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딴청을 피우고 있는데도 빤-히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건물의 튀어나온 턱에 앉은 채 손을 괴며, 안 피했어요 하고 작은 소리로 뇌까렸다. 그러나 이내 그를 돌아본다. 밤그림자에도 환한 백발, 깨끗한 벽안. 자신이 챙겨야 할 (경찰 경력)후배가 울상을 지어 무시하기가 쉽지 않다.
"아니……. 그런 거 아닌데……."
후배 앞에서 미덥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이런 꼴이라니, 부끄럽다. 그가 장난치려는 것은 생각도 못 하는지 안절부절한 기색으로 데룩데룩 눈을 굴린다.
"리글 씨는 잘해줬어요, 그런 말 마세요. 증거 수집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하아. 저는 너무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다보니 진범이 아닌 이를 지목하는 실수를……."
곧이어 울적한 낯. 그러면서도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낸다. 자신이 맡은 모든 사건이 쓰여있다. 만회하기 위해선 모든 걸 상세히 적어둘 필요가 있어요. 라고 한마디 한 채 빠르게 적어내려갔다. 마지막 문장은 [범인은 사토시]. 그러다 핫! 하고 고개를 든다.
안절부절한 모습이 눈에 보여 나도 모르게 키득 웃음이 나왔다. 결국 헤실헤실 웃는 얼굴을 선배에게 보였다. 이런 간단한 연기에 속으시는게 혹시라도 나중에 사기당하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재미있을 뿐이었나.
"농담이에요... 그정도로 상처받을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까요?"
선배를 놀리는 못된 후배기도 했지만. 그 말은 하지 않고 수첩을 꺼내 상세히 기록하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만약 선배를 우리 아버지가 보셨다면 저런 성실함을 좀 닮으라고 잔소리하지 않을 정도다. 그만큼 선배의 수첩은 두껍고, 빼곡했다. 가끔은 살짝 보고싶은 생각도 들 정도로.
"선배도 실수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그리고 결국 범인은 잡았으니까.."
그럼 된거 아닐까요..? 라며 선배를 빤히 바라본다. 범인을 착각하는건, 중간까진 나도 그랬으니까. 죽은 피해자의 방에서 손목의 단면을 보고는 생각을 바꿨지만... ....그러고보니 아깐 괜찮았는데 지금은 징그러운게 떠올라서 올라오려고 한다. 그만 생각해야지.
……농담? 표정이 쩌적 굳었다가 작은 한숨과 함께 돌아왔다. 리글 씨는 강하구나. 몇 번의 사건을 더 겪여야 익숙해지려나….
"동료를 놀리면 못 써요……."
타박하는 듯한 내용에도 말투는 그저 안심만이 담긴다. 사건 기록을 전부 적고 나니 들려오는 그의 말. 위로해 주는 걸까. 새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다기엔 실수투성이였는데……, 그래요. 과거에 사로잡혀있는 건 좋지 못하니까."
바로 전에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리글 씨도 생각이 복잡하긴 하나보다. 새나는 흔쾌히 응하며 걸었다. 새벽이라 가로등도 듬성듬성 켜져 매우 어두컴컴 했으나 동료 한 명이 있으니 무섭지 않았다. 고요하고, 고즈넉한 추운 겨울 새벽. 적막과 새벽이 합쳐지자 상념들이 하나 둘 가로등 켜지듯 떠오르고, 그러다 계획과 어긋나는 짓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리글 씨는 왜 경찰이 됐어요?"
그리고 말했다.
"사실 저 돌발적인 상황 정말 싫어해요. 책임 떠안기 쉽잖아요, 마치 폭탄 돌리기처럼……. 근데 왜 됐을까, 생각하다보니 남들의 동기가 궁금해지더라고요."
혀는 경장의 손가락에 잡히고 말았다. 하지만 잡을 때는 아마도 알지 못했을 것이었다. 이 여우귀가 얼마나 괴짜스런 사람인지를.
붙잡힌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혀를 잡은 손가락을 그대로 상반신을 내밀어서 자근자근 물어버린 것이다. 그야 피가 날 정도로 세게 물지는 않았겠지만, 음식 먹는 집에서 사람 손가락을 물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렇게 빤히 눈을 마주치며, 잠시 동안을 놓아주지 않았다. 입을 연 것은 그 사건이 일어난 이후, 대략 10초는 지나서였다.
"풋내. 아직은 먹을 수 없겠네..., 싶은 정도로."
겨우 자유를 찾은 손가락엔 잔뜩 알코올 섞인 타액을 묻혀두었다. 마치 혀를 잡으려 한 벌이라는 듯이, 더는 거기에 관심조차 주치 않았다. 알아서 잘 닦으라는 말이다.
다행히도 물티슈는 테이블 위에 넉넉히 올려져 있었을 것이다.
