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신상을 만드는 걸 업으로 삼는 쪽은 엄청 빠르고 많이 만들 수 있거든요. 저는 아직 많이 서툰 점이 있지만요.”
그렇지요! 조각을 계속 하다보면, 언젠가는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 겁니다. 무엇보다, 그 신들이 자신들의 신벌을 거둬갈지도 모릅니다. 미야비는 헤헤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음? 당연히 괜찮죠! 좋은 꿈을 꾸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은 거니까요.”
당연한 걸 묻는다는 것처럼 미야비가 말했습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정말로 좋은 꿈을 꿀 수 있을지도?
“드림님에게서 워커님이 떨어져 나왔으니까, 아마 위계를 따진다면 드림님일 거예요. 아니면, 두 신상 다 드릴 수 있고요. 보통 선물할 때는 쌍둥이 둘 다 선물하지만, 제 신앙이 익숙치 않으시니까 드림 님으로 드릴게요. 꿈이라는 건, 색다른 내용이 나올 때가 가장 즐겁잖아요?”
꾸는 쪽을 주는 게 선물로는 더 좋을 테니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 쥐고 있던 신상을 살짝 내려놓았습니다.
“역시, 다들 대단한 거 같아요. 저는 그렇게 도움이 되지 못했는데.......... 몸은 괜찮아요?”
꿈을 만드는 신이 있었고 그로부터 꿈을 먹는 신이 나왔다라. 꿈을 만들다 보니 고통스러운 악몽 같은 것도 생겼고 그걸 먹어 치울 분신을 만들었다는 이런 류의 설화이려나. 자식이 아닌 쌍둥이 형제, 곧 분신으로 표현되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다.
"허허 여러모로 감사한 이야기긴 하네만. 그럼 자네의 뜻대로 드림님으로 받아보도록 하지. 한데 아직 워커님도 끝나지 않은 셈이니, 꽤나 걸리겠구만? 아무쪼록 기대하며 기다리면 되겠어."
일방적으로 호의를 보이는 상대이니 그보단 못해도 자신 역시 그에 상응하는 태도를 보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고로 상대의 이신을 존칭하기로 했다. 고작 존칭에 불과하기도 하고..자신의 신앙에 우상숭배와 관련한 문제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으음..그리 말하면 나야말로 서글퍼진다네. 자네야 도움이 못 된 수준에서 그쳤을지 몰라도 나야 완전 방해가 되고 말았으니 말일세! 그래도 그 대가는 확실히 치른 모양인지 몸이 썩 괜찮지는 않다네 사실."
새삼스러운 물음에 기억을 더듬어본다. 워낙 정신이 없다 보니 제대로 기억이 나지는 않으나 적어도 자신에게 화살을 날리지는 않았던 거 같다. 자신에겐 그걸로 충분하다. 물론 그땐 의식이 없었다는 설정이니 티를 낼 수야 없겠지만.
"자네 입장에선 이게 첫 의뢰인 셈이지? 첫 의뢰치고는 거창하게 출발했구만. 나 역시 첫 의뢰가 용살로 이어졌고..고작 두 번째 의뢰가 이거였으니 비슷한 결인 셈이군.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의뢰는 흔하지 않다네. 오히려 첫 의뢰로는 좋은 경험이었을지 모르지. 초짜 모험가들이 괜히 객기를 부리다 방심해서 당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일세. 뭐 죽어버렸으면 허망했겠지만 어쨌든 살았으니 경험이 된게지."
자신이 의뢰에 대해서 직접 진상짓을 부리며 얻어낸 결과다. 뭐라도 되는 양, 거창한 의뢰를 요구했으나 살짝이라도 삐끗하면 그냥 죽어버리는 그저 그런 수많은 초짜 모험가 중 하나가 되었겠지. 모험가가 되는 것에는 자격조건이 없다. 그러니 그 뻔하디뻔한 초짜 의뢰들이 진짜 모험가가 될 인물과 아닌 인물을 구분하는 체가 되어주는 셈이겠지. 너무나도 뒤늦게 얻은 깨달음이다.
다만 이 허무맹랑한 생각은 상대가 누군지 식별이 되자 산산히 조각났다. ...그럴리가 없겠지.
"허허 그렇다고 말하고 싶네만, 내 방은 오히려 저쪽이라 그렇게 말해도 별로 신빙성이 없을거 같구만." 그래도 상대 역시 허무맹랑한 말로 반겨주니 다행이다.
으음..묘한 만남이다. 상대와 자신 모두 일전에 마리아에게 조종당한 입장. 마리아의 말로 미루어보아 다른 모험가들을 제거하라는 같은 제안을 받았겠지. 저쪽도 그걸 따르지 않은 모양이군. 그 말대로 따르기에는 너무 위험하긴 했지.
