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신의 장난 같은, 이 우연한 재회의 순간으로부터 너와 보냈던 시간이 하나하나 되살아나 떠오른다. 풍요롭지는 못했으나 너와 있어 안전하다고 느꼈던 그 시절들. 헤어지고 나서부터는 매 순간이 위태롭고 추운 길을 홀로 걸어야 했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너는 어디에 있는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어디선가 울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어쩌면 웃고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그리워 할수록 다시 돌아가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고,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잊어야 함을, 혼자임에 익숙해져야 함을 알게 되며 너와의 재회는 운명이나 우연에 맡겨야 할 것을 인정해야 했었다.
"나한테 도넛을 빼면 뭐가 남겠어?"
그렇기에 이 재회가 너무나도 행복한 것일까. 웃으며 답하는 신디의 모습은 슬럼가에서 너를 보며 웃어 보이던 그때와 겹쳐진다. 달라진 것은 있는 장소, 상황뿐이다. 신디는 눈을 감았다 떠도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는 너를 본다. 버려진 쥐새끼들의 삶이 그렇지. 응. 다행이구나. 조금은 변한 부분이 있지만, 너 역시 무사하며 그 농담 섞인 답도 여전히 너다운 것이니. 정말 삶이 어쩌면 이리 아이러니하고 얕궂은지. 다가와 팔을 벌리는 너를 보고서 신디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 너를 안으며 몸을 맞댄다. 소망하고 있던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이스마엘은 일반인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왜 나를 구했냐며, 당신의 선택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면서 고통을 느끼겠지.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들의 몫까지 살아가겠다는 결론까진 가지 않아.. 그 사람들의 몫까지 살아가려 한다면,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방향성을 잡을 수는 있어도 갈 수는 없을 테니까. 이상향은 이상향일 뿐이야. 그만큼 곧은 사람으로 자란다 한들, 세상이 절대 원하는 대로 밀어주지 않는다는 걸 이젠 아니까.
대신 더 절박하게 살아가겠지.. 이번엔 100명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면서 예민해지고 강박적으로 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더 많은 목숨을 마주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히키코모리처럼 틀어박혀서 숨어버릴지도.
의미가_모호하게_느껴졌던_자캐_대사_멘션_주시면_해석해드립니다 : 뭐든 줘봐 진짜 해석해드림........ 아니면 뭐 이셔 왜이랬어 하고 질문해도 돼 죽창 들어도 되고
자캐의_믿으면_안_되는_말은 : 이건 직접 말하면 남은 내 설정마저 다 털리는데요 진단님 왜 패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랑 "싫어하지 않습니다." 등등등. 2번 진단이랑 같이 엮어봐도 되고 뭐 근데 매운맛은 본인책임
좀 가볍게 가볼까..? 역시 "손만 잡고 자겠습니다." 인가....(아님) 근데 찐으로 새끼 손가락만 소중하게 걸고 잠들 것 같기도 해서 믿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이게 참🤔
이셔.. 이번 진행 이전에 혹은 초기에 1번이 나왔다면 그 100명분만큼 살겠다고 했을까? 이제는 세상이 어떤지 아니까 그러지 않겠다고 하는게 씁쓸하면서 대견하기도 하구. 그치만 틀어박히는건 안된다아아악 온니랑 놀아조오오(?) 믿으면 안되는 말에 손만 잡고 자겟습니다? 이거이거 (음흉한 오딱쿠 표정)
잠깐 목이 메는 것 같아 입을 다문다. 시체. 습격은 갑작스러운 이별을 낳았다. 서로 갈라지고 얼마 있지 않아 이곳에 오게 되었어도 이따금, 아니, 제법 자주 네 생각을 했다. 잘 도망쳤을까, 혹여 잡혀버린 건 아닐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추위에 떨고 있을까, 더위에 지친 건 아닐까, 혹시라도 기적이 일어나진 않을까……. 네가 죽었을 리가 없노라며 아예 그 상황을 배제했다. 결국 이 삶을 받아들여야 함을, 서로 헤어짐을 염두에 뒀던 사이였던 만큼 잊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면서도 홀로 이런 곳에 와버렸다는 죄책감에 차마 온전히 추억만으로 널 남겨둘 수 없었다.
아버지를 마주해 불안정한 마음을 품고 슬럼에 가게 된 날, 유달리 주변을 살폈던 이유는 혹시라도 네 흔적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희망 또한 속에 품었던 탓이다.
"아, 세상에.. 도너티."
너 또한 여기에 온 것은 꿈에도 모르고. 너는 여기에 있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여기에 있다. 몸을 맞댔을 때 익숙하고 그리웠던 온기와 체구가 느껴진다. 서로 새벽 공기가 차가울 때면 의존했던 그 익숙함이 느껴지고 비로소 현실이라 확신할 수 있게 됐다.
"나도.. 정말 많이 보고 싶었어. 네가 어떻게 돼버린 줄 알고.."
힘껏 안는 팔에 마주 안듯이 힘을 줘본다. 웃음이 나와야 하는데 이대로라면 감정에 북받쳐 울어버릴까 싶어 잠깐 입술을 꾹 다물며 이마 맞대보려다, 결국 소리 내어 작게 웃어버렸다. 그간의 걱정 담은 서글프고도 말간 웃음이다.
만약 이게 환상이고 꿈이라면, 너를 한 번만 안아 볼 수 있으면 그걸로 좋다고. 그렇지만 너를 안고 나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따뜻한 체온으로 너는 나를 힘주어 안았을까. 낯설지 않은 그 느낌에 신디는 자신을 안는 것보다 더욱더 세게 너를 안는다. 그러며 이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이 얼마나 그리웠던 순간인지. 신디의 어깨가 가늘게 떨린다. 텅 빈듯한 부재감을 채워주는 목소리로 다시 네가 나를 부르고. 감미로운 목소리에 위안을 받는다. 너 역시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걸까. 너도 나처럼 오랫동안 그 문장을 마음 속에 품고 있었겠지. 과잉되어가는 감정에 그만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신디는 네 어깨에 얼굴을 묻는다. 가까스로 눈물을 참아내려 하지만, 그만 네 어깨로 눈물이 엷게 배어 들어왔을까. 네 웃음소리가 귀에 스미자, 신디는 고개를 들고서 온 힘을 다해 널 따라 웃는다.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다고 느낀다.
"너는 조금 변했네."
하고서 신디는 네 목 부근에서 끊긴 머리카락 끝을 손으로 만진다. 땋는 즐거움이 있던 머리카락은 어디로 갔을까.
"...다들 조심해. 어지간하면 어떻게 해주고 싶지만 이 사람이 가디언즈의 간부 클래스로 있고 대치하게 된다면... 나도 어떻게 해 줄 자신이 없어." "미안해. 이 사람만큼은 도저히 분석도 뭐도 어떻게 할 수 없어. 하지만 일단 우리들의 임무는 어디까지나 이 시설의 파괴야. 폭탄은 이미 아스텔과 내가 여기에 오기 전에 설치했어. 그러니까 이제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돼.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돌아가기만 하면 우리들의 승리야."
에스티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품 속에서 리모콘을 꺼냈고 버튼을 꾹 눌렀다. 에스티아가 들고 있는 리모콘에서 붉은 빛이 반짝였고 시설 여기저기서 붉은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폭탄이 작동한 모양이었다. 이어 에스티아는 모두를 향해서 이야기했다.
"카운트 다운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어. 물론 바로 빠져나가도 되지만... 적어도 이 사내만큼은 여기서 최대한 피해를 줘야만 해.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조금은 피해를 주고 싶어. 그러니까 모두들... 미안하지만 아슬아슬한 순간까지는 어떻게든 버티고(=4턴) 빠져나가자. 물론 정 안되겠다 싶으면 바로 퇴각해도 괜찮아."
이내 에스티아의 말이 끝나자 플래나는 피식 웃어보였다. 이내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시설을 통째로 울렸다. 조용히 웃음소리를 멈춘 플래나는 손에 쥐고 있던 보검을 높게 들어올렸다.
"저에게 피해라.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당신이 잘 알지 않습니까. 에스티아. 그리고... 누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고 했습니까? 오히려 당신들이 폭발에 휘말려서 죽지만 않으면 다행이겠지요."
이내 플래나가 들고 있는 보검에서 검은빛이 번쩍였고 이내 플래나는 보검을 해방했다. 검은색 빛은 플래나를 집어삼키는 듯 했으나 이내 그 빛은 모두 플래나의 몸 속으로 흡수되듯 사라졌다. 머지않아 보이는 것은 전신을 검은색 장갑으로 두르고 있는 플래나의 모습이었다. 마치 검은 갑옷을 입고 있는 전사마냥. 아니. 어떻게 보면 사이버그 전사인마냥 그의 몸은 한 군데도 빠짐없이 모두 검은색 장갑으로 둘러쌓여있었다. 이내 눈 부분마저도 마스크가 내려가듯 가려졌고 붉은색 안광이 머리에 쓰고 있는 마스크에서 번쩍였다. 이어 플래나는 살며시 오른팔을 앞으로 뻗었고 손바닥을 쭉 펼쳤다.
"자. 덤벼보십시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누님이 직접 선별하고 기른 전사들의 힘을 보여주십시오."
/플래나 전의 시작이에요! 체력은 어제 그 체력에서 공유되니까 참고해주세요! 버스트도 스페셜 스킬도 모두 원상태로 회복이 되었으니 참고해주시고요! 이번 전투는 4턴만 어떻게든 버티면 되지만.. 한 명이라도 다운하게 될 시 전개가 바뀔 수 있어요! 그 점을 조심하시고 어떻게 잘 협력을 해주세요!! 8시 20분까지!
엘리나의 심장을 뚫었, 으면 좋았겠지만. 손을 통해 전해진 건 심장을 단단히 막은 무언가였다. 순순히 이렇게 둘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으니 뭐. 아쉬운대로 독액의 일부를 엘리나의 체내에 남겨두었으나 아마 저것도 별 소용은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저항 하지 않고 엘리나의 육신을 블랙 스캐빈저가 가져가게 두었다. 여기서 쉬게 해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뭐. 됐어. 기회는 또 있을 듯 하니."
중얼거리며 일어난 그녀는 이제 공중에서 내려온 플래나를 보았다. 한참 쳐웃다가 보검을 해방한 그 모습을 보는 눈은 귀찮은 것을 보는 눈 그 자체다. 그러니까 이번엔 디펜스전이다 이거지. 아스텔과 에스티아의 전언에 고개를 끄덕이고 일단은 독액으로 검을 만들어 들었다.
"원래 공성전에서는 공격하는 쪽이 월등히 불리한 법이야. 짝눈 X끼야."
조롱하는 말을 던져주곤 검을 휘휘 돌려 어깨에 걸친다. 덤벼보라는데 어떡할까. 엘리나나 카시노프와는 달리 어떤 세븐스를 가졌는지 예상도 되지 않는다. 이럴 때 달려드는 건 좋지 않은데. 찰나의 고민 끝에 그녀는 바닥을 통해 독액을 쏘아보냈다. 뱀처럼 구불구불 나아가던 독액은 플래나의 발끝에라도 닿으면 바로 휘감아 올라가려 들 것이다.
피곤한 목소리로 말하고서 제 보검을 쥔 손에 힘을 더 준다. 휴식도 없이 바로 2차 전이라니. 방금도 위험했는데, 이번의 상대는 더 위험할까. 무장을 장착한 플래나를 보고선 한숨을 내쉰다. 제 생각으로는 바로 도망치는 게 좋다 느끼지만. 그러고 싶다니 어쩌겠어. 발이라도 묶어두다, 폭발에 휘말리게 만들어야지. 생각을 끝내며 플래나의 뒤쪽으로 포탈을 열고서 그의 허리를 제 보검으로 내리 찍으려 했다.
조심하라, 무언가 해줄 자신이 없다, 살아남아서 돌아가기만 하자. 이스마엘은 그 소리에도 계속 집중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플래나를 쳐다보듯 하면서도, 얇게 깔아둔 염력의 장으로 사라져가는 카시노프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헌터, 기억해라. 목표를 한번 찾았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망설여서 싸움이 길어질수록 무고한 사람이 다친단다. 목을 노렸으면 물어야만 하는 세상에서, 그 순리를 네게 가르치는 날 용서하지 않아도 좋다. 노이즈 속의 눈동자가 점차 수축하더니 숨을 고르듯 깊게 심호흡하는 모습이 보인다.
"명령이라면 버티겠습니다."
이스마엘은 웃음에서도 침착했다.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집중하더니 보검을 해방하는 모습에서도 긴장하지 않은 듯 지팡이 쥔 손에서 힘 한번 주지 않는다. 혼란스러움이 일순 멈춘다. 손바닥을 펼치는 모습에 머리카락이 선다. 범상치 않다. 위험하다는 걸 온몸이 비명을 지르며 알린다.
"난 살아."
그리고 그 사실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이스마엘의 주변이 쩍, 소리가 나더니 기이하게 갈라진다. 파편이 떠오르더니 쐐기처럼 뭉쳐 플래나를 향한다.
레레시아의 독액은 어려움 없이 플래나의 발끝에 닿아 휘감아 올라왔다. 분명히 데미지를 주긴 했는지 몸이 움찔하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이내 독액은 투명해지더니 바닥으로 떨어져서 천천히 흐르는 듯 하다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선우의 총알은 플래나의 왼쪽 눈을 노렸고 마스크에 충돌했으나 이내 물렁물렁해지더니 바닥에 툭 떨어졌다. 신디의 보검 공격은 플래나의 허리에 제대로 명중하긴 했지만 이내 딱딱한 바위라도 내리친 것마냥 보검을 확실하게 팅겨냈다. 그리고 정면으로 날아오는 이스마엘의 파편은 플래나의 손에 닿자마자 이내 가루가 되어 사르륵 바닥에 떨어졌다.
"그건 지금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압도적인 힘의 차에서는 말이지요. 유리? 불리? 그런 것은 대등한 사이에서나 성립하는 말이이랍니다." "저에게 있어서 누님은 짜증나는 존재가 아니지요. 오히려 당신들이 짜증이 난다면 나고 아스텔과 에스티아가 정말로 거슬리긴 하군요."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도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보고 싶은 이는 여기에는 없지 않습니까."
자신에게 말을 한 레레시아와 선우, 그리고 이스마엘의 말에 대답을 하는 와중 플래나의 몸에서 검은빛이 돌았고 약간의 기스나 흠집이 난 장갑은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에스티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정면으로 공격하지 마. 플래나의 세븐스는 '마테리얼 체인저'. 물질의 성분이나 밀도 강도 등등 모든 것을 바꿔버릴 수 있어. 적어도 정면으로 확실하게 날아오는 공격은 전혀 통하지 않을거야."
"어라.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에스티아. 그렇다면... 당신들에게 승산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요."
이내 플래나가 밟고 있는 땅이 살짝 아래로 움푹 들어갔다. 그리고 이어 마치 스프링 위에서 점프라도 하듯 플래나는 높게 뛰어올랐다. 움푹 들어간 땅은 다시 원 상태가 되었고 플래나는 그대로 오른발을 아래로 내려 땅을 내려찍었다. 바닥이 크게 흔들렸고 땅을 따라 충격웨이브가 흐르기 시작했다.
"자. 이어서..."
이내 플래나의 등 뒤에서 검은색 빛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다름 아닌 '버스트'의 징조였다.
/쇼크 웨이브. 데미지 1000. 명중하게 될 시 다이스를 1~2로 굴린다. 1이 나오게 될 시 아무런 일도 없이 넘어갈 수 있으나 2가 나오게 될 시 지진에 흽쓸려서 1턴간 다운. 다음 턴 반격과 회피 불가.
다시금 중얼거리는 대답. 반복되는 단어, 생존. 이스마엘의 노이즈 속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제법 눈이 돌았음은 알 수 있을 테다. "영원불멸한 것은 없어.." 알 수 없는 한마디.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여기에 없다고 해도 살아남아야만 한다. 명령이니까. 명령은 필수불가결이다. 이스마엘은 지금 명령을 따르고 있었다. 살아야만 한다. 살아서.. 살아서─
……정면으로 확실하게 날아오는 공격이 아니라면.
땅을 내려찍어 바닥이 크게 흔들릴 적 이스마엘은 공중에 떠올랐다. 카시노프의 관절은 꺾이지 않았고, 비슷하게 엘리나도 공격을 할 때 죽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언가가 비호하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요, 이스마엘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눌러야 한다 생각했는지 떠오른 상태에서 눈짓했다.
상대의 무장이 너무나도 단단하니 제 보검의 이가 나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들까. 흠집정도 밖에 내지 못했는데 그마저도 금방 원상태로 돌아가버리니, 이어지는 에스티아의 말을 듣고서 어이 없다는듯 한숨을 내쉰다. 이래서야 원.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안 오고. 생각하다, 채 상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충격 웨이브에 그대로 휩쓸려 바닥을 구른다.
지진에 휘말리면서도 레레시아는 독액을 쏟아부었고 그것은 분명히 플래나에게 명중했다. 무장의 일부가 부식되는 듯 했고 플래나의 입에서 작은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이내 독액은 또 다시 투명한 액체가 되어버리더니 증발하듯 사라졌다. 한편 이스마엘의 염력이 플래나를 억누르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선우는 파편과 불길이 전해지도록 조절해서 수류탄을 던졌다. 이내 쾅!! 하는 소리가 울려왔고 플래나의 장갑이 아주 살짝 금이 갔고 그을리긴 했지만 또 다시 검은 빛이 돌더니 그 장갑은 원상복귀 되었다. 데미지는 들어가지만 장갑은 지속적으로 회복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저것조차도 플래나의 세븐스 능력인 것일까.
"조금 아프긴 하지만 그 정도로군요. 그래도 가디언즈를 꽤 고생시킬 정도는 되는군요. 축하합니다." "왜 살아야하죠? 지금의 당신은 아무리 봐도 살고 싶어서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은데." "그런가요? 그렇다면 직접 느껴보도록 하십시오. 물론 피할 수도 있을테니, 피한다면 그것도 상관없겠지요."
이내 플래나는 단번에 빠져나가더니 기합을 넣었다. 등 뒤에서 검은색 빛, 정확히는 버스트의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뒤이어 플래나는 신디와 선우 쪽으로 두 손을 쭈욱 뻗었다. 이내 그의 양 손에서 뭔가 강한 에너지 기운이 멤돌더니 보이지 않는 '풍탄'이 두 사람에게 날아갔다. 그것은 아스텔이 사용하는 능력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보이지 않기에 오로지 감으로만 대처해야만 하는 능력. 그것은 명백하게 두 사람의 명치를 향해서 발사되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텨줘!! 다들!"
에스티아는 어떻게든 버틸 것을 요구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것일까. 시간을 계속 체크하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시간을 끄는 것은 일단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성공적인 모양이었다.
/풍탄 발사. 타깃-선우&신디. 데미지 1200. 그러나 버스트 공격형 버프로 인해 X2배. 가드 브레이커 장착. 데미지는 2400.
