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의 말을 듣던 글라키에스는 잠시 선우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명백한 비웃음. 그리고 모욕이었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너는 대체 뭘 위해서 그렇게 서 있고 싸우는거지? 그렇게 헛소리나 지껄이면서, 분위기를 파악하지도 않고 아무말대잔치나 지껄이면서. 네 동료들이 지금 이 순간 널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면 스스로의 이미지는 상관없으니까 스스로 광대가 되겠다 뭐 이런거야? 그런 것은 딴데 가서 알아봐. 네 녀석은 패배자 그 이하야."
더 이상 그 말에 상대를 해주지 않겠다는 듯이 선을 그어버리는 것이 적어도 글라키에스를 정말로 불쾌하게 한 것은 확실했다. 그렇기에 상대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편 검무가 완전히 끝이 났고 이내 빛이 강하게 펑! 하면서 터졌다. 만약 눈을 감지 않았거나 그 방향을 그대로 본 이는 그대로 화이트 아웃을 당했을 것이다. 제대로 보이는 것이 없이, 그저 말 그대로 하얀 배경만이 보이는 빛의 세계. 얼어붙은 이의 시각조차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가운데 글라키에스는 이를 약하게 악물었다.
"내가 패배자가 된다고? 내가 불안해한다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나는 승리자야! 그 지옥에서도 살아남아 힘을 얻고 누구보다 위로 올라선 승리자야!!" "...너희들에게 진다는 가능성이 존재할리가 없잖아!"
이내 글라키에스는 주변의 냉기를 흡수하듯이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특별한 공격이 날아오거나 하진 않았지만 글라키에스를 중심으로 강한 에너지가 모이고 있었다. 그녀의 등 뒤로 얼음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고 이내 그 모습은 글라키에스를 감싸려 하고 있었다. 마치 그대로 두면 글라키에스는 스스로 얼어붙지 않을까? 그런 착각이 들 정도로.
선우가 폭탄으로 만든 파편과 쥬데카의 체인 공격이 얼음의 일부를 박살내긴 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몸을 천천히 얼음이 감싸고 있었다. 어느덧 그 얼음은 다리까지 올라와 허리까지 올라왔다. 이대로는 피하지 못하는 것이 스스로 공격을 맞춰달라는 듯한 움직임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공격을 순순히 맞지는 않겠다는 듯, 그녀의 주변에 떠 있던 얼음 파편들이 하늘로 무수히 빠르게 날아왔고 이내 고드름 형태가 되어 여기저기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프리징 랜서 - 총 4발의 효과. 한발당 데미지 500. 한 발이라도 명중하게 될시 50%의 확률로 빙결 효과. 단 얼어붙게 된 이의 경우 누군가가 막아주지 않는한 데미지가 2배로 들어가게 된다. 즉 한발당 데미지 1000. (레레시아 해당)
또한 눈을 감지 않은 이들의 경우 전원 화이트 아웃 발동. 시야가 온통 새하얗게 변해버려서 3턴간 적을 공격할 때 다이스를 돌려야하며 명중률은 25%. 단 25%의 확률로 아군을 공격함.
급소를 노려 치고 들어온 공격인 만큼 정면으로 맞섰을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외적인 부상은 무장이 일부 막아준다지만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떨림과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까지 막아주지는 못 했다. 순간적으로 비틀거린 그녀는 곧 주저앉은 모양새로 한기에 몸을 떠는 것 밖에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대로 눈 앞에 터지는 섬광을 마주할 수 밖에.
"후... 여전히 시리구만."
하얗게 얼어붙은 입김을 내뱉으며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다면 뜨고 있을 필요가 없다. 눈을 감고 소리 만으로 주변을 파악하려 한다. 모두의 위치와 행동을 따라 조금이라도 상황을 따라가기 위해. 그런데 들리는 소리가 영 불안한 걸.
"그래. 너는 승리자야. 너는 분명 그 지옥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승리자인데. 어째서 그렇게 발악하지? 우리가 널 쓰러뜨릴 가능성은 없다면서. 왜 그렇게 악을 쓰는 거지? 너는 정말로 두렵지 않은 것이 맞나? 레이버와 엘리나처럼 힘을 빼앗기고 다시 바닥으로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 맞나?"
한편으론 글라키에스에게 말을 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윽고 공중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낙하음이 들리기 시작했을 땐 그저 운 좋게 빗나가기만을 바라보지만. 얼어붙은 몸을 꿰뚫는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을 땐 그저 덜 아팠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474 쥬데카는 방어형이기 때문에 전체 공격에 2인분을 받는 것이 아니라 1인분만 받는답니다! 즉... 4발을 모두 막아준다고 가정하면 데미지를 1000만 입게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네요! 다만 절대 방어가 아닌한 일반 방어는 아무래도 패시브 스킬 영향을 받게 되니까 다음턴 다리가 얼어붙게 되겠지만요.