"사실 안녕이라고 안부를 묻기도 뭐하구먼. 안녕하실리 없겠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나랑 같은 입장으로 묶기에는 좀 실례이려나?" 다크엘프. 이야기 정도야 들어본 적 있다만, 자신은 잘 모른다. 그냥 색만 다르지 똑같은 귀쟁이 아닌가? 아니 그렇게 따지면 자신도 수염만 없지 똑같은 난쟁이 아니냐고 하려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다르지. 선조와 다른 모습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을지 모르겠다. 묘한 묶임이다.
"동류라...동류기에 조종할 수 있었 것인가. 적어도 난 일행 중 어느 면으로 보나 최고 전력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네만." 홀로 배신감을 느끼며 화를 내던 모습을 보아하면 이쪽의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과 같은 입장일 동류로 보았기에 택했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
"저주라...마족과 저주가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구만. 허허. 여러모로 골치가 아프겠군." 자신 역시 저주를 다룰 수 있긴 하니깐 마족과 다크 엘프의 저주와 연관이 있다고 해서 이상한 것은 없다. 설마 고로 모든 마족을 죽인다. 마족에게 힘을 받은 너도 죽인다. 이런 극단적인 결론이 나오진 않겠지.
"허허 그 상황에서 우리 둘이 원하는 것은 정반대였구만. 그래도 각자 한 발짝씩 물러서 타협한 그림이 되었으니 우습군. 나야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그 상황에 내가 멀쩡했다면 나는 마리아를 제거하는 쪽을 택했을 걸세. 마리아가 무사히 끌려가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최악이었겠지." 어쩌면, 충돌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지난 일이지만. 충돌이 발생했다면 아마 자신이 졌겠지만, 싸움의 승패와 별개로 기회를 노린다면 마리아 정도는 제거할 수 있었겠지.
"그래도, 뭐라도 얻은 셈이니 기쁘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나. 나는 얻은 것 없이 얌전히 목을 닦고 기다리는 기분이라서 말이지. 후..힘이 없으니 문제지 그래 내가 힘이 없는 것을 누굴 탓할까." 자신의 사정은 자신의 것. 그녀의 사정은 그녀의 것. 남의 처지가 자신의 사정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도 악독한 바가지로 값을 치렀을지언정 얻어간 것이 있는 게 어디인가. 눈 뜨고 코 베이듯 정체가 탄로 난 자신의 입장에서는 속이 쓰렸다.
"이왕 맡게 된 방패 역할은 확실히 해주겠네. 당장 찢어 죽일 이단이 있는데, 꺼림직한 다크엘프가 대수겠나? 어든 마리아가 택한 동지니, 말일세." 안 할 수 있다면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한다면 별수 없이 해야겠지. 자신의 방패는 아마 마리아가 되겠지. 꼬맹이 녀석이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벌어주길 바랄 뿐이다.
"길드에서 그런 마도구를 가지고 의뢰를 확인한다고?..마법은 대체 얼마나 오만해질 셈인가!" 젠장. 세상 살기 빡빡해서 어쩌냐 진짜. 해본 의뢰라곤 용잡이가 전부였고 그땐 그런 거 안 했단 말이다..누가 대표로 했던 걸까? 그런 거면 그때 재수 없게 내가 대표였다면 우연히 걸렸을 수도 있겠네.
종교가 뭐죠? 드워프 토속신앙 망망치치를 믿어요. 그 신에 맹세하고 진실만 말할 수 있나요? 네. 어라? 마도구는 아니라는데? 네??? 댕강. 툭. 데구르르르.
나도 정말이지..대책이라는 게 없구나. 무슨 생각으로 모험가를 한다고 설쳤을까 그냥 어디 한적한 시골에서 연쇄살인마로 지내는 게 나았을지도.
"...틀렸군. 혹시 내가 자네의 귀에 대해서 자네의 부모형제를 모욕하는 발언을 한다면, 홧김에 내 배에 구멍을 내줄 수 있겠나? 당장 보고를 하러 갈 것이 아니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보이게 말이야." 지금이라도 배에서 뛰어내릴까 싶었지만. 이 날씨를 생각하니, 내 시체를 못 찾게 만들 의도가 아니라면 의미는 없어 보인다.
"에휴..그래 자네랑 나는 같은 처지는 아니지. 자네는 선택하지 않았지만 난 선택을 했으니깐. 모르고 고른 것도 아니고..알면서 했는데 누굴 탓하겠나." 결국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한숨을 내쉰다. 모르겠다 정말. 신의 뜻대로 되겠거니 하면서 이단 숭배자스럽게 구는 게 최선이려나.
"허허 나름대 의미가 깊은 물건이니 서두를 것 없이 정성껏 작업하게나. 내가 어디를 가지는 않을테니" ...글쎄 과연 어디를 가지는 않으려나.
미야비의 걱정 그저 고개를 끄덕여준다. 자신이 뭐 대단한 숙련자도 아니지만서도, 미야비가 보이는 흥미에는 무언가 풋풋함이 있다. 자신이 모험가가 된 이유는 그 앞에서는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다. 그래 굳이 모험가가 아니어도 되었으니.