9시 45분까지!
앞으로 2턴 후. (플래나의 공격이 2번 더 나오는 시점) 전투 종료.
누군가가 움직일 수 없는 신디를 구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아스텔이 기동형이니 버스트를 써서 신디를 데리고 회피할 수도 있지만..일단 그건 공평성을 위해서 오더가 있어야 가능하기에!
그녀의 공격과 동료의 공격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런 의문이 들었다. 왜 피하거나 맞기 전에 상쇄하지 않을까? 일부 물리적인 공격은 그러는 것 같지만 독액이나 염력은 맞은 후에야 반응한다. 일부러? 기만인가? 길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지면의 충격을 버티며 독액을 생성해내다가 타겟이 된 동료 둘을 보고 쳇, 혀를 찼다. 그래서 급히 아스텔을 부르려고 했으나 그럴 필요까진 없을 듯 했다. 그렇다면-
"아스텔! 플래나 주위로 칼바람을 계속 날려! 사방으로!"
어차피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라면 애꿎은 힘 쓸 필요 없다. 아스텔에게 플래나의 시야 교란을 위한 조력을 맡기고 다시 상당한 양의 독액을 분출한다. 그대로 기회를 엿보다가 다시 단번에 몰아서 플래나의 위로 쏟아붓는다. 끈적한 독액이 터뜨린 듯 왈칵 흘러내린다.
이스마엘은 드디어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노이즈 너머로도 시선이 느껴질 정도로 정확하게 플래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질문하는 것에 답하려는 듯하더니만 한마디만 뱉었다.
"레인이라는 여자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무슨 일이 있었는진 묻지 않겠습니다."
단지 그뿐이었다. 이내 다시금 되뇌어 본다. 살아야만 하니까. 이스마엘은 버스트의 빛을 뒤로 강한 에너지를 느낀다. 도너티. 소중한 너, 다행스럽게도 피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당신에게 향했다는 사실에 잠시 심장이 철렁했다. 너를 얼마만에 만났는데. 아니, 아니야. 너도 네 생각이 있을 텐데 내가 걱정을 끼치게 만들면 안돼. 이스마엘이 인형을 움직이듯 손을 뻗더니 꺾는다.
"버스트."
주변으로 펼쳐진 에메랄드빛. 직접 꺾을 수 없다면 주변을 비틀면 되겠지. 플래나를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닌, 플래나 주변을 보이지 않는 힘으로 꺾어들려 시도했다. 팔과 다리가 있는 부분을 서로 역방향으로 짓누르려 시도한 것이다. 그리고. 팔은 특별히 비틀어보려 시도했다.
1위라는 이름에 걸맞는 강함은 지니고 있을 테지만. 그게 무적임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 역시 살아있는 사람이고, 가해지는 공격에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기에 너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세븐스로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는 조금 어려울지라도. 보검 무장에 피래를 누적시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터다. 애시당초 플래나와 마주쳐 패퇴시키는 것을 주문한 것이 아니다. 임무는 시설의 파괴, 그리고 복귀. 살아 돌아가기만 해도 승리다. 그 와중 플래나의 공격이 선우와 신디를 노리는 것임을 느꼈으나. 발빠르게 대처한 선우 덕분에 두 사람은 모두 공격을 피할 수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네가 할 일은... 버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에스티아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너는 혹시 에스티아에게 향할지도 모르는 공격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며 소총을 꺼내들었다. 가늠자 끝에 놓인 플레나의 얼굴, 무장으로 감싸인 얼굴을 노려 방아쇠를 당기니 파열음과 함께 총탄이 날아든다.
"지금... 전력을 다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니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조금이나마 몰아세울 가능성이 있는 거겠죠."
닿기도 전에 공격을 무력화하는 건 아닌 듯했으므로, 적어도 무장에 공격이 닿아야만 한다고 판단한 너는 계속해서 그가 무장을 수복하고, 공격을 무효화하는 데 집중하게끔 유도하고자 했다. 네가 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뿐.
다행히 선우는 버스트를 써서 신디와 자신을 회피시킬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레레시아와 쥬데카의 요청에 아스텔은 플래나의 주위로 칼바람을 연쇄적으로 날렸다. 정확하게는 플래나에게 명중시키는 일 없이 일부러 움직임을 봉쇄하듯이. 그리고 에스티아는 드론을 띄워서 칼날을 회전시키면서 마찬가지로 플래나를 견제하면서 움직임을 봉하려고 했다. 이내 선우는 섬광탄을 꺼내서 집어던졌고 그 섬광탄은 크게 번쩍였다. 하지만 눈을 마스크로 가리고 있는 플래나였기에 큰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내 이스마엘은 버스트를 써서 플래나의 팔과 다리가 있는 부분을 비틀려고 했다. 공간이 비틀리자 당연히 플래나의 움직임이 봉쇄되었고 플래나는 그 상태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팔이 살짝 꺾이는 듯 했지만 잡히는 것은 장갑 부분이었다. 허나 그렇게 잡아낼 수 있었기에 쥬데카가 쏜 총탄은 플래나의 얼굴에 명중했다. 허나 그 총알은 이내 물렁물렁해지더니 땅으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단번에 플래나는 이스마엘의 염력에서 빠져나왔고 다시 한 번 자신의 무장을 회복시켰다.
"무슨 일이 있었냐라. 후훗. 제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비능력자 보호 법령'은 저의 누님의 말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것 정도가 되겠군요. 그래요. 여러분들이 따르고 있는 로벨리아 레베우스에 의해서 말이지요. 하지만 원망하진 말아주십시오. 누님은 누님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말한 거니까. 그리고 저도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요."
태연하게 대답을 하면서 플래나는 잠시 몸을 푸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쥬데카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실례했군요. 하지만 이 상태가 되면 조금 몸을 풀지 않으면... 저에게도 어느 정도 반동이 오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제 준비운동은 마치고 슬슬 시작해보도록 하죠."
이내 플래나의 등 뒤에서 지지대가 나타났고 그 지지대는 땅에 그대로 틀어박혔다. 그리고 플래나는 오른발을 들어올렸다가 땅을 쿵 내려찍었다. 이어 모두가 밟고 있는 땅이 마치 늪처럼 물렁물렁하게 바뀌었다. 빨리 빠져나오지 않으면 그대로 붙잡힐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뒤이어서 플래나는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손바닥에서는 붉은색 에너지 덩어리가 모이고 있었다.
"뭐, 그대로는 아니긴 하지만 블랙 스케빈저에 장착되어있는 핵 미사일에 들어있는 에너지입니다. 물론 가공이 되지 않았기에 그것보다는 약하긴 하지만... 적어도 여러분들이 맞아서 무사한 것은 아니지요."
이내 붉은색 에너지 덩어리는 더더욱 커졌고 전방을 향해 빔 형태가 되어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흽쓸려버리려고 했다. 핵융합으로 이뤄진 에너지 덩어리는 이내 강한 폭발을 일으켰고 건물을 통째로 흔들기 시작했다.
/마테리얼 체인저 발동. - 늪의 성질을 가진 땅에 붙잡히게 될 시 빔에 100% 명중. 가드 브레이커. 단 방어형은 방어 가능. 땅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할 시, 절대 방어 사용 가능. 데미지 1500. 땅에서 풀려나는 것은 회피다이스와 동일. 땅에서 풀려난 이후 빔을 피하기 위한 회피다이스도 필요. 즉 다이스를 2번 돌리셔서 2번 다 회피가 뜨면 무사할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에요. 기동형의 경우는 자신 한정해서 땅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하면 버스트를 써서 완전 회피가 가능해요.
늪에서는 빠져나왔지만 빔에는 맞고...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빔에 맞고... 기동형 2명 말곤 빔을 완벽하게 피하지 못했네요...? 엄청난 강함...! 아 그리고 기동형이라면 본인이 회피 성공 시 버스트로 한명 더 데리고 도망칠 수 있던가요? 혹시 아스텔에게 그걸 부탁해도 될지...
플래나가 밝힌, 모든 사태의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비능력자 보호법령이 로벨리아의 말로부터 비롯되었다는 말에 그녀는 시시한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솔깃한 정보긴 했지만 진상은 로벨리아에게도 얘기를 들어봐야 하니까. 재차 공격을 하기 위해 자세를 잡는데 이번엔 바닥이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윽. 뭐야 이거!"
몸이 깊숙히 빠지기 전에 빠져나오는 건 어찌어찌 성공했는데. 그 뒤에 오는 공격은 피할 길이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그녀 외에도 곤란한 이들도 보이고.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급하게 외쳤다.
"아스텔! 에스티아를 데리고 빠져!"
아스텔이라면 버스트로 피할 수 있겠지. 에스티아를 그에게 맡겨놓고 그녀는 바닥에 몸을 낮췄다. 무장이 있으니 사지는 성할 것이다. 출혈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 뒤에 한 방 먹여주면 될 일이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견제 자체는 유효한 듯 동시에 모든 공격을 무효화하지는 못해 지속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플래나의 모습을 보던 너는. 그의 안면에 닿았던 총탄이 물렁대며 그대로 떨어져 버리자 쯧, 하고 혀를 찼다. 이어 염력을 통한 구속에서 빠져나와 로벨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잠시. 네 말을 들었는지 이제 슬슬 시작해보겠다고 말하는 그를 보는 네 눈의 초점이 살짝 흔들렸다. 역시 진심이 아니었어.
"이건 위험해...!"
인간을 향해 쓸 만한 위력도, 규모도 아닌 공격. 핵에너지임을 분명히 한 붉은 빛의 에너지 덩어리가 점점 커지는가 싶더니 그대로 발사된다. 피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흐물거리며 늪처럼 변한 땅에서 힘겹지만 그래도 간신히 벗어난 너는 빠르게 시선을 돌렸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를 어쩐다...! 쇄도하는 붉은 광선을 뒤로 한 채 달려든 곳은...
플래나의 그런 말에도 신디는 아무런 동요도 하지 않는다. 그저 침묵하며 그를 노려다 볼 뿐이다. 어디서 헛소리를. 저 뱀이 또 혀를 놀리는구나. 어디까지 우리를 이간질하려는 것인지. 플래나를 죽일 듯 바라보는 신디의 눈초리가 매섭다. 그러다 땅이 늪이 되어 제 발이 푹 빠지자, 그대로 묶이기 전에 빠르게 빠져나온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서 널 구하려다, 저보다 먼저 쥬데카가 나섰기에 만다.
"버스트!"
늪에서 빠져나오긴 했으나 이어진 공격을 피하지 못하는 레레시아를 보고 제 버스트를 써 구하려 한다.
비극의 시작이 로벨리아로 비롯되었다. 어떻게 보면 비극의 시발점이 이젠 돌아선 일이 아닌가. 대장은-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그 당시에는 선택했을 테다. 가장 나은 선택을 하였으리라 갈무리 하려 했다. 자신 또한 가장 나은 선택지로 아버지를 '보존'하기 위해 선택하려 들었지 않은가.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는데. 어째서 나는 이렇게 흔들리는 건지. 고통스러운 건지, 두려운 건지……. 이스마엘은 눈을 감았다.
"그 당시엔 가장 나은 선택이었겠지. 이젠.. 아니고. 당신은 중요하다 생각하지만, 정작 당신의 누이에겐 그렇게 중요한 선택이 아니었던 걸 깨달았겠지요."
다잡고자 기어이 속 긁는 소리 한번 해준다. 땅에서 벗어나려 들었으나 발을 내딛기도 전에 늪같이 빠져버렸다. 업보인가 싶었으나 이 정도로 심한 말은 아니었다 생각한다. 핵에너지라, 이런 걸 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피하고자 했으나, 앞을 막아서는 존재에 눈을 홉뜬다.
"……당신."
막아세우는 당신을 보며 이스마엘이 서슬 퍼렇게 무언가를 중얼거렸으나 씹어내는 것에 가까워 들리진 않는다, 전개한 방패 앞에 보이지 않는 벽을 하나 더 세워내보려 한다. 가능할까.
아스텔은 에스티아를 데리고, 신디는 레레시아를 데리고 빔을 회피할 수 있었다. 이어 쥬데카는 이스마엘의 앞에 서서 절대방어를 하는데 성공했다. 선우는 스스로 어떻게든 회피했고 수류탄을 써서 플래나에게 집어던졌다. 이내 폭발이 일어났고 플래나의 장갑이 살짝 그을리긴 했지만 이내 장갑은 보검의 에너지로 인해 다시 회복되었다.
"다행이로군요. 느리다고 하니까 저도 마음껏 더 쏠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위험해! 방심하지 마!!"
이어 아스텔은 모두에게 방심하지 마라고 이야기를 했다. 이내 쥬데카는 뒤에서 불길한 에너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뒤를 돌아봤다면 벽에 명중해서 사라졌어야 할 빔이 다시 에너지 형태로 모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질의 성질을 바꾼다. 즉 그 힘을 이용해서 사라지지 않고 또 다시 자동적으로 생성되게 바뀐 것일까. 그와는 별개로 플래나는 또 다시 오른손으로 앞으로 뻗었다. 방금 전에 쏜 빔과 똑같은 에너지 덩어리가 모이고 있었다.
"아스텔과 에스티아. 원래라면 이 세상에 살아있을 수 없었을 존재. 그 두 사람의 만남이 누님의 마음을 크게 흔들고 말았지요. 그렇기에 저는 저 두 사람이 싫습니다. 난폭한 세븐스를 막기 위해서 그런 세븐스를 억압하면 다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말한 누님을 테러리스트로 만들고 만 저 두 사람이."
"역시 그때 누님이 그곳으로 가는 것을 막았어야만 했는데."
싱긋 웃으면서 플래나는 또 다시 빔을 쏘았다. 이어 뒤에서 모이고 있던 에너지 덩어리도 다시 빔의 형태가 되어 곡선 형태로 날아올라 위에서 아래로 폭격하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들.. 이것만 어떻게든 버텨줘! 이제 시간이 다 되었어!!"
이내 저 편 어딘가에서 폭발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폭발이 제대로 시작이 된 모양이었다.
/앞과 위에서 날아오는 핵융합 에너지 빔 X2. 각각 데미지 1500. 가드 브레이커. 방어형은 방어 가능. 단 절대 회피나 절대 방어는 오직 한 발에만 적용.
이스마엘은 흔들리고자 했던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 공격에 집중해야 한다. 살려줬잖아. 그러면 목숨값을 해야지.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굳이 떼지 않기로 했다. 다시금 공격에 대비하려 했고, 이스마엘은 괴수가 빔을 삼키는 모습에 수월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공중에 보이지 않는 벽을 세우듯 하며 겨우내 피해낸 것이다. 모골이 송연하다. 원망하는 듯한 목소리가 익숙하다. 막았어도 결과는 같았을 겁니다. 라고 말하려다 입을 여전히 떼지 않기로 했다. 여전히, 앞으로도 영영. 혀는 납덩이 되었으며 입은 석상 되어 벌어지지 않는다.
폭음 들렸을 적 그저 눈 돌아버린 사람처럼 플래나를 향해 직접 달려간 것이다. 그리고는-
"당신도 함께할 수 있어."
단 한마디, 의지 없던 말 뱉어내며 손 뻗어 붙잡으려는 척하며 보이지 않는 힘으로 들어올려 벽을 향해 강하게 처박으려 들었다.
본래라면 완벽히 막아낼 수 없는, 그만큼 강한 공격이었지만 버스트를 사용한 덕분인지 너는 비교적 멀쩡하게 빔을 막아낼 수 있었다. 빔은 네 방패를 뚫지 못했고 그대로 분산되거나. 목표물을 놓쳐 벽에 부딪히곤 사라져 버렸을 터다. 그랬어야 했는데... 사라졌어야 할 빔이 다시 모이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면에서는 플래나의 손 앞, 다시 또 한번의 빔이 발사되려고 하고 있었다.
"우리 대장이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모욕하다니... 가족이라는 말로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로벨리아에게도 모욕이 될 수 있는 말인데, 그런 생각 따위는 없는 거겠지. 너는 칫, 하고 혀를 짧게 찼다. 더 이상 이야기했다간 네 말이 로벨리아에게 나쁘게 작용할 수도 있었으니까. 적어도 그런 일은 없어야만 했다. 네가 한 행동으로 네가 저평가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서 너를 포함한 이들을 믿고 기다리고 있는, 저항의 길을 밟아가는 존재가 평가받는 건 견디기 어려웠으니까.
"나중에 이야기합시다. 원할 때 언제든."
네 뒤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지막히 대답한 네 귓가에 들려오는 폭발음, 이제 곧이다. 시간이 우리 곁에 도착할 때까지, 임무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두 발을 딛고 서 있어야만 한다! 모두 막아낼 수는 있을 것 같지만 방금처럼 방어력을 집중시킬 수 있는 건 하나 뿐. 결국 둘 중 하나에 대한 얕은 방어로 입을 피해를 감안하며 움직이려던 찰나, 선우의 스페셜 스킬로 위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던 빔의 위협이 사라지자. 너는 바로 시선을 돌렸다. 네 방어자산을 전부 쏟아부을 수 있는 공격은 단 하나! 빔의 궤도를 가늠해 고갤 돌리니 아직 궤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네 손 끝, 공기를 가르는 체인이 벽에 박히자마자 있는 힘껏 잡아당기니 네 몸은 자연스레 이미 체인이 지나친 거리를 뒤쫓았다. 그렇게 공중에 떠올라 신디와 완전히 일직선상에 놓였을 때. 반대쪽으로 쏘아진 체인이 땅에 박히고 이미 널 끌어당기던 체인과는 반대 방향으로 제동을 걸어 그대로 공중에 멈춰섰다.
한명이라도 다운되었으면 그 자는 플래나가 바로 붙잡아버리고 단번에 목숨을 끊으려고 하는데 그때 아스텔과 에스티아 중 다이스로 나온 이가 달려들어서 플래나를 붙잡고 시간을 끌어요. 이내 기지가 폭발하기 시작했고 붙잡은 이 중 하나는 플래나에게 붙잡혀버리고 '재교육'을 받고 다음 시나리오의 보스로 등장했겠지만....
선우의 레비아탄은 빔 중 하나를 집어삼키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빔은 사라져버렸지만 그래도 남은 빔은 정말 철저하게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노렸다. 아스텔과 레레시아는 빔에 휘말렸고 그 때문에 아스텔은 무장이 크게 손상을 입고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한편 쥬데카는 신디를 보호하는데 성공했다. 절대 방어로 빔을 막아서는데 성공했고 다시 한 번 반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레레시아는 바로 버스트를 사용했고 분신들은 플래나를 잡고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이어 이스마엘은 그런 플래나를 벽에 처박아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아스텔은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검에 강한 에너지를 모았다.
"에스티아. 부탁해."
"응!"
이어 에스티아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드론을 앞으로 질주시켰고 그대로 플래나에게 처박았다. 이내 드론들은 연쇄적으로 폭발했고 아스텔은 그 상태에서 날아오른 후에 검을 있는 힘껏 앞으로 휘둘렀다.
