:09:12

돌계단을 올라 붉은색 토리를 지나면 이제는 주인이 없는지 낡은 신사가 하나 나왔다. 자신의 산책 루트에 있었기 때문에 소년은 이사 온 이 후, 매일 이 신사에 자연히 발을 들였다. 이 지역에 전학을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년은 그 낡은 신사가 무슨 신사인지 알 길이 없었다. 허나 누군지 모르지만 아무튼 신을 모시는 곳이었으니 너무 방치되는 것도 조금 뭐하지 않나 싶어 어차피 이곳을 찍은 후에 다시 내려갔기 때문에 잠깐 시간을 내서 소년은 그 근방의 쓰레기를 청소하거나 자라난 풀을 뽑는 등, 조금씩 조금씩 주변을 정리했다.

처음엔 그저 황폐하고 버려진 곳이었으나 이제는 그래도 길거리가 깨끗해진 것을 확인하며 소년은 괜히 뿌듯함을 느꼈다. 누가 시키거나 한 것은 아니고 그냥 오고가다가 너무 지저분한 것 같아 정리를 한 것 뿐이었기에 특별히 뭔가를 바라거나 하진 않았다. 딱히 세전을 넣거나 하는 일 없이 오늘도 그냥 주변을 둘러보고 지저분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만 하던 소년은 가만히 저 아랫경치를 조용히 구경했다. 마을의 일부가 작게 보일 정도로 높은 지대에 퍼져있는 그 맑은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며 소년은 기지개를 쭈욱 켰다.

"그래. 나름 운동도 되고 좋네."

괜히 의미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소년은 가만히 경치 구경에 집중했다. 누군가가 오는 발소리조차 미처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신사에 살고 있는 신이어도 좋고 소년의 친구여도 좋고 그냥 지나가던 이여도 상관없어! 편하게 이어줘! 하지만 난데없이 꼽주거나 참교육 서사는 조금 곤란하니 그렇게 이어지는 경우는 스루할게!

2 이름 없음 (xQKqrIjRGU)

2022-12-31 (파란날) 23:39:16

>>1 한계단 한계단 올라온 이는 갈색고수머리를 말끔히 위로 올려묶은, 이제 갓 20대에 접어든듯한 자그맣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여성이었다. 상기된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서도 숨을 할딱이고 앓는소리를 내는품이 계단오르기에는 익숙지않은 모양이었다. 마지막 계단까지 올라오자 여성은 무릎을 짚고 멈춰서서 숨을 고르더니 푸념조로 혼잣말을 했다. 들어본것도 같지만 알아듣지는 못하겠는것이 외국어같았다. 아마도 한국어? 그러면서도 웃는낯을 유지하던 여성은 이내 산사와 아랫경치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꺼내서는 여기저기 겨냥해보는것으로 보아 사진찍기 좋은 위치를 잡으려는 눈치였다. 이 외딴 신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관광객들에게 유명한건지도 모르겠다.

핸드폰화면에 비치는 풍경을 보느라 주위를 살피는데 소홀했던걸까? 여성은 어느새 소년이 서있는 곳으로까지 움직였고 하마터면 소년에게 부딪칠뻔했다. 그제야 자기만 있는게 아님을 알아챘는지 여성은 깜짝놀란 얼굴이 되어서는 소년을 보다가 살짝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무래도 외국인이다보니 실례를 저질렀을까봐 긴장한 눈치였다.

/신사라니 일본인거 같아서 일본여행중인 한국인으로 달아봤어 괜찮을까?

3 이름 없음 (kJ8MtbJ//I)

2022-12-31 (파란날) 23:50:01

>>2

"......?"

누군가와 부딪칠뻔한 감각에 소년은 살짝 놀라 몸을 옆으로 피했다. 깜짝 놀란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다. 누군지 모를 여성을 바라보며, 정확히는 처음 보는 여성을 바라보며 소년은 여성이 고개를 숙인 것처럼 자신 역시 고개를 숙였다. 여기에 자신 말고 다른 이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기에 누군가가 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 일이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소년의 눈이 자연히 여성이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 향했다. 전화를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사진을 찍으려는 것인지. 아무튼 자신이 있는 이 위치에 볼일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소년은 살며시 옆으로 비키면서 여성에게 이야기했다.

"사진 찍으려고 올라오셨나요? 확실히 여기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긴 하니까요."

여행객인가. 아니면 마을 사람인데 자신이 미처 모르는 걸까. 어쨌든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소년은 경치 사진을 찍을 거면 얼마든지 찍으라는 듯이 저 아래로 보이는 마을 풍경을 손으로 가리켰다.

/물론 그렇게 달아도 괜찮아! 다만 일본배경으로 한 것이 맞고... 만약 한국어만 가능하다고 한다면 서로 의사소통은 안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 일단 소년은 한국어는 못한다..라는 설정이야.

4 이름 없음 (frt72ffx8Q)

2023-01-01 (내일 월요일) 08:56:21

어, 야! (익숙하고 낯익는 목소리가 널 불렀고, 목소리에 맞춰 시야를 겨냥하면 반갑게 웃으며 손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이것 봐라, 예쁘지. (새해랍시고, 신정이랍시고 무슨 일이 있는지 한복을 차려입은 모양새다. 풍성하게 뻗어내린 한복 치마가 혹시라도 제 발에 밟힐까, 인사하던 손과는 달리 치마를 꼭 움켜쥐고 있는 손이 야무지다.) 세배하면 용돈 주나? (키키 웃으며 개구지게 너스레를 떤다.)

5 이름 없음 (8VVawkcHlQ)

2023-01-01 (내일 월요일) 09:18:44

>>4 어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돌아보니 친구가 한복을 입고서 인사하고 있었다. 별뜻없이 마주 손을 흔들었다.) 그러네. 어디 가냐? 잘 다녀와라. (그러고 넘기려다 용돈 운운하는 농담에 피식 웃는다.) 용돈은 어른들께 받고. 새해 복~ (친구의 용무를 방해하지 않겠다는 듯 뒤돌아 손을 흔든다.)

6 이름 없음 (l0HplT6WmI)

2023-01-01 (내일 월요일) 10:02:04

>>3 소년의 말에 여성은 점점 미묘한얼굴이 되었다. 아래를 가리키는 태도나 친절한 어조덕에 자기를 나무라는것이 아님은 느낀듯하지만 어리둥절한것도 같고 난감해하는것도 같은 표정이었다. 한동안 어쩔줄모르던 여성은 이윽고 핸드폰액정을 두드리기 시작하더니 억양도 발음도 어색하기 그지없는 투로 말문을 열었다.

"見てください。"

그러고서 보란듯이 내민 핸드폰의 액정에는 아마도 한국어로 추정되는 문장과 그 문장을 번역한것으로 보이는 일본어 문장이 함께 적혀있었다. 통역앱을 사용한 모양이었다. 여성이 하고자하는 말이 제대로 통역되었을지는 원어민 혹은 그수준으로 일어에 능통한 사람이나 알겠지만 외국인이 동원할수있는 수단은 그정도가 최선일것이다.

