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퇴근에 가까운 저녁. 백화점 소동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리고 돌연 경쾌한 카톡 소리.
[차] [태워죠] [술은 내가 사잖아-?] [리글씨 차 있는 거, 다 알거든] [(고양이 눈 번뜩 이모티콘)]
라는 톡을 날린 장본인 여우귀는 맞은 편 테이블에서 쫑긋 귀를 세우고, 리글 경장을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아마 당연히 태워줄 거라 생각하는 모양. 술을 산다는 건 틀리지 않았지만, 결국 차를 끌게 한다는 의도는 뻔하디 뻔했다. 적당히 먹고, 자길 챙겨달라는 것. 물론 대리는 부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어느덧 퇴근 시간. 리글 경장의 차 문을 열고, 뭔가 성나는 일이 있었던 건지 볼을 부풀리곤 몸을 시트에 푹 묻듯이 실었다. 이어, 곧장 늘어놓는 푸념들.
"하-, 나 오늘 진짜 완전 지루해서 돌아가시는 줄 알았잖아. 리글씨, 이거 실화야? 아니, 어떻게 전산 담당이 점검하는 날에 연차를 낼 수가 있는 거냐고.... 하루 종일 그거 땜빵 하느라, 아직 소주 1팩도 못 깠단 말야."
서슬퍼런 송곳니를 드러내대며 조수석에 다리를 꼰 채, 경장의 동의를 재촉하듯이 오른쪽 가슴팍을 살랑이는 꼬리 끝으로 빙글빙글 원을 그려 간지럽혔다. 진정한 마이페이스, 그 자체다.
백화점 소동이 일어나 한동안 소란스럽던 시기도 슬쩍 지나가고, 어느새 금요일. 잔업까지 하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조금 일찍 끝낼 수 있겠다 싶은 시점. 경쾌한 카톡소리가 울리자 나는 책상에 올려두었던 폰을 확인했다.
카톡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니, 다름아닌 오늘 저녁을 사주겠다고 한 선배가 차를 태워달라고 하시는게 아닌가. ...하지만 여기서 거절할 용기도 없거니와 경사님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술을 사준다는데, 운전기사 정도야.
[네.] [이번만이에요.]
그렇게 카톡을 날리며 맞은 편 테이블을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경사님이 보였다. 그 태연한 모습에 나 역시 피식 웃음을 흘렸을까. 웃음은 얼마 가지 못하고, 자길 챙겨달라는 의도를 눈치채고는 다시 울적한 표정으로 변했지만. 그러고보니 내 차를 가져간다는 이야기는... 윽. 눈뜨고 코 베인 기분이다.
퇴근시간이 되면, 느긋한 몸동작으로 차에 올라탔다. 익숙하게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있자 무엇인가 귀찮은 일이 있던건지 볼을 부풀린채 시트에 몸을 묻고있는 경사님이 있었다. 내 경험상, 이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푸념을 하시는 경우다. 지금처럼.
"그렇지? 진짜 죽겠다니까.... 다들 착각하는데, 이쪽도 놀고만 있는 건 아니라고? 호수 위 백조란 말이야, 난. 수면 아래선, 쭉 열심히 물장구 중이란 말씀."
썩 시원친 않지만, 그래도 동의해준 것에 만족하고 고갤 끄덕이는 여우귀. 허나, 반응이 재미있어 원하는 것을 들은 이후에도 자꾸만 꼬리 끝을 발칙하게 놀려대었다. 고작 저런 손짓으로 막아내려 하다니, 그녀의 눈엔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흐흐..., 리글씨가 간지러운 건 전혀 내 알 바가 아닌걸? 핸들 잡고 운전에나 집중하셔. 사고 나."
여우귀를 단 작은 악마가 조수석에서 경장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엉덩이를 시트에 쭉 밀착하곤, 사이드 브레이크 쪽을 넘어와 아래에서 위로 경장을 올려다 보았다. 물론 실눈이라, 여전히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참 그렇게 재미를 보다, 이제서야 기분이 확 풀어진 건지 이번엔 다른 화제를 꺼낸다.