-그 검은 모든 것을 찢어가르는 바람의 숨결 -질풍으로 뭉쳐있는 날카로운 칼날을 세우며 -만물이여. 그대로 흽쓸려라.
"에어로 슬레이어!!"
이내 아스텔의 스페셜 스킬이 발동했고 강한 풍압으로 이뤄진 에너지 덩어리가 플래나에게 정확하게 명중했다. 이내 강한 연쇄폭발이 더욱 크게 일어났고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이내 그 아래에서도 폭발이 일어났다. 허나 검은 연기가 걷혀지자 아무렇지도 않게 무장을 회복시키고 있는 플래나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제법이로군요. 어떻게든 버티고 또 버티는 것이 말이에요. 후훗.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은?"
"생판 남들보다 못한 존재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누님은 결국 세븐스의 자유와 권리를 선택한 모양이니까요.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이미 누님에게는 자유와 권리가 주어져있는데 말이죠. 정말로 누님은 다정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냉정하게 현실을 알려주는 겁니다. 테러리스트 일을 해도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가족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을 모욕한다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저에게 있어서는 누님을 뺏어버린 존재지요."
분명히 여러 번 공격을 맞긴 했으나 그럼에도 아직까지 멀쩡하게 서 있는 플래나는 어쩌면 아직 에델바이스 대원들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야 보검의 출력부터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으니까. 조금 더 강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것도 잠시였다. 이내 건물 여기저기에서 강한 폭발이 일어났고 에스티아는 다른 드론을 띄워서 플래나에게 돌진시켰고 그대로 발목을 잡아넣으려고 했다. 이내 근처까지 폭발소리가 크게 들려왔고 에스티아는 크게 외쳤다.
"됐어!! 이 정도까지 시간을 끌었으면 폭발에 휘말릴거야!! 크게 다치진 않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조금이라도 타격을 줄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기지가 폭발하면서 생기는 폭발 에너지에 휘말리게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저 작자가 전선에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거야!! 모두 퇴각해!!"
버스트를 날린 뒤 그녀는 주저앉았다. 고개를 들자 흐릿한 시야에 아스텔이 스페셜 스킬을 날리는 모습이 들어오고 날아가는 플래나가 보인다. 하지만 멀쩡히 걸어나오는 것도 보여, 그저 이가 갈릴 뿐이다. 아. 이 너무 갈면 회복시키기 어렵다고 라라가 잔소리 하는데. 어찌어찌 숨을 고르며 일어서는데 에스티아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폭발하면서 휘말리게 할 수만 있다면.
"...가기 전에, 인사는 해야, 겠지..?"
그녀는 자리에 버티고 서서 동료들이 가능한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발밑에 핏빛 독액을 줄줄 흘리면서. 독액은 사방으로 퍼지지 않고 그녀의 발목이 잠길 정도로 차오르더니 곧 부글거리며 크고 작은 붉은 나비의 형상이 되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발화성과 휘발성이 강한 독액의 나비들을 한가득 띄우고, 그 가운데의 그녀가 손을 치켜들자 일제히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산개, 하라. Falling Curse-"
나비들은 가는 길마다 독액을 뿌리며 날아가고 이윽고 폭발 지점마다 군데군데 뭉쳐서 더욱 가열찬 폭발을 일으키게 만들 것이다. 그렇지 못 해도 이 공장 안 어디에서든 터진다면 쓸 만 하겠지. 모든 나비떼를 날려보내고 그녀도 자리를 벗어난다. 서둘러 동료들의 뒤를 따라잡은 그녀는 손등으로 입가의 붉은 것을 슥 밀어 닦아내고 있었다.
막아내는 데 성공했다. 큰 공격이었던 만큼 빈틈도 있었던지라 동료들의 힘을 다한 공격이 플래나에게 쇄도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음은 성큼 다가와 있었다. 소리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분명히 흔들림과 함께 잔해가 발생하고 있었다. 빠져나가야 한다...!
"임무 완료, 퇴각하겠습니다!"
애초의 목적 중 하나는 달성했다. 시설의 파괴는 기정사실이니 이제 남은 목적은 하나 뿐. 무사히, 부상을 입기는 했지만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돌아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쉽게 보내주지 않을 거라는 확신에 너는 무심코 시선을 돌렸으나 에스티아의 드론이 플래나를 잡아놓으려 하고 있었다. 너 역시 이번에는 체인을 잡아당기는 것이 아니라 양쪽 끝의 추가 달린 체인을 발사해 그 다리를 휘감으려고 했다.
이 자리에서 직접 부딪혀 쓰러트릴 수 없다면 무사히 도망치는 것이 승리다. 분명 압도할 수 있는 적을 놓치는 것은 패배나 다름없으니 너는 그 패배를 그에게 안겨줘야만 했다.
순간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저게' 있을 곳은 거기가 딱 어울린다. 진창 밑으로, 끝내 밑에서 모든 걸 지켜볼.. 이스마엘은 그 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감정적으로 많이 상한 듯싶다. 이런 생각까지 하다니, 이러면 안돼. 숨을 고르며 아스텔과 에스티아의 공격을 지켜보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강한 공격에도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지만, 영원한 건 없을 테다. 끝장을 보자면 보겠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당신을 논파하기에 지나치게 닮았다는 점도.
"……."
이스마엘은 결국 헛웃음을 흘렸다. 뺏어버린 존재, 강하게 다가오는 폭음, 가까워지는 진동……. 달리 공격을 덧붙이진 않고 퇴각하며 천천히 손을 모았다. 그리고 염력으로 몸을 띄워 흐르듯 움직여 시야에서 사라지려 시도했다. 다른 누군가는 당신에게 도발하겠지만 이스마엘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당신에게 경외감을 가졌지만 결국 그럴 가치가 없는 쭉정이라 판단한 듯이.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정말 치열한 사투를 벌인 그들은 폭발음을 뒤로 하면서 시설을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발이 붙잡혀있는 플래나는 그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폭발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건물 안에서 멈춰선 후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눈초리는 방금 에델바이스 멤버들이 빠져나간 바로 그곳을 향해있었다.
"과연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허나 덕분에 잘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절대로 그냥 둬서는 안되는 이들이라고. 지금부터 가디언즈는 여러분들을 제 0순위로 섬멸하도록 하겠습니다." "글라키에스. 지시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기를."
이내 폭발음은 다시 한 번 크게 울리며 그대로 플래나를 집어삼켰다. 물론 그 안에서 쓰러지거나 죽진 않았겠지만, 당장 움직임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에델바이스 멤버들을 뒤쫓는 추격자들도 없었다.
이내 본부로 돌아온 그들은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었고 당분간 휴식을 취할 것을 명받았다. 물론 이것저것 궁금한 것도 있을테고 알고 싶은 것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걸 손끝으로 느낀다. 그래, 너도 현실인지 몇 번이고 의심했구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 알고 있다. 도너티, 그래, 널 잊을 리가 없지. 그 당시에 우리는 헤어져도 받아들이자고, 괜찮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는걸. 힘주어 안는 팔에 잠시 눈을 감는다. 어깨에 묻는 얼굴에 손을 들어 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쓰다듬었다. 느껴지는 온기와 물기에 여기 있으니 울지 말라고 말할까 했으나 이내 그만둔다. 같이 울어버릴까 감정이 고조됐기 때문이다. 대신 손을 등으로 내려 두어 번 토닥였다. 맞댄 이마에도, 등에도 느껴지는 선명한 온기에 웃음이 유달리 서글프다. 살아있다. 고개를 들고 너는 따라 웃었고, 두 사람의 웃음이 방을 채운다.
"응,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그래도 머리는 다시 길 테니까. 그때 네가 다시 땋아주면 되는걸."
머리카락에 닿는 손길에 눈을 휘었다. 널 만났을 땐 무릎까지 닿을까 싶을 정도로 치렁치렁했던 머리였는데. 막상 이곳에 오기 직전 싸움에서 머리채를 붙잡혔던지라 방해가 되어 잘라버리고 후련하던 것이, 내심 이렇게 되니 아쉽기 그지없다. 약물의 도움이 없다면 네 손길을 다시 느끼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 눈썹을 축 늘어뜨리듯 하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차라리 잘 됐어. 그 많은 시간 동안 같이 있으면 되잖아.
"……어떻게 오게 된 거야?"
한결 보드라워진 눈동자로 조곤조곤, 조심스레 물어본다. 거기에 있던 건 끔찍한 일이었음을 알기에 묻지 않고, 오게 된 경위만, 너의 삶을 존중하기 위해.
웹박수로 들어온 개요는 잘 받았어요.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조금 아슬아슬한 선에 걸칠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에델바이스에게 있어서 아슬아슬한 선은 걸치지 않게 알아서 잘..그 대처를 해주시길 바라고.. 12월 말~1월 초라. 일단 알겠어요! 날짜가 확실하게 정해지면 저에게 말해주세요!
어느새인가 이 방에는 너와, 나와, 우리의 웃음만이 세상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네 말을 듣자 신디의 입가에 해사한 미소가 번진다. 그래. 네 머리카락이 다시 내 손에서 부드럽게 하늑거리는 그때가 오면 네 머리를 땋아 줄 수 있겠지. 그러니까 이건 약속이다. 이번에는 이별 없이, 오랫동안, 계속 함께 있자는.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 새로운 일과 일상을 너와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신디의 얼굴에 발그스런 빛이 묻어난다. 네 물음에 이곳에 오기 전까지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그에 가슴이 떨려와 신디는 가만 눈을 감았다 뜬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신디는 좀 더 차분해진 미소로 너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연다. 기차를 탔다고. 어디로 가는지 몰랐으나, 더 비참한 곳으로 자신을 데려갈 수 있었지만 내릴 수 없었다고. 그러다 도망쳐 내렸던 마을에서 에델바이스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고. 많은 일이 있었을 텐데, 신디의 목소리는 마치 너에게 걱정을 끼치기 싫다는 듯 담담했다.
해사한 미소에 마음이 놓인다. 그 굴다리 깊은 곳 같던 지옥에서 웃을 적엔 이 미소가 언제 꺼질지 몰라 내심 불안했는데, 이젠, 안전하고 평온한 일상 속이지 않은가. 네 웃음이 오래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별 없이, 우리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니까 더욱. 발그레 빛 묻어나는 너를 괜히 더 껴안고 볼을 맞댄다. 안정감과 평온함에서 만나는 너와의 만남에서 조근조근 묻는 것은 조심스러웠고, 네게 내가 여기 있으니 괜찮노라 무언으로 얘기하는 것에 가깝다.
"……그랬구나."
볼을 떼며 네 시선을 맞춰본다. 차분한 미소와 달리 진중한 얘기에 마음이 무겁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 곁에 있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네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싶었다. 도망쳐 내렸던 마을이 이곳이라 다행이지만, 담담한 목소리에 표정이 유순해진다. "이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장담하듯 입 벌리는 것에서 괜찮아, 고생 많았어와 같은 이야기 나오지 않는 탓은 이전의 삶은 겪어본 바 결코 다행이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네 과거를 '그랬던 일'로 넘기지 아니하고 네 일부임을 인정하며 배려하듯.
"……헤어지고 나서.. 다른 습격이 있었어."
이스마엘은 잠시 말을 고르기로 했다. 담담하게 뱉는다. 매매업자의 습격에서 살아남아 도망쳤는데 좀 다쳐서 기절했노라고. 그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까, 에델바이스의 사람과 마주했다고. 이스마엘 또한 차분한 미소를 짓곤 고개를 저으며 작게 웃었다.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함이다.
이스마엘은 여가시간에 공터에 있는 것을 즐겼다. 공터는 외진 곳에 있어 인적이 거의 없다시피 하거니와, 마을의 부차적인 건설을 하다 만 자재가 쌓인 모습이 알기 어려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도 있었다. 과거에는 자재 더미에 앉아 저 멀리 너머에 있을 일상의 소리를 듣곤 했다. 그 이후에도 여러 임무를 마치고 올 때면 이스마엘은 공터를 찾았고, 지금은 에델바이스의 비밀스러운 안식처가 되었다.
지금도 이스마엘은 공터에 있었다. 소란이 있었음에도 근신은 짧았다. 그 기간 동안 반성할 수는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달리 말하자면 여전히 이상향에 대한 마음도, 아버지에 대한 마음도 갈무리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
이스마엘은 허공을 원수를 쳐다보듯 노려다 보듯 하다 눈을 감고 신경질적으로 노이즈 속 앞머리를 헝클었다. 걸쭉하니 F로 시작하는 욕설을 한 단어 뱉더니 주머니를 뒤적거려 엄지로 무언가를 밀어 올리고 손목을 두어 번 털었다. 그리고 고개를 꺾듯 하더니, 다른 손을 들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노이즈 너머로 창백한 연기가 어스름히 피어오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평소답지 않게 가시 세우는 이유는 주변 눈치를 볼 이유도 없거니와 당신이 아버지를 대했던 태도를 익히 기억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재 턴다.
이러한 곳에 특별한 용무가 있어 찾아오는 인물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용무가 있는 사람이 이곳에 용무가 있다고 하면, 찾아올 수 밖에 없겠지. 꺼림칙한 장소다. 왜인지 구체적인지는 말하기 힘들다만, 뭔가 재생되려다 만 어중간한 기분이 드는... 마치 아물다 만 시뻘건 상처같아서 꺼려지는 장소였다.
"흡연 중에 말을 거는 걸 상당히 싫어하나보군."
물론, 그런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나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것도.
"지난 번 작전 때문인가?"
이스마엘의 대답이라도 대신하는 듯,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온다. 털린 재에서 남아있던 불빛마저 사라져가며 내 쪽으로 날아들더니, 곧 바람과 함께 흩어졌다.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 제 0 특수부대를 만들었다. 제 0 특수부대는 본격적으로 위험한 임무을 맡게되는 말 그대로 특수부대이다. 제 0 특수부대원들에겐 세븐스의 힘을 강화시킬 수 있고 자신만의 커스텀 무장과 장갑을 만들 수 있는 '보검'이 주어진다.
가디언즈에는 병사들을 지휘하는 간부 클래스가 총 7명이 있으며 이 중 제 7위인 레이버가 제 0 특수부대원들에게 무너진다. 한편 레이버는 마지막으로 리타이어하기 전, 쥬데카에게 자신의 힘이 담겨있는 세븐스 입자를 내밀었고 보검이 파괴되었으나 이내 제 6위인 엘리나에게 회수된다.
제 6위 엘리나는 원래 다른 레지스탕스 멤버의 일원이었으나 현재는 가디언즈에게 붙잡히고 제 5위인 카시노프에 의해서 조종당하고 제 0 특수부대원들과 싸웠으나 패배 후 리타이어. 허나 카시노프가 회수해갔다.
한편 어제 시점은 아니었으나 제 3위인 글라키에스와도 대치. 수많은 세븐스 아이들을 붙잡아서 싸우고 죽이는 것들을 가르치고 서바이벌 방식으로 1인만 살아남아서 거기서 살아남은 제일 강한 이를 가디언즈의 병력으로 쓰려고 하는 '고독' 프로젝트를 막고자 글라키에스와 대치했으나 상당히 밀리던 와중 겨우겨우 모두의 보검에 깃들어있는 사이버 엔젤. '루시아'가 등장해서 버스트를 각성하고 겨우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으나 가디언즈 쪽에서도 '검은 루시아'를 가지고 있었으며 현재는 적대 관계.
아무튼 현 시점 제 7위와 제 6위는 쓰러졌고 남은 간부 클래스는 5명. 현재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인 것은 제 1위인 플래나, 제 3위인 글라키에스. 그리고 제 5위인 카시노프.
덧붙여서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를 만든 로벨리아는 플래나의 누나이자 U.P.G의 총수인 아르센의 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비능력자 보호법령도 로벨리아에 의해서 발령되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한편 가디언즈와는 별개로 레인이라는 여성이 세븐스와 비능력자의 평화를 추구하는 이들을 이 세상에서 멸하겠다는 일념 아래에 활동 중이다. 세븐스를 복사해서 자신이 사용할 수 있기에 싸울때는 상당히 요주의가 필요하다. 현재 블러디 레드, 로벨리아, 에스티아, 레이버, 이스마엘의 세븐스를 뺏어서 복사한 상태. 스토리에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엘리나의 세븐스도 이후 복사된 상태이다.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었는데. 아니, 이젠 육신만 존재하던 그것을 가족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받아들일 걸 알면서, 혼란의 끝에 뱉어버린 언사가 경박하다 못해 끔찍하다는 것도 알면서.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정정해 봤자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것도 아니니.
알기만 하는 정도가 아니었다라. 손가락으로 두어 번 튕기듯 재를 땅에 털어내며 당신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아버지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하니, 권총을 꺼낼 적엔 당연하게도 눈이 가늘어진다. 같은 동료니 설마 쏘겠냐마는, 갑작스러운 무기의 등장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마엘은 당신의 입에서 나온 아버지의 이름에, 반쯤 탄 연초를 자재에 아무렇게나 비벼 끄더니 헛웃음을 한번 흘리며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이런 우연이.
"언제였더라. 그래, 아버지가 죽기 직전 돌아온 적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상처를 입고 돌아오셔도 내색하지 않던 분이셨지만 그날은 달랐지요."
이스마엘은 그 순간을 잠시 곱씹듯 말을 끊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평소 같으면 의무실에서 충분한 치료를 하고 돌아올 사람의 제복은 피투성이요,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었던 것은 둘째치고 금방이라도 눈을 뒤집고 쓰러질 것 같은 모양새였으니. 그날 아버지를 부축하며 당혹감에 휩싸여 어찌나 울었는지.
"난생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늘 자상하던 얼굴은 창백하고, 표정은 굴욕과 분노에 얼룩졌으니 말입니다. 단단히 혼이 날 각오를 하며 쓰지 말라고 했던 세븐스를 사용했는데도 혼은 고사하고 제가 세븐스를 사용했다는 것도 모르실 정도였습니다."
말을 이어가며 당신을 향해 시선을 정확하게 던졌다. 노이즈 너머로도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레이먼드 나이벨.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했더니만.. 아버지를 거기까지 몰아간 '그 선글라스 쓴 개자식'이 당신이었군요."
>>354 성공적인 해장을 하고 오셨군요~ 마음 써서 질문해주니 뮬주도 많이 즐겁습니다앙... 비설이 통과된다면 3년에서 2년 반 사이를 생각하고 있어요 🤔 전혀 사수가 될 수 없는, 막내같은 고참, 고참이지만 아기라서 막내 취급...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요.