'제가 일본어를 전혀 못해서 뭐라고 하시는지 못 알아듣겠어요 죄송합니다
私は日本語が全然できなくて何とおっしゃってるのか聞き取れません。ごめんなさい。'

7 이름 없음 (yin3KdSDGY)

2023-01-01 (내일 월요일) 10:11:25

>>6 어. 여성 쪽에서도 전혀 못하는 상황이로구나. 정말로 미안해. 이렇게 되면 아마 서로 의사소통 자체가 힘들 것 같고 뭔가 더 이어가기가 조금 힘들 것 같아. ;ㅁ; 이어준 것은 고맙긴 한데 이런 상황이 된다면 조금 이어가기 힘들 것 같네. 정말 베리베리쏘리야. ㅠㅠㅠㅠㅠㅠ

8 이름 없음 (l0HplT6WmI)

2023-01-01 (내일 월요일) 10:26:13

>>7 어? 소년은 핸드폰없어? 폰이 있기만하면 통역앱이야 1분이면 깐다고 생각했는데ㅎㅎ 아무튼 알았어 좋은 주말 보내~

9 이름 없음 (VhXMIvWO4E)

2023-01-03 (FIRE!) 16:48:14

>>1 아직 있니? 설정이 무척 흥미롭기도 하고, 이어보고 싶은 캐릭터가 생각나서 아직 의향이 있다면 잇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

10 이름 없음 (RVYd4ea8wo)

2023-01-03 (FIRE!) 16:52:00

>>9 응? 일 없어서 대기하면서 월루중에 이런 레스를 보게 되다니. 있긴 해! 잇고 싶다면 얼마든지 가능!

11 이름 없음 (4nmNx8AEKU)

2023-01-03 (FIRE!) 17:25:29

>>10 앗 다행이다! 고마워:D 그럼 금방 가져올게!

12 이름 없음 (4nmNx8AEKU)

2023-01-03 (FIRE!) 17:39:59

>>1 한발짝 내딛기도 버거운듯 비척거리는 발 소리는, 점점 소년을 향해 가까워졌다. 그 불안정한 걸음이 한발 한발 가까워질 수록, 싱그럽기도 비릿하기도 한 향이 점차 짙어졌다. 이윽고, 한 소녀가 소년의 뒤편에 다가와 섰다. 옛 일본 사람처럼 새하얀 유카타를 입고, 길게 기른 까만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어내린, 작고 가녀린 체구의 소녀였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 그려진 이목구비는 단아하고 선한 인상을 풍겼으나, 반듯하게 자른 앞머리 아래로 드러난 얼굴에는 수심이 그득 어려있었고 까만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촉촉했지만, 생기 없이 퀭했다. 소년의 뒤편에 서서 머뭇거리던 소녀가 바싹 마른 창백한 입술을 열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씀 좀 여쭙겠어요... 혹시, 이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신사를 벌초하신 분은, 당신이신가요..."

13 이름 없음 (4nmNx8AEKU)

2023-01-03 (FIRE!) 17:44:41

>>1 한발짝 내딛기도 버거운듯 비척거리는 발 소리는, 점점 소년을 향해 가까워졌다. 그 불안정한 걸음이 한발 한발 가까워질 수록, 싱그럽기도 비릿하기도 한 향이 점차 짙어졌다. 이윽고, 한 소녀가 소년의 뒤편에 다가와 섰다. 옛 일본 사람처럼 새하얀 유카타를 입고, 길게 기른 까만 머리카락을 단정히 묶어내린, 작고 가녀린 체구의 소녀였다. 그녀의 작은 얼굴에 그려진 이목구비는 단아하고 선한 인상을 풍겼으나, 반듯하게 자른 앞머리 아래로 드러난 얼굴에는 수심이 그득 어려있었고 까만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촉촉했지만, 생기 없이 퀭했다. 소년의 뒤편에 서서 머뭇거리던 소녀가 바싹 마른 창백한 입술을 열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느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말씀 좀 여쭙겠어요... 혹시, 이 일대를 벌초하신 분은, 당신이신가요..."

/잘못 적은 게 있어서 다시 올렸어! 내 정신좀 봐ㅠ 앞에건 스루해줘!

14 이름 없음 (FmoxwxR.EU)

2023-01-03 (FIRE!) 18:57:41

>>13
맑은 공기를 가득 마시며 잔잔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경치를 구경하는 도중이었다. 목소리가 들리고 인기척이 느껴졌다. 뒤로 돌아 목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자 소녀가 한 명 서 있었다. 새하얀 유카타를 입고 묶어내린 긴 검은 머리카락의 소녀를 바라보며 소년은 순간 두 눈이 동그랗게 뜨고 두 눈을 깜빡였다. 단정한 인상을 지니긴 했으나 얼굴이 퀭하고 창백한 느낌을 주고 있어 혹시 어디 아픈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 탓이었다. 우선 들려온 물음에 소년은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벌초..라고 해야할진 모르겠지만 너무 지저분하고 버려진 것 같아서 청소하고 오고 가면서 정리한 것은 제가 맞긴 해요. 아. 혹시 하면 안되는 거였나요?"

소유하고 있고 관리하고 있는 이가 있었기에 자신이 멋대로 정리하거나 하면 안되는 것이었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소년은 살짝 긴장어린 표정을 짓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소녀에게 물었다.

"그건 그렇고 괜찮으세요? 뭔가 상당히 퀭한 느낌이어서. 몸 아프거나 그런 건 아니죠?"

정말로 순수하게 걱정어린 눈빛과 목소리를 내며 소년은 소녀를 빤히 바라봤다.

/이어준 거 잘 받았어! 퇴근하면서 나도 이어볼게!

15 이름 없음 (PrXcSXuCck)

2023-01-03 (FIRE!) 19:57:35

>>14 소년의 긍정에, 소녀의 새카만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에 그녀가 나타남과 동시에 진동하던 풀비린내와 함께, 어딘가 서늘하고 습한 공기가 감돌았다. 소녀는 비틀거리다, 자신을 걱정하는 소년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울음기가 가득 밴 목소리로 탄식했다.

"아아... 당신이군요. 당신이었군요... 당신이, 그 손으로... 내 어버이를, 내 친우들을..."

울음으로 가빠진 숨을 토하던 소녀는, 몸을 가누는 것도 버거운지 그 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털썩, 하고 인간의 육체가 땅에 허물어지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소녀는 그저 눈물을 흘리며 소년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우리는 그저, 뿌리 내린 곳에서 살다 시들고 싶었습니다...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단 한 철만..."

손으로 얼굴을 가릴 힘도 없는 듯, 떨리는 팔로 땅을 짚고서 조용히 흐느끼던 소녀는 눈물에 젖은 하얀 얼굴에 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당신을, 탓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리 한다 해도... 돌아오지 않겠지요... 내 어버이도, 내 친우도... 당신의 얼굴이라도 보고자... 스스로 끊어버린 나의 뿌리도... 이 또한 운명인 것을..."

