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시와 라라를 모두 마주쳤고 아마 여전히 여기 있을 것이다. 정확히 어디에? 분명 마주친 건 확실히건만 어디로 향하겠다 같은 말은 없었는가? 의문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에 너는 남성에게 묻기로 했다.
"어디로 향하겠다, 뭔가 하겠다... 같은 말은 없었습니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전 들려온 비명소리에 돌아보니 안개 내부를 투시하던 유즈가 낸 비명인 모양이었다. 못 볼 것? 방금 전까지 위협하던 기괴하게 비틀린 존재들이 여전히 안개 속에 있었고... 그것들로 인해 고립된 아이들의 위치를 그녀가 말해주고 있었다. 이어진 남성의 말대로라면 그대로 내버려두는 건 안 되겠지. 일단 이 안에서 뭔가를 하려면 거점 삼을 만한 위치도 필요했으니...
"의무대만으로 포위를 뚫고 고립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두 사람을 찾는 것 역시 중요했으니... 전력을 분산해서라도 수색과 구조를 동시에 진행하는 게 옳을까? 너는 안개 속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저는 제안에 동의합니다, 단서가 없으니 확인된 일부터 해결하는 게 좀 더 나을 것 같군요."
아공간에서 약간의 군것질거리를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그와 함께 손수건과 구슬 몇개로 간단한 마술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했다.
에델바이스의 비세븐스와 같이 모두를 인간으로 봐주는 평범한 시선, 이 시선을 마을 밖에서 느낄 줄은 몰랐다. 돈이 최고다. 돈은 항상 옳다는 신조를 가진 브로커 양반도 나에게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내는데 -물론 암거래이기 때문도 있지만- 이 아저씨는 그러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순간 의무대에서 들리는 외마디 비명에 뒤를 돌아봤다.
"대체 뭘 본거야?"
아무래도 뭔가 징그러운 것을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적들은 많고 보호해야할 아이들의 상태는 좋지 않으며 백신은 한정되어있다. 특히 놈들은 합체 같은 것도 하는 모양이었다.
"화염 방사기는 안 챙겨왔는데.."
선우는 투덜거리며 마을 회관으로 서둘러 가서 사람들을 구해야한다는 유즈의 말에 동의했다.
"변이하기엔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몰라요."
이 뿌리가 점점 더 커져서 아까와 같은 놈들이 될지도 몰랐다. 그때가 된다면 이 백신이 통할지도 의문이었다. 아까 놈들을 상대로 백신을 쓰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물론 가디언즈이기에 살려둘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목적지로 설정할 위치가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안개 속을 쳐다보던 너는, 의무대만으로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할 것 같다는 말에 그거면 됐다며 고갤 끄덕였다. 남성과 아이를 데리고 회관으로 가 감염되어 있는 아이들에게 백신을 주사하고 농성하는 것만으로도 어느정도 숨통은 틀 수 있겠지. 마을 내에서 무작정 돌아다닐 필요 없이 문에 흰 손수건이 걸려있는지를 우선적으로 확인하면 된다니 그것도 지금으로썬 괜찮은 상황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보죠."
그렇게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의무대를 보던 너는 남성의 시선을 느끼고 그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고갤 돌렸다.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다. 그리고 그런 때임을 알리듯, 혹은 유도하듯 갈라지는 안개 너머로 보이는 길은 세 갈래. 너는 두 사람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선 갈라지도록 할까요, 수색 방법이나 구조 방식 등은 각자 다를 테고... 유사시 혼자라면 좀 더 도망치기 쉬울 테니."
마을 중앙의 극장. 이스마엘은 시선을 느릿하게 굴린다. 사람들을 구출하면서 어디가 어딘지 지리 개념을 파악할 수 있을 테다. 흩어지는 것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아까 보여준 세븐스를 보면 충분히 의무대도 대응할 수 있을 테니, 달리 불안한 점이 있다면 이 상황에서 대응한다 한들 어디까지 해야하느냐의 문제다. 기운이 없다면 괜찮겠지만, 만일 아이나 사람을 발견했을 때,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라면..? 그렇다면 또..?
"흰 손수건..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이게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의무대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뒤로, 이스마엘은 갈라지는 안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마치 기다리던 것처럼 이렇게 갈라진다라. 자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른쪽으로."
자연스럽게 남는 쪽을 택하고, 이스마엘은 유사시에 대비해 가져온 것을 주머니에서 만지작댔다. 총도 아닌, 총알이다.
유즈는 선우의 요청에 의무대에게 눈짓했다. 그 신호를 받은 의무대원 한 명이 다가와 백신을 두 개 넘겨주었다. 선우 만이 아닌 특수부대 모두에게. 백신은 피부에 대고 꾹 누르면 바늘이 돌출되어 주입되는 식으로 어지간한 충격에도 깨지지 않게끔 되어있었다.