당시의 상황을 상기하자니 느꼈던 충격이 다시금 머리를 맴도는 것 같다. 아버지는 오로지 자신이라는 존재 하나 때문에 치료를 하지 않고, 굳이 위태로운 몸을 이끌고 멀리 동떨어져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에, 열악한 환경까지 찾아왔다. 다행스럽게도 응급처치 이후 아버지가 정신을 차려 의무실을 찾은 뒤, 오랜 기간 동안 집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을 때가 되고 나서야 이스마엘은 아버지가 자신이 안전한지 확인하기 위해 몸을 이끌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순간의 무력감과 공포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나 또한 이곳에 몸담고 있으니 당신이 한 행동이 무엇인지는 이해합니다."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 양극적인 감정이 교차한다. 아버지는 가디언즈였으니, 레지스탕스나 그 비슷한 단체와의 충돌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덤덤하게 뱉은 단어와 달리 장갑 낀 손이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사람의 잘못이 아닌데도. 해야만 하는 일이었을 텐데도.
"마지막 말은 안 하는 편이 좋았을 텐데."
후들거리는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주먹을 말아 쥔다. 가죽끼리 서로 거세게 맞닿아 뻣뻣한 소리를 내고, 숨을 깊게 쉬기 때문인지 흉곽의 움직임이 도드라진다. 노이즈 속에서 턱 근육이 팽팽해졌다.
"그 상처가 남긴 후유증만 없었더라면, 아버지가 내 품에서 돌아가시지 않고, 레이버에게서 같이 도망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치울 수가 없잖습니까?"
>>379 사실 주말에 갠이벤 진행해야 해서 일상은 자제하고 있기도 하는터라~ 아 아까 비설 통과 하면 뮬이 에델바이스 입단한지 2년반~3년이랬지? 레시랑 라라(레사의 쌍둥이 동생)은 2년차가 아마 뮬이 선배일건데~ 간단하게나마 선관 하고 싶으면 찔러도 괜찮다구~ 진짜 진짜 간단한 선관 밖에 안 되겠지만 응...
쥬데카의 이야기를 들으며 의미 없는 가정을 떠올려 본다. 만약 그렇게 사로잡힌 사람이 그 자신이었고, 그렇게 무모한 행운을 마주치게 된다면…… 모두 짓밟고 떠났으리라. 레지스탕스가 격파되든 자신이 그 자리에서 죽임당하든, 어느 한쪽도 평화롭지 못한 끝났으리란 사실은 자명했다. 무력하게 죽어라. 그렇지 않겠다면 싸워서 모두 죽이고 살아남거나. 그는 지쳐 소진되어 가던 그때에도 늘 목적만은 잃지 않았던 훌륭한 군견이었으므로. 좋은 인연이라는 감상이 들었지만 그렇기에 그 뒤의 이야기를 함부로 궁금해할 수 없게 된다. 특별하고 각별한 인연일수록 빠르게 지기 마련인 세상이니까. 더 캐묻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짤막한 감상이 앞섰다. 말을 아끼게 되어 그렇기도 하고, 듣자마자 곧장 그런 감상이 들 만큼이나 놀라운 결론이어서다. 느릿하게 두어 번 눈 깜빡이는 동작에서 속마음이 훤히 읽혔을 테다.
>>383 뮬은 레레시아를 처음 봤을 때 키가 크고 눈이 새초롬해서 기에 눌렸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몽실한 머리를 만지작대고 싶다는 음습한 희망이 있을 것 같습니다앙... 여자아이의 머리카락 만지기, 여학생이라면 꼭 가지는 욕망입니다... 이상한 게 아니에요. "제가 지도를 해보겠습니더!😶" 하고 나서서 지도라는 핑계로 머리카락 땋게 해달라 하면... 레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392 음~ 지도를 해보겠다고 한 건 레시와 라라가 입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라고 보면 될까? 그 시기에는 레시(레레시아)가 어깨 위로 올라오는 단발이라서 아마 땋을 부분이 없었을거 같아~ 라라(라라시아)라면 긴 머리일 때라 물어보는게 가능했겠지만? 머리길이 상관 없이 만져도 될지 물어봤다면 라라가 대신 자기 머리 만질라며 끼어들었을 거 같고~ 사수 같은 느낌으로 이것저것 가르쳐줬다면 군말없이 배웠을거야~!
>>405 이런 이런... 짧은 곱슬은 몽실몽실이라 좋고 긴 머리는 땋을 수 있어서 좋은 것입니다요. 뮬은 욕심이 많아서 "머, 머리를 만져지는 것도 중요한 훈련이다 아닙니꺼. 한 명도 뺄 수는 업어예,가 아니라 없습니더. 레레시아 씨도 가까이 오시라예, 가 아니라 오세예." 했을 거예요 근데 가르쳐주는 게... 시범을 보여야하는데 (뒤에서 고양이눈인 여자애 둘이 보니까 책 잡힐까봐 쫄아서) 더 실수하고 하는... 사수답지 못한 가르침을 줄 것 같아요. 다른 분께 더 배우시길 추천합니다앙... 면목이 없네요. 즐길대로 즐기고 이익은 못 주는 바보 당나끼라서...
멱살을 틀어쥐었음에도 손의 떨림이 멎지 않는다. 노이즈가 지직거려 얼굴을 잠깐 드러냈다 가리길 반복했다. 길고 하늘을 향해 치켜올라간 속눈썹, 좁아진 동공, 악물어 턱과 목에 선 핏대, 그리고 올려다보는 눈에 증오가 가득 들끓으려다 겨우 잠잠해지길 반복한다.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하려 해도 결국 그마저 깨질 정도로 눈앞의 당신이 잔인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만 든다.
"그럼 서로 심각한 수준의 부상을 입은 게 아니었노라 부정하시든지."
복잡한 머리가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스스로도 이게 단순한 화풀이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터져버린 감정의 댐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당신이 목을 긁어 으르렁대며 쐐기를 박은 탓도 있다. 틀어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착각하지 마, 내가 언제는 그런 생각 안 한줄 알아..? 생각 말고 아예 말로 해줄까?"
감정에 휩쓸리면 해서는 안 될 말도 하게 되는 법이다. 바로 지금이다. 이스마엘은 잠시 자신의 본분을 내려놓기로 했다. 에델바이스의 이상향을 좇는 이스마엘이 아니라, 헬무트 케르스트너의 딸이었던 이스마엘로 돌아갈 시간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깊숙한 속내를 품은 미친개로. "왜, 불경죄로 즉결 처단이라도 하시게?" 총 겨눌 적 이스마엘이 속삭이더니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꺾었다.
"하, 나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왜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떨어져 뒤지려는 듯 난간에 기대고, 자기 목에 칼을 들이밀고, 총을 쏘라고 하지..? 못 한다고 생각해서 그러나.. 그래, 못 하지. 나도 아가리 되는 대로 벌린다고 아버지 못 돌아오는 거 알고 있고."
자조적인 웃음을 뒤로 노이즈가 반쯤 사라졌다. 감정이 격양된 탓이다. 손잡이 붙잡으려 한다.
"생각 달리 해볼까, 내 아버지가 살아돌아오는 것보다 당신 길동무로 데려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안 그래?"
홉뜬 눈으로 서슬 퍼렇게 중얼거리다 한쪽 입꼬리 올리며, 기가 차다는 듯 숨 뱉는 것이 제 아비를 똑 닮은 행동이었다. 미친개처럼 으르렁대듯 목소리가 낮은 것마저.
>>409 ㅋㅋㅋㅋㅋ아냐 뮬이 귀여워서 좋은데? 사수답지 못 해도 딱히 탓하거나 책망하지는 않았을거구 그냥 꾸벅하고서 다른 사람한테 배우러 갔을거 같다~ 뮬이 지도해보겠다고 했으니 이 때 서로 자기소개 정도는 한 사이로 하면 어떨까? 이름 정도는 아는 사이로 간단간단하게~
>>435 헤어갑질ㅋㅋㅋㅋㅋ 아 나 뮬주 표현 너무 재밌다 ㅋㅋㅋㅋ 아냐~~ 뮬이 먼저 지도하겠다고 나서준거나 뭐든 보여주려고 한 거 좋게 생각한다구~ 여태 그런 선관이 없었어서 ㅎㅎ 지금은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게 인사할 수 있는 그런 관계일까나~ 이런 관계라도 기뻐해주면 나도 기쁘다구~
자캐는_수제초콜릿을_주는_타입_or_시판초콜릿을_주는_타입 : 아.. 그.. 내가 미안하다.. 이스마엘이 저번 빼빼로데이 때는 열심히 수제로 만들긴 했지만 발렌타인 데이때도 그럴..까..? 스스로의 절망적인 감각에 대해 깨닫고 있어서 차라리 시판을 주는 게 낫지 않을까 겁먹고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긴 하는데.. 그래도 도전은 하.....겠지 응. 응..... 도...전은....
자캐가_게임_속에서_밴_당했을_때의_대사는 : "음? 당신의 선택이 그렇다면야."
"쫄았습니까?" < 가끔 랜덤대사로 이럴듯
자캐가_커뮤_러닝_기간_중_즐겁다고_생각한_때는 : ........미안하다 진겜 왕겜밖에 생각이 안 난다...
>>439 하지만 수제 초콜릿을 또 만들고 있을 것 같은데요! 이스마엘은! 아무튼 쫄았습니까...ㅋㅋㅋㅋㅋㅋㅋ 맙소사. 그리고 진겜과 왕겜밖에 즐거운 기억이 없어요..? (흐릿) 또 열어야하는가! 슬슬! 그리고 욕한 것을 알게 되면 역ㅇ로 뒷담을 까버리는군요. (동공지진) 무시무시해. 빵순이..귀여워! ㅋㅋㅋㅋㅋ
(속보) 발렌타인데이 시즌, 에델바이스 기지 내부 취사장 인근 쓰레기장에서 대원 레이먼드 나이벨(28)이 빈사상태로 발견되어... 피해자의 근처와 소화기관 내부에는 카카오 성분이 들어간 모종의 독극물이 발견되어 논란을 빚고 있다고...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피해자는 '실패작, 실패작...' 하는 말만 되뇌었다고
멱살을 놓고 손잡이를 쥔 손의 떨림은 여전히 멎지 않았다. "그건 뒤져보면 알겠지." 경박하되 증오심 어린 단어를 뱉어냈으나 여전히. 서로 죽일 각오를 해야 한다. 평소 같으면 무겁게 와닿았을 것이고, 같은 동료에게 어찌 그럴 수 있겠냐는 듯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텐데도. 이스마엘은 그 단어가 귀에 제대로 꽂히지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죽일 각오를 한 사람처럼 당신을 홉뜬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눈동자가 일순 떨렸다. 아버지를 끝낼 수도 있었던 총이라는 언급 때문이었다. 시선이 내려가더니 다시금 당신을 향한다. 천천히 움직이던 눈동자가 손처럼 후들거렸다.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역겹다. 속이 뒤집힐 것만 같다. 그걸 지금 내게 말하는 이유가 뭐지? 한번 불이 붙어버린 이유 없는 증오가 속절없이 들끓는다. 당신이 몰아세울 적, 이스마엘은 출처를 알 수 없는 끔찍한 혐오감을 다시금 느꼈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대체 뭐지? 이 총으로 못 쏴서 아쉽나? 아버지의 죽음에 당신의 책임이 없다 얘기하고 싶은 건가? 아니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의미하다고 말하고 싶나? 아니면 내가 가디언즈 자식이니 이곳에 있는 게 기만이니 분란이나 일으켜서 꺼지라는 건가?"
이전에도 이런 감각을 겪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멀쩡하고 선명한 정신으로 겪는 이 상황은 몇 배로 끔찍하게 이스마엘을 옥죈다. 피부로 와닿는 자신의 증오가, 더듬대며 뱉어낼 때마다 폐부를 찔러대는 단어의 첨예한 감각이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이스마엘은 멈출 수 없었다.
"어리석은 발버둥이나 치는 주제에, 닿지 않을 꿈이나 꾸는 주제에…… 주어진 대로 살았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을 텐데─!!!"
이스마엘의 노이즈가 완전히 거둬지더니 목을 긁듯 외치는 소리가 쨍했다. 마침내 총을 격발했으나 총구는 당신을 향하지 않았다. 당신의 옆, 나무로 된 자재에 큰 상처를 남기고, 이스마엘은 헛웃음을 흘리듯 하며 총을 쥔 손을 힘없이 떨궜다.
이스마엘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뱉어내는 말 하나하나가 절대 당신만을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를 찌르고 있음을 알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당신 앞에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증오스럽고 고통스럽다. 극과 극은 닮았다는 말이 이래서 싫다. 가디언즈의 딸이던, 그 사상을 가지고 있던 이스마엘은 총을 격발했을 적, 결국 자신이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하노라 스스로를 비관하고 낙담하기로 했다. 총을 쥔 손을 떨구며 헛웃음 흘린 뒤 고개를 숙였다. 길지 않은 머리카락이지만 얼굴을 어느 정도 가릴 정도는 됐다.
"나는- 당신이, 나아가서 여기 사람들이.. 죽지 않았으면 해."
이스마엘은 후들거리며 감정을 억눌렀다. 애석하게도 이제 눈물은 나지 않는구나. 우습게도. 잠깐 심호흡을 하더니, 다시금 당신의 옆을 조준했다. 격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목재를 향해 갑작스럽게 남은 탄창을 비워버리고, 방아쇠를 당길 적 아무런 반응이 없을 적에야 이스마엘은 감정을 추스를 수 있었는지 숨을 크게 골랐다.
"그렇지만- 똑똑히 기억해. 아무리 여기에 속한다 해도, 당신이란 존재가 증오스러운 건 변하지 않아……."
알았어? 채근하듯 헬무트를 닮은 녹색 계열의 눈이 앙칼지게 번들거렸다. 마지막으로 보인 객기다.
더는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는 그 말을 고개를 떨군 채 하는 그녀의 모습에, 약간의 기시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부질없다는 생각에 고개를 젓고서 자신도 잠깐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분노를 담아 쏘아내기라도 하듯 권총의 탄창을 완전히 비워버린 그 모습은 역시나 누군가와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누구였을까. 예전에 함께했던 동료인가. 생사를 걸었던 적수인가. 어쩌면 나 자신인가... 모르겠다. 모호하다.
"...그럴거라 생각했다."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밤하늘을 한번 더 바라보았다. 쓸데없이 별은 밝다. 이런 광경을 비춰봤자 뭐 좋을 게 있다고.
"그를 많이 닮았군."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스마엘의 얼굴은 처음 보았지만, 나는 이 눈을 본 적이 있다. 그 눈도, 나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지. 그 자는 내 눈을 보지 못했겠지만.
탄창을 전부 비운다고 해묵은 증오가 전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분노를 어느 정도 떨쳐낼 수는 있었던 것 같다. 기분 나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는지, 이스마엘은 가볍게 몸서리를 쳤다.
"……그러니까 당신도 좋을 대로 생각해. 나는 절대 바뀔 생각 없어."
혁명이 끝나는 날이 다가온다 한들 당신을 향한 증오가 사라질 일은 없다. 하물며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만류한다고 해도. 눈을 들여다볼 적, 이스마엘의 시선이 한결 더 앙칼져진다. 입술을 꾹 다물기까지 하니 당신을 모나게 쳐다보는 시선에 경계심까지 어린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선글라스 너머를 쳐다보려는 것일지도 모르고.
"……당신에게 듣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그래도 피가 이어지지 않았으니 이런 거라도 닮아야지."
자조적인 말을 뱉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비웃는듯한 미소와 달리 헛웃음도 아까운 건지 이젠 나오지 않는다. 짜증 나는 사람이야. 갈무리된 감정 속에서 퉁명스럽게 생각하곤 혀를 찼다. 이내 꽉 쥐던 총을 온전히 손에서 놓았다. 중력에 이끌려 땅에 떨어져야 할 것이 물리법칙을 거스르고 이스마엘의 가슴팍 근처까지 떠오르더니 당신을 향했다.
두고 보라지, 나중에 마음 변해서 뭐라고 하기만 해봐라. 이스마엘의 눈이 당신을 쏘아보다 기가 차다는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붉은 눈동자를 쳐다보는 녹색 시선이 이내 별이 뜬 하늘을 향한다. 생각할 것이 있었던 건지 하늘을 향한 고개가 제법 느리게 떨어졌다. 아버지는 확실히 떳떳한 사람이 아니지만, 자신에겐 둘도 없는 존재였기에.
"내가 뭐?"
느리게 떨어지던 고개와 달리 팔짱을 끼며 불만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은 빨랐다. 한쪽 눈썹을 까딱이는 모습을 비롯한 불량한 태도에, 은은하게 주변을 맴도는 연초 냄새도 그렇고. 과연 누가 이 모습을 평상시의 이스마엘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여기서 곱게 봐주는 사람은 많지. 당신도 어쩔 수 없을 걸?"
이스마엘은 팔짱을 끼던 손 하나를 들어올리더니 주먹을 쥐었다. "내가 워낙 착하게 살아서 말이야." 덧붙이는 언사가 짐짓 얄미운 걸 보니 다른 방법으로 당신의 속을 긁어대려 하고 있었다. 이게 숨기지 않고 보여주는 태도인 건지.
"잘 아네? 그럼 이제 내가 때릴 것도 알겠고."
이윽고 망설임 없이, 쥐었던 주먹을 당신의 팔에 내지르려 하지 않았을까. 막거나 피하지 않는다면 제법 매콤할 테다.
아무리 그래도 가디언즈의 일원인 상황에서, 적진에 떨어져 살아남은 것도 모자라 공작에 최적화된 상황이 펼쳐졌는데...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 아닐까 싶었다. 본래 무너지기 쉬운 사람에게 새로운 지지는 무엇보다도 강렬한 법이다. 일반적인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대응, 그리고 현실. 눈을 깜빡이며 놀랐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당신의 모습을 보며, 너는 웃고 말았다.
"놀랄만한 일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츠쿠시 씨가 여기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뭐 어쨌든... 나중에 알았지만 어차피 전 그 작전에서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이었더군요."
몇 번의 격돌 후 널 사로잡았던 레지스탕스는 붕괴했다. 패배로 인한 전멸이 아니라 더 이상 전력을 유지할 여력이 없기도 했고, 그 편이 거점 주변의 사람들에게 갈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붕괴라기보다는... 자진해서 해체됐다고 볼 수 있겠다.
"해체되면서 전부 흩어져 버릴 때, 선물이라면서 전달받은 정보가 있었습니다. 위조였을지도 모르지만 제 감은 진실이라고 말하고 있어서 믿을 수밖에 없었죠."
이젠 다 낡은 한 장의 종이, 수십 번이 넘는 침투 작전을 수행한 인물은 가디언즈에게는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옛날 이야기입니다만... 분명 비싸기 그지없는 기계보다, 기계를 조종하는 인물을 더 소중히 여겼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조종사 없이 무용지물인 기계를 버리고 조종사만큼은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 한다... 조종사를 길러내는 데 드는 자원이 기계를 다시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긴 거겠죠."
그리고...
"저와 같은 사람을 길러내는 데 드는 비용은 매몰된 비용으로 넘길 만한 수준이었던 모양입니다."
