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막하고 적요한 어둠이 내린 밤하늘, 거대한 그림자에 휩싸인 둥그런 땅을 밟으며 퇴근하는 길이었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돌멩이들이 발에 채고, 그것들을 가로등이 껌뻑껌뻑 비췄다. 걸음을 멈추자 가로등의 주홍 불빛이 머리 위로 쏟아져내렸다. 목새나의 까만 눈동자에 빛이 맺히며 주홍으로 물들었다. 사색에 퐁당 빠진 것이다. 이를테면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목새나의 인생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도망'이었다. 책망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시선으로부터, 손톱의 끝자락으로부터. 책임을 무형의 것에 떠넘기고 빠져나가버리는 것, 그것이 십 대의 그녀가 생각한 근본 없는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날 방책이었다. 현실도피나 책임회피… 즉, 일종의 자기방어였다. 문제는 간혹 그 방어벽이 자신에게 날을 세우며 돌변할 때가 있는 것이었고, 그건 곧 오늘을 말하기도 했다.
아무리 도망치려 해도 인생에서 계속해서 책임지지 않을 수 있을 리가. 어쩔 수 없었어요, 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고 그녀는 변명은 더욱 반발을 사기 마련이라는 자신의 매뉴얼에 따라 누구보다도 단단히 책임을 지곤 했다, 항상.
책임 회피를 위해 살아온 삶이 더 무결하게 책임을 지게 만드는 형국이었다. …융통성 없는 여자.
필사적으로 피해 오다가 맞닥뜨린 책임의 무게는 쌓이고 쌓여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오르막길 꼭대기에서 굴러오는 것에 고스란히 깔릴 수 밖에 없었다. 그 눈덩이는 두 남자의 언행, 총기가 될 수도 있고, 직원들의 안전이 되었을 수도 있고, 동료들과 자신의 목숨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명백한 건, 오늘은 그 가능성이 눈덩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스파크 휠에 손가락을 비비는 것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지원이 오지 않았다면. 탕! 하고 스치던 총알 소리가 선명했다. 동시에 먹먹했다. 죽음이란 자신이 계획할 수 없는 것이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달리 생각하면, 사후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가장 두렵지 않은 것이기도 했다. 그렇담 이토록 손과 발이 후들거리고 심장이 콩닥거리는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이 내도록 자신을 떨리게 하는가-.
본능. 아,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자신이 계획하고 통제할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본능. 한평생 억제하기 위해 애쓰고 있으며 내일도, 모레에도 애쓰는 것.
경찰은 죽음과 가까운 직업이다. 다름 아닌 자신이 계획하여 쟁취해낸 직업이다. 의지도, 정의도, 긍지도, 신념도 없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뒷걸음질을 해봤자 낭떠러지일 뿐이다. 갈림길 없이 직선만으로 펼쳐진 거리에서 자신이 나아가길 선택한 길이었으니, 늘 죽음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멈췄던 걸음을 다시금 움직인다. 주홍으로 물들었던 눈동자가 다시 까맣게 그을려 반질거렸다.
지온은 운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좋은 편에 들었다. 그 예로 이벤트 신청을 통해 소소한 경품을 받는 일도 있는데, 이번에는 고양이 발자국 모양의 피어싱였다. 아마 신청한 기억이 없는 걸 보며 일할 때 심심해서 아무 이벤트나 넣었던 거 같은데, 그 중 하나가 당첨이 된 거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지온은 귀를 뚫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이 귀여운 피어싱을 하기 위해 귀를 뚫기는 좀. 고민하던 차에 피두스에서 귀를 뚫고 있던 사람이 한명 떠올랐다. 아직 성으로 부를 정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거기서 생각을 접겠지만 지온은 친하지 않다고 굴한 성격이 아니었다. 깜찍한 고양이 발자국 모양 피어싱을 챙겨서 요하네스의 자리로 경쾌한 발소리를 내며 다가갔다.
"맥밀란 경장, 혹시 고양이 좋아해요?"
눈을 반짝이며 요하네스를 쳐다본다. 질문이기는 했으나, 일을 할 때와는 달리 생기 있는 눈빛을 보면 마치... '좋아한다고 말해!' 라고 외치는 거 같았다.
누가봐도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하며 곧장 고양이 발자국 피어싱을 요하네스의 책상에 내려두었다. 그러다 슬쩍 보인 서류를 보고 자연스럽게 의자를 끌어와서 맥밀란 옆에 왔다. 같은 경장 직급이니까 같이 봐도 문제 없을 거 같았다. 솔직히 일 이야기를 딱히 하고 싶지는 않지만 심심했다. 게다가 자신이 처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일하는 요하네스 옆에 놀고 싶었다.
"그 서류는 뭐예요? 저번 사건이 마약과 관련 됐다는 이야기를 못 들은 거 같은데. 새로운 사건인가?"
왜 고양이가 자신과 어울리는지 이해하려고 하던 요하네스 경장은 이내, 포기한 듯 자신의 귀에 걸린 피어싱을 하나씩 뺐습니다. 그리고 고양이 발바닥 피어싱을 귀에 끼웠습니다. 어울리는 건지 매만져보다가 당신을 올려다보는군요.
“어울립니까?”
주는 선물은 거부 안한다!의 표본입니다.
“아.”
옆에 앉는 지온과 서류를 번갈아 보던 요하네스 경장은 자신의 뒷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봐도 상관없긴 했습니다.
“최근에 이능력자 범죄가 급증하고 있잖습니까? 그래서 현장에서 발견하게 되면, 가장 먼저 찾아오라고 경위님과 호수 요원 A씨가 이 서류를 가져다 줬습니다. 신종 마약이 이능력자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는데, 이게 환각 효과보다 위력을 몇 배나 더 올려주는 효과가 있다는군요.”
서류의 맨 앞 페이지를 펼치자, 동글납작한 갈색 알약 사진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리고 밑에 작은 글자로 [팥]이라고 적혀 있는 것 또한 보이는군요.
“저희가 처음 잡았던 그 백화점 테러범도 원래는 물이 살짝 흔들리는 정도로 약한 위력밖에 내지 못했는데, [클라렌트] 측에서 이 약을 지급 받았다고 했거든요. 중독성도 강해서 계속 찾게 된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