16 이름 없음 (FmoxwxR.EU)

2023-01-03 (FIRE!) 20:21:18

>>14
순간적으로 소년은 이 소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이 뭘 어쨌단 말인가. 어버이와 친우들을 자신의 손으로 어떻게 했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그 광경에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소년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주저앉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인간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서 시들고 싶었다는 말에 더더욱. 혹시 이 사람. 뭔가 이상한 거 아닌가 생각을 하며 소년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입을 열었다.

"아, 아니. 그렇게 이야기를 해도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그러니까 제가 이곳을 청소하고 정돈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인가요? 그러니까 어버이와 친우들이 문제가 될 정도로?"

끊어버린 자신의 뿌리라던가. 그런 말을 하는 모습에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일단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긴 했으나 역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끄응 소리를 내던 소년은 조심스럽게 소녀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저기. 제가 뭘 어떻게 해주면 되나요? 그러니까 저를 탓하지 않겠다고 말을 하시는데... 일단 여기를 정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나요?"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풀비린내. 그리고 서늘하고 습한 공기. 갑자기 뭔가가 변한 것 같다고 느끼긴 했으나 그 상황의 변화의 원인을 소년이 아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말하는 내용을 보아 자신이 이곳을 정리하고 청소를 한 것이 원망스럽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에 소년은 그렇게 확인을 하려고 했다.

17 이름 없음 (SA3vjK/Sdg)

2023-01-03 (FIRE!) 20:54:22

>>16 영문을 모르겠다며 당황하는 소년의 말에, 소녀는 내리깐 눈에서 눈물을 떨구면서도, 한층 차분해졌으나 동시에 조금 전 보다도 가늘어진 목소리로 나지막이 대답했다.

"인간의 아이여, 나는... 당신이 그 손으로 뽑아낸 풀들의 자식이요, 친우입니다... 나는 살아남았으나... 나의 어버이와 친우의 생을 거두어간 그대의 얼굴이라도 보고자... 그 이유라도 듣고자, 나의 뿌리를 끊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부질 없군요..."

땅을 짚은 소녀의 가느다란 팔이 한차례 떨리더니, 그녀는 쓰러지듯 땅에 누웠다. 앉아있는 것조차도 힘에 부치는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가쁜 숨이 섞여 색색거렸고, 작은 몸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이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대에게,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대가, 우리를 내버려둔다 한들... 우리가 자라나면, 다른 인간이 우리를 정리하겠지요... 나의 청만으로, 당신의 변화만으로는... 막을 수 없는, 섭리인 겁니다... 지금은, 그저... 내세에서... 모두를 만나고 싶습니다... 단 한번, 마지막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웃던 소녀는,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고, 동시에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다. 소녀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뿌리채 뽑힌 채로 시들어버린 덜 자란 풀잎 한 포기 뿐이었다.

/짜잔 막레야! 나는 이 설정에 흥미가 있어서 열심히 써봤는데 너참치한텐 어땠는지 모르겠네. 짧으나마 재밌었길 바라. 잇게 해줘서 고마웠어!

18 이름 없음 (FmoxwxR.EU)

2023-01-03 (FIRE!) 20:58:15

>>17 역시 풀의 정령? 신?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구나. 어쩌다보니 소년이 정말 못된 짓을 해버렸구나. 아이고. 내세에서 저 소녀가 졸지에 뽑혀버린 친우나 그런 이들을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
짧았지만 상당히 강렬한 뭔가였어!! 이어줘서 고마웠어!

19 이름 없음 (jqEINQpW9U)

2023-01-04 (水) 01:34:15

절망의 순간이 끝났고 희망의 순간이 찾아왔다. 세계를 파멸시키려고 했던 존재는 세계를 구하고자 모여든 용기있는 젊은이들의 손에 무너졌고 세계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이 세계의 수많은 종족들이 모두 하나되어 평화를 기뻐했고 다시는 어둠과 절망이 찾아오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종족간에 서로 협력을 하고 조화를 이루고 살아가자는 조약이 맺어졌다. 이 평화가 오래갈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평화를 기뻐하며 노래하고 춤추며 즐겁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이 많았다.

수많은 이들이 세계를 파멸시키려고 했던 존재에 맞서 싸웠으나 그 중 최선봉에 섰던 이들은 영웅으로 인정받고 수많은 사람들의 감사를 받으며 존경의 눈빛을 받았다. 제국에선 그들의 공을 인정하고 수고를 치하했다. 앞으로의 여생을 고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황제의 약속이 있었으며 수많은 이들이 그에 동의했다.

"다 좋긴 한데 이제 나는 어쩔까 고민되네."

사내는 원래 사냥을 하면서 살아가던 이였다. 이른바 몬스터나 짐승을 사냥하고 그에 대한 부속물을 팔면서 살아가던 젊은 사냥꾼이었다. 허나 세계를 파멸시키려고 했던 존재가 이끌던 세력에 의해 마을이 불타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돌아갈 고향이 없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수많은 존재를 모두 멸해버리고 이 세계를 무로 돌려버리고자 한 그들의 야망을 당시 죽을 뻔 했던 자신을 구해준 이들에게 듣고 그 야망을 막고자,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친구들의 복수를 하고자 합류했고 이 세상을 구한 후, 영웅으로 추대받은 것은 좋았으나 문제는 이제 뭘 하느냐였다.

물론 황가의 말이 있었으니 원한다면 이 수도에서 살아가는 길도 있었고 사내는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고생하는 일 없이 정말 편하게 살 수 있을테니까. 허나 그럼에도 이곳의 시끌벅적하고 북적북적한 분위기는 영 익숙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었다. 사내가 살았던 고향은 사람이 적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한적하고 평화로운 곳이었으니까. 굳이 말하자면 사내는 그런 분위기가 조금 더 취향이었다.

"너는 어쩔거야? 이제 더 싸울 일도 없고, 그냥 말 그대로 평화잖아."

자신과 같이 싸운 동료 중 한 명. 우연히 지금 이 위치에서 만난 제 동료를 바라보며 사내는 가벼운 어조로 그렇게 물었다.


#간단하게 용사 일행이 있었고 세계를 구했고 다 끝이 났고 파티원 중 한명이었던 사내가 앞으로 어쩔까 고민을 하다가 동료 중 한 명에게 말을 건 그런 장면이야.

#동료 중 한 명이 누군지는 자유롭게 설정해도 괜찮아! 하다 못해 황가의 사람이라도 괜찮고 파티를 이끌었던 리더여도 괜찮아. 사내와 유독 친했던 존재라도 얼마든지 괜찮아.

#다만 서로 티키타카가 가능한, 핑퐁이 가능한 존재였으면 좋겠다 싶어. 어쨌건 같이 목숨 걸고 싸운 동료니까 말이야.

#아무튼 자유롭게 잇기 가능!

20 이름 없음 (eX4bNOqCaw)

2023-01-04 (水) 02:47:19

>>19
한때 세계는 무겁고 어두운 절망의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모든 부정한 것들로 이루어진 존재는 무자비하게 지상을 유린했다. 너무나 강대한 존재 앞에 모든 것이 미약했기에 다시는 저 구름이 걷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떤 구름이라도 빛을 영원히 막을 수는 없으니. 희망이라는 이름의 빛을 짊어진 이들로 인해 세계는 평화를 되찾았다.

