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시각 8시 50분. 정시 출근보다 10분 이른 시각.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시계를 보고는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10분이나 일찍 와버렸네...'
평소라면 정시보다 3분 전에 완벽한 출근을 하는데, 오늘은 이래저래 딴생각을 하다보니 10분 전에 출근을 해버린 것이다. 딴생각이라고 해도 어제의 그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이지만.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고도 느긋하게 일상으로 돌아올만큼 무신경한 편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 결과가 고작 평소보다 7분 일찍 출근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차치해두고. 어쨌든 다시 평소처럼 느긋하게 일할 준비를 하던 찰나, 사무실에 또 다른 한명이 출근한걸 본 것이다.
"새나 선배님 좋은 아침...?"
평소처럼 손을 흐느적거리며 인사했으나 선배의 상태는 평소와는 어딘가 달라보였다. 눈도 어딘가 풀려있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게 별로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선배 괜찮아요? 아, 피도 나잖아요..!"
평소답지 않게 서류철에 손가락이 베인 것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구급상자. 구급상자가 어딨더라. 조금 주변을 살피다가 저 멀리 거치대 위에 구급상자를 두었던걸 기억하고는 능력을 사용하여 후다닥 구급상자를 가져온다.
"가만히 계세요." 라는 말과 함께 구급상자에서 소독약을 꺼내 새나의 다친 손가락에 발라주려고 했다.
"선배는 겁도 많으심다. 몸땡이는 곰만큼 크시면서, 간은 어째 저 같은 여우보다도 작으신 검까?"
입가에 옥구슬 같은 즐거움이 은쟁반을 타고 흐르듯, 유려하게 머물렀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 있는 것이 새파란 후배들을 놀려 먹는 거라면, 두 번째는 바로 선배들을 놀려 먹는 것. 즐거움이 감히 아니 생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곧 이어지는 말에 미소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흐응, 그래서요?"
살짝 파르르 떨려오는 입가. 그 순간, 여우귀는 무언가 불길한 것을 직감했다. CLARENT의 존재. 그리고 그 우려는 곧장 현실이 되었다.
"아..., 아아-. 하아아아.... 진짜 걔들 왜 그런담까? 얌전히 도시 전설로나 남아 있을 것이지, 왜 또 굳이 난리를 일으켜선...! 이런 참신한 멍멍이들 같으니라고!"
곧장 머리라도 쥐어 뜯고 싶은지 고개를 숙였다. 쳐진 여우귀, 그리고 풀이 죽은 꼬리. 목소리에도 묘하게 힘이 쭉 빠졌다.
"돌겠네. 저기요, 선배. 만약에 상황 터지면..., 주말이라도 우린 짤 없이 바로 호출이겠죠?"
따끔, 하는 감각과 함께 정신이 호수에 돌을 던진 듯 깨어났다. 퍼뜩 눈을 뜨며 손가락을 부여잡는데, 근처에서 일순 인기척이 시라졌다가 나타났다. 옆을 돌아보니 백발의 청년이 시야에 잡혔다. 출근하면서 누군가 말을 걸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데, 그게 리글 씨였나보다.
완전히 깨어나지는 않은 듯 두 눈을 깜빡이며 부여잡은 손가락의 상처 위로 덧발리는 소독약을 가만 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새나는 대충 묶은 머리를 정돈해 베레모 안 쪽으로 넣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범죄는 경찰을 따라다니는 그림자와도 같으니 어젯밤 밤의 장막 속에 묻어두자.
그보다 리글 씨에게는 감사를 표해야지. 그가 두 남성을 제압하지 않았더라면 무슨 결과를 초래했을 지 모르니.
"리글 씨. 어제는 고마웠어요. 덕분에 범인을 잡았잖아요."
그렇게 말하곤 잠시 머뭇거리다가 주머니를 뒤적여 매뉴얼 수첩을 꺼내었다. 음…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끄덕하던 새나는 다시 리글을 마주했다.
"무섭진 않았어요? 정신 케어는 선배가 할 일이라 쓰여있거든요. 오늘 점심 시간 이후의 일정은 널널한 편이니 뭐라도 사드릴게요."
그리곤 이렇게 덧붙이는 것이다.
"참… 전에 아메리카노를 잘 마셨던데, 그거라도 마시면 리글씨도 확 정신이 들지도 모르겠네요……."
조심스레 소독을 하고, 선배의 손가락에 밴드를 감아주었다. 어렵진 않은 처치이긴 해도 다른 사람에게 해주는건 익숙치 않다보니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나. 그러다보니 선배가 하신 감사의 말씀을, 한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뒤늦게서야 반응했다.
"아, 아... 그건 제가 감사받을게 아닌 것 같은데요..."
내 덕분에. 내 덕분에? 결국 중간에 사람이 죽었던건 막지도 못 했고, 진화라는 아이를 발견했던 것도 내가 아니다. 나는 1층에 있다 지원요청을 받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뿐. 아예 한 일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냥... 내 덕은 아닌 것 같다. 굳이 누군가의 덕분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맞는거겠지.
"새나 선배도, 슬기 선배도, 지온 선배님도... 그리고 다른 분들도. 전부 노력했던 결과니까요. 제가 감사받을 일은 아니에요.."
"선배야말로 도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어제." 라면서 헤실 웃어보이는 것이다. 두 사람이 못 움직이게 연기로 붙잡았던 것을 기억한다. 그 덕에 기절시키기 한결 수월했던 것도 있으니.
"아메리카노... 좋아...하죠..."
