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고 보이는 레레시아의 모습을 아스텔은 조용히 바라보다가 미소를 다시 한 번 조용히 띄웠다. 머리에 손이 많이 갔다는 그 말에 절로 시선이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향했고 늘어뜨린 머리카락에 잠시 멈췄다. 들어와도 되냐는 그 말에 이내 아스텔은 고개를 끄덕였고 들어오라는 의사를 보였다. 이내 그녀가 들어온 후, 그는 문을 조심스럽게 닫았다.
"그렇게 오래 걸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머리까지 새로 한 거야? 수고했어. ...예쁘네. 오늘도."
차분한 목소리를 내며 아스텔은 앞장서서 자신의 방 안으로 그녀를 들였다. 이전에 한 번 왔었을 때와 그의 방은 큰 차이가 없었다. 방 한 쪽에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가 하나 있었고 전등에서 불이 반짝반짝이는 것을 제외하면. 그 크리스마스 트리를 잠시 바라보던 아스텔은 앉으라는 듯 손님용 방석을 꺼내서 그녀가 앉을 자리에 조심스럽게 놓아두고 자신은 그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송년회도 송년회지만 크리스마스잖아? ...그래서 일단 매년 분위기는 만들고 있어. ...대장의 지시도 있고 말이야. 아무튼 크리스마스니까 이 말은 해둬야겠지. 메리 크리스마스. 레레시아."
가볍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하며 아스텔은 팔을 뻗어 침대 아래에 넣어둔 상자를 살며시 끄집어낸 후에 그녀에게 내밀었다. 붉은 포장지로 둘러쌓여있는 선물 박스는 구겨짐없이 깔끔하게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영어 문장이 쓰여있는 카드를 동봉한 그 박스를 아스텔은 레레시아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이건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선물도 교환선물이지만 이건 따로 주려고 준비해둔거야. ...마음에 들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너 주려고 준비한거니까 줄게."
아마 포장지를 뜯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면 그 안에는 꽤나 능숙하게 뜬 보라색 수제 목도리가 있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은색 실로 레레시아 나나리라는 단어를 확실하게 박아둔 것을 보면 절대 어딘가에서 파는 물건은 아니었다. 아스텔이 직접 뜬 수제 목도리가 그 안에 들어있긴 했으나 포장지를 뜯지 않고 일단 남겨놓았다면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꽤 이후의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음. 그게..(시선회피) 로벨리아는 꽃의 이름에서 따온 것은 아니고 제가 보던 책의 등장인물중 '로벨리'라는 인물이 있어서 거기서 따온 이름이랍니다. 로벨리보다는 로벨리아가 좀 더 우아하고 높은 분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아를 붙여서 로벨리아를 만들었고 와. 이름 예쁘다. 좋다. 좋다. 귀품 나네! 라고 생각하고 지었는데 차후에 로벨리아라는 꽃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 (시선회피22)
아하! 이름의 다른 모티브가 된 캐릭터가 있었군요! 사실 저도 로벨리아라는 꽃을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꽃말이 무시무시한지라... 혹시 캡틴이 노린것인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캡틴의 의도대로 되었다! 사실 로벨리아 이름을 처음 봤을때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지금도요!
문턱을 넘어 방 안으로 들어간다. 등 뒤에서 문 닫히는 소리 들릴 때. 그녀는 조용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전에도 온 적 있는 아스텔의 방은 익숙함보다는 새삼스런 낯섦이 느껴졌다. 사실 이런 낯섦이 여기가 처음은 아니지만. 막상 와보니 그래 여기도 이렇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복귀한 후로 드는 어중간한 감각이 심술인지 의도인지 이제는 알 수 없다. 레레시아는 망연히 바닥 어딘가를 보다가 아스텔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선을 들어 그에게 향했다. 그리고 살짝 웃으려 했다.
"그렇게 보여서 다행이네. 응. 고마워."
평소처럼 말하면서도 원래 이랬었나 하는 의구심이 스물스물 명치 안쪽을 기어다닌다. 표정은? 행동은? 아. 문 밖에서의 불안함이 이것이었구나. 겉으로는 태연한 척 내색하지 않으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나 들리는 건 토막나고 중간이 빠진 말조각 뿐. 흐리게 들려오는 목소리를 잡으려 하다가 눈을 깜빡이니 어느새 그가 내어준 방석 위에 앉아있어서 언제 앉았지 싶다. 앉은 자리를 보고있다가 문득 고개를 돌리니 방 한켠에 작은 트리가 보인다. 반짝반짝. 점멸하는 전구빛을 멍하니 보던 그녀는 바스락대는 선물상자가 앞에 보이고서야 흠칫 정신을 차린 듯 했다.