선우가 내민 소총은 다른 여성 의무대원이 받아들었다. 대원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안개 속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특수부대도 안개가 내어준 길로... 나아갔습니다.
[왼쪽 - 선우]
선우는 왼쪽 길을 선택했습니다. 정비가 되지 않은 길은 여기저기 블럭이 깨지고 갈라져서 조심하지 않으면 발이 걸려 넘어질 것 같습니다. 안개가 터준 길은 꽤 길었습니다. 하지만 일직선으로 이어져서 길 헤멜 일은 없겠습니다. 게다가 그 끝에 단층집 하나를 슬그머니 비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집의 문은 보이지 않아, 손수건을 확인하려면 더 가까이 가야 할 것 같은데...
쿠구구궁!
길 한중간에서 선우는 땅이 크게 울리는 것을 감지합니다! 무언가 거대한 것이 굴러오는 듯한 굉음! 그 소리! 소리는 짙은 안개 속에서 울려옵니다. 고개를 돌리면 거대한 구체가 굴러오고 있음이 보입니다. 아니 그런데, 저 구체 가장자리로 너덜거리는 것은, 팔인지, 다리인지...?
"카하하하! 카하하!"
확실한 건 저 괴상한 웃음소리를 내는 구체를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안 그러면 깔릴 거라구요?
//전투입니다! 묘사와 함께 공격다이스 .dice 1 300. 으로 굴려주세요!
[중앙 - 쥬데카]
쥬데카는 중앙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역시나 정비 되지 않은 보도블럭이 가는 걸음마다 걸리거나 밟혀 덜그럭거립니다. 안개로 시야가 흐리니 발밑도 조심하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중앙 역시 안개가 내어준 길이 꽤 깁니다.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기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가는 내내 조용한 것이 오히려 불길하고 음침합니다. 한참을 가다보면 겨우 저멀리 단층집 하나가 보입니다. 이쪽도 역시 더 가까이 가야 손수건을 확인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르륵 스르르륵
이게 무슨 소리죠? 바닥을 기는 소리? 무언가 빠르게 바닥을 기는 소리 같지 않나요? 마치 다리가 많은 무언가가 기어오는 것 같은. 그 기척은 안개 속, 우측의 안개로부터 빠르게 쥬데카에게 향합니다! 고개를 돌리면 거대한 거미의 형상이 접근하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그르르르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빠르게 접근해오는 저것을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거대한 팔, 아니 다리? 무엇에든 치이기 싫다면 말입니다!
유즈는 선우의 요청에 의무대에게 눈짓했다. 그 신호를 받은 의무대원 한 명이 다가와 백신을 두 개 넘겨주었다. 선우 만이 아닌 특수부대 모두에게. 백신은 피부에 대고 꾹 누르면 바늘이 돌출되어 주입되는 식으로 어지간한 충격에도 깨지지 않게끔 되어있었다.
선우가 내민 소총은 다른 여성 의무대원이 받아들었다. 대원은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꾸벅 숙이고 안개 속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특수부대도 안개가 내어준 길로... 나아갔습니다.
[오른쪽 - 이스마엘]
이스마엘은 오른쪽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 길은 비교적 바닥이 멀쩡하여 걷기에 불편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을 겁니다. 분명 길을 선택하기 전에는 멀게나마 집이 보였는데, 걸으면 걸을수록 안개가 시야를 흐립니다. 절묘하게 바닥이 보이면서 시야를 가렸다 보였다 합니다. 어째서일까요? 여기가 함정이었을까요? 일부로 셋으로 나누어 한 명씩 끌어들이기 위한?
그 순간, 이스마엘의 옆을 누군가 스쳐지나갑니다. 하얀 안개... 아니, 머리카락입니다. 희고 긴 머리카락의 누군가가 스치듯 지나가고 그 직후 사방의 풍경이 바뀝니다.
...사방은 어느샌가 작은 방 안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성인 한 사람 살기에도 빠듯해보이는 작은 단칸방입니다. 벽지가 거의 뜯어져 너덜너덜하고 바닥은 겨우 장판 한 겹 깔린, 살림살이라곤 박스들과 낡은 가구 몇 개가 전부인.
그 가운데 작은 여자아이가 두 명 있습니다. 갓 7살은 되었을까. 하얀 단발 곱슬머리에 각기 금색과 푸른색 눈동자를 한 작은 아이들입니다. 낡은 단벌옷을 입은 아이들은 해가 지고 밤이 늦을 때까지 온종일 방 안에서 있었습니다. 뚜껑을 덮은 그릇을 열어 먹어도 되나 싶은 음식을 먹고, 낡은 이불 한 장을 같이 덮고 낮잠을 자고, 서로 손장난을 치다가 멍하니 창 밖을 보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있던 아이들이 문득 고개를 들어 이스마엘을 봅니다. 생기를 잃은 눈이 한 번 깜빡이더니, 아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스마엘을 향해 달려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허망하게 이스마엘을 통과해버리고 그 순간 주변 모습이 전부 안개가 되어 사라집니다.
