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 청조한 검은 눈동자가 준혁을 담습니다. 여전히 흐릿하여, 가면 위로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만 같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시나타는 천천히 손을 뻗습니다.
" 보이는 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됩니다. "
무겁던 눈꺼풀이 깊은 어둠을 불러옵니다. 당장이라도 그 날의 풍경과, 소리와, 부탁들이 새겨진 기억을 불러들입니다. 그 틈에서 준혁은 여전히 걷고 있습니다. 때로는 적을 쫓기 위해, 때로는 도망치기 위해, 때로는 마을의 상황을 살피기 위해. 무한한 걸음을 걷는 준혁의 발걸음은 항상 같은 끝으로 향합니다. 거대한 도끼를 들고 불타오르는 천막에서 준혁을 향해 웃는 남자. 단지 준혁이 자신들을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형제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자신을 부른 남자가 있습니다. 멈춰선 걸음과는 달리 당장이라도 뛰어들 것 같은 자세로 앞을 바라봅니다.
- 부디. 우월의 끝에서 다시 만나는 거다!!!
곰의 울음소리를 닮은 외침으로, 남자가 울부짖습니다. 그 거대한 도끼가 휘둘려 붉은 벚꽃잎을 그려냅니다. 준혁은 그 장면에서 뒤로 돌아 걸음을 옮깁니다. 나아가는 이와, 도망치는 이. 두 사람의 방향은 거기서부터 틀어졌을 것입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준혁은 주위를 더듬기 시작합니다. 여기 어딘가에 자신의 창이 있어야 하는데...
창, 내 창, 내 목숨을 구해줄, 내가 믿을 수 있는 수단,
창. 창이 없습니다.
" 진정하세요. "
혼란과 공포, 두려움은 언제나 가깝습니다. 특히 그것은 피와 죽음의 무게를 갓 알아차린 애송이에겐 언젠가 알아야 했을 공포입니다.
" 진정하세요.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집중하세요. "
그러니 소리를 지릅니다. 이 소리를 지르는 순간만큼은 준혁은 모든 소리에서 자유롭습니다. 나의 소리, 나의 고통으로 나. 현준혁은 홀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도망치고, 비겁하게 살아남았더라도 지금 나는 여기에 있습니다.
" 당신은 그 곳에 있지 않아요. 보이는 것에서 벗어나세요.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것도 모두. 당신이 나아간 길일 뿐이에요. 그 길은 다시 걸을 수도, 돌아갈 수도 없지만 그 무게를 지고 걸어가는 것은 오롯이 당신의 선택이니까요. "
아카가미 시나타는 준혁을 붙잡습니다. 눈을 가리고, 기꺼이 끌어안습니다. 그 손톱과 악력이 자신의 살을 긁어내고 뜯어내려 하더라도 그런 고통은 괜찮았습니다. 그녀는 가디언이었고, 눈앞의 남자는 도움을 바라고 있었으니까요.
" 하지만 이 곳에 갖히면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두고, 부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들으세요. 당신이 지금 무엇을 긁고, 뜯어내려 하는지. 누구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
긴 발악이 끝난 뒤, 체력이 다한 준혁의 눈을 시나타는 천천히 열어줍니다. 새하얀 빛이 터져나오고, 다시금 밝아지는 시야 속에서 준혁은 무엇을 보았을까요?
그런데 시나타 양은 준혁이 상태가 제정신이 아니란 거는 어떻게 안 건가요? - 가디언들도 PTSD를 많이 겪는 축에 속합니다. 물론 그런 가디언들을 위한 케어나 복지도 존재하지만 그런 완화가 완전한 치료가 되지는 않죠. 그러니 시나타는 준혁의 전후사정을 미리 듣고, 자신만의 치료법을 사용한 셈이 됩니다. 만약 통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실수이니 혼약을 상대의 책임 없이 취소할 수 있고, 통한다면 어느정도 안정을 부를 수 있으니까요
"다양했을지도 모르죠. 누군가는 강산 씨처럼 생각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방금 전까지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어둠 속으로 빠져들 인류 문명과 그 이후를 걱정하며 마지막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셨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그저 '내 팔자야.'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히 파멸을 받아들였을지도요."
빈센트는 그러헥 이야기하며, 소시지빵을 좋아하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저런 말이 많았지만 미국식으로 하면, 그냥 좀 요란한 핫도그라고 볼 수 있었으니. 빈센트는 손을 내밀어 소시지빵을 받는다. 그리고 엷게 웃는다. 그의 인생관인 재미로 따지면, 아무래도 이렇게 걱정하는 건 안 맞는 것 같았다.
"방금까지 제가 좀 어떻게 된 모양이군요. 그렇게 빌빌 떨고 있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역시 재미있으려면, 세상의 멸망 앞에서..."
빈센트는 손가락을 따닥 튕겼고, 그와 함께 불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역시 저라면, 그것 참 큰일이군! 하면서 마지막 남은 나날들을 즐겨야겠지요. 그리고 소시지빵 감사합니다."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