"어... 어? 언제 이런 걸 준비했대. 으응 .너도 메리 크리스마스."
앞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상황상 크리스마스 선물이겠거니 싶어 얼른 선물상자를 받아든다. 손에서 손으로 넘겨받을 적. 후드집업 주머니에 들은 함이 생각났지만 역시나 선뜻 꺼낼 수가 없다. 선물상자를 무릎에 놓고 잠시 가만히 있던 레레시아는 곧 웃는 표정을 지으며 포장지에 손을 얹었다. 뭐가 들었을까나. 기대가 섞인 듯한 말을 하며 붉은 포장지를 벗기고 상자를 열어 안에 들어있던 목도리를 꺼냈다.
"목도리...? 와아. 어디서 산 거..."
보라색 털실로 짠 목도리는 잘 만들어진 물건이라 언뜻 어딘가에서 사온 건가 싶었다. 완전히 꺼내어서 이리저리 만져보며 어디서 산 거냐고 물으려는데. 말을 하는 도중에 은실로 박은 그녀의 이름을 보고 손도 말도 멈췄다. 그 이름 말곤 어디에도 어떤 표식도 붙어있지 않은 목도리. 이런 물건에 익숙한 그녀이기에 출처는 굳이 물을 필요도 없었다. 그렇지만 하필. 아니. 아니다. 그녀는 손 끝으로 목도리에 수놓인 이름을 슥 만져보고 조심히 들어서 목에 둘렀다. 목과 얼굴 일부가 감싸이도록 폭 두르고 또 잠시간 만져보고서야 아스텔을 향해 웃어보였다.
"정말 좋은 목도리네. 그리고 정말로 마음에 들어. 정말로... 고마워. 아스텔."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여전한 불안함이 표정에 드러날까 싶어 괜히 목도리에 얼굴을 푹 묻어본다. 괜찮을 거라고 자기암시를 몇 번 걸고서야 아무렇지 않은 척 목도리를 풀어 다시 상자에 집어넣었다. 상자를 닫아 옆으로 밀어두고서도 주머니에 든 걸 꺼내지 못한 그녀는 마냥 웃는 얼굴로 테이블에 차려진 술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묘하게 어색함이 녹아내린 것 같다고 아스텔은 생각했다. 들어오면서 바닥을 바라보는 모습, 그리고 묘하게 정신이 다른 곳으로 팔린 것 같은 느낌. 그 많은 것을 느끼면서, 특히나 메리 크리스마스를 이야기하지만 살짝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 그 모든 것이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처럼 그의 마음 속에 살짝 걸렸다. 뭔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과연 그것을 자신에게 말을 할지. 그 많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아스텔은 언제부터 이랬던가. 라는 생각에 잠시 빠졌다.
"마음에 든다면 다행이야. ...겨울이 춥다는데 따뜻하게 사용하길 바랄게."
건배를 제안하는 레레시아의 말에 이내 아스텔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자신의 잔을 들어 그녀가 따라주는 것을 조용히 받았다. 뒤이어 그는 맥주병을 잡으면서 그녀의 잔에 맥주를 따라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잠시 또 입을 다물고 뭔가를 생각하던 아스텔은 레레시아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했다.
"...무슨 고민거리나 걱정거리. 혹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기분 탓인진 모르겠지만 뭔가 정신이 조금 다른 곳으로 팔려있는 것 같아서."
몇 번의 생각을 하긴 했지만 결국 아스텔은 정면승부를 던지기로 했다. 어쨌건 물어보고 싶은 것을 물어본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며 답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자신도 더 굳이 캐물을 생각은 없었다. 허나 그 모든 것은 일단 물어봐야만 시작이 되는 법이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면 결국 아무 것도 시작을 못하는 법 아니겠는가.
"...라라시아 때문에 그래?"
일단 아스텔이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라라시아라는 존재였다. 어찌되었건 조금 불편함이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까. 허나 아니라고 한다면? 적어도 자신은 더 추론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내 그렇게 말을 마치며 아스텔은 살며시 잔을 들어올린 후, 그녀를 향해 내밀었다. 가볍게 짠- 을 권유하는 모습이었다.
블래키... 깜찍하지요! 그 아담한 크기를 가졌는데 악타입이라니... 거기다 여우를 닮았다니! 그리고 검은 몸에 붉은 눈이라니!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포켓몬이다! 갑자기 급발진을 했군요... 그치만 원래는 독타입으로 기획된 포켓몬이니만큼 레시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독타입 포켓몬 트레이너 레시도 운명이 점지해준 수준으로 멋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