안개가 사라지기 직전, 이스마엘은 희미하게 엄마, 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습니다. 작은 두 아이의 목소리로.
꿈 같은 풍경이 지나간 후. 이스마엘은 다시 안개 속 현실로 돌아옵니다. 언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지만 앞에 집이 있습니다. 문에 하얀 손수건이 묶인 집입니다.
정비가 되지 않은 이상한 길, 여기저기 블럭이 깨지고 갈라져서 조심하지 않으면 발이 걸려 넘어질 것 같았다. 안개가 터준 길은 꽤 길었다. 일직선으로 이어져 길 헤멜 일은 없으나 너무나 길어 다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어쩌면 안개가 목적지를 가려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일 지도 모른다. 그때, 안개 끝에 단층집 하나가 슬그머니 나타났다. 그러나 집의 문은 보이지 않아, 손수건을 확인하려면 더 가까이 가야 했다.
"뭐야!"
길 한가운데에서 선우는 땅이 크게 울리는 것을 느꼈다. 무엇인가 거대한 것이 굴러오는 듯한 굉음이 들리자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공간을 펼쳐 내려오는 것을 삼켜버리려고 했다.
그때, 그는 짙은 안개 속에서 소리의 정체인 거대한 구체가 굴러오고 있음이 보였다.
"저거 뭐야? 설마..."
마치 인간의 팔다리처럼 보이는 것들이 구체 가장자리에 붙어있었다.
"유즈, 설마 네가 말한 그 혐오스러운 게.."
거대한 구체를 향해 아공간을 펼쳤다. 만약 성공한다면 그것은 아공간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각자 한 방향씩 맡아 길을 나서고 꽤 지난 것 같지만 여전히 길의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일부러 길을 전부 보여주지 않는 것인지... 결국 안개를 헤치며 방향을 잃지 않을 자신이 없으니 그대로 따를 수밖에는 없었지만. 얼마나 걸었을까, 불안한 바닥을 조심스레 내딛다 보니 단층집 하나가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문에 손수건이 걸려있는지 확인하려면 좀 더 다가가야 했는데...
소름끼치는 소리에 바로 돌아선 너는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노려보고 통상적으로는 볼 수 없는 거대한 거미의 형상에 바로 소총을 잡아채 겨눴다.
백신을 받아들인다. 그래, 무슨 일이 생길 지도 모르니까. 이내 향한 오른쪽 길은 바닥이 그나마 멀쩡해서 걷기 편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다. 이스마엘은 공중에 한뼘 정도 떠올라 움직이기로 했다. 그렇게 잘 걷고 있지만 문제가 생겼으니, 시야가 흐리다. 이스마엘은 미간을 찌푸리며 노이즈 때문인가 싶어 페이시를 잠시 꺼보았지만, 여전히 시야는 가렸다 보이길 반복한다.
"!"
눈을 홉뜨며 뒤를 돌기가 무섭게 풍경이 바뀐다. 단칸방. 폐허와는 다른, 처음 보는 광경. 슬럼에서 전염병이 돌았다며 폐쇄된 집도 이것보다 나았을 테다. 주변을 둘러보다 보인 것은 아이였다. 작은 아이 둘. 금색과 푸른 눈동자, 흰 곱슬머리.. 머리의 길이도, 나이도 다르지만 이스마엘은 잘 알고 있었다. 레레시아와 라라시아. 아이들은 온종일 방에 있었다. 행동을 가만히 바라보던 이스마엘이 아이들의 눈을 마주쳤을 적, 등골에 돋아나는 것은 소름이었다. 달려올 적 붙잡아보려 했으나 아이들은 허망히 통과된다.
엄마.
그렇다면 어머니도 이곳에 있나..? 이스마엘은 의문을 품는다. 대체 어떻게 이곳에 도착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환영은 왜 보인 건지도 모르지만.. 이스마엘은 입술을 자근 깨물다 다시 페이시를 켜고 조심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서려 시도했다. 하얀 손수건이 있으면 사람이 있는 거랬지.
과연 유즈가 말한 혐오스러운 무언가는 저것일까요? 알 수는 없지만, 지금 당장은 선우의 공격이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 하고 있는 건 확실합니다.
"카하하! 간지럽,구나?! 간지러ㅇ,워!?"
