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나는 그렇게 말하고, 무장해제하는 도적들을 바라본다. 다들 이리나와 모루를 죽일 듯 쳐다보면서도, 어쨌든 무기를 멀리 던지면서 명령에는 따랐다. 하지만 한 명이 꾸물대더니 갑자기 도망가려고 해서, 이리나는 화살을 쐈다.
"끄악!"
"거기까지. 또 죽고 싶은 사람 있으면 도망치시면 돼요."
이리나는 그렇게 말하고 모루에게 묻는다.
"...그러고보니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하지만 지금은 물어보기 참 그런 때였나보다. 이리나는 그 순간, 갑자기 단검을 들더니 뒤로 팔을 뻗었다가 당기려ㅡ 하는 이를 본다. 이리나의 지각보다도 앞선 화살이 상대를 겨누지만 너무 늦었다. 상대는 타모르에게 칼을 던졌다. //여기서 피하거나 튕겨내시거나 아예 잡아서 되던져서 죽이셔도도 될거 같습니다
그리고 이리나는, 상대의 머리가 터지는 것을 보면서 메이스의 무시무시함을 실감한다. 이리나의 화살은 갑옷 앞에서는 무력해지는 감이 있었지만... 저 메이스는 건물을 부수는 것처럼, 갑옷도 부숴서 상대를 죽일 것 같았다. 물론 동물을 최소한도의 고통과 타격으로 죽여야 가죽과 고기의 가치가 높아지는 사냥꾼은 메이스를 못 쓰겠지만.(메이스로 두들겨팬 탓에 내장이 다 터져서 배설물 냄새가 밴 가죽은 그 누구도 사지 않을 것이다.)
"...사지가 묶여서 찢겨죽기랑, 화살에 뒤통수 맞거나 메이스에 머리 터져서 편히 가기. 둘 중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저도 후자를 고르겠어요."
"아까 전에 보셨잖아요. 숨길 수만 있다면 엉덩이에라도 송곳을 숨겼다가 찌를 이들이에요."
이리나는 어깨를 으쓱인다. 동물 사냥만으로는 먹고살기 힘들어 현상금 사냥도 한때 겸했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실화다. 그거에 찔린 친구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면서, 항복한 사람은 무조건 손발을 다 묶고, 어쩔 수 없이 풀어줘야 하면 한 쪽은 무조건 묶으라고 하셨다. 이리나는 그게 생각나서, 묶으라는 이야기로 알아듣고 그들에게 서로를 묶으라고 명령했다.
"...칫..."
"...제길..."
이런저런 말이 새어나왔지만 이리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 묶자, 모루에게 말한다.
찬란한 섬의 일을 마치고 모두가 보고를 위해 돌아가던 길. 무사히 항해를 마친 일행은 마차 지연으로 인해 접선장소에서 잠시 대기를 해야만 했다.
글쎄. 설마 전원 생환을 할 것이라곤 예상을 못 했기에 발생한 문제일까. 도망을 친다면 지금이 제일일지도 모르나, 그러지 않기로 한다. 섣불리 중심에서 멀어지면 정말 손 쓸 도리도 없이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지금은 이 일행들과 붙어 지낼 필요가 있다. ..저들도 날 진심으로 일행으로 생각할진 몰라도.
그렇게 홀로 수평선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한 후 돌아선 눈에 들어온 것은 뭔가를 골똘히 하는 미야비의 모습이었다.
"자네...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열심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고민도 덩달아 부질없게 느껴진다.
골목의 가장 큰 길로부터, 이리나의 애칭을 부르면서 그 여자는 다가왔다 그런데 옷차림이 평소랑은 많이 다르다 척보아도 품이 많이 들 것 같은 옷감을 쓴 것 같은, 화려한 문양이 입혀진 고풍스러운 옷이었다 특히나 소매가 길디 길어서 단순히 걷기만 해도 거의 땅에 끌릴듯 싶다 이것은 말하자면 기모노의 일종이지만, 아마 이곳의 대부분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제국의 기준으로는) 생소한 인상의 의복일 것이다 이런 고급스런 옷을 입고 있으면 뒷골목에선 노려지는 것이 흔한 법칙이지만, 어째서인지 주변의 사람들은 눈길을 주지 않다 못해 길을 피하고 있었다 ...오비로 둘러싼 허리에 변함없이 자리잡고 있는 칼 때문일까 (단순히 그것뿐만은 아니겠지만)
"기다렸어?"