뭐라도 사준다는 말에 안색이 밝아졌다가 아메리카노를 잘 마셨다는 말에는 순간 동공이 흔들린다. 아메리카노... 왜 하필.. 아니, 이건 내 탓이다. 처음부터 아메리카노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선배가 너무 상냥해서 말을 못 꺼낸 결과다... 지금 말을 꺼내면 굉장히 어색하겠지..? 그냥, 조용히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선배님의 정신 케어를 받는 김에, 저희 잠깐 땡땡이칠까요? 잠깐 나갔다 오는것 정도로는 경위님도 많이 혼내진 않으실테니."
근무중에 잠시 외출하는 것은 평소라면 잔소리를 들을만한 일이겠지만, 어제 일도 있고 하니 봐주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선배에게 한번 제안해보았다.
베레모를 매만지던 손이 멈췄다. 그의 말을 가늠하듯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슬쩍 기울였다. 그렇지만…….
"분명했잖아요? 활약."
바둑알처럼 까만 눈을 깜빡이며 말하는 표정은 깨끗하고 무구하여 말꼬투리를 잡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말 그대로 있는 사실만을 전달하는 기색이 만연했다. 마치, 활약을 한 것이 내 수첩에 똑똑히 적혀있는데 어째서 감사 인사를 받지 않아? 라는 듯한 얼굴. 그 얼굴은 그에게서 도리어 인사를 받자 딱딱하게 굳었다. 아, 음, 그런가요……. 고마워요……. 어쩐지 뿌듯하면서도 받아도 될까 싶은, 안절부절하고 쑥스러운 기분이었다. 당시에 라이터를 동아줄 마냥 꽉 쥐고 있던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아…. 심신의 안정을 위해서 아메리카노는 조금 적절치 못 했던 걸까요. 그래도 좋아한다니 다행이에요."
장갑을 낀 손이 가슴께를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동시에 새나의 얼굴에 엷게 웃음이 퍼졌다가 이내 '앗' 하는 표정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잠시 고민하듯 턱 끝을 짚었다가 또다시 수첩을 꺼내 뒤적이는 것이었다.
"업무 중 일탈은 금지인 걸요. 그렇지만 후배의 정신 케어도 선배의 도리…… 장기적으로 보면 어느 쪽이 더……. 웬만하면 같이 동행해 주고 싶지만 오늘 십분 전 출근을 실패했고……. 그치만 고우림 경위님이 바로 어제 칭찬해 주셨으니 플러스마이너스 제로이려나, 응……."
시작됐다, 새나의 매뉴얼 중얼 타임! 더 이상 앞에 세워둔 리글은 보이지도 않는지 열심히 골몰하며 수첩에 얼굴을 파묻을 기세인 새나였다.
어째서 감사 인사를 받지 않아? 라는 듯한 얼굴에, 난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수첩에 적힌 활약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활약도 섞여있기에 의미있는 것이었으니. 오히려 감사를 표하자 딱딱하게 굳은 모습에 헤실헤실 웃었다. 어떤 기분인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느껴졌으니까. 간질간질한, 하지만 기분 좋은, 아까 내가 감사받으며 느낀 감정이기도 했다.
"아뇨... 아메리카노 좋아해요... 선배가 사주신거라면..?"
반대로 말하면 선배들이 사주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면 입도 안 댄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걸 보면 싫어한다는 사실은 들키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최대한 얼음 많이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저번에 얼음이 전부 녹았을 때 그제서야 어느정도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눈치보며 땡땡이를 준비하려고 겉옷을 챙기려던 찰나, 어디선가 중얼거림이 들려와 고개를 돌리자 그 끝에는 역시나 새나 선배가 계셨다. 항상 생각에 잠기시면 저렇게 되신다니까.
"생각이 많으면... 피곤하니까요? 자아자아, 일단 나가면서 생각해봐요 저희."
느긋느긋하게 옷을 입었는데도 아직 중얼거리는 선배를 보고는 선배의 팔을 느리게 잡아당겼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경위님이 우릴 발견하고 일거리를 주실지도 모르니까. 평소에는 느긋하게 움직여도 이럴땐 빠릿하게 행동해야 하는 법이다.
"일단 커피숍으로 가도 괜찮죠. 식당을 가도 좋고... 아니면 조금 따뜻한 곳에서 경위님께 호출받을 때까지 시간을 때워도 좋지 않을까요~"
수첩 속으로 들어갈 듯 점점 얼굴이 파묻히던 때였다. 잡아당겨진 팡에 사르륵 쏟아진 구불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흰 얼굴이 드러났다. 종잇장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에도 시야는 꼿꼿하게 수첩을 향해있다가, 막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 어. 하는 소리와 함께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스럽게도, 경찰수첩과 매뉴얼 수첩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고, 막 결론이 난 참이었다. 자신의 가지런한 글씨체로 적혀진 문장은 '한번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였고, 곧 마지막으로 캐치한 문장이었다.
"케어 해준다고 약속했으니, 약속은 지켜요. 음…… 에너지 소비 없이 휴식을 취하려면 적당한 온도와 에너지 섭취와 푹신한 의자가 필요해요. 리글 씨는 휴게실에 보일러를 틀고 바른 자세로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 좋겠어요. 십분 안에 커피 두 잔과 스콘 몇 가지를 사 올 생각이니 조금 회복되면 같이 먹어요. "
무의식적으로 정복 겉옷을 챙겨 입으며, 막힘없이 이어진 계획들을 입 밖으로 잽싸게 술술 내뱉고는 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운 좋게도 바람이 적게 불었다.
정확히 구분 오십오 초 뒤, 새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스콘 네 개를 테이크아웃해 휴게실에 도착했다.
// 리글이가 따라올지 안 올지 몰라서 리글이의 서술은 생략했어! 혹시 카페 가는 도중의 이야기를 원한다면 중간에 이야기 넣어줘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