듣기에 소름 끼치는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구체가 거리를 두고 멈춰서 꿈틀댑니다. 어렴풋이 보이는 형상은, 마치 수많은 팔다리를 꾸역꾸역 뭉친 것처럼 보입니다. 팔다리와 하얀 줄기가 한데 뒤엉켜 있는 것일까요? 그 몸집 이곳저곳에 소총의 탄이 맞기는 했으나 그 자리에서 하얀 줄기가 꿈틀대며 구멍을 막는 것이 보였을 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더 큰 화력이 필요하거나, 확실한 한 수가 필요해 보입니다.
"크하하하하!"
구체, 아니, 기묘한 덩어리는 크게 뛰어오르더니 다시 세차게 굴러 선우에게 돌진해옵니다. 자. 다시 공격해야겠죠?
//전투속행! 다시 같은 수치로 다이스 굴려주세요!
[중앙 - 쥬데카]
쥬데카는 주저하지 않고 바로 소총을 들었습니다. 요란한 발포음이 울리, 지 않고 둔탁한 발포음이 몇 번인가 울렸습니다.
"그ㄹ... 그르ㅡㄱ...."
안개 속이지만 조준이 명확했는지 거대한 거미의 형상을 한 그것이 우뚝 멈춰섭니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무언가 주르륵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합니다. 썩은 살점이 떨어지는 소리, 알고 있나요? 소리에 맞춰 거미 같은 그것의 윤곽이 서서히 무너집니다. 안개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다 무너진 후에는 곧 부서져 재가 되어 흩어집니다. 바람도 한 점 없는데 나풀나풀 일어난 잿가루들이 돌연 쥬데카에게 휘몰아칩니다. 시야를 흐리게 가린다 싶더니, 또 한 순간 흩어져 사라집니다.
그리고 쥬데카는 어느 작은 단칸방에 서 있습니다. 처음 보는, 낡디 낡은 방입니다. 방에는 쥬데카만이 아니라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하얀 머리가 제법 길고 이제 갓 12살 쯤 되었을 것 같은 여자아이들입니다. 아이들은 쥬데카를 등지고 서있기에 얼굴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은 보입니다.
오른쪽의 아이가 허공에서 나타난 하얀 컵을 받습니다. 이가 빠지고 낡은 컵 안은 새까만 물이 한 가득 들어있습니다. 아이는 주저하지 않고 컵의 내용물을 마십니다. 천천히, 전부, 곧 텅 빈 잔이 아이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구릅니다. 잠시 후, 아이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니 방금 마신 듯한 검은 물과 붉은 물이 섞인 구토를 합니다. 아이는 견디지 못 하고 주저앉지만, 어떤 손길도 다가오지 않습니다.
왼쪽의 아이에겐 하얀 손이 나타납니다. 아이는 거부감 없이 하얀 손에게 자신의 왼팔을 맡깁니다. 하얀 손은 하나 더 나타나, 아이의 팔을 잡고 그 팔의 여린 피부를 칼로 긋습니다. 길게 그어진 틈으로 붉은 물이 금새 차올라 뚝뚝 떨어집니다. 아이는 그것을 어떻게든 해보려는 듯 애를 쓰지만 붉은 물은 더 많이 떨어지고 결국 아이는 주저앉습니다.
나란히 앉아 토하고 떨던 아이들에게서 점점 가쁜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리고 곧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하얀 머리가 바닥에 흩어집니다.
그 순간, 아이들도 방도, 전부 안개가 되어 흩어집니다. 쥬데카는 매우 희미한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면 쥬데카는 다시 안개 속 현실로 돌아와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언제 왔을지 모를 집 앞에 서 있습니다. 문에는 하얀 손수건이 묶여 있습니다. 집을 조사하거나, 의무대에게 위치를 알려주고 조사를 이어가거나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른쪽 - 이스마엘]
이스마엘이 문을 열기 직전, 스르륵 하고 주변의 안개가 옅어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기분 탓이 아닌 듯 확실히 안개가 옅어져 있습니다. 보이지 않던 곳까지 희미하게나마 윤곽이 보일 정도입니다.
끼익.
어쨌거나 당도한 집의 문을 열자 낡은 집 안이 보입니다. 바로 거실이 나오는 구조의 집입니다. 두꺼운 커튼으로 창문이 가려져 있지만, 작은 랜턴이 하나 켜져 있어 안에 있는 인물들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 빛이 있는 곳에서 나이가 제법 든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뉘시오. 여는 내 혼자 사는 집이라, 아무것도 없소."
어르신의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지만, 거실 너머 안쪽에서 호다닥 뛰는 소리가 들립니다. 자세히 보면 어르신은 거실의 낡은 소파에 앉아있고 소파 뒤로 작은 머리가 둘 튀어나와서 이스마엘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어르신은 몰라도 저 작은 머리들은 경계를 하고 있으니,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의무대에게 연락하고 다른 곳으로 조사를 가는 방법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