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her sparing You know that they'll try to deceive you Don't let go of this opportunity 'cause there's no guarantee it'll last What say you little pal have we got a deal? haven't got all day so you'd best think fast.
범죄 코디네이트 조직 클라렌트는 의뢰인이 원하는 모든 부도덕한 것에 응하며, 원하는 대가는 매우 심플하다.
여우귀는 빤히 경장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이건 뇌정지다. 계획 밖의 일이었다. 놀리고자 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기쁜 술자리에서 딱히 울릴 생각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너무 심했나.... 스스로를 돌아보곤, 그제서야 주변을 살핀다. 여기서 더해서 경장을 울려버렸다간, 그야말로 본말전도. 여우귀 본인의 기분도 썩 유쾌할 것 같지만은 않았다.
"엄.... 그렇게까지 놀래킬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해. 아니-, 진짜 미안."
그렇기에, 한 번은 다시 당근을 손에 쥐어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제 내 눈치 보지 말고 꼬리 맘껏 만져도 되니까, 그만 맘 풀어."
허나 들려준 것은 당근이 아니라, 그저 여우의 꼬리에 불과했지만.
"이제 소리 같은 거, 하나도 안 낼 테니까. 응?"
이번에야 말로 믿으라는 듯이 호언장담을 하고 꼬리를 내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경장의 손길을 받아 들였다. 첫 터치부터 경기를 일으켰던 최초의 모습과는 완전히 딴 판인 도입부.
"...."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약속대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점차, 태연하기만 했던 여우귀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어갔다. 꼭 다문 입술, 그건 무언가 소리가 튀어나오려는 것을 꾹 담아 눌러서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상 위에 포개어진 두 팔은 인내하듯 자기 손목을 꼬옥 잡았고, 두 귀는 쫑긋 서서 이따금씩 잡아 놓은 생선의 지느러미 마냥 파닥였다. 이건 이거대로, 맞은 편에서 보고 견디기 꽤 힘든 비쥬얼이 아닐 수 없었다.
"...저기-, 리글씨. 계속..., 만질 거야?"
시선을 피하고, 새는 목소리로 가늘게 입을 열었다. 자기가 맘껏 만지라 해놓고, 이젠 그만 둬달라고 하는 꼴. 도대체가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이 제멋대로인 여우였다.
"더 만지면..., 나 약속, 못 지킬 거 같은데."
숨을 고르고, 아예 협박까지 해댔다. 당최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또 어디까지가 진심인 것인지.
손에서부터 풀려난 꼬리는 어느새 털이 곤두서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마치 커다란 갈색의 솜사탕처럼.
"지금 이게, 장난인거처럼 보여?"
약간 상기된 뺨.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아까 본 송곳니가 다시 형광등의 빛을 반사했으나, 그다지 노기를 띈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짜증일 것이다. 뭐라 더 말하려다가 리글 경장에겐 들리지 않게 한 마디를 중얼거리곤, 그저 따라 놓은 술잔을 기울였다.
"흐-, 맞아. 장난.... 근데, 그러는 리글씨도 싫진 않잖아-?"
술잔을 기울이자 곧장 표정이 헤실헤실 풀어져버렸다. 누가 그랬다. 사내에 여우귀만큼 알기 쉬운 사람도 없고, 또 여우귀만큼 알기 어려운 사람도 없다고. 물론, 그 외에도 사내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돌았다. 예를 들면,
"누가 그러던데. 세상에 밥 잘 사주는 오빠 싫어할 여동생 없고, 또 술 잘 사주는 누나 싫어할 남동생 없다구. 맞잖아?"
키득, 또 한번 드러낸 발칙한 웃음. 그것과 함께 묘하게 흘러나오는 알콜 섞인 숨결의 향이 맞은 편 자리까지 뻗혔다. 여우귀는 엉덩이를 뒤로 쭉 뺀 채, 상반신을 기울였다. 그 기세로 리글에게로 점차 다가가 얼굴을 가까이 하고.
"인정해, 우리 관계는 서로에게 윈윈이란 걸. 리글씨는 술을 얻어 마시구, 난 대신-, 좋은 안주를 먹을 뿐인 그런 관계."
그 때, 직원분이 말미잘 전골을 가져다 테이블 사이에 놓아 다시 몸을 뒤로 뺄 수 밖에 없었다. 그 타이밍을 이미 읽고 있었던 건지, 딱 닿기 전의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자연스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천연덕스러운 웃음기를 흘렸다.
"난 리글씨랑 오래 갔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혹시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라도 말해주라.... 더 힘들어지기 전에."