"난 리글씨 맘 정도야, 척 보면 알 수 있으니까. 보나마나-, 부족한 실력에 짐이라도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겠지."
수줍게 마음을 고백하는 경장에게 별 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그래 당연한 것이었다. 여우귀 본인도 처음엔 그러 했으니까. 입사하고 처음 지온 경장의 아래에서 경찰 생활을 시작했을 때, 여우귀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차라리, 지금의 리글 경장 쪽이 더 당당하고 숫기 있는 편이라 할 정도였으니까.
물론 그 진심을 전할 마음 따위, 여우귀에게 있을 리 없었다.
"뭐-, 어때? 귀여우니까 상관 없잖아, 조금 짐덩이더라도."
결국 또 한껏 놀리는 듯 머리를 꼬리로 슥슥 쓰다듬어주고, 또 조인트를 톡톡 발 끝으로 건드려댔다. 이젠 심심하면 하는 모양.
그러다 마지 못해 리글이 여우귀가 건넨 수육을 입으로 받아내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장난기와 취기가 가득 번져 있는 그런 미소가.
"역시 휘둘리기 쉬운 성격이라니까-. 부끄럽다면서, 결국 먹는 거 보면.... 근데 그거 알아, 리글씨? 이거 간접키스야. 리글씨랑...,"
거기서 살짝, 입술을 달싹였다.
팔목으로 입을 가리고 경장의 시선을 회피했다. 완전히 의도적으로, 말려든 꼬리가 뱀처럼 똬리를 틀었다.
그리고나서, 젓가락을 들어 여우귀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가 싶었다.
"...말미잘이랑."
허나, 가리킨 것은 말미잘이었다.
굳이 자기가 먹인 것은 아마도 이 때문이었을 터. 무엇보다도 가장 열받게 하는 요소는 또 한 번 성공했다는 듯이 경장 앞에서 뻐기고 있는 저 미소와, 자유분방한 여우꼬리였다.
타박하는 듯한 말에 지금은 안 그러겠다고 하지만, 정말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새나 선배님은 재미있으시니까, 가끔씩 장난쳐야지. 하고 다짐하는 나 자신은 어느샌가 그렇게 날 놀리고 있는 슬기 선배를 닮아있었을지도.
"저도 오늘은 실수투성이였으니까요... 선배님은 성실하시니까... 괜찮을 거에요..."
새나 선배에게는 웃으며 위로를 건넸지만.. 위로를 건네면서도 나 자신은 성실하지 않으니 이거 괜찮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경찰에 그다지 진지하게 임했던건 아니었으니. 아버지가 강제로 시켰고, 나는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이능력이랑 엮이게 되어서 어쩌다보니 fidus 팀에 들어왔고. 고요한 새벽 골목길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있자니 우연인지 선배가 관련된 질문을 던졌다.
"전... 아버지가 시켜서요. 별거 없죠... 제가 사람이 되려면 경찰처럼 바쁘게 살아야 한다나...?"
왜 하필 수많은 직업중에 경찰이냐고 물으면, 그건 경찰이 아버지의 직업이셨으니까. 그렇다.
"...저보다는 새나 선배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 보이네요... 새나 선배는, 왜 경찰이 되셨어요..?"
터벅이는 발걸음을 배경음 삼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직업 선택을 한 점에서 동질감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 과정은 달랐다. 자신은 원치 않았더래도 스스로 이 길을 택했다. 그는 선택할 권리조차 없었던 건가…….
"강제로 이런 위험한 일을요……. 그럼 마음의 준비고 뭐고 그냥 버텨야 하는 거잖아요?"
생수병을 쥔 손에 힘이 슬쩍 들어갔다. 동시에 제 수첩에 적힌 것들이 떠올랐다. 한때, 부모와 자식 그리고 교육에 대해 내내 알아봤던 적이 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가능성 하나를 잡기 위해.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해 줘야 할 보호자가…… 이런 일을? 미간을 살풋 찡그리고 고개를 갸웃한 새나는 제 이야기를 물음에 생각이 그의 보호자에서 자신의 보호자로 옮겨갔다. 유쾌한 이야기는 아닌데…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새나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선을 가늠하며 입을 열었다.
"제가 더 별 거 없고 평범할 걸요…… 실망할 지도 몰라요. 왜냐면 돈 때문이거든요. 수입도 안정적이고……."
안정적인 공무원에, 위험 수당. 그러나 그 뒤편에는 할머니의 병원비 및 부양비라는 이유가 숨어있었다.
"전 스스로 돈 하나 보고 달려온 대가니, 적응해야 하는 거죠."
상념에 젖은 머리를 훌훌 털어내려, 베레모 아래의 검은 머리를 정돈하다 바람이 휙 날려 곱슬기 있는 옆머리가 휘날렸다. 새벽이라 바람이 찼다.