일단 사담이지만, 레이버 인자의 사용처가 꽤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써 주시는구나 싶어서... 생각난 김에 질문 하나만! 레이버나 엘리나를 동료로 만드는 데 성공했을 경우 둘은 매번 전투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도움을 주는 건가요? 뭔가 세븐스 인자는 100%달성이 아니라 어느정도 조건은 달성했으니 제공하는 특전 같아서요.
>>521 만약 동료로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한다면 전투 전에 아스텔과 에스티아와는 별개로 한 명 선택해서 데리고 갈 수 있는 시스템이었답니다. 전투에서도 함께 해주는 느낌으로 말이에요. 물론 제가 직접 조종하진 않고 여러분들이 오너입이건 캐입이건 요청을 해야 판정이 들어가는 방식이겠지만요!
그 날. 둥지를 부수는 불길을 등졌던 그 날. 우리는 어쩌면 안도했었을 지도 몰라. 그 손이 우리를 밀어내었던 것을.
더는 그곳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임무를 달성하고 기지로 복귀하면 득달같이 달려오는 네가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나를 살피고 행여 아주 미미한 찰과상이라도 있으면 잔소리와 함께 그 작은 상처마저 낫게 해버리는 네가 있었다. 더는 어떤 흉도 내 몸에 남겨놓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온전하게 만들고 그것을 확인해야만 성에 차는 네가 있었다. 내가 적당히 좀 하라며 달리 걸음을 옮길 때까지 나를 붙잡고 얄궂게 웃는 네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오늘의 너는 웃지 않았다. 나를 치료하지도, 잔소리도 하지 않고, 오자마자 내 손목을 잡아 네 개인실로 데려갔다. 개인실을 잠그고 천으로 문을 막고서야 나를 보았다. 본디 흰 얼굴이 표정을 잃고 낯빛은 훨씬 창백해진 채 너는 떨고 있었다. 마치 아무도 건드리지 못 할 부분을 건드려진 것처럼. 마치... 마치...
"레레. 레시. 있잖아. 있지..."
나를 한참 보던 너는 머뭇거리는 말을 몇 번인가 반복했다. 네가 이토록 꺼내기 힘든 말이 세상에 있을 거라 생각도 안 했는데. 겨우, 겨우 목소리를 끌어모아 나온 말에 납득하고 말았다. 아. 그래. 아무리 너라도 이건 받아들이기 어렵겠지. 내게 말하기 쉬울 리가 없지. 이제 같이 떨리기 시작한 몸을 움직여 너를 끌어안았다.
우리에게 고민할 시간은 더이상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언젠가 이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어. 너무... 너무나 쉽게 벗어나버렸으니까. 하지만 항상 어딘가 불안했고, 불안한 예감은 꼭 빗나가는 법이 없다지. 한 번 쯤은 맞지 않아주면, 빗나가주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한 번. 딱 한 번만...
네게 그 정보를 전한 직후. 우리는 곧장 로벨리아를 찾아갔다.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진상을 확인해야만 했다.
어째서 그렇게 서둘렀는지는 모르겠다. 너도 나도 어쩌면 그 시점부터 의도대로 움직였던 것 같다. 그 옛날, 우리 어렸을 적처럼.
로벨리아에게 숨길 수는 없고 숨기고 싶지도 않았으니 가능한 간략히 설명했다. 줄이고 줄이면 한 마디로 요약되겠으나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그보다는 많았다. 오히려 횡설수설했지만.
다행히 내용의 전달은 충분했는지 우리에게 사흘의 시간이 주어지고 워프의 사용 허가가 떨어졌다. 허가에 감사하며 나가려는데 네가 움직이지 않았다. 너는 굳은 듯 서서 바닥을 응시하다가, 고개 들어 로벨리아를 보고 무언가 말할 듯 입을 열었다.
"...부대 사기를 위해 저희 외출과 사유는 일단 함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외의 허가, 감사합니다. 실례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딱딱하고 형식적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답지 않은 존댓말과 뒤돈 순간 무너지는 표정을 보고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렴풋이 알았지만. 이젠 나를 두고 가는 너를 잰걸음으로 따라가야 했다. 빠르게 개인실로 향하는 네 걸음에서 누군가와 마주칠까 만날까 하는 불안이 내게는 느껴졌다.
네 개인실 앞에서 우리는 한시간 뒤를 약속했다. 임무에서 막 돌아온 너에게는 힘들겠지만 지금은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을 테니. 그저 빨리 다녀오기나 하자며, 서로의 마음에도 머릿속에도 없는 말을 했다.
한시간 조금 지난 후. 워프실에서 좌표를 입력하고 넘어가기 직전에도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괜찮을 거란 말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거란 생각도 그 어떤 희망도 갖지 않았다. 워프게이트를 넘는 그 순간을 마지막이라 여겼다.
에델바이스의 특수부대가 엘리나의 보검을 부수고 가디언즈의 공장을 폭파하고 복귀한 당일. 늦은 밤에 이루어진 나나리 자매의 외출은 로벨리아를 제외한 어느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고 어떤 전언도 남기지 않은 채 조용히 이루어졌다.
시간이 지나 누군가는 자매의 빈 자리를 눈치채었을 지도 모르나, 그 때에는 이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빈 개인실, 통하지 않는 연락, 각기 다른 곳의 빈 자리...
조용한 부재에게 허락된 시간은 사흘이었지만. 그 시간이 지나고도 나나리 자매의 복귀는 없었다. 자매 각자의 단말기는 어느새 신호조차 끊기고. 소리소문 없던 외출처럼 아무런 징조도 없이 자매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려는 것처럼.
>>567 방금 확인했어요! 일단 요청하신 설정은 가능해요. 다만 로벨리아가 뮬을 자세하게 알진 않았을 것 같고 그냥 우연히 한두번 아스텔과 에스티아와 함께 본 적은 있다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 인연으로 붉은 저항의 에델바이스에 들어왔다..라는 설정이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아무튼 결론은 뮬에 대해서 막 자세하게 안다거나 정확하게 안다거나 그렇다기보다는 그냥 우연히 본 적이 있다..라는 느낌이면 적합하지 않을까 싶어요.
임무는 성공했다. 다들 부상은 입었을지언정 단 한 명도 전투불능에 빠지지 않았고. 시설을 완전히 파괴했으며,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를 그 잔해 속에 묻어버렸다. 확실히 숨통을 끊을 수 없었기에 다시 만나겠지만 어쨌든... 압도적인 전력차임에도 불구하고 패배는 없었다. 전투에서 살아 돌아왔으며, 작지만 승리를 만끽해도 좋았으리라. 그러나 임무 직후 에델바이스, 정확히는 네가 포함된 특수부대의 분위기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아니, 밝지 못했다는 게 맞을까. 분명 임무에 성공하고 돌아왔지만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균열이 표면으로 드러났다. 제 0특수부대라는 이름, 세븐스의 자유라는 말 아래 모여 있던 이들은 서로에 대해 잘 몰랐고, 그다지 이해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내면에 품은 분노를 쏟아내는 방향이 위태로웠던지라 너는 임무가 성공했음에도 걱정이 앞섰다.
"......"
생각보다 더 불안정했으며 이는 예견된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보내는 믿음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그렇지 못해서인지, 신념이 단단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불안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새삼스럽지만 혼자 돌아다녔을 때를 떠올린다. 그 땐 이런 일로 고민하는 일은 없었는데.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런 점에서 결국 사람이 모이는 곳은 많은 걸 소모하게 만드는구나 싶었다. 한참을 의자에 앉아 낡은 수첩을 만지작거리던 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랍에 수첩을 집어넣었다. 그러고 보면 임무가 끝난 뒤에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었지. 임무가 끝난 뒤에 바로 근신한다며 방에 틀어박혀 버려서 얼굴을 못 봤지만... 아마 방 안에 있을 터다. 의자에서 일어나 가끔씩 먹기 위해 미리 사뒀던 쿠키를 찾기 위해 휴게실에 먼저 들린 너는 쿠키를 접시에 담아 쟁반 위에 올렸다. 우유도 준비해 든 채 옮긴 발걸음은 어느새 문 앞에 멈췄다.
"이셔, 안에 있습니까?"
흠흠, 하고 헛기침한 뒤 문을 두어 번 두드리며 묻는다. 안에 있다는 답이 들려온다면 들어가도 괜찮겠냐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정직하게 살아왔다니, 놀리는 의도가 명백한 문장에 괜히 물어봤다는 듯 한쪽 눈을 찡그린다. 못 들을 걸 들었다. 이스마엘은 자리에 선 채로 아무렇게나 몸을 기대듯 등에 무게를 실었다. 뒤로 넘어지는 게 당연해야 할 움직임인데도 넘어지기는커녕 보이지 않는 벽에 기댄 듯 마냥 편안한 자세기만 하다. 한 손으로 캔 따며 총에 시선을 뒀다. 마셔야 할 사람이라.
"운이 좋았네. 아버지의 세븐스는 절대 만만하지 않았을 텐데."
음료를 한 모금 목뒤로 넘겼다. 세븐스를 조금이라도 연습해 보고자 했을 적 아버지에게 단숨에 짓눌려 살려달라 빽빽 소리를 지르던 게 어제 같은데. 아버지는 적이었으나, 개죽음을 당하기엔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건가. 이스마엘은 총신의 흉터에 가만히 눈을 내리 깐다.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았지만, 자신에게 세븐스를 쓸 때와는 전혀 달랐구나 싶다. 살벌한 흔적.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인가. 이스마엘은 눈을 느릿하게 들어 올렸다.
"당신 말이 옳아. 그렇게 되어선 안 됐어. 비단 적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라도, 옳지 않은 일이지.."
이스마엘은 손을 들었다. 캔을 든 손이 아닌 자유로운 손바닥을 가만히 펼쳐서 바라보다 괜히 앞머리를 대충 쓸어넘겼다.
"그래서.. 당신도 용서 못하는데, 그 개 같은 새끼들도 도저히 용서를 못하겠네. 품 안에서 죽여놓고 이젠 눈앞에서 터뜨려 죽였으니 말이야."
임무는 성공적이었으나 개인적인 면에선 망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늘 생각만 하고 차마 입 벌리지 못했던 것이 기어이 터진 것이다. 이스마엘은 워프 게이트를 타고 들어오기가 무섭게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갔고, 자신을 맞이하기 위해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던 제 또한 스치는 이스마엘을 미심쩍다는 듯 바라보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곤 뭔가 냄새를 맡았는지 잠깐 놀란 눈을 하더니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자리를 피해버렸다. 그렇게 이스마엘은 의무실도 가지 않고, 개인실에 틀어박혔다.
도착하기가 무섭게 문을 걸어 잠그고 등을 기대며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전투 중에는 겨우 정신을 가누고 내색하지 않았지만 돌아오면 얘기가 다르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덜컥 앞선다. 얼굴을 틀어쥐듯 손으로 감싸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극단적인 감정이 교차했고, 갈 곳 없는 증오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았다. 앞으로 부대 사람들을 만나기가 두렵다. 짧은 순간에 너무 많은 일이 생겼는데 앞으로 더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기억을 더듬어 단편적으로 구성해 본다. 아버지는 눈앞에서 형체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렸고, 자신은 팀에 불화를 일으키려 들었다. 이상향은 역시 이상향에 불과했으며 끝내 자신이 인정한 것이 있었다. 뭐였더라. 아, 젠장. 좀 다물면 안 되나?
"좀 닥쳐봐……."
귀를 한 번 틀어막고 중얼거린 것이 임무가 끝난 당일의 일이다. 그 이후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다. 잠들 수 없었고, 잠들지 않았던 것 같다. 일상을 살아가긴 했지만 그것도 개인실 내부였다. 지금은 젖은 머리를 뒤로 멍하니 손에서 군번줄만 바라보고 있었다. 생각은 그나마 정리가 되는 듯싶지만 결론을 내렸냐면 그건 또 아니다. 노크 소리가 들리자 또 그 희멀건 도마뱀 새끼인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예상과 달리 얌전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왜 하필 지금! 다시금 그때 일이 떠오르는 것 같아 피하고 싶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대화를 하자고 본인이 말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잠시 고개를 들어 흘끔 어딘가를 쳐다보던 이스마엘은 손가락을 까딱였다. 시야에서 사라지는 무언가를 뒤로, 문 앞에 서지도 않고 입을 열었다. 얼마만에 입을 벌리는 것이더라.
"……무슨 일입니까."
잠깐의 침묵 뒤로, 염력으로 문의 잠금을 해제하듯 찰칵, 하는 소리가 났다. 들어올 거면 상관하지 않으니 알아서 들어오라는 듯. 들어온다면 아마 이스마엘은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있지 않았을까. 당신을 맞이하지도 않고.
"실력도 따라준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내가 지금 여기서 너랑 살아서 대면하지 못했을거다. 지옥 가서 부친이랑 한판 더 뜨거나 한잔 하거나, 둘중 하나였겠지."
자연스레 헬무트를 자신과 같이 지옥으로 끌어내리게 되는군. 하지만 그럴만한 인물이라는 것은 알고 있기를 바랬다. 자신의 아버지일지라도 분명히 가디언즈라는 이름 아래에 해선 안될 짓들을 해왔다. 나라고 떳떳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헬무트가 선인이라고는 인사치레로나마 말해주기 힘들다.
"마찬가지야. 다, 그런 놈들 때문인거지. 카시노프나 그놈보다 위에 있는 망할 자식들. 생각해보면 그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사이가 된거라고 본다. 너무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그의 적이었던 나조차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데, 그의 딸이라면. 분노라는 말로 그 감정을 끝낼 수 있을끼? 과연 세상의 어떤 말이 그 기분을 형언할 수 있겠는가. 아마 불가능할거다. 가족을 잃은 자의 슬픔. 심지어 잃어버린 이를 두번이나, 치욕적으로 잃어야만 했을 때의 슬픔과 상실감. 나라면 감당하지 못했겠지.
캔을 들어올린다. 제대로 된 의례조차도 아니고, 생전 내게 좋은 이미지따윈 없었던 인물이지만.
"내게 이럴 자격은 있나 싶겠지만, 같은 군인으로써... 헬무트를 위하여."
다시는 그와 같이 부당하게 희생당하는 군인이 없기를. 이러나 저러나, 언젠가 그나, 다른 희생된 이들에게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줄 날이 올 수 있기를.
신디의 그런 웃음은 너와 함께하는 동안, 영원히 변하지 않고, 오히려 더더욱 환하게,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이 웃게 될 것이라는 건 자명한 미래일 것이다. 볼을 맞대면 신디는 너에게 더 애정 어린 마음을 품는다. 떼어질 때는 조금의 아쉬움을 느끼나, 앞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많을 테니 내색하지 않는다. 너와 시선이 허공에서 얽히면, 장담하듯 하는 네 말에 신디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너와 내가 겪었던 그 일은, 오늘도 내일의 일도 아닌, 과거의 일이다. 다시 이어진 이 작은 세계에선 너와 나는 무사할 것이다. 네 이야기를 시작하면 신디는 신중함과 걱정을 담은 눈으로 널 마주 본다. 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도, 때로는 찢어지듯 아파져와. 너를 안고 있던 제 팔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었을까. 그러나 분위기를 환기하려 했던 네 웃음이 덧없던 것은 아닌지. 표정만큼은 조금 풀어져, 아이처럼 미소 지은 신디는 네게 작게 속삭인다.
"... 응."
그렇다면 이 운명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신디의 시선은 굴러 굴러 발치로 떨어지다, 네 눈치를 살피듯 살짝 든다. 배시시 웃으며 말한다.
무슨 일이냐 묻는 말에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려는 찰나, 문이 잠금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복도와 개인실, 둘을 나누던 문이 이제는 둘을 연결시키기 위해 움직였다.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방, 그리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은 당신.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라며 성큼 방 안으로 들어선 너는 양손으로 흔들리지 않도록 들고 있던 쟁반을 탁자 위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제대로 식사는 하고 있나 싶어서 와 봤습니다. ...식사거리는 아닙니다만."
그렇게 말하며 접시를 덮었던 뚜껑을 살짝 들어 그 안에 담긴 쿠키를 보여준다. 당신이 볼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미리 채워왔다가 먼지가 앉는다거나, 조금이라도 흘려버리면 민폐가 되므로 따로 들고 온 컵과 우유도 내려놓는다. 탁, 하고 잔과 탁자가 마주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주제가 뭐든간에,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었죠."
어떤 이야기를 할까 정도는 생각해볼 수 있었으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준 적이 없기에 너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당신이 먼저, 이야기할 생각이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것일까. 그게 아니었다면... 뭐 그게 아니었어도 결국 저 문은 열렸을 터다. 네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실력은 달리 부정하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지금껏 당신이 보여준 모습을 객기와 증오심 하나로 깎아내릴 마음은 없었거니와, 아버지의 상태를 익히 알았기 때문이다. 이스마엘은 다시금 음료 한 모금을 목뒤로 넘겼다. 지옥, 지옥이라…….
"아버지의 행적에 대해 내가 어쩔 수 없었노라 두둔할 생각은 없어. 아무리 레지스탕스를 뒤에서 돕다 들켜 처형됐다고 한들 그 당시의 일까지 없었던 일이 되는 게 아니란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 망할 자식들 덕분에 사람이 사람답지 못하게 됐는데 누가 안 꼽겠어. 아, 너무 불경했나."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히 올렸다. 불현듯 제가 자신에게 틈이 날 때마다 속삭이던 얘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만한 것이라 한들 살려두어야 한다. 그들이 죽는 것은 너무 가벼운 처사가 아니더냐. 단숨에 죽이는 건 본디 아랫것이나 하는 일이다. 이스마엘 또한 동의하는 이야기였으나 속내는 제법 달랐다.
"그래도 죽일 생각은 없어."
아무렴 죽어버리면 세상이 바뀌는 걸 눈에 담고 스스로 무너지지 못할 테니 아까웁지 않은가. 죽는다 한들 처절하게 눈에 담고 끝까지 과거의 영광을 담다 무너져내려라. 끝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걷어찰 영광을. 그게 이스마엘이 생각하는 그나마 괜찮은 처사의 복수였다. 캔을 쥔 손에 가볍게 힘이 들어갔으나, 구겨질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죽일 생각은 없어."
아무렴 죽어버리면 세상이 바뀌는 걸 눈에 담고 스스로 무너지지 못할 테니 아까웁지 않은가. 죽는다 한들 처절하게 눈에 담고 끝까지 과거의 영광을 담다 무너져내려라. 끝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걷어찰 영광을. 그게 이스마엘이 생각하는 그나마 괜찮은 처사의 복수였다. 캔을 쥔 손에 가볍게 힘이 들어갔으나, 구겨질 정도는 아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 좀 봐. 당신 진짜 마음에 안 들어."
캔을 가볍게 들어 올리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원수나 다름없는 사람이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람으로 보고 있었다니. 이런 모순적인 일이 어디 있을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날카로운 눈매도 유순해진다. 적어도 이곳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곳이며, 위협 없는 곳이니 앞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가령 소곤소곤 비밀을 얘기하거나,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소리를 크게 내어 웃기도 하고, 마을을 돌아다니거나, 근처에서 나는 좋은 냄새가 있다면 그곳에 이끌려 짧은 간식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고, 우정 팔찌를 맞추기도 하며, 습격 걱정은 하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바닥에 누워 별을 보는 일 말이다. 슬럼의 사람들이 내심 꿈꾸던 자그마한 일상처럼.