"괜찮네. 지금은 그래도 괜찮고말고. 항상 긴장하고 있을 순 없지. 그런 삶을 살고자 모험가가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생각에 잠길 기회가 왔을 때 생각에 잠겨보는 것도 좋지. 여유를 잃으면 그러지 못할 수도 있으니." 여유를 잃고 계속 긴장된 상태로 있던 것은 자신이다. 이 잠깐의 대화로 긴장이 좀 풀리는 기색이긴 하다만.
"그런데 자네는 귀한 유물을 찾으면 그걸 어찌하고 싶은가? 수집품으로 원하는건가? 아니면 비싸게 팔거나 정당한 주인을 찾으려는 셈인가?"
순간 말이 없어진 이리나를 달래듯 여자는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소녀와 함께 물러났다 어디 또 재미있는 건 없을까, 하고 둘러보며 거리를 걷고 있자 손에 힘이 주어진다 이리나의 신호였다
"흐음. 나, 팔씨름같은 건 잘 못 하는데..."
팔씨름이 벌어지고 있는 판을 보고 여자는 고민하듯 중얼거렸지만 경품 중에 인형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리고 이리나가 말없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아채자
"―라는건 농담. 금방 다녀올게."
태도가 금방 바뀌어서는 그 한 가운데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팔씨름은, 바로 전 판에 상대를 꺾은 인간인 챔피언을 이기기만 하면 경품을 주는 모양이다 당연하지만 힘 좀 쓴다는 남자들밖에는 모여있지 않았고, 화려하고 이국적인 의복의 여자가 들어서자 자연스레 시선이 집중된다 그리고 여자는 경직 된 그 틈을 타, 곧장 싸움판에 앉았다 기나긴 기모노의 소매를 걷어붙이자 팔뚝이 드러난다 바로 앞에 마주앉은 '챔피언'에 비하면 한참이나 가녀린 팔이었다 하지만 여자는 되려 챔피언의 손을 맞잡고는 붉은 눈으로 상대를 마주했다
"그야 가이아 입성 직전에 푹찍을 해달라는 소리였네만, 부모형제도 없다니 내가 단념하겠네. 부모형제 이외에 칼에 찔릴 만한 욕설은 딱히 떠오르는 바가 없으니 별수 없지." 어쩌면 혈통에 집착하는 자신이나 그렇지 남들은 부모형제에 별로 안 민감할지 모른다. 그야 나 아니면 남이니깐.
"정말 고블린이나 슬라임 같은 애들 잡는 의뢰를 안 해서 몰랐다네." 그런 거 하기 싫다고 징징거리다 혼났지.
"그러다..결국 맡은 게 약초 수집인데 이거야 실물로 확인이 되니깐..뭐 아직 하나도 안 수집했지만. 앞으로도 수집할 일 없을지도 모르겠군." 의뢰 취소도 되려나. 아니 지금 그런 게 중요한가 내가 의뢰 목표로 걸릴 판인데.
"..도망이라, 여기서 도망치면 나한테 남는 게 없다네. 납작엎드려서 천천히 후일을 도모하는 수도 있겠지만...애초부터 그런 것을 택할 수 있는 멀쩡한 사람이라면 이단숭배자 따위는 하지도 않았겠지. 결국 어딘가 나사가 빠지거나 절실하거나 혹은 둘 다인 사람들이나 이단을 숭배하지 않겠나? 흐~허! 그래 오히려 문제가 단순해졌구만."
힘을 얻어서 문제를 해결한다. 그래 좋다. 근데 그 힘, 꼭 이단숭배 해야지 생기나? 다른 일행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건 아니다. 그럼 왜 자신은 이단숭배의 길을 택했나? 기다릴 수 없으니깐. 힘을 빨리 얻고 싶으니까. 하루빨리 되찾고 싶으니까.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몰라도 좀 정리가 된거 같네. 아, 그래도 말이야. 내가 스스로 이단숭배자임을 인정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직 자네밖에 없다네 베아트리시. 어차피 뻔한 일이지만 그래도 다른 일행에게는 함구해주게. 뻔한 사실이라도 난 일단 부정하고 잡아떼고 볼 거라네 의미가 있든 없든."
아직도 비바람은 거세게 몰아치고 배는 또다시 크게 흔들린다.
"아이코, 난 이제 내 한 몸 믿고 살아야 해서 말이야. 몸 좀 아껴야겠네 자네도 너무 비바람 많이 맞지는 말게나. 또 보자고. 그땐 뭔가 달라져있을지 모르겠구만 허허" 베아트리시에게 인사를 건네고 조심스레 균형을 잡으며 자신의 객실로 향한다. 정신 차리자. 어쩌면 이단생활은 이제 시작인 셈이니. //타모르는 이게 막레야 고생했어 베아트리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