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그 녀석 얼굴을 보고 왔습니다. 가서 제 전화번호 주고 왔습니다. 이대로 그 녀석을 잊고 싶지 않아서요."
들고 있던 사라다고로케를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해치우고는, 이번에는 낙엽소시지빵을 꺼내 포장을 뜯는다. 그러느라 잠시 말이 없던 그의 입이 다시 열린다.
"사실은 저도 형님과 조금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초에 다윈주의자들이 단체 탈옥했을 때 말입니다. 오마니께서 엄격, 진지, 근엄하게 몸을 사리라고 경고하시기에 심각한 상황이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제 세상의 끝을 걱정했죠. 지금 형님이 하시는 걱정에 비하면 좀 작은 스케일이긴 하지만요."
낙엽소시지빵에서 시선을 돌려 다시 빈센트를 보고서는, 말한다. 강산이 말하는 세상의 끝이란 그 개인의 삶의 마지막 내지는 특별반의 마지막이었으니까.
"다른 사람은 다 잊어도 그 사람은 못 잊을 것만 같습니다. 게이트라는 가혹환경이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에 대한 가장 가까운 사례이니."
빈센트는 준혁을 생각하며 자신을 뒤돌아본다. 빈센트는 어떻게 될까? 빈센트 역시 그런 끔찍한 상황 앞에서 준혁처럼 변하거나, 차라리 그게 나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끝에 무너진다면, 빈센트는 무엇을 기억하고 좋아할까. 베로니카는커녕 나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꼭 살아남길 바란다고 말하는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러다가도 약간씩 엇나가는 대화에 손사래를 친다.
"그래도 만약에 제가 불의의 사고에 휩쓸려서, 제 급우가 될 뻔했던 사람들처럼 명을 다하면...그런 식으로 제 인생이 하루아침에 갑자기 끝날지도 모른다면, 혹은 특별반이 어느 날 궤멸적인 피해를 입으면서 제 삶도 끝난다면. 그 전에 나는 뭘 해야하나...하는 걱정이었습니다. 그런 건 '제' 세상의 끝일 뿐이지, 형님이 걱정하신 인류의 끝은 아니죠."
제대로 들으라는 듯, 그는 마지막 문장을 강조하듯 말한다.
"아무튼...그래서 제가 그 고민에 뭐라고 결론을 내렸냐면요. 그러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보고 싶었던 것을 하자. 그것이었습니다. 내일의 해가 뜨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저 멍하니 걱정할 시간에...마지막 해가 지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요."
강산은 태평하게, 그의 과거를 말한다.
"그래서 악기점으로 달려갔습니다. 마침 자주 쓰던 악기가 망가졌을 때였거든요. 형님도 보셨을 '백두'가 그래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죠."
내 세상의 끝. 내 세상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인식하고 소유하는 세상이 모여서 만드는 거대한 세상은 사라지지 않더라도, 내 세상은 사라지는 나의 죽음. 빈센트는 턱을 만지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것 역시 큰 일이다. 빈센트가 생각한 전 인류의 멸망만큼은 아니더라도 큰 일이고, 그 큰 일에 대응하기로 한 강산의 이야기는 확실히 설득력이 있었다.
"내일 세상이 멸망하더라도 나는 사과나무를 심겠습니다."
빈센트는 어디선가 읽은 경구를 이야기하며, 또다른 이야기를 한다.
"의념시대 이전, 미국과 소련이 세계 패권을 두고 경쟁하던 냉전기에 이런 소설이 나왔습니다. 핵전쟁 이후 호주만 살아남았는데, 알고 보니 핵전쟁으로 인한 낙진이 남반구로 내려오면서 호주도 멸망을 앞두게 된 상황을 다룬 것이었죠. 그 소설에서 사람들은 날뛰지 않았습니다. 엉엉 울면서 파멸을 부정하지도 않았죠. 그냥, 평범하게 옛날부터 그러던 것처럼 한 해 계획을 짜고, 여행을 하고, 일을 하고,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식사를 즐기며 조용히 파멸을 환영하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