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두잔과 스콘 몇가지를 사온다는 말에 나는 옷을 좀 더 여몄다. 밖은 춥다. 슬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당연한걸지도. 그리고 난 이런 추운 날에 선배만 밖으로 보내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막되먹은 후배는 아니었다.
"케어해준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스콘이랑 커피는 같이 사러가는게 좋겠네요... 혼자 가면 분명 더 추울 거에요..?"
비록 움직이기 싫은 것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선배를 혼자 보내는 것보단 조금 귀찮아도 움직이는 편이 더 마음편했다. 경찰을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지만 경위님과 다른 사람들 때문에 못 그만두는 것도 비슷한 심정인가... 아니, 이건 아예 다른 이야기일까. 어찌되었든 결국 사러간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나 역시 선배가 사무소의 문을 열면 따라나선다. 그 사이에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다만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잡다한 생각들을 정리했을 뿐이다. 주로, 어제에 관한.
나는 그저 따라다녔을 뿐이었고, 선배를 따라다니다보니 다시금 사무소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정확하게 10분 즈음이 되어있었다. 어떻게 초 단위까지 맞추는걸까... 내심 감탄했다.
"흐으으... 춥네요 밖은... 이제 오늘은 더이상 안 나가야지..."
선배만 보내기는 마음에 걸려 밖을 나갔다오긴 했지만 그래도 추운 것은 추운 것이다. 미리 틀어둔 보일러 덕분인지 휴게실은 적당할 정도로 따뜻했다. 나는 겉옷을 걸어두고는 저 구석에 있는 라꾸라꾸에 꾸물꾸물, 몸을 뉘이기 시작했다.
"선배 여기 너무 따뜻해요...."
라꾸라꾸에 반쯤 누운 자세로 앉고는, 그 앞에 적당한 테이블을 준비한다. 커피만 있으면 모를까 스콘을 먹을 자리가 필요하니. 새나도 함께 앉아 먹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테이블을 찾아 두고는 그 위를 물티슈 몇장으로 닦아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정말로 멘탈 케어... 라는 명목의 따뜻한 휴식시간이었다.
그의 말에 잠시 문 밖을 흘긋 쳐다봤다. 추위는 제게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잦은 거절은 좋지 않았다. -고 수첩에 적힌 글귀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럼 같이 가요, 하고 대답했다. 카페로 가는 길부터 사무소로 돌아오는 길까지 째깍째깍 쉼 없이 움직이는 초침처럼 시곗바늘을 들여다보았고, 그 결과 알맞게 십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나는 피어오르는 미약한 쾌감을 자연스레 삼키며,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글이 하는 테이블 세팅을 도우며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각각의 빨대를 꽂아 넣고, 스콘을 감싼 봉투의 리본을 풀기 시작하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휴게실은 따뜻해서 다행이에요. 오늘 같은 날 현장 업무가 없길 바라야겠네요, 아직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으니."
그러곤, 편안한 자세로 반쯤 뉘여진 리글을 응시하고 싱긋 웃었다. 업무 중 일탈이라는 점이 불안과 비밀스러운 설렘으로 심장을 뛰게 만들었지만, 이능 범죄라는 사건에 휘말린 후배가 심신을 안정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 또한 안심이 된 것이었다. 새나는 아메리카노를 쪼옥 빨아마신 뒤 스콘들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두개는 초코 스콘, 두개는 오리지널 스콘이에요. 먹고 싶은 만큼 듬뿍 먹어도 돼요. 저는 단 걸 잘 안 먹어서……."
현장업무라는게 보통 예고를 하고 찾아오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런 느긋한 분위기가 갑자기 긴급한 분위기로 바뀐다면 그닥 기꺼운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오늘은 비교적 여유롭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 것이다. 덕분에, 나도 선배도 지금은 조금 풀어진 모습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선배. 이것도, 고마워요. 잘 챙겨주시는거."
멘탈케어도, 이런걸 사주는 것도, 전부 날 챙겨주시는 것들. 그렇기에 감사한 마음 뿐이다. 그 감사한 일들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아메리카노에 입을 살짝 대었다가, 그대로 스콘을 한입 베어물었다. 역시 쓴건 무리..
"오늘은... 조금만 더 이렇게 쉬죠... 어제 그런 일도 있었으니.."
따뜻한 분위기에 달달한게 들어가서인지, 내 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늘어지게 등을 기대며 조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따뜻한 휴게실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간식시간이 지나가가고 있었다.