가장 앞서서 가장 격렬한 전투를 치른 이들을 세상은 영웅이라 부르며 칭송했다. 제국의 황제는 일생 써도 부족할 재물과 그들의 영예를 두고 두고 기리는 것을 약속했다. 비록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그들 역시 충분히 자격 있는 이들이었다. 그녀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나? 나는,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말야."

거리 곳곳마다 기쁨의 노래가 연이어 흐르는 와중에 파티원이었던 그가 물어왔다. 그녀는 이제 어떡할 거냐고.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딱히 생각해두지 않았다고.

"직업적 의무를 위해 신전에 곧이 곧대로 돌아가는게 제일 편하겠지만. 왠지 그러기는 싫으네."

그녀는 파티에서 유일하고 유능한 마법사이자 성직자였다. 다소곳하고 여려보이는 외모와 달리 긴 여정 동안 후방을 든든히 지켜주고 때로는 앞서 공격을 하기도 하는 당찬 성격이었다. 성직자 특유의 고지식함도 없어 덕분에 파티원들과는 두루두루 친했고 이 사내와도 그리 나쁘지 않은 사이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 참에 신관직 내려놓고 속세로 돌아가볼까 고민은 드네. 그러는 너는 뭐 할지 생각 해봤어?"

먼저 물음을 받기도 했고 그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해서 그녀는 질문을 되물어봤다.

21 이름 없음 (4MVIE9cqkw)

2023-01-04 (水) 10:14:12

익명의 P로부터 온 휴대폰 메시지

[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
[ 배틀에 참가하시겠습니까? ]

22 이름 없음 (7xpz08bAgc)

2023-01-04 (水) 16:26:34

>>21
(내가 얼마나 잤더라? 손에서 느껴지는 진동감과 열기에 잠을 깨니, 손에 쥔 핸드폰 화면이 켜져있었다. 눈을 부비고서 홀드를 해제하니 모르는 번호로 메세지가 와있었다. 확인해보니, 무슨 능력자 배틀물에서 주인공이 받을 법한 내용이었다. 스팸인가보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번호를 꾹 눌러 수신차단을 걸고 번호를 지운 뒤, 배게에 얼굴 묻었다. 피곤해죽겠다. 더 자자.)

23 이름 없음 (8wYomYyJQY)

2023-01-04 (水) 17:59:53

>>22

(텔레비전 뉴스에서 방송이 흘러나온다.)

'최근 의문의 연쇄 뇌사 사건이 일어나...'
'확인된 피해자만 20명 이상'
'직업군도 학생, 전문직, 무직자, 사회초년생으로 다양'
'당국에서는 약물중독, 정신건강 문제로 보고 수사중입니다.'

24 이름 없음 (7xpz08bAgc)

2023-01-04 (水) 18:29:10

>>23 음... 미안한데, 이 답레 내용이 무슨의민지 모르겠어. 혹시 내 캐 포함 스무명이 연쇄뇌사했다는 뉴스인거야?

25 이름 없음 (4MVIE9cqkw)

2023-01-04 (水) 18:31:44

>>24 아니아니! 자고 있는 사이에 저런 뉴스가 나오고 있단 뜻이야! 너 참치 캐를 내가 갑자기 왜 죽여 ㅠㅠ

26 이름 없음 (7xpz08bAgc)

2023-01-04 (水) 18:46:27

>>25 아 그랬구나; 갑자기 사람죽었다는 뉴스만 딱 나오길래 데드엔딩인가했어ㅎㅎ

27 이름 없음 (4MVIE9cqkw)

2023-01-04 (水) 18:51:10

>>26 아 너 참치 놀랐겠다 ㅋㅋㅋ 그 배틀에 관한 떡밥 같은거야! 음 아무래도 시작이 배틀물이 보고싶어 쓴 레스이긴 해서... 결국 배틀에 참여하거나 그쪽과 관계되는 반응을 보여줘야 진행이 가능할거 같은데, 괜찮겠어? 어려우면 여기서 마무리하구!

28 이름 없음 (i55TGJ5hak)

2023-01-04 (水) 19:14:07

>>27 음, 배틀물 참가는 자기가 허약한 거 잘 아는 쫄보라서 어려울 것 같고, 친구나 지인이 거기에 참가했다가 저 뇌사자 20명 안에 들어서 엄청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반응으로 이으려고 같은데, 그건 괜찮을까?

29 이름 없음 (4MVIE9cqkw)

2023-01-04 (水) 19:16:33

>>28 아 가능할 거 같아! 그럼 혹시 직접 전투가 아닌 서포트나, 진상파악에 중심을 두고 스토리 전개하는 건 괜찮을까? 쫄보라니 귀엽다 ㅋㅋ

30 이름 없음 (i55TGJ5hak)

2023-01-04 (水) 19:30:10

>>29 고마워ㅎㅎ 그냥 겁쟁인데 좋게봐주니 기분 좋네. 그래준다면 나야 고맙지. 근데 너참치가 생각했던 스토리랑 많이 벗어나진 않는지 걱정이 되네. 혹시 다른 스토리를 원하면 내 레스는 스루해도 괜찮아! 편히 말해줘:)

31 이름 없음 (4MVIE9cqkw)

2023-01-04 (水) 19:33:15

>>30 내가 생각한 기본 뼈대는 있으니까 나머지는 맞춰가도 괜찮을 거 같아! 이 뒤에 적당한 타이밍에 내 캐도 등장시킬게 ㅋㅋ 잘 부탁해!

32 이름 없음 (jqEINQpW9U)

2023-01-04 (水) 19:52:41

>>20

딱히 생각해 본 것은 없다고 이야기를 하나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계획을 짠 것 같았기에 사내는 제 동료의 말을 들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하나 의외인 것은 신관직을 내려놓고 속세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전까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아직은 고민단계인 것 같았으나 다른 길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보다 훨씬 더 앞을 생각하는 것 같아 사내는 쓴 표정을 지었으나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

"글쎄.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돌아갈 곳이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봐야 이미 다 불타고 남은 마을터만 있을테니 거기로 돌아갈 순 없잖아?"

물론 그곳에서 통나무 집 하나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나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아봐야 대체 뭘 하겠는가. 죽은 마을 사람들은 모두 수습되어 공동묘지에 묻혔기 때문에 무덤을 보러 간다는 핑계거리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이어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사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가벼운 어투로 얘기했다.

"이대로 이 수도에서 살지, 아니면 원래 내가 살던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을 찾아가서 앞으로 여기서 살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사냥꾼 일을 하면서 다시 살지. 영 답이 안 나와. 그래서 참고겸 너에게 물었던 거야. 너를 포함해서 다른 이들은 어떨까 했거든. 아. 대충 들어보니 리더는 이 수도에서 이 제국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 같더라. 하긴 워낙 정의감이 뛰어나야 말이지."

