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감사 인사를 받지 않아? 라는 듯한 얼굴에, 난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수첩에 적힌 활약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활약도 섞여있기에 의미있는 것이었으니. 오히려 감사를 표하자 딱딱하게 굳은 모습에 헤실헤실 웃었다. 어떤 기분인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느껴졌으니까. 간질간질한, 하지만 기분 좋은, 아까 내가 감사받으며 느낀 감정이기도 했다.
"아뇨... 아메리카노 좋아해요... 선배가 사주신거라면..?"
반대로 말하면 선배들이 사주는 아메리카노가 아니면 입도 안 댄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걸 보면 싫어한다는 사실은 들키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이번에는 최대한 얼음 많이 넣어달라고 해야겠다. 저번에 얼음이 전부 녹았을 때 그제서야 어느정도 먹을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눈치보며 땡땡이를 준비하려고 겉옷을 챙기려던 찰나, 어디선가 중얼거림이 들려와 고개를 돌리자 그 끝에는 역시나 새나 선배가 계셨다. 항상 생각에 잠기시면 저렇게 되신다니까.
"생각이 많으면... 피곤하니까요? 자아자아, 일단 나가면서 생각해봐요 저희."
느긋느긋하게 옷을 입었는데도 아직 중얼거리는 선배를 보고는 선배의 팔을 느리게 잡아당겼다. 더 시간을 지체하면 경위님이 우릴 발견하고 일거리를 주실지도 모르니까. 평소에는 느긋하게 움직여도 이럴땐 빠릿하게 행동해야 하는 법이다.
"일단 커피숍으로 가도 괜찮죠. 식당을 가도 좋고... 아니면 조금 따뜻한 곳에서 경위님께 호출받을 때까지 시간을 때워도 좋지 않을까요~"
수첩 속으로 들어갈 듯 점점 얼굴이 파묻히던 때였다. 잡아당겨진 팡에 사르륵 쏟아진 구불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흰 얼굴이 드러났다. 종잇장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에도 시야는 꼿꼿하게 수첩을 향해있다가, 막 태엽을 감은 인형처럼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어, 어. 하는 소리와 함께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행스럽게도, 경찰수첩과 매뉴얼 수첩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고, 막 결론이 난 참이었다. 자신의 가지런한 글씨체로 적혀진 문장은 '한번 뱉은 말은 지켜야 한다.'였고, 곧 마지막으로 캐치한 문장이었다.
"케어 해준다고 약속했으니, 약속은 지켜요. 음…… 에너지 소비 없이 휴식을 취하려면 적당한 온도와 에너지 섭취와 푹신한 의자가 필요해요. 리글 씨는 휴게실에 보일러를 틀고 바른 자세로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 좋겠어요. 십분 안에 커피 두 잔과 스콘 몇 가지를 사 올 생각이니 조금 회복되면 같이 먹어요. "
무의식적으로 정복 겉옷을 챙겨 입으며, 막힘없이 이어진 계획들을 입 밖으로 잽싸게 술술 내뱉고는 사무소의 문을 열었다. 운 좋게도 바람이 적게 불었다.
정확히 구분 오십오 초 뒤, 새나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스콘 네 개를 테이크아웃해 휴게실에 도착했다.
// 리글이가 따라올지 안 올지 몰라서 리글이의 서술은 생략했어! 혹시 카페 가는 도중의 이야기를 원한다면 중간에 이야기 넣어줘도 좋아!
커피 두잔과 스콘 몇가지를 사온다는 말에 나는 옷을 좀 더 여몄다. 밖은 춥다. 슬슬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니 당연한걸지도. 그리고 난 이런 추운 날에 선배만 밖으로 보내 심부름을 시킬 정도로 막되먹은 후배는 아니었다.
"케어해준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스콘이랑 커피는 같이 사러가는게 좋겠네요... 혼자 가면 분명 더 추울 거에요..?"
비록 움직이기 싫은 것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선배를 혼자 보내는 것보단 조금 귀찮아도 움직이는 편이 더 마음편했다. 경찰을 당장이라도 때려치고 싶지만 경위님과 다른 사람들 때문에 못 그만두는 것도 비슷한 심정인가... 아니, 이건 아예 다른 이야기일까. 어찌되었든 결국 사러간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 나 역시 선배가 사무소의 문을 열면 따라나선다. 그 사이에 굳이 말을 꺼내진 않았다. 다만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잡다한 생각들을 정리했을 뿐이다. 주로, 어제에 관한.