내내 기다리고 있던 상대의 앞에 서서 말하는 여자의 입에서도 약간 가쁜 숨에 섞여 허연 입김이 새어나왔다 과연 꽤나 준비하고 온 모양인지, 항상 까마귀의 깃처럼 산발을 하던 그 검은 머리도, 이번에는 가지런하게 빗어 한데모아 단정하게 비녀로 묶어 놓은 것이다 특유의 붉고 멍한 눈은 그대로였지만, 단지 머리를 손 댄 것만으로 여자의 인상은 꽤나 다르게 되었다 그런 여자는 눈 앞의 소녀에게 손을 내밀며 말하는 것이다
사각사각, 나무 조각을 칼로 깎던 미야비가 후, 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습니다. 몰두하다가 숨을 쉬는 것 마저 잊고 있었답니다. 저도 모르게 미간에 힘을 주고 있었기 때문인지, 손 끝으로 미간을 문지르던 미야비는 다시 도구를 집어서 조금 더 세밀하게 작업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작업하고 있었을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그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아, 타모르씨!”
여간 반갑지 않았던 터라, 미야비의 꼬리가 붕붕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반가운 법이지요, 아무렴요. 그는 자신의 옆을 손바닥으로 통통, 가볍게 두드리며 앉으라는 시늉을 했습니다.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이리 와서 앉아요!”
앉아달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었군요. 어머나. 그러다, 타모르의 물음에 뒤늦게 반응한 미야비는 어색하게 헤헤,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별 건 아니고 신상 작업 중이었어요.”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였죠. 아무리 봐도, 키메라나 만티코어 같은 형태였습니다. 온갖 짐승의 신체 부위가 붙은 것 같은 키메라나 다름 없다구요. 사자 머리에 토끼 귀는 무엇이며 등에 웬 새 날개를 달고 있고 팔 한쪽은 뱀인 걸까요.
“아직 미완성이지만요. 하나 더 깎아야 하고 얼굴도 완성해야 하거든요.”
크툴루 맙소사 라고 외치고 싶은 나무 조각을 손에 소중하게 쥐고 희미하게 미소 지은 미야비가 말했답니다.
이리나는 자신을 리나, 라고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옆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눈 앞에 코우를 두고도, 마치 낫 놓고 기역자 못 읽는 바보마냥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리나의 머릿속에서, 코우는 머릿속에 나사가 조금 빠졌지만 착한 바보 언니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눈 앞의 붉은 머리를 비녀로 정돈하고 이국의 기모노를 입은 여자는 지금 이리나의 머릿속에서 코우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코우 씨가 은신술도 배우셨나... 코우 씨! 빨리 나오세요. 장난은 조금 있다 쳐도 되잖아요..."
라고 말하던 이리나는, 눈 앞에 있는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을 본다. 분명 자기에게 길을 물어보려는 것인 줄 알고 충고하려다가, 몸이 굳는다.
"저기, 먼 나라에서 오셔서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감이 안 잡히시는 것 같지만... 여기는 외지인한테... 아."
이리나는 다시, 코우를 위에서 아래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멍한 붉은 눈을 보고,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름을 말한다.
가까이 와서 지켜보니 조각이었다. 그래..전에도 조각칼을 구하려고 했었지.. "허..그 조각칼은 저번에 그 잡화점에서 산 물건인가?"
그저 무엇에 열중하나 궁금했을 뿐이지만. 와서 앉으라는 지극히 친근한 요청해 당황한 나머지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얼떨결에 미야비의 요청에 따라 곁에 앉긴 했으나 곁에서 보자니 여러모로 기이..기괴한 생김새였다. 그러나 이단을 숭배하는 자신이 그런 소리를 하기에는 좀 부적절하겠지.