자신이 포함되어있던 파티를 이끌던 리더를 떠올리며 그 자라면 확실히 그러고도 남는다고 스스로 납득하며 사내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정말 이런저런 일이 있었고 너도 나도, 다른 이들도 어떻게 또 잘 살아남은 것 같네. 고생했어. 근데 정말로 신관직을 내려놓고 살아도 되는거야? 그러니까 그 일을 하면서 쭉 살았잖아. 아니. 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은 하던 일이 익숙한 법이잖아?"

33 이름 없음 (eX4bNOqCaw)

2023-01-04 (水) 22:24:57

>>32
앞으로 어떡할거냔 물음을 받은 그는 여러모로 고민 중인 대답을 내놓았다. 불탄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 정착하자니 갈 곳도 마땅치 않고, 참 복잡한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러니 얘기하는 말투는 가벼워도 속은 그렇지 않겠거니 그녀는 생각했다.

"네 사정이면 고민 될 만 하지. 속 참 복잡하겠어. 음? 아 그래? 리더 답네. 그 정의감 아니었으면 나도 이 파티 안 들어왔을텐데 말야."

파티의 리더였던 이의 얘기가 나오길래 그녀도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간이라면 그럴 법 하다. 그러지 않는게 이상하고. 그렇게 정의감이 차고 넘치는 인간이 아니었으면 그녀가 전장에 나가겠노라 나서는 일도 없었을 거고 말이다. 그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다 끝난 뒤라니. 시간 정말 빠르다.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그녀는 옆에서 들리는 그의 말에 퍼뜩 정신을 되돌렸다.

"으음? 그치. 네 말도 맞긴 한데, 나는 하고 싶어서 신관을 했던 건 아니라서. 그래서 별 미련이 없나 봐. 그리고 말이지."

그의 말투처럼 가볍게, 혹은 무언가 내려놓은 것처럼 허하게 말을 하던 그녀가 목소리를 줄이며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 조금 가까워진 정도가 아니라 귓속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그리고 정말로 발돋움을 하고 그에게만 들리게 소곤소곤 말했다.

"신전엔 워낙 머리 굳은 어르신들이 많아서, 돌아가면 영웅이랍시고 엄청나게 부려먹힐게 뻔하거든!"

신관이 하기에는 불경하지만, 여정 동안 보였던 그녀의 성격으로는 잘 맞는 말이었다. 얼른 말하고 옆으로 물러나서 쿡쿡 웃는 행동도 말이다.

"그리고 품위니 뭐니 얼마나 귀찮게 하는데! 너는 상상이나 돼? 내가 그 금과 보석으로 반짝반짝하는 성의를 입고 신관좌에 얌전히 앉아서 하루 종일 신도들 기도 들어주고 있는 모습이? 어우. 난 상상도 하기 싫다. 못 참지 못 참아."

질린다는 듯이 부르르 떨고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 그녀는 휴,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34 이름 없음 (jqEINQpW9U)

2023-01-04 (水) 22:36:39

>>33

"그 사정은 처음 듣는 것 같네. 리더가 파티를 이끌었기에 여기에 들어온거야? 나는 리더가 구해준 것도 있고, 마을의 복수를 위해서 같이 다닌 거지만. 역시 리더가 영향력이나 사람 이끄는 뭔가가 있긴 하다니까."

생각해보면 그 정도의 카리스마나 영향력이 있어야 그런 위험한 싸움에 동참하는 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사내는 생각했다. 이를테면 자신 같은 이가 같이 세계를 구해보자! 라고 말한다고 한들 과연 몇이나 따라오겠는가. 어림도 없지. 없고 말고. 그렇게 생각하며 사내는 괜히 키득키득 소리를 내며 웃었다. 딱히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역시 리더에 비하면 자신은 살짝 스펙이 아래인 것은 사실이었기에.

아무튼 제 동료가 자신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하자 사내는 절로 응? 하는 표정과 생각을 하며 귓속말에 집중했다. 이어서 들려오는 말에 사내는 절로 우와 하는 표정과 생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곳이라면 아무래도 그런 어르신들이 많기야 하겠지만 보통 이렇게 이야기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딱히 부정하거나 할 생각은 사내에겐 없었다. 그럴 수 있지. 있고 말고.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데 그런 신관 하나 있어도 이상할 거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을 들으면서 대체 넌 어쩌다가 신관을 하게 되었는지 절로 궁금해졌어. 아무리 생각해도 적성 안 맞는 거 아니야? 아니. 하지만 그래도 적성이 아예 안 맞으면 시작도 하기 힘들었을텐데. 하긴, 하다보면 어떻게든 되는 법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나도 처음에 사냥꾼 일 할 때 허탕만 치면서 참 이게 맞나 싶었을 때도 많았고."

지금이야 나름 실력이 있고 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할 수 있었으나 초기의 자신을 떠올려보면 그야말로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라고 사내는 생각했다. 그 흔하고 약한 슬라임 하나 사냥을 제대로 못해서 도망쳤던 과거의 자신은 지금의 자신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지. 괜히 키득키득 웃으면서 사내는 두 손으로 깍지를 낀 후 제 뒷통수에 대며 하늘을 바라봤다.

"그렇다면 좋건 싫건 조만간에 다 헤어지게 되겠네. 나야 좀 더 생각을 해보려고 여기에 며칠 있긴 할 거지만 말이야. 마침 황가에서 당분간은 지금 쓰는 숙소를 마음껏 써도 좋다고 했으니 이용할 것은 이용해야지. 너는 조만간에 여길 떠날거야? 아니면 며칠 더 있을 거야?"

35 이름 없음 (eX4bNOqCaw)

2023-01-04 (水) 23:23:30

>>34
"음. 그러니까 리더가 신전에 와서 동료를 구하면서 하는 말을 듣고 아, 이 녀석은 터무니없는 용사형 인간이구나, 싶더라고. 그런데 그 뒤를 따라가보는게 지겨운 신전보다 낫겠다 싶더라. 저렇게까지 말하는 인간이 뭘 해낼지 궁금해지잖아. 리더가 구하는 조건에 맞는게 나 밖에 없기도 했어."

당시 신전에서 가장 실력이 출중한 건 그녀였으니 자연스럽게 발탁될 일이었지만 지명되기 전에 자원했었다. 더는 누군가의 떠밀림에 뭔가를 하고 싶지 않기도 했었다. 그 때의 생각이 지금에 이르러서 신관직을 내려놓는단 선택지를 만들기도 했다.

그녀가 남몰래 속삭인 말에 잔소리 한두마디쯤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그는 그러려니 넘겼나보다. 대신 왜 그녀가 신관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던가 말하더니 혼자 중얼중얼 떠든다. 그런 그를 지그시 보던 그녀는 허리에 손을 척 얹으며 투덜거렸다.

"야. 궁금한 걸 묻던지 네 얘기를 하던지 하나만 말을 해. 혼자 이랬다 저랬다 뭐래는 거야? 나 확 가버린다?"

이 이상 말상대를 해주지 않고 가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으며 말하던 그녀. 그러다가도 그녀는 언제 떠날 거냐는 물음에 그를 따라하듯 하늘을 보며 대답했다.

