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 에델바이스에 속해 전쟁을 치르고, 프리덤의 멤버인 엘레인을 죽여버린 본인도 마찬가지 아니느냐며 어쩔 수가 없노라 비호할 수 있겠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존재했다. 이스마엘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느릿하게 감는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가? 지금부터 너희의 충성심을 보겠다. 단,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 너희는 저들과 달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나서라. 세븐스를 옹호하던 마을에서 주동자를 연행하던 날, 남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 벌어진 학살. 이스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맘대로 생각해, 내가 누구 딸인데. 혹시 모르지? 사랑을 담아서 자유롭게 살라고 할지. 왜, 그런 말 있잖아. 원수를 사랑하라."
으, 하는 듯한 눈길이더니만 아예 고개를 하늘로 올려 시선을 피해버리기로 했다. 진짜 짜증 나는 사람이야.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속이 남아나질 않겠다. 그렇다고 해서 적으로 두겠노라 선언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똑같이 해버리면 되니까. 방금 생각한 것이 제법 그 나이 아이다움을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이 가겠노라 얘기할 적, 이스마엘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턱짓했다. 갈 거면 빨리 가라는 뜻이었겠지. 그렇게 한참을 허공만 쳐다보다, 시선을 내려 총신에 새겨진 흔적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갈 길 잃은 목소리가 조그맣게 흘렀다.
사격술만 훈련해서는 실전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증명해낼 수 없다. 인류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는 스태미너. 그렇기에 전투를 가능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둬야 하는 법. 특히나 내 경우에는 제대로 단련해두지 않으면 심폐기능이 진짜 끝장이 날 수 있기에, 단련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일단 산책이라도 하듯 가볍게 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있는데... 뭔가 눈치가 심상치 않다.
"...뭘 하는거지...?"
이후에 이어지는 폭발적인 발언들에 휘청, 하고 트레드밀에서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와중 겨우 중심을 잡았다. 어디... 어디부터 태클을 걸어줘야 하는걸까. 내게는 저걸 어떻게 다 교정할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자신도 없었다. 그저 실의에 빠짐을 표하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덮을 뿐.
"그... 무슨 훈련을 하려고 그러고 있었던건지 물어봐도 될까...?"
하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이 당나귀 같은 소녀, 아니 소녀는 아닌가. 어찌되었든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언제나 말해도 모자라지 않은 말. 뮬은 바보. 바보는 뮬. 뮬은 답을 알고 있다. 레이먼드는 실의에 빠진 채 뮬에게 답을 구했고, 뮬은 답을 알고 있는 이상 답해줄 수 밖에 없다. 답을 안 하면 저 땀에 젖은 큰 어르신께서 노하실 것 같았으니까. 어른에게는 대답을 해줘야 예의에 맞다면서.
뮬은 만 20세다운 괘씸한 생각을 하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이거 말이지예~ 구르기 훈련입니더. 어디서 들었는데, 구르기 이게 참 사기기술이라카지 않겠습미꺼. 용암 위에 있어도 구르기만 야물딱지게 하면 절!대로 타죽지 않는다 했어예. 그래서 구르고 있으예."
뮬의 안경은 멍청해보이는 얼굴을 커버하는 중요한 소품인데, 그 안경은 구르기 중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 매트 옆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 얼굴이 얼마나 멍청해보였을지는 간단히 요약하겠다.
수도 없이 많은 위기의 상황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머리 위로 총탄이 날아들고, 땅에는 불이 붙고, 포탄이 터지며 세상을 뒤흔드는 전장. 그리고 그 중에서 홀로, 유유하게 굴러서 총알을 피하고 폭탄을 피하는 그런... 그런 말도 안되는... 화학탄이 터지고 총칼이 날아오더라도! 구르기만 하면! 구르기만 하면 피할 수가 있다고!
"그럴... 리가.. 없...ㅈ..."
아, 요즘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옛날의 나 자신을 이제 완전히 잊고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 굴러? 구른다고? 아주 그냥 빡세게 굴러버려야 이 총체적 난ㄱ... 아니야. 아니다. 참아, 내 안의 유격조교. 터져나올 것 같은 스팀을 꾹꾹 누르며 겨우겨우 괴롭게 웃음을 흉내내며 물었다.
