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제국과 마족의 전쟁에. 피로 피를 씻고 원한으로 원한을 닦는 세태에 관심이 없다. 저주를 푸는데 도움을 주면 착한 놈. 도움도 훼방도 놓지 않으면 그냥저냥. 훼방을 놓으면 나쁜 놈이다. 마리아가 중립구역에 앉아 주기적으로 단서를 준다면, 나는 진심으로 마리아에게 잘 대해주었을거다.
"난 이단같은거 몰라. 모든 것은 죽음 앞에서 평등하다. 모든 것이."
인간 드워프 엘프 수인 마족. 나는 관심없다. 모두 세상에서 몸부림치다 죽는 애벌래에 불과한 것을. 나도 그렇게 평등해지는 날을 꿈꾼다. 죽음 앞에서 남들과 같아지는 꿈.
"배째라고 뻗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하지만 미친놈은 진짜 배를 째려고 칼을 디밀테니 유념해라."
"난 아무말 않을테니 걱정 말고. 사실 다크엘프에게 뭘 물어보겠냐만.."
타모르는 인사를 마치고 선실로 들어갔다. 나는 난간을 더욱 꼭 쥐고 눈을 감았다. 몸을 두들기는 빗물이 시원했다.
이리나는 코우를 못 믿겠다는 듯 쳐다보면서도,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팔씨름을 본다. 약한 척을 하려고 져주는 건지, 아니면 상대의 팔을 찢어버릴까봐 조심하다가 힘조절을 못 한 건지. 코우 씨는 승리를 위해서라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다가 결국 아쉽게 졌다. 그래도, 이리나는 저렇게 봐주려고 온갖 편의를 다 봐주고 나서야 아슬아슬하게 진 것을 보며 코우가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됐네요."
코우도 실패했고, 이리나도 실패했다. 어쩌면 이리나가 실패해서 무안해하지 말라고, 일부러 자기도 져준 것 아닐까? 이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리나는 어깨를 으쓱이다가, 이번에는 자기가 코우의 팔짱을 먼저 낀다. 그리고 가이아의 중심지를 가리킨다.
입으로 우는 소리를 내자 여자의 머리털이 다시 추욱 늘어진다 팔씨름에 진 것은 상관 없지만, 인형을 얻어내지 못한 것은 분하다 그것은 이리나가 기대하고 있었던 거니까 코우는 순간, 칼을 빼들어 전부 베어버리고 인형을 얻어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래서야 이리나가 기뻐하지 않을 것을 깨닫고 3초 안에 그만두었다 그 3초 동안은 선채로 상대방을 말없이 빤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빤하게
"응... 가자."
아무튼 그런 여자를 데리고 떠난 것은 이리나쪽이 먼저였기에, 할 수 없이 코우도 미련을 두고 자리를 떴다
"술 사줄까?"
그래도 이대로 빈 손으로 가게 하는 것은 조금 그렇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이번엔 여자가 이리나에게 먼저 물어왔다
"허허, 물론 갖고 싶은 게 생기면 가져도 좋겠지. 유적의 물건은 먼저 발견하고 주운 사람이 임자인 법이니깐. 지킬 역량을 벗어나는 물건에 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괜찮을 걸세. 유적과 유물의 내력에 관심을 가지다 보면, 전해지지 못하고 끊어진 역사를 알 수 있을지 모르겠군. 이름없는 사내를 비롯해 세상에는 잊힌 기록이 꽤 많으니까." 자신과 큰 상관은 없는 얘기겠지만, 낭만있는 모험가의 삶이 아닌가. 미야비를 보고 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신도 수염을 잃지 않았으면 비슷한 것을 추구하지 않았을까 싶다. 가지 못한 길인가.
"내 비록 모든 면에서 정직한 사람은 아니네만, 자네의 모험은 응원하려고 한다네. 이건 진심이니 꼭 해내길 바라지."
그때 드디어 마차가 도착해 다들 모이라는 외침이 들린다. 도망가기 딱 좋았던 기회는 이제 없다.
"이제 또 정직하지 못해질 순간이 다가오는구만. 자네도 날 응원해주길 바라네. 꽤나 많이 필요해 보이니 허허." 인사 아닌 인사를 건네고 서둘러 마차로 향한다.
괜히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길드 관계자들에게 보이면 미야비에게도 좋을 것이 없겠지. 나의 모험은 역시나 이 모양 이 꼴이다. //나는 이게 막레야 일상 돌린다고 고생했어 미야비
이리나는 코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른 채, 함께 걸어갔다. 인형도 경품도 없어도 괜찮은 것 같았다. 이기고 경품을 따낸 것만이 추억은 아니니까. 실패도 받아들이기에 따라 즐거움이 되고, 행복이 된다. 이리나는 엷게 웃으며 코우의 손을 잡았다.
"액땜이라 생각하자구요. 그동안 드래곤도 잡고 마족도 이겼는데, 슬슬 운 나쁠 때도 됐잖아요."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이리나 자신이 보기에도 상당히 고백같았지만 아무튼 계속 말했다.
분명 방금까지 굉장히 아쉽다는 기색을 두르고 있었으면서도, 이리나의 말이 이어지자 여자는 언제 그랬냐는듯 또 헤실헤실한 얼굴이 되어서는 기세가 되살아난다
"우헤헤~"
알기쉽게 가벼워진 발걸음을 움직이자 나무 게다가 따그닥거리며 소리를 내었다 따지고보면 여자에게 있어서 드래곤도 마족도 마리아도 그다지 강적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소녀의 말로 인해서 그때 쓰러트린게 드래곤 언저리였는지, 마족 비스무리한 무언가였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응. 나도 리나 많이 좋아해."
말하고는, 술을 찾아 두리번거리자 어느 가판대가 여자의 눈에 띈다 신년제에 간단하게 마실 수 있도록 준비 된 맥주 같았다 여자는 조금 곰곰히 생각하다가 손을 맞잡은 이리나에게 고개를 돌려,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