나는 그저 따라다녔을 뿐이었고, 선배를 따라다니다보니 다시금 사무소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정확하게 10분 즈음이 되어있었다. 어떻게 초 단위까지 맞추는걸까... 내심 감탄했다.
"흐으으... 춥네요 밖은... 이제 오늘은 더이상 안 나가야지..."
선배만 보내기는 마음에 걸려 밖을 나갔다오긴 했지만 그래도 추운 것은 추운 것이다. 미리 틀어둔 보일러 덕분인지 휴게실은 적당할 정도로 따뜻했다. 나는 겉옷을 걸어두고는 저 구석에 있는 라꾸라꾸에 꾸물꾸물, 몸을 뉘이기 시작했다.
"선배 여기 너무 따뜻해요...."
라꾸라꾸에 반쯤 누운 자세로 앉고는, 그 앞에 적당한 테이블을 준비한다. 커피만 있으면 모를까 스콘을 먹을 자리가 필요하니. 새나도 함께 앉아 먹을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테이블을 찾아 두고는 그 위를 물티슈 몇장으로 닦아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정말로 멘탈 케어... 라는 명목의 따뜻한 휴식시간이었다.
그의 말에 잠시 문 밖을 흘긋 쳐다봤다. 추위는 제게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잦은 거절은 좋지 않았다. -고 수첩에 적힌 글귀를 떠올렸다. 그래서 그럼 같이 가요, 하고 대답했다. 카페로 가는 길부터 사무소로 돌아오는 길까지 째깍째깍 쉼 없이 움직이는 초침처럼 시곗바늘을 들여다보았고, 그 결과 알맞게 십분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새나는 피어오르는 미약한 쾌감을 자연스레 삼키며,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글이 하는 테이블 세팅을 도우며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각각의 빨대를 꽂아 넣고, 스콘을 감싼 봉투의 리본을 풀기 시작하며 그의 말에 대꾸했다.
"휴게실은 따뜻해서 다행이에요. 오늘 같은 날 현장 업무가 없길 바라야겠네요, 아직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했으니."
그러곤, 편안한 자세로 반쯤 뉘여진 리글을 응시하고 싱긋 웃었다. 업무 중 일탈이라는 점이 불안과 비밀스러운 설렘으로 심장을 뛰게 만들었지만, 이능 범죄라는 사건에 휘말린 후배가 심신을 안정시키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저 또한 안심이 된 것이었다. 새나는 아메리카노를 쪼옥 빨아마신 뒤 스콘들을 가리키며 그에게 말했다.
"두개는 초코 스콘, 두개는 오리지널 스콘이에요. 먹고 싶은 만큼 듬뿍 먹어도 돼요. 저는 단 걸 잘 안 먹어서……."
현장업무라는게 보통 예고를 하고 찾아오지는 않으니 말이다. 이런 느긋한 분위기가 갑자기 긴급한 분위기로 바뀐다면 그닥 기꺼운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오늘은 비교적 여유롭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는 것이다. 덕분에, 나도 선배도 지금은 조금 풀어진 모습이었다.
"잘 먹겠습니다 선배. 이것도, 고마워요. 잘 챙겨주시는거."
멘탈케어도, 이런걸 사주는 것도, 전부 날 챙겨주시는 것들. 그렇기에 감사한 마음 뿐이다. 그 감사한 일들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아메리카노에 입을 살짝 대었다가, 그대로 스콘을 한입 베어물었다. 역시 쓴건 무리..
"오늘은... 조금만 더 이렇게 쉬죠... 어제 그런 일도 있었으니.."
따뜻한 분위기에 달달한게 들어가서인지, 내 몸이 흐물흐물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늘어지게 등을 기대며 조금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따뜻한 휴게실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간식시간이 지나가가고 있었다.
//그럼 이걸로 막레 드릴게요~ 저도 행운의 일상이라고 생각해요! 귀여운 새나를 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