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인 내용, 사흘간의 외출.. 이스마엘은 입술 속에 자리한 연한 살을 짓씹었다. 자신이 근신하는 기간 동안 사라질 줄은. 부산스럽게 눈을 굴려보지만 노이즈 속이라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같은 의무실 소속, 타테미야 유즈. 인적사항을 뒤로 스크린에 떠오른 사진을 본다. 숲의 일부, 돔 형태의 무언가.. 이스마엘은 시야를 좁히지만 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누군가의 고의적인 행동에 가까웠다. 가디언즈 또한 출동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함정은 아니지만 제 3자의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누가? 이스마엘은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 입을 벌렸다.
"라라시아가 대항할 백신을 미리 만들어두었다 했는데, 어떤 질병에 대한 백신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라라시아는 이런 일을 대체 어떻게 예지하고 있던 걸까. 아무리 어떤 병이 창궐할 것이라 예측한다 한들 아무렇게나 이 병엔 이 약이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을 텐데. 준비를 갖추기 이전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는다. 사살은 들은 척 하지 않기로 했다. 선택적인 이기심이다.
"……타테미야 유즈..라고 하셨지요. 타테미야 양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혹시.. 라라시아에게 어떤 징후는 없었습니까? 탈영이라고 의심된다 한들 징후는 있을 테니.."
"바이러스는 내부에만 퍼진 거라 아직은 아무것도 밝혀진게 없어요. 그나마 아는 건 저 돔이 살아있다? 는 것 정도네요. 촉수 같은게 날아와서 제 드론을 부쉈거든요."
그거 비싼 건데. 라며 유즈는 작게 툴툴댔다.
[이스마엘]
여태 잠자코 있던 이스마엘이 질문을 하자 유즈가 의외하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깜빡였다. 그리고 곧 대답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준비된 걸로 보아 특정 단백질 코드를 사멸시키는 백신이었어요. 이런 걸 어떻게 언제 만들었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긴장감이 가득한 회의실 분위기와 달리 생글생글 웃는 얼굴의 유즈는 다음 질문에도 흔쾌히 대답해주었다.
"편하게 유즈라고 불러요. 음. 탈영의 징후인가요. 특별히 그런 건 보이지 않았는데요. 다만 라라는 언제 자기가 자리에서 없어져도 주변에 문제가 없게 해놓는 사람이었어요. 같은 소속인 저희와도 항상 거리를 두고 있기도 했구요."
대답을 마친 유즈는 준비를 해야겠다며 잠시 후 보자는 말을 남기고 회의실을 나갔다.
[공통]
특수부대가 워프실로 이동하는 중, 현장에 나갈 준비를 한 의무실 소속 사람들이 섞여들었을 것이다. 회의실에서 본 유즈를 필두로 여성 1명과 남성 3명이 더해진 5인팀이었다. 의무대는 각자 백신이 든 가방과 장비를 소지하고 있었고 특수부대가 모두 워프를 탄 후에 뒤따라 이동해왔다.
워프로 나온 곳은 사진 속 하얀 구조물과 약간 거리가 있는 숲 속이었다. 그러나 나무들 사이로 하얀 것이 보이고, 조금만 이동해도 하얀 벽이 모두의 앞에 나타났을 것이다. 멀리서 보았던 사진 속 이미지와 달리 훨씬 견고하고 크며 동시에 꺼림칙함이 멀리서도 느껴지는 구조물이었다. 구조물 앞에 도착하자 유즈는 단말기를 꺼내며 말했다.
"현재 두 사람의 단말기 위치정보가 개방되어 있어요. 구분할 수 있도록 각자의 단말기에 표식을 보내드릴게요. 이 정보를 토대로, 벽에 직접 접촉하지 않게 조심하시면서 조사해주세요."
그 말을 따라 단말기의 위치추적을 켜면 근방의 지도와 겹쳐있는 빨간 점 두개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벽의 어느 지점에 있는 건지, 그냥 바닥에 떨어져 있는 건지 알 수 없으므로 한 차례 조사가 필요할 듯 싶다.