다시금 등을 쓸듯 토닥여준다. 아이처럼 미소 지은 모습에 입꼬리가 조금 길게 호선을 유지했다. 눈치 살피고 배시시 웃는 것도 그렇고, 이어지는 얘기도 그렇고. 미소에 딱 어울리는 말이라 그런지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했던 웃음과는 달리 말갛게 웃어버린다. "아, 세상에.. 도너티." 이곳에서 너와의 만남이 도넛으로 시작했고, 과거의 끝은 도넛이 됐다. 마치 링처럼 시작과 끝이 모여버렸지 않은가. 참으로 너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잘 됐네. 나도 네가 만든 도넛이 먹어보고 싶었거든."
너는 도넛 그 자체니까. 생글생글 웃는 낯으로 장난스럽게 덧붙인다. 좋아하는 것이니까, 분명 더 깊게 파고들고 심혈을 기울였겠지. 장난스러운 덧붙임과 달리 기대는 빈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본인이 그렇게 하지 않겠다면야. 딸조차도 무마하려 들지 못하는 인물이라... 참 헬무트도 시대를 잘못 타고나긴 했구만. 우리 모두가 그렇겠지만. 모두에게 잔인한 시대다.
"워, 기어이 살려서 죽기 직전까지 고문하거나 뭐 그럴 생각이신가? 생각보다 엄청 손속이 심하구만! 그 노이즈 뒷편에는 이런 괴물이 있었다니."
외견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저 예쁘장한 얼굴의 뒷면에 있는 복수심과 증오는 지옥에서 막 기어올라왔다고 해도 믿겠어. 참 재미있는 녀석이다. 그래.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데서 활약도 못 하고 있었겠지. 다만 그 괴물이 결국 이스마엘 케르스트너라는 하나의 '인물'을 잡아먹어버린다면... 누가 되었든 막아서야 할 지 모른다. 부디 그럴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만.
"니 마음에 드는 사람들 이 근방엔 쌔고 쌨잖아? 마음에 안 드는 놈이 하나정돈 있어 줘야지. 아, 괜찮아. 나 맘에 든다는 사람도 없으니까."
한마디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병주고 약주고 깐족대고 할거라는 뜻이다. 그러게 사람을 잘 보고 대했어야지. 부친에 대한 일종의 작별을 맞이하는 옆모습을 잠깐 보다, 캔에 든 음료를 쭉 들이킨다. 달착지근하다. 지금의 상황에 비해서는 너무나도 달콤한 음료다. 뭐 상황이 쓰디쓴데, 음료라도 달아야지.
"슬슬 가봐야겠다. 혼자 있을 시간을 좀 줘야지. 연초 너무 많이 피우지 말고."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권총을 다시 가져가진 않았다. 잠시 동안만, 그의 묘비로 쓰였으면 했다.
>>674 확실히 기념일 선물은 경우에 따라 선호여부가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니까 아름답고 실용적인 것으로 갑시다! 그러면 문제 해결이에요! 아무튼 레레시아는 뭔가 기분이 나빠질 것 같으면 자신이 먼저 자리를 비키는 성향이 확실히 강하다고 느껴요. 정말로. ㅋㅋㅋㅋㅋ 둥근 주머니. 끌어안고 자는 잠버릇이 있다고 했었지요. 아마! 아무튼 겨울적인 부분도 확실히 있다는거군요. 그래도 일단 제 생각에는 겨울이나 그런 쪽보다는 가을이 좀 더 어울리지 않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문을 열긴 했지만 마중을 나가진 않았다. 평소 같으면 환히 웃기도 하고, 스스로가 웃음을 지었단 사실을 깨달아 수줍어져선 시선을 피하듯 환대해 줄 것이 자명함에도, 지금은 그런 기색 없이 손에 쥔 은색의 납작한 판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쟁반이 탁자 위에 올라와 달그락대는 소리를 내고 쿠키를 보여줄 때 시선이 잠깐 흐르는 것 같았으나 단지 그뿐이었다. 식사라, 그때 이후로 뭔가 먹긴 했나? 글쎄, 부엌은 지나치게 깨끗하고, 쓰레기통 안은 에너지바 두어 봉지밖에 없다.
"그랬지요."
자그맣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뒤로 다시금 입을 꾹 다문다. 대화를 청했던 건 자신이었고, 당신은 어차피 자신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다른 방법을 써서라도 문을 열고자 했을 것이다. 회피하지 않는 것이 낫다는 걸 알면서도 시선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당신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저번처럼 무너질까 싶은 두려움 하나, 스스로에 대한 불신 하나, 지금 당장의……. 안 그럴 것 같더니만 F로 시작하는 단어를 홀로 씹어뱉는 소리가 선명하다.
"─."
이스마엘은 잠시 숨을 깊게 들이마시는 듯싶더니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손에서 굴리던 납작한 군번줄의 줄이 손가락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절그럭대는 소리가 났다. 이내 고개를 돌려 당신을 마주한다. 제대로 잠들지 못함 역력함 피력하듯 눈 밑에 진 그늘도 그렇고, 평소의 야살스러운 듯 호쾌한 미소와 달리 차분한 표정도 그렇고. 평소와 달리 음울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번처럼 손목을 괴롭히진 않은 것 같다.
"미안합니다. 거리를 좀 두고…… 대화하면 좋을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해버려서, 그게.. 그래서.. 사람을 앞에 두고도 신경을 못 썼군요."
아직 일어나진 못했다. 선뜻 다가가지 못함에 가까웠으며, 애써 미소 짓듯이 입술 꾹 다물다 입술 끝 말아올린다. 아, 그냥 없는 척 할걸.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마주하니 괜히 눈시울이 시큰하기 때문이다.
>>680 뀨... 커요미 레시와 일상을 하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쓰다듬으로 만족해드리겠어요. >>681 크읏...! 정 구해지지 않는다면 내일 다시 깃발을 세울게요. 캡틴께서 잡아주신다면 기쁠겁니다앙...🥲 >>683 앗 (화가 풀린 뮬와와) 츄라면... 용서입니다.😘💥
아버지가 사람을 죽였다. 에델바이스에 속해 전쟁을 치르고, 프리덤의 멤버인 엘레인을 죽여버린 본인도 마찬가지 아니느냐며 어쩔 수가 없노라 비호할 수 있겠지만 차마 그럴 수 없는 이유가 따로 존재했다. 이스마엘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느릿하게 감는다. 국가를 위해 충성하는가? 지금부터 너희의 충성심을 보겠다. 단, 참여하지 않는다 해도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 너희는 저들과 달리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발적으로 나서라. 세븐스를 옹호하던 마을에서 주동자를 연행하던 날, 남은 마을 사람들을 향해 벌어진 학살. 이스마엘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맘대로 생각해, 내가 누구 딸인데. 혹시 모르지? 사랑을 담아서 자유롭게 살라고 할지. 왜, 그런 말 있잖아. 원수를 사랑하라."
으, 하는 듯한 눈길이더니만 아예 고개를 하늘로 올려 시선을 피해버리기로 했다. 진짜 짜증 나는 사람이야.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속이 남아나질 않겠다. 그렇다고 해서 적으로 두겠노라 선언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똑같이 해버리면 되니까. 방금 생각한 것이 제법 그 나이 아이다움을 본인은 아는지 모르는지. 당신이 가겠노라 얘기할 적, 이스마엘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턱짓했다. 갈 거면 빨리 가라는 뜻이었겠지. 그렇게 한참을 허공만 쳐다보다, 시선을 내려 총신에 새겨진 흔적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갈 길 잃은 목소리가 조그맣게 흘렀다.
사격술만 훈련해서는 실전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증명해낼 수 없다. 인류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는 스태미너. 그렇기에 전투를 가능한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능력도 키워둬야 하는 법. 특히나 내 경우에는 제대로 단련해두지 않으면 심폐기능이 진짜 끝장이 날 수 있기에, 단련해두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게 일단 산책이라도 하듯 가볍게 트레드밀 위를 달리고 있는데... 뭔가 눈치가 심상치 않다.
"...뭘 하는거지...?"
이후에 이어지는 폭발적인 발언들에 휘청, 하고 트레드밀에서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와중 겨우 중심을 잡았다. 어디... 어디부터 태클을 걸어줘야 하는걸까. 내게는 저걸 어떻게 다 교정할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자신도 없었다. 그저 실의에 빠짐을 표하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덮을 뿐.
"그... 무슨 훈련을 하려고 그러고 있었던건지 물어봐도 될까...?"
하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이 당나귀 같은 소녀, 아니 소녀는 아닌가. 어찌되었든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언제나 말해도 모자라지 않은 말. 뮬은 바보. 바보는 뮬. 뮬은 답을 알고 있다. 레이먼드는 실의에 빠진 채 뮬에게 답을 구했고, 뮬은 답을 알고 있는 이상 답해줄 수 밖에 없다. 답을 안 하면 저 땀에 젖은 큰 어르신께서 노하실 것 같았으니까. 어른에게는 대답을 해줘야 예의에 맞다면서.
뮬은 만 20세다운 괘씸한 생각을 하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이거 말이지예~ 구르기 훈련입니더. 어디서 들었는데, 구르기 이게 참 사기기술이라카지 않겠습미꺼. 용암 위에 있어도 구르기만 야물딱지게 하면 절!대로 타죽지 않는다 했어예. 그래서 구르고 있으예."
뮬의 안경은 멍청해보이는 얼굴을 커버하는 중요한 소품인데, 그 안경은 구르기 중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저 매트 옆에 있었다. 그러므로, 그 얼굴이 얼마나 멍청해보였을지는 간단히 요약하겠다.
수도 없이 많은 위기의 상황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머리 위로 총탄이 날아들고, 땅에는 불이 붙고, 포탄이 터지며 세상을 뒤흔드는 전장. 그리고 그 중에서 홀로, 유유하게 굴러서 총알을 피하고 폭탄을 피하는 그런... 그런 말도 안되는... 화학탄이 터지고 총칼이 날아오더라도! 구르기만 하면! 구르기만 하면 피할 수가 있다고!
"그럴... 리가.. 없...ㅈ..."
아, 요즘 자꾸 옛날 생각이 난다. 옛날의 나 자신을 이제 완전히 잊고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그렇지가 않다. 굴러? 구른다고? 아주 그냥 빡세게 굴러버려야 이 총체적 난ㄱ... 아니야. 아니다. 참아, 내 안의 유격조교. 터져나올 것 같은 스팀을 꾹꾹 누르며 겨우겨우 괴롭게 웃음을 흉내내며 물었다.
잘 못 들었습니다? 를 대충 말하는 발음. 덧니 때문에 조금 발음이 새버린 것 뿐이지만, 뮬은 제로투를 춰서 공격을 회피하는 무림고수마냥 레이먼드의 속을 긁어놓고 있었다. 뚫린 혈마다 그 해맑은 실눈으로 바보강기를 날리는데 혈이 턱턱 막히는 것이 고혈압으로의 고속도로로다.
레이먼드 마음 속에서 터지는 천불은 아랑곳도 안하고, 도리어 어이~오마에~ 너 그것도 모르느냐~ 하는 우쭐한 표정으로 말한다.
"아이고야~ 아저씨 인터넷도 모르능교? 당연히 인터넷에서 봤제예. 인터넷엔 벼라별 게 다 있지 않겠슴미꺼. 구르기도 있었고예, 그리고 거시기, 운기브런치란 것도 있었어예. 부상을 입어도 그거만 하면 싹~ 낫는다 캅니더. 구르기를 마스타하고 나면은 같이 운기브런치 해봐예."
뮬이 검을 쓰지 않는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검강중강약까지 해보겠다 했을 테니까...
자캐가_가진_의외의_특징 : 음.. 몸에 흉터가 많다?는 시트에 써있듯 의외가 아니고.. 왼쪽 눈에 눈물점이 있다? 송곳니가 살짝 뾰족한 편이다? 홍채가 붉은 색조이다?
자캐가_듣고싶어_했던_말은 : 아프다앗
"너는 남들과 다른 게 아니란다. 그저, 주변에 가르쳐줄 어른이 없었을 뿐이야. 네 선택이 잘못된 게 아니다, 이스마엘."
아프다아앗
자캐에게_현재에_만족하냐고_물었다 : "만족합니다. 오늘도 살아있고, 이상향을 위해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으니까요." "가끔 불만스러울 때도 있지만, 과거나 앞으로 있을 미래를 생각하면 현재가 지극히 만족스럽습니다." "음.. 그리고.." "지금 당장 크게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럴만도 하지. 심야에 아이스크림 한통을 먹는데." "네 입에 묻은 아이스크림이나 닦고 말하지?"
1. 「남을 돕다가 내릴 역을 지나칠 것 같을 때의 행동은?」 : "어차피 지나쳐도 됩니다. 날아서 가면 되니까요!" "의무는 다 행하고 가야지요!"
2.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걸 안다면?」 : 진단 미...미친 거 아님...? "그 시점이 과거입니까, 현재입니까?" "과거라면.. 그러려니 받아들입니다. 놓아주는 편이지요. 그때였어도 임무에 부차적인 감정이 생길 것이라며 저 또한 마음을 쉽게 정리했을 겁니다. 본디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그런 법이니까요."
(이스마엘은 천천히 고개를 꺾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니 인정하겠습니다. 더군다나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헤어짐 또한 염두에 두고 있으니.. 오히려, 그 사람과 뜻이 충돌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괜찮다고.. 괜찮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할 텐데.." "……그런데 왜 거슬리지?"
3.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의미없음을 안다면?」 : "압니다. 지금도 충분히 알고 있지요." "그렇지만 제가 하지 않으면.. 아니, 아닙니다." "해야만 하니까요. 이게 더 옳은 말 같군요."
>>717 송곳니가 날카롭다라. 덧니 속성이 살짝 떠오르는데..(갸웃) 으아닛. 듣고 싶은 말이 저런 것이었나요?! 뭔가 위로를 듣고 싶은거로군요. 이스마엘은... ㅋㅋㅋㅋㅋㅋ 아니. 심야에 아이스크림이라니! 하지만 그거..달콤하고 좋죠. 하지만 배탈나고 건강에 안 좋아요!! 그렇게 먹으면! ...2번..너무하다. 나쁘다..(흐릿)
참아야 한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하지 않는가. 분명히... 분명히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더한 고문관들도 정말 장난 아니게 많지 않았는가. 그들을 교화시키는 세월도 있었는데, 이번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세상 별 뭐하는 녀석들만 모아놨는지 오합지졸 중의 오합지졸도 결국에는 한 명의 어엿한 병사로 길러내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달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 와중에 버텨내지 않았는가. 그래도... 그렇다 해도...
꽉 쥔 주먹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쥔 주먹은 이젠 아예 혈기가 빠져 시허옇게 되었고, 흐르는 땀이 그 끝으로 떨어진다.
이마에 흐르는 땀은 트레드밀 위에서 달리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이 식은땀. 이것은 앞에 놓여진 최악의 상황에 내가 정말 끝없이 당황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래. 그래도 어느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정말 무지했구나. 내가 인터넷을 보는 것을 상당히 소홀히 했구나. 그 정도로 넘겨도 되었다. 하지만... 뒤이어 따라오는 영문모를 말에, 나는 그만 참지 못했다.
>>752 아마 레이먼드랑 대화한 이후로 언니랑 대화를 해야겠어! 하고 초콜릿(와중에 베리퓨레 기억하고 그런 상큼한 거 위주로 들어간 걸로 골랐음) 사서 문 똑똑.. 하고 좀 기다리면서 밍...맹....몽.... 하다가 라라시아에게 전해달라 할까 했는데 라라시아도 없고...
그러다 이틀 정도 지났을 때 이럴 리가 없는데. 하지 않을까..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일상은 살아가는데 하루에 한번씩 레샤네 문 두드려보고 염력으로 얇게 펼쳐서 기감 세워봤는데 안이 텅 비어있으니까 자기 방 돌아가서 머리 싸매고 분리불안 온 개처럼 부산스럽게 돌아다니고..
진짜 뻘썰인데 레이먼드랑 투닥투닥 하다가.. 갑자기 신디나 레샤나 쥬 등등 이셔랑 접점 있고 가까운 사람 나타났을 때 이셔 법규 날리던 손 0.1초만에 접고 순진무구하게 온 사람 꼬옥 안으면서 "레이먼드 씨가 계속 저를 괴롭힙니다.." 같은 불여시짓 해서 저거 왜저래 우욱 하거나 뒷목 잡는 거 보고 싶다(?)
잠시 둘러보지만 뭔가 요리한 흔적은 없다. 기껏해야 에너지 바 봉지 두어 개 뿐. 아무리 최소한의 영양소가 담겨있다지만 식사를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 쓰레기통 안에 들어있는 걸 보던 너는 당신의 입으로부터 나온 소리를 듣지 못한 것처럼 멈춰 있다.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마주친 시선 끝 보이는 당신은 피로에 찌들고 가라앉아 있었다. 계속해서 누군가 그러라고 재촉하는 듯 축 쳐진 듯한 모습이었으나 손목은 멀쩡하다. 잠시 손목으로 향했던 시선을 돌리니 목소리는 이어진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됐습니다."
선뜻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바로 돌아오는 대답에 너는 괜찮다며 당신의 부자연스러운 미소를 눈에 담는다. 편하게 앉으라. 라는 말이 들려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네 발걸음은 거침없다. 그리 크지 않은 방 안에서 거침없이 내딛을 거리가 얼마나 되겠느냐만 사실이 그러했고.
F-Word를 아무리 입속에서 씹었다 해도 억양이 거센 탓에 누가 봐도 욕설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도 자제하지 못하고 욕설이나 내뱉다니! 속에서 도저히 정리가 되질 못하고 결단 하나 내리지 못해 예민해졌다지만 이스마엘은 자신이 내심 부끄러웠다. 앓는 소리를 작게 내며 깊게 숨을 고른 이유도 그 탓이었다.
허공을 배회하던 시선이 당신을 향하고 눈을 마주쳤을 때, 생각하던 단어와 문장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선을 긋고자 했던 마음이 일단 사과부터 하자고 급히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더듬대며 느릿하게 뱉은 사과를 받아주었지만. 이스마엘은 애써 미소를 짓곤 시선을 굴렸다. 아래로 향한 시야에서 당신의 다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개인실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인지 앞까지 다가오는 건 금방이었다. 풀썩 소리가 나며 옆자리에 무게가 가볍게 실리기가 무섭게 이스마엘이 입을 벌렸다.
"잔인한 사람 같으니라고."
