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이 없다. 그러나 작은 인기척이 들린다. 아무래도 선우를 경계하여 문을 열지 않는 것 같았다.
"아기를 안고 있는 중년의 남자, 그리고 레레시아가 보내서 왔습니다. 에델바이스라고 합니다."
자신의 신원과 자신의 신원을 보증할 수 있는 이들을 소개해준다. 그와 동시에 그 두사람이 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는 지도 알 수 있겠지.
집의 반응은 둘째 치고, 이제 선우의 주변에서도 안개가 서서히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집들이 나타나지만 손수건이 없기에 볼일은 없다. 사람이 없기에 빈집들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조금 더 멀리 가면 극장이 있을 텐데 딱히 보고 싶은 영화는 없다. 물론 레레시아 라라시아 주연의 '집으로'라는 영화는 제법 보고 싶긴 한데. 표 값이 너무 비싸단 말이지.
"두 사람은 알아서 잘 살아남겠지"
선우는 유즈에게 이 안의 사람들만 빼내고 곧바로 회관으로 합류하겠다 전했다. 라라시아도 걱정되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건 아이들과 일반 시민들이었다.
대체 그녀들이 에델바이스에서 탈주했는 지 알고 싶긴 하지만 그 호기심이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타치처럼 강해지고 싶었나보지 뭐.
부축을 위해 잠시 다가갔지만 아이들의 경계를 알기 때문인지 한 걸음밖에 나서지 못하고 대신 염력을 통해 굳게 받쳐주기로 했다. 마치 곁에 사람이 있는 것처럼. 경계심을 드러내는 아이들을 본 뒤 이스마엘은 어르신을 향해 입을 벙긋거렸다.
"……다 괜찮을 겁니다.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 사람이 오면.. 어디 소속이느냐, 이스마엘을 아느냐 물어보십시오. 에델바이스라 답한다면 맞는 사람일 텝니다."
의무대가 곧 오겠다 했으나 가디언즈 잔병이 남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차례 경계를 해두라 이른 뒤 통신이 들어오자 잠시 어르신을 보더니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서려 했다. 이내 바깥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극장을 발견했고, 벽은 조금씩 붕괴되고 있다. 뿌리 부근만 붕괴하면 전체가 무너진다.. 아이들의 치료는 진행중이며, 회관이 당장 위험하진 않은 것 같다.
"극장으로 가겠습니다."
회관에 만일 라라시아나 레레시아가 있었다면 있었노라 보고를 올렸을 테지만 그런 보고조차 없다. 결국 마을을 둘러봐야만 혹시 모를 위협에도 대비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최악의 상황이지만, 만일 언니가 탈주한 것이 맞는다면.. 찾아야만 한다.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다 단언하지만 혹시 모를 선택지는 제법 괴롭다. 이스마엘은 발걸음을 내디뎠다.
>>331 그런가요? 음. 사실 이스마엘주가 12월 말에서 1월 초를 희망하셨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조금 날짜 조율을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이 되었는데... 그렇다고 한다면.. 음. 그래도 크리스마스 주간은 제가 왕게임 등으로 진행을 할 예정이라서... 음. 그래도 어쨌건 마무리는 지으셔야 할테니... 그냥 토요일 하루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이 날 마무리를 지어주는 쪽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개인이벤트를 하는 여러분. 그.. 제가 꼭 1주만으로 끝내야 한다..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니니까 만약에 조금 불길하다 싶으면 2주 기간으로 신청을 해도 괜찮아요! 오히려 1주로 신청했다가 지금처럼 시간을 더 주세요..라고 해버리면 그게 제 입장에선 머리가 더 아프기 때문에. 아무튼 기간이 조금 길게 필요하겠다 싶으시면 제가 2주까진 봐줄테니까 분량을 생각해보고 기간을 조율할 때 그렇게 얘기를 해주시면 감사해요! 그러다가 중간에 빠르게 끝이 나면 제가 다시 기간을 가져가면 되는거고!