// .dice 1 100. = 50 다이스와 함께 조사합시다~ 딱히 다이스 먼저 돌릴 필요는 없으니 반응레스에 같이 달아주면 되구~ 10시 10분까지~
살아있는 돔 내부로 돌입해 두 사람의 신변을 확보하고... 단말기에 떠오르는 빨간 점 두 개를 쳐다보던 너는 벽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조사해달라는 유즈의 말에 고갤 끄덕였다. 여기서부턴 조금 나누어서 조사하는 게 빠르겠지. 다들 여차하면 도망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은 지녔겠지만 마찬가지일 레레시아와 라라시아의 신호가 끊겼던 곳이었으니 조심은 해야만 했다.
"특이사항 발견 시에는 바로 합류하는 게 좋겠습니까?"
결국 혼자서 뭔가를 하는 건 위험할 거라는 판단에 질문한다. 대답을 들은 뒤라면 바로 움직였을 것이다.
단백질 코드를 사멸시키는 백신. 대체 왜, 어떻게……. 이스마엘은 눈을 흘겼다. 함부로 추측하자니 알게 모를 죄책감이 기어오른다. 나는 언니에 대해 단 하나도 몰랐구나. 특별히 탈영의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자리에서 없어져도 주변에 문제가 없게 해두는 사람이다, 거리를 둔다.. 이스마엘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대체 뭘까. 게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의문이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돔을 세운 사람은 누구고, 움직인다면 대체 무슨 능력인지,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하는지, 돌아올 수 있는 것인지, 어디 다치지는 않았는지, 무사한지.
하얀 벽. 견고하고 꺼림칙한 느낌에 저절로 한 발 뒤로 물러나게 된다. 단말기 위치가 개방됐다는 말과 함께 표식을 보냈을 적, 이스마엘은 중얼거렸다. 페이시, 단말기 연동 시켜줘. 연동 아이디는─ 그리고 단말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는 걸 보니, 불편하게 단말기를 확인하는 게 아니라 노이즈 속에서 아예 창 띄워놓고 보는 편법 쓰는 듯싶다.
쥬데카의 질문에 유즈는 그렇게 해달라고 말했다. 아마도 통과할 수 있는 지점은 한군데 뿐일 거라는 말도 덧붙이며. 그리고 조사를 시작했으나 특별히 발견되는 것은 없었다. 단지 알 수 있는 건, 돔이 살아있는 것 같다던 유즈의 말처럼 이 벽이 보이지 않게 꿈틀거리고 있고, 벽을 마주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어디에서도 눈이나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데 오직 시선만 끈덕지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듯, 의무대의 몇몇도 소름끼친다며 중얼거렸다.
[선우]
"저도 새벽 쯤에 연락 오자마자 조사한 거라 아직 그런 것까지는 몰라요. 라라가 백신을 만들었으니까 뭔가 알고는 있겠지만요?"
유즈는 그것 뿐이라며 선우의 말에 대답하고 조사를 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선우도 조사를 시작했다. 선우 역시 무언가의 시선이 꽂히고 있었다. 그 와중에 단말기의 정보를 토대로 움직이던 중, 하얀 벽에 박힌 검은 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것이 에델바이스의 단말기 두개를 겹친 것이라는게 확인되었을 것이고, 위치추적에 잡히는 빨간 점의 그것이라는 것도. 그 단말기들은 외부로 신호를 보내듯 카메라에서 빨간 빛을 점멸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얀 벽에 콱 박혀 있었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았다.
[공통]
선우가 빠르게 단말기들을 발견한 덕분에 조사는 길어지지 않았다. 모두에게 사실을 알리고 단말기가 있는 지점으로 모여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싶을 때, 저 멀리에서 쿵- 하는 둔탁하고 큰 소리가 울렸다.
쿠웅- 쿠궁.
아주 멀리에서 무언가 발사한 듯이. 그 무언가가 특수부대와 의무대가 있는 곳까지 영향을 끼치친 않았지만 이 벽에는 무슨 일이 생겼는지 벽에서 오싹한 떨림이 진동으로 느껴진다. 누군가 외부에서 벽을 자극한 걸까? 그 덕분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일까. 벽에 박힌 단말기를 어쩔 새도 없이 벽이 길게 갈라지며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생긴다. 박혀있던 단말기들은 바닥에 떨어졌다. 급작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에 돌연 이어잭을 통한 로벨리아의 통신이 들려온다.