>>477 어차피 글라키에스의 공격은 기본적으로 누군가를 타겟팅하는 것이 아닌한 전체 공격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거기서 방어만 하지 않으면 사실상 얼음이 깨지기 때문에 행동불능이 될 일은 없답니다! 다만 방어를 하게 되면 행동불능이 되겠지요!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임무에 투입되기 전에 짧게 나누었던 로벨리아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승패의 확률은 반반, 이길 확률도 반, 패배할 확률도 반... 그리고 지금 너는 승리할 확률 절반에 걸고 있는 초짜였다. 고작해야 절반, 반드시 승리하리라 할 수 없는, 두 번에 한 번은 패배할 거라는 말. 그러나 지금은 초짜의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가망이 있다는 뜻이며... 반대로 저 글라키에스가 패배할 확률이 절반이나 된다고!
버스트 덕에 피해는 없었고, 오히려 약간이지만 타격은 입힐 수 있었다. 그게 유의미했는지는 알 수 없었던 것이, 지금 또 다시 쉽게 넘길 수 없는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글라키에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움직이지 않았기에 지금이 기회일지도 몰라 사슬을 휘두르려던 너는 그녀 주변의 얼음 파편이 떠올라 날카로운 고드름이 되어 쏟아지는 것과, 얼어붙어 움직일 수 없는 레레시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공격과 방어 둘 중 무엇이 우선인가 하는 문제는 어려운 일이지만, 동료의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죽지 마라, 결국 임무가 실패하더라도 살아 돌아와야 한다. 그런 대장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너는 땅을 박찼다.
공격을 감행한 것은 이스마엘과 선우 둘이었다. 사실상 쥬데카는 공격을 방어하고 있었고 레레시아는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지벽을 세워서 글라키에스와 에델바이스를 막아서려고 했고 선우는 레비아탄을 써서 글라키에스와 바닥을 통째로 삼키려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물론 삼키는 것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문제는 냉기가 가득 모이고 있었고 글라키에스를 집어삼킨 레비아탄 역시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깨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래도 덕분에 주변을 떠다니는 얼음을 모두 없애버릴 수는 있었다. 이내 냉기는 더욱 강하게 모였고 단번에 글라키에스를 단단하게 감쌌다.
"그렇다면 왜 쓰러뜨릴 수 없다는 것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해줄게. 패배자들아." "너희들은 절대로 감당할 수 없는 힘의 차이가 뭔지 보여줄게." "...이번에는 아스텔도 없고 방해도 받지 않아."
"나는 너희들 따위에게 패배하지 않아. 한번은 놓쳐버렸고 몇 번이고 너희들이 우리 가디언즈를 공격해서 무너뜨렸지만... 그래도 난 쓰러지지 않아."
"불안할 일 따위 없어!!"
이내 글라키에스의 주변으로 강한 냉기가 다시 한번 응접하기 시작했다. 그 추위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너무나 막강했으며 모두의 작은 움직임마저 제약이 될 정도로 상당히 끈적하게 모두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이내 얼음 속에서 새하얀 빛이 강렬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만물의 원자의 움직임은 일제히 멈추니 -그 안의 모든 것은 동결한다.
"프로즌 아웃!!"
모든 것이 천천히 멈춰가고 있다. 몸이 그대로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 조금씩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대로 이것을 막아내지 못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허나 확실한 것은 절대로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스페셜 스킬 - 프로즌 아웃. 전 턴에서 조건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 턴에서 총 데미지 300을 달성하지 못하게 될 시 전원 공격, 회피, 방어 불가. 2턴간 총 2번의 4000의 데미지를 받게 되며 총 데미지 8000. 스페셜 스킬은 해당 턴 사용할 수 없다.
데미지 다이스는 1~100의 범위로 진행한다. 단 레레시아의 경우 화이트 아웃의 영향을 받는다.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 어쩌면 죽음이 목전인 상황이래도 두려움 따윈 일절 들지 않았다. 그것은 곧 그녀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유일하게 감사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고통이 지나가길 기다리려 했건만. 느껴지는 것은 없고 들리는 건 얄미운 목소리다.
"전장에서 오지랖 떨지 말라고 대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을래?"
치료도 제때 안 받으면서 오지랖은 아주 망망대해라고. 기껏 막아준 쥬데카에게 쓴 소리만 내뱉는다. 어찌보면 상황을 방해 받은 것에 대한 불만 같기도 하다. 그래도 덕분에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하.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접근이고 나발이고. 난 그냥 궁금한 걸 물어볼 뿐이야."
보이지 않는 시야 너머로 무언가 깨지는 소리와 글라키에스의 발악이 재차 들려온다. 눈을 감으니 더 잘 알겠다. 벼랑 끝에 몰린 것 같은 절규를.
"눈 앞의 현실에서 고개를 돌린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지는 않아. 글라키에스. 네가 진정 강자라면. 승리자라면! 널 그렇게 몰아가는 현실조차도 밟고 올라서야지! 하지만 네 꼴을 봐. 그게 어딜 봐서 압도적인 강함을 지닌 승리자라는 거지? 당장에라도 네 힘을. 자리를 빼앗길까 두려워 악을 쓰는 나약한 인간이잖아? 어디 한 번 아니라고 해 봐. 고개를 돌린 채 계속 부정해 보라고!"
그렇게 외치며 그녀는 독액을 사방으로 쏟아내었다. 점점 옥죄어오는 한기를 어찌 할 수는 없으니. 뭐라도 닿아보라고. 뭐라도 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