다른 집들이 그러했듯, 선우가 레레시아와 에델바이스의 이름을 대자 안에서 떠들썩한 아이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금방 문 열리는 소리가 덜컥 납니다. 낡았지만 묵직한 문이 열리자 그 사이로 12세, 내지는 14세쯤 되는 남자아이 둘이 고개를 내밉니다.
"...형아가 에델바이스에요? 레레 누나 알아요?"
둘 중 조금 큰 쪽의 아이가 그래도 약간의 경계심을 품고 묻습니다. 작은 쪽 아이는 큰 아이의 뒤에 꼭 붙어 경계와 호기심의 눈으로 선우를 보니다. 두 아이는 역시 얼굴을 비롯한 몸 곳곳에 그 하얀 잔뿌리들이 박혀있지만, 그 남성이 안고 있던 아이보다 커서 그런지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것들이 언제 아이들을 괴롭게 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고개를 내밀고 잠시 후, 집의 안쪽에서 나이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할머니- 하며 쪼르르 안쪽으로 달려가버립니다.
[쥬데카, 이스마엘]
이스마엘이 염력으로 어르신을 받치려고 하니 어르신이 괜찮다는 듯 손을 내젓습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다가, 에델바이스라는 이름이 들리자 한순간 눈빛이 반짝 빛납니다.
"에델바이스래..." "진짜 왔어.. 할아버지, 진짜 왔어요..."
소곤소곤 조잘대는 아이들을 어르신이 인자하게 웃으며 바라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 나가기 전, 나즈막히 들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와줘서 고마우이."
짧지만 다정한 말이었습니다. 그 남성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 정보가 오가고, 쥬데카와 이스마엘이 각각 극장으로 가겠다는 통신을 보내자 유즈로부터 답이 돌아옵니다.
- 확인했어요. 무운을 빌어요. 아, 대장의 명령 기억하죠?
동향에 따라 사살도 허가한다던 그 명령. 잊은 건 아니죠? 단호한 목소리를 끝으로 통신은 일단락되었습니다. 이제 이동할 일만 남았는데.
각자 선택했던 방향에서 극장으로 향해가던 쥬데카와 이스마엘의 주변으로 안개가 스물스물 기어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까처럼 사방을 꽉 채우는 것이 아닌, 발목 높이에서 일렁거릴 뿐입니다. 안개는 그저 바닥에 머무를 뿐이라 앞이 안 보이는 일은 없었습니다.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합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극장으로 향하는 이들이 합류하자, 바닥에 깔린 안개들이 앞으로 모여 사람의 형상을 만듭니다. 하얀 머리가 길게 늘어진 뒷모습은 익숙하게 아는 모습입니다. 두 개 형성된 뒷모습은 각기 하얀 코트와 검은 코트를 걸치고 극장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뒷모습들로부터 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옵니다. 역시나 익숙한 목소리입니다.
-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 ...애초에 생각 안 했어... - ...유서라도 남기고 올 걸... - ...남길 말도 없는데 뭘...
짤막한 소리가 지나가고, 형상도 얼마 가지 않아 흩어져 사라집니다. 저 멀리 극장을 앞에 둔 채.
둘 다 얼굴과 몸에 하얀 잔뿌리가 박혀있었다. 그 동그란 공을 그냥 해치워버렸으면 둘 다 치료할 수 있었는 데 약물 하나를 그냥 낭비한 것에 큰 아쉬움을 느꼈다.
안쪽에서 나이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이 할머니를 부르며 들어가버리자 선우도 그들을 따라가 할머니에게 향했다. 아이들은 아직 아프지도 않고 잔뿌리만 제외한다면 건강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할머니는 다르다. 아이들과 함께 있었다면 할머니도 감염자일 텐데 노인은 그 특성상 몸이 약해 더 치명적일 것이다.
"실례하겠습니다. 할머니?"