"나도 당분간은 있어야 해. 신전에서 제적하려면 여기 수도에서 해야 하고, 프리 모험가로 등록이라도 하려면 길드 본부가 있는 곳에서 하는게 편하잖아. 듣자하니 대륙 곳곳엔 아직 잔재가 남은 곳도 있다고 하니까. 그거 치우는 일이나 하고 다녀도 밥벌이는 되지 않겠어? 그러다 좋은 곳 찾으면 정착하면 되고."

꼭 당장 정착지를 찾을 필요가 있냐는 투로 말한 그녀는 잠시 말없이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뭉글뭉글 흐르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별 의미 없는 듯이 툭 말했다.

"앞으로 뭐 할지 말고, 하고 싶은 건 없어? 이제 의미 없이 죽을 만큼 위험할 일도 없잖아."

36 이름 없음 (jqEINQpW9U)

2023-01-04 (水) 23:49:33

>>35

"하나만 해야한다는 법은 없잖아. 원래 이렇게 이런저런 말을 하고 그러는 거지."

투덜거리는 제 동료의 목소리에 사내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역으로 투덜거렸다. 물론 진심으로 기분이 나쁘다거나 화가 났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장난스럽게, 그 와중에 또 가볍게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서 사내는 정말로 물어볼까 살짝 생각을 하다가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어찌되었건 그녀도 당분간은 여기에 있는다고 하니 바로 헤어지거나 얼굴이 안 보이거나 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확실한 것은 제 동료는 신관을 그만둘 것이 확실해보였다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저렇게 이것저것 생각을 하는 것을 보면 특히나 더. 신전에서 과연 무슨 말들이 오갈지 궁금해졌지만 자신이 구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사내는 괜히 아쉬운 표정을 무언으로 지었다.

"하고 싶은거라. 이전에는 먹고 살고 마을을 몬스터에게서 지키기 위해서 사냥을 했고 그러다가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해야겠다 싶어서 싸움에 끼어들었고 그렇다보니 막상 떠오르는 것이 없네. 와. 나도 참 너무 바로 앞만 보고 살았다 싶어."

이거 안 좋은 버릇이라는데. 키득키득 웃으면서 사내는 살짝 근처 벽으로 걸어간 후에 조심스럽게 기대면서 침묵을 지키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좋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세상을 둘러보는 것이기도 하니 말이야! 뭔가 이전에는 싸우기 위해서 여기저기 다닌다고 제대로 구경도 못했잖아? 그러니까 지금은 뭔가 편안하게 관광도 가능할 것 같고 말이야. 아. 이러다가 어디 좋은 길드에 소속되어서 길드장을 노려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이 있을지, 현실성이 있을지도 알 수 없는 그런 말들만 괜히 주절주절 이야기하던 사내는 눈을 감고 피식 미소를 지었다.

"우연히 널 마주치는 날이 또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지내다보면 말이야."

37 이름 없음 (ircQgoKlLI)

2023-01-05 (거의 끝나감) 02:43:00

>>36
한마디도 지지 않는 그의 대꾸에 그녀도 익숙한 듯 어련하겠냐고 똑같이 투덜투덜 했다. 파티를 맺고 같이 지낸 시간이 하루이틀도 아니었으니까 파티원들과 이 정도는 그냥 일상이었다. 곧 추억으로만 남을 옛 일이기도 하고. 아무튼 더 물으면 본인 얘기나 해줄까 했는데, 따로 질문이 없는 걸 보면 저것도 그냥 해본 소리였나 보다. 참 나. 그럴 거면 말로 꺼내지나 말지. 그녀는 괜히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째려보다가 그가 자리를 옮기자 따라서 몸을 돌렸다.

"앞만 보고 사는게 뭐 어때서. 이제부터라도 사방 돌아보면서 살면 되지."

그녀는 벽으로 가지 않고 그를 마주보는 방향에 서서 스스로 팔짱을 끼고 말했다. 나쁘건 아니건 지금 잘 되었으면 되는 거 아니냐며 어찌 보면 속 편한 소리를 참 가볍게도 말했다. 그가 세상을 돌아다니며 둘러보거나 관광을 한다거나 얘기를 하자 그거 괜찮네, 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거 봐. 그렇게 할게 많은데 무슨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거야? 넌 아무튼 평소에도 그렇고 전투 때도 그렇고 생각이 많아서 탈이야. 실전에서 너 케어해주느라 진 빠진 날이 절반 이상일 걸!"

어휴! 요란한 소리 내며 고개를 또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그녀의 말엔 그를 탓하거나 진심으로 나무라는 투는 없었다. 그녀가 그를 케어했던 만큼 그도 파티의 한 명으로써 역할을 충실히 했었다는 걸 잘 아니까.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농담 같은 거랄까. 그저 가볍게, 지난 날을 돌아보듯 얘기하던 그녀가 잠시 말을 주저했다.

"그...을쎄다. 어쩌면 아예 없을 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딜 갈 줄 알고?"

그가 세상을 돌아다니던 중에 마주치는 날이 있을 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말한 후에 아리송하고 의미심장하게 그녀가 대꾸했다. 대꾸하고 볼을 긁적인다. 시선도 아래로 내리고 무슨 생각인가 골몰하는가 싶더니, 다시금 말을 툭 던졌다.

"너어... 혼자는 외로울 지도 모르니까, 같이 가줄 수도 있는데? 돌아다니는 거? 아 싫음 됐고!"

물었으면 대답할 틈이라도 줘야 할 텐데, 틈도 안 주고 싫음 말라며 다다닥 쏘아붙이더니 홱 돌아서 등을 보였다. 그대로 자리를 떠나지도 않고, 그냥 돌아서서 그 앞을 보고 있는 것처럼.

38 이름 없음 (U.sbxN7BLM)

2023-01-05 (거의 끝나감) 13:04:44

>>31 참치야, 내 캐릭터의 여건을 고려해서 노선을 변경해주려고 해줘서 고맙고 이렇게 말하게 돼서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아. 답변 듣고 답레를 써보려고 했는데, 평범한 겁보인 내 캐릭터가 어떻게 전문가들도 힘을 못 쓰는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게 되는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나더라구ㅠㅠ 배틀물 캐릭터의 서포트를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잘 모르겠구... 그래서 못할 것 같아 미안ㅠㅠ 다른 좋은 상대 구하길 바래ㅜㅜㅜ

39 이름 없음 (kP4fMusBSo)

2023-01-05 (거의 끝나감) 13:59:11

>>38 응 그래도 얘기라도 해줘서 고마워~ 연초 잘보내!

40 이름 없음 (7/Tt2eAJbk)

2023-01-05 (거의 끝나감) 17:29:41

>>21
혹시 괜찮으면 내가 이어봐도 될까?!

41 이름 없음 (U4eyENFjEg)

2023-01-05 (거의 끝나감) 18:54:18

>>37

"와. 이건 좀 억울하네? 내가 활약한 것도 많고 다른 파티원들 구해준 적도 많았거든? 숲을 이동하거나 할 때 바로바로 파악해서 알려준 것이 누구인데 이래."

