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천장만 보이지는 않았다. 라라시아가 눈 땡글하게 뜨고서 옆에 있었다. 그냥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속옷 바람으로 누워서 생글생글 웃는 얼굴은 얄밉기 그지없었다. 뭐하냐니까 신체검사라며 낯짝 두꺼운 소리를 하길래 흐느적 대는 팔로 베개를 들어 그 얼굴을 한 대 내리쳤다. 퍽! 둔탁한 타격음 뒤에 악 소리 대신 히히 개구진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니 재차 얄미워져서 더 치려고 베개를 들었는데. 뻔뻔하게도 손을 들어 막는 라라시아였다.
"스톱, 스톱! 맞을 때 맞더라도 변명은 하게 해줘!" "뭐. 할 말이 있어 지금?" "당연히 있지. 이거 보라고. 이거."
라라시아가 이거라며 가리킨 건 그녀의 옆구리였다. 왼쪽 옆구리. 도자기처럼 희고 잘록한 옆구리에는 여태 본 적 없는 검은 문양이 있었다. 크게 피어난 장미와 가시 덩쿨. 잎사귀 몇 장. 마치 옆구리를 뚫고 피어난 것처럼 그려진 문양을 보고 언제 했냐고 물으려고 하자 그보다 앞서 라라시아가 말했다.
"이거 내가 한 거 아니야. 그리고 너도 있어." "뭐? 어디? 앗 진짜네?!"
너도. 라길래 황급히 몸을 일으켜 옆구리를 보았다. 오른쪽에 있었다. 좌우가 바뀌었을 뿐인 똑같은 문양이. 그러나 그 문양이 있는 자리는 분명.
"...설마, '조정'된 거야?" "그렇겠지. 옛날부터 우리한테 흠집 나는 거 치가 떨리게 싫어하는 사람이었잖아. 손에 넣은 김에 또 건드렸겠지. 그것 만도 아냐."
대조적으로 차분한 라라시아가 머리카락을 들어보였다. 분명 눈에 띄게 짧던 머리카락이 같은 길이로 길게 자라 있었다. 같은 문양과 같은 길이가 된 머리카락. 서로 시선을 교환하다가 말없이 더듬더듬 몸을 움직여 마주보았다.
서로를 마주 보는 것 만으로 알 수 있었다. 지난 2년. 사소한 생활 차이로 조금 달라졌었던 서로가 거울에 비친 것처럼 똑같아졌다. 이젠 정말 눈동자만이 서로를 구분하는 유일한 차이가 되어있었다. 잠깐이지만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로를 서로에게 얽어매어놓으려는 듯한 '그 사람'의 '조정'. 그러나 이제 겉을 똑같이 만든다고 해서, 서로에게 얽매이지 않으리란 건 서로가 제일 잘 알았다.
"뭐. 마지막이니까. 헛짓거리만 안 해놨으면 상관없어." "그 점은 이미 검사 끝났으니까 걱정 말아. 아. 그런데." "어. 뭐?" "그거는. 그대로니까." "상관없어. 잃은 날 포기했어."
잃었던 것에 대해선 진작 기대도 뭣도 버렸다고 말하며 다시 드러누웠다. 자연스럽게 옆에 누워 팔베개를 하려는 라라시아를 딱밤으로 물리치고. 잠들어있던 사이의 일들을 물었다. 이마를 문지르며 엎드려 누운 라라시아가 하나하나 얘기를 시작했다.
그 날 마을에 왔던 이들은 특수부대와 의무실 인원으로 꾸려진 의무대 한 팀이었다. 사전에 준비해서 전달된대로 백신도 잘 챙겨서 왔었단다. 덕분에 아이들을 모두 무사히 구했고. 남아있던 주민들도 같이 넘어왔다고.