어째 당신을 잔인한 사람으로 규정지은 것 같지만 최근의 상황이 연달아 이렇게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시선은 손에 쥔 납작한 군번줄에 다시금 향해있었다. 이젠 육신조차 남지 않은 자의 것이다. 이스마엘은 입을 꾹 다물며 묵언을 수행하다 결심한 듯,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나지막이 단어를 흘렸다.
"……그렇게 다짐했는데.. 실망만 안긴 것 같습니다."
힘이라곤 일체 싣지 못한 자조적인 목소리. 이내 눈을 내리 깐다. 그렇게 다짐했는데.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푹 숙여버린다.
잔인함이란 객관적인 판단인가? 아니면 지극히 주관적인 것인가. 잔혹한 것과 잔인한 것은 다르다. 라고 결론내린 너는 당신이 잔인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당신에게는 그런 사람이리라. 옆에 앉자마자 들려온 목소리에 그렇게 대답한 너는 당신을 쳐다보는 대신 쿠키가 담긴 접시가 놓인 쟁반을 쳐다보았다. 이걸 놔두고 가면 바로 먹을까? 배가 많이 고팠다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허기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이는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자니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실망이라... 맞습니다. 실망이 커요."
다짐했음에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당신은 추하다고 여기며 사과하고 있다. 너는 맞장구치듯 대답한다. 푹 숙여진 당신의 얼굴을 보는 듯하더니 몸을 돌려버린다. 당신이 볼 수 있는 건 네 뒤통수와 등, 어느새 너는 침대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이셔, 당신은 내가 추하다고 생각합니까?"
그 정도의 흠결도 덮어주지 못하는 사람, 너 역시 똑같은 사람이구나 싶냐며 묻는 듯. 그러나 직접적인 말을 덧붙이지 않는다.
실망이 크단 말이 들려오자 입술 속의 연한 살을 다시금 짓씹었다. 벌써 몇 번이고 짓씹었기에 너덜너덜했지만, 다행스럽게 터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푹 숙인 고개로 볼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렇지, 스스로도 실망스러웠으니 남들도 그렇게 볼 거라곤 각오했지만. 직접 들으니 제법 아프다. 그럴 자격이 없는걸 알면서도 아프니 뭐니 생각하는 것이 우스워 재차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
손끝에 매달려 위태롭게 흔들리던 군번줄은 소리를 내지 않고 손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세븐스 덕분이었다. 이스마엘은 괜히 납작한 판에 새겨진 이름을 가만히 엄지로 쓸었다. 그리고 제 무릎을 당겨 안으며 고개를 파묻듯 하더니 눈을 굴린다. 새하얀 머리카락의 틈 사이로 당신의 등이 보였다. 긴 머리카락이 굽이쳐 침대 위로 흐르듯 퍼진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못내 괴로운 듯 표정을 구겼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내게 과분할 정도의 사람인데. 차마 그 말까지 꺼낼 자신은 없었는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줄을 쥔 손아귀에 옅게 힘을 줬다. 내고 싶지 않아도 까드득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라지만, 그렇지만.. 미안합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이스마엘은 고개를 파묻고 잠시 말을 골랐다. 생각해온 얘기는 당연히 있었다. 하고 싶었던 말도 많았다. 그런데 당신을 마주하자니 막상 꺼내기가 어렵다. 조금 더 나은 단어를 내어주고 싶은데, 뜻대로 되는 일이 없다. 잠시 깊게 숨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흉골 들썩인다.
"…실은, 그때 이후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못했습니다. 당신에게 얘기할까 싶었는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지 정도를 모르기도 하고, 당신도 당신만의 사정이 있으니.. 그래서.. 당신도 힘들 텐데 괜히 내 얘기를 또 꺼내서 짐을 짊어지게 할까 봐. 그래서 얘기하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이렇게 돼 버린지라. 이스마엘은 고개를 파묻은 채 눈을 감았다. "몰라, 이젠 모르겠어. 흠결을 당신이 덮기엔 엎지른 게 너무나도 크잖아.." 엎질러진 물을 수습하기엔 지친 듯싶다.
아무튼 개인이벤트 상황을 넣는다고 한다면 아스텔도 에스티아도 레레시아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고 각자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싶어지네요. 아스텔은 아마 잔뜩 긴장한 상태로 눈에 힘 꽉 주고 여기저기로 추적하고 있지 않을까 싶고요. 에스티아는 에스티아대로 자신이 사용하는 네트워크를 동원해서 레레시아를 추적할테고.. 로벨리아는 경우에 따라서는 배신의 가능성도 생각하고 최악의 사태에는 사살도 명령할지도 모르고.. 아무튼 그렇다고 해요.
그럴 리 없다는 말 이후 잠시 동안 이어진 침묵, 침묵을 깬 것은 목소리에 앞선 까드득, 하는 금속음이었다. 그것만으로 침묵을 깨고 싶은 건 아니었다는 듯 미안하다며 이어지는 목소리와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 너는 말 없이 기다렸다. 깊게 들이키는 숨은 곧 내뱉어져야 했고 나오는 숨을 따라 목소리는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신은 그 때 이후 당신의 심경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째서 너와 이야기 나누지 않았는지.
"......"
말이 끝나고 자포자기한 듯 말하는 당신을 너는 여전히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입을 열 뿐.
"이셔,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위는 항상 왜곡되어 보인다는 거. 알고 있습니까?"
말을 끝내며 몸을 살짝 돌린 너는 당신이 파고든 무릎 위로 손을 올렸다. 고개 들고 무릎을 내리라는 듯. 당신이 무릎을 내린다면 그대로 무릎 위에 머리를 뉘였을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뒤로 움직여 당신과 등을 마주 댔을 터다. 어찌 되었든간에.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그 왜곡은 자그마해 보인다에 가깝고... 대부분은 그 때문에 보다 긍정적으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선택지를 주는 식으로 써버렸는데... 이거 캐조종...일수도 있을거같아서 미리 사과드리겠습니다 (_ _;)
사실 제일 좋은 방법은 로벨리아가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로 가볍게 처리를 해버리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래도 로벨리아의 대사까지 다 쓰기는 힘들테니까요. 다만 로벨리아는 만약에 배신한 것이 확실하다고 하다면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리니 그 점은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네요!
이따금 얘기해버리면 안 될까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르는 날이 있었다. 아직 놓아주지 못한 것 같다고, 놓아주지 못했다고. 사실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를 했던 그날 이후로도 줄곧 놓지 못한 것 같다고, 놓지 못하는 것에는 더 깊은 사정이 있다고, 여전히 두렵다고, 결국 극단적인 사상까지 가지게 되는 것 같다고……. 그렇지만 세상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 자신이라고 마음대로 되는 법이 있던가? 쓸데없는 걱정이요, 시선이 새록새록 떠올라 기어이 어디에 털어놓거나 기대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당신의 삶이 있는데 어떻게 감정을 전가하겠냔 생각이 치밀었고, 차라리 혼자 안고 가겠노라 멋대로 결론 내리다 이 사달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스스로를 한심하다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젠 지친다. 사람들을 볼 면목도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이상향을 포기하면 좀 편해질까, 파묻은 고개 속에서 눈을 감을 적, 이스마엘은 질문에 침묵으로 답했다.
"……."
무릎 위에 닿는 온기에 눈을 가늘게 떴다. 흘긴 눈동자가 잠시 당신을 향했고, 무릎은 손쉽게 내려갔다. 이윽고 무릎 위로, 정확히는 허벅지 위에 와닿는 간지러운 촉감과 무게감, 그리고 온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 손을 뻗었다.
"……그렇지요. 보다 긍정적으로 보이겠지요."
침대 한편에 쥐고 있던 군번줄을 내려둔다. 당신의 머리를 쓸어보려 했다.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어본 경험이 있는 걸까, 받아들인다면 아마 어색하지 않은 모양새일 테다. 엄지로 반듯한 이마를 시작해 이마 선까지 부드럽게 쓸어주듯 하며, 입을 잠깐 다물었다. 시선을 내리깔 적 눈동자에 속눈썹으로 이루어진 그림자가 진다 한들 광채는 쉬이 사라지지 못했다.
"무거운 이야기겠지만, 긍정적으로 보일 자격이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순 멀미를 느꼈다. 평화 때문에 발 디딜 수 없는 어지러운 초겨울, 불어오는 바람 속, 하루만큼 늙어가는 사람의 냄새. 그 사이로 섞이는 과거의 손짓은 숨통을 조였다. 멀미에 눈이 뒤집혀 시야가 암전 되면 다시 평화가 온 지천에 깔려있었다. 누구에게나 말하지 않는 비밀은 있고, 이스마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여전히 시간은 흐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매 시각마다 늙어가고, 살아가며, 또 어딘가에서 죽을 것이기에. 그리고 아버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적, 시간이 멈췄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각자만의 신념이 있고.. 흠결이 있어도 고결한 뜻이 있지요. 나는 이상향이 이상향임은 알지만 결코 헛되다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남긴 뜻이고, 내가 품은 꿈이자, 나는 이상향 자체니까.."
머리를 쓸던 손이 가늘게 떨리다 멈췄다.
"그런데 그 이상향이 세븐스가 아니라 조국을 위하는 마음에서 기인된 것이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당신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뉘이고 나니, 당신의 얼굴을 자연스레 올려다보게 된다. 위에서 아래를 보는 것과는 다르게, 아래에서 위를 보는 왜곡은 조금 더... 멀고, 뒤틀리기 마련이다. 이른바 보기보다 부정적인 것이다. 당신이 너를 내려다보는 것과는 정 반대로 너는 당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은 아래에서 올려다보아도 마찬가지군요."
왜곡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러나 분명히 그리 느꼈음을 너는 이 밖으로 내고 있었으니 이는 분명 왜곡임에 분명했다. 한 번 뒤틀린 시야를 제 의지로 한번 더 뒤튼다고 해서 누가 나무라겠는가. 오히려 그게 현실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일인 것을. 네 머리에 닿는 손길에 너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쓰다듬 받았던 기억인지, 아니면 쓰다듬었던 기억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손길은 꽤나 부드러웠다.
"......"
세븐스를 위한 이상향이 아니라 조국을 위한 이상향이라. 너는 감았던 눈을 떠 너를 내려다보는 당신의 눈을 마주보았다.
"이셔, 아까 내가 말했었죠, 실망했다고."
너는 대체 뭘 걱정하냐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눈 역시 호선을 그린다.
"당신에게 실망한 게 아닙니다. 진즉에 당신과 좀 더 이야기하지 못한 나를 보고 있었을 뿐이에요."
당신에게 내가 추하냐고 물어봤었죠.
"좀 더 이야기해 줘요, 당신이 말하는 조국, 이상향. 혼자 말하는 게 불공평하다고 느낀다면 마음껏 물어봐도 좋으니... 말을 멈추지 마세요."
그래도 질문에 대답은 해야겠다는 듯 잠시 눈을 감았던 너는 양 손을 모아 손가락끼리 마주 대고는 눈을 떴다.
고양고양이? 아무도 안 볼 때만 우다다 하고 혹시나 걸리면 봤구나.. 봤지..? 하는 표정으로 하루종일 쫓아다니면서 쳐다보는 하얀 고양이~
064 첫 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나요?
뭐... ㅋㅋㅋ 경험은 했지만 믿지는 않아. 그것이 정말로 첫 눈에 반했다! 인지 아닌지 모르니까~
349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한다면
이거이거 음~ 라라시아 나나리. 쌍둥이의 순서상 동생이지. 이제는 대부분 알겠지만 언니인 레레시아에게 병적인 집착이 있고. 가면을 벗은 레레시아와 달리 라라시아는 지금도 가면을 쓰고 생활을 해. 그렇지 않으면 타인과의 소통이 불가능하거든. 아마 자신은 죽을 때까지 그 가면을 벗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레레시아처럼 누군가와 함께할 일도 없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단정짓고 있지. 에델바이스 내로 보자면- 기지내에서의 평판은 평범하지 않을까? 맡은 바는 성실하게 수행하고 인간관계상 트러블은 일으킨 적이 없을 테니까. 대신 그만큼 선을 확실히 그으니까 딱히 친구라던가는 없겠지. 마을에서는 애들하고도 잘 놀아준대~ 근처 술집에서 엄청난 술고래로 알려져있기도 하고~ 음~ 종합해서 겉핥기로 보자면 평범하지만 조금만 주의깊게 응시하면 뒷골이 쎄-한 그런 사람~
>>848 그러니까 그 상태에서 살짝 기대는 것을 레레시아는 좋아한다는 이야기죠? 으앗. 작은 앓는 소리라니. 라라시아도 라라시아지만 아스텔이 들으면 바로 약국에 가서 해열제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약도 사오고 죽도 사오고 뭔가 이것저것 많이 가져올 것 같은데! 아무튼 팔이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다른 것은 몰라도 다리가 없으면 일단 기동력이 부족해지니 레지스탕스 활동은 조금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보검을 해방해서 무장을 두르고 있으면 없는 부분을 대체할 수 있겠지만! 고양고양이...ㅋㅋㅋㅋㅋㅋ 맙소사. 귀여워라! 아무튼 첫눈에 반했다..라는 것은 아무래도 믿기 힘든 사안이긴 하니까요. 으음. 라라시아. 역시 이쪽이 키포인트가 되는거군요. 그렇군요.
당신이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시선에 잠깐 눈을 마주하다 시선을 굴린다. 내려다볼 적에도 당신의 새까만 눈이 콕 박혔기 때문이다. 잠시 당신이 아닌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볼 적, 온전히 뻗어난 이스마엘의 속눈썹은 제법 긴 편이었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도 뺨이나 콧대, 혹은 입술에 가려지지 않을 정도로. 아래에서 바라봤기에 고이 다물린 입술의 연한 속살을 깨무는 것이 보였다.
"위로가 되는군요."
나지막이 읊조리며 당신에게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눈을 감는 모습에 무언가 떠오르기라도 했는지 잠시 눈길이 유순해졌다. 이마 선을 따라, 그리고 머리를 부드럽게 헤집듯. 쓸어주는 손길을 뒤로 당신의 눈을 다시금 마주한다. "그랬지요." 실망했노라 하였지. 당신의 그 말이 어찌나 따끔했는지는 부러 말하지 않았다. 호선이 그이는 입과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스마엘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잖아요. 이야기하지 않으려 들었던 내 잘못도 있는걸."
음울한 듯 어딘가 체념한 듯한 표정에 평온함이 깃든다. 조금 더 얘기해달라 했지만 얼마나 더 얘기해야 할까, 그리고 어디까지 이야기해도 좋을까. 당신에게 너무나도 많은 걸 짊어지게 두는 건 아닐까. 삶의 무게를 함께 감당할 수 있다고 한들 이게 옳은 것일까.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잠시 여러 고민이 스쳤으나 길지 않았다. 당신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고, 대화는 이미 시작됐으니까. 이스마엘은 멈췄던 손을 다시금 움직였다. 머리를 헤집는 손길이 부드럽다.
"그렇지요. 아버지의 뜻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싶지만.. 내가 자원한 겁니다."
이스마엘은 잠깐 말을 골랐다.
"폐허에서의 삶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조금이라도 일이 늘어나서 들어오지 못하면 늘 혼자였지요….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환경 탓이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아버지는 가디언즈였고, 폐허를 스스로 나서기 전까지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미디어가 아니면 일체 본 적이 없으니까."
개발이 중단된 구역에 있었던 것은 당신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제 세계는 지극히 편협했지요. 검열 받는 언론을 보고 살았으니 탄압받는 세븐스는 죄가 있기 때문이라 믿었고, 아버지는 그런 위험한 것들에게서 죄 없는 시민을 지키기 위해 늘 목숨의 위협을 받고 사는 분이며, 나는 아버지의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위험한 세븐스에게 표적이 되어 이곳에서 숨었고, 그게 지극히 당연한 것이노라 생각했습니다. 제 조국은 세븐스임에도 불구하고 맞서 싸우는 아버지의 노고를 치하하는 영광스러운 곳이었지요."
제법 불경하지요. 당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느려졌다.
"제가 세븐스를 깨달은 뒤로는.. 제가 표적이 되었다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지만요. 저는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달리 보면 가디언즈에게도 표적이 되더군요. 아버지께서는 이따금씩 제게 적개심을 드러내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놀라 사과할 때가 잦았지요. 아마 그때였을 텝니다. 가디언즈가 되겠다는 꿈을 굳혔던 것이. 위험한 나라도 제대로 훈련 받고 국가를 위해 살면 이 시선이 달라지겠거니 생각했던 것이.."
잠시 고개를 숙였다.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뺨으로 느릿하게 향했다. 잠깐 입을 다물어버리곤 눈을 깜빡이는 것이 마저 입을 열게 하려면 합당한 대가가 필요하다는 듯 무언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
이제 레샤는 에델바이스 공식 냥이인걸로! 따뜻한 장판과 츄르를 준비해! 털실공도! 준비하지 않은 자 우다다와 몸통박치기를 당할 것이다(? 청소년기 레샤는 가면을 쓰기 이전이라서 그런건지 특유의 시니컬함이 두드러지는 것 같네요, 앳된 모습이라 귀엽지만.
오늘은 좀 늦게까지 있어야 할 것 같네요 흠 ...음 갑작스럽지만 뭔가 한번쯤 꼭 보고 싶은 시츄에이션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대상, 친애하는 대상이 혐오스러운 모습(외적인 부분이든 내적인 부분이든)을 보여 공포 혹은 꺼려짐의 대상이 되었을 때 본능적으로 차오르는 공포로 인해 덜덜 떨다가 그 모습을 본 대상이 큰 충격을 받고 도망치는 거...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걸 붙잡고 마는, 여전히 본능으로 인해 일그러져 있지만 붙잡는 손은 놓지 않는. 후후..후후후
레샤는 같이 있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구나... 포근하고 말랑한 첫진단에 행복한데 특별한 약향 이거 좀 신경 쓰인다.. 저번에도 라라가 태워줘서 잠드니 몽롱하던 향이 그거인 것 같은데.. 앓는다니 언니한테 죽.. 끓여주면 암살시도라 안되는 점이 통탄스럽다...🥺 어..? 다른 방향성의 결핍이 더 무서운데 흠..🤔 여기 다 자캐코패스밖에 없는 것 같아.. 역시 언니는 고양이구나~ 싶은데 우다다 걸리면 하루종일 쫓아다니면서 쳐다본다는 점이 정말 사랑스러운 것 같아.. 츄르를 조공으로 바칠게!🥰 사랑은..열린...문..(아님)
라라... 라라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듣게 되다니 정말 기뻐. 그렇지만 역시 언니에게 있는 병적인 집착,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이유가 소통이 불가하다는 점, 그리고 스스로 단정짓는 점을 보니까 어쩐지 이번 갠이벤이 더 불안해지는 느낌인걸... 그래도 평판은 괜찮은 편이라지만..🤔 흐으음.......