당연하나 이 항변 또한 진심으로 화가 나서 항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파티원들끼리 가볍게 할 수 있는, 정말로 가벼운 티격태격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 친분이 있기에 가볍게 투닥거릴 수 있는 무언가. 그 분위기는 모든 것이 끝난 지금에서도 크게 변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내는 괜히 키득키득 웃었다.

"어디 갈 줄 모르니까 우연히 마주칠 수 있는 거 아니야? 세상이 넓다고 해도 무한대로 펼쳐진 것도 아니니까. 못 만나면 어쩔 수 없지."

그럼 거기까지인 것 아니겠는가. 아무리 모험을 같이 하고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동료라고 해도 영원히 함께 있을 순 없었다. 당장 리더만 해도 다른 길로 걸어가려고 하고 다른 파티원들도 이제 하나둘 다른 곳으로 떠나고 다른 길을 걷게 되지 않겠는가. 물론 같이 있을 수 있는 이도 있겠지. 나중에 소식이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와중 제 동료의 뭔가 쏘아붙이는 목소리와 행동에 사내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같이 돌아다니자고? 나야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누군가와 같이 돌아다니는 것이 좋긴 하니까 상관없어. 아. 하지만 나, 맨 처음은 고향이 있었던 곳으로 갈 거야. 물론 가도 아무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다 끝났으니 보고는 할까 싶어서. 물론 묘지가 있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을 사람들에게 보고를 하려면 거기가 제일 낫지 않을까 싶어."

모두를 죽여버린 그 녀석들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복수를 갚는데 성공했다. 그 보고만큼은 확실히 하고 싶었기에 적어도 그곳에는 꼭 한 번 가보긴 할 거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사내는 쭉 기지개를 켰다.

"그렇다면 네가 대충 신전에서의 일이 다 정리되면 그때 얘기해줘. 나는 늘 쓰는 그 숙소에서 신세를 좀 지고 다른 멤버들도 만나고, 리더하고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볼까 싶거든. 같이 다닐 거면 네가 정리할 때까진 기다려줄게."

42 이름 없음 (.MAf.dV0BM)

2023-01-05 (거의 끝나감) 20:04:16

마을은 축제로 시끌거린 지 한참이다.

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한 지 시간이 꽤 지났으니, 아마 곧 있으면 불꽃이라도 잔뜩 터뜨린 뒤 파할 것이다.
값싸지만 제법 맛있는 냄새를 풍겨대는 음식 노점들과, 장난감이나 뽑기 상품따위를 들고 뛰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흥겨운 분위기를 더해가며 축제는 점점 무르익어가고.

그러나 아무리 즐거운 축제라 해도 소란스러운 곳에 오래도록 있으면 기가 빨리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기 마련이다. 여기, 신사 근처 수풀에 웅크려 마을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가 그랬다. 화려한 축제 등불 밑에 물들어 다른 이들과 함께 즐거운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그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소담스런 축제의 불빛더미를 관찰하는 게 좋다. 이따금씩 작은 거리를 손 안에 담아내면 꼭 마을과 닮은 작은 미니어처를 만들어낸 것만 같기도 했다.

게다가 불꽃놀이도 여기서 보는 게 훨씬 더 잘 보인단 말이야. 아니, 그런데..

"아우, 모기! 가려워 죽겠네 진짜!"

...이렇게, 감상에 젖을 만 하면 그것들을 엉망진창으로 깨부숴버리는 모기 몇 마리를 호들갑으로 쫓아내기를 벌써 수십 분 째.
간지러운 곳을 찰싹 때리거나 벅벅 긁거나 하며 종종 신사로 통하는 계단 아래쪽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무래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슬슬 올 때가 되었는데. 이번에는 꼭 놀래키고야 만다. 올해는 또 당하기만 하지 않으리라! 마음 속으로 굳은 결의를 다지며 조용히 웅크려 계단 아래쪽을 살폈다. 거기에 인영이 가물거릴 때까지.

43 이름 없음 (ircQgoKlLI)

2023-01-05 (거의 끝나감) 21:53:31

>>41
언제 어디서 마주칠 지 모른다는 건, 달리 표현하자면 다신 마주치지 못 할 수도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대륙은 넒고 각자 어디로 향할지는 자신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녀는 그게 싫었던 것 같다. 리더도, 다른 파티원들도, 모두 뿔뿔히 흩어져가는게 싫었던 것 같다고. 위대한 업적으로 영웅이라 불리고 많은 재물을 얻은들 마음이 채워지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너, 네가 상관없다고 분명히 말 했다? 네가 대답한 거야?"

홱 돌아섰던 그녀는 그의 대답에 슬그머니 돌아보고 중얼거렸다. 그가 그러라 했으니 나중에 딴 소리 하지 말라고. 그렇게 원하는 대로 되었으니 만족스러워 보일 법도 한데, 불만이 남았는지 입을 삐죽 내밀고 혼자 궁시렁댄다. 워낙 작은 소리라 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잠깐이기도 했고. 곧 표정을 누그러뜨린 그녀가 어깨를 작게 으쓱이며 말했다.

"먼저 갈 곳이 있다면 거기부터 가는게 나을 테지. 어딜 가든 갈 곳은 다 갈 테고. 음. 그럼 당장 내일 신전에 가서 대신관이랑 담판 짓고 나와야겠네. 영감탱이 말발 이기려면 애 좀 먹겠지만 어떻게든 되겠지."

대신관을 서슴없이 영감탱이라 칭하며 에휴, 긴 한숨을 내쉰 그녀는 성큼성큼 걸어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아 당기려 하면서 처음과 같이 쾌활하게 떠들었다.

"앞으로 뭐할지도 정했으니까 가서 술이나 마시자. 남들 다 축배 드는데 우리만 빠지는게 말이 돼? 잔말 말고 빨리 따라와! 리더 녀석 어디서 마시는지 알고 있으니까 거기 끼자구!"

파티 중에 포상 제일 많이 받은게 리더 아니냐고, 다 떠나기 전에 실컷 얻어먹고 가자고 말하며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려 했을 것이다.

44 이름 없음 (U4eyENFjEg)

2023-01-05 (거의 끝나감) 22:20:51

>>43

"그렇지. 내가 말했지. 무슨 문제라도 있어?"

혼자 다니는 여행길보다는 다른 누군가가 있으면 외로운 법이 없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다니기에는 역시 아는 이가 좋았다. 그게 그녀이건 다른 이건. 적어도 이렇게 되면 당분간 심심하진 않겠다는 식으로 사내는 정말로 가볍게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다. 응. 역시 누군가와 같이 다니는 것이 좋았다. 이런 티격태격하는 분위기도 그에게 있어선 이제는 언제나처럼 있었던 일상에 가까웠으니까.

"내일 바로? 그렇게 급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아? 당장 내일 전쟁터로 가야 하는 것도 아닌데. 갑자기 내일 아침 세상이 멸명하는 것도 아니잖아? 천천히 해도 돼. 천천히. 아. 물론 빠르게 결판을 내겠다면 그건 네 자유긴 한데. 아무튼 잘되길 바랄게."