"오늘 아침-, 새나 선배랑 대화는 잘 했어? 그림 좋던데. 다정하게 위로해준 거야?"
옆 조수석에서 쿡쿡, 참지 못해 터져나오는 웃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소릴 해대는지, 아마 표정으로 전부 드러났을 것이었다.
>>952 후후, 리글이랑은 이미 탕비실 듀오랍니다. 맨날 퇴사하고 싶다고 하며 라꾸라꾸에 누워서 간식 나눠먹는 듀오예요. 움직이기 싫은데 심심해서 가진 취미 아닐까요? (이러기) 책은 재미로 읽는 거라 소설 위주로 읽습니다. 가리는 장르는 없지만 형사물은 잘 안 읽어요. 취미와 현실은 거리두고 싶은 법...
그저 가볍기만 한 사람이었다면 백화점에서 그렇게 위험한 일을 자처하시진 않으셨겠지. 총을 들고 있는 상대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일이라던가. 다들 겉보기엔 다 다른 사람이지만, fidus의 사람들의 속은 항상 진중한 이들 뿐이다. ...취소하도록 할까. 나는 발칙하게 움직이는 꼬리에 계속 몸을 움찔대면서 옆에 있던, 이제는 내 아래에 있는 경사님을 울상을 지으며 바라보았다.
"이러다 진짜 사고날지도 모르는데... 으.."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자 몸이 뻣뻣하게 굳는게 느껴졌다. 분명 옆에서 바라보고 있을 때랑 달라진건 위치뿐인데, 왜 그리 긴장되는지. 실눈이라 다행이지 눈이라도 마주쳤다면 사고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에, 예?! 무슨... 다정하게 위로해주다뇨... 오히려 제가 받은걸요."
그림 좋다는 말에 화들짝 놀라다가 차량이 심하게 흔들리자 능력을 사용하여 겨우 차량과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진짜 사고날뻔 했다...!
"멘탈케어...같은 느낌으로. 새나 선배께서 저랑 조금 놀아주신 것 뿐이에요. 휴식을 겸해서.."
굳이 표정을 보지 않아도 경사님의 의도는 느껴졌지만, 어째서인지 빤히 보이는 그 의도에도 멋대로 끌려가버리는 느낌이었을까.
멀지 않은 곳에 술집이 있었기에 대화하는 사이 차는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있었다. 차에서 내리고, 조수석쪽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었다.
"도착했는데... 여기는..?"
일단 경사님에 대한 배려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을 열어준 의도는 그거다. 왜 하필 해산물 전문점인지에 대한 항의.
>>951 뭐든 재밌을거 같다는거 인정합니다 오.. 선관 좋지만 마땅히 생각나는게 업습니다 아예 안 짜고 그냥 일하다 몇번 마주치다 만 사이도 재밌겠고? 짠다면 전에 같은 사건을 맡았다는 선관 재밌을거 같은데... 이걸로 가면 빠릿한 신입이드를 볼수 있습니다! (수요 없는 공급)
안 짜고 굴린다면 사무적으로 툭툭 티키타카 하는 것도 재밌을거 같고? 미안합니다 저 왜 yes맨이죠 다 재밌게 들리는데,, 지온주 의견은 워떠신가요
>>953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닌지라 입은 안 벌리셔도 됩니당 (입 닫아주기) 음... 한개는 일방적 약?혐??관???? 이라 좀 불편할수도 있겠는데 불편하면 말해주거나 스루해주고.. 슬기 요하네스때 일상에서 업무평가 만점에 가깝다고 했던것 같은데... 만약 이드랑 슬기가 안면 있는 사이라면 맨날천날 술 먹고 다니는 사람인데 일까지 잘하니 자격지심 조금 있을거 같은데 그으닥 내색은 안 하고 다닐거 같다... 본인도 지 자격지심 잘 알아서 속으로는 추스르려 하는데 풍류도 즐기고 일처리도 자기보다 우월한 슬기 부러워 하면서도 조금 아니꼬와 할것 같은데 오 내가 생각해도 인성 터졌다 미안