- 특수부대 듣고있나. 조금 전 에스티아로부터 그 인근 도시에서 새로운 가디언즈 부대가 출발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앞선 부대는 행방이 묘연해져 후속 부대를 보낸 듯 해. 그들과 마주치지 않게 조심해서 임무를 수행하길 바란다.
"아, 아. 아무래도 방금 폭음은 그 부대의 소행인것 같네요. 덕분에 길이 열린건지 어쩐건지 모르겠지만... 이, 일단 진입하기로 하죠? 열렸으니까요."
통신을 들은 유즈가 상황을 추측해서 말하고 특수부대를 바라본다. 아무래도 의무대는 동행팀이니 특수부대의 의향에 따를 모양이었다. 한편, 열린 벽 너머에는 을씨년스러운 마을의 풍경이 잿빛 천장 아래 펼쳐져 있었다. 바닥에 하얀 줄기가 곳곳으로 뻗은 것 말고는 특별한 이상현상은 보이지 않았다.
분명 눈은 없는데 꾸준히, 그리고 모든 방향에서 시선이 꽂히는 듯해 너는 오싹한 듯 몸을 떨었다. 이 벽이 무생물이 아니라 살아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런건지 좀 더 그랬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인걸 보면 너라고 해서 유별나게 반응하는 건 아닌 듯 했으며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소름끼치는 게 맞다고 판단해본다. 벽이 살아있는 것 같다, 그런 애매한 것 말고는 알아낸 게 없던 찰나 단말기를 찾아냈다는 소식에 바로 합류하기로 했다. 다행히 그다지 거리가 벌어지지 않아서 금방 다시 모이게 되자 벽에 박혀 있는 단말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상태. 겹쳐진 채 벽에 박혀버린 단말기들을 보며 기분나쁜 감각에 눈을 지그시 감다가 멀리서부터 들려우는 폭발음, 그리고 진동에 눈을 뜬다.
"결국 내부로 들어가야만 하는군요."
무슨 이유인지 길이 열렸지만 꺼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 길이 그대로 유지될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돔을 없애는 데 성공한다면 모르지만 탈출하려면 새로 길을 뚫어야 할지도 모르고. 미지의 공간에, 어떠한 정보도 없이 들어가는 것은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일었다. 그러나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기만 할 수는 없잖은가, 만에 하나라도 가디언즈에서 화력을 쏟아부어 돔을 없애버리는 게 가능하다고 해도 제대로 된 화력 조절이 될지 알 수가 없었다. 돔 내부까지 전부 날려버릴지도 모르지.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먼저 위험이 될만한 게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건지 너는 먼저 벽 너머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나쁘다. 끈덕지게 따라오는 시선이 있는 듯하여 저절로 등골에 소름이 끼친다. 혹시라도 벽에 눈이 달렸나 싶어 눈을 굴려보지만 마주칠 리가 없다. 이스마엘은 단말기를 발견했다는 말에 한순간의 희망을 품었지만 벽에 박혔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입을 꾹 다물었다. 벽에 박힌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나 싶어 벽을 향해 고개를 들어보고 "..레레시아, 라라시아?" 하고 불러보지만 대답이 있을리는 없다.
나도 참, 그럴 리가 없잖아. 그렇게 생각할 때, 둔탁한 소리를 뒤로 오싹한 떨림이 느껴진다.
벽이 갈라진다. 이스마엘은 통신을 뒤로 박혀있던 단말기들은 바닥에 떨어졌다. 급작스럽게 돌아가는 상황에 돌연 이어잭을 통한 로벨리아의 통신이 들려온다. 결국 내부로 들어갈 수밖에 없지만 이스마엘은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 쥬데카가 먼저 들어가려 했을 때, 이스마엘도 발걸음을 옮긴다. 잿빛 천장, 을씨년스러운 마을의 풍경. 이스마엘은 눈을 굴린다.
"아. 그건 아니에요. 레시와 라라의 연락 모두 이 지역의 주민들을 구출해달랬지, 자기들을 구해달라는 말은 없었거든요. 제가 나온 것도 제가 연락을 받았고 대장이 리더로 지목했으니까 가는 거에요. 특별한 친분으로 가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선우의 말에 유즈는 매우 산뜻하게 대답했다. 다른 의무대원들도 비슷해보였다. 특별한 이유나 친분으로 나왔다기보다 팀이기 때문에 나온 것 같았다. 선우가 단말기를 줍자 유즈가 자신이 맡아도 되겠냐며 물었다. 건네줄지 아닐지는 선우의 선택이다.
