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재밌어질 무렵에, 그러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은 타이밍에서 딱 끊어진 느낌?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시간적으로 어떻게든 거기까진 맞추신 것 같아서... 일단 고생이 많으셨고.. 아마 본격적인 재미는 오늘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어서 일단 기대 중이에요! 어제 것은 약간 프롤로그 느낌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적당히 분위기를 올리는 그런 느낌?
뭔가 있구나..라는 분위기는 아주 잘 살리신 것 같아요! 이리저리 뭔가 주절주절하지만 일단 재밌게 잘 봤답니다!
아버지가 찾아내려고 애쓴 길이라. 이스마엘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눈썹은 살짝 처지고, 입술은 미미하게 휘어지는 모습이 음울하기보다는 평온했다. 에델바이스 자체가 아버지의 이상향과 걸맞은 곳이라 한들, 이스마엘이라는 인물이 주어진 길을 거부하며 가혹한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언젠가 깃발을 꽂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하나로 살아남을, 혹여 잘 된다고 한들 진정한 목표를 찾아 영원히 방랑할지도 모르는 순례의 길 위에 감히 올라서고 말았음을 타인에게 인정받는 느낌이었다.
"그 길에 아직도 서있도록 도와준 당신 덕분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그 길에 올라서고자 했던 주체가, 목표의 원동력이 부서지고 망가지는 순간을 겪어야 했을 때, 끝내 걸맞지 않음을 깨달았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신이 다그치지 않았더라면 끝내 무너졌겠지. 그것보다 일부러 그랬다니. 웃는 모습이 얄미워 고개를 숙여 뺨을 맞대듯 짧게 비비곤 귓가에 속삭였다. "치사한 사람." 두고 보라지.
"……글쎄요. 어떤 의미의 지금일까."
뺨이 떨어지고 난 뒤, 잠시간의 침묵. 이스마엘은 이 침묵이 부담스러워 눈을 굴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두었다. 침대와 맞닿은 벽면이다. 암막 커튼을 캐노피처럼 침대의 사면을 감싸는 구조로 두었기 때문인지 벽면은 커튼 때문에 항상 새카만 천에 물들 수밖에 없었다. 반쯤 걷어둔 지금이라고 한들. 시선이 잠시, 혹은 한참이고 그쪽에 머무를 것 같더니만 결국 당신을 향했다.
"목표라면 가끔은 쉬어가고자 다른 목표를 지표 삼으라고 하고, 잠시 다른 길로 내려가고 싶지만……. 내게 목표 삼을 것이 무엇인지 모르니까요. 이상향이 아니라 당신을 위하는 것을 새 목표로 삼기엔.. 당신이 바라지 않을 것 같고.. 당장은 깊게 고민하기엔 지쳤습니다."
이상향이 아닌 다른 건 접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던 것이다. 아니, 있다고 한들 이곳에서 꺼낼 말은 아니다. 증오심은 뱉는 것이 아니라 삼키는 것이 옳기에. 지치고도 지치어 이대로라면 혁명 이후 에델바이스를 등지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란다.
"하지만 지금 현재라면……."
이스마엘은 양손을 올려 당신의 뺨을 어루만지곤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거부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왼쪽 눈 밑에 한번, 수직으로 내려오는 입가의 점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입술을 떼지 않고 그대로 벙긋거리며, 나지막이 속삭였을 테다.
아이는 이스마엘이 다가오자 흠칫 놀라며 남성의 품으로 숨었다. 재머의 노이즈가 아이에게는 무섭게 보였나보다. 남성이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짧게 말한다.
"미안합니다. 애가 낯을 많이 가리는지라."
남성은 비능력자임에도 이스마엘을 지극히 평범하게 마주했다. 이스마엘 뿐만 아니라 특수부대와 의무대 모두를 보는 눈빛이 동일했다. 그저 사람이 사람을 대하듯이. 남성은 잠시 아이를 달래다가 이어서 들려온 질문에 대답했다.
"그 둘이라면, 예, 여기에 왔고 만났었습니다. 레레시아와 라라시아지요. 지금도 이 안에 있을 것입니다만..."
"감염의 경로는 움직이는 줄기에 공격당하면 된다는 것 외엔 모릅니다. 방금과 같은 괴이한 것은 저도 처음 보았고, 감염된 아이들은 그저 쇠약해지기만 할 뿐 저렇게 변이한 아이는 아직 없었습니다."
한창 대답이 나오는 와중, 잠시 뒤로 물러나있던 의무대에서 와악! 하는 외마디 비명이 울렸다. 또 뭔가 나타난 건가?! 싶어 돌아보면 헤드기어 같은 장비를 쓴 유즈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꾸벅꾸벅 하고 있었다.