//그럼 이걸로 막레 드릴게요~ 저도 행운의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귀여운 새나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금요일, 퇴근에 가까운 저녁. 백화점 소동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리고 돌연 경쾌한 카톡 소리.
[차] [태워죠] [술은 내가 사잖아-?] [리글씨 차 있는 거, 다 알거든] [(고양이 눈 번뜩 이모티콘)]
라는 톡을 날린 장본인 여우귀는 맞은 편 테이블에서 쫑긋 귀를 세우고, 리글 경장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마 당연히 태워줄 거라 생각하는 모양. 술을 산다는 건 틀리지 않았지만, 결국 차를 끌게 한다는 의도는 뻔하디 뻔했다. 적당히 먹고, 자길 챙겨달라는 것. 물론 대리는 부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느덧 퇴근 시간. 리글 경장의 차 문을 열고, 뭔가 성나는 일이 있었던 건지 볼을 부풀리곤 몸을 시트에 푹 묻듯이 실었다. 이어, 곧장 늘어놓는 푸념들.
"하-, 나 오늘 진짜 완전 지루해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잖아. 리글씨, 이거 실화야? 아니, 어떻게 전산 담당이 점검하는 날에 연차를 낼 수가 있는 거냐고.... 하루 종일 그거 땜빵 하느라, 아직 소주 1팩도 못 깠단 말야."
서슬퍼런 송곳니를 드러내대며 조수석에 다리를 꼰 채, 경장의 동의를 재촉하듯이 오른쪽 가슴팍을 살랑이는 꼬리 끝으로 빙글빙글 원을 그려 간지럽혔다. 진정한 마이페이스, 그 자체다.
백화점 소동이 일어나 한동안 소란스럽던 시기도 슬쩍 지나가고, 어느새 금요일. 잔업까지 하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낼 수 있겠다 싶은 시점. 경쾌한 카톡소리가 울리자 나는 책상에 올려두었던 폰을 확인했다.
카톡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니, 다름아닌 오늘 저녁을 사주겠다고 한 선배가 차를 태워달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거절할 용기도 없거니와 경사님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술을 사준다는데, 운전기사 정도야.
[네.] [이번만이에요.]
그렇게 카톡을 날리며 맞은 편 테이블을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경사님이 보였다. 그 태연한 모습에 나 역시 피식 웃음을 흘렸을까. 웃음은 얼마 가지 못하고, 자길 챙겨달라는 의도를 눈치채고는 다시 울적한 표정으로 변했지만. 그러고보니 내 차를 가져간다는 이야기는... 윽. 눈뜨고 코 베인 기분이다.
퇴근시간이 되면, 느긋한 몸동작으로 차에 올라탔다. 익숙하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있자 무엇인가 귀찮은 일이 있던건지 볼을 부풀린채 시트에 몸을 묻고있는 경사님이 있었다. 내 경험상, 이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푸념을 하시는 경우다. 지금처럼.
"그렇지? 진짜 죽겠다니까.... 다들 착각하는데, 이쪽도 놀고만 있는 건 아니라고? 호수 위 백조란 말이야, 난. 수면 아래선, 쭉 열심히 물장구 중이란 말씀."
썩 시원친 않지만, 그래도 동의해준 것에 만족하고 고갤 끄덕이는 여우귀. 허나, 반응이 재미있어 원하는 것을 들은 이후에도 자꾸만 꼬리 끝을 발칙하게 놀려대었다. 고작 저런 손짓으로 막아내려 하다니, 그녀의 눈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흐흐..., 리글씨가 간지러운 건 전혀 내 알 바가 아닌걸? 핸들 잡고 운전에나 집중하셔. 사고 나."
여우귀를 단 작은 악마가 조수석에서 경장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시트에 쭉 밀착하곤, 사이드 브레이크 쪽을 넘어와 아래에서 위로 경장을 올려다 보았다. 물론 실눈이라, 여전히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참 그렇게 재미를 보다, 이제서야 기분이 확 풀어진 건지 이번엔 다른 화제를 꺼낸다.
"오늘 아침-, 새나 선배랑 대화는 잘 했어? 그림 좋던데. 다정하게 위로해준 거야?"
옆 조수석에서 쿡쿡, 참지 못해 터져나오는 웃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소릴 해대는지, 아마 표정으로 전부 드러났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