굳이 말하자면 저는 평화롭고 힐링힐링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다만 스토리를 짜다보니 이렇게 된거지!! 아니. 하지만 원작도 이 정도 분위기는 된다고요! 거긴 세븐스가 비능력자들을 좀비로 만들어버리고 생기를 뽑아서 에너지원으로 쓰는 실험도 하고 그러는걸! 보스가 대놓고 자연을 지키기 위해서 비능력자들을 모조리 말살시킨다. 이런 말을 하는 세계관인걸!!
멸망_후_세계에_혼자_살아남는다면_자캐는 : 이히익 이거 왜 나오는거야(비명) 예전에도 말했던 것 같은데.. 이스마엘은 생존자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다들 살아남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스스로 깨달아 목숨을 끊기 전까지 정처없이 돌아다닐 거라고.. 어떻게 보면 '마침내 비참한 생이 끝날 때까지'라는 문장이 가장 잘 어울릴 만큼 처절하게 돌아다니지 않을까 싶다..
자캐의_부위_별_터치_반응 : 도와줘요 구글! 했다가 심연 보고 왔는데 두어 개는 심의상 지울게..
이마: "아, 열은 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야!" < 딱밤 맞았음 눈꺼풀: "으응. 간지럽습니다." (고개 도리도리) 콧등: (고개 도리질22) 귀: "저- 그러니까, 귀는 조금.." 뺨: "음.. 인조 피부 같지만 아닙니다. 다행스럽게도." 입술: "저기, 그러니까.. 뭐라도.. 묻었습니까?" 머리(카락): "그러니까- 그게.. 조금만 더.." < 쓰다듬 좋아함 목: "히잉이 뭐뭐뭐뭐하시는겁니까손치우십시오무례하기는!!" < ? 손: "손 잡고 걸을까요?" 허벅지: (이스마엘은 당신을.. 잠시 미쳤냐는 눈으로 쳐다봤다.) "그, 눕고 싶은 거면, 그러니까. 그게.. 아, 음." 발: (이스마엘은 발을 뒤로 뺐다..)
뭐가 빠졌냐면 있어 그런게 이스마엘도 뺨 치는 부분이겠다(?)
자캐가_자고_있는_모습을_서술해본다 : 음~ 이셔는 평소에 홀로 자는 모습이 지쳐 쓰러져 잠든 사람 같다고 해야하나.. >>15에 나왔던 자세중에 제일 마지막 자세인데, 조금 변형이 된 느낌이지. 한쪽 팔로는 눈가를 덮어 가리고, 한쪽 무릎을 굽혀 세워 자는 편. 반대쪽 허벅지에 올리지는 않아. 뒤척이지는 않는 편. 기절잠이 아닌 이상 깊게 잠들지 못하는 편이고, 본인 또한 약간의..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서 잘 때 염력으로 된 장을 엷게 펼쳐서, 사소하게 튕기는 흐름을 읽어내는지라 아주 옅은 충격만 있어도 눈을 번쩍 뜨는게 문제지..:3
푹 잠들면 얌전하게 잠드는 편이긴 해. 다리 굽히고 그런 버릇 없이 살짝 웅크리듯 누워서 잠드는..? 뭔가 안겨주면 어색하게나마 꼬옥 끌어안고 폭 파묻어주면서 잔다구~ :3
>>872 허벅지...ㅋㅋㅋㅋㅋㅋㅋ 그, 그 이상은 안돼요!! 그리고 위험한 것도 안돼! 하지만 다른 것들은 뭔가 모바일게임 느낌이라서 귀여운 것 같아요! 아무튼 자는 모습이 지쳐 쓰러져서 잠든 사람 같은 느낌이라. 하지만 가장 마지막은 아무리 생각해도 지쳐 쓰러져서 자는 사람의 느낌이 아닌데..(흐릿) 아무튼 잠을 깊게 잠들지는 못 하는 편이로군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아로마 캔들을 두어서 이스마엘이 정말로 푹 자는 것을 유도하는 수밖에!
8ㅁ8... 안대 이셔 혼자 남지마... 그런 세상은 있으면 안돼... (오열) 어 그래서 뺨 치는 부분은 어디인데ㅇ(머리 후려맞음) 히히히 나중에 이셔 루즈삭스 신겨줄거야 그러면서 은근슬쩍 발 조물거릴테다 히히히히ㅣ 잠든 이셔 안쓰럽지만 귀엽지.. 얕게 잠든 강아지 톡 건드려 깨울 때의 그런 느낌이랄까... 히히...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던 잘못도 있다는 당신의 말에 무어라 덧붙이지는 않는다. 그랬다간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비슷한 말만 주고받을 테니까. 대신 머리를 헤집는 부드러운 손길과, 네 말에 반응하기 위한 당신의 목소리에 감각을 곤두세웠다. 그의 이상향이었으나 당신이 자원한 것이기도 한 그것에 대한 이야기는 당신의 과거로 향하는 길을 따라 널 이끌었다. 당신은 세븐스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없이 지내왔으며, 접해 온 것들은, 그리고 그가 접하게 하려고 했던 것들 역시 한 꺼풀 덮여 있어 본질을 알아볼 수 없는 왜곡된 상이었으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건 어느 정도는 너도 마찬가지였다.
"......"
제법 불경하다며 쓰다듬는 손이 느려지자 너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이제 당신은 세븐스에 대해 알았다. 그리고 가디언즈가 되고자 했다. 그것에 대해 누가 잘못되었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당신이 보았던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와 같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 뭐가 문제란 말이냐. 어쩌면 그 편이 당신의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능한 가디언즈의 밑에서, 엘리트로 훈련받은 또 하나의 가디언즈가 되어 세븐스라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특권을 누리며 살아갔을지도 모른다. 이제 당신의 손은 네 뺨에 닿았다. 뺨에 퍼지는 온기에 살짝 시선을 돌려 본 짙은 빛의 피부, 그리고 다문 입과 깜빡이는 눈에 너는 손을 들어 뺨에 닿은 당신과 포개며 입을 열었다.
"이셔, 내 목 뒤를... 본 적 있습니까?"
아마 없을 터다. 목을 가리는 복장과 머리카락으로 제대로 본 사람은 없을 테지만 혹시 모르지, 전투 중 드러났을지도 모르는 일이기에 확인 차 묻는다. 만약 아니라면 몸을 일으켜 주변보다 짙은 색의 흉터를 보여줬을 터다. 여전히 선명한 숫자도. 잘 볼 수 있도록 머리카락을 붙잡아 살짝 들어올렸으니 목덜미는 잘 드러났겠지. 오늘은 초커도, 목을 가리는 옷도 아니었으니 더더욱.
"철없는 이들의 장난이었습니다. 방화를 일으켜 잡혀간 세븐스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던 것 같네요."
너는 웃음을 흘렸다.
"그 방화로 내가 살던 집도 불타버렸는데 말입니다."
천천히 머리카락을 놓으니 사르륵, 하고 하나 둘, 이어서 무더기로 머리카락이 내려앉아 흉터를 가렸다.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행동을 했을까. 당신을 등지고 앉은 채, 너는 말을 이었다.
"내가 보고 들었던 모든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통제에서 벗어나 범죄를 일으키는 세븐스들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고, 가디언즈는 그런 이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했죠. 지져진 걸로도 모자라 낙인을 훼손하려 했다며 저항할 새 없이 끌려다닐 때 그 손아귀에서 걷어낸 것도 가디언즈였습니다."
너는 그 속삭임을 기억한다.
"'숫자를 지우려고 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도와주겠다, 가디언즈가 되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앞으로 이런 꼴은 당하지 않게 해 주겠다.', 무슨 선택의 여지가 있었겠습니까? 죽고 싶지 않았는걸요. 그렇게 저는 가디언즈가 되었고 당신이 말한 것처럼 절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습니다."
당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의미였는지, 꽤 길게 이어지던 말이 이제는 당신 차례라는 듯 멈춘다.
저는 사악하지 않습니다... 그보다 제가 갑자기 사악해지다뇨 본래 모든 존재에겐 심연이 있는 법이거늘(? 뭐든 설명하면 본래의 맛이 떨어지고 스스로 맛보고 즐기는 걸 방해하게 된다고 하지만 다들 너무 맵다든가 어둡다든가 말씀하시니 부연설명을 할 수밖에 없겠군요...
추악한 모습을 마주해 공포에 질리는 것은 본능이니 나무랄 게 못 됩니다만, 그걸 보고 충격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본래 이성과 감성은 자주 가는 길이 다르니 머리로는 당신도 사람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 생각하겠지만 마음은 항상 당신만은 그러지 않았으면 했는데 절규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포효하거나 찢어발기려 하는 모습도 나옵니다만 소심한 것인지 놀랍게도 이성을 부여잡는 데 성공한 것인지 그저 돌아서 도망치는 것입니다... 반면 공포에 떠는 자는 본능이, 이성적 판단이 도망쳐야 한다고 소리치고 있음에도, 어떤 위험이 닥쳐올지 모른다며 끊임없이 계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멈칫거릴지언정 그 손을 붙잡고야 마는 것이죠. 이는 두려움이 없는 전진, 무모함이 아니라 영혼으로부터 끌어낸 용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게 보고 싶은 겁니다... 붙잡는다, 공포에 떨면서도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는 그 행위와 낙담하고 분노가 피어오르면서도 찢어버리는 대신 놓아버리려고 하는 그 행위에 담긴 모든 것을 말이죠...
쓰고 나니 진자 변태같네요 적당히 하겠스빈다
부위별 터치 반응은 의외로 얌전히 터치하게 둔다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 하나, 일단 만진 뒤의 반응 전까진 그대로 냅둔다는게 흥미롭군요(???) 물론 만진 뒤는 책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원래 도전이란 그 결과를 알고서도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아님 그리고 이셔... 지금부터 제 목표는 이셔가 쥬를 안고 한숨 푹 자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자꾸 푹 잘 때마다 안고 자야해서 대신하라고 인형을 주고 그게 버릇이 돼서 쥬가 있는데도 인형을 안고 잠들면 묘하게 신경쓰는 쥬를 보는겁니다 헤헤
>>879 우... 우와 어떻게 이런 매콤함이... 그렇지 네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하는 약간의 배신감이나 공포가 있어도 찢어버리는 대신.. 그... 그 눈동자와 눈동자가 마주쳤을 때 보여주는 많은 감정적인 서사와 순간적으로 치닫는 불꽃같은 전개... 나도 되게 좋아해..... 선생님을 변태로 인정합니다(뭔)
폐허는 이스마엘의 전부였다. 삶의 터전이었고, 안락한 보금자리였으며, 위험에서 이스마엘을 지켜주는 요새이자 낙원이었다. 그런 곳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바깥의 세븐스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알려주는 프로파간다 드라마, 영화, 그리고 열띤 토론을 하며 가디언즈를 칭송하는 결말로 이어지는 방송과 뉴스뿐이었다. 아버지는 가디언즈이자 국가에 충실했던 분이었기 때문에 접하던 소식은 더욱 편향적일 수밖에 없었다. 바깥에서 세븐스가 어떤 취급을 받는지 본 적이 없지만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생모를 죽였기 때문에, 아버지를 다치게 했기 때문에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고해가, 보여준 진실이, 슬럼으로 도망쳐 보며 겪은 현실이 이스마엘을 비로소 일깨웠다. 창문을 깨고 뛰어내렸을 적 마침내 완전해진 것이다. 느릿하게 당신의 눈을 마주해본다. 이따금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순응했더라면, 아버지와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까. 가디언즈가 되었더라면 아버지는 죽지 않았을까, 이젠 부질없는 소리다. 이미 세상에 대해 알아버렸는데 그런 각오가 통할 리가. 비록 플래나의 말에 흔들리긴 했지만 이스마엘이 흔들리며 받아들이고자 했던 것은 다른 의미였다. 차마 당신에게도 말할 수 없는, 온전히 벗겨내면 다시는 다시 뒤집어쓸 수 없음을 아는 가면. 당신의 뺨을 조심스럽게 엄지로 쓸어보고, 손바닥으로 덮는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지만 쉬이 믿을 수 없을 만치 보드라운 촉감. 동공과 홍채의 구분이 가지 않는 검은 눈동자라지만 뺨의 촉감 때문인지 말갛게 쳐다보는 듯하여 엄지에 약하게 힘을 줘본다. 보드랍게 눌리는 감촉과 함께 당신이 손을 포개자 이스마엘은 옅은 미소를 입가에 그려냈다. 아직은 음울한 기운이 채 가시지 못한 미소다.
"아니오."
당신은 목을 가리는 복장을 주로 입었으니, 볼 수 없었다. 전투 중에는 스스로의 목숨을 간수하는 것도 힘겨웠던지라 누군가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도 없었다. 당신이 그때 자신의 앞을 막아섰을 순간에도. 불현듯 그때의 감각이 치고 올라오는 듯하여 다시금 입술 속 살을 짓씹는다. 몸을 일으키며 머리카락을 붙잡아 들어올렸을 적, 짓씹던 잇새에 조금 더 힘을 줘버린 탓인지 짓무르던 연한 살에서 기어이 피가 배어나왔다.
철없는 사람들의 장난. 방화를 일으켜 잡혀간 세븐스 때문에 일어난 일. 당신 또한 피해자였음에도 세븐스라는 이유 때문에 대신 괴롭힘을 당했던 걸까. 머리카락이 다시금 흉터를 가렸지만 이스마엘은 쉽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팠겠군요, 혹은 지금은 괜찮습니까? 그런 말도 차마 나오지 못했다. 당신이 받았을 고통의 깊이를 이해하려 드는 것이, 어쩐지 기만이 되어버릴 것 같아 쉽사리 위로할 수가 없다. 눈을 가만히 내리깔다 다시금 들어 올렸다.
"……그랬군요."
겨우 입을 벌려 말했던 것은 심심한 위로가 아닌 공감이었다. 당신이 가디언즈였단 사실은 레이버 덕분에 알고 있었고, 당신 덕분에 알게 됐지만 이런 사정이 있었을 줄은. 이스마엘의 시선이 잠시 어딘가를 향했지만 알 수 없다. 당신 또한 가디언즈가 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었다. 자신처럼 인정이 아닌 생존을 위한 사정이.
"……."
얘기를 시작하기 전 팔을 뻗었다. 자신을 등지고 있는 당신을 말없이 끌어안고 고개를 한쪽 어깨에 파묻었다. 새하얀 머리카락이 어깨를 타고 쏟아졌다. "이젠 괜찮을 겁니다." 짧은 위로. 그리고 눈을 감는다.
"뭐라고 해야할까요. 그래, 이상향을 꿈꾸며 가디언즈의 꿈을 접은 이유는.. 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아버지는 학살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자진해서, 홀로. 세븐스를 옹호하는 마을의 주동자를 연행한 이후 남은 마을 사람을 몰살시켰지요."
목소리가 어둡다.
"모르는 척하며, 그 사람들이 죽을만해서 죽은 것이다. 국가의 해악이었기에 죽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살았지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아버지는 그 이후 망가져가기 시작했으니까요. 잠들다 깨셔서 나를 부여잡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울기도 하고,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잠에서 깨어 주변을 경계하거나.. 점차 눈에 보일 정도로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국가에서 소모품으로 취급함을 깨달았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더군요.
"세븐스가 아니라 내가 사랑해 마지않던 조국이 아버지를 좀먹고 있던 겁니다. 저는 아버지를 위해 조국을 등져야겠노라 생각했습니다."
이스마엘은 잠시 자신의 뺨을 더듬었다. 아직도 화끈거리던 그때의 충격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에르베르토 엥엘.. 아, 그.. '천사' 에르베르토." "수잔나도 미인이라고들 하지만 에르베르토는 차원이 달랐지. 그러니까... 사실 높은 자리를 얼굴로 따낸 게 아니냔 말이 돌 정도로. 직접 보면 개안이란 말이 뭔지 안다니까. 그리고 알아주는 애처가였지. 바람을 피울 사람은 절대 아니었고, 수잔나가 죽은 이후로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어. 지금도 사별한 아내를 위해 미혼을 고수하고 있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직도- 선망하고 있지." "그 번지르르한 겉껍질 속에 악마가 자리잡은 건 모르고." "아무리 '사별'을 이유로 하며 눈물을 짓는다 한들, '지금까지 벌어진 일'에 대한 정당성은 충족할 수 없다는 뜻이야." - ???
>>92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훌쩍이는 제 귀여워~~ 위에서 한심한 눈빛 하고 있는 이셔도 귀엽구 ㅋㅋㅋ 나나리즈 저 사악한 표정... 너무 맘에 든다~~ 분명히 라라는 뿔을 건드렸을거고 레시는 꼬리를 잡았을것이야 ㅋㅋㅋㅋㅋ 에델 공식 녹용ㅋㅋㅋㅋㅋㅋㅋ 오호라 그렇게 부르면 운다 이거지...(?)
도망치긴 뭘 도망쳐. 내가 뭔 짓이라도 할 거라 생각한건가?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일개 대원일 뿐인데 말이다. 그게 다행인가 불행인가 싶지만. 어떤 면으로는,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켜 줄만한 인물이 필요한 법이다. 나도 그렇게 훈련을 받았고, 다른 이들에게 훈련을 행했다. 그래서 훈련받은 비능력자 스커미셔가 세븐스들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던거고.
다만 에델바이스는... 어디까지나 각자의 능력을 존중해주지만, 그만큼 각자의 능력에 굳이 터치를 안하는 성향 때문에 지금같은 일이 발생하곤 한다. 애초에 '모병'이라는 개념보단 스카웃에 가까우니 어쩔 수 없겠지만.
"...이걸 어디서부터 태클을 걸어야 하지?"
앞머리를 쓸어올리면서 난감함을 표한다. 내 다리에 머리를 부딪힌 이 가련한 토끼의 지능과 당나귀의 우둔함을 가진 동료 대원의 목덜미를 붙잡아 슬쩍 들어올리고선,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고서는 다시 으름장을 놓는다. 그래... 요즘 옛날 성격 너무 많이 나온다. 인정해야겠다. 그리고 다 털어놓을 때도 다가온거 같고.
"내가 팀원들에게 웬만해서는 싫은 소리 안 하고 싶은데, 과연 그게 정말로 좋은 생각이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거 같으면, 그땐 물리적으로 생각을 뜯어고쳐줄 줄 알아. 알겠어?"
상식. 보통 그러한 정보를 거르는 것을 상식이라고들 한다. 애석하게도 지금 눈 앞의 이 친구는 그러한 상식의 부족을 겪고 있으면서도 용케 지금까지도 가디언즈와 싸워왔던 것이다. 어떻게...? 우연의 일치거나 실전에 강하거나 뭐 그런 쪽이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작금의 사태는 말이 안된다. 조선 천지에 있을 수가 없는 일이야! ...무슨 말이지? 아무튼.
"어이구, 그러셔? 그럼 이것도 어디 한번 피해 봐라."
목덜미를 잡아 들어올린 상태에서 뮬의 볼을 톡톡 친다. 따귀를 때리는 막되먹은 짓은 하면 안되고. 그렇게 잠깐 드잡이질을 하다가, 정말 무슨 나귀 울음소리마냥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순간 목덜미를 놓고야 말았다.