다른 주민이나 아이들은 로벨리아의 판단에 따라 다른 마을로 가거나 했지만. 블레이크는 이 마을로 왔다. 따로 부탁한 건 아니고 그의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고 있으니 얼마간이라도 가까이 있는게 좋지 않겠느냐고 했단다. 불편하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겠다고 하길래 괜찮으니 마음 편한 곳에 있으라고 라라시아가 말해뒀다고 한다. 그리고 조만간 만나러 가자길래 소리없이 시선을 피했다.
조만간 보긴 보겠지만. 조금 더 나중의 조만간이 되겠지.
아무튼 그 날 구조를 도와주고 그 사람과 끝까지 대치를 한 사람 중에 이스마엘과 쥬데카도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을 무너뜨리고 껍질 뿐인 태내에 갇혔던 걸 꺼내주기까지 한 두 사람에겐 그에 걸맞는 설명과 대화를 해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당장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과거의 주박으로부터 풀려났다곤 하나. 그렇다고 결점이 사라진 건 아니기에.
"그걸로 끝?" "끝이지 그럼. 뭐가 더 있겠어?" "으음. 그러게." "그치. 지나간 일은 더 없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들만 남았어." "...천천히 하자. 천천히." "또 미룬다. 또.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 왕창 한다?" "아 어쩌라고."
대화 끝에 투덜대며 엎드려 베개를 감싸안는다.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깊숙히 묻고 앞으로를 생각해보았다. 만나야 할 사람. 해야 할 이야기. 그리고 계속해서 해나가야 할 것. 여러 책임 앞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두려움이었다. 어스름히 떠오르는 불안함을 가라앉히고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까. 결심보다 크게 부푸는 불안에 선뜻 마음이 앞서지 않아 결국 조금 나중이라며 미룬다.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결점이었다.
"야. 그러고 있지 말고 일어나. 기운 쌩쌩한 거 같으니까. 안 입어본 옷이나 입어봐." "옷? 너 그새 뭘 또 만들었어?" "잔말 말고 얼른!" "하... 그래. 차라리 그게 낫다."
대조적인 결점 탓인가. 아무런 고민도 없는 얼굴로 있던 라라시아가 휘릭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을 열어제끼는 걸 보고 미적미적 따라 일어났다. 지금은 어울려주는게 그나마 가벼울까. 한동안 안 입어줬던 옷들을 한아름 들고 오는 걸 보고 깊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짚었지만. 그래. 그나마 낫지. 그렇게 주섬주섬 옷을 입어보고 재잘대는 라라시아에게 대꾸도 해주고 하며 다시 돌아온 일상을 새삼스레 느꼈다.
"맞다. 나 이번에는 너 안 도와준다?" "무슨 의미야?" "너 뭐 할지 뻔한데. 그럼 나한테 물어보러 올 거 아냐. 누구든 오면 오는대로 도와줄 거라고." "아. 뭐... 마음대로 해." "어어. 앗 잠깐만 그거 이 귀랑 같이 입어야 해!" "아니 이런 건 또 언제 만들었어 에라이!" "야!"
그 대화라는 것이 '일상'을 말하는 것 같은데 만약 그렇다면 선우주가 먼저 일상을 구하기도 했고 먼저 구한 이를 스루하고 새로운 이와 일상을 돌리는 것은 조금 애매한 느낌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두 캐릭터가 친밀한 관계라는 것은 알긴 하고 일상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긴 한데.. 이런 자잘한 것이 AT라던가 그렇게 작용을 하게 되니 이 부분은 조금 주의해주시길 바랄게요.
앗.. 일상.. 돌리고 싶지만 선우주도 구하는 것 같구, 쥬주랑 일상도 돌리고 있었구.. 무엇보다.. 사실 내가.. 우웃.. 우...🥺 오늘... 하루종일 밖에 있었던지라 기력이 많이 없어서 지금 당장은 어려울 듯싶어... 오늘부터 버닝인데 버닝은 무슨 노트북 펼치기도 힘들어서 침대에 누운 노답체력이라..😔 제안해줘서 고맙구 울 언니 빨리 만나구 싶은 마음 이해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