아마 오늘 흘린 수 많은 농담들 사이에서, 지금 이 말만큼은 틀림 없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눈을 살짝 떴다. 조금이지만, 보는 이의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차갑고 날카로운 눈매. 그리고 마치 땅이 꺼진 구멍처럼, 그 끝을 알 수 없는, 광택 없이 검은 눈동자. 그건 아무리 봐도 요염한 여우라기 보다, 마치 노련하고 냉철한 이리 같았다. 눈만 살짝 떴을 뿐인데, 평소의 장난스런 이슬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말투도 그닥 달라진 것 없이, 그저 저 눈이 가져다 주는 분위기 때문에.
여우귀가 눈을 감고 다니는 이유는 명확했다.
"아-, 혹시 내가 제일 힘든가?"
눈을 감자, 평소의 여우귀로 돌아와 있었다. 아마 본인은 방금 눈을 뜨고 있었다는 것조차, 자각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살짝 멈칫거렸다. 장난인지, 아닌지. 짜증난 표정을 보면 진심인 것 같으면서도 저런 표정에 이전에도 당한적 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표정연기에 당하지 않았던가. 고민하는 사이 경사님은 알아듣지 못할 중얼거림 후에 헤실헤실 웃어버렸다.
"그야... 당연히 싫진 않죠. 정말, 싱거우시다니까..."
경사님은 항상 어렵다. 사람이 어려운게 아니라 의중이 어려운 사람. 다가가기는 쉽지만 가까이 가긴 어려운 사람. 그녀만큼 알기 쉬운 사람도 없고, 알기 어려운 사람도 없다. 빙글빙글 웃는 얼굴 속에는 대체 무슨 의도가 담긴걸까. 속이 빤히 보이는 행동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의미모를 행동들이 더 고민을 깊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지금같은. 나를 놀리는 행동들.
"경사님처럼 술 잘 사주시는 누나는... 최고긴 한데... 잠깐만요 너무 가깝-"
웃음에 새어나온 미약한 알콜향이 나는 숨결.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얼굴. 순간 시야가 어지러워 손을 어쩔 줄 모르고 갈팡질팡한다. 이거...닿는다.. 닿는다, 닿는다. 닿는-
그 순간, 안주가 나오며 경사님이 몸을 뒤로 빼자 안도감 섞인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 좋은 안주가... 설마 저는 아니죠..?"
음식이 나오기 전에도 먹을 수 있는, 놀림거리라는 이름의 안주. 어쩐지 그렇게 느껴지는 말이라 몸을 가볍게 떨었다. 나온 말미잘을 슥 훑자 이번에는 방금 전보다 더 심하게 몸을 떤다. 어떻게 저런걸 먹을 수 있는건지..
"..힘든 일을 말하면 도와주실 수 있나요?"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말. 저건 진심이겠지. 하지만 진심인 것과 별개로, 그 상황이 오면 도움받을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나는 검은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평소의 장난기 어린 곱게 휘어진 눈은 온데간데 없고 바닥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이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의구심이 든다. 저런 나를 빨아들일 것 같은 눈동자를 가진, 내가 휩쓸릴 것 같은 사람에게, 내가 도움받을 수 있는걸까. 도움받으면 경사님에게 오히려 휩쓸리는게 아닐까. 나 역시 오래가길 원하는 인연들중 하나다. 적어도, 내가 이 일을 떠나기 전까지는 쭉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정답을 한번에 맞추셨...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이건 어떻게 먹죠..."
평소 분위기로 돌아온 경사님이 농담을 던지자, 나도 모르게 그만 인정해버렸다. 정확히는 끝까지 말하기 전에 말미잘 전골에 관심을 갖는 척 했지만.
싫진 않다에서 더 나아간 질문. 지긋이 바라보는 실눈이 조여오듯, 경장의 답을 기다렸다. 물론, 여우귀가 그 답을 듣기 전에 화제는 넘어갔다. 그렇다곤 해도, 결국 또 다른 농담을 던지며 키득거릴 뿐이었지만.
"안주가, 사람 말도 하네."
핥짝, 자기 입 주변을 내민 혀로 살짝 핥았다. 그것은 마치 여우가 먹이를 두고 입맛을 다시는 행동. 금방이라도 잡아 먹을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그것에 갖은 반응을 보여주는 경장의 모습을 음미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응-, 믿어. 난 농담은 해도, 거짓말은 안 해."
그렇게 너무나도 가볍게, 허나 어쩌면 무거울지도 모르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말미잘을 앞에 두고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장에게, 여우귀는 잘난듯이 말했다.
"어떻게 먹긴-,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으면 되는데."
방법을 물어보는 것은 명백한 하책이었다. 그 증거로, 지금 여우귀는 종전보다도 더욱 생기가 도는 미소를 띄며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었으니.
"자, 이렇게."
숟가락으로 푹 퍼올린 흉물의 조각. 분명 수 시간 전까지는 물 속에서 불경스럽게 촉수를 꿈틀대고 있었을 터인 그것은, 삶아지고 토막내져 생이 다한 뒤에도 경장에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 뒤로는 요망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겁먹은 경장이 입을 열기만을 바라는 못된 여우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