아공간에서 마지막 남은 백신 하나를 꺼내었다. 만약 할머니가 감염자라면 신속히 백신을 주사해야한다.
유사시 사살. 명령은 잊지 않았다. 그 대답을 마지막으로 끝난 통신, 단말기를 쳐다보던 너는 고갤 들어 극장으로 향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만치에서 너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섰던 이셔를 마주할 수 있었다. 임무 중이긴 했지만 온통 안개 투성이인 곳만 걷다가 좀 넓어진 시야와 반가운 얼굴에 어쩔 수 없이 살짝 떠오르는 미소는 어쩔 수가 없었다.
"당신도 이쪽으로 왔군요."
짧지만 담을 것은 담은 말을 건네곤 극장을 향해 같이 걷는다. 그렇게 둘이 마주치기를 기다렸다는 듯 바닥에 흐르던 안개가 모여 익숙한 사람의 형상을 취하기 전까지는. 길게 늘어뜨린 흰 머리, 반전된 색의 코트를 걸친 두 사람의 모습이 극장을 향해 걸어가니 발걸음에 맞춰 너 역시 움직인다. 희미하지만 잘못 들을 리 없는, 둘이 나눈 것 같은 대화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형상은 흩어져 버렸다. 여전히 극장까지의 거리는 꽤 멀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안개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이렇게 이미 흐른 듯한 시간을 되돌리듯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도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너는 조금 더 속도를 냈다.
"서두릅시다."
결국 흩어져 버리는 안개는 분명 과거처럼 보이는 것들로 변하고, 또 사라졌다. 어쩌면 이 장소 자체가...
짧지만 다정하다. 이스마엘은 그 목소리를 뒤로 마지막 목표를 위해 걸어갔다. 대장의 명령.
"기억하고 있습니다."
쓰디 쓴 그 말을 어찌 기억하지 못할까. 페이시에 저장하지 않아도 뇌리에 콕 박혀버렸는데. 안개가 스물스물 기어오는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다, 사방을 꽉 채우는 것은 아니라 잠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무언가 생겨나지는 않을 모양인 것 같다. 합류를 했을 적, 이스마엘은 보이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다.
"두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이내 다시금 보이는 환영 비스무리한 것에 입술을 꽉 깨문다. 유서라도 남기고 온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응. 서두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스마엘이 몸을 가벼이 띄운다. 속도를 내기 위함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언니는 살아있을 테지. 분명.
아이들이 문을 열었으니 선우는 어려움 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집 역시, 창문마다 커튼을 쳐 안은 어두컴컴했지만 작은 보조등을 켜놓아서 대략적인 윤곽은 보입니다.
조금 안으로 들어가자 두 소년이 나이 지긋한 할머니의 양쪽에 붙어있습니다. 에델바이스래, 누나들이 보냈대, 서로 재잘대는 아이들에 할머니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주다가, 선우가 다가가자 인자한 미소를 띄우며 말했습니다.
"됐네. 나는 감염되지 않았다네. 젋은이. 약이 있다면 이 애들에게 주게."
그 말처럼 할머니는 하얀 잔뿌리가 없었습니다. 또한 목덜미의 낙인도 없었습니다. 아이를 필사적으로 지키던 그 남성처럼요.
선우가 그들을 회관으로 데려가려 했을 때, 할머니는 자신은 사양하며 아이들만 데려가달라 부탁합니다. 하지만 두 소년이 할머니가 가지 않으면 자신들도 가지 않겠다 버티며 잠깐의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결국은 할머니가 아이들의 기세에 져서 같이 나섰을 겁니다. 할머니는 집을 나설 적 선우에게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미안허이. 늙은이가 짐이 되는구먼..."
마을 회관의 위치는 유즈가 단말기에 좌표를 찍어주었으니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개가 없어 탁 트인 시야에 2층으로 된 제법 큰 건물이 저멀리 보입니다. 가까이 가면 밖에서 보초를 서던 의무대원이 선우를 발견하고 고개를 꾸벅 숙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를."