"ㄷ,대화 중에 죄송해요. 잠시 내부를 투시했다가 못 볼 걸 봐버려서."
짧게 사과를 먼저 한 유즈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듭 죄송하지만요. 일단 빠르게 움직이는게 좋을 거 같아요.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진 못 했지만 저것들과 같은... 뭔가가 마을 곳곳에 있어요. 저것들 때문에 고립된 아이들 중에 상태가 심한 아이도 있구요. 대략적으로 나타내자면-"
유즈의 설명으로는 현재 마을 내에 방금처럼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자잘한 개체가 다수, 합성된 것 같은 개체가 몇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마을 건물 중에 사람이 밀집된 곳이 보인다고 하니 남성이 다급히 말했다.
"거기가 유사시에 모이는 마을 회관입니다! 그곳에 상태가 심한 아이들을 모아두고 돌보는 중이었고, 저는 이 아이를 그리로 데려가던 중이었습니다. 지금 거기 말고는 전력과 수도가 제대로 도는 곳이 없기에..."
남성의 말에 유즈는 유즈대로 의무대와 의견을 주고받더니 특수부대를 향해 말했다.
"현 상황에서는 감염된 아이들부터 치료하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실종자의 수색도 수색이지만 그들이 이 사태에 가담했을지도 모르잖아요? 따라서 수색은 후자로 두고, 감염된 아이들의 구조와 사태 파악을 우선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저희도 전력이 없는 건 아니니 특수부대와 나눠져서 움직일 수도 있으니까요."
유즈는 밝은 얼굴과 달리 상당히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특수부대의 의향을 물었다. 아무래도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일어나고 있으니, 무엇을 우선하여 행동할지 확실히 정해야 할 것 같다.
레시와 라라를 모두 마주쳤고 아마 여전히 여기 있을 것이다. 정확히 어디에? 분명 마주친 건 확실히건만 어디로 향하겠다 같은 말은 없었는가? 의문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랐기에 너는 남성에게 묻기로 했다.
"어디로 향하겠다, 뭔가 하겠다... 같은 말은 없었습니까?"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전 들려온 비명소리에 돌아보니 안개 내부를 투시하던 유즈가 낸 비명인 모양이었다. 못 볼 것? 방금 전까지 위협하던 기괴하게 비틀린 존재들이 여전히 안개 속에 있었고... 그것들로 인해 고립된 아이들의 위치를 그녀가 말해주고 있었다. 이어진 남성의 말대로라면 그대로 내버려두는 건 안 되겠지. 일단 이 안에서 뭔가를 하려면 거점 삼을 만한 위치도 필요했으니...
"의무대만으로 포위를 뚫고 고립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두 사람을 찾는 것 역시 중요했으니... 전력을 분산해서라도 수색과 구조를 동시에 진행하는 게 옳을까? 너는 안개 속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많지는 않으니..
"저는 제안에 동의합니다, 단서가 없으니 확인된 일부터 해결하는 게 좀 더 나을 것 같군요."
아공간에서 약간의 군것질거리를 꺼내 아이에게 건넸다. 그와 함께 손수건과 구슬 몇개로 간단한 마술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아이의 긴장을 풀어주고자 했다.
에델바이스의 비세븐스와 같이 모두를 인간으로 봐주는 평범한 시선, 이 시선을 마을 밖에서 느낄 줄은 몰랐다. 돈이 최고다. 돈은 항상 옳다는 신조를 가진 브로커 양반도 나에게 경계하는 눈초리를 보내는데 -물론 암거래이기 때문도 있지만- 이 아저씨는 그러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순간 의무대에서 들리는 외마디 비명에 뒤를 돌아봤다.
"대체 뭘 본거야?"
아무래도 뭔가 징그러운 것을 본 모양이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적들은 많고 보호해야할 아이들의 상태는 좋지 않으며 백신은 한정되어있다. 특히 놈들은 합체 같은 것도 하는 모양이었다.
"화염 방사기는 안 챙겨왔는데.."
선우는 투덜거리며 마을 회관으로 서둘러 가서 사람들을 구해야한다는 유즈의 말에 동의했다.
"변이하기엔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아서 그럴지도 몰라요."
이 뿌리가 점점 더 커져서 아까와 같은 놈들이 될지도 몰랐다. 그때가 된다면 이 백신이 통할지도 의문이었다. 아까 놈들을 상대로 백신을 쓰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물론 가디언즈이기에 살려둘 생각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