다른 건 사적으로는 친한 관계? 이 루트로 가면 사적으로 둘이 놀때 이드가 누나라고 불러준다! (수요 없는 공급2) 이드 신입 시절때 회식 열심히 갔을거 같은데 여기서 친해졌다는 것도 좋고, 다른 이유로 친해졌다는 것도 재밌겠고... 이드는 공적인 자리에선 딱딱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선 누구보다 열심히 노니까 둘이 씐나게 놀다가 다음 날 (이드만) 일터에서 격식 차려 대하는 것도 재밌을거 같음
>>962 저도 무조건 예스라 이해합니다. 빠릿한 신입이드라, 탐나는 걸요? (수요 있는 공급) 그럼 이드랑 지온이 피두스로 오기 전에 몇번 마주쳤을 수도 있겠네요 그때는 이드는 순경이었으려나요. 신입 이드 귀엽겠다. 서로 다른 부서지만 사건 같이 해결하면서 안면을 텄어도 좋았을 거 같네요. 그러면 지온의 입장에서 이드랑 나이차이가 나서 와, 까마득하게 어리네... 이랬을 거 같아요 사건 해결하면서 열정적인 이드 보며 어이구;; 하면서 워워~ 시켜주려고 했을 거 같아요 그러지 말고 쉴까? 내가 밥 사줄게. 했다가 사무적으로 대하는 이드에게 많이 차였을 듯한... 그렇게 사건 해결하고 잊고 살다 피두스에서 만나게 되었겠네요.
하지만 깊은 선관 없이 그냥 티키타카하는 것도 좋습니다 (엄지척) 흑흑 둘 다 재밌을 거 같은데 어떡하지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여우귀는 그저 그 한 마디로 경장의 말에 대한 모든 답을 퉁쳤다. 그것이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는 것에서 비롯된 진심어린 칭찬인지, 아니면 귀여운 후배 두 사람의 사이를 놀려 먹기 위한 심산인지는 그저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만. 아무튼 그러고 여유부리고 있자, 갑자기 차가 좌우로 세게 흔들렸다.
"우악-?! 허, 허허, 워..., 방금은 좀 위험했다. 그치? 혹시, 이능 썼어?"
바짝 선 꼬리와 여우귀. 동시에 몸도 경직되어, 한 손으로는 그 후로도 몇 초는 차 문 손잡이를 강하게 잡고 있었다. 잠시, 스탠바이. 숨을 고르고, 이어진 경장의 해명을 귀를 쫑긋이며 듣기 시작했다.
"그래-, 음. 그렇게 믿어 달라는 거지? 안심해. 내가 또 입 하나는 굉장히 무거우니깐. 그래서..., 두 사람 몇 일?"
애초에 경장이 전하는 진실을 딱히 들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샌가 조수석의 문이 열려 있었다. 거기 서 있는 것은 운전석에서 방금 내린 모양인 리글 경장. 아마도 목적지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는 듯했다.
"땡큐. 어? 보다시피 해산물 집인데. 왜-, 혹시 모텔이 아니라서 실망한 거야?"
그렇게, 도저히 할 말 없게 만드는 수위의 농담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쳐댔다. 마치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잠자코 따라오라는 듯한 의도를 담은 웃음. 진정 악질 중의 상악질이다.
"어이, 빨리 와. 멍하니 있으면 두고 간다?"
그 사이에 차에서 내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경장을 향해 웃음을 짓는 여우귀. 그건 전략이라면 전략이었고, 또 취미라면 취미였다. 술은 아직 시키지도 않았건만, 여기 이렇게나 좋은 안주 거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