"저희도 투입된 임무인데 무를 수는 없죠. 네. 그럼 저희도 바로 뒤따를게요."
쥬데카가 앞장서는 것을 선두로 특수부대와 의무대가 차례대로 벽의 틈을 넘어갔다. 안으로 진입하는 동안 벽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밖에서 이스마엘이 불렀을 때도 가만히 있었듯이. 여전히 꿈틀거리고, 여전히 어디선가 시선이 따라붙지만, 모두가 들어올 때까지 벽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람이 꽤 오래 살지 않은 듯한 마을의 모습이 있었다. 낡은 집, 정비되지 않은 길, 물이 멈춘지 오래 된 분수대, 다 삭은 벤치 등등. 바깥의 흰색과 달리 재색의 돔 안쪽 때문에 정말로 세상이 끝난 풍경 같기도 하다. 바닥과 집에도 걸쳐진 하얀 줄기들이 더욱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어영부영 마지막 의무대원까지 들어온 후, 다시 이어잭을 통해 로벨리아의 통신이 들려오는데.
- 특수부대 들리나. 지금 후속 가디언즈 부대가 구조물에 접ㄱ으ㄹㄹㄹㄹㄹㄹ
으직 으직 꾸드드득!
이어잭의 통신이 심한 노이즈로 일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그들이 들어온 통로가 순식간에 막혀버린다. 조금 전까지 얌전하던게 거짓말처럼. 눈 깜짝할 사이에 퇴로가 막혀버리고 이어잭은 더이상 외부와 연락을 이어주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조용히 하얀 안개가 발밑에서부터 깔려오고, 사방이 짙은 안개로 가득 차는 것 역시 한순간이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하려고 기다린 듯이.
"어, 어, 어, 뭐지? 어? 저기!"
시시각각 바뀌는 상황에 당황한 소리를 내던 유즈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 방향에는 안개를 가로지르며 달려가는 실루엣이 보였다. 그런데 누군가 달리고 무언가 다수가 그 뒤를 쫓는 듯 했다. 안개로 인해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고 그게 이 마을 주민과 가디언즈일지 다른 무언가일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사람의 것인 아닌 듯한 괴성이 들려오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실루엣을 쫓아 행동을 취해야 할까. 무시하고 별개의 행동을 취해야 할까. 어쨌거나 가만히 있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다. 안개가 스물스물 감겨오고 있었으니.
벽 너머로 들어올 때까지 열린 통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닫히려고 한다거나, 내부의 사람들을 노려 뭔가 튀어나온다거나 하는 일 없이 무사히 발을 내딛은 너는 꼭 세상이 끝난다면, 혹은 끝나간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싶은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좀 을씨년스럽고 기분이 나쁘긴 해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어째서."
통신이 부자연스럽게 끊겨버리고, 끔찍한 소리를 내며 그대로 통로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마치 애초부터 통로 같은 건 없었다는 듯 벽으로 돌아가 버린 그것을 돌아보며 너는 한숨을 흘렸다. 좀처럼 내버려두지 않는 걸까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올 상황에 고갤 숙이고 얼굴을 한번 쓸어내리고 나서야 다시 고갤 든다. 일단 외부와의 통신은 두절, 레시와 라라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겠다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일단 목적은 두 사람을 비롯해 사건을 파악하는 것이고...
"내부에서 서로 통신이 가능한지 정도는 확인해봐야겠습니다."
외부와의 통신은 무용지물이지만 어떨지 모르니 이미 내부에 들어온 이들끼리의 통신은 가능한지 확인해본다. 가능하다면 다소 움직임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러는 와중 차오르는 안개에 시야가 가려지니 짧게 혀를 찬 너는 무전이 가능하다면 무전으로, 아니라면 육성으로 주변인이 멀쩡한지 확인하려고 했다. 섣불리 움직이는 것보다는 천천히 상황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지만 그리 편하게 흘러가지는 않는 듯했다.
"일단은 움직여야겠군요, 실루엣을 뒤쫓아 움직여보는 게 좋겠습니다."