원래는 살짝 잡았다가 놓아줄 생각이었다...만, 붙잡힌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선배는 내 손가락을 그대로 잘근잘근 물어버리기 시작했다. 음식점 내에서 물린지라 주변 사람들이 쳐다볼까 소리지르지도 못했고, 그저 아픈 나머지 물린 손을 파닥파닥거릴 뿐이었다.
결국 10초나 지난 뒤에야 경사님은 내 손을 놓아주었다. 풀리자마자 확인해본 손가락에는 빨갛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던가.
"...한참을 맛보셨으면서 이제서야 풋내난다니..."
관심조차 주지 않는 모습에 살짝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내가 자초한 일. 불만은 없었다. 얌전히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있던 휴지를 가져다가 슥슥 알콜섞인 타액을 닦는다. 꼼꼼하게 닦은 후에도 남아있는 자국에 혀를 내둘렀지만. 여우라고 하셨는데, 설마 치악력까지 여우의 것을 가지신걸까...
"하아... 네... 솔직히 말해서, 항상 걱정인걸요. 짐이 되고싶진 않은데... 현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건 거의 없고..."
솔직히 말하면 지금 상태의 본인은 짐덩이에 더 가깝다. 주도적인 행동보다는 수동적인 행동만을 하는, 짐덩이. 그 수동적인 행동조차 완벽하게 해낼 수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그런... 그래, 풋내기 말이다.
정말 풋내나네. 속으로 자조했다. 경사님의 말대로, 난 풋내나는 햇병아리나 다름없었으니.
"이런 장난도 지금같은 때에는 감사할 따름이네요..."
놀리려는 듯 꼬리로 쓰다듬으며 조인트를 발 끝으로 건드려대는 장난마저도, 친숙한 행동이라 차라리 위로가 되었다. 오히려 이런 행동을 하는 경사님이기에 저 말이 진심임을 알 수 있었으니. 반쯤 장난으로 말하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렇게 좋은 선배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네, 네?! 아니 그...그건..."
괜히 입술을 달싹거리자 또다시 당황하여 말을 더듬는 나. 경사님이 하신 행동은 충분히 오해할만한 행동이었고, 내 얼굴을 빨갛게 만들기 충분했고... ...그런 나를, 경사님은 어김없이 또다시 배신했다.
"....윽, 으으으윽...!!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
이제는 트라우마가 될 것 같은 저 미소. 너무 열이 받은 탓일까, 말미잘이 묻은 젓가락을 입에 갖다댄 탓일까,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이다. 진짜로. 나는 빨리 내 잔에 술을 채워넣고는 입에 털어넣었다. 수육의 맛도, 맛보지 않았지만 환영처럼 입안에 있던 말미잘의 맛도 싹 씻겨져가고 오직 알코올의 향만이 내 입 안에 남았다.
결국 또다시 한번 당했다는 생각이 든 나는 원망스럽게 경사님과 요망스런 꼬리를 바라보았다. 꼬리가, 어째 더 도발하는 느낌이 든다.
"으엑... 진짜 저런걸로 장난치지 마세요... 저 비위 진짜진짜 약하단 말이에요..."
자신이 한잔 마셨으니, 한잔 따라주려는 양 술병을 가져가 경사님의 술잔에 따라주었다. 시체는 볼 수 있으면서 해산물은 못 먹는게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먹는 것과 보는 것은 엄연히 다른 법이니까. 시체를 먹진 않잖는가.
그때는 이렇게 힘든 일인줄은 몰랐기도 했으니까. 돈은 많이 주기에 할만한줄 알았는데 돈을 쓸 시간이 없다면 그건 다른 문제인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래서 워라밸이 중요하다고 하는걸까... 어찌됐든 선배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살짝 알 것 같아서 급하게 부모님에 대한 변론을 추가했다. 물론, 나를 경찰이라는 직업에 강제로 밀어넣은건 부모님인건 맞지만...
어라. 갑자기 부모님에 대한 반항심이 조금씩 피어나는 것 같기도 하고.
"실망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게 더 멋지다고 생각하니까요..? 돈을 보고 달려왔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기가 선택한 일이니까..."
선택한 길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는게 실망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선배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시는 분이셨으니까... 어째 볼수록 나 자신과는 비교되는 사람이라 조금 위축되었다.
"...선배. fidus에 온 이유는...뭔가요? 안정적인 수입을 원하신다 하셨지만... 여긴 위험한 직장이라, 안정적이라기엔 거리가 멀잖아요?"
자신의 대가라고 말하는 선배. 하지만 안정적인 것을 원하는 대가로는 너무 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조심스레 질문했다. 정말 안정적인 수입 때문만일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사실 사무실로 가면 주차장에 제 차가 있어서... 선배도 태워드릴까요? 날씨가 추우니까요.."
한창 추워진 날씨 때문에 요새는 대부분 자동차를 몰고 다녔다. 사무실이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그곳까지는 걸어갈 심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