"으음..얼굴은 자네처럼 늑대가 되는 것인가? 자네 마을에서 모시는 신인가보구만." 늑대수인 마을에서 모시는데 많고 많은 동물의 부위를 가진 존재가 늑대 부위가 없다면 그건 그거대로..의미심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꽤나 주기적으로 조각을 하는 것 같은데, 조각을 끝내면 어떻게 하는가?" 설마 다 보관을..? 아니면 모종의 의식을 하고 불태워버리나? 혹은 조각하는 행위에 의미가 있을 뿐이라 완성 후에는 신경쓰지 않으려나? 문득 떠오른 궁금증에 이것 저것 가능성을 따져본다.
그런 이리나를 놀리듯 허리를 살짝 구부정하게 굽히고는 손을 흔들며 "코우 언니예요~" 하고 살갑게 눈웃음지으며 말한다 그리고 조금 오버스럽지만, 보란듯이 벙찐 소녀의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인다 하늘거리는 옷자락과 그 소매가, 바람을 일면서 궤적을 따라 살랑이고 발에 신은 나막신인 게다는 바닥과 부딪혀 가닥거리며 소리냈다
"너무 귀여워져서 못 알아봤어?"
그걸 자기 입으로 말하는 건가? 하지만, 그건 더 없는 반증일테지 이런 말을 얼굴색하나 바꾸지 하나 않고 뻔뻔스레 말하는 걸 보면 이 여자는 이리나가 알고있는 코우가 맞는 것이다
"나, 손이 시려워."
여자는 재촉하듯 말하면서 다시 자신이 내민 손에 눈치를 주었다 장갑을 낀 소녀와는 달리 맨 손이었다
이리나는 눈웃음짓는 코우를 홀린 듯 바라본다. 아니, 코우 씨가 이렇게 생겼었나? 코우 씨가 이렇게 말끔히 차려입을 수 있었다고. 그나저나 코우 씨, 기모노 입는 문화권 출신이였어? 이리나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의외들이 비눗방울처럼 떠올랐다. 이리나는 코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런 생각이 실례란 걸 알고는 고개를 저어 자신의 마음을 정리했다. 저런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하는 걸 보니 코우가 맞는 것 같았다.
역시 그런가. 그래도 저렇게 열심히 다루는 모습을 보게 되다니. 그때 자신이 값은 충분히 받은 셈이다.
"호랑이? 꿈이라 재밌는 영역을 다루시는구만. 꿈과 쌍둥이 신..꿈을 먹는다라." 결국 늑대가 믿는 신에게 늑대의 면모는 없다. 오히려 그렇기에 신으로 느끼기 쉬운 것일까? 그래도 꿈을 먹는다는 표현은 특이하다.
꿈을 만드는 신에 의해 꿈을 꾼다면, 꿈을 먹는 신에 의해 꿈에서 깨는 셈인가. 매번 잠을 잘 때마다 잡아먹히는 셈이 되는구만.
이런 생각은 이어지는 미야비의 말에 끊어졌다.
"아직..완성한게 없다고? 허허..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었군. 아니 사실 그럴만도 하지." 그도 그럴 것이 그저 동물 하나를 조각하는 것도 아니고 부위 별로 다른 동물의 모습을 표현해야 하는 작업이다. 쉽고 빠르게 끝날리 만무하지.
"허? 아니 그렇게 오랜 정성과 시간을 들여서 만든 물건을 나에게 줘도 정말 괜찮겠나?" 이어진 제안도 뜻밖의 연속이었다. 역시 과정이 중요한건가?
"..나야 준다면야 아주 감사히 받겠네. 고맙게 생각하고 말고." 가만 생각을 해보니, 이런 물건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유용하게 쓰일지 모른다. 그야 생긴 것만 보면 누가 이거 마족 아니냐며 이단으로 의심하기 딱 좋으니 말이다. 역으로 그렇게 보일 뿐 이단이 아니라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
"그런데, 쌍둥이 중 어느 쪽이 형인가? 허허 사실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하나 준다면 말이야. 꿈을 만드는 쪽과 먹는 쪽 중 어느 쪽 신상을 주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말이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도 아니고 두 신 중 어느 쪽을 더 좋아하냐고 묻는 것은 실례일지 모르나. 하나만 준다면야 그야 어느 쪽을 주려는 것인지 궁금할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