뭔가 꽤 힘들어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아는 저 신관이라면 스스로의 힘으로 잘 할 수 있겠거니 생각을 하며 사내는 사내 나름대로 모든 것이 정리된 후에 어디로 갈지를 고민했다. 역시 맨 처음은 불에 타서 이제는 없어진 자신의 마을이었다. 그 다음에는... 물이 정말로 많아서 물의 도시라고 불리던 그곳으로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조금은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계획을 짰다. 이후에는 같이 다닐 이가 또 생기면 다 같이 이야기를 해서 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사내는 자신의 팔을 잡아당기는 제 동료의 움직임에 맞춰 앞으로 걸었다.

"하하. 그건 그렇지. 다 같이 함께 얻어낸 평화인데 먹을 건 먹어야지. 이 축제 분위기가 얼마나 갈진 알 수 없으니 말이야. 그럼 안내 부탁할게. 난 리더가 지금 어디에 있는진 모르겠으니까. 제국 귀족 분들과 같이 있으려나?"

어찌되었건 모두를 이끈 것은 리더였고 자연히 혼담이나 그런 것들이 오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세상을 구한 영웅쯤 되는 이 중에서도 제일 인정받은 이인데. 어떻게든 자신의 혈연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 이들이 많겠지. 아. 그럼 너무 방해가 되지 않게 조심할 필요는 있겠네. 그렇게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며 사내는 천천히 걸어가며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다 정리되면 그땐 또 잘 부탁해. 이번엔 느긋하게 세상을 보고 싶으니까 급하게 가진 말자고. 알았지?"

45 이름 없음 (xout0jDYGo)

2023-01-06 (불탄다..!) 01:57:03

에르네스트 산은 왕국의 수도 북쪽을 감싼 산이다. 만년설이 쌓일 만큼 높지는 않으나 수풀이 빽빽하고 비탈이 험준한 것으로 유명하며, 언제부턴가 용이 서식지로 삼았다는 전설도 돌고 있다. 그래서인지 나무꾼이나 사냥꾼도 어지간해선 이 산 깊숙이 들어오지 않는데, 몸에 딱 붙는 가죽옷으로 인해 언뜻 가냘프게까지 느껴지는 체형이 두드러지는 여성이 거의 본인의 몸통만 한 등짐을 멘 채 기암괴석으로 가파른 산마루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순금같은 광택이 감도는 머리칼도 무슨 거치적거리는 물건 치우듯 잔머리 하나 없게 한껏 올려 묶은 채다. 그런데 바위의 돌출된 부분을 잡거나 딛는 팔다리의 동작에는 제법 힘이 실렸다. 보기와는 달리 근력이 상당한 모양이다.

그렇게 끊임없이 움직이던 여성은 무언가를 잡지 않고도 발 딛고 설 수 있는, 두 발 딛고 선 곰도 자그맣게 보일 것 같은 커다란 동굴의 입구에 오르자마자 진이 다 빠졌다는 듯 무릎을 짚고 헥헥거렸다.

“아고, 나 죽네!”

무심결에 튀어나온 소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을까? 여성은 제 입을 틀어막더니 한동안 새파란 눈망울을 굴려 가며 주위를 살폈다. 좀 전의 음성은 다행히 메아리로 돌아올 만큼 멀리 퍼지지는 않아 주변은 고요했다. 산 밑에 비해 세찬 바람이 나뭇잎을 훑는 소리나 아마도 새소리로 추정되는 이름 모를 짐승의 울음만 이따금 울릴 뿐이었다. 그러자 여성은 안심한 듯 마른세수로 땀을 닦아내고는 등짐을 풀었다. 그러더니 등짐에 든, 풀이며 나뭇가지며 잔돌 따위가 뒤섞인 진흙을 꺼내서는 가죽옷은 물론 하얀 피부까지 흙투성이가 되도록 치덕치덕 발랐다.

여성이 이러는 까닭은 이 동굴이 용의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기 때문이다. 용에게 들킬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낮추기 위해 진흙으로 체취를 가리려 한 것이다. 그 뒤 여성은 제 몸을 숨길 데를 찾으려는 듯 두리번거리더니 입구 왼편의, 토끼 귀를 맞붙여 놓은 듯한 형태의 바위 뒤에 숨었다. 이 정도면 용이 오갈 때 들키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 여기에 정말 용이 살까? 여성은 심장 고동 소리가 새어나갈까 겁내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제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마른침을 삼켰다.

46 이름 없음 (hL0Uzj02lg)

2023-01-06 (불탄다..!) 02:30:34

>>44
"아니! 문제 없어. 그냥 확인한 거야.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말 바꿀 일은 없겠지만."

그가 무슨 생각으로 수락했는지 몰라도, 어쨌든 수락은 수락이니까 나중에 말 바꾸지 말라고 그녀가 단단히 못을 박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거듭 확인하고 할 필요는 없지만,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공동의 목표를 이룩하고도 아직 같이 있을 시간이 있다는 것이.

"아, 쉽게 말하긴 했는데, 신관 제적이 말처럼 쉬운게 아니거든. 등급에 따라서 절차도 가지각색이고, 이래뵈도 높은 급이라 순순히 놔주지 않으려고 할 테니 말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그래도 오늘밤은 기절할 때까지 마실 생각이지만!"

제적 절차는 빠를수록 좋으니 당장 달려가서 대신관들을 닥달하는게 제일 좋음이 분명하나, 아직 들뜬 분위기가 식지 않은 지금 즐기지 않으면 언제 이런 분위기를 즐길까. 한차례 축제 분위기가 식으면 일상을 되돌리기 위해 분주해질테니 말이다. 그녀의 잡아당김을 따라 그가 걷기 시작해 그녀도 그와 걸음을 맞추었다. 어쩌다보니 팔은 잡은 채로 조금은 종종거리는 걸음을 내딛으며 옆에서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숙소 근처에 큰 술집이 있는데 거기 밤새 잡아놓고 술판 벌인댔어. 귀족은 뭐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걔가 언제 높으신 분들이랑 술잔 기울이는 거 봤어? 있어도 신경도 안 쓸 걸?"

그를 만나기 전에 전해들은 리더의 소식을 알려주며 그 술집을 향해 길을 나아간다. 굳이 그 술집이 아니어도 여기저기서 즐겁게 떠드는 소리 들려오는 거리를 걷다가,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힐끔 보고 피식 웃은 그녀가 대답했다.

"나도 여유와 한가로움이 뭔지 아는 사람이거든? 대륙 구석구석 다 돌아다니면서 보고 다닐 거니까, 나중에 너무 느긋하다고 투덜대지나 마! 아, 여행 중에는 생각 좀 덜 하고!"

다니는 내내 잔소리 하는 건 사양이라며 깔깔거린다. 말이 이렇지 진짜 잔소리를 할 건 아니고 물론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떠들다보니 얼마 가지 않아 저 멀리 가장 시끄러운 술집이 보이고, 그녀는 저기라고 어서 가자고 그를 재차 잡아 끌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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