잘 못 들었습니다? 를 대충 말하는 발음. 덧니 때문에 조금 발음이 새버린 것 뿐이지만, 뮬은 제로투를 춰서 공격을 회피하는 무림고수마냥 레이먼드의 속을 긁어놓고 있었다. 뚫린 혈마다 그 해맑은 실눈으로 바보강기를 날리는데 혈이 턱턱 막히는 것이 고혈압으로의 고속도로로다.
레이먼드 마음 속에서 터지는 천불은 아랑곳도 안하고, 도리어 어이~오마에~ 너 그것도 모르느냐~ 하는 우쭐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이고야~ 아저씨 인터넷도 모르능교? 당연히 인터넷에서 봤제예. 인터넷엔 벼라별 게 다 있지 않겠슴미꺼. 구르기도 있었고예, 그리고 거시기, 운기브런치란 것도 있었어예. 부상을 입어도 그거만 하면 싹~ 낫는다 캅니더. 구르기를 마스타하고 나면은 같이 운기브런치 해봐예."
뮬이 검을 쓰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검강중강약까지 해보겠다 했을 테니까...
자캐가_가진_의외의_특징 : 음.. 몸에 흉터가 많다?는 시트에 써있듯 의외가 아니고.. 왼쪽 눈에 눈물점이 있다? 송곳니가 살짝 뾰족한 편이다? 홍채가 붉은 색조이다?
자캐가_듣고싶어_했던_말은 : 아프다앗
"너는 남들과 다른 게 아니란다. 그저, 주변에 가르쳐줄 어른이 없었을 뿐이야. 네 선택이 잘못된 게 아니다, 이스마엘."
아프다아앗
자캐에게_현재에_만족하냐고_물었다 : "만족합니다. 오늘도 살아있고, 이상향을 위해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으니까요." "가끔 불만스러울 때도 있지만, 과거나 앞으로 있을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가 지극히 만족스럽습니다." "음.. 그리고.." "지금 당장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럴만도 하지. 심야에 아이스크림 한통을 먹는데." "네 입에 묻은 아이스크림이나 닦고 말하지?"
1. 「남을 돕다가 내릴 역을 지나칠 것 같을 때의 행동은?」 : "어차피 지나쳐도 됩니다. 날아서 가면 되니까요!" "의무는 다 행하고 가야지요!"
2.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걸 안다면?」 : 진단 미...미친 거 아님...? "그 시점이 과거입니까, 현재입니까?" "과거라면.. 그러려니 받아들입니다. 놓아주는 편이지요. 그때였어도 임무에 부차적인 감정이 생길 것이라며 저 또한 마음을 쉽게 정리했을 겁니다. 본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그런 법이니까요."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꺾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니 인정하겠습니다. 더군다나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헤어짐 또한 염두에 두고 있으니.. 오히려, 그 사람과 뜻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괜찮다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할 텐데.." "……그런데 왜 거슬리지?"
3.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의미없음을 안다면?」 : "압니다. 지금도 충분히 알고 있지요." "그렇지만 제가 하지 않으면.. 아니, 아닙니다." "해야만 하니까요. 이게 더 옳은 말 같군요."
>>717 송곳니가 날카롭다라. 덧니 속성이 살짝 떠오르는데..(갸웃) 으아닛. 듣고 싶은 말이 저런 것이었나요?! 뭔가 위로를 듣고 싶은거로군요. 이스마엘은... ㅋㅋㅋㅋㅋㅋ 아니. 심야에 아이스크림이라니! 하지만 그거..달콤하고 좋죠. 하지만 배탈나고 건강에 안 좋아요!! 그렇게 먹으면! ...2번..너무하다. 나쁘다..(흐릿)
참아야 한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않는가. 분명히... 분명히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한 고문관들도 정말 장난 아니게 많지 않았는가. 그들을 교화시키는 세월도 있었는데, 이번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 별 뭐하는 녀석들만 모아놨는지 오합지졸 중의 오합지졸도 결국에는 한 명의 어엿한 병사로 길러내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달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 와중에 버텨내지 않았는가. 그래도... 그렇다 해도...
꽉 쥔 주먹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쥔 주먹은 이젠 아예 혈기가 빠져 시허옇게 되었고, 흐르는 땀이 그 끝으로 떨어진다.
이마에 흐르는 땀은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 식은땀. 이것은 앞에 놓여진 최악의 상황에 내가 정말 끝없이 당황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도 어느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무지했구나. 내가 인터넷을 보는 것을 상당히 소홀히 했구나. 그 정도로 넘겨도 되었다. 하지만... 뒤이어 따라오는 영문모를 말에, 나는 그만 참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