시야에 잡히는 단서라곤 그것뿐이니, 혹시 모를 다른 단서는 없는지 감각을 곤두세우곤 실루엣을 뒤쫓시 위해 ㅈ발걸음을 옮겼다.
꿈틀거리며 시선이 따라붙는다. 대답은 없고, 오래 살지 않은 듯한 마을이 보였다. 을씨년스럽고 익숙한 광경. 그리고 끊기는 통신. 마치 외부와 단절되는 듯한…… 아예 다른 차원의.. 이스마엘은 고개를 황급히 돌렸다. 퇴로가 막히고 이어잭은 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되는데.
당했다. 그렇게 생각이 들었을 때,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치는 소리를 향해 고개를 다시금 돌려본다. 이스마엘의 눈이 좁아진다. 무언가 안개를 가로지르며 달려가고, 다수는 쫓기 시작했다. 사람의 것이 아닌 괴성, 쫓아야 하나? 이스마엘은 눈을 굴리고 몸을 가볍게 공중으로 띄운다.
"의무대, 이쪽으로. 추격시 엄호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쫓는다면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판단했는지, 이스마엘은 전투 능력이 거의 없을 의무대를 따라다니며 지키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급작스런 상황 전개에 당황한 사람이 있으면 차분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쥬데카의 침착한 대응에 의무대원 중 한 사람이 이어잭의 기능을 확인한다.
"아, 아아, 들리십니까?"
다행히도 내부에서의 통신은 무사한 듯 했다. 의무대원들이 한 사람씩 무사함을 알리고 쥬데카의 육성을 따라 가까이 모인다. 애초에 그렇게 멀리 떨어진게 아니라 흩어지는 위험은 없었다. 통신을 확인하고, 쥬데카가 다시 앞장서는 것으로 실루엣을 쫓기로 하자 의무대도 나름의 태세를 취했다. 유즈도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죠!"
안개를 가로지르며 실루엣들을 쫓기 시작하자 얼마 가지 않아 금방 그 실루엣들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렇게 짙은 안개였는데 이동을 시작하자마자 스윽 열린 것처럼 앞이 잘 보여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아직은 거리가 있는 그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 중 도망치는 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었고 그 뒤는....
고장난 라디오 같은 소리를 내는.. 사람? 가디언즈의 군복을 입고 있으나, 하얀 줄기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울룩불룩 괴상한 몰골을 한, 도저히 사람으로 봐줄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뒤틀린 소리를 내며 뛰고 바닥을 기어서 남성의 뒤를 쫓고 있었다. 남성은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지 그것들과 거리가 좁혀지는 중이었다. 저것들을 잡거나 남성을 돕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뻔한 전개였다.
내부의 통신은 무사하다. 앞장서는 실루엣을 너무 느려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만 간격을 두고 의무대를 이끈다. 그렇게나 짙은 안개임에도 이동을 시작하니 앞이 잘 보였으니, 이스마엘은 차마 이 상황이 의도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를 안은 중년 남성? 이스마엘의 눈이 황급히 다른 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고장난 라디오, 혹은 신호가 잘 연결되지 않는 스크린에서나 들릴 법한 끊기는 노이즈, 목소리, 그리고.. 사람으로 볼 수 없는 무언가. 바닥을 기거나 뛰는 모습에 절로 소름이 돋았다.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니,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해야만 정신이 무사할 것 같다는 생각을 본능적으로 하게 될 정도로.
"말도 안 돼."
이스마엘은 인간이 아닌 것을 향해 팔을 뻗었다. 염력으로 눌러 움직임을 막기 위함이었다. 말도 안 돼, 저런 게 사람일 리가..
다행히 내부에서의 통신은 살아있었고 다들 멀리 떨어지지 않아 금방 모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실루엣을 쫓기로 결정되어 네가 앞장서는 모양새로 실루엣을 따라나서던 너는. 시야에 들어오는 상황에 순간적으로 몸을 크게 떨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셔가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하기를 잠시, 너는 있는 힘껏 달음박질해 남성을 붙잡아 뒤따르는 기괴한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체력이 떨어진 성인을 끌고 얼마나 도망칠 수 있을까, 때문에 몸을 돌려 기괴하게 변한 인간들에게 총탄을 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