회관 안에는 넓은 강당이 있었습니다. 거기엔 유즈를 비롯한 의무대원들과 몇명의 중장년 어르신들, 이미 치료된 아이들과 치료 중인 아이들이 각각 구역을 나누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쥬데카, 이스마엘]
안개가 보여준 형상과 들려준 소리는 대체 무슨 의미였을까요. 그것은 얼핏 과거의 현상을 재현하는 것 같으면서도, 일부러 보여준 듯 찜찜함이 얕게나마 남습니다.
그 뒤로 쭉 극장을 향해 걷는 동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시 안개가 깔릴 듯 희멀건 기류가 몇 번 스치긴 했지만,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고 그대로 흩어집니다. 적막한 가운데 걸어가는 사람의 발소리만 저벅저벅 울리니. 먼 것 같던 거리도 어느새 코 앞까지 가까워집니다.
그래요. 벌써 극장의 앞까지 다다랐던 거에요.
극장 건물은 마을에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입니다. 어떻게 해야 목제로 화려하게 지을 수 있는지, 건축가가 제법 고심했을 것이 역력한 외관은 안타깝게도 이곳저곳 삭아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 얼마나 휘황찬란했을지 편린이 보이는 듯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마을에 퍼진 하얀 줄기들이 모두 이 극장의 입구로부터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저 활짝 열린 어두컴컴한 안쪽으로부터 말입니다.
극장은 하얀 줄기가 덕지덕지 붙은 입구 외에는 달리 들어갈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찾으면 있을지도 모르지만, 줄기들이 딱히 움직이는 건 아니니 그냥 지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마치 선택을 농락하듯이, 줄기들이 붙은 입구로 들어가는 하얀 사람 형체가 나타납니다. 형체는 입구 안쪽 어둠으로 사라졌습니다. 여기로 들어오길 종용하는 것처럼.
어느새 극장은 코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쯤 되니 자신이 보고 듣는 것이 제대로 된 것인지에 대한 의심이 피어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신기루, 혹은 안개 속의 인영에 의지해 걸음을 옮기는 것만큼 무모한 일이 엌디 있을까. 그러나 이는 무언가에 대한 인간의 갈망의 현신이기도 하다, 진정 원하고 기다리는 바를 무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잖은가.
"저 안쪽에 뿌리가 있을 것 같군요. 입구도...일단은 저쪽 뿐이고."
그렇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입구 안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흰 형체가 눈에 들어와. 너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딛었다. 바깥에는 가디언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면 서두르는 것도 나쁘진 않을 터.
말도 안 되는 소리! 이스마엘은 세 번 부정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여주는 것은 필히 의도가 있다.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을 리가. 여기에서 손 뻗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이스마엘은 생각을 멈추고 노이즈 속 눈을 홉뜬다. 내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언니를 그렇게 매정하게 대해놓고, 상처 줬으면서. 구하러 왔다고 하면 얼마나 우스워보일까. 극장을 향해 걸어가는 걸음이 결코 느리지는 않았지만, 걷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이건.."
이스마엘은 고개를 올린다. 안타깝게도 삭아있지만 휘황찬란했을 과거의 흔적. 그리고, 극장의 입구로부터 이어진 줄기. 입구 외에 들어갈 곳이 보이지 않는다. 이스마엘은 하얀 형체를 보며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가죽이 거세게 맞대지는 소리가 고요한 적막을 깬다. 이래서야 함정이라 해도 들어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가늘게 떨리는 주먹에 다시금 힘을 주고 심호흡을 한다.
"……들어갑시다."
그리고 발을 내딛는다. 입구로 들어가기 위함이고, 찾기 위함이며, 그리고.. 이스마엘은 결국 임무를 정면으로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의 다짐을 내려놓는다. 너무 많은 걸 알고있다 하지만,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언니를 찾아야 해. 언니들은 절대